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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校中留羅生員 掌議 宅 回納.(피봉_뒷면)林谷 曺泰煥 謝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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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沙坪) 간찰피봉(簡札皮封)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沙坪 羅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사평에서 보암의 나생원 댁에 보낸 서간의 피봉. 사평(沙坪)에서 보암(寶巖)의 나생원(羅生員) 댁에 보낸 서간의 피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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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신원식(申元植)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申元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4년 5월 3일, 신원식이 상대방 질녀의 혼인을 위해 류씨(柳氏)를 소개하며 질녀 사주를 보여 줄 수 있느냐고 청한 서간. 1914년 5월 3일, 신원식(申元植)이 상대방 질녀의 혼인을 위해 류재영(柳在瑛)을 소개하며 질녀의 사주를 보여줄 수 있는지 물은 서간이다. 지난번에 편지를 받고 위로되었다며 요즈음 당상(堂上) 어르신과 상대방, 그리고 가족들이 잘 지내는지, 벼농사는 잘 자라는지 묻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자신은 부족함이 날로 심해져서 도를 얻어 들을 수 없다고 겸양하고 다만 가족들은 모두 잘 지내니 다행이라고 했다. 주 내용은 상대의 질녀(姪女)의 혼인을 알아보기 위해 생년월시(사주)를 알려주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혼주(昏主)인 명렬(命烈)과 자신은 같은 곳에서 공부하는 학우(學友)로 본래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하지만 요즈음은 면접을 보고도 중지하기도 하는 일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모내기를 마친 후에 한번 먼저 보아도 무방하니 진안군청(鎭安郡廳)에 가서 농산계(農産係)에 유재영(柳在瑛)이란 사람을 물어 보라고 했다. 류씨(柳氏)는 우리나라의 거족이며 이 집안은 곡성(谷城)의 용성(龍城)에 들어와 5~6대가 되었다고 하고 문헌과 인물로 다른 씨족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 절대로 인계(仁溪)의 권문가는 아니지만 팔덕(八德)의 강(姜)씨와 맞먹는다고 했다. 추신에는 전주(全州)의 강(姜) 모씨와 박(朴) 모씨도 모두 그 젊은이를 맘에 두고 있음을 재차 고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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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通諭事 伏以 故判中樞松窩鄭公 以儁偉之姿通敏之才 早遊雲坪宋先生之門 卒業爲己之學 又請益于金漢湖先生 精於性理 嫻於禮說 達於文辭 與宋性潭李鏡湖朴謙齋諸賢 最相善資 切偲而見 推許其餘從遊 亦皆當世鴻碩 則可見師友之盛趨向之正 而繡使以孝友純至禮 識精邃之目 再度啓薦特除寢郞 公以疏辭旌招曰 讀書修身 士子本分 無實資名 誤蒙聖恩 至愚極陋何敢抏顔於天陛之下 云云 晩年 召對前席 陳忠讜啓沃之言 則健陵盛除上曰 汝年齡隆高 宜除壽爵 特加嘉善因命留侍經筵 公又辭以老昏不堪 遂具箚進聖學十圖 上極加稱獎 陞判中樞 亦可見聖朝禮遇之隆也 伏地成一絶以獻曰 勤越天顔 志願新神明聖 至老昏臣 崇恩報答 無多日 但祝南山萬壽春 因乞骸還鄕 寓樂林泉 日與學者疑問答解 每月朔 行鄕飮禮 講太極圖說 此乃公一生踐儀之槪也 有遺集草藁六冊及儀要補遺上編 而子孫甚零替 常不過三數人 家勢隨而殘窶 汨於生計 遺集尙未脫藁 或有紙毛而難記處 此不啻後昆之痛迫 凡我人士之閗公之行 見公之文者孰能不䝴恨興喟乎 今至五世孫煥琫甫深懼其愈久愈泯 切欲校印幾帙略頒粗傳 而其資赤乏 有志莫遂者 復有年矣鄙等 旣在同郡 稔知其由 彛性所激 不勝慨惜 公議同辭 將修一契 而補其資 玆以仰告 