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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언율시 3수(首)의 시문(詩文)과 기문(記文) 고문서-시문류-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칠언율시 3수의 시문과 남의 처자식을 빼앗은 것에 대해 호소를 한 기문 칠언율시 3수(首)와 남의 처자식을 빼앗은 것에 대해 호소(呼訴)하는 기문(記文)이다. 시문은 〈괴석(恠石)〉이란 제목의 시 1수와 〈진영중수운(鎭營重修韻)〉에 대한 시(詩) 2수로 모두 칠언율시 3수이다. 시문 2편의 끝에는 작자의 성명을 기재해 놓았다. 그 뒤에 이어붙인 산문은 앞의 내용과는 상관없다. 남의 처자식을 빼앗은 사람에 대한 혹평(酷評)을 늘어놓은 산문(散文)이다. 원통하고 분완(憤惋)한 일은 불선(不善)을 쌓는 일인데, 이 불선을 쌓는 일 중 가장 나쁜 것은 남의 처자식을 빼앗는 것이라고 하고, 꾀꼬리와 말과 소 등의 짐승들도 서로 짝을 찾고 새끼를 챙기는데, 사람에게서 인륜의 부부의 정과 부모의 정은 말할 것도 없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가속이 단 3명으로 서로 의탁하며 살다가 하루아침에 그 두 사람을 잃어버려서, 생각하지 않고 잊으려 할수록 더욱 생각나고 잊기 어려운데, 빼앗은 자가 사또[使道]의 자제인 한림(翰林)이라고 하니, 자신이 호소할 곳이 없어서 매우 많은 사람에게 아뢴다고 호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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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이병원(李秉元)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申十一月十日 李秉元 壬申十一月十日 李秉元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2년 11월 10일에 아우 이병원이 형님에게 《주례》 한 책이 부족하여 애석하다고 하고, 책값을 보내고 시렁에 쌓아둔 책도 보낸다고 한 간찰 1932년 11월 10일에 아우 이병원(李秉元)이 형님에게 각종 책자를 잘 받았는데 《주례》 한 책이 부족하여 애석하다고 하고, 책값을 보내고 시렁에 쌓아둔 책도 보낸다는 편지이다. 특별히 사람을 보내 편지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고, 자신은 날마다 어지러운 가운데 각종 책자를 잘 받아서 다행이라고 하였다. 다만 《주례(周禮)》 한 책이 부족하여 애석하다고 하였다. 《팔자백선(八子百選)》 값 2원(圓)은 올려 보내고, 《예기(禮記)》와 《좌전(左傳)》을 보내 주셔서 매우 감사하다고 하였다. 자신이 보내는 책은 불필요해서 시렁에 쌓아두었던 것으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보낸다고 하고, 《주서(朱書)》 한 권도 첨부하니 군더더기는 아닐 것이라면서 받은 책과 보낸 책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별지가 있는데, 각 책의 가격을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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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윤기섭(尹璂燮)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梧秋旬七 尹璂燮 東床 乙梧秋旬七 尹璂燮 東床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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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윤재진(尹在晉)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梧月十七日 尹在晉 乙梧月十七日 尹在晉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945 1925년 7월 17일에 족질 윤재진이 수신자의 안부를 물은 후에 가을바람이 점점 서늘해지면 학문하는 여가에 한 번 왕림해 달라고 한 간찰 1925년 7월 17일에 족질(族姪) 윤재진(尹在晉)이 수신자의 안부를 골고루 물은 뒤에, 자신은 점점 게을러져서 전진(前進)함에 가망이 없어 걱정스럽다고 하였다. 탄식한들 어찌하겠는가 하고, 오직 다행인 것은 긴 여름 이래로 거듭 숨이 막히는 것은 면했다는 것이다. 