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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4) 凡天下書不爲不多而所貴乎經傳者以其有聖訓賢謨其訓其謨不過曰天理之常民彝之則是理也互今古而撑宇宙雖人獸渾處四海鴻洞未嘗不有如線一縷之不泯也今我郡鄕校誌之爲書一皆是校宮建置之蹟聖賢尊慕之道享祀虔奉之節任司隨行之案與夫養老興學彰善戒惡之方而儘自天理民彝中所出來其於經傳訓謨亦可謂爲羽翼矣然文獻間頗杞宋不能接續此鄕章甫之所以慨然也嗚呼日下桑海風雨狂瀾西淹向所謂聖訓賢謨屬之芭籬者久矣及今此誌雖未能障百回倒其必東之義則豈不在斯歟可貴也泳相猥參任末自有秉彝之悅服者遂書此以爲跋癸酉十月下澣仁同張泳相謹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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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曹啓文 云云節啓下敎辭卽見全羅監司金 狀啓則枚擧咸平縣監姜時煥牒報以爲今月十二日夜本縣鄕校 大成殿東隅風板內有火災之變五聖位板及東西廡各位位板奉安于墻外西齋淨潔處祭器香卓亦爲移置仍卽撲滅而東隅瓦子及椽木多有毁撤故今方整待告由還安祭香祝請令該曹磨鍊下送矣 聖廟失火極爲驚悚謹稽謄錄則外方聖廟被燒時有遣本曹郞官奉審後設行慰安祭之祭例而今番則幸未延及登時撲滅禮官擧行雖磨鍊慰安之擧恐不可已慰安祭香祝令該曹急速磨鍊祝文中修改之由措辭撰出不卜日設行而還安祭香祝亦令一體磨鍊下送事畢後設行事竝爲分付何如傳曰允事批下爲有置批下內事意奉審施行向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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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재풍】에게 보냄 與文武一【載豊】 붓을 움직이고 먹을 가는 것도 늘그막에는 힘든 일이건만 인편을 두고 그때마다 서찰을 보내 물으시는 일이 앞뒤로 끊이지 않고 갈수록 더욱 정성스러우십니다. 돌아보건대 누가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아, 아우는 젊은 시절부터 사방(四方)의 사람들과 교유(交遊)한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머리가 흰 노년이 되고 새벽 별처럼 쓸쓸한 처지가 되어서는 오직 노형(老兄)만이 저를 버리지 않고 늙어서도 더욱 친밀하게 대하시니 풍의(風儀)에 감격하는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만년의 쇠잔한 처지라 모든 생각이 멈춰버렸지만, 사소한 구업(舊業)에 대해서 얼마간이라도 도움을 주고받고자 하는 바람은 지금껏 한 번도 덕문(德門)의 형제 사이에 있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난과 질병에 시달려 두 발이 문을 나서지 못하고 안부를 묻는 편지조차도 때를 맞추지 못하였습니다. 노형께 연치(年齒)와 덕망(德望)을 무릅쓰고 문득 이렇게 먼저 은혜를 베푸시게 하였으니 감격스럽고 감격스러운 나머지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함께 합니다. 따뜻한 봄날이 한창인데 형의 체후(體候)도 계절과 더불어 편안하신지 모르겠습니다. 기침 증세는 본래 으레 나타나는 증상이고 공도(公道)이니 편작(扁鵲)이나 화타(華佗)도 손을 대지 못하고 인삼(人蔘)과 백출(白朮)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공자(孔子)가 말한 "늙은이가 편안하게 여긴다."라는 말이 가장 좋은 약방문(藥方文)입니다. 아우는 타고난 기운이 허약하여 미처 늙기도 전부터 쇠약해진 지 오래입니다. 하물며 공도(公道)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다만 당장 온 집안 식구의 생계를 꾸려 갈 수 없으니 청산(靑山)에 누운 뒤에야 가능할 것입니다. 우스운 일입니다. 運管行墨。亦老境勞事。而有便輒致書問。前後源源。愈益懇至。顧惟何人。可以當此。嗚乎。弟自少年以來。交遊四方。非不久矣。而白首頹齡。落落如晨星。惟老兄不棄不遺。老而愈密。感感風義。何以爲心。桑楡殘景。萬念休歇。而一分舊業。多少相資之望。未嘗不在於德門伯仲之間。然而貧病淟涊。脚不出門。至於書尺寒暄。亦不以時而至。使老兄降屈年德。輒此先施。感感之餘。愧悚倂之。春令方殷。未審只體候。與時偕適。喘證此固例證也。公道也。扁華所不能容手蔘朮所不能奏效。只有夫子所謂老者安之四字。是其第一方文。弟受氣偏薄。未老而衰久矣。況於公道乎。但目前百口之計。寄着不得。惟一臥靑山然後。可也。好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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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집【재성】에게 답함 答梁大集【在成】 영계(令季 상대방의 막내아우)가 산으로 돌아가서 흔들리는 일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다행입니다. 다만 부모님의 체후가 좋지 않은 일이 매우 놀랍고 염려스럽습니다. 그러나 신이 정성과 효심을 살펴주어 반드시 앞으로 오래지 않아 일상을 회복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선부인(先夫人 상대방의 어머니)의 묘지명(墓誌銘)은, 제가 이미 대군자(大君子 상대방의 아버지)의 문하에서 은혜를 입었으니, 어버이를 빛나고 영예롭게 하는 효성이 어찌 중대하지 않겠습니까. 아우 같은 사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천한 존재이니 어찌 인가(人家)에서 영원히 전해질 문장에 손을 댈 수 있겠습니까. 