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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四月七日 金澤卿 李正汝 丙子四月七日 金澤卿 李正汝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773 1936년 4월 7일에 김택경이 족숙 성교의 형편을 묻고, 마종과 양목의 수응 및 저포와 남철의 청구에 회답이 없는 일, 선향 방문 계획 등의 내용으로 이정여에게 보낸 간찰 1936년 4월 7일에 강원도 강릉군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이정여(李正汝)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반년을 모시고 정담을 나누었는데 천리를 떨어져 있으니 슬프고 그립다고 하고, 왕성한 여름에 정양하시는 체후와 형제분들과 화종(華宗)들도 모두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여전히 잘 지낸다는 소식을 전하고 족숙(族叔) 성교(敎成) 형의 형편은 어떠한지 물었다. 마종(麻種)과 양목(陽木)을 수응(酬應)한 것과 저포(苧布)와 남철(南鐵)을 청구(請求)한 것은 1월쯤에 1차로 서찰을 받은 뒤에 몇 차례 구하고자 하였는데 서너 달이 되어도 어떠한 회답도 없으니 형의 평소 신의로는 이러할 리가 없어 염려되고 암울하다고 하였다. 존좌(尊座)께서 같은 문중에서 상종하는 일에 있었으면 그 사정을 알 것이니 부디 소외시키지 말고 자세히 알려주어 의혹을 풀어 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선향(仙鄕)의 산수(山水)가 오래도록 안중에 있어 다시 찾아보기를 원하며, 금년 5월경에 경북으로 가는 길에 귀부(貴府)에 나아갈 계획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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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二月六日 金澤卿 李敎成 丙子二月六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773 1936년 2월 6일에 김택경이 딸아이의 혼사, 마종의 발매, 남철과 저포의 구매, 원지 가격의 회답, 율옹의 필찰, 《명사보유》와 《시보》의 검토, 《매월당집》 등의 매입 등에 관한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6년 2월 6일에 강원도 강릉군(江陵郡)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寶城郡)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인형(仁兄)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1월에 서찰이 와서 답장을 썼는데 서로 간에 각 항의 물품을 조처한 뒤에 통신(通信)할 계획이다. 혼사는 과연 수락한 곳이 있는지 묻고, 딸아이의 혼사가 삼척(三陟) 심씨(沈氏)로 정해졌다고 하였다. 우리 고을은 다른 고을보다 혼기를 지난 규수가 많으니 형이 있는 지역을 차치하고 이곳을 염두에 두면 반드시 청혼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마종(麻種)은 근래에 통지한 것이 도착하였는지 묻고, 형이 1표(俵)만 보내라는 말씀이 있어 어떤 사람에게 매입하기로 약속하였다. 새해가 되기 전에 예사로 가격을 짐작하고 새해가 된 뒤에 매매하여 파종하기 전에 도착하면 3표로 물건을 발매할 수 있을 것이다. 양목(陽木)은 1표로 매입하지 못하니 이렇든 저렇든 형의 정신을 어지럽게 하여 미안하다. 남철(南鐵)과 저포(苧布)는 시세에 따른 가격으로 사서 보내는 것이 좋겠다. 이곳은 원지(原紙) 가격이 1축(軸)에 5원이라고 하고 반드시 얼마간의 우편 비용이 있을 것이니 헤아려서 회답해달라고 하고, 원지는 근처에서 구하기 어렵지 않다고 하였다. 율옹(栗翁, 이미)의 필찰이 조금 먼 곳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에게 부탁하여 마련하였는데 아직 일이 성사되지는 못했다. 