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포충사 유회소(褒忠祠儒會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褒忠祠儒會所 □…□(2.4×2.4)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6년 8월 19일, 포충사 유회소에서 오준선 등 25인과 포충사 중수유사 등이 포충사 중수를 완료하기 위한 의연금을 더 걷자는 취지의 내용으로 쓴 통문. 1926년 8월 19일, 광주(光州)의 포충사(褒忠祠) 유회소(儒會所)에서 오준선(吳駿善) 등 25인과 포충사 중수유사(重修有司) 등이 포충사 중수를 완료하기 위한 의연금을 더 걷자는 취지의 내용으로 쓴 통문이다. 제봉(霽峰) 고선생(高先生)을 제향하고 있는 포충사의 중수(重修)에 대한 일로 봄에 글로 고하였음을 다시 상기시키며 중수(重修)를 봄에 시작하여 가을에 끝마칠 것이니 지금은 반이 되었다고 했다. 의연금을 더 계산하여 정하고 이것으로 공역을 마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취지로 보낸 통문이다. 일자 뒤에는 포충사 유회소의 25원 이름이 나열되어 있으며, 그 뒤로 포충사 중수유사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중수유사로는 도유사(都有司) 오준선, 부유사(副有司) 정영원(鄭永源), 원임(院任) 김용순(金容珣), 박노선(朴魯宣), 오동수(吳東洙), 이재춘(李載春), 장재(掌財) 기도섭(奇近燮), 감동유사(監蕫有司) 이계종(李啓琮), 양일묵(梁鎰默), 나종우(羅鍾宇), 최수화(崔洙華)의 명단이 적혀 있다. 광주에 있는 포충사는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5인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창건된 사당으로 1974년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601년(선조 34) 호남 유생들이 광주 제봉산(霽峯山) 아래에 사당을 건립했고, 1603년(선조 36)에 박지효(朴之孝) 등 문인과 후손들이 사액을 청해 '포충(褒忠)'이란 액호를 받았다. 고경명을 주벽으로 제향하고 동배위에 고종후와 유팽로, 서배위에 고인후와 안영을 배향했다. 포충사는 사액 사당으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 철폐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훼철되지 않았던 사우이다. 1623년, 1810년, 1879년, 1919년, 1927년, 1933년에 각각 중수했고, 1978∼1980년에 현재의 사우(신사우)를 정화하였다. 제봉(霽峯)고경명(高敬命)은 1558년(명종 13)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 호남 지방에서 최초로 의병 6,000명을 모집하여 금산전투에서 순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