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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이상호(李祥鎬)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寅七月十六日 李祥鎬 李敎成 丙寅七月十六日 李祥鎬 李敎成 경상북도 안동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805 1926년 7월 16일에 이상호가 인역(印役) 시작, 종이 구입, 금전 수령, 《퇴계선생유집(退溪先生遺集)》 인출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26년 7월 16일에 경북 안동군 도산면(陶山面) 간평리(艮坪里)에 사는 이상호(李祥鎬)가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사문(斯文)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삼가 서늘해지는 이때에 정양하시는 체도가 평강한지 안부를 묻고 세의(世誼)를 도모하는 일에 한 배 쏟아 부었으나 다만 멀어서 하나도 이루지 못하였다는 근황을 전하고 있다. 자신은 못난 자질로 오래도록 원임(院任)을 맡고 있고 또 멀고 가까운 곳의 제집사(諸執事)가 부탁한 서적도 있어 스스로를 어루만짐에 두렵고 떨려 어떻게 시작하면 좋겠는지 모르겠다. 인역(印役) 운운한 것은 당초 봄초에 시역(始役)하려는 것을 서늘해지는 때가 되어 시작하였다. 형께서 돌려보낸 금액은 차이가 나서 필경 때를 잃은 탄식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서늘해진 뒤에 종이를 구하는 방도도 크게 낭패되지 않더라도 더운 절기는 지역(紙役)을 할 때가 아니다. 때에 이르고 늦음이 있더라도 다만 종이가 손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서 속히 인출할 계획이니 흠으로 여기지 말라. 부치는 액수 265냥 8전 5푼은 그 수대로 수령하길 바란다고 하였다. 추신이 있는데 이러한 뜻을 근방에 알려 애태우며 바라는 일이 없게 하라고 당부하는 내용이다. 또 별지가 있다. 여기에는 《퇴계선생유집(退溪先生遺集)》 인출이 큰일이라 급히 도모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등의 내용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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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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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0년 이교성(李敎成) 수신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申五月十八日 父 家兒 庚申五月十八日 李冕容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0년 5월 18일에 부친이 비석의 설치와 종수의 상 등의 일로 아들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20년 5월 18일에 부친이 아들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두 차례 부친 편지는 오는 16일에 받아 보고서 무사히 입성(入城)하였음을 알았고 다만 구병(口病)으로 괴로움을 당했다니 답답한데 좋은 화제(和劑)를 보내니 복용해 보라고 하였다. 비석(碑石)은 작은 것이 제조에 알맞다고 하였는데 두께와 높이가 몇 치[寸] 몇 푼[分]인지를 묻고, 영남 종중에서 몇 글자가 작고 깊게 마모되었다고 한 말은 이치에 가깝지 않다고 하였다. 만약 석품(石品)이 조금 두꺼우면 이미 새긴 글자가 얕다고 하더라도 앞면은 마모되지 않았을 것이며, 뒷면 및 좌우가 다 마모되었으면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선택하고 조각하는 사람을 불러 깊이 새겨서 세우면 도리에 해가 없을 듯하나 석품이 매우 얇으면 견디지 못하고 곧 마모될 것이니 일을 파하고 돌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난번 곡성(谷城) 종중에 의논해 보니 혹 다시 세우는 것이 좋겠다고 하거나 가을을 기다려서 의논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신전소(薪田所) 또한 올려 보내어 수합하지 못하여 너에게 보낸다고 하니 모두 삼가고 미덥게 하여 실행하여 나가라고 하고, 돌이 두꺼우나 매우 얇지 않으면 마모되더라도 다시 새기고 전면의 글자 모양이 비록 좋지 않아도 우선 그대로 보존하며, 다만 마모된 뒷면 및 좌우 글자만 세밀하게 써서 세우고 후일을 기다려 의논하여 신도비(神道碑)를 세울 계획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금월 5일에 갑자기 종수(從嫂)의 상을 만나 슬프다는 내용도 있다. 