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兩湖南氷柯信水膚 伏惟陽復尊體萬禧 就親事旣蒙盛諾 庚帖書示伏望伏望耳 餘不備 伏希尊照 謹上狀辛酉十一月二十五日丁炳五 再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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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11년 정일수(丁日壽)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日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1년 2월 7일, 사생 정일수가 사돈 족속 중 좋은 처자를 중매해 주기를 사돈에게 부탁하는 편지. 1911년 2월 7일, 사생(査生) 정일수(丁日壽)가 사돈 족속 중 좋은 처자를 중매해 달라고 사돈에게 부탁하는 편지이다. 먼저 사돈댁 어르신 두 분과 그를 돌보는 사돈형님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두 대의 어르신 잘 계시다며 인사를 전했다. 본론으로는 사돈 족속 중 운여(雲汝) 씨 집에 아름다운 규수가 있다고 들었다며 우리 집안이 높은 누각이 있는 좋은 가문은 아니지만 혹시 하늘의 인연이 있다면 도모해 보고 싶다고 전했다. 이 일의 성패는 사돈 어른의 한마디에 달려 있으니 잘 살펴서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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平陵面射山里化民李啓華右謹言情由事民之亡父去丙申年二月日占葬於本面安▣…▣洞左麓庚坐之原而村人鄭履東等憑藉人家近處惹▣〔鬧〕起訟累見落科反欲解紛息鬧來恳於民故民以該村近處所在七斗畓及別備十兩錢依其願成文以給則該村居生人鄭琓金▣▣〔相之〕鄭植鉉共十三人初不更侵永爲相和之議成文記各其▣…▣則同山左右前後一草一木何莫非民之親山所有而誰敢容喙但▣〔鄭〕植鉉從容言於民曰此地卽我柴場多少間宜有地價而渾入村禁者不無向隅之歎云故民亦然之柴場價十五兩又爲備給於柴場主鄭▣〔植〕鉉仍捧文卷而該村鄭垸亦參其時飮酒勸成者也民爲親山盡其情象以村財求和燎然文記誰敢小須臾掩諱忽於今鄭履東生心突出民▣…之親山禁界行臆請分是如乎嗚呼人之無廉若是其甚乎當初捧畓求和者渠也柴場勸買者卽渠之子則他人行臆渠可禁止而渠▣…何心爲此千不可萬不可之事乎此乃無廉無理者私自抑除末由其路緣由仰龥於孝理神明之下論理嚴辭禁止俾保民之親山之地千萬祝手無任祈恳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辛丑十二月 日〈題辭〉▣…▣卄一日狀民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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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2년 이계화(李啓華)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啓華 咸平縣監 官[着押] 1顆(7.8×7.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525 1842년 이계화가 부친의 무덤을 쓴 산지를 두고 정이동과 진행한 산송에서 함평 현감에게 제출한 소지 1842년 2월에 평릉면 사산리에 사는 이계화가 자신의 부친 무덤을 쓴 산지를 두고 정이동과 산송을 벌이면서 함평 현감에게 제출한 소지이다. 이계화는 지난 1836년 2월에 평릉면 안영동 좌측 산록에 부친의 무덤을 썼는데, 이때 마을 사람인 정이동이 인가 근처라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소송을 벌여 여러 차례 패소하였고 끝내 화해를 청하였기에 이계화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돈을 주고 문서를 작성해준 일이 있었다. 또 정식현이라는 자에게 시장(柴場)을 값을 주고 사면서 문서를 작성해 주었고, 이때 정이동의 아들인 정완이 매매하는 술자리에 참여하여 직접 본 사람이므로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데 작년 12월에 정이동이 자신의 산지 백호(白虎) 근처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였으므로 억울하다는 내용이다. 이때 함평 현감이 교체하는 시기였으므로 새로운 현감이 부임해 오기를 기다려서 소송을 제기하라는 제사를 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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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술년 북창도감(北倉都監) 자문(尺文) 3 고문서-증빙류-자문 北倉都監 都監<押> 海南縣□圖□□(7.5x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615 병술년 1월 30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 병술년 1월 30일에 북창도감에서 발급한 자문이다. 