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17956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丁酉十一月初三日 稅錢尺黃田面山永里奴礼化錢伍拾兩捧上行官丁酉十一月十三日 稅錢尺黃田面山永里奴礼化錢肆拾兩捧上行官丁酉十一月卄三日 稅錢尺黃田面山令里奴礼化錢肆拾兩捧上行官丁酉十二月初四日 稅錢尺黃田面山令里奴礼化錢參拾兩捧上行官丁酉十二月卄三日 稅錢尺黃田面山令里奴礼化錢貳拾兩捧上行官行所鄕長[官印], [印]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癸巳二月初八日黃山令稅米貳石癸巳二月十四日黃山令洞稅米壹石[官印], [印]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黃山永奴禮化八十分錢貳拾肆兩納丁二初九書員金[手決]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順明明德 賦譬磨鏡而復照喩琢玉而乃彩文生有而穆照堯思安而蕩彩顧初學之入德皆失之於本軆無不善於在初以明德而明者揆以求則有餘夫子所以誦傳陳旣徃而昭著越若來而如覩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順天府爲照訖事幼學 年居 靣小學入格爲有置帖文成給爲遣合下仰照驗施行須至帖者右帖下 准此年 月 日照訖[官印]帖 [署押]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昔我先祖睡翁公有以氣節相許者 卽隱峯先生安公是也 一與之傾蓋 契誼甚篤 曁我文正公 千里造門 至有不朽之託 而其所景仰之意 每溢於咫尺之書 此近洙所以聞其風而服其義者 有倍餘人焉已 先生之造詣固非末學所敢窺涘 而蓋以魁奇之姿 有淵源之學德義崇茂 論議正大 菀然爲斗南之模楷 其羽翼斯文 扶植世敎之功 有不可誣矣 先生文集 曾有刊本 而後孫壽祿 更加裒輯 編成年譜 竝誌狀而附之 仍以先生所著抗義新編 混定錄等書 合爲一呇 今乃重刊而廣傳于世 於是乎先生之言議本末 得有所考 而使讀之者 怳然若供灑掃承緖餘 百世之下 有足以廉頑而立懦 嗚呼韙哉 我東數千載 有圃隱重峯兩先生出 其道學節義 可以撑天地懸日月 而先生之篤信尊慕 必在於兩先生 後之尙論者觀於此 可以知先生也歟崇禎後四甲子仲夏之日 德恩宋近洙 謹跋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題牛溪先生書牘帖右牛溪先生與隱峯安公手牘四紙 隱峯納之衣縫中 得全於兵燹 其後孫正欽聖一作帖而寶藏之 間甞携以示余 擎玩莊誦深有感於當日所値之時 師生相與之義而若其書中所云先察自家氣質之病 克己矯治 損其有餘 補其不足 必以孝悌忠信爲本 以謙遜拙訥爲質 以沉潛篤實爲功劬書玩索 堅苦操持云云者 則實學者入德基址 用功本領 而一句一字一點一畫 無非眞誠中流出 至今百八十有餘年 猶覺其遺光餘薰之襲人也 聖一方有志於學 勇往不怠 苟於此玩味而有得焉 其所以涵養克治 以進乎道者 豈待他求哉因敢竊識其後以歸之 要與共勉焉鹿門任公文集第十一冊二十二卷十七板公諱聖周字仲思鹿門號也 官至成川府使 與宋櫟泉閒靜堂兩賢 爲姊兄弟 從遊陶菴李先生 憲宗朝 贈成均祭酒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37년 최민정(崔旻正)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寶城郡守 崔旻正 行郡守<押> 寶城郡守之印(6.5x6.5), 周挾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972 1837년에 보성군(寶城郡)에서 최민정(崔旻正, 30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주소: 龍門面 養淸洞 第 里第 統第 戶 *가족사항: 奉母 蔡氏(51세), 妻 光山金氏(29세), 弟 時正(27세), 嫂 光山金氏(29세), 弟 壽正(24세), 嫂 尙州周氏(20세) *소유노비: 奴 1口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장택기(葬擇記) 12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장례(葬禮) 일정을 정하기 위해 작성한 장택기(葬擇記). 祭主, 葬地, 運, 安葬日, 下棺 시간, 開土 시간, 穴의 깊이, 啓殯, 發引, 停喪, 取土 방향, 周堂, 造命 등 기록 *亡人: 乾化命己卯土 *安葬日: 七月十三日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치부기록류

장택기(葬擇記) 13 고문서-치부기록류-택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장례(葬禮) 일정을 정하기 위해 작성한 장택기(葬擇記). 祭主, 葬地, 運, 安葬日, 下棺 시간, 開土 시간, 穴의 깊이, 啓殯, 發引, 停喪, 取土 방향, 周堂, 造命 등 기록 *亡人: 坤化命辛酉木 *安葬日: 八月十六日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79년 나도일(羅燾溢)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羅燾溢 羅州牧使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814 1879년(고종16)에 나도일(羅燾溢, 27세)이 자기 호(戶)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나주목(羅州牧)에 제출한 호구단자 1879년(고종16) 나도일(羅燾溢)이 자기 호(戶)의 현황을 기록하여 나주목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나주목 신촌면 용두리(현 전라남도 나주시 안창동)에 사는 나도일은 33세이고, 정미년(1847)생이며, 본관은 나주이다. 