추신이 있는데 서산(西山) 송추(松楸)를 방매하는 일은 가을을 기다려 거행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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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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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이백순(李百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今月 八日 李百淳 今月 八日 1923 李百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697 모년에 이백순이 문중의 위토이전 등의 일에 대해 그간의 진행과정을 가천에 보고한 간찰 모년에 이백순(李百淳)이 위토이전(位土移轉) 건, 형재공(亨齋公) 사판봉안(祀版奉案) 건, 족보간행 등과 관련해서 문중의 종파 사이에 생긴 갈등에 대해서 자신이 상경해서 만나고 처리한 일의 과정을 보성군 가천 집안으로 보고한 간찰이다. 형편을 봐서 안 되면 인장(印章)은 통신하기가 불편하니 날짜에 맞추는 것이 지체된다. 소송하게 되면 인조개각(印造改刻)한다고 광고한 일도 있어서, 즉시 상경해서 하지 않으면 소송할 계획이었다. 마침 신병이 있고, 이교웅(李敎雄)에 대해서는 비밀리에 조사해보았더니 되돌릴 이치가 없어 곡성‧보성 두 문회(門會)를 따를 계획이었다. 하행하여 곡성‧보성 문회를 개축(開祝)하고, 교난(敎欄)‧교재(敎在)가 동석해서 자세히 얘기한 후 그들의 흑백을 문중에서 잘 풀어나가는 것을 보고 싶은 생각이 크게 있다. 이 서류 등과 인장을 문중에 함께 가지고 가니, 인장은 각각 분급하시라고 하였다. 또 금년 가운(家運)이 불길하여 생활난이 막심한 중에 문중에서까지 분란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하고, 그간 해왔던 일의 소장취소건 등의 서류와 쓰인 경비를 적었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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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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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김정진(金靖鎭)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午八月卄八日 金靖鎭 李雅士 壬午八月卄八日 金靖鎭 李雅士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755 1942년 8월 28일 기하생 김정진이 귀문의 명예는 헛되이 않다는 등의 내용으로 이아사(李雅士) 모(某)에게 보낸 간찰 1942년 8월 28일에 기하생(記下生)인 김정진(金靖鎭)이 이아사(李雅士)에게 보낸 간찰이다. 보내주신 서찰을 받고 모두 위로되고 감사하며, 탕후(湯候)가 편안하지 않음을 알고 염려되는 마음 그지없다고 하였다. 기하생 자신은 예전처럼 잘 지내고 있으며, 영당(令堂)이 모두 매우 훌륭한 일을 보게 하였으니 귀문(貴門)의 명예는 과연 헛되이 전해진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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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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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이교승(李敎升)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辛巳至月二日 李敎升 辛巳至月二日 李敎升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41년 11월 2일에 이교승(李敎升)이 혼사, 문안(門案)의 의리, 새해 달력 등에 관한 내용으로 보낸 간찰 1941년 11월 2일에 이교승(李敎升)이 보낸 간찰이다. 수신자는 미상이다. 한 해가 가려고 하는 이때에 형제분의 체후는 강녕히 잘 보중하고 각 집안 식구들이 모두 평안한지 묻고 삼가 사모하는 마음 지극하다고 인사하였다. 자신은 막내 아이 혼사가 보성 당촌(堂村)에서 행할 날이 가까워져서 오는 13일인데 모든 일이 갖추어졌다. 회옹(晦翁)의 이른바 '가취(嫁娶)'라는 말은 음미할 만한 가르침이라 하고, 부탁하신 문안(門案)을 기록하는 일은 돈목(敦睦)의 의리라서 졸렬함을 잊고 지어 올리니 다시 고견(高見)으로 질정해 달라고 하였다. 각 댁에서 가져온 명첩(名牒)이 아직 분명하지 않다고 하고 이번에 가는 언찰(諺札)을 전해달라고 부탁하였으며, 시천어첩(詩川御牒)은 이미 모두 인쇄되었다고 하였다. 별도로 첨부한 쪽지에는 새해 달력은 조각한 것이 용렬하여 어른어른한 눈에 합당하지 않으니 여러 댁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리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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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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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