해남현 마포면(馬浦面) 냉천리(冷川里)의 세미 7말 6되 1홉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자문에는 세미 수취 책임자인 도감관(都監官)이 착압한 뒤 북창도감도서(北倉都監圖署)를 날인하였다. 1871년에 편찬된 ?호남읍지(湖南邑志)?에 따르면 해남현 마포면과 청계면 사이에 북창이 그려진 지도가 있어 참고가 된다. 자문은 조선시대 관청에서 물건이나 금전을 받은 뒤 발급하는 영수증이다. 자문의 유래는 한 자[尺]도 안 되는 매우 작은 문서라는 뜻에서 나온 만큼 그 크기가 매우 작다는 특징이 있다. 자문의 양식은 관청에 납부하는 징수 세목과 세금의 물목, 수량 등을 기재한 뒤 발급일자와 발급처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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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贈通政大夫工曹參議者同治八年正月日祖考依法典追[施命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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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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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나대운(羅大運)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羅大運 同福縣監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721 1901년 나대운이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여 동복군에 제출한 호구단자 1901년 동복군 내서면 학탄리에 거주하는 나대운이 35세 때에 자신의 가족 구성원의 인적 사항을 기록하여 동복군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이 호구단자는 기존 조선시대 구호적의 양식으로 작성되었으나 세부 내용은 신호적(新戶籍)의 기재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1896년 「호구조사규칙」과 「호구조사세칙」이 시행된 이후, 인쇄된 호적표에 기입하여 제출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이 문서는 신호적의 기재요소는 기입하되 작성방식은 구 호구단자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우선 열서(列書)로 작성한 것은 구 호구단자의 방식이지만, 신호적의 기입 요소를 충실히 기재하고 있다. 먼저 호주(戶主)의 사조를 적도록 한 것은 구 호적과 변함이 없었으므로 그대로 기재하였고, 기존 직역을 신호적에서는 '직업(職業)'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나대운은 자신의 직업을 '사업(士業)'이라고 적었다. 처(妻)의 사조(四祖)를 적지 않은 것은 신호적의 양식대로 따른 것이고, 어머니 송씨(宋氏)부터 처 임씨(林氏), 아우 뇌운(雷雲)과 제수 이씨(李氏)는 실제 '동거친속(同居親屬)'을 기입한 것이다. 신호적에서는 실제 동거하고 있는 사람을 '현존인구(現存人口)' 항목에 남녀로 구분하여 적도록 하였는데 이 문서에서도 그에 따라 남녀를 나누어 남자 둘, 여자 셋으로 구분하여 기재하였다. 신호적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가택(家宅)이 기유(己有)인지 차유(借有)인지, 그리고 가택의 형태가 기와인지, 초가인지, 또 칸수는 몇 칸인지를 구분 기재하도록 한 점인데, 이 문서에서는 '초가 4칸'이라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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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寅式同福郡內西面鶴灘里第十三統第七戶戶主幼學羅大運年三十六本錦城士業父學生 漢珪祖學生 綵成曾祖學生 廷說外祖學生宋庚黙本洪州奉母宋氏年五十七妻林氏齡三十一籍平澤率弟童蒙京運年十九現存男二女二草家四間光武六年月日 行郡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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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6년 나득검(羅得儉)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羅得儉 □…□(6.5×6.5), 周挾無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724 1846년 나득검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확인을 받아 돌려받은 준호구 1846년 나득검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동복현에 제출하고 관의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호구 문서이다. 