가을바람이 점점 서늘해지면 학문하는 여가에 부디 한 번 왕림해 달라고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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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성구용(成九鏞)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戌十月九日 成九鏞 李敎成 甲戌十月九日 成九鏞 李敎成 전라북도 정읍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801 1934년 10월 9일 밤에 성기운이 현암에 도착해 인역을 설행한 일과 인본의 회답, 교천씨와 박태선씨의 근황을 묻는 내용 등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4년 10월 9일 밤에 정읍군(井邑郡) 소성면(所聲面) 흑암리(黑巖里) 객지에서 성기운(成璣運)이 피봉에 성구용(成九鏞)의 명의[出附]로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기적이 한 번 울리자 길이 멀고도 먼듯하여 슬픔을 말할 수 없다고 하고, 삼가 이러한 때에 어머님을 모시고 뜻을 받들며 생활하시는 체후가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사향(祠享)에 참석하고 오랜 친구를 상대하며 세월을 공허하게 허비하고 현암(玄巖)에 도착하였으며, 형의 부탁을 감히 어길 수 없어 사람을 시켜 인역(印役)을 설행하게 하였다. 그 일이 매우 어려워 또 3, 4일이 지나 돌아갈 기일이 되었기 때문에 지레 오는 차를 타고 시름없이 보산(寶山) 골짜기를 바라보았으나 돌아갈 수 없었다고 하고, 인본(印本)은 수령한 뒤에 연기군(燕岐郡) 금남면(錦南面) 달전리(達田里)에 사는 성운(成塤)에게 회답해 달라고 하였다. 첨부한 별지가 있는데, 화족(華族)인 교천(敎川)씨와 박태선(朴泰璿)씨의 근황을 들었는지 묻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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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申臘月念六日 金澤卿 李敎成 丙申臘月念六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896년 12월 26일에 김택경이 형의 택지, 대관령 남쪽으로의 이주, 친산(親山) 택정 등의 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896년 12월 26일에 강원도 명주군(溟州郡) 성산면(城山面) 금산리(琹山里)에 사는 김택경(金澤卿)이 전북 정읍군(井邑郡) 고부면(古阜面) 안영리(安永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봄철에 보내주신 서찰을 받고 10년 동안 격조한 뒤에 뵌 듯하였는데, 현합(賢閤, 부인)과 따님의 상에 매우 놀랍고 슬펐다. 아직도 이렇게 좌하(座下)에 조위하지 못해 송구한 마음이다. 문중의 족보를 만드는 일은 읍저(邑邸)의 일이 바빠 겨를이 없다. 형의 체후 등 두루 편안한가? 형의 택지(擇地)는 본래 오랜 계획인데 고향을 떠나는 마음이 어찌 그저 지나가는 일이겠는가. 자신은 근근이 예전처럼 지내지만 천 가락의 귀밑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말씀하신 피란(避亂) 같은 일은 없지만 경인년(1890) 3월에 이미 대관령(大關嶺)의 남쪽으로 옮겼다. 구점(舊店) 금산(金山)에서 수십 리 길이며, 한 조각 땅을 버리는데 지나지 않지만 신수(薪水)의 즐거움은 초목(草木)과 함께 썩기를 기약할 뿐이다. 공이 보관하는 서적은 혹 손상된 것이 없는지, 장판(帳板)도 보존되어 있는지를 묻고, 지난해에 자신의 고을에 사는 화종(華宗)의 일로 청한 것을 보내 온 것은 계씨에게 다 주지 않았다고 하였다. 형이 청오(풍수지리학)의 방법으로 유명하다고 얼핏 들었는데, 친산(親山)이 아직 완전히 정해지지 않았으니 내년 봄 아늑하고 따뜻한 때를 기다려 왕림해서 두루 살펴달라고 하고, 혈자리 하나를 점하고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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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 이순구(李舜九)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之 二月 卄七日 李舜九 芝谷 侍棣座 庚之 二月 卄七日 1930 李舜九 芝谷 侍棣座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0년 2월 27일 이순구가 지곡에서 어버이를 모시는 형제들에게 문안 겸 초대하는 간찰 1930년 2월 27일 이순구(李舜九)가 지곡(芝谷)에서 어버이를 모시는 형제들에게 올린 문안 간찰이다. 중춘(仲春)에 상대방 형제들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노친(老親)을 모시고 근근이 지내지만 우환이 끊이지 않아 걱정이라고 하였다. 