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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7년 박역굴(朴汝ㄱ屈) 등의 임야매매명문(林野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光緖三年二月卄三日 朴{汝/ㄱ}屈 光緖三年二月卄三日 朴{汝/ㄱ}屈 전라남도 보성군 朴{汝/ㄱ}屈 외 3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77년 2월 23일에 박역굴(朴汝ㄱ屈) 등 4인이 선산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임야매매명문(林野買賣明文) 1877년 2월 23일에 박역굴(朴汝ㄱ屈) 등 4인이 선산을 매매하면서 발급한 임야매매명문(林野買賣明文)이다. 변고가 있는 해를 당해 모든 자손이 살아나갈 길이 없어 종회 의논에 의거해 본군 문전면 가천촌 가력동 선산 금양국내(禁養局內)를 전문 11냥에 영영 방매하면서 발급한 증서이다. 산주(山主)의 기록이 있는데, 한량 박역굴과 약수, 득추, 순철 등이다. 이름 아래에 수결이 있다. 매득자의 직역과 성명은 기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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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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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902년 조(租)의 장부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癸卯 十月十五日 山直 癸卯 十月十五日 山直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2년 산지기 등의 조(租)의 수량을 적은 장부 1902년 산지기 등의 조(租)의 수량을 적은 문서이다. 산지기와 준룡(俊龍), 복남(卜南)의 조를 각각 기록하였다. 조 아래에는 비용 내역을 적었다. 끝에는 이듬해 10월 15일의 산지기의 구조(舊租)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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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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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86년 이기두(李箕斗) 통정대부(通政大夫) 교지(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李箕斗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高宗 李箕斗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919 1886년 12월에 이기두를 통정대부에 임명한다는 일종의 사령장 1886년 12월에 이기두를 통정대부에 임명한다는 일종의 사령장이다. 이기두는 직역이 유학(幼學)이었다가 이때 아마도 납속(納粟) 등의 방법으로 관직을 취득한 것으로 보이는데, 먼저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을 취득하였다. 그 직후에 또 임명된 관품이 통정대부이다. 통정대부는 문관의 품계로서 종3품의 상계(上階)이다. 끝에는 날짜를 기재하였는데, 직인을 찍은 부분을 종이를 붙여 가렸다. 광서는 중국 청나라 광서제의 연호이며, 이는 갑오개혁 이전인 1894년까지 사용되었다. 직인은 연호년 위에다 찍었는데, 흐려서 글자를 식별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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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3년 성주이씨 대동보소(大同譜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癸亥舊二月二十五日 星州李氏大同譜所 李冕容 癸亥舊二月二十五日 星州李氏大同譜所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3년 음력 2월 25일에 성주이씨 대동보소(大同譜所)에서 단자 제출 관련으로 이면용(李冕容)에게 보낸 통문(通文) 족보 간행과 관련한 통문이며, 대동보의 간행이 늦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각처에서의 단자 제출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이래로 단자를 거둔 인원수가 8,403명이다. 백중숙계(伯仲叔季)를 가지고 논하자면, 숙계파로 단자를 들여도 백중이 아니면 서차(序次)할 수 없고 백중도 숙계에 있어서 마찬가지이다. 또 비용이 많이 들어 세월을 마냥 천연할 수 없으니, 먼저 세덕편은 먼저 인출 중이나, 정단(正單)의 정지는 기다릴 것이니, 각파에서는 단자를 합쳐서 보내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좌기(左記)라고 하여 일종의 기준을 제시하였는데, 단자 제출 마감일과 세덕편의 진행상황을 제시하였고, 보청(譜廳)을 빙자해서 돈을 거두는 자에게 주지 말 것 등의 사항을 주지시키고 있다. 끝에는 보청의 도청(都廳) 이하 각 직임자의 명단이 열거되었으며, 수신자의 이름이 있다. 문서의 중앙 가까이에는 성주이씨 보소의 직인이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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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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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0월 14일 이관(李瓘)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陰十月十四日 族從 李灌 陰十月十四日 李灌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음력 10월 14일에 이관(李瓘)이 대동보(大同譜)의 일로 보낸 간찰(簡札) 음력 10월 14일에 이관(李瓘)이 대동보(大同譜)의 일로 보낸 간찰이다. 