귀하의 선조의 필첩(筆帖) 《명사보유(明史補遺)》와 《시보(諡譜)》를 자세히 검토할 것이니 특별히 생각하여 반드시 베풀어주고, 《매월당집(梅月堂集)》은 형이 매입한 것을 《연원록(淵源錄)》으로 바꾸었다는 것은 진실로 시원스러운 일이며 《매월당집》은 예전에 판각한 것인데 누가 편찬한 것이며 시문(詩文)도 갖추어 있는지를 물었다. 이곳은 새로 간행한 6책이 상세한데 가격이 현격하게 다르다. 《소의신편(昭義新編)》은 몇 번을 되풀이하여 보았는데 의체(義諦)를 알았는지 묻고, 이는 곡성(谷城) 정오재(丁梧齋)의 부탁으로 겨우 사우에게 구한 것이나 지난 가을에 서찰로 알렸는데도 오래도록 답장이 없다. 형이 마침 매입하여 보내라는 말씀이 있어 지레 먼저 보낸다. 올 1월초에 비로소 정씨가 서찰로 《소의신편》을 보내라 하니 형이 만약 뜻이 없으면 중요한 곳을 뽑아내어 갖추고서 곧바로 정씨에게 보내주는 것이 좋을 듯하며 많은 일들에 대해 가부간에 속히 알려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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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에 상중인 사람이 성주에게 찾아가 뵙지 못해 죄송하고 새 달력을 보내준 것에 감사하다는 것과, 보내준 편지를 바로 받지 못해 바로 답장을 못해 죄송하다는 것과 그럭저럭 잘 지낸다는 3편의 답장 편지 모년에 상중(喪中)인 사람이 성주(城主)에게 찾아가 뵙지 못해 죄송하고 새 달력을 보내준 것에 감사하고, 보내준 편지는 바로 받지 못해 답장도 못했다고 하고 그럭저럭 잘 지낸다는 답장 편지이다. 고을 수령에게 보내는 편지 3편을 베껴놓은 것이다. 1. 궁벽한 오두막에 엎드려 지내니 온갖 감정이 들끓고, 흉년으로 눈에 보이는 마을의 걱정은 스스로 답답하고 가련하다. 자신의 생애에 골몰하느라 한 번도 나아가 뵙지 못해 죄송하고, 보내주신 새 달력에 감사하다는 마음을 담았다. 2. 보내 주신 편지를 형제들이 받지 못해서 마땅히 마음으로 송구스럽다. 모든 일에 큰 비용은 들지 않았는지 묻고 삼가 위로되고 축원(祝願)한다고 하였다. 비록 근래 뒤미처 답장할 겨를이 없었으며 나이는 어리고 용렬하여 공의 문하에서 머뭇거리기만 해서 황공했다고 하였다. 3. 관아의 하인이 직접 편지를 가지고 와서 황송(惶悚)하였다. 공무(公務)가 어지럽고 괴로울 것이라 생각하고, 그리운 마음 가누지 못하겠다. 자신은 부모님 모시고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는 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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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윤기섭(尹璂燮) 간찰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之二月五日 尹璂燮 壬之二月五日 尹璂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941 1902년 2월 5일에 사제 윤기섭이 가천의 사돈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생활을 대략 알려준 간찰 1902년 2월 5일에 사제(査弟) 윤기섭(尹璂燮)이 가천(可川)의 사돈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생활을 대략 알려준 답장 편지이다. 피봉이 있다. 2월에 아드님이 직접 편지를 가지고 와서 위로가 되었다고 하고, 형제분과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어버이는 다행히 편안하신데, 맏형이 아프셔서 여러 지방의 약이 되는 음식을 부수적으로 먹고 있다. 일간 나아가 뵈올 계획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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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윤기섭(尹璂燮)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壬寅二月五日 尹璂燮 壬寅二月五日 尹璂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941 1902년 2월 5일에 사생 윤기섭이 양가의 가족 안부를 여쭙는 간찰 1902년 2월 5일에 사생(査生) 윤기섭(尹璂燮)이 가천의 사돈댁에 보내 양가의 가족 안부를 여쭙는 편지이다. 