아버지는 나후집(羅厚集)이고, 조부는 나시완(羅時完)이며, 증조부는 나성채(羅聖采)이다. 외조부는 이현빈(李顯彬)이고, 본관은 함풍(咸豊)이다. 아내는 정씨(鄭氏)로, 33세이고, 정미년(1847)생이며, 본관은 나주이다. 정씨의 아버지는 정인혁(鄭仁赫)이고, 조부는 정기표(鄭基杓)이며, 증조부는 정인운(鄭麟運)이다. 외조부는 양석포(梁錫圃)이고, 본관은 제주이다. 어머니는 이씨(李氏)로, 나이는 56세이고, 갑신년(1824)생이며, 본관은 함풍이다. 노비는 앙역(仰役)노비 1명이고 이름은 영덕(永德)이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光緖五年 月 日 羅州牧考己卯成籍戶口帳內 新村面龍頭里住第 統第 戶幼學羅燾溢年三十三丁未 本羅州父學生厚集祖幼學時完曾祖學生聖采外祖學生李顯彬 本咸豊妻鄭氏齡三十三丁未 籍羅州父幼學仁赫祖學生基杓曾祖學生麟運外祖學生梁錫圃 本濟州奉母李氏齡五十六甲申 籍咸豊仰役婢永德甲寅生等己卯戶口自首者牧使○ 연결문서1816년 나성채(羅成采) 준호구(准戶口)1819년 나성채(羅成采) 준호구(準戶口)1825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1828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1831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1834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1840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1843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1846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1855년 나성채(羅聖采) 준호구(準戶口)1861년 나시완(羅時完) 준호구(準戶口)1872년 나도일(羅燾溢) 준호구(準戶口)1876년 나도일(羅燾溢) 준호구(準戶口)1879년 나도일(羅燾溢) 준호구(準戶口)1885년 나도식(羅燾植) 준호구(準戶口)1888년 나도운(羅燾雲) 준호구(準戶口)1894년 나도신(羅燾臣) 준호구(準戶口)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28년 이동헌(李東憲)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東憲 咸平縣監 官[着押] 3顆(7.0×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520 1828년 이동헌이 함평 현감에게 김진성(金振聲)과의 소송에서 패소한 일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의 소지 1828년 함평현 평릉면 사산에 거주하는 이동헌이 함평 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이동헌은 신광면 장산에 거주하는 김진성과 산송을 진행하던 중에 대질 신문을 거쳐 패소하였는데, 이 일이 매우 억울하다는 내용이다. 패소에 이르게 된 것은 자신의 효성이 부족하고 성품이 우매하기 때문이지만 법의(法意)의 측면에서 따져보면 김진성이 계장(繼葬)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상놈의 신분으로 양반가 분산(墳山)의 묘소 뒤쪽으로 40여 보(步)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범장(犯葬)을 한 것은 이미 분수를 모르는 짓이고 사대부가의 분산이 침탈을 당한 것이니 매우 억울하다는 것이다. 김진성이 가지고 있는 도형(圖形)을 환수하여 효주(爻周)해서 무효화함으로써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하였다. 이에 대해 함평 현감은 도형에 잘못이 있다고 의심된다면 직접 친심(親審)하여 적간(摘奸)한 뒤에 처결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체차되어 돌아가니 뜻이 있어도 이룰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射山化民李東憲右謹言民四月分以親山山訟事與新光面長山金振聲對卞而竟致落科之境民自知誠孝淺薄性品愚騃致此寃迫矣原其法意則渠雖繼葬以民漢犯葬於兩班家墳山壓腦四十餘步之地者已是犯分是白遣民雖殘劣以大夫墳山見奪於壓脉至近之地者豈不痛刻乎今伏聞咸民無祿賦歸在卽云民之私心痛恨與他自異玆不得已冒沒仰籲伏乞 特恕民之至寃情勢厥漢處所在圖形還收爻周以解民之至寃情私千萬祝手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戊子六月 日〈題辭〉疑有圖刑之誤錯擬爲親審摘奸後決處矣今爲遞歸可(背面)謂有意莫遂事 十六[署押]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851년 김상지(金相之) 수기(手記) 고문서-증빙류-수기 金相之 李啓華 金相之 手決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542 1851년 김상지(金相之)가 이계화(李啓華)의 선산에 자신이 투장(偸葬)하였음을 인정하고, 오는 1월 말일 안에 무덤을 파 옮기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의 수기 1851년 12월에 김상지(金相之)가 이계화(李啓華)에게 작성해준 수기이다. 