주요 용건은 대동보에 관한 것이다. 대동보 간행이 이미 3세(世)를 넘었으니 그 사이에 태어나고 늙고 살아있거나 죽은 이의 숫자가 얼마인가? 대조(大祖) 묘사(墓祀)에 원근에서 참석한 여러 족속이 수백 명이었는데, 족보의 일을 논의하여 귀일되었으니, 즉시 단자를 정리하고 유사를 정해서 보소에 보내기를 바란다. 그리고 회시할 때 주소의 번지 등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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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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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10년 조진기(趙鎭基)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嘉慶拾五年 庚午 三月十一日 自筆 畓主 幼學 趙鎭基 幼學 高時旭 前明文 嘉慶拾五年 庚午 三月十一日 趙鎭基 高時旭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140 1810년 3월 11일에 조진기(趙鎭基)가 고시욱(高時旭)에게 논 6두락을 125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매매문서. 1810년 3월 11일에 조진기(趙鎭基)가 고시욱(高時旭)에게 다른 땅을 매입하기 위해 논 6두락을 125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2년 전인 1808년에 표광진(表匡鎭)에게 산 땅을 다시 팔게 된 것이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경(嘉慶) 15년 경오년 3월 11일 유학 고시욱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라. 내가 스스로 매득한 논을 이매(移買, 이사 가면서 팔고 삼)를 위해 문전면(文田面) 가천(可川) 앞 돌미평(乭彌坪)에 있는 수(受) 자(字) 논 외변(外邊) 3두락(11부 8속)과 내변(內邊) 3두락(8부 9속)을 125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에게 본문기와 함께 영영 방매하니 이후로 잡담이 있으면 장차 이 문서를 살펴서 바로잡을 것이라. 자필(自筆) 답주(畓主) 유학 조진기(趙鎭基)[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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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99년 김봉식(金鳳植) 노비(奴婢)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己亥 八月十七日 標主 木同 金鳳植 己亥 八月十七日 金鳳植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160 1899년(기해) 8월 17일에 김봉식(金鳳植)이 아무개에게 여자 종을 매입할 때 작성해 준 약속 증서 문서에는 '기해(己亥)'라고 되어 있는데 '1899년 8월 22일 김인동(金仁同) 노비매매명문(奴婢賣買明文)'이다. 이 수표를 토대로 작성된 문서이므로 이 시기의 문서임을 알 수 있고,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종 점순(占順)의 여식인 복율(卜栗)을 매매할 때의 가격으로 문서 중에 있는 250냥 내에서 100냥은 먼저 내주고 나머지 150냥은 이번 달 22일에 전라도 감영(監營)으로부터 입안을 받고 갖추어 줄 것이며, 만약 기한이 지나게 되면 관청으로 오고 가는데 드는 부비(浮費)는 내가 감당할 것이라. 신·구문기(新·舊文記)는 이미 받았다. 기해년 8월 17일 표주(標主) 목동(木洞) 김봉식(金鳳植)[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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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99년 황참봉(黃參奉) 노비매매명문(奴婢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노비매매명문 大韓光武三年 己亥 八月初九日 上典 黃參奉 前明文 大韓光武三年 己亥 八月初九日 黃參奉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160 1899년 8월 9일에 황참봉(黃參奉)이 김인동(金仁同) 댁에 여자 종을 매도하면서 작성해 준 매매문서 1899년 8월 9일에 황참봉(黃參奉)이 김인동(金仁同) 댁에 여자 종을 250냥에 매도하면서 작성해 준 문서이고,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한(大韓) 광무(光武) 3년 기해 8월 초9일 아무개 앞 명문. 이 명문을 만드노라. 형세가 부득이해서 금년 봄 구매한 여종 점순(店順)의 여식 복율(卜栗)을 본래의 가격 250냥으로 작정해서 김인동 댁으로 영영 방매(放賣)하오니 이후로 만약 다른 말이 있으면 이 문기로 증빙할 것이라. 상전(上典) 황참봉(黃參奉)[착명]. 증인 백남효(白南孝)[착명]. 