伏願僉尊 一齊和應 俾成煥琫甫之志 而不朽松窩公之名 則迨此陽錮之會庶或爲扶持斯文之一端 ■■■(美規也) 成事也特軫涵亮 千萬幸甚年月日 褒忠祠書設會中 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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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 허전(許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許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묘년 2월 28일, 생 허전이 자신의 일정을 전하고 서로의 행차 일정과 여러 가지 일을 의논하기 위해 방문할 계획이라는 등의 내용을 전한 서간. 을묘년 2월 28일, 생(生) 허전(許鎸)이 자신의 환향(還鄕) 일정을 전하고 자신이 들은 영위(營衛) 및 무언가를 바꾸는 일 등에 관한 소식을 전하고 여러 일을 의논하기 위해 방문할 계획임을 전하는 내용으로 쓴 서간이다. 헤어진 뒤로 소식을 알 길이 없어 근심되었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송경화(宋敬華), 김명보(金明甫)가 멀리서 와서 편지를 전해 주어 잘 지내고 있음을 알아 기뻤다고 한 후 다만 당신의 아픈 곳이 내내 같다는 말을 들으니 걱정이라며 약을 잘 먹어 힘써 조리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고 했다. 자신은 그럭저럭 편안히 지낸다며 멀리서 생각해준 당신의 덕택이라고 하였다. 주요 내용은 영위(營衛)의 일을 지금 송경화에게 들으니 저간에 뜻과 같지 않은 것이 있다하니 바랄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며 모두 운명이라 누굴 원망할 수 없다고 했다. 과거의 일은 내일 상세히 알 수 있으니 우선은 기다리고 송·김 양형은 먼저 간다고 했다. 내일은 백담(白淡)을 시켜 말을 끌고 내려가게 하고 내일 모레면 내려 갈 곳에 당도할 것이니 기다리라고 했다. 만약 당신이 오시지 않는다면 자신은 직접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 물건을 바꾸는 일에 대해서는 듣자니 분통이 터진다는 것, 여러 가지 문제로 몸소 상의하러 가 볼 계획이라는 것, 과거 방문(榜文)이 이미 나왔는지 물으며 기대하고 있다는 것, 둔어(遯魚)씨와 익서(益瑞)씨는 평안한지, 종이가 없어 각기 안부편지 하지 못하니 소식을 전해주기 바란다는 등의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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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호(姜在皥)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姜在皥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편지를 받은 날에 제 강재호가 상대방의 학문 진전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편지를 받은 날에 제(弟) 강재호(姜在皥)가 상대방의 학문 진전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이다. 최근 공부가 전진하고 있다니 기쁘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추사공(秋史公)이 말하기를 글씨 한 가지, 한가지의 곡조 등 작은 기술을 가지고 전심을 다하여 공부하면 성인의 문하에서 격치(格致)를 배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이런 말 등을 인용하여 군(君)으로 지칭하는 상대에게 진심을 다하여 열심히 공부할 것을 면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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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호(姜在皥) 서간(書簡)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姜在皥 李升由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편지를 받은 날에 제 강재호가 이승유 형에게 내가 그 쪽으로 가서 토의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며 형이 자신쪽으로 오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쓴 서간. 