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안종묵(安鍾黙) 등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安鍾黙 安鍾黙<着名>, 安澤煥<着名>, 安璣煥<着名>, 安基煥<着名>, 安啓煥<着名>, 安成煥<着名>, 安錫煥<着名>, 安圭萬<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0년 5월 18일에 안종묵(安鍾黙) 등 8명이 안방준(安邦俊)의 신도비(神道碑)를 세우는 과정에서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저지한 안규직(安圭直) 무리의 행위를 고발하면서 문적(文籍)을 간행해서 안규직 무리를 아예 단절하자는 내용의 회문 1900년 5월 18일에 안종묵(安鍾黙) 등 8명이 작성한 회문(回文)이다. 문강부군(文康府君) 안방준(安邦俊)의 신도비(神道碑)를 세우는 과정에서 안규직(安圭直)이 이를 저지하며 분란을 일으키자, 안종묵 등이 다른 파(派)에 회문 형식으로 이를 고발하며 문적(文籍)을 간행해서 안규직 무리를 단절하자는 것이다. 자손은 선조에 대해서 만물이 천지에 대한 것과 같아서 만세에 도망할 곳이 없기 때문에 조상을 공경하지 않는 것은 패륜한 자손이고 스스로 그 조상을 단절하는 것은 배반하는 자손이니, 이 중에 한 가지만 해당되어도 사람의 이치에 용납될 수 없는데 더구나 이 둘을 다 겸한 경우이겠는가라고 하면서 안규직(安圭直)이 우리 종족에서 나온 것은 불행한 일이라고 하였다. 우리 종족은 문강부군(文康府君) 이후로 대대로 선조의 법을 지켜서 종당(宗黨)과 향원(鄕園)에 죄를 짓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고 또 원근에서 공히 칭송을 받았는데 저 안규직은 흉악한 심성과 탐욕스런 심보로 근본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이익만을 쫒아서 이익이 공경하지 않는 데에 있으면 공경하지 않고 이익이 스스로 조상을 단절하는 데에 있으면 스스로 단절하니 어찌 통탄스럽고 흉악하지 않은가라고 하였다. 우리 부군의 신도비(神道碑)가 이백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이루어지게 되어 자손들이 모두 기뻐하는데, 유독 불만을 품고 처음 일을 시작하는 날부터 온갖 방법으로 저지하고, 전물(錢物)을 분배하는데 번번이 거부하며 응하지 않으면서 가까운 친한 이들을 위협해서 못된 짓을 돕게 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뜻대로 되지 않자 온갖 악담과 패설을 하면서 이 신도비를 해서는 안 되고, 비문(碑文)이 쓸모가 없다고 하고, 비석을 넘어뜨리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등의 행위를 하였음을 고발하였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대의(大義)로 단절해서 지금 이후로는 분명하게 대처하여 문적(文籍)을 간행해서 더불어 주선하지 말되, 만일 마음을 단단히 먹지 않고 연연해하며 배회하는 자가 있으면 이 또한 안규직의 무리로 간주하여 주부자(朱夫子)의 도적편을 든 사람의 율을 적용하겠다고 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패륜하고 배반하는 자손이 우리 문중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춘추좌씨전》에 "우리 군주에게 무례하게 구는 자를 보거든 매가 참새를 쫒아내는 것처럼 사정없이 쫒아내야 한다."고 하였으니, 군주를 위하는 것과 조상을 위하는 것은 의리상 둘이 아니니 오직 여러분들께서 도모하여 주시기를 바란다고 하고, 이 회문이 도착하는 날에 각 파(派)들은 일제히 한 장소에 모여서 이 글을 포고하고 즉시 회통(回通)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