작성자 박동항(朴東恒)[착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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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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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56년 이세필(李世弼) 숙모(叔母) 김씨(金氏)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乾隆貳拾壹年 丙 子十二月卄二日 畓主 叔母 金氏 侄李世弼 處明文 乾隆貳拾壹年 丙 子十二月卄二日 叔母 金氏 李世弼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756년 12월 22일에 숙모(叔母) 김씨(金氏)가 조카인 이세필(李世弼)에게 논 12두락을 22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매매문서. 1756년 12월 22일에 숙모(叔母) 김씨(金氏)가 생활이 어려워 조카인 이세필(李世弼)에게 논 12두락을 22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문서의 특징으로 매도자 숙모 김씨는 평민이나 천민, 해당 신분의 여성이 서명하는 방법으로 우장(右掌) 즉 오른손 바닥을 그려 넣었다. 세부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건륭(乾隆) 21년 병자년 12월 22일 조카 이세필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으로 방매하는 것이라. 제위답(祭位畓)을 여러 해 갈아먹다가 생시에 이처럼 살아나갈 방법이 어려워지니 부득이하게 문전면(文田面) 갈본질원(乫本叱員)에 있는 수(受) 자(字) 논 1두락(3부 3속)을 22냥으로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교환해서 받고, 매입자인 조카에게 본문기(本文記) 2장과 함께 영영 방매(放賣)하니 이후로 자손 중에 잡담이 생기는 폐단이 있으면 장차 이 문서로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숙모 김씨(金氏)[우장(右掌)]. 작성자 유학 이춘방(李春芳)[착명].'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_23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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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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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922년 우편물수령증과 접수증 고문서-증빙류-근현대문서 金川面長 李敎成 金川面長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2년 9월 26일에 발급한 우편물수령증과 접수증 1922년 9월 26일에 발급한 우편물수령증과 접수된 문서이다. 수취인씨명과 차출인 숙소와 이름, 인수번호, 우편료, 표기금액 등의 난이 있다. 수취인은 나주군청 접수계이며, 차출인은 보성 문덕면 용암리에 거주는 이교성이다. 접수한 문서가 첨부되어 있는데, 그것은 나주군 부전지(符箋紙)에 쓴 것이다. 내용은 묘지의 신설(新設)에 관한 것이며, 금천면장에게 보내는 것이다. 피봉에는 본다증시(本多增市) 각항 서류(書留) 기건(棄件)이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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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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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시(詩) 고문서-시문류-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오봉산이 내다보이는 강동리에서 벗과 정을 나누는 심경을 서술한 내용의 7언시 1수 미상년에 모인이 오봉산(五鳳山)이 곧장 앞으로 내다보이는 곳 강동리(江東里)에서 벗과 수응(酬應)하며 정을 나누는 심경을 서술한 내용의 7언율시 1수이다. 한번 지팡이를 짚고 석문(石門) 언덕 밖으로 나가니 오봉산 앞머리가 곧장 보이고, 국화가 피어있다며 경치를 읊었다. 가을에 떨어지는 나무를 보고 상대가 깊이 나누지 못했던 정을 아쉬워하고 손에 들어온 놀라운 소식이 담긴 편지에 사람들이 놀라고 겨울을 당하여 어찌할지 말들 하는데 글을 멈추고 산루(山樓)에 기대어 멀리 바라본다고 당시의 상황과 자신의 행동을 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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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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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무○년 정운오(鄭雲五)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戊易初六 鄭雲五 可川 南原宅 戊易初六 鄭雲五 可川 南原宅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무○년 역월 6일 공복제 정운오가 상대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안부를 전하며 자신에게 찾아와 줄 수 있는지를 물은 간찰 무○년 역월(易月) 6일에 공복제(功服弟) 정운오(鄭雲五)가 상대에게 자신의 근황을 전하며 상대에게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 주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가천(可川) 남원댁(南原宅)에 보낸 간찰이다. 