편지를 받은 날에 제(弟) 강재호(姜在皥)가 이승유(李升由) 형에게 내가 그 쪽으로 가서 토의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며 형이 자신쪽으로 오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쓴 서간이다. 그동안 격조했던 소식에 많이 그리워하여 고통스러웠던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편지를 시작했다. 편지를 받고 봄에 상대가 어른 모시고 잘 있음을 알았다고 인사하고 자신은 어제 석재(石齋)에 도착하였고, 돌아가는 길에 한번 만나 상의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는데 감히 날아오시기를 바란다고 하며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믿겠다고 하였다. 나머지는 서로 만나 토의하기로 하자는 인사로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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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해년 장성준(張成浚) 등 등장(等狀)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張成浚 康津縣監 <押> □…□ 3顆(7.0x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557 계해년 3월에 장성준 등이 강진현에 올린 등장 계해년 3월에 장성준 등이 강진현에 올린 등장이다. 이들이 거주하는 옴천면(唵川面) 개산리(盖山里) 뒷산에는 예로부터 영험하게 여겨진 제봉(祭峯)이 있어 주민들이 매년 여기에 제사를 지내왔다. 그런데 지난 정미년 3월에 누군가 여기에 투장한 뒤로 변고가 잇달아 일어나자 촌민들이 놀라 관에 정소하여 즉각 파내 옮겼다. 그렇게 안심하고 있던 와중 생각지도 않게 같은 고을 오추동(梧秋洞)에 사는 박치언(朴致彦)이 이번달 초 9일 이곳에 또 늑장(勒葬)을 하였다. 이후 여러 사람들이 갑자기 병이 나서 사경을 헤메는 등 변고가 다시 일어났으므로 이 사실을 조사하여 무덤을 파내 옮길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이다. 강진현에서는 도형(圖形)을 살펴본 뒤 원고와 피고를 관에 대령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등장(等狀)은 여러 사람들이 연명(聯名)하여 관에 청원이나 탄원할 일이 있을 때 제출했던 소지류(所志類) 문서의 일종이다. 소지류 문서에는 등장 외에도 상서(上書)·발괄(白活)·의송(議送) 등이 포함되었고 각 문서들은 발급 주체나 수취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서식적 차이가 있었다. 한편 도형은 산도(山圖)라고도 부르는데, 산의 형세를 그린 그림으로 풍수지리적 관점에서 건축물이나 묘소의 터를 정하기 위해 작성하거나 산송에서 매장된 묘소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증거물로서 작성되었다. 관에서는 접수한 소지류 문서와 산도의 여백에 제사(題辭) 혹은 뎨김[題音]이라고 부르는 처분을 내렸다. 제사가 기재되었다는 것은 관의 공증을 거쳤다는 의미이므로, 백성들은 제사가 기재된 문서를 소송 자료 또는 권리나 재산 등을 증빙하는 자료로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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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채규(都埰圭) 시(詩) 고문서-시문류-시 都埰圭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도채규가 누군가의 61세 회갑을 맞이하여 축하하는 내용으로 지은 수연시 1수. 성주(星州) 도채규(都埰圭)가 누군가의 61세 회갑을 축하하는 내용으로 지은 7언율시 1수이다. 