1922년 본다증시(本多增市)의 제출서류 통지서(通知書) 고문서-첩관통보류-고지서 本多增市 李敎成 本多增市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568 1922년 11월 6일 본다증시(本多增市)가 이교성(李敎成)에게 이명동인 증명서 등을 요청하는 통지서 1922년 11월 6일 본다증시(本多增市)가 이교성(李敎成)에게 신청서류 등을 알려주는 통지서이다. 요청하는 신청서류는 인감증명 1통, 이명동인(異名同人) 증명 2통, 호적등본 2통, 제거주원(除居住願) 2통 등이다. 글자체는 한자와 일본어 혼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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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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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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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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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1923년 이정순(李正淳) 계약서 2 고문서-명문문기류-계약서 大正拾貳年陰四月壹日 李正淳 李敎成 大正拾貳年陰四月壹日 李正淳 李敎成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697 1923년 음력 4월 2일 이정순이 작성한 참판공 상‧하대 위토의 명의 이전수속에 대한 계약서 1923년 음력 4월 2일 이정순(李正淳)이 작성한 곡성군 석곡면 비봉리에 소재하고 있는 참판공 상‧하대(上下代)의 묘위토(墓位土)에 대한 명의 이전수속 계약서의 1면이다. 계약서 내용에는 '대지‧전답 19필지(1만3천558평, 토지가격 1,719엔(円))가 문장의 명의로 되어있었는데, 문중의 의론에 따라 공동소유로 이전 정리한다. 토지의 이전에 대하여 참판공 후손이 곡성파·가천파·시천파 합 3파인데, 종손은 시천파에도 존재한다. 그런데 이전 문권에는 곡성파 10인, 가천파 10인만 기재되고 시천파 한 사람도 기재하지 않은 것은 대리인이 불민했던 것이므로. 다시 시천파 10인을 첨부하여 신청 정리한다. 이 10인을 더하여 신청정리에 드는 비용은 얼마인지를 묻지 않고, 앞에 기재한 곡성파 10인과 가천파 10인 개인 돈으로 쓰고 문중에는 요구하지 못한다. 앞에 기재한 곡성파 10인과 가천파 10인 중에 이 사항에 반대가 있을 때는 앞의 토지 13,558평을 옥척(沃瘠)을 3등분하여 2분은 참판공 위토, 일분은 시천공 등의 위토로 인정한다' 하는 등 여러 조항이 있다. 계약인은 곡성군 보성군 성주이씨 문중대표자 이정순(李正淳)으로 되어 있고, 이교성(李敎聲)‧이교재(李敎在) 앞(典)으로 되어 있다. 집필(執筆) 1인과 증인 2인의 서명이 있다. 글자체는 한문과 한글을 혼용하여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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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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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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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김기석(金箕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冬至後七日 金箕錫 李舜九 冬至後七日 金箕錫 李舜九 전라남도 장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779 1931년 김기석이 최우(崔友)의 행실과 우리 형의 용서하는 마음, 2차로 약을 지어 보낸다는 등의 내용으로 보낸 간찰 1931년 동지(冬至)가 지난 뒤 7일(음력 11월 22일)에 김기석(金箕錫)이 보낸 간찰이다. 먼저 안부를 묻고 특별히 마음이 고요한 가운데 평정을 유지하며 마음을 안정시켜 응집되고 만년에 통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우리 형의 효(孝)가 자애롭게 마음을 환하게만 하고 근심을 펴지 않으면 아침저녁으로 아래를 굽어보고 위를 우러러봄에 마음에 민망하여 스스로 정신과 마음이 괴롭고 근심스럽지 않겠는가마는, 굽으면 반드시 펴지는 것이 천도(天道)의 법이라고 하였다. 지난번 최우(崔友)의 행실은 실로 여러 날을 생각하여 부득이한데서 나온 것이며, 샛길과 굽은 길로 불경(不經)한 작은 술법으로 구제하고자 한 것은 우리 형의 측달(惻怛)함에 차이가 없음을 헤아려 곡진히 용서하였으나 또한 옆 사람들이 얼굴에 침 뱉는 것을 면하기 어려워 매번 밤에 일어나 앉아 몸을 돌아보고 스스로 탄식한다. 비유하자면 높은 산에 오르는 자가 산세가 기험(崎險)하여 천만 번 돌아가야 하는데 산에 오를 때 만약 먹줄처럼 곧고 대패처럼 평평하기를 구하고자 한다면 중도에 수레를 돌리려고 할 것이다. 하물며 지금 세상에 도(道) 밖의 도가 많고 리(理) 밖의 리가 있어 바람을 타고 번개를 채찍질하며 이름 지어 형용할 수 없고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 최우는 그 사이에 한두 번 도를 헤아렸을 것인데 이 벗은 사방에 뜻이 있어 선장(仙庄)에 나아가지 않았으니, 다만 2차로 약을 지어 우편으로 보낸다. 