사돈의 안부를 여쭙고, 자신은 어버이께서는 겨우 편안하시고, 형님은 치발(致發)한 지 오래되어 앙모하는 마음 더욱 간절하다. 며느리이자 자신의 딸이 무탈하다니 매우 다행이고, 아드님은 공부를 부지런히 하여 대성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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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나수열(羅壽烈)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二月初四日 羅壽烈 李敎成 丙子二月初四日 羅壽烈 李敎成 전라남도 장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789 1936년 2월 4일에 외종질 나수열이 낙상하여 다친 왼손이 낫지 않고 있으며 조카와 함께 인사하러 갈 것이라는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6년 2월 4일에 전남 장성군 삼계면(森溪面) 수옥리(水玉里)에 사는 외종질 나수열(羅壽烈)이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용암리(龍巖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공을 배사(拜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서글픈 마음이 든다고 하고 조섭하는 체도가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외종질 자신은 집에 도착하였으며 지난해 말에 낙상하여 다친 왼손이 지금까지 낫지 않고 있다고 하였다. 조카가 설을 지낸 뒤에 인사도 하고 문병(問病)도 할 겸해서 이달 열흘 내로 필시 나를 보러 올 것인데, 권유하여 열흘 내에 함께 나아갈 것이니 이렇게 헤아려 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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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이정순(李正淳) 등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庚申六月十日 李正淳 李百榮 庚申六月十日 李正淳 李百榮 전라남도 보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20년 6월 10일에 이정순(李正淳) 등이 형재(亨齋) 선생의 묘표를 새로 만드는 일에 관한 내용으로 이백영(李百榮)에게 보낸 간찰 1920년 6월 10일에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운곡리(雲谷里)에 사는 이교천(李敎川), 이정순(李正淳), 이용순(李龍淳) 공동 명의로 경남 창원군 북면(北面) 고암리(高岩里)에 사는 이백영(李百榮)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형재(亨齋) 선생의 묘표(墓表)를 새로 만드는 일은 실로 수백 년 동안 행하지 못했던 성대한 일인데 여러 종씨(宗氏)가 유독 힘써 노력함에 지극히 흠탄(歆歎)하며, 자손 중에 누구인들 우러러 사모하여 정성을 다하지 않겠는가마는 그중 한둘은 아직 자세히 알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은 이러한 일을 스스로 헤아릴 수 없어 교성(敎成)에게 전송하였다. 여러 종중에서 합의(合議)하여 자손들이 한없이 봉양하게 해야 한다. 자신들의 성품은 고아하고 반듯하여 조금이라도 깨끗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더럽혀질 것처럼 여겼기 때문에 남과 부합되는 일이 적었다. 의론한 것이 어긋나는 일이 반을 넘지 않으나 준공(竣功)에 이르러 결함이 아닌 결함과 결함이 있는 결함을 어찌 논할 수 있겠는가. 이번 우천 관계로 도로가 위험하고 끊어져 소식이 이와 같이 지체하게 되었으며, 문중에 안배하여 부칠 것이니 받는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상세하게 회답해 달라고 하였다. 교천과 정순은 이름 아래에 날인하였다. 