운자는 년(年), 연(筵), 선(仙), 연(連), 면(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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化民幼學金坤李彦衡金箕奭等謹齋沐再拜上書于城主閤下伏以賓興三物周之盛制名聞一藝漢之明詔也而今我 聖朝亦一周漢之治也則苟有孝友賢良之實蹟其在今古不易之公議那無興三聞一之典乎本郡士人鄭溵弼系出東萊即藝文館應校〖敎〗公諱承甫之十六代孫大護軍諱絪之十五代孫吏曺判書諱昇之十四代孫禮曺判書諱可宗之十三代孫吏曺判書 賜號楓川諱守弘之十二代孫兵曺判書諱傑之十一代孫生員進士諱孝孫之十代孫參奉公諱確之九代孫甲山府使諱緝之八代孫而淸䆠名閥道義文章継世傳家斯人也天挺性度仁孝勤儉自在齠齡入孝出恭之道自悟自警不私淑於諸人是可謂良知良能之孝也賢乎晝以耕夜以讀可肩於隱淮之董生食其貧樂其道仰述於處巷之顔賢杜門守拙不求名譽至於事親晨昏定省朝夕供饌靡不庸極悅志順已一以養志侍湯累年不離病側甞糞之誠扇枕之節無減於黔婁黃香矣及其丁憂也泣血靣墨哀毁逾制送終襄奉一遵禮制行素食粥三年如初望朔省掃山磎成路行人指其廬曰孝子廬也樵兒指其路曰孝子路也年將七旬每當先代與考妣之忌日前三日齋沐後三日行素遑遑望望復如袒括之日已成家庭之訓謨平日心性口不道惡言足不入亂方林下結搆捿息於山水之間鄕隣咸稱處士翁也然則以若六行六德并美之隱淪君子尙今無聞果爲公議之缺望故玆敢摭宲仰陳于 孝理之 閤下伏請使此純孝篤行轉報 宲軒㧞例 褒彰千萬祈恳城主閤下丙子二月日化民幼學金坤 李彦衡 金箕錫 宋麟浩 黃練吉 金煥昌 羅守燁 崔慶奎 柳秉源 金榮澤 尹滋福 鄭海斗 朴致陽 吳琪煥 李喆信 沈冝明 金載鎬 權亨晋 金琪洛 李章漢 崔喆秀 李㑹益 金錫浩 趙相潗 宋鳳㑹〈題辭〉卓異之行聞甚嘉商從當處分向事卄一日[官印]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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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이최선(李最善)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最善 全羅都巡察使 使[着押] 3顆(9.4×9.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989 1877년 1월에 전주도회소 유생 진사 이최선·최준익 등 36인이 전라도순찰사에게 고부군에 사는 선비 정은필의 지극한 효성과 돈독한 실적을 조정에 알려 그의 행실을 드러내고 등용시켜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77년(고종 14) 1월에 전주도회소 유생(全州道㑹所儒生) 진사 이최선(李最善, 1825~1883)·최준익(崔俊翼) 등 36인이 전라도순찰사에게 고부군(古阜郡)에 사는 선비 정은필(鄭溵弼)의 지극한 효성과 돈독한 실적을 조정에 알려 그의 행실을 드러내고 등용시켜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정은필은 충효의 가풍이 있는 명망의 집안으로, 어렸을 때부터 어버이를 섬기는 도리와 어른을 공경하는 법도를 스스로 깨우쳤다. 15살 즈음에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낮에는 농사짓고 저녁에는 베를 짰으며, 겨우 몇 두둑 전답을 얻어 늙은 어버이에게 의식(衣食)을 봉양하는 데에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는 『맹자』에서 말한 '하늘의 운행을 쓰고 땅에서 나는 이익을 이용한 효도'이다. 20살 즈음에는 어버이가 여러 해 동안 병을 앓았는데 그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똥을 맛보는 정성과 잠자리에 부채질하는 도리는 옛 효자의 실적(實蹟)에 못지 않았다.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피눈물을 흘려 낯빛이 검어지고, 슬픔으로 몸이 상한 것이 예제보다 지나쳤으며, 시묘살이 3년 동안 소식(素食)을 행하고 죽을 먹으며 담사(禫祀)까지 잘 마쳤다. 지금 70세가 되어가는데도 초하루와 보름에 성묘를 다녀 산골짜기에 길이 만들어졌고, 선조와 부모 기일 때마다 소식과 죽을 먹는 것을 초상 때처럼 행하였다. 근검 절약하고 말과 사특한 생각을 매우 조심하며, 명예를 피해 은둔하고 안빈낙도하는 그를 사방의 이웃 고을에서 모두 '영주 처사옹(瀛州處士翁)'이라 일컬었다. 정은필은 집안을 다스리고 자녀를 훈계할 때 모두 주자의 『가훈(家訓)』을 따라 덕을 숭상하였다. 또 종친을 돈독히 대하고 곤궁한 자를 구휼하였으며, 보답하지 못할 곳과 하소연할 곳이 없는 자에게 은혜와 덕을 베풀어 향촌에서 일제히 논의가 일었다. 전주유향소 유생들은 그의 순수한 효성과 독실한 행실을 듣고서 한 성에 살고 있는 입장에서 이 일을 침묵할 수 없었다. 이에 관찰사에게 은둔한 정은필의 실적을 조정에 계달(啓達)하여 그 행실을 드러내고, 그를 발탁시켜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를 접수한 전라도순찰사는 1월 28일에 '뛰어난 행실이 매우 가상하다. 