다시 맞이하는 것은 너무 늦었지만, 비록 손자라도 형세가 그렇게 만들었으니, 모름지기 허물하지 말라고 하고, 형제가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찾아주심이 어떻겠냐고 하였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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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이면용(李冕容)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戌 三月 十二日 李冕容 甲戌 三月 十二日 李冕容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34년 3월 12일 이면용(李冕容)이 혼인날을 잡고 상대방의 의사를 묻는 간찰 1934년 3월 12일 이면용(李冕容)이 집안의 혼사를 위해 상대방의 성첩(星帖)을 받은 뒤, 길일(吉日)을 잡아 올리는데, 혹 그날에 구애되는 것은 없는지 묻는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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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종(族從)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族從 族從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족종(族從)이 산 아래 집터의 도조를 잘 받아주어 감사하고 봉사공의 묘각을 세우는 일에 대해 언급한 간찰 족종(族從)이 엄동설한(嚴冬雪寒)에 잘 지내는지 인사 여쭙고, 자신은 잘 지내며, 산 아래 집터[家基]의 도조(賭租)를 잘 받아주어서 감사하고, 봉사공(奉事公)의 묘각(墓閣)을 세우는 일에 대해 언급한 편지이다. 왼쪽 부분이 잘려나갔거나 낙장이 있을 것으로 보여 날짜와 발신자 등은 미상이다. 만나서 일가(一家)의 정의를 나눈 지 일주(一周)가 지났는데, 자신은 해가 갈수록 버틸 수 없고 노년의 모습은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수신자의 산 아래에 있는 집터의 도조는 지역이 멀고 협잡(挾雜)의 단서가 있어서 걱정인데 잘 받아주어서 감사하다. 봉사공의 묘각은 수축(修築)하기로 한 것이 몇 년이 되었지만 아직 시작도 못했다. 금년에는 곡성(谷城)과 보성(寶城) 양읍(兩邑)에 살고 있는 자손들이 여러 방도로 비용을 마련하고 서울에 사는 사람들도 마땅히 힘을 보태어 추진하자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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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재실(齋室) 완공기 고문서-시문류-문 丁巳 丁巳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17년에 재실을 완성하는데 이르기까지 겪은 마음고생과 완성된 모습 및 주변 경관을 찬한 기문(記文) 1917년 재실(齋室)을 완성하는데 이르기까지 겪은 마음고생과 완성된 모습 및 주변 경관을 찬한 기문이다. 평일에도 서로 시샘하고[齮齕] 미워함이 있었는데 일이 거의 완성될 무렵에 한스러웠던 것은 재원(財源)이었다. 기쁨과 걱정이 아우르던 때 목공을 늘리게 되어, 곡절을 겪은 뒤 정사(丁巳, 1917)년에 공사를 끝냈는데 힘이 부족하여 문(門)을 다는데 미치지 못했다. 후년(後年)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목공이 말하기를, '이와 같은 성대한 집에 어찌 문이 없을 수 있는가?' 하고 그들의 도움으로 끝냈다고 하였다. 그리고 모두 재(齋)에 올라 주번 경관을 돌아보며 명산이 구름속에 우뚝 솟아있음을 응전(鷹鸇)의 기상에 비유하며, 동서남북 봉우리들을 묘사하고 있다. 끝에는 '예(禮)는 이(理)이다.'라는 주자의 말을 인용하며 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보성과 적성(赤城) 두 집안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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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김정진(金靖鎭)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午三月二十三日 金靖鎭 壬午三月二十三日 金靖鎭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755 1942년 3월 23일에 기하생 김정진이 일전의 근무지에서 괴롭고 근심이 많다는 등의 내용으로 보낸 간찰 1942년 3월 23일에 기하생(記下生) 김정진(金靖鎭)이 보낸 간찰이다. 훌륭한 명성은 이미 들었으며 화창한 봄에 생활하시는 행동거지가 모두 진중하기를 바라며 그리워하는 마음 그지없다고 인사하였다. 