형재 선생은 성주이씨 이조년의 증손자 이직(李稷, 1362~1431)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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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언(粹言) 고문서-시문류-문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모년 미상인이 성인과 군자 등의 도량에 대해서 논한 수언 모년 미상인이 성인과 군자 등의 도량(度量)에 대해서 논한 글로, 말미에 '수언(粹言)'이라고 썼다. 무릇 사람들이 논변(論辨)에서 곧장 자기 말을 하면서 이기기를 구하는 것은 함용지기(含容之氣)가 없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식견과 도량이 좁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성인(聖人)의 도량은 타고난 것이며, 군자(君子)의 도량은 학식에 의한 것이며, 그 아래는 강이나 바다 같은 도량, 종정(鍾鼎), 부곡(釜斛), 두초(斗筲)만한 도량이 있는데, 오직 도를 아는 자는 배워서 넓혀가니 아는 만큼 넓어진다고 하였다. 그렇지 못하고 자기의 도량에 넘치는 일이 있게 되면 마음이 움직이게 되는데, 중국 삼국시대 위나라 등애(鄧艾)는 촉나라를 이기고 마음을 움직였고, 진(晉)나라 사안(謝安)의 '기뻐서 나막신굽이 부러진 것도 몰랐다(折屐齒).'는 고사도 마음이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하고, 술 취한 자가 더욱 공손해지고, 부귀(富貴)한 자가 지나치게 겸손한 것은 술의 힘 또는 부귀에 의해 마음이 움직인 것이라고 하였다. 율곡선생의 ?성학집요(聖學輯要)?에서 인용한, '함용지기(含容之氣)가 없는 것'에 대한 정자(程子)의 답변에 유사한 내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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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나수열(羅壽烈) 간찰(簡札) 4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亥十月初四日 羅壽烈 李敎成 乙亥十月初四日 羅壽烈 李敎成 전라남도 장성군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789 1935년 10월 4일에 외종질 나수열이 김상두 집안의 17세 규수를 소개하고 선을 볼 날짜와 장동의 혼처에 대해 논의하고자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5년 10월 4일에 전남 장성군(長城郡) 삼계면(森溪面) 수각리(水閣里)에 사는 외종질 나수열(羅壽烈)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용암리(龍巖里)에 사는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삼가 부모님을 모시고 생활하는 체후와 집안 모두 편안한지 안부를 묻고, 외종질 자신은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고 하였다. 역전(驛前)에 사는 종증손이 어린데 무슨 병이 들어 생사를 알 수 없으니 통탄스럽고 염려가 된다고 하고, 두 번째로 몸소 김길중(金吉中)의 집에 가서 여러 가지를 말하였으나 단연코 듣지 않으니 이것도 어쩔 수 없다고 하였다. 자신이 사는 장성군 북이면(北二面) 신팽리(莘伻里)의 김상두(金相斗) 집에 규수가 있는데, 나이가 17세로 우산(牛山) 안자수(安自秀)씨 외종(外從)인 주서(注書)의 사촌 동생이라며 이달 11일 안에 선을 본 뒤에 김상두도 자신의 조카를 만나볼 것이니, 선을 보는 기일을 완전히 정하여 미리 자신이 있는 곳에 날짜를 보내주면 그날 장성역(長城驛)에 도착하여 기다릴 것이라고 하였다. 