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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아버지가 아들에게 지난번에 아들이 앓았던 병과 그 차도를 알리지 않은 것을 꾸짖고 현 상태를 상세히 알려서 아비의 걱정을 풀어달라는 내용 및 고창의 과거 시험과 관련하여 관문과 방위사통을 보낸 사연 등을 전한 답장. 아버지가 아들에게 지난번에 아들이 앓았던 병과 그 차도를 알리지 않은 것을 꾸짖고 현 상태를 상세히 알려서 아비의 걱정을 풀어달라는 내용 및 고창(高敞)의 과거 시험과 관련하여 관문(關文)과 방위사통(防僞私通)을 보낸 사연 등을 전한 답장이다. 엊그제 읍의 인편으로 답장을 보냈으니 이 편지보다 먼저 받아볼 것이라는 내용, 뜻밖에 이 종이 갑자기 문 앞에 서 있어서 안개 속에 떨어진 듯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웠으나 정신을 수습하고 편지를 뜯어보고서 그동안 잘 지냈다는 안부를 비로소 알게 되어 조금이나마 답답했던 마음이 후련해졌다는 내용, 지난번에 상대방이 앓았던 병은 언문 편지와 함께 종의 말을 자세히 듣고 그 당시에 오랫동안 고통스러웠던 상황을 눈으로 직접 본 듯하여 모골이 서늘해졌다는 내용, 그때 위태한 상황이더라도 붓을 잡을 수만 있었다면 멀리 있는 부모에게 알렸어야 옳은데 하물며 차도가 있은 뒤에 자주 인편이 있었음에도 조금도 언급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무슨 정황이냐고 꾸짖는 내용, 처음 인(仁) 아이에게 들은 뒤로 아무 말이 없어 필시 대단히 위험한 상황까지는 가지 않은 듯하여 근심이 누그러졌는데 지금 병의 뿌리를 제거하지 못했다고 하니 어떤 상태인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모두 쌓인 피로 때문이니 분통이 터진다는 내용, 깊이 유의하여 현 상태를 편의대로 상세히 알려서 자신의 답답하고 염려되는 마음을 풀어주어야 한다는 내용, 자신의 생활은 여전하여 앞의 편지 내용과 다름이 없다는 내용, 고창의 과거시험과 관련하여 관문을 보내고 방위사통을 보냈던 일을 언급하고 상대방이 곤욕을 당한 상황에 대해서는 듣고 싶지 않다는 내용, 보암(寶巖) 일은 봄 즈음에 금강(琴岡)을 보낸 사유를 이제야 비로소 알았다고 하면서 이에 대해 언급한 내용, 종의 말을 들으니 관에서 조석이나 모두를 선물하고 또 만나 본 일도 있었다고 하던데 정말 그랬다면 어째서 자신이 들은 것이 없느냐고 반문하는 내용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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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부) 서간(書簡)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父(手決)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8월 추석날에 서울에 있는 아버지가 고향에서 시험에 응시하는 아들에게 사조의 직함을 쓰는 란에 자신의 직함을 무엇으로 쓸지 전달하고 시험을 잘 볼 것을 당부한 서간. 8월 추석날에 서울에 있는 아버지가 고향에서 시험에 응시하는 아들에게 사조(四祖)의 직함을 쓰는 란에 자신의 직함을 무엇으로 쓸지 전달하고 시험을 잘 볼 것을 당부한 서간이다. 뜻밖에 이놈이 와서 편지도 받고 조카도 만났다며 아이가 홍역에 걸렸음을 알았다며 염려했다. 늦게 도착한 사내종을 탓하고 꾸짖으며 자신은 잘 있다고 전했다. 주요 내용은 시지(試紙)의 봉하는 부분에 자신의 직함을 무엇이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지금의 직함인지, 이전의 직함인지 등에 대해 시관(試官)에게 물어서 결정한 후에 써서 봉하는 것이 좋겠다고 전했다. 시험에 붙을 수 있도록 잘 처리할 것을 당부하며 편지를 마쳤다. 추신에는 이 노의 노잣돈으로 1냥5전을 주라는 것, 자신의 직함을 '통정대부 행 김해도호부사【김해진병마첨절제사】'라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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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년 나득린(羅得麟) 시(詩) 고문서-시문류-시 羅得麟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6년 9월 하순에 택당 선생이 창주 선조와 이별하면서 지어준 시에 나득린이 차운하여 지은 시 1수. 1806년 9월 하순에 택당선생(澤堂先生)이 창주(滄洲) 선조(先祖)와 이별하면서 지어준 시에 나득린(羅得麟)이 차운하여 지은 시 1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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敬次澤堂先生贈別滄洲先祖詩, 謹呈行軒下.