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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글 고문서-시문류-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작성자와 작성일자 미상의 쪽지 글 작성자와 작성일자가 미상인 쪽지 글이다. '편함에 홀리는 것은 스스로 미혹되는 것이다.'라는 등의 경구가 있고, 우옹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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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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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5년 이당(李鐺)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丑八月初一日, (大正)14.9.18 李鐺 李敎燮 乙丑八月初一日, (大正)14.9.18 李鐺 李敎燮 전라남도 보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823 1925년 8월 1일에 이당이 지우에게 기식하고 홍순에게 답한 일, 광주 가는 일, 교촌 전토의 명위 이전 등의 내용으로 이교섭에게 보낸 간찰 1925년 8월 1일에 호남선(湖南線) 강경역전(江景驛前) 이호순(李虎淳) 방에 머무르는 재종질 이당(李鐺)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장동리(長洞里)에 사는 숙부 이교섭(李敎燮)에게 보낸 간찰이다. 파란색 펜글씨로 썼다. 재종질 자신은 여름 사이에 여러 오랜 지우에게 기식(寄食)하였는데 평소에 모든 집에 자금이 없기 때문에 한 가지의 일도 없이 좋은 때를 보냈으며, 여름 사이에 말씀하신대로 광주(光州) 홍순(洪淳) 주소로 답하였다는 소식을 전하고, 교촌(校村)의 전토(田土)는 좋지 않음을 앞의 서찰에서 자세히 말씀드렸다고 하였다. 광주 가는 일은 가을을 기다리고 있으나, 한 번 내려가려고 해도 비용을 장만하지 못하여 날짜를 정할 수 없는 사정을 얘기하고 있다. 7말에 200~300원의 자금을 구하느라 몇 달을 수고로웠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고 비록 100원의 사소한 금액이라도 누군가 대자비불(大慈悲佛)이 되어 학철부어(涸轍鮒魚)의 목숨을 구원해 주고 매일 숙부님이 더욱 애호(愛護)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추신에는 서찰의 글에 공교로움을 앞뒤를 잊어버렸으니 '고깃덩이[行尸走肉]'라고 이를 만하며, 교촌의 전토는 문촌객명 아래에 있으니 숙부 명위(名位)로 이동(異動)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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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양상정(梁相鼎)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戊戌 十一月 十三日 梁相鼎 戊戌 十一月 十三日 梁相鼎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251 1898년(고종 35) 11월 13일 양상정이 혼사 길일과 옷의 치수 등에 관해 보낸 간찰 1898년(고종 35) 11월 13일 양상정(梁相鼎)이 상대방의 간찰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상대방이 잡은 1월 8일(穀日)이 길하고 또 구애되는 것이 없으므로 따르겠다고 하고, 말씀하신 대로 옷의 치수를 써서 올린다고 하였다. 피봉과 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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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詩文) 초고(草稿) 고문서-시문류-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각각 다른 사람이 지은 심산자장명, 지비자금명, 만리당금명 제목의 시문 초안 심산자장명(心山子杖銘), 지비자금명(智非子琴銘), 만리당금명(萬里堂琴銘) 등 시문의 초고(草稿)이다. 