기하생 자신은 일전에 근무지에 도착하였는데 스스로 매우 괴롭고 근심스러운 일이 많다고 하고, 언제 만나서 마음을 터놓을는지 모르겠지만 나머지는 만나 뵙고 말씀드리고 우선 이만 줄인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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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홍종한(洪鍾漢)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臘月初二日 洪鍾漢 李碩士 丙子臘月初二日 洪鍾漢 李碩士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753 1936년 12월 2일에 기하생 홍종한이 안부인사와 새해 달력을 부친다는 등의 내용으로 이석사에게 보낸 간찰 1936년 12월 2일에 기하생(記下生) 홍종한(洪鍾漢)이 이석사(李碩士)에게 보낸 간찰이다. 오랫동안 서로 소식이 막혀 서글펐으며, 바닷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데 매화는 피었는지, 봄에 이끌려 비로소 한 해가 저물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고 삼가 매우 추운 이때에 체후는 연이어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그리운 마음 그지없지만, 기하생 자신은 부족한 모습으로 여전히 근심스럽기만 하고 구제하려 해도 대책이 없어 단지 스스로 애태우며 괴로워할 뿐이라고 하였다. 새해 달력 1건을 부쳐드린다고 하고, 바다고을의 세월은 어떠한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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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至月初九日 金澤卿 李敎成 乙亥至月初九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766 1935년 11월 9일에 김택경이 마종(麻種)의 요구에 부응할 계획, 생청 송부, 《소의편》 등의 정가, 《화안시보》의 인물들을 살펴봐줄 것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5년 11월 9일에 강원도 강릉군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세 번의 서찰을 차례대로 받았는데 물품의 많은 것들을 결정짓지 못하여 이렇게 사례를 지체하다가 여기에 이르렀으니 죄송스럽다. 겨울인 이즈음에 춘부장(春府丈)님의 몸과 마음은 편안하며 형제분도 건강한지, 아드님도 학문에 열중하는지, 멀리서 그리워하는 마음 그지없다고 하면서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근근이 지난날의 졸렬함을 지키며 살고 있다. 부탁한 마종(麻種)은 형이 선금을 보내지 않았지만 얼마간을 부응할 계획인데 보따리상들이 발호(跋扈)하는 이유로 아직 장에 나아가지 못하였다. 오는 그믐 안에 꾀하여 얻을 희망이 있을 듯하다. 생청(生淸)은 양봉(養蜂)하는 일이 잘 안되어 구하기 어려워서 다만 2되를 보내니 시험 삼아 약용하라고 하고, 《소의편(昭義編)》은 5권에 정가 5원이고, 《현가궤범(絃歌軌範)》은 1권에 50전이라고 하였다. 율옹(이이)의 필찰이 한 곳에 몇 폭(幅) 있다고 하여 도모하여 얻을 계획이다. 《화안시보(華案諡譜)》에 문충공(文忠公) 박순문(朴純), 문목공(文穆公) 박원계(朴元桂), 충경공(忠景公) 박지계(朴之桂), 문공공(文恭公) 심언광(沈彦光), 문양공(文襄公) 최연(崔演)이 있는지 살펴 달라. 형이 자식에게 바른 도리로 가르치는 뜻을 여러 번 요청하였는데 정성스런 뜻이 있는 것을 알았다고 하고, 집안에 선기(先忌)가 겨울철에 많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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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김기석(金箕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申二月四日 金箕錫 李順九 壬申二月四日 金箕錫 李順九 전라남도 장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779 1932년 2월 4일에 김기석이 자식을 가르치고 경계해야 할 것, 영애의 혼처 소개 등의 내용으로 이순구에게 보낸 간찰 1932년 2월 4일에 전남 장성군 황룡면(黃龍面) 옥정리(玉井里)에 사는 동생 김기석(金箕錫)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인형(仁兄) 이순구(李順九)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먼저 안부를 묻고, 몇 가지 당부의 말을 하였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사랑한다면 그를 노력하도록 만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고, "사랑하기만 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짐승으로 기르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러한 뜻으로 새벽과 저녁으로 경계하고 깨우쳐 그로 하여금 굳건하게 뜻을 세우게 해야 한다. 