痛切乾坤未潔腥, 堂堂大義幾時明, 敬開舊牘 崇禎字, 敢和遺詩講世聲,未看道義門由事, 好惡非常不要記, 自分林泉處迍邅, 最憐澤畔久憔悴, 吉凶惟有陰陽行, 動靜愼無俯仰愧, 已篤江湖廊廟憂, 肯爲墨綬風塵吏, 鹿麋與友魚蝦隣, 渺我滄溟一粟寄, 幸吾同胞貴相憐, 何必分形血氣連, 難抑今朝風樹感,謹將木果索瓊篇.崇禎後三丙寅菊月下澣 錦城羅得麟 謹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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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년 김성률(金聲律) 시(詩) 고문서-시문류-시 金聲律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기유년 2월 상순에 구민 김성률이 귀양지에서 읊은 누군가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시 3수. 기유년 2월 상순에 구민(舊民) 김성률(金聲律)이 누군가 귀양지에서 읊은 시에 차운하여 지은 시 3수이다. 5언절구, 7언절구, 7언율시 각 1수로 귀양지로 와서 매우 곤궁하게 지내는 모습과 서울에서 아무 소식 없이 적막하게 1년이 지난 상황을 한탄하고 슬퍼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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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인년 허종(許錝)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許錝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820 갑인년 11월 26일, 허종이 혼사를 치른 다음날에 급히 떠난 인천 창동의 누군가에게 박한 처사라며 이유를 묻고 잘 조처하길 바란다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갑인년 11월 26일, 허종(許錝)이 인천(仁川) 창동(倉洞)으로 왜 혼인 다음날에 급히 떠났는지를 묻고 잘 조처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고, 곧 만나러 가겠다고 전한 서간이다. 지난번 만났을 때 한번 다정한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하룻밤 사이에 이별하게 되었다며 죄송하고 안타까웠던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편지를 시작했다. 요즈음 겨울 날씨에 눈이 아니라 연일 비가 오는 날씨에 상대와 가족들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 쪽의 안부는 여러분들 그럭저럭 평안하고, 형님의 객지 안부를 자주 들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다만 혼인으로 맺는 인연은 사람의 일평생 큰 인연이므로 사람의 인력으로는 어찌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이미 바꿀 수 없는 대인연이 체결되었으니 또 어찌 여러 말을 하겠느냐고 하며 혼인하러온 다음날에 갑자기 떠나 떨어져 읍에 있으니 일의 형편이나 정리 상 매우 박한 처사라고 언급했다. 마땅히 잘 조처할 방법이 있을 것이니 또 비인정(非人情)하고 가까이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머지는 일간 물으러 갈 것이니 만나서 이야기 하자고 하고 편지를 마쳤다. 추신에는 신년 달력 1건을 올리니 받아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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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년 윤재달(尹在達)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尹在達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신년 12월 4일, 해남 윤재달이 자신의 장녀와 결혼할 사위댁에 혼사를 허락해 준 것을 감사하고 사성첩을 보내달라는 내용으로 보낸 예장. 