전두에 몸을 일으켜 나아감은 오로지 우리 형의 신용에 달려 있으며 세상만사가 미리 정하기 어려우니 각각 그 마음을 다할 뿐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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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윤재진(尹在晉)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辰落梧日 尹在晉 甲辰落梧日 尹在晉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945 1904년에 척질 윤재진이 바로 답장하지 못한 죄송함과 학문의 발전에 대한 축하, 가을에 왕림 요청, 보내준 석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한 간찰 1904년 가을에 척질(戚姪) 윤재진(尹在晉)이 보낸 답장 편지이다. 바로 답장하지 못한 죄송함과 학문의 발전에 대한 축하, 가을에 한 번 왕림하여 함께 글을 짓기를 바라고, 보내준 석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고 있다. 석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피봉이 있다. 타지에 있어 답장을 못하였다. 금을 정련하고 옥을 쪼듯 학업을 하여 광명(光明)하고 순숙(純熟)한 지경에 나아간 것을 축하하고, 긴 여름장마와 더위가 지나고 가을에 날씨가 맑고 길이 평평할 때 빨리 한 번 왕림해 주길 청하였다. 다만 천운(川雲)과 산월(山月)에게 분부하여 각각 그 경치를 드리고자 문장의 앞길에서 기다릴 터이니, 미리 옥을 연마하여 풍광에 누(陋)를 끼치지 않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보내주신 석매(石梅)는 책상 위에 두고 감상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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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詩文)과 명단(名單) 고문서-시문류-시 李南洙 李南洙 경상남도 함양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칠언율시 1수의 시문과 다수의 인명을 기록한 명단 시(詩) 1수(首)와 다수(多數)의 인명(人名)을 기록한 메모지이다. 경남 함양군(咸陽郡) 병곡면(甁谷面) 송평리(松坪里) 이남수(李南秀)를 비롯하여 다수의 인명을 기록하였다. 이름 옆에는 소명(小名, 아명)이나 자(字)를 기재하였다. 칠언율시 1수는 함양 지곡면(池谷面) 개평(介坪) 정순함(鄭淳咸)이 지었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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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이의순(李毅淳)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巳二月九日 李毅淳 丁巳二月九日 李毅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965 1917년 2월 9일에 족손 이의순이 족조인 모에게 산소의 일을 할 목수의 식주를 정하는 일에 대하여 논의한 간찰 1917년 2월 9일에 족손 이의순(李毅淳)이 족조인 모에게 편지를 받자마자 보낸 답장이다. 묘(墓)의 일이 급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목수의 식주(食主)를 주막에서 먹는 것으로 정했다고 하는 말이 맞는지 묻고, 그 사이 이해(利害)를 따져서 견주어 보았기 때문에 저 사람에게 실지로 말하기는 어려운데 잘 말했다. 산에서 급히 다시 식주를 정하면 만약 좋지 않아도 외면하지 못하기 때문이니 급하게 거행하더라도 논책(論責)은 면할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하여 어찌 하나의 규각(圭角)이라도 찾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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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성기운(成璣運)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癸酉元月九日 成璣運 李敎成 癸酉元月九日 成璣運 李敎成 전라북도 정읍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801 1933년 1월 9일에 성기운이 나라의 형세를 한탄하고 《소학집주증보》를 새기는 데의 부담과 《존선시편》 필사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3년 1월 9일 성기운(成璣運)이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정월 초하루에 체도가 강건한지 안부를 묻고, 지금 온 나라의 남은 백성은 누구라도 가마솥의 물고기 신세가 되었으니 신년의 경복(慶福)을 어떻게 서로 하례하겠는지 한없는 염려만 있을 뿐이라고 하여 나라의 형세를 먼저 언급하였다. 자신은 근래에 주제넘게 《소학집주증보(小學集註增補)》를 새기는 데에 뜻을 둔지 반쯤에 이르렀지만 난쟁이에게 천 균(勻)의 짐을 짊어지게 하는 것과 같아 아침저녁으로 전쟁이라고 하고, 부탁한 《존선시편(尊先詩篇)》을 베껴 쓰는 일은 거칠고 졸렬하여 매번 바라볼 때마다 크게 한숨만 나온다고 하였다. 