각각 글씨체가 다른 것으로 보아 다른 사람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오른쪽은 일부 잘려나간 것으로 보인다. 심산자, 지비자, 만리당은 각 작자의 호(號)로 보인다. 시회(詩會)를 갖고서 각자 가지고 있는 지팡이와 거문고에 새길 명(銘)을 짓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세 편 모두 글자에 동그라미를 치거나 지워서 수정하는 상태에 있고, 적절한 문구를 찾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예컨대 심산자장명 첫 구절은 당초에 "丈夫是四方矣"라고 썼다가, 是자에 동그라미하고 옆에 志를 썼는데, 또 矣자 옆에는 동그라미를 한 志자가 있다. 矣를 志로 바꾸려다 도로 지우고, 是를 志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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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가천동(可川洞) 우물[食井] 수리기(修理記) 고문서-치부기록류-중수기 乙卯四月 乙卯四月 1915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5년 4월 가천동 마을에서 먹는 우물을 수리하는데 들어간 비용 등을 적은 기록 1915년 4월에 가천동 마을에서 먹는 우물을 수리하는데 들어간 비용 등을 적은 기록이다. 자료의 원 명칭은 "을묘 4월 가천동중 식정 수리기(乙卯四月 可川洞中 食井修理記)"이다. 석공 3인(人)이 4월 16일에 오면서 부터 24일까지 식사한 내역, 정가(定價), 봉초가(奉草價), 탄가(炭價), 이가(履價), 당산제전(堂山祭錢), 양회가(洋灰價), 목조 3석가(牧祖三石價), 입석댁 출전(立石宅 出錢) 등에 대한 금액과 석수가 갈 때 2냥(兩) 지급 등이 기록되어 있다. 돈의 단위는 냥(兩), 푼(分), 전(戔)으로 되어 있다. 목조 3석가, 입석댁 출전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물 수리를 위해 석수들이 온 김에 비석을 세우는 집이 있었던 것 같다. 가격의 단위로 보아, 일제 강점기 이전 을묘년인 1855년일 수 있으나, 이 시기에 양회(시멘트)가 있었다는 기록을 찾지 못했으므로, 연대를 1915년으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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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사문계(私門稧) 도조(賭租) 장부(帳簿) 고문서-치부기록류-치부 乙酉十月日 乙酉十月日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85년 10월 사문계에서 가을 추수 때 거둔 도조 장부 문서 원제목은 "1885년 10월 사문계 추봉기(乙酉十月日 私門稧 秋捧記)"이다. 가을에 벼를 수확하여 받은 소작료를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기록하는 양식은 "낙안 두지동(樂安斗之洞), 이노(李奴), 네 두락(斗落), 공(貢) 한 섬 열일곱 말 두 되(一石十七斗二升)"와 같이 땅이 있는 들의 명칭, 소작인, 도조(賭租)의 양 등의 순이다. 소작인은 윤노(尹奴)‧조노(曺奴)‧이노 등이거나 춘대(春大)‧주영(周永) 등과 같이 이름만 기재되어 있어, 집안의 외거노비 또는 일반 소작인으로 보인다. 지주는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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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이인순(李寅淳) 등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戌十二月二十四日 李寅淳 瑞玉 壬戌十二月二十四日 李寅淳 瑞玉 이인순(인), 이금섭(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2년 12월 24일에 이인순과 이금섭이 서옥에게 상필과 상혁의 납세를 도와주려고 송추를 발매하고 빚을 내어 해결해보자고 하는 간찰 1922년 12월 24일 족종인 인순(寅淳)과 문중의 유사(有司)인 금섭(錦燮)이 시치(矢峙 詩川)의 서옥(瑞玉)에게 우리 종파(宗派)의 상필(相馝)과 상혁(相赫)의 납세를 도와주려고 송추(松楸)를 발매(發賣)하고 빚을 내어 해결해보자고 하는 편지이다. 