벗을 그리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추운 겨울에 상대가 손자와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험지로 부임하여 갈수록 헤아릴 수 없으며, 해마다 이치를 거슬러 참혹한 광경이 자신 한 몸 보존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이번 가을에는 셋째 누이가 죽었다고 말하고 겨우 자신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는데 다시 일들에 골몰하여야 한다는 것, 내일이나 내일모레에는 마지못해 길을 떠나야 한다며 그래서 만날 수가 없으니 형이 혹시 가능하다면 자신이 있는 곳으로 와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발신자 정운오(鄭雲五, 1846~1920)의 자는 경일(景日)이고, 호는 벽서(碧棲)이며, 본관은 연일이다. 정조원(鄭祚源)의 아들로, 담양 지곡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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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久阻耿仰 際玆惠復驚倒 慰豁藉 伏拜諗比寒經體侍歡萬禧 尤何等愜祝 生一味昏憒 年底景色 自多惱鎖 不敢向 故人煩瀆耳敎意謹悉 四書三經京鄕板無論有幾許秩而惟在內外舍亂秩中 姑未整理 姑俟更奇爲好 相換事 非麗史卽向椷中貴近有宋子大全二秩欲以朱子大全相換爲 戒而以鄙邊朱書換來仰請者也 麗史武經史選以卄五円願賣云故 第以見本 府投爲煩者也 此外如有賣品則隨機卽示之當隨示議處之似好似好宋書落帙事 第當仰副而此亦俟後便爲仰 文章正宗覓之 不見似入板秩 此亦更似後之如何 朱箚間果入抵耶曉窓所陳草草 姑閣欠敬統希亮察至旬有一日 生 金永完 拜拜(皮封_前面)寶城郡 文德面 可川里李 敎成 氏宅郵便日附印 : 光化門 9.12.17 ▣…(皮封_背面)京城 益善洞 一二○金永完至月十一日郵便日附印 : 全南·福內 9.12.13 后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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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영보재(永報齋) 관련 시모음 고문서-시문류-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영보재(永報齋) 관련 시모음 영보재(永報齋) 관련 시를 모아놓은 것이다. 회산(晦山), 해사(海史), 초산(楚山), 석오(石梧), 석성(石醒) 등 5명의 시이다. 영보재(永報齋)는 송간(宋侃, 1417~1492) 선생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1800년(정조 24)에 후손들이 건립하였으며, 1920년과 1979년에 중수하였다. 송간은 호가 서재(西齋), 시호가 충강(忠剛), 본관이 여산(礪山)이다. 조선초기의 문신으로 관직이 형조참판(刑曹參判)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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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이기두(李箕斗) 가선대부행용양위호군(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 교지(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李箕斗 光緖十二年 十二月 日 高宗 李箕斗 서울특별시 종로구 施命之寶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919 1886년 12월에 이기두를 가선대부행용양위호군에 임명한다는 일종의 사령장 1886년 12월에 이기두를 가선대부행용양위호군에 임명한다는 일종의 사령장이다. 이기두는 직역이 유학(幼學)이었다가 이때 아마도 납속(納粟) 등의 방법으로 관직을 취득한 것으로 보이는데, 먼저 절충장군행용양위부호군을 취득하였다. 그 직후에 또 임명된 관직이 통정대부이다. 가선대부는 문관의 품계로서 종2품의 하계(下階)이다. 행(行)은 행수법(行守法)이라는 인사 규정의 하나로서 관직이 품계보다 낮을 경우 관직 앞에 이 글자를 붙인다. 용양위호군은 중앙군사조직인 오위(五衛)의 하나인 용양위에 소속된 정4품의 무관직이다. 끝에는 날짜를 기재하였는데, 직인을 찍은 부분을 종이를 붙여 가렸다. 광서는 중국 청나라 광서제의 연호이며, 이는 갑오개혁 이전인 1894년까지 사용되었다. 직인은 연호년 위에다 찍었는데, 흐려서 글자를 식별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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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족제 이의용(李宜容)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寅 二月 初八日 李宜容 李冕容 丙寅 二月 初八日 李宜容 李冕容 경기도 부천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6년 2월 8일에 족제 이의용이 종답의 방축 비용 30원을 부쳐달라는 부탁을 하고자 이면용에게 보낸 간찰(簡札) 1926년 2월 8일에 족제 이의용이 종답의 방축 비용 30원을 부쳐달라는 부탁을 하고자 이면용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족제 자신은 옛날처럼 크게 놀랄 일 없이 지내고 있어 다행이라고 하였다. 물왕리의 제종도 평안한데 소재의 종답(宗畓)이 작년의 홍수로 무너진 곳이 적지 않다고 하면서 그에 관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동안 수차에 걸쳐 방비했어도 아직 완전한 축대를 쌓지 못했다. 이곳의 종인들은 빈한하지 않은 듯하지만 방축에 드는 비용이 백척간두이니 이 형세를 어찌 할 수 없다. 이를 헤아려서 비용조로 30원을 송부해주면 경계와 두둑을 잘 쌓아서 완답(完畓)이 될 것이니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고 하였다. 