나득검의 거주지는 동복현 내서면 보암리이고 나이는 78세이다. 나득검은 이때 홀아비였기 때문에 앞에 환부(鰥夫)라고 표기하였고, 아들 원익(元翼)과 원경(元慶) 그리고 손자인 수성(綏成), 만규(萬奎), 갑회(甲晦)가 가족원으로 등재되어 있다. 처(妻)가 사망하여 처의 사조(四祖)를 적지 않는 대신 아들과 손자의 외조(外祖)가 기재되어 있다. 높이를 낮추어 천구질(賤口秩)을 기재하였는데, 도망한 노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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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午式同福縣內西面第五寶巖里第 統第四戶通德郞鰥夫羅得儉年七十八己丑本錦城父通德郞 舜佐祖學生 景瞻曾祖學生 載挺外祖學生房啓亨本南陽率子幼學元翼改名廷吾年五十九戊申次子幼學元慶故外祖學生金萬錠本光山率孫幼學煥奎年二十七庚辰次孫幼學萬奎年二十三甲申次孫童蒙甲晦年十三甲午外祖學生曺顥振本昌寧賤口逃亡婢福丹癸卯戶口相準印行縣監[署押] [周挾無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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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丑式同福郡內西面鶴灘里第六統第四戶戶主幼學羅大運年三十五本錦城士業父學生 漢珪祖學生 綵成曾祖學生 廷說外祖學生宋庚黙本洪州奉母宋氏年五十六妻林氏齡三十籍平澤率弟幼學雷運年三十二嫂李氏籍光山現存男二女三草家四間光武五年月日 行郡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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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二年丁巳四月十五日咸平縣立案右立案爲斜給事粘連課狀文記及各人等處招辭是置有亦本賤籍文記取納相考爲乎矣婢主李昌緖傳來衿得婢■■〔加之〕坐之一所生婢五木介年十五癸卯生身一口乙放賣明文內要用所致同婢五木介生身一口乙錢文貳拾兩以依數捧上爲遣後所生幷以永永放賣的實是置買得是在縣居幼學李敦相處依例斜給爲㫆同本明文段都文書並付故不得出給是如同買賣文記依例背爻爲遣後考次葉作置簿合行立案者行縣監[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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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 이현영(李鉉榮) 등 단자(單子)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鉉榮 靈巖郡守 官<押> 靈巖郡守之印 3顆(7.0x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410 신해년 4월에 이현영 등이 영암군수에게 올린 산송 단자. 신해년 5월에 이현영(李鉉榮)·이규호(李圭浩)가 영암군(靈巖郡) 관아에 올린 단자(單子)이다. 이현영과 이규호는 하성조(河聖祚)가 군종면(郡終面)에 있는 선산에 투장(偸葬)하고 도망간 일로 여러 차례 정소(呈訴)하여 독굴(督掘)하기를 바라고 있으나, 그의 간계로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으니, 그의 노모(老母)와 처를 잡아가두고, 장교(將校)를 보내어 무덤을 파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영암군 관아에서는 22일에 "하성조를 잡아와서 즉시 독굴(督掘)할 것"이라고 처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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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承僉尊聯慰, 感不容喩. 仰審僉體動止崇茂, 實慰遠頌. 生老年哀耦, 自是公道, 而况今古人所謂人皆來哭我耒歌時節. 惟幸無事入土耳.尊先竹塢公墓文, 盛喩如是勤摯, 有難固辭, 而老病艱於收拾精力, 奈何?俯詢神道西上禮意, 昭然其式,葬埋則從近於地勢, 墓祭獻酌, 不可變也.慰疎式, 卽日蒙恩, 如云遠念攸及云爾. 俯賜慰問, 自是實事, 未見其疊矣.是良少年, 年少凝重, 可見法家風儀, 居其父兄賀㩘眵.不備謹謝狀.