다만 이동(移動)하는 일은 이것으로써 수고를 끼쳤지만 자신을 끝없이 감동시켜 미안했다. 우리 종파(宗派)의 일은 다소간의 힘은 썼지만 상필과 상혁이 근래 납세하는 것이 손을 쓸 방법이 없다고 하니, 납세를 도와주기 위해 송추를 연내에 발매하면 정초(正初)에는 돈이 마련될 것이다. 귀중(貴中)에서도 어떠한 조건으로든 빚을 내어 당겨쓰면 이자는 당연히 준비해서 보낸다는 내용이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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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동(楸洞) 산소 노정기(路程記) 고문서-치부기록류-문중기록 李應鍾 李應鍾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다섯 명의 후손이 함께 영평 추동 산소에 가고 온 여정을 기록하고, 시조부터 20대 농서공까지의 계보를 기록한 노정기 다섯 명의 후손이 함께 영평(永平) 추동(楸洞) 산소(山所)에 가고 오는 노정을 기록하고, 시조부터 20대 농서공(壠西公)까지의 계보를 기록한 노정기(路程記)이다. 포천군(抱川郡)의 이응종(李應鍾), 인천(仁川)의 이교홍(李敎洪), 서울 남대문외(南大門外) 길야정(吉野町)의 이교환(李敎煥), 경성(京城) 가회동(嘉會洞)의 이관(李瓘), 수원(水原)의 이인순(李仁淳) 등 5명이 묘지기 2명과 함께 영평(永平) 추동 산소에 갔다 왔다. 이 노정기는 남대문 밖 길야정에 살고 있는 이교환이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남대문역­용산역­서빙고역­왕십리역…동두천­전곡­고난리진­백의진­포천군 인봉동(麟鳳洞, 추동(楸洞))의 산소까지의 노정에 있어 보행‧차편‧선박편의 교통수단과 비용을 기록하였다. 추동은 은암공(隱庵公) 8세손(世孫) 이응종이 살고 있는 곳이다. 산소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회기(回記)도 기록하고, 마지막으로 시조부터 20대 농서공까지의 계보를 상세히 기록하였다. 〈서갈(序碣)〉과 〈허보(許譜)〉를 참고해서 시조 이후 3, 4대가 실전(失傳)되어 20대 농서공이 16대손이 된다고 설명하고, 그 이하는 생략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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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浦停車 上去時下鄕車入安山自京去亨齋公山所四十里 高陽郡碧蹄面仙遊里出西大門○越舞鶴峙 ○過綠蟠곡ᄋᆞㅣ二 ○過剝石곡ᄋᆞㅣ 過舊擺撥 ○過ᄆᆞㅣ암이곡ᄋᆞㅣ二 ○過산즉극ᄋᆞㅣ 當仙遊里墓直成壽奉家 二五四番地 成壽奉從叔成鍾煥二七四番地 出后從叔汶容氏墓直成乭夢也鶴庵公家世系 應協 子 趾烈 無子 子 顯烈 子 載忠 納伯氏 趾烈 子 箕錫 系子 漢容 生父 箕柱 平壤公派 子 箕欽 系子 汶容 奉事公派惟我 始祖顯于新羅之季 而其下失傳 又八傳而壠西公克開 厥後窃稽陽川許譜 詳載始祖五代下名諱 則自始祖至壠西公 固爲十二代 而壠西公譜序云 新羅宰相某寔公十二代祖 則十二代祖至公 豈非十三代乎 別檢公墓碣云 新羅宰臣某十二代孫 某則此亦十三代之證也 豈爲序爲碣者不究乎 上下十二代之爲祖爲孫 捨已當云 十一代而遽下祖孫字於十二代之下乎 抑爲許譜者 或於十二代祖孫之文 不察夫 兼已當爲十三代而泛稱十二代乎 然則始祖下失傳之爲三代爲四代 未可知也 況舊譜以一十一代祖爲始祖十六代孫 而自始祖至壠西公爲二十代者 於何考也 蓋序碣與許譜相近 而與〈이하 탈락〉楊州蘆原中契墓直朴順成 下契墓直姜元信永平楸洞山所路記〈今爲抱川云云〉當南大門登驛 上元山行全谷車 費一圓五錢 過龍山驛 過西氷庫驛車 過往十里驛車 過淸涼里驛車〈自京若去則出東大門登此車〉 過蒼庫驛車〈卽蒼洞也 楊州蘆原上中下契在前〉 過議政府驛車〈野名議政也〉 過德亭車 過東荳川車 至全谷車〈下〉 問高灘里津〈船價五錢〉 問白蟻津〈船價五錢〉 問바람올酒店前江〈船價五錢〉 問抱川郡去路至小嶝問獜鳳洞 卽楸洞也 新洞名으로 注院里區 獜鳳洞隱庵公八世孫〈黃鍾(字聲汝) 應鍾(字復汝)〉 抱川郡 蒼水面 注院里〈獜鳳洞〉 三五四番地回記自全谷車下蒼洞車 費七十錢也 問蘆原中契〈自蒼洞至中契五里〉抱川郡 蒼水面 注院里 獜鳳洞 三五四番地 李應鍾 仁川 府內里 五十二番地 李敎洪 敎應其伯氏也 京南大門 外吉野町 壹丁目 百十八番地 李敎煥 京城 嘉會洞 百四十三番地 李瓘 號敬庵 水原郡 峯潭面 柳里 李仁淳 