무신년 12월 4일, 해남(海南) 윤재달(尹在達)이 자신의 장녀(長女)와 결혼할 사위댁에 혼사를 허락해 준 것에 감사를 표하고 성첩(星帖)을 보내주기를 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예장(禮狀)이다. 12월에 상대가 만복하신지 안부를 묻고 자신의 장녀가 장성하였지만 가족을 이루지 못하던 중에 댁의 낭군을 주신다고 허락하신 것에 감사를 전하고 선인(先人)의 예에 따라 성첩(星帖)을 보내주시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신부댁에서 성첩(신랑의 사주를 적은 단자)을 받아 신부의 사주와 비교하여 혼례일자를 잡아(연길) 신랑측에 전하는 혼인의 과정 속에서 작성된 예장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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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州李氏門長李學先李時淳李載憲 謹齋沐上書于城主閤下 伏以民等雖曰僻居海隅 豈無常禮遵法之道乎 奉先之節 東國之盛禮 禁護之道 子孫之常誠也 民等之▣…▣墓在於馬浦面卯洞▣▣之麓 而累百年守護禁養 而四山局內 一無族塚 與他塚犯葬矣 噫 彼族人李泰永 妄發私慾 渠矣子婦之葬 昨年九月日 偸埋於先山靑龍墱 故同十一月十五日 一門子孫 齊會于齋閣 而招致同泰永 以此犯葬怪擧之意 擧理責之 則同泰永自知其罪 無數謝罪 而卽日渠以渠手自破封墓莎土 而還爲懇乞曰 當此嚴冬 掘移極爲窘迫 以待明春 永移云云 故恕其情 私容 或無怪而封門 則蓋蘋置之矣 經春經夏 終不移去 故今年十月 祭享時 更招泰▣(永)▣之 則同泰▣(永) ▣…▣十一月初六日內 期於掘移之意 丁寧成標 ▣第待其日矣 其日又不掘移 究此泰永所爲 則萬萬痛駭 渠亦同祖之子孫 少無爲先之道 只以行臆之心施之 天地間 無法無禮者 豈有如泰永者乎 民等招會諸子孫 而渠之墓莎 渠已去土 則已爲自掘之墳墓也 法何自關哉使諸子孫等 餘墳掘移矣 凶此泰永不知經緯 但以愚蠢之心 橫訴于 官庭 而有此族人李贊祚 至於推捉之境 同贊祚 奚獨掘墓乎 掘之移之 乃是一門之同力也 不勝罪悶 前後事歷曁悉 齊聲仰溷 伏願閤下細細垂察 一以明奉先之道 一以分自掘之法例 使此迷門 以保百年奉先之節 願望千萬世頌德之地 泣祝祈懇之至城主閤下 處分甲申十一月 日民 李載燁 李載會 李載權 李載浧 李載希 李載九 李 烋 李敏銓 李圭河 李元欽 李任茯 李圭銓 李權欽 李斗欽 李漢欽 李學欽 李時行 李錫祚 李化權 李道欽 李德欽 李萬欽 李致原 李馥欽 李殷欽 李應應 李啓欽 李來銓 李喜銓 李東齡 李正欽 李台欽 李永欽 李秉彦 李商欽 李守永 李天欽 李源欽 李震九 李吉欽 李成欽 李周欽 李仲欽 李載五 李夏欽 李德欽 李孝欽 李文欽 李景欽 李在欽 李昌欽 等(題辭)雖是先塋局內 旣是該族之嚴禁 則宜遵宗法是去乙 不顧廉隅 偸埋手下喪 尤極可駭是在果 自知犯禁理屈 成標自掘 更何(背面)敢開喙於其間哉 嗣後若有冒禁偸葬 前非但有李門之宗法 亦有公法向事卄四日官[着押][海南縣監之印](粘連文書)手標右標段 門末子婦 犯葬於先山靑龍餘麓矣 門肖齊發 故今十一月初六日內掘移之意 玆以納標爲去乎 若違限不掘 則以此標記 告 官憑考事甲申十月十六日 標主李泰英[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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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회(姜綸會)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姜綸會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0월 초8일, 강윤회가 상대의 은자 색이 변한 일로 값을 돌려드리겠다는 내용으로 쓴 서간. 10월 초8일, 강윤회(姜綸會)가 상대에게 준 은자(銀子)의 색이 변한 일로 값을 돌려드리겠다는 내용으로 쓴 서간이다. 지난번에 왕림해 주신 일은 뜻밖의 일이었다며 그때 당시의 일이 민망하고 부끄럽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겸하여 주신 물고기에 감사하고 요즈음 상대와 그 아버지 등의 안부를 물었다. 상중인 자신은 하는 일을 어찌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주요내용은 은자(銀子)가 색이 변한 일을 두고 이에 추심(推尋)해 올리겠다는 것, 옳고 그름은 자신이 불민해서 그러한 것이라며 너무 책하지 말아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머지는 이달 중에 만나 뵙겠다며 편지를 마쳤다. 발신자 강윤회의 이름 끝에 '어릴 때 이름은 자현(子賢)'이라는 주기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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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강윤흠(姜允欽)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姜允欽 李洪仁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강윤흠이 이홍인에게 자신의 어려운 생활을 전하고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은 서간. 강윤흠(姜允欽)이 이홍인(李洪仁)에게 자신의 상황을 전하고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은 편지이다. 편지의 예식을 최대한 줄여 몇 줄로 기록한 편지로 자신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쌀〔米〕 몇 두(斗)의 일이라고 말하고 어제는 혹시 만날 수 없었느냐고 물었다. 받은 편지를 훗날 누가 다시 베껴 쓴 것으로 발신자를 적은 란에 '강윤흠으로 소명(小名)은 자현(子賢)'이라고 적어 놓았다. 