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문집발간 통문(通文)과 제사(祭事)에 관한 초고(草稿)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庚午三月十九日 澹對軒儒會所 庚午三月十九日 澹對軒儒會所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0년 3월 19일 담대헌 유회소에서 송사 기우만 선생의 문집발간을 위해 발문한 통문과 제사에 관하여 논한 초고 1930년 3월 19일 담대헌 유회소(澹對軒儒會所)에서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선생의 문집발간을 위해 발문한 통문이다. "우리의 도(道)를 전승하는 것은, 사람이 있을 때는 사람에게 달려있고, 사람이 죽으면 책에 달려있다. 우리 성사 선생이 우리를 두고 떠나가신지 이미 15년"이라고 하면서 송사선생 문집 발간에 참여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유회소의 도청과 도유사, 부유사, 사서, 도감, 감동 등의 명단이 열거되어 있다. 도청은 민치량(閔致亮)이다. 기우만(奇宇萬)은 기정진(奇正鎭)의 손자이며, 조부의 학문을 계승 발전시킨 인물이다. 1896년 일본 세력을 구축하고자 의병을 일으켰다. 담대헌은 기정진(奇正鎭) 선생이 장성군 진원면 사무소 뒤편 고산 마을에다 1878년에 지은 정사(精舍)로서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1927년 고산서원(高山書院)이라는 편액을 걸었으며, 1931년 ?송사집?이 발간되었다. 이 통문의 뒷면에는 기일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함께 제사지내는 문제, 장지(葬地)에서의 산신제, 묘제 등 제례에 대해 논한 내용이 필사되어 있다. 작성한 시기와 작자는 미상이다. 글의 첫머리에 "기일에는 옛날에 제사가 없었는데, 정자(程子)‧한위공(韓魏公)‧사마온공에 이르러 제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돌아가신 아버지와 어머니(考妣)를 함께 제사지내는 것에 대해 묻자, 정자가 대답하기를 '한 분의 신위에만 제사지낸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주자(朱子)도 가례(家禮)에서 한 분의 신위만 설치한다고 하였다. 우리 조선에 들어와서 ?오례의(五禮儀)?에 따라 아버지와 어머니 신위를 함께 설치하니, 마침내 나라의 풍속이 되었는데, ?오례의?라는 책은 개국 초기에 잘못 편찬된 두찬(杜撰)이다."라고 하면서 퇴계도 '어머니의 기일에 아버지 제사를 올리는 것은 존자(尊者)를 끌어들인다는 혐의가 된다.'고 하였으니 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장사지낼 때의 산신제(山神祭)와 묘제(墓祭) 등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