甲寅九月十三日, 奇生 宇萬 拜手.(皮封)魏 大雅 僉座【啓學 字士悅, 啓寬 字子栗】沙寓生 謹謝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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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선영완(宣泳完)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宣泳完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5년 12월 21일, 사제 선영완이 혼례를 마친 후 새로 들어온 식구를 칭찬하는 내용으로 쓴 답장편지. 1925년 12월 21일, 사제(査弟) 선영완(宣泳完)이 혼례를 마친 후 새로 들어온 식구를 칭찬하는 내용으로 쓴 답장편지이다. 오래된 의분으로 외람되이 인의(姻誼)를 맺었다며 감사를 전하고 상대의 편지에 답하여 신인(新人)의 의범(懿範)이 눈에 아른거리는 듯 하다고 인사하였다. 발신자 선영완(1878~1938)의 본관은 보성(寶城), 호는 동곡(東谷)이다. 장흥군(長興郡) 안양면(安良面) 장수동(長水洞)에 살았다. 저서로 『동곡유고(東谷遺稿)』 4책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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宿契之餘, 猥忝姻誼, 豈非感幸之俱極耶? 伏承華函, 仍審玆者,靜候棣體万衛, 區區不任之至. 親事利成, 而新人儀範, 猶在阿睹. 迨覺人情之固如是矣. 具外也,下浮於所望, 還切未安耳. 不備, 伏惟尊照. 謹拜謝狀.乙丑十二月念一日, 査弟 宣泳完 二拜謝.(皮封)謹拜謝狀,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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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貳拾貳年丁丑三月初四日咸平縣立案右立案爲斜給事粘連課狀文記及各人等處招辭是置有亦本賤籍文記取納相考爲乎矣雍正四年丙午四月初六日奴婢主田福載曾祖汝玉亦以其矣衿得婢卞音花三所生婢巡禮年十五壬辰生身乙後所生幷以永永許給於其矣孫婦福載之母着名成置是遣田福載放賣明文內遭此連喪亡弟之變喪債與生道爲難曾祖衿得慈母別給卞音花三所生婢巡禮年四十六壬辰同婢一所生奴惡奉年二十三乙卯二所生婢二尙年十九己未三所生婢舍每年十六壬戌四所生婢禿德年十一丁卯五所生奴福男年六壬申等六口乙雌牛一隻錢文拾陸兩以依數捧上爲遣後所生幷以永永放賣的實是置買得是在縣居幼學李命龍處依例斜給爲㫆本明文同奴婢所自出其矣母卞音花名付處依例背爻爲遣後考次葉作置簿合行立案者行縣監[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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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使爲成給事五衛將小帖成給爲遣合下仰照驗施行須至帖者右下懷德面幼學金廷弼準此己巳四月日牧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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綾州懷德面萬年洞戶籍單子第三統第六戶通政大夫金喆興年八十乙未本光山父學生 龍海祖學生 綱大曾祖學生 基順外祖學生梁樂成本濟州妻李氏年七十七戊申籍全州父學生 達謙祖學生 一龍曾祖學生 永祿外祖學生徐麟瑞本伊川子幼學珽弼年四十七戊寅婦金氏年四十五庚辰籍金海賤口婢三月年五十四甲子式牧使[署押] [綾州牧印][周挾無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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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나득검(羅得儉)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羅得儉 [同福縣監之印](7.0×7.0), 周挾無改印 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724 1801년 나득검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관에 제출하고 확인을 받아 돌려받은 준호구 1801년 나득검이 가족원의 인적사항과 소유한 종들의 현황을 기록하여 관에 제출하고 관의 확인을 거친 뒤 돌려받은 호구문서이다. 행현감의 서압이 있고, 주협무개인이 찍혀 있다. 나득검과 어머니 방씨(房氏), 처(妻) 김씨(金氏)가 가족원으로 등재되어 있다. 나득검의 거주지는 동복현 내서면 보암리이고 나이는 33세이다. 나득검의 사조(四祖)와 처(妻) 김씨(金氏)의 사조를 기재하였고, 높이를 낮추어 천구질(賤口秩)을 기재하여 소유 노비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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