분명치 못하게 반평생을 헛되이 보내고 자식을 가르치고 집안을 가지런히 할 수 없는 자가 경계를 삼지 못하는 얕은 성품으로 세장물정에 어둡고 친척과 고을의 뜻과 맞지 않아 따르는 사람이 없다. 형과 내가 정의를 맺고 5개월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 궁금한데, 대군자(大君子)의 넓은 도량과 훌륭한 덕이 법도에 맞고 엄격한 것은 천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주(瀛洲)에서 어제야 집으로 돌아와 떨쳐 일어나기가 어렵다. 영애(令愛)의 혼처로 합당한 사람을 구한다면 자신의 고을 북쪽 아래의 회촌(晦村) 평리(坪里)에 사는 친척 한수(漢洙)의 막내 동생 집에 나이가 17세인 총각이 있다. 소학교에서 배우고 책문(策文)을 읽었으며 모습이 단정하다. 집안의 재력은 없으나 집안의 법규가 화순하여 넉넉한 집에 버금가는 혼처이니, 형이 만약 뜻이 있으면 자세히 살피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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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언율시(七言律詩) 2수(首) 시문(詩文) 고문서-시문류-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시운초(侍雲初) 등 칠언율시 두 편의 시문 칠언율시 두 편인 듯하나 내용이 앞뒤로 잘려나갔다. 앞부분은 제목 부문이 잘렸으나 수연을 맞이하여 젊었을 때의 기상은 하늘을 찌를 듯했으나 비분강개한 육십 노인이 황조(黃鳥)와 청노새를 바라보며 노인의 쓸쓸함을 표현했고, '시운초(侍雲初)'라는 제목의 시는 구름이 왔다 갔다 하여도 오히려 지루하여 봄에 함께 술동이 안고 취했다가 명월을 맞이해 홀로 시를 읊는 공은 백발을 슬퍼한다는 내용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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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성구용(成九鏞)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戌十月二十七日 成九鏞 李敎成 甲戌十月二十七日 成九鏞 李敎成 세종특별자치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801 1934년 10월 27일에 성구용이 어르신의 가르침에 부응치 못한 자신의 반성과 선현 필적의 수령여부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4년 10월 27일에 충남 연기군(燕岐郡) 금남면(錦南面) 달전리(達田里)에 사는 성구용(成九鏞)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용암리(龍巖里)에 사는 사문(斯文)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소춘(小春)에 부모님을 모시고 생활하시는 체후와 집안 모두 편안한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그때 어르신을 모시고서 간옹(艮翁)의 제사에 참여하고 바다를 나와 사우(士友)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동안 예를 행하는 장소에서 주선(周旋)하는 모습을 보고 고론(高論)을 듣기도 함으로써 탕척(蕩滌)되어 텅 빈 마음이었다고 말할 만하나, 재질이 어리석고 용렬하여 확충하지 못해 부끄럽고 가련하다고 하였다. 처음의 생각으로는 신선의 문에 들어가지만 어느 정도 바닥이 드러나 다 없어지게 되는 것을 두려워할 만하지만, 날짜만 허비하고 성대한 뜻을 받들지 못하니 한스러울 뿐이라고 하였다. 부탁한 선현의 필적은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부쳤는데 받아 보았는지 아직 회답이 없어 염려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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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記文) 고문서-시문류-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에 형재공 사판을 이봉하는 일에 관한 기문 모년에 형재공(亨齋公) 사판(祀板)을 이봉(移奉)하는 일에 관한 기문(記文)이다. 형재공의 사판을 이봉하는 일은 정례(正禮)에 위배되고 정세(情勢)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고, 예의 바름에 합당하지 않은 것은 주부자(朱夫子주희(朱熹))의 정론(定論)을 토대로 중국으로 말하자면 범문정공(范文正公 범중엄(范仲淹))의 사당이 불천지위이기 때문에 묘소의 아래에 세웠고,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불천위는 별도로 묘소에 사당을 세운다고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이 말했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은 형편상 미치지 못하면 별도로 사당의 곁에 묘(廟)를 세운다고 하였다. 