일의 중대함을 계문(啓聞)할 것이니 더욱 공의(公議)를 기다릴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최선(李最善, 1825~1883)은 조선 후기 유학자로 본관은 전주이고, 자는 낙유(樂裕), 호는 석전경인(石田耕人)이다. 추성군(秋城守)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규형(奎亨)이고 어머니는 상산김씨(商山金氏)이며, 담양에서 살았다. 15세에 아버지의 친구인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생이 되어 40여 년 동안 받들었다. 1859년에 사마시에서 2등으로 합격하여 증광진사가 되었고, 1864년에 초시에 합격했으나 복시에서 문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응시하지 않았다. 1874년에 문과에 불합격한 뒤 과거시험을 단념하였다. 그는 늘 현실문제에 관심을 갖고 1862년 진주민란 때에 「삼정책(三政策)」으로 상소하였으나 전달되지는 못하였으며, 1866년 병인양요 때에는 격문을 보내 의병에 직접 참여하는 등 주리설을 바탕으로 한 위정척사를 실천하였다. 전라남도 장성군의 고산서원에 배향되었으며, 저서로 『석전집(石田集)』 4권 2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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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內儒生進士李最善金源錫幼學林鳳相等謹齋沐再拜上書于巡相閤下伏以鄒夫子不云乎事孰爲大事親爲大守孰爲大守身爲大盖夫事親之孝守身之行倂是相須而俱備者垂右從今實所罕見鮮聞而事其親也竭力誠孝守其身也行義篤敬自少至老捿息於山水之間杜門蔵蹤不求名譽尙無闡發於 縉紳章甫之議者豈非 昭代興孝掦善之一大欠典乎道內古阜郡士人鄭溵弼系出東萊卽藝文館應校〖敎〗諱承甫之十六代孫大護軍諱絪之十五代孫吏曺判書諱昇之十四代孫禮曺判書諱可宗之十三代孫吏曺判書 賜號楓川諱守弘之十二代孫兵曺判書諱傑之十一代孫生員進士諱孝孫之十代孫參奉諱確之九代孫甲山府使諱緝之八代孫而忠孝家風名閥世德東 朝望門南土表族斯人也自在孩提天賦仁孝節約事親之道敬長之節自悟自警比諸良知良能之禀質矣稍至成童家貧親老全無菽水之供晝出耕耘夜入織梱僅得數畒之田不怠於口軆之奉此誠鄒書之所謂用天之道因地之利孝也㦲乃至弱冠之餘其親沉病累年不離病側甞糞之誠扇枕之節無減於古孝子之宲蹟及其丁憂也泣血墨面哀毁逾制廬墓三年行素食粥至于禫祀始能克終方今年將七旬望朔省掃山磎成路每當祖先考妣之諱日行素食粥復如袒括之日大矣㦲孝之一字苟是百行之源故小少老大勤儉節約畏人如虎守口如甁防意如城避名遯蹤食貧樂道仰述於顔之陋巷樵山漁水知足安分可扇於董之隱淮松籬竹扉篤老年光不知官門四隣一鄕咸稱瀛州處士翁也且齊家戒子一遵朱夫子家訓尙德㦲若人歟敦宗恤窮樹恩於不報種德於無告是㕥鄕論齊發聞其純孝篤行生等居在一省不可含黙玆敢齊聲仰瀆于 觀察之閤下伏願使此隱淪之實蹟 啓達于 朝闡發其行擢用其人之地謹冐昧畧陳巡相 閤下丁丑正月 日全州道㑹所儒生 進士李最善 進士崔俊翼 幼學宋永采 金必欽 李璟漢 權鴻壽 朴仁萬 李始浩 金漢龍 宋鎭邦 林元相 朴致斌 金堯晙 邊大容 奇晩衍 金永采 尹弘鎭 高錫相 朴景壽 柳秉鉉 鄭昌鉉 丁永斗 羅世燁 趙相旭 進士金源錫 幼學李喆信 金相浩 進士羅時瓚 韓世裕 幼學姜泰永 金枓烈 高時旭 吳永煥 進士宋曦玉 幼學尹滋福 安大榮〈題辭〉卓異之行極爲嘉尙啓 聞体重益俟公議事 卄八日[官印]巡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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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이이두(李以斗)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以斗 全羅都巡察使 使[着押] 3顆(9.2×9.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989 1878년 12월에 진사 이이두·나시찬 등 전라도 유생 18인이 전라도순찰사에게 고부군에 사는 선비 정은필의 지극한 효성과 뛰어난 행실을 특별히 계달하여 은전을 입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78년(고종 15) 12월에 진사 이이두(李以斗)·나시찬(羅時鑽) 등 전라도 유생 18인이 전라도순찰사에게 고부군(古阜郡)에 사는 선비 정은필(鄭溵弼)의 지극한 효성과 뛰어난 행실을 특별히 계달(啓達)하여 은전을 입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정은필은 충효가 있는 유서 깊은 집안과 고관의 후예로 인효(仁孝)하고 근신(謹愼)하는 성품을 지녔다. 