장동(長洞) 혼처(婚處)는 어떻게 정해졌는지, 수산(水山) 한익(漢翼) 형의 손주도 결정하였는지 묻고, 이것을 형제분이 서로 상의하여 확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장동의 숙부에게 각각 서찰을 쓰지 않았으니 알려주라고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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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이당(李鐺)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甲戌陽月念八日 李鐺 李敎燮 甲戌陽月念八日 李鐺 李敎燮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823 1934년 10월 28일에 재종질 이당이 주간하는 일의 자본 문제, 지남철 조각일, 혼처, 종약(腫藥) 등의 내용으로 이교섭에게 보낸 간찰 1934년 10월 28일에 대전역(大田驛) 앞 춘일정(春日町) 2정목(丁目) 이기세(李起世) 방에 사는 재종질 이당(李鐺)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장동리(長洞里)에 사는 이교섭(李敎燮)에게 보낸 간찰이다. 글씨가 탈색되어 매우 흐린 편이다. 두 달 동안 소식이 막혔던 중에 갑자기 보내주신 편지를 받고 삼가 감사하고 위로되는 마음 그지없으며 고요한 중에 체후가 편안함을 알았다는 등의 안부를 전하고, 재종질 자신은 더욱 수고로운 가운데 주간(主幹)하는 일이 자본이 적은 이유로 공비(公費)를 제공하는 것이 한탄스럽다고 하였다. 지남철(指南鐵)을 조각하는 일과 지남철의 품질을 가려 시가(時價)에 따라 2건을 부탁하는 것이 어떻겠는지 묻고, 혼처는 연산(連山) 김용기(金容基) 집안으로 일가의 반벌(班閥)이고 황강(黃岡) 이하 칠현을 배운 소몽조(所蒙祖)이며 규수는 나이 18세로 매우 아름답고 그 집안은 옛날 풍속을 지키는데 다만 소빈(素貧)하다고 하면서, 만약 300원을 보조하면 혹 잘 소개하겠다고 하였다. 종약(腫藥)을 걸러서 보낸다는 내용도 있다. 피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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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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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추노문서(推奴文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문중의 비적(婢籍)에서 벗어난 여자종에 대해 하소연하면서 찾아서 추봉하고 추급하라는 추노문서 문중에 탈비(脫婢)한 여비에 대하여 하소연하면서 찾아서 추봉(推捧)하고 추급(推給)하라는 문서이다. 8대조(八代祖)부터 조고(祖考)까지 투매(偸賣)의 폐단이 있어 남은 것은 다만 11두락(斗落)뿐이어서 수십 년 지내던 봉향(奉享)도 못할 정도로 염려가 되고 있다면서 그동안의 쇠락하게 된 과정을 기술하였다. 가뭄으로 산지기의 결역(結役)도 못주어 결국 다른 마을로 가버릴 때에, 선산 묘지의 결복(結卜)에 선공후사의 의리를 발휘하여 문중의 전답을 헐값에 팔아 납부하였고, 여자종들이 환퇴하였을 경우에 시천(詩川)‧가천(可川)‧목사동(木寺洞)은 각각 50냥씩 할당하였다. 그런데 제동(齊洞)의 이학삼(李學三)이 이를 몰래 막고 희롱하는 것을 조종하였다. 게다가 가세가 탕패(蕩敗)하는 것을 문중에서 억눌렀는데 여자종 네 명의 모녀가 이백 냥을 2명의 여자종에게 부탁하여 보성(寶城)의 땅을 차례로 빌려서 비적(婢籍)에서 빼려는 마음으로 투매를 하였다. 목사동(木寺洞) 이인순(李仁淳) 집에서는 아이 때부터 이십여 년 된 문노가 4, 5대 유래한 노비이건만 자신의 호적의 끝자락과 대명률(大明律) 전답(田畓) 문기(文記)에 함께 기록된 것 외에 다른 것은 없어서 찾지 못하니 억울하다고 하였다. 이에 이학삼 쪽의 100냥과 이자 1백 40냥과 이인순 쪽의 매비 200냥과 이자 1천 8백 냥을 일일이 추급(推給)하여 주고 잡아서 엄히 징치하며 본전의 이자를 일일이 추봉하여 공연히 잃어버리는 탄식이 없도록 할 일이라는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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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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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05년 문철행(文哲行)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乙巳至月壹日 文哲行 乙巳至月壹日 文哲行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1905년 11월 1일 문철행이 병으로 약물 치료를 하는 일과 부탁한 담배를 잊지 않고 신경 써 주어 감사하다는 간찰 1905년 11월 1일 문철행(文哲行)이 병으로 약물 치료를 하는 일과 부탁한 담배를 잊지 않고 신경 써 주어 감사하다는 편지이다. 