발신자 란에 적힌 '중만(重萬)'은 전라남도 진도군 임이면(臨二面) 중만리(中萬里)로 강재호(姜在皥), 강진흠(姜進欽) 등이 함께 거주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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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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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905년 이면의(李冕儀) 관고(官誥) 고문서-교령류-관고 宮內府 李冕儀 宮內府印(6.5x6.5), 宮內大臣之印(3.2x3.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5년 이면의를 숙릉참봉에 임명하는 관고 1905년(광무9) 3월에 공내부(宮內府)에서 이면의(李冕儀)를 숙릉참봉(淑陵參奉)에 임명하고 판임관(判任官) 8등으로 서임하는 관고(官誥)이다. 궁내부 관인이 찍혀 있고, 문서의 발급자로 "의정부찬정(議政府贊政) 궁내부대신(宮內府大臣) 임시서리(臨時署理) 의정부 찬정(議政府贊政) 이재극(李載克)이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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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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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58년 신재하(愼在夏)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愼在夏 靈巖郡守 官<押> □…□ 1顆(7.0x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8년에 신재하 등이 영암군 관아에 올린 이인걸·이정필 정려 요청 상서. 1857년(철종 9) 12월에 영암군(靈巖郡)에 사는 신재하(愼在夏) 등 7명이 연명하여 고을 관아에 올린 상서(上書)이다. 이들은 1년 전 11월에 전라감영에 이인걸(李仁傑, ?~1593)과 그의 증손 이정필(李廷弼, 1640~)의 충절을 설명하고 정려를 요청하는 상서를 올린 바 있다. 이인걸은 문충공(文忠公) 익제(益齋) 이제현(李齊賢)의 후예이고, 부제학 이문환(李文煥)의 5세손이다. 임진왜란을 당하자 권율(權慄) 원수(元帥)의 막하에 들어갔고, 행주(幸州)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이인엽(李寅燁)이 쓴 묘지명에서 "칼날을 밟고 의로운 길 나아가[蹈刃就義], 일월과 빛을 다투었네[日月爭光]"라고 하였다. 이인걸의 증손인 선전관(宣傳官) 이정필은 효성과 우애를 타고났고, 관직을 버리고 돌아와 부모를 봉양하였다. 아버지가 대합을 좋아하였기에 바다에 들어가서 캐오느라 몸에 상흔이 생길 정도였다. 여묘(廬墓) 살이 할 때 동네의 강아지가 무덤을 더럽히자 강아지를 타일러 그후로 무덤을 더럽히지 않았다. 복제를 마친 뒤에는 돌아가신 분의 머리카락을 넣고 다니면서 항상 보면서 울었다. 당시 사람들은 "머리카락에 우는 효자[泣髮孝子]"라고 칭하였다. 그 당시에 암행어사 권상유(權尙游)가 조정에 아뢰어, 50결(結) 분량의 면세를 허용해주고 정려(旌閭)하라는 명령이 있었다. 그리하여 지역의 선비들이 여러 번 예조에 정소(呈訴)하여 절목(節目)을 작성하게 되었고, 감영에 호소하여 완문(完文)을 발급받았다. 신재하 등이 요청하는 사항은 감영이 작성해 준 완문에 의거하여 두 분 자손의 환곡, 호노(戶奴)와 묘노(墓奴)의 군역, 연호잡역(烟戶雜役) 등을 일일이 면제해 준다는 내용의 완문을 작성해 달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영암군 관아에서는 초6일에 "감영의 처분에 따라 물리지 말 것이다."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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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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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81년 위영식(魏永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長興府使 魏永植 □…□ (7.5×7.5), 周挾改字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1년에 장흥도호부 관아에서 위영식에게 발급한 준호구. 長興都護府 관아에서 호주인 魏永植에게 발급한 1881년의 준호구이다. 