어버이가 늙고 집안이 가난하여 낮에는 나가서 농사짓고 저녁에는 들어와서 베를 짰으며, 겨우 몇 두둑 전답을 얻어 조상을 받들고 부모를 봉양는 도리를 실천하였다. 갑자기 어버이의 병이 위독해지자 백방으로 약물을 구하여 성심껏 치료하였으며, 똥을 맛보는 정성과 잠자리에 부채질하는 도리는 황향(黃香)과 검루(黔婁)의 효에 못지 않았다.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슬픔으로 뼈만 앙상해졌으며, 여묘살이 3년 내내 채식하여 낯빛이 검게 변하였다. 장차 70세가 되어가는데도 초하루와 보름에 성묘를 다녀 산골짜기에 길이 만들어졌으며, 부모기일 때마다 안팍으로 목욕재계하고, 초상 때처럼 슬퍼하고 그리워하였다. 젊어서부터 늙을 때까지 천명(天命)을 두려워하고 남의 뜻에 화합하며, 입조심하고 사욕을 굳게 억제하였다. 명예를 피해 은둔하고 안빈하며 만족할 줄 알고 분수를 편안히 여겼다. 자연 속에 살면서 70살 나이에 빛이 나, 사방의 이웃 고을에서 모두 '영주산처사옹(瀛州山處士翁)'이라 일컬었으며, 가정을 다스리고 자질들을 훈육하는 방법으로 옛 성현의 유훈을 따랐다. 이에 군수와 순찰사의 제사(題辭)와 향도(鄕道)의 논의가 예전부터 있었으나 이제야 예식을 갖추고 가려서 다시 아뢰어, 정은필의 지극한 효성과 뛰어난 행실을 특별히 계달하여 뽑아 보고하는 은전을 입게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를 접수한 전라도순찰사는 12월 23일에 '일의 중대함을 계문(啓聞)할 것이니 공의(公議)를 더욱 탐문할 것'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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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寶巖 羅生員宅 入納.沙坪 謹候書.(피봉_뒷면)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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頃奉尙慰, 仰問比令堂上壽體候椒栢保健, 曁定省暇塤箎湛翕印昔益裕, 寶覃枚休,而秧事方張也否. 攢祝慥慥, 不以複嶺疊水有間也. 弟謭陋日甚, 無足奉聞, 而但家口免何, 是可曰此日昇平也耶. 就悚令姪女生年月時, 或可示及, 如何. 昏主命烈之也同學友, 而素不主昏家理氣然于時俗例例以生克論之今日時態面接後止之者, 又不尠矣. 憎之無益, 奈何. 第竢秧了後一番先見無妨, 則往鎭安郡廳問柳在瑛者于農産係如何, 且柳氏我國巨族, 而此家則自谷城入龍城五六代云, 而其文獻也, 人物也, 無讓于某某氏族耳. 絶不是仁溪之權門類, 而傪敵八德姜者也. 日本人已所有九斗落而序居四云耳. 餘爲此, 不備. 統希 頫亮.甲寅午月三日, 申元植 拜拜.再告全州姜某朴某, 俱云傪良柱星已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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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년 정유(鄭鍮)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鍮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해년 12월 6일, 사제 정유가 보낸 서간. 신해년 12월 6일, 사제(査弟) 정유(鄭鍮)가 사돈의 아드님을 보내면서 사돈에게 쓴 안부 편지이다. 지난번 만나 밤에 단란하게 이야기 했던 것은 한 바탕의 성대한 행사였다며 이별하며 슬펐던 마음이 평소의 배가 되었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사돈이 잘 계시기를 바란다고 한 후 자신은 못난 모습이 전과 다를 바 없어 드릴 말씀이 없다는 것, 당신이 아드님에게 돌아오라고 하시니 문득 슬펐다는 말, 언제면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이어 갈 수 있겠느냐며 편지를 쓰고 있으니 마음이 허전하다는 말, 나머지는 인편에게 이야기 듣기를 청한다는 내용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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逢宵團欒, 足爲一場之盛擧, 終別殿耳. 悵黯倍常. ▣審靜候動靜, 連衛神烋, 區區奉溸, 實切于中也. 査弟憒狀, 印昨它無足奉縻. 尊體者 胤郞援例言歸, 旋來悵然, 何當更 奉, 以續淸逋耶. 