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2년 장대윤(張大允)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張大允 康津縣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2년(정조6) 장대윤(張大允)이 자기 호(戶)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강진현(康津縣)에 제출한 호구단자 1782년(정조6) 장대윤(張大允)이 자기 호(戶)의 현황을 기록하여 강진현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윤의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으로, 나이는 39세이다. 호주인 장대윤의 사조(四祖)와 처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사조 및 같이 살고 있는 아들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장대윤의 사조는 부(父)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은 사망하여 고(故)라고 표시되어 있으며,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처 김해김씨는 39세이고 김해김씨의 사조는 아버지는 김위재(金渭載), 조부는 김천석(金天碩), 증조부는 김애명(金愛明), 외조부는 본관이 경주인 정무현(鄭武賢)이다. 아들 장계득(張啓得)은 19세이다. 호구단자는 호주가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대조 및 확인 작업을 거친 후 다시 돌려주는 과정에서 지방관의 서압(署押)이나 관인(官印),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또는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 등이 찍히기도 하는데, 이 호구단자는 그러한 흔적은 없이 실제 가구원인 호주와 모시고 있는 아버지를 뜻하는 봉부(奉父), 처, 아들 위에 주묵(朱墨)이 찍혀 있고, 문서의 오른편과 하단에 '서(書)'라고 쓰여 있어 확인 후 다른 대장(大帳)에 올렸음을 추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