간찰의 오른쪽 일부가 잘려져 나가 관련 내용이 미상이다. 장시간 약물 치료를 하면서 스스고 돌아보며 슬프지만 오직 다행인 것은 맥박이 제비가 노래하고 참새가 폴짝거리듯 맥박이 빨라졌다. 부탁한 담배[南靈]를 잊지 않고 마음을 써 주어 감사하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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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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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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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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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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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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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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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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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36년 김택경(金澤卿) 간찰(簡札) 5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丙子九月二日 金澤卿 李敎成 丙子九月二日 金澤卿 李敎成 강원도 강릉시 정읍 성주이씨 이유원 후손가 성주이씨 이정순 HIKS_OD_F1050-01-230773 1936년 9월 2일에 김택경이 재앙이 많고 수재(水災)가 참혹한 현재의 상황, 선향에 가는 일, 여러 일의 회답 등의 내용으로 이교성에게 보낸 간찰 1936년 9월 2일에 강원도 강릉군 성산면(城山面) 금산리(金山里)에 사는 동생 김택경(金澤卿)이 전남 보성군 문덕면(文德面) 가천리(可川里)에 사는 대형 이교성(李敎成)에게 보낸 간찰이다. 피봉이 있다. 여름 사이에 몇 차례 안부를 물었으나 회신이 없어 암울하다. 올해는 재앙이 많고 흉사가 심한 중에 수재(水災)가 더욱 참혹하여 생명이 엄몰(淹沒)되고 토지가 파손된 것을 형용하여 말할 수 없으니 큰 재난이라 말할 만하다. 귀하가 계신 곳은 피해가 어떠한지, 화종(華宗)의 여러 댁들은 혹 심하게 피폐해지지 않았는지 묻고, 자신이 사는 곳은 집안이 파괴되고 토지가 손상되어 모두 함께 근심하고 있으나 생명의 피해가 없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였다. 선향(仙鄕)에 다시 가는 것은 마음에 절실하나 재해가 이와 같아 물정이 흉흉하고 두려워서 어느 겨를에 가서 만나기를 도모하겠느냐고 하였다. 