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李鍾現)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鍾現 李鍾采 李鍾現 李鍾采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에 문중의 유사 이종현이 이종채에게 근래의 문중 일에 대한 의견을 적어 보낸 간찰과 피봉 모년에 문중의 유사(有司) 이종현(李鍾現)이 가천의 이종채(李鍾采)에게, 근래의 문중의 여러 일에 대해 혹자의 말을 빌어 문제를 조목조목 제기하고, 자신 의견을 쓴 장문(長文)의 간찰이다. 날짜는 미상이다. 혹자가 말한 것에는, '귀 종중 일은 어찌 이처럼 창피한가. 문중 토지를 이전하는데 20인 명의의 공동소유로 하기로 하면서 시천파는 사람이 없어 1명이 참가하였다고 하고, 여기에 면 직원인 정순(正淳)이 마음대로 인감을 처리하여, 문장(門長)의 아들 교성(敎聲)이 이를 말하니, 정순이 종손이 어디에 있느냐고 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대의 문중은 무종손(無宗孫) 무문장(無門長) 무유사(無有司)라 이를 수 있다. 지난해 묘사(墓祀) 때 시천에서 한 사람도 헌관(獻官)을 맡을 만한 자가 없었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무종손이다. 지난해 목사(木寺)‧가천 두 파는 일하는 인원이 상경(上京)할 때 마음대로 쓴 경비가 5‧600원이었는데, 문장이 전혀 몰랐다고 하니, 무문장이 아닌가?' 하는 등의 내용이 있다. 발신인이 그 해결책으로 제시한 내용에는, '참판 공의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止慈), 시촌(詩村) 공의 효우(孝友), 승지공·판서공·종사랑공의 그 형을 사랑하고 그 집안을 존중하여 천륜이 돈독함으로, 종서(宗庶)에 질서가 있고, 장자와 지차의 차례가 있었다. 비록 세대가 점점 멀어져 무복(無服)에 이르면 어찌할 수가 없다고 하나, 우리 조상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같은 자손이다. 그 자손 된 자가 만에 하나 어찌 우리 조상의 마음을 체득하지 못하겠는가. 선조의 자애와 효도‧우애의 윤리를 어기는 것은 즉 참판공 및 시촌공 4형제에 대한 죄인이다. 비록 저승의 선조라도 하늘에 영령이 없다면 그만이지만, 만약 영령이 있다면, 이러한 자손은 마땅히 보이지 않게 죄줄 것이다. 남원 영광의 종족과 여러 장유(長幼)에게도 이를 고하여 이 일에 대해 알리기를 바란다.'는 등이 있다. 피봉 앞면에는 수신자 이종채(李鍾采)의 이름과 보성군 문덕면 가천리라는 주소지가 기재되어 있고, 뒷면에는 이종현의 주소지인 순천군 황전면 죽내리가 기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