김상지는 평릉면 사산리에 사는 이계화의 조모 산소에 자신이 우매한 탓에 범장(犯葬)을 하였음을 인정하고 오는 1월 말일 안에 무덤을 옮기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이다. 관련문서를 통해 볼 때, 김상지는 이 기한을 넘겨 이계화 측이 다시 소송을 제기하였고, 이로 인해 다시 4월 20일 안에 옮기겠다는 수기를 작성한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을유년 북창도감(北倉都監) 자문(尺文) 1 고문서-증빙류-자문 北倉都監 都監<押> 海南縣□圖□□(7.5x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615 을유년 2월 1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 을유년 2월 1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이다. 해남현 마포면(馬浦面) 냉천리(冷川里)의 병술년조 세미 2섬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자문에는 세미 수취 책임자인 도감관(都監官)이 착압한 뒤 북창도감도서(北倉都監圖署)를 날인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志)?에 따르면 해남현 마포면과 청계면 사이에 북창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 참고가 된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乙酉二月初一日馬浦冷川里丙戌稅米貳石捧上印都監[着押][北倉都監圖署]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乾隆三十二年丁亥十二月二十五日 幼學尹昌孝前明文右明文事段 自起買得耕食是如可 要用所致 本面大云洞員伏在染字田牟種四斗落只 負數八卜庫乙 價折錢文六兩五錢以交易 依數捧上爲遣 右人前 本文記幷永永放賣爲去乎 日後族屬中 如有雜談是去等 此文告 官卞正事田主 幼學 金漢雄妾尹氏[右手掌]證 幼學 家翁從孫 金尙澤[着名]筆 幼學 金德估[着名]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1798년 양주하(梁冑厦)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梁冑厦 寶城郡守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98년에 양주하가 보성군 관아에서 발급받은 준호구 1798년(정조 22)에 호주인 양주하(梁冑厦)가 보성군(寶城郡) 관아에 제출하였다가 돌려받은 호구단자이다. 18세기 이후에는 호적 작성 행정의 간소화로 인하여 호구단자와 준호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즉 호주에게 1통의 호구단자를 제출하게 하여 그것에 수정 내역을 표기하고 착업·날인하여 되돌려줌으로써 준호구 역할을 겸하게 하거나, 처음부터 호주가 준호구 형식으로 작성하여 제출하면 관아에서 날입·착압하여 돌려준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1)1) 『한국고문서입문』2(국사편찬위원회, 2021) 497쪽 참조. 본 호구단자는 후자에 해당한다. 양주하의 거주지는 송곡면(松谷面) 박곡촌(亳谷村) 제1리(里)이며, 제9통 제3호에 편성되었다. 직역은 유학(幼學), 출생년은 신해년으로 올해 68세이고,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호주 이외에 호주의 사조(四祖), 처 백씨(白氏, 70세 기유년생, 본관 水原)와 처의 사조(四祖), 아들 철진(喆鎭, 41세 무인년생)과 며느리 안씨(安氏, 46세 계유년생, 본관 竹山), 아들 국진(國鎭, 나이 40세 기묘년생)과 며느리 송씨(宋氏, 24세 신사년생, 본관 南陽), 아들 영진(永鎭, 나이 38세 신사년생)과 며느리 정씨(丁氏, 34세 을유년생, 본관 靈光), 아들 택진(宅鎭, 30세, 기축년생, 明鎭으로 개명)과 며느리 박씨(朴氏, 23세 병신년생, 본관 咸陽)의 인적 사항이 기재되어 있다. 문서 하단에는 소유 중인 노비의 인적 사항이 도망 노비를 포함하여 기재되어 있다. 양주하의 외조(外祖)인 선태구(宣泰九)는 진해현감(鎭海縣監)을 역임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승정원일기』 영조 19년(1743) 9월 29일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본 호구단자를 작성한 연도인 무오년은 1798년일 가능성이 크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松谷面亳谷村第一里第 統第戶 通德郞 梁義浩 年四十二甲辰 本濟州父 通訓大夫行萬頃縣令全州鎭管兵馬節制都尉 喆鎭生父 通德郞 國鎭祖 學生 冑厦曾祖 通德郞 基爀外祖 學生 安鼎輔 本竹山奉母 安氏 故妻 金氏 年四十丙午 籍光山父 出身 㝡煐祖 通德郞 宗運曾祖 折衝將軍 行龍驤衛副護軍兼慶州鎭營將 得麟外祖 學生 金夢栢 本靈光甲申月日乙酉式[準]

상세정보
517956
/25898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