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허복일(許福一)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昌平縣監 許福一 行縣令<押> □…□(6.8×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4년에 창평현에 사는 호주 허복일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 1894년(고종 31)에 창평현에 사는 호주 허복일이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과 소유 노비 현황 등을 기록한 호구단자를 관에 제출하여 확인을 마치고 돌려받은 준호구이다. 허복일의 거주지는 창평현(昌平縣) 동서면(東西面) 화성리(花城里)이고 오가작통 순번은 제1통 1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39세 병진생(丙辰生)이며, 본관은 양천(陽川)이다. 허복일의 사조(四祖)는 생부(生父) 학생 윤({玉+侖}), 양부(養父) 학생 영(瑛), 할아버지 학생 창(淐), 증조(曾祖)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通政大夫僉知中樞府事) 집두(集斗), 외조(外祖) 학생 남병두(南柄斗) 본관은 의령(宜寧)이다. 허복일의 아내 이씨는 나이 22세 계유생(癸酉生)이고 본관은 함평(咸平)이다. 이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찬서(爘緖), 할아버지 학생 유홍(儒洪), 증조(曾祖) 학생 석운(錫運), 외조 학생 고제룡(高濟龍)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이외 가족으로 어머니 남씨(南氏) 나이 60세 을미생(乙未生)이 있으며, 소유하고 있는 종 채례(采禮)가 있다. 이 문서의 작성연호로 표기되어 있는 '광서십구(光緖十九)'는 갑오년(甲午年)인 '광서이십(光緖二十)'의 오자(誤字)로 추정된다. 호적개정은 자·오·묘·유자(子·午·卯·酉子) 식년(式年)이지만 광서 19년은 계사년(癸巳年)이며, 문서에 기재되어 있는 허복일과 가족의 생년과 나이를 계산하면 갑오년인 1894년이다. 또한 허복일이 호구단자를 제출한 연도를 표기한 '신묘식(辛卯式)'은 1891년 이전 호적개정 식년이므로 '갑오식(甲午式)'의 오자로 추정된다. 이 문서에 '호적단자(戶籍單子)'라고 적혀 있고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창평현령의 서압(署押)과 관인(官印)이 찍혀있고, 주묵(朱墨)의 오가작통 통호(統戶)가 적혀 있다. 이는 제출한 호구단자를 구호적(舊戶籍)과 대조 확인을 마친 뒤에 허복일에게 다시 돌려준 것이므로 준호구로 분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