가을 추위에 집안의 안부를 묻고, 봄 사이에 말한 여러 종류의 일들은 잘 헤아렸는지 부디 회답으로 한 번 말씀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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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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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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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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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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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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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前惠覽 日來侍餘體度泰安 兩堂大小諸節而一安否仰慰慕願聞之耳 然而第位土事는 今春分與貴君同返寶城ᄒᆞ야 其門中一曰文題形便을 볼지라도 結局은 敎雄反對에因하야 訴訟할 作定은 各門中이 다 된 쥴노生覺ᄒᆞ고 又는 錦變氏家의셔 再昨年分訴訟ᄒᆞ야 位土移轉手續ᄒᆞ기로 結議書을 作成ᄒᆞ야 近百餘名承諾 証印도 在於手中ᄒᆞ고 又는敎成兩家의셔 某之中 同座席ᄒᆞ야 敎成出言中一曰, 訴訟得判ᄒᆞ야 位土移轉件 二曰亨齋公祀版奉安件 三曰譜事也云ᄒᆞᆫ 面證도 되고 上京時 우리派는 勿論이온나 各相逢之族마락訴訟結處을 當ᄒᆞ기로 不可不形便보아不如할時외는 印章通信ᄒᆞ기가 不便及日字가遲滯되온니 若擧訟이 될 時는 印造改刻ᄒᆞᆫ다고唐告ᄒᆞᆫ일도 잇기로 卽時上京ᄒᆞ야 不如ᄒᆞ면擧訟爲計언니 맛참 有身病ᄒᆞ고 又는 敎雄處間 비밀히 調査則別返無理故今新後谷■(城)〔寶〕兩門會을 逐於結處爲計矣니 其月分부터 敎雄間行的이 變動되고 譜所往來ᄒᆞ야 處事凡節並前日片紙와 如히 우리 谷寶兩門中은前道의 餘望이 無一片켸된니 憤心히 莫甚ᄒᆞ야 東取西貸ᄒᆞ야 着手後 通知ᄒᆞ야도 無放할쥴로生覺인바 陰凶ᄒᆞᆫ 敎欄等외계 치소을 바든니 利害는 勿論하고 痛憤痛憤이라 ■故로 初也외도 凶凶ᄒᆞᆫ 敎欄도 此有의 名議을 두랴ᄒᆞ얏든니 譜所鍾浹■〔及〕某某中의셔 監하기로 去六七月分 寶城大淳氏와 同上京ᄒᆞ야 大淳氏는 獨歸下行켸ᄒᆞ고 自己는 敎雄處의셔 一日宿泊ᄒᆞ야 大淳氏보텀 一日後下行인니 敎欄은 고만두라고덜 ᄒᆞ기로 爲疑ᄒᆞ야 敎在는 未覺ᄒᆞ고 敎欄만 빼다가 오쥭지산은 內容証明書을 다 바다보오니 可笑可笑耳 然而爲情心生覺ᄒᆞ면 時急時急히下行ᄒᆞ야 谷寶門會을 開祝ᄒᆞ고 敎欄敎在同席의셔 世世面爛後 其等之也을 累白을門中의셔 善懌ᄒᆞ야보고십을 生覺은 有大ᄒᆞ온나 云流行比說의 大小을 勿論ᄒᆞ고 謀事槐原이 速成敝也라ᄒᆞ는 量을 證定ᄒᆞ온니貴君은 極力을다ᄒᆞ야 此書類等印章을門中외 共抱ᄒᆞ고 印章은 各各分給ᄒᆞ올소셔ᄒᆞ얏사온니 그리알고 餘介寶城印章을보ᄂᆡᆯ젹의 此事實이나 書札ᄒᆞ야보내시옵소셔今年家運이 不吉ᄒᆞ야 生活難而莫甚ᄒᆞᆫ中水割의 不足ᄒᆞ야 하지안는 人生으로 고연는門事의 入添되야 生計의 滅亡으로부터 門中ᄭᅡ지 불난을 ᄭᅵ치계 ᄒᆞ온니 萬萬罪悚홈니 不測量이라 鬱鬱ᄒᆞ기로 餘不備ᄒᆞ온니 或而行員이 上京ᄒᆞ시덜라도부ᄃᆡ 敎欄門에셔 上京이며 우리谷城셔는陰凶의ᄲᅡ지고 말덧ᄒᆞ온니 形便沓沓書耳今月 八日 叔人 百淳 拜拜書類는 取消ᄒᆞ야 付送ᄒᆞ는 中 印紙는 或而半額이라도죰건저볼가ᄒᆞ야 辯護士에계주럿쓴나 法院消除印ᄭᅡ지 되야 飛去西陽斷이中上入九斗耳付送書件記一. 訴狀取消件二. 土地台帳謄本 再昨件은 無用紙物되야 此本訴狀의 提出件과 合二件三. 敎花가 ᄒᆞᆫ 內容証書 一件四. 辯護士이 着手金領收証 一件以上此書類는 門中의셔 輪示ᄒᆞ신 後 必히 返送ᄒᆞ시되門中委任狀一通만 ᄒᆞ야 보ᄂᆡ 쥬기을 千萬切仰切仰耳 委任狀은 門中의셔 印章을抵抵히 送ᄒᆞ기 不便ᄒᆞ니 貴族니 善懌ᄒᆞ야僞造私用할라는 委任書의 宗印下捺ᄒᆞᆫ 委任一張만 보ᄂᆡ 쥬시면 敎欄及敎花門외 此本損割倍償ᄭᅡ지 左右間判結코자 ᄒᆞ옴나이다ᄒᆞ고 門中의 말삼ᄒᆞ옵소셔此本損割金은 左와 如홈一. 着手損實金 一百六十圓也二. 三次京城來往旅費 食費 判事交接費 四五十圓의 達ᄒᆞ고三. 土地台帳謄本 往來費 迄十一円二十戔以外雜費 此致ᄒᆞ고 現在損割가以上인니 他債從當가 莫甚이라略此書類가 敎欄家가면 안쥬기가 슈일터닌이 쥬의ᄒᆞ야 보ᄂᆡ 쥬옵소셔片紙도 各派로 다 ᄒᆞ얏ᄂ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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