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1년 위영식(魏永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長興郡守 魏永植 行郡守<押> □…□ (4.5×4.5), 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1년에 장흥군 관아에서 위영식에게 발급한 준호구. 長興郡 관아에서 호주인 魏泳植에게 발급한 1901년의 준호구이다. 본 준호구는 편제된 統戶를 비워둔 상태에 제출되어 나중에 붉은 먹으로 숫자를 채워 넣은 부분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애초에 호구단자 형식으로 작성하여 호주가 제출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주협자 개인], 관인, 수령의 서압 등이 적혀 있고, '壬寅戶口相準 印'라고 적혀 있다. 이는 호주가 제출한 호구단자를 접수한 고을 관아에서 추후에 기입한 부분으로, 준호구의 기능을 부가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이후에는 호적 작성 행정의 간소화로 인하여 호구단자와 준호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즉 호주에게 1통의 호구단자를 제출하게 하여 그것에 수정 내역을 표기하고 착압·날인하여 되돌려줌으로써 준호구 역할을 겸하게 하거나, 처음부터 호주가 준호구 형식으로 작성하여 제출하면 관아에서 날인·착압하여 돌려준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본 준호구는 전자에 해당한다. 위영식은 古邑面 山底里에 거주하고 있으며 제1통 ▣호에 편재되었다. 호주의 이름인 '魏泳植'은 같은 문서군의 다른 준호구에는 '魏永植'으로 적혀 있다. 호주의 직역은 幼學이고, 나이는 59세로 계묘년생이다. 본관은 長興이다. 같은 문서군에 포함되어 있는 다른 작성 연대의 서기 연도가 드러난 준호구와 비교하여 본 준호구의 작성연도를 파악할 수 있다. 위영식의 四祖를 보면, 父는 學生 喆基, 祖父는 學生 榮滉, 曾祖父는 通德郞 道僩이며 外祖는 學生 金洙澤(본관 金海)이다. 처 安氏는 53세 무신년생이며 본적은 竹山이다. 1897년의 준호구에는 처 안씨의 생년이 경자년으로 본 준호구와 차이가 있다. 처의 사조를 보면, 父는 學生 萬鉉, 祖父는 學生 時表, 증조부는 學生 仁煥이며 외조부는 學生 金贊斗(본관 金海)이다. 그리고 함께 살고 있는 아들 幼學 啓寬(29세, 계유년생)과 며느리 金氏(30세, 임신년생, 본관 光山)이 기재되어 있다. 아들 계관의 출생년도는 1897년 준호구에는 갑술년으로 적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