일이 이와 같으나 거칠게라도 써서 드리는데, 장식(粧飾)하지 않고 여러 세대를 전할 것이니, 한 번 보고 불에 태우기 바란다고 하였다. 별지가 있는데, 그 외에 또 한 본(本)은 혹 앞에서 시도한 것보다 낫길 바라면서 필사하였으므로 아울러 보내드린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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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1906년 경 시천(詩川) 등을 추모하는 글 고문서-시문류-문 1906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6년 경에 작자 미상의 조상인 시천 선생과 연재 송병선, 간재 전우를 추모하는 글 1906년 경에 지은이의 조상인 시천(詩川) 선생과 연재 송병선(淵齋 宋秉璿), 간재 전우(艮齋 田愚)를 추모하는 글이다. 천지간에 신자(臣子)로 태어나 모후(母后, 인목대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임)를 폐하는 도리가 있는가 하고는, 마침내 강을 건너 산으로 들어갔다가 시천(詩川)에 자리잡아서, 끝내는 대의(大義)를 세우게 되었다. 가운(家運)이 불행하여 불초 현손부(玄孫婦)를 만나 아들은 없고 두 딸만 있게 되어 후계가 없게 되니, 가산(家産)과 온갖 물품 처리가 온전히 사위들에게 맡겨지게 되었다. 서손(庶孫)들이 집안의 유품들이 없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어느 날 밤 보성에 있는 봉갑사(鳳甲寺)에 져다 두었는데, 봉갑사에 갑자기 불이나 모두 재가 되어 한 글자도 한 문헌도 찾지 못하고, 누세의 문헌과 임금의 교지 등이 이로써 흔적이 없게 되었다고 안타까워하면서 대(代)를 잇는 문제를 논하였다. 연재 선생은 지난해 갑진년(1904) 정읍시 시기동의 초산(楚山) 고암서당에서 강회(講會)가 있었는데, 다음해 을사년(1905)에 순의(殉義) 입절(立節)하고 영영 가시니 그 한스러움을 고할 데가 없었다. 그런데 전 간재어른께서 유독 율‧우(栗谷‧尤庵)을 존신하여 그 발명(發明)을 자임하였다는 등의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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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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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이생원(李生員)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生員 李生員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 3월에 생원 이 아무개가 두 집안의 혼사에서 길일을 잡아 올리는 간찰 모년 3월에 가천(可川)에 사는 생원(生員) 이 아무개가 두 집안의 혼사에서 길일을 잡아 올리는 간찰이다. 큰 종이에 우측 하단의 발신 내용과 좌측 상중단의 발·수신자 기록이 같이 있는데, 봉투를 사용하지 않고 접어서 봉한 간찰로 보인다. 발·수신자 기록이 문서의 절단 등의 이유로 일부가 미상이다. 옛날 고려에서 두 어른이 함께 의(義)를 지켜 나라에 충성을 바쳤는데, 지금 두 집안이 혼인으로 다시 좋은 관계를 맺게 되니 기쁘다고 하고, 길일을 잡아 올린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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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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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4년 이교섭(李敎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昭和)9.7.25 李敎燮 李敎成 (昭和)9.7.25 李敎燮 李敎成 전라남도 보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4년 6월 10일에 이교섭이 석품(石品)의 광폭과 후박, 대금, 비용처리, 전보식(電報式)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4년 6월 10일에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용암리(龍巖里)에 사는 이교섭(李敎燮)이 경성 남대문 밖 길야정(吉野町) 1정목(丁目) 118번지에 사는 이교환(李敎煥) 방의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한자와 한글을 혼용하여 썼으며 날짜는 미상이다. 석품(石品)의 광폭(廣幅)과 후박(厚薄)이 매우 졸렬하지 않으니 모양이라도 다시 갈고 새기는 것을 기약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하고, 영남의 종중이 비를 세운 것에 관해 언급하고서 양문(兩門)에서 600원에 한하여 분배하여 수금하기로 하였고 석품대(石品代)는 200원으로 한정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여 의사를 묻고 있다. 