본 준호구는 편제된 統戶를 비워둔 상태에 제출되어 나중에 붉은 먹으로 숫자를 채워 넣은 부분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애초에 호구단자 형식으로 작성하여 호주가 제출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주협자 개인], 관인, 수령의 서압 등이 적혀 있고, 본문과 다른 글씨체로 '己卯戶口相準 印'라고 적혀 있다. 이는 호주가 제출한 호구단자를 접수한 고을 관아에서 추후에 기입한 부분으로, 준호구의 기능을 부가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이후에는 호적 작성 행정의 간소화로 인하여 호구단자와 준호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즉 호주에게 1통의 호구단자를 제출하게 하여 그것에 수정 내역을 표기하고 착압·날인하여 되돌려줌으로써 준호구 역할을 겸하게 하거나, 처음부터 호주가 준호구 형식으로 작성하여 제출하면 관아에서 날인·착압하여 돌려준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1)1) 『한국고문서입문』2(국사편찬위원회, 2021) 497쪽 참조. 본 준호구는 전자에 해당한다. 위영식의 거주지를 기재한 부분은 결락되어 있어서 첫 글자인 '古'자만 확인할 수 있으며, 제○통 2호에 편재되었다. 같은 문서군에 포함된 준호구에 따라면 '古'는 '古邑面'으로 추측할 수 있다. 호주의 직역을 적은 부분 역시 결락되어 있다. 호주의 나이는 29세로 계묘년생이다. 이를 통해 다른 작성 연대의 서기연도를 알 수 있는 준호구와 비교하여 본 준호구의 작성연도를 파악할 수 있다. 위영식의 四祖를 보면, 父는 學生 喆基, 祖父는 學生 榮滉, 曾祖父는 通德郞 道僩이며 外祖는 學生 金洙澤(본관 金海)이다. 처 安氏는 31세 신해년생이며 본적은 竹山이다. 처의 사조를 보면, 父를 적은 부분은 결락되어 있고, 祖父는 學生 萬鉉, 曾祖父는 學生 時表이며 외조부는 學生 金贊斗(본관 金海)이다. 처 안씨의 외조부 이름은 원래 觀淑이라고 적었다가 贊斗로 수정하였다. 노비 소유사항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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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이기만(李起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起萬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9년 8월 13일, 사제 이기만이 사돈댁의 어머니 상기(祥期)에 위문하고 안부를 전한 서간. 1929년 8월 13일, 사제(査弟) 이기만(李起萬)이 사돈댁에 상대의 어머니 300일 상을 위문하고 자신이 참석하지 못함을 사죄하고, 약간의 물건을 보낸 뒤, 동생분과 농사걱정 등의 내용을 전한 서간이다. 상례 1주기가 정말 빠르게 흘렀다는 인사를 시작으로, 음력 8월에 어머니 상 중인 형제분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모시는 어른 그럭저럭 평안하시고 권솔들도 별 일 없다고 안부를 전했다. 주요내용은 상기(祥期)가 다가옴에 대한 위문이다. 예제(禮制)를 따라 몸 상하지 않게 일을 잘 치르시길 바란다고 인사했다. 자신은 마침 일이 있어서 직접 위문가지 못한다며 인정과 예의가 모두 사라질까 걱정이라는 말, 약간의 물건을 올리니 받아주기를 바란다는 것, 상대의 아우님 소식은 종종 듣는지, 5월에 편지가 왔었는데 주소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동안 답장을 하지 못했다며 양해해 주기를 바란다는 것, 상대의 농사가 잘 되는지에 대한 물음, 자신 쪽은 날씨가 너무 가물어 이삭이 뽑혀 버린 지 이미 오래라 추수를 바랄 수 없게 되었다는 한탄 등의 내용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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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禮拜言. 周朞三百不爲不多,而獨於有喪之家, 偏若迅駚,謹未審仲秋,孝中哀棣體候支安, 仰溸區區, 冲悵有倍常品. 弟省候粗安, 而眷率無警, 以是爲幸耳. 就祥期淹迫, 攀號之慟, 想復靡逮, 而以孝傷孝, 古人所誡, 則伏乞更加節哀, 回從禮制, 若何. 適有所縻末由奔慰, 恐其於情禮掃蔑, 只以若干些略物, 忘畧汗呈, 笑領如何.還爲愧騂也. 令弟氏消息種種聞之乎. 五月良便紙來到見之, 則住所未定, 故未曾爲摻候也. 則以此恕諒如何.貴庄農形或得穴農耶.鄙邊則日旱特甚, 拔穗已久也. 而長立不爲落穗, 則何望有秋乎, 歎之奈何而已.餘惟冀祥祀利成. 不備疏禮上.己巳八月十三日, 査弟 李起萬 拜疏上.令弟氏留在住所東京府 下馬兦町 字松原 四三一番渡辺八卽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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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惟時下,尊體百福, 仰祝仰祝. 