이른바 정세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근자에 종운(宗運)이 비색(否塞)하여 천백세 동안 내려온 제전(祭田)을 적손(嫡孫)이 삼켜버려서 향사(享祀) 존모(尊慕)의 도(道)에 왕래가 끊어졌다. 금일에 이르러 크게 힘을 쏟고자 하나 대종(大宗)이 없으니 지손(支孫)인 자가 예(例)대로 하되 별도로 사당을 비록 다른 곳에 있으나 묘소로 옮겨서 받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하였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정례와 정세에 매우 적합하다고 하고, 묘의 아래로 다른 곳에서 전이(轉移)하는 것이 천부당만부당하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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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사촌(四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에 상중인 사촌이 읍의 동쪽 악실, 지방관서[土司]에서 숙직 중인 분, 사촌[從] 등에게 보낸 3편의 간찰 모년에 상중인 사촌이 읍의 동쪽 악실(堊室), 지방관서에서 숙직 중인 분, 사촌 등에게 보낸 편지이다. 모두 3편을 베껴놓았다. 1. 상중인 사촌이 읍의 동쪽 악실에 계신 분께 근간에 대고(大故)를 만나 이미 장사를 치렀다고 들어서 경악(驚愕)하고 슬픈 마음에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겠다고 하고, 자신은 봄에 연이어 상을 만나 슬프고 황당한 가운데 집안의 걱정이 겹쳐서 생겨 고민이라 부음에 위장도 보낼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2. 상중인 사촌이 지방관서에서 숙직 중인 분께 장마와 더위 중 안부를 묻고, 금번 배미(排米)의 일은 당신의 말이 정당하지 못한 전례를 지어냈으니 매우 통탄스럽다고 하고, 입록할 때에 혹자가 잘못 전했느냐고 묻는 내용이다. 3. 상중인 사촌이 사촌에게 세월은 흘러 돌아가신 숙부님의 상사(祥事)가 이르렀다고 하고, 자신은 숙병으로 쇠하여 더욱 괴로운데 병을 빌미로 항상 새기지 못하고 이미 3년의 안에는 갈 수도 없겠다 싶었지만, 상사 때를 만나 가서 곡을 하려고 했으나 벌써 궤연(几筵)을 거둔다고 하니, 이런 일은 타인을 시킬 수도 없는 일로 헤아려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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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7년 이상호(李祥鎬)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卯五月念日 李祥鎬 李敎成 丁卯五月念日 李祥鎬 李敎成 경상북도 안동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805 1927년 5월 20일에 이상호가 인역(印役)이 늦어지는 것에 양해를 구하고 남은 책권도 곧 받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는 간찰 1927년 5월 20일에 이상호(李祥鎬)가 보낸 간찰이다. 류한(榴旱, 음력 5월의 가뭄)에 부모님을 모시며 생활하는 체후가 평안하고 집안 식구들도 모두 평안하심을 알았으니 위안이 되고 또 하례 드린다고 인사하고, 자신은 처리할 일이 많아 고요하게 붙어 있는 날이 없어 잠시도 온전히 편안할 겨를이 없다고 하였다. 곧 진행될 것이라고 말한 일은 이렇게 늦어져 기한이 없었지만 중간에 일이 많았으며 인역(印役)도 한없이 많고 공인(工人)의 한 손을 겸하고 있어 생병(生病)이 심하게 들었다면서, 일 년 이상이 걸렸으니 먼 밖에서 어찌 마음이 조급하고 답답하지 않겠는가 하고 위로하고 있다. 이를 알고는 있지만 비록 대대로 교분이 두터운 벗이 부탁하여 올린 것인데 후회해도 소용없고 천금과 같은 언약을 스스로 저버릴 수 없는 사람이 나이니 이왕 기다린 것을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현재 인출(印出)하여 책자로 만들고 남은 책권도 차례대로 손수 같이 한다면 오래지 않아 받을 듯하다. 이것이 믿을 수 있는 말인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추신이 있는데 이러한 뜻을 그곳의 여러분들에게 말해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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