臨紙冲之. 餘聞便悤悤, 不宣狀禮.辛亥臘初六, 査弟 鄭鍮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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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나득주(羅得周)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羅得周 羅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1년(순조 1) 3월 4일에, 재종제 나득주가 나 생원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와촌 이주와 장례시기를 전하고 자기를 사고 싶다는 의견을 전한 서간. 1901년(순조 1) 3월 4일, 재종제(再從弟) 나득주(羅得周)가 나 생원(羅生員)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와촌(瓦村) 이주(移住)와 장례시기를 전하고 자기(磁器)를 사고 싶다는 의견을 전한 서간이다. 근래 자못 소식이 뜸했다며 그리운 마음이 배가 된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봄에 눈이 내리는 괴상한 날씨에 잘 계신지, 아드님은 함께 공부 잘 하고 있는지 등등을 물었다. 재종제(再從弟)인 상을 치르고 있는 자신은 우환이 겹쳐 오랫동안 돌아가신 부모 곁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며 오늘 저녁에 와촌(瓦村)으로 옮겨 왔다고 했다. 촌사(村舍)를 옮기는 시기는 15일 쯤이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산소도 간신히 정했다며 옥과(玉果)의 청단촌(靑丹村)의 안산(案山)으로 4월 9일에 땅을 파고 13일에 안장(安葬)할 예정인데 여러 가지 일들을 상의할 사람이 없어 힘들다고 했다. 지문(誌文)은 우선은 아직 작성 못했는데 관직의 이력을 상세히 몰라서 우선 후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마침 낙수(洛水)로 가는 인편이 있어서 이에 잠시 편지를 쓴다는 인사로 편지를 마쳤다. 추신으로는 자기(磁器)가 매우 급하니 군정(軍丁)에 바치고서 얼마만큼 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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兄主前 上候疏稽顙白. 近頗阻候, 悠有鬱陶新於此, 奔走哀疚中, 而尙不覺一倍平昔. 伏問春雪乖候寓中氣候, 一向康寧,允侄穩吉課做, 凡百辛酸, 何以 耐遣, 區區伏溯, 不任哀忱. 再從弟罪人一縷頑延, 而憂故鱍疊,久曠守廬, 此何情理, 以今夕移寓於瓦村, 村舍搬寓期, 似在望間矣. 山地周流數郡艱占. 於玉果靑丹村案山. 以四月初九日開井, 十三日安葬, 而凡事范然沒策, 吾家至親, 非不櫛比, 而孤露一身, 相議無人, 猶自焦傷, 此何厄運, 此何厄運. 只自有泪無從而已.誌文姑未搆成. 盖以官職履歷之不得詳考, 而能姑竢後便, 而方欲專伻之際, 適在洛水信便, 故暫此付候. 莣建, 不次疏上.伏惟下察.辛酉三月四日, 再從弟 罪人 得周 候疏.磁器甚緊, 方軍丁供饋, 以磁器從多 貿下, 如何.(背面)梧峙羅 生員 寓下 卽傳納.芝邨 喪家 上候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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拜別以來, 消息莫憑, 愁亂難狀. 卽於宋敬華金明甫爲我遠來, 傳致惠翰, 謹審多少何等欣歡. 第伏審愼節想無添症, 終始一樣云, 貢慮萬萬.餘日尙多服藥之節, 一力善圖若何.生宿食粗安, 莫非遠念之攸及, 是外何幸. 所謂營衛事, 今聞宋敬華言,則這間有不如意者, 存致望之外, 無他道理, 此亦運去之致怨誰. 尤科事明日可以詳知, 故待此, 而未抵京中宋金兩兄, 今將先往耳. 明日則使白淡牽馬下道,則再明日當到 下處爲計, 姑俟之如何. 必無直由此地而下去 下書中, 何如是拖長否.如無 尊駕, 則宜爲直還鄕 節旣在此, 何敢如是者乎. 况當初上來之意, 是爲誰而然耶. 還伏切慨歎且悚耳. 換事聞不勝憤痛, 初十日定期,想或爲不得已之政然, 還退則已, 以卽出給換捊,十餘日定期, 千萬意外, 大抵此事彼事窮晋相議伏計耳. 科榜間已出否, 企望企望. 遯魚氏益瑞氏亦是平安否. 無紙未各候, 轉報如何.餘萬却, 不備謝上.乙卯二月二十八日, 生 許鎸 拜拜.白溪庭時 路錢三兩送之 ■■■■(所用之後)〔若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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