字聖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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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1) 門人淮陽府使李尙吉惟靈天稟眞醇德量淵宏沈潛獨詣遠慕朱程弱冠尋師千里秦原心誠求道學有淵源德行餘力文章有聲金門射策黃甲登名歷郡四五官陞緋玉琴鶴歸來家徒四壁一壑棲遲韜光晦跡曰台髫年幸識依歸執經廬下久承提撕中歲離違半生茅塞光山一拜喜動顔色金魚再佩適近南鄕往來東路屢承公堂法語諄諄嘉訓洋洋三年楚水念及死生手抄占書申戒丁寧深情篤愛寔出眷厚庶期生還重侍杖屨關嶺一別【一作官】更隔南雲哀訃忽傳夢耶眞耶春前一札墨痕如昨曾未數月音容永隔嗚呼痛哉視同子姪偏荷恩德報蔑毫絲可堪慙恧身縻職役未效執紼回望南天有淚沾臆聊專一伻遠薦菲薄不昧者靈庶幾歆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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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祭文(2) 門生李以恂惟我先生星斗鍾英山嶽降靈精神氣格百夫之特器量淵深見識高明已自髫齡大人儀度迨厥志學就將如神檜老游翁爲之啓發圭眉兩賢玉之嘉掖歸求一室自得其要及乎有成斗南人豪風神嶷然望者起敬德宇凝然見者悅服萬丈巖巖千頃汪汪襟中霽月座上春風凝默包容若無畛域當仁見義勇斷不疑辨折冤獄于公之德請討大憝宣聖之心豈云小擧人紀乃立入盡孝友出必忠信待人以恕處己有操居家不豐略營耕鑿於世無求不追名利嗚呼哀哉學宗【缺五字】緖退托若無異今之賢夢夢挑達不知是崇菽粟文章匪是筌蹄不尙浮藻要妙簡古理勝情到承襲朱書笑彼俗眼孰知和璧爭好蚊鳴不懸洪鍾矧初筮仕聲譽籍甚威鳳一儀儻鳴朝陽與世鑿枘已矣致澤五城絃歌不咸其膏不苟不屈直在其中得喪非關富貴浮雲卷懷綽綽樂土徜徉顔巷邵室有琴有易絃誦左右詩禮朝夕旣敎兒孫亦訓諸士寓興佳辰鄰好相携把?情話終以舞歌如何一疾六載爲痼纔沈南老超御【一作銜】東箕國虗仁賢士痛斯文公則無憾應曰我寧旣享三尊又得全歸名留德遠君子之榮嗚呼痛哉哀我先子欽奉㝡多講討函丈和好朱陳道同心符白首相將誰知我躬負罪之深三之日酷禍四之日不幸天崩罔極樑壞亦慟若先送焉若後從焉固相愛之不相捨耶永訣吾爺泉路隔絶夫子今歸庶達一言未報昊天更孝何日叩號隕絶天地昏茫先生於我撫念最深憐痾惜屈動形辭語小子顓蒙放仰亦偏時承緖餘若迷而【疑誤】途自我有疾未克受說今失依歸悲恨塞胸斬焉倚廬不暇情禮曳杖之初啓手之際咫尺貽阻時適然矣欲達哀誠非酒不克故薦菲薄萬古長辭一聲遙痛庶徹靈筵嗚呼哀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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祭文(3) 門下衰絰人李尙馨惟靈儒林喬嶽學海宗盟道德內積文章外形器量宏深河海混淵而難名儀形傑魁龍虎變化而不測半世工程尋嫡緖於濂洛一生心期效嘉猷於稷契涵虗義理致察事物發言中倫吐辭爲經怳朱程之手筆完顔孟之性情豈徒天質之粹美抑亦學問之琢成直道行藏隨時伸縮遇事剛果少不循物黃離元吉大車宜載賢路由來難進易退卷而懷兮乃老樂天命於邱壑謹言行於家庭成敎化於鄕國三朝受恩一心拱北德卲耉造年高耄耋從容晝夜鼓缶離昃考祥惟終啓手何怍嗚呼哀哉天生大賢初若有爲德可長民文堪賁世使鴻漸於亨衢施身上之經綸臨大事兮決大疑措國勢於泰山銘彜鼎兮被絃歌垂盛勳於無窮嗟齋志於下僚竟德施之未弘救浙東之饑荒監汝州之酒稅自前修而稱屈豈先生之獨爾實斯世之不幸抑吾民之無祿然皇天之降才必損之而後益窮其身而空乏博其利於家食模楷士類典刑邦國維持衰世綱紀頹俗開後學之盲聾闡先聖之幽賾道有依而不墜學有賴而啓發九十年兮人間係時運之盛衰何辜于天終不憗遺云亡至此世道何爲乾坤索莫聖學榛蕪嗚呼哀哉先生受氣至大至剛來旣有爲逝豈無以塞浩然於玄黃亘萬古而不沫游咸池兮略扶桑與日月而爭光乘白雲兮入帝鄕帝左右焉洋洋張匀天之雅樂煥星斗之文章轟雷霆兮走魑魅注甘霖兮活疲癃嗚呼哀哉小子冥行無相瞽矇忝先生之門館依道德之休光承鑴誨之屢及免禽犢之冠裳恩再世之有加德一生之難忘那知一夕樑木其摧幽明永隔萬古長辭失所怙之餘生何不天之此極曾歲月之未周慘師喪之再哭聞靈輀之將駕痛此生之永訣義當匍匐以效執紼斬在衰絰未遂悃幅無涯長痛有淚難窮文以酹奠豈盡鄙悰然不在文惟告以誠不昧者存庶鑑衷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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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헌집(晩軒集) 晩軒集序 晩軒先生文集 晩軒先生文集 고서-집부-별집류 문집 원문 晩軒先生文集 丁焰 木活字本 만헌집(晩軒集) 2 半郭 有界 10行20字 註雙行 上下向 二葉花紋魚尾 미상 미상 조선 중기 학자 정염(丁焰:1524~1609)의 시와 산문을 4권 2책으로 엮은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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