第後石先生文集正寫事, 將欲於今月卄日開始爲計, 玆依衆望, 以座下選定書寫. 伏惟勿勞,枉臨以成大事, 千萬幸甚.若遷延時月, 則決無可編之日,更願速圖是望.辛未九月十日,湧珍精舍講會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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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 양만원(楊萬源)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楊萬源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인년 3월 16일, 양만원이 상대가 보내온 물건을 받고 감사를 전한 서간. 경인년 3월 16일, 양만원(楊萬源)이 상대가 보내온 물건을 받고 감사를 전한 서간이다. 지난번에 형이 계신 곳에 갔을 때 만나지 못한 것이 매우 슬펐는데, 당신의 종이 비를 무릅쓰고 와서 편지를 주셨다며, 누가 편지가 직접 대면하는 하는 것만 못하다고 했는지 모르겠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상대가 꽃피고 따뜻한 3월의 날씨에 층층의 어른을 모시고 있는 상대가 화목하고 가족들 고루 평안하다고 하니 전보다 배나 위로되고 축하한다고 하였다. 자신은 모시는 어른이 그럭저럭 건강을 유지하고 계시고, 식구들도 별 탈이 없다며 상대가 걱정해 준 덕택이라고 했다. 주요 내용은 보내준 물건이 어찌 이리 인심이 후하시냐며 형도 역시 속세의 사람이냐고 물었다. 매우 감사하다고 인사 후 자신은 답장과 짝하여 보내드릴 물건이 없다며 도리어 얼굴이 붉어진다고 하며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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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仁川 倉洞 座下.邑南 謹候狀.謹封.(簡紙)向懷榮千撓百, 而不能一辭穩宜, 旋別於一夜之間, 悚悵曷已. 伏未審冬候宜雪, 而連雨玆際,體候萬安, 閤節如常, 旣溯且慰, 不任區區之至. 而在此諸節, 唯以省事粗安, 兄主之(배면)客安頻承伏幸耳.第婚緣卽是人之一平生大因緣, 安可以人力所及也. 旣結於不易之大因緣, 又何長提說也. 但入婚翌日遽然發程, 雖隔在邑,事勢情理則甚薄,奉問以此爲罪, 若何若何.當有善措處之道, 又不及於非人情不可近之地矣. 餘在日間考品是那時當拜語, 不備.甲寅十一月卄六日, 許錝 拜拜.新曆一件送呈, 考納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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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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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5년 원빈(元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元彬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5년 3월 16일, 족말 원빈이 족인에게 뛰어난 학문을 세상에 드러내어 우리 가문 및 사문의 영광이 되어주길 바라며 자신에게도 가르침을 달라는 내용으로 보낸 답장 서간. 1925년 3월 16일, 족말(族末) 원빈(元彬)이 족인에게 뛰어난 학문을 세상에 드러내어 우리 가문 및 사문의 영광이 되어주길 바라며 자신에게도 가르침을 달라는 내용으로 보낸 답장 서간이다. 상대가 편지가득 해 준 말에 대해 탁연하시어 감복했다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자신이 일찍이 생각해 보았는데, 우리 김씨의 선세는 학문으로 칭하여지고, 행실이 곧고 바랐으며, 행동이 법규와 같았고, 매우 너그러웠고, 남에게 오만하지 않았고, 형제간에 우애 있고, 집안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온 고을에 칭하여져서 사림으로 추대되어 사랑받아 후세대에게 널리 퍼졌는대, 자신의 세대에 이르러 거의 추락하였다며 상대의 고명함이 아니라면 누가 그 선업을 붇들겠느냐고 한탄했다. 자신이 20여년을 사는 동안을 반성하며 상대가 자신을 매일 깨우쳐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부귀와 빈천으로 인해 마음이 오염되고 뜻이 옮겨지지 않을 것이니 우리 가문의 영광과 사문(斯文)의 경광(耿光)은 오로지 당신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자신의 바람은 오직 당신의 뛰어난 학문이 세상에 드러나기를 바랄 뿐이라고 하며 당신께서 자신을 때때로 가르쳐 주어 꽉 막힌 시야를 열어 줄 것을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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