발신자는 부천군 소래면 무지동에 사는 이의용이며, 수신자는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에 사는 이면용이다. 피봉에는 편지를 전하기에 매우 급하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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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년 조수환(曺壽煥)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趙壽煥 李大淳 趙壽煥 李大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조수환(曺壽煥)이 이대순(李大淳)에게 보존등기 비용 관련 건으로 보낸 간찰(簡札) 조수환(曺壽煥)이 이대순(李大淳)에게 보존등기 비용 관련 건으로 보낸 간찰(簡札)이다. 국한문혼용체이다. 하교한 등기가 지체되어 죄송하다고 하고, 보존과 이전 등의 전체 비용을 기재하고 급히 살펴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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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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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2년 이훈(李壎) 등 6인 간통(簡通)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壬戌十月十三日 星州李氏譜所 李石城宅入納 壬戌十月十三日 星州李氏譜所 李石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2년 10월 13일에 이훈(李壎) 등 6인이 농서군공(隴西郡公) 자손의 대동보에 관한 일로 보낸 간통(簡通) 대조(大祖) 농서군공 자손들의 대동보(大同譜)에 대한 통문이다. 대동보 편찬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귀 문중에서 빨리할 필요가 있다. 이보다 앞서 귀 문중에서는 이 일의 자초지종을 소통하고 규제하며 일일이 진술하여 남음이 없었다. 이미 보고서 다 알 것이라 생각되지만, 이 일을 헤아려서 속히 단자를 거두어 음력 10월 그믐날 안으로 정해서 유사가 여기로 보내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끝에 추신이 있는데, 재람(再覽)한 후에 즉시 답신해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발신인은 이훈을 비롯하여 이태희, 이병희, 이관, 이병양, 이정상 등 6인이며, 이름 아래에 날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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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22년 이면용(李冕容) 망단자(望單子)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壬戌 十二月 十五日 星州李氏 大同譜所 李斯文 冕容氏 座下(피봉) 壬戌 十二月 十五日 星州李氏 大同譜所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2년 12월 15일에 성주이씨 대동보소에서 이면용(李冕容)을 도청(都廳)으로 의망한다는 망단자(望單子) 성주이씨 종중에서 대동보를 편찬하기 위해 설치한 보소에서 이면용을 도청으로 임명한다는 단자이다. 도청은 실무책임자를 가리키며, 당시 이면용의 직역은 유학(幼學)이었다. 직임은 대동보도청(大同譜都廳)이며, 날짜 위에는 성주이씨보소의 직인이 찍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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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54년 이시백(李時白) 처(妻) 장씨부인(張氏夫人) 토지매매명문(土地買賣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乾隆拾玖年 甲戌 四月初四日 畓主 故李時白妻 張氏 [右掌] 林爾章 處明文 乾隆拾玖年 甲戌 四月初四日 故 李時白妻 張氏 林爾章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143 1754년 4월 초4일에 이시백(李時白) 처(妻) 장씨부인(張氏夫人)이 임이장(林爾章)에게 논 1두 2승락을 27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매매문서. 1754년 4월 초4일에 이시백(李時白) 처(妻) 장씨부인(張氏夫人)이 생활이 어려운 연유로 임이장(林爾章)에게 논 1두 2승락을 27냥으로 받고 팔면서 작성해준 문서이다.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건륭(乾隆) 19년 갑술년 4월 초4일 임이장에게 주는 명문. 이 명문으로 방매하는 것이라. 내 부부의 제위답(祭位畓)이 있어서 여러 해 갈아먹다가 생활이 어려운 연유로 형세가 부득이해서 문전면(文田面) 가천촌(可川村) 앞 임내평(林內坪)에 있는 부(夫) 자(字) 논 1두 9승락 내에 하변(下邊) 1두 2승락(5부)을 27냥에 가격을 작정하여 그 수대로 받고, 위 사람에게 영영 방매하되 본문기는 다른 전답에 붙어 있어서 주지 못하며 이후로 잡담이 있으면 장차 이 문서를 살펴서 관청에 고하여 바로잡을 것이라. 답주(畓主) 고(故) 이시백(李時白) 처 장씨(張氏)[우장(右掌)]. 작성자 동성(同姓) 오촌 유학 이시화(李時華)[착명].'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_23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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