비석에 들어간 돈에 대해서는 결과가 선하고 선하지 않고를 논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다시 갈고 새기는 일에 전면의 글자는 그대로 두고 후면 및 좌우의 글만 갈 것이며, 여러 종인과 함께 일할 때에 우리 문중의 배당금을 기약한대로 낼 것이라 하였다. 전의 비용을 들이고 다시 새기는 비용은 여러 방도로 종중에서 출역하여 큰일을 마치되 제종(諸宗)이 분담에 응하지 않으면 우리 집안이 홀로 감당하더라도 그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였다. 서찰의 끝부분에는 '후면은 다시 새긴다.[更刻後面]'는 것과 '다시 새로 작성한다.[更新作成]'는 전보식(電報式)이 적혀 있으며, 한자 옆에 한글로 음을 적었다. 만약 형편이 괜찮으면 전보를 특별히 배달로 부치라는 내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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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시문류

초기(草記) 고문서-시문류-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작자와 작성일자 미상으로, 연재, 우옹, 주자, 필원 등을 언급하고 있는 어떤 글의 초기 작성자와 작성일자 등이 미상인 글이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이 태어남에 우옹(尤翁)은 후손이 있게 되었고, 재성(在成)이 태어남에 연재는 후손이 영영 없게 되었다.', '임씨가 태어남에 선비의 기상이 의지할 곳이 있게 되었다', '우옹을 평하는 자들은 장차 서까래를 더할 때는 거의 만에 하나 도움이 되었던가.' 라고 하였다. '심(心)과 리(理)는 하나의 자연으로 발하는 것이며, 모두 사(私)가 없다.', '무릇 우리 유자(儒者)가 후세에 잊혀도 되는가?', 주자가 임종을 맞아 제자들에 한 말, 필원(筆院), 호남 3성(城) 3군(郡) 등이 언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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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근현대문서
유형분류 :
서신·통지류

1935년 김택경(金澤卿) 엽서(葉書) 고문서-서간통고류-엽서 (昭和)10.6.3 金澤卿 李敎成 (昭和)10.6.3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766 1935년 5월 2일에 동생 김택경이 묵용실 방문, 《차의집보》 및 《노사집》에 관한 논의, 생청 송부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엽서 1935년 5월 2일에 전북 남원읍(南原邑)에 머물고 있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엽서이다. 화종(華宗)과 춘부장(春府丈)의 기체도 강녕한지의 안부와 자녀들이 편안하게 잘 공부하는지를 묻고, 자신은 지난번에 묵용실(默容室, 정봉태(丁鳳泰)의 아버지 정일우(丁日宇)의 당호)을 방문하였으나 주인이 출타하여 다음날 아침에 만나보고 안부를 여쭈었다고 하였다. 《차의집보(箚疑輯補)》 및 《노사집(蘆沙集)》에 대하여 오늘 영촌(嶺村) 김장(金丈)을 방문하여 대략 의논하였는데, 그 맏아들이 살고 있는 경성의 집에 다른 사람이 와서 묵을 수 없어 점심밥을 먹고 헤어졌다고 하였다. 생청(生淸)은 궤에 담고 봉하여 받는 사람을 한영경(韓詠卿) 명의로 부친다는 뜻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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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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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통지류

1936년 김택경(金澤卿) 엽서(葉書) 고문서-서간통고류-엽서 丙子五月七日 金澤卿 李敎成 丙子五月七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773 1936년 5월 7일에 동생 김택경이 마종의 이해, 저포 시급, 서적 부송, 선장 방문계획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엽서 1936년 5월 7일에 강원도 강릉군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엽서이다. 내가 서찰을 방금 발송하였는데 보내주신 서찰이 마침 와서 보았다. 요즈음 효상(爻象)이 기쁘고 통쾌하다고 하니 무엇에 비유하겠느냐고 하고, 마종(麻種)의 이해(利害)는 괘념치 말라고 하였다. 벌교(筏橋)에 부치지 못한 것은 전에 없이 대항(大港)이 고장이 있는 듯하여 배편으로 맡겨 부치려고 하며, 남철(南鐵)은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었다. 저포(苧布)의 쓰임이 시급하여 먼저 서적과 함께 부송하기를 바란다고 하고, 자신은 며칠 동안 길을 나서 선장(仙庄, 형님댁)을 다시 방문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들의 학업을 염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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