다만 서로 친한 정의(情誼) 때문에 감히 굳이 사양하지 못하고 마침내 붓에 먹을 적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쓸모없는 원고로 던져 버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令季還山。聞無所撓。爲幸爲幸。但庭候欠和之節。極爲驚慮。然神相誠孝。必將不久復常。以是爲望。先夫人誌銘。旣已受賜於大君子之門。其所以爲顯親之孝。豈不大哉。如弟者埋沒賤生。何可犯手於人家不朽之文也。特以相親之誼。不敢牢讓。果至泚筆。然投諸散墨。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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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장여【형주】에게 보냄 與洪章汝【馨周】 영종씨(令從氏 상대방의 사촌 형제)께서 왕림하시어 삼가 편지를 받들었습니다. 삼가 체후는 더욱 잘 보중하시며 두루 평안하신지요. 그리운 마음 간절합니다. 아우는 그럭저럭 지낼 뿐이니 나머지야 어찌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부탁하신 선고(先考)의 행장은 참으로 식견이 천박한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근실한 성의에 감격하여 굳이 사양하기 어렵기에 감히 붓을 들었습니다. 만약 온당치 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식(修飾)과 윤색(潤色)을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영종(令從)이 지난번에 이르기를, 오는 15일경에 제게 들르신다고 했는데 문득 생각하니 그때는 아마도 아우가 잠시 출타를 할 것 같습니다. 또 마침 믿을 만한 인편이 있어서 이렇게 편지를 올립니다. 今從氏左顧。謹承信徽。恭問體節增重。渾引均宜。溯仰區區。弟粗遣而已。餘何可提。先狀之托。固非膚淺所可承堪。而感感勤意。有難牢讓。敢爾沘筆。如有未穩。爲加修潤如何。令從向云。以今十五日間歷過。而旋念其時。恐弟有小出。且適有信便。故玆以付上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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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빙치를 출발하다 早發冰峙 오늘 아침 또 서석산으로 향하니 (今朝又向瑞山行)구름과 안개 걷히고 해가 또 밝게 비추네 (雲捲煙消日復明)길이 더욱 깊어져 명승지로 가까워지니 (一路轉深佳境近)숲의 벌레와 들의 새가 가을 소리를 내누나 (林蟲野鳥動秋聲) 今朝又向瑞山行。雲捲烟消日復明。一路轉深佳境近。林虫野鳥動秋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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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생 낙경의 시에 화운하다【안상】 和朴生樂卿【顔相】 그대 나를 따라 매일 노니는 것 고마우니 (感君從我每留連)자질이 휼륭한 묘령의 소년일세 (玉樹瓊叢妙少年)우리들 기대하고 면려하는 건 다른 일이 아니라 (吾儕期勉無他事)사람과 하늘에 부끄럽지 않는 것이라네 (不愧於人不愧天) 感君從我每留連。玉樹瓊叢妙少年。吾儕期勉無他事。不愧於人不愧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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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생 사증148)과 함께 칠송의 강회에 참석하다 偕洪生士拯赴七松講會 금릉에는 아침 비가 지나가고 (金陵朝雨過)입암149)의 들판에는 춘풍이 많이 부네 (笠野春風多)좋은 벗과 지팡이를 나란히 하여 가니 (好友連筇去)옷깃에 화평한 기운 가득하네 (滿襟是太和) 金陵朝雨過。笠野春風多。好友連笻去。滿襟是太和。 홍생 사증(洪生士拯) 홍승환(洪承渙, 1870~?)이다. 본관은 풍산(豐山), 자는 사증이다. 입암(笠巖) 전라남도 장성(長城)과 전라북도 정읍(井邑) 사이에 있는 입암산성을 가리킨다. 입암은 산봉우리에 삿갓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얹혀 있어 비롯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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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생 경함이 봄을 전별하는 날에 시를 지어주니 사례하지 않겠는가 黃生景涵餞春日有贈可無謝 이날 봄을 전별함이 배로 슬프니 (此日餞春倍悵然)백발 나이에 떨어지는 꽃 앞에 앉아 있네 (白頭坐對落花前)몇 통의 정중한 편지 마음이 얼마나 지극한가 (數書珍重情何極)지척에 떨어져 있으니 마음은 절로 가련하네 (咫尺離違意自憐)늘그막에 부지함은 누구에게 의지하랴 (衰境扶持賴誰在)소년의 영특함은 어진 그대에게서 보겠네 (少年英秀見君賢)때를 놓치지 말고 부지런히 연마한다면 (及時好着磨礱力)하자가 없이 정채가 온전하리라 (無玷無瑕精釆全) 此日餞春倍悵然。白頭坐對落花前。數書珍重情何極。 咫尺離違意自憐。衰境扶持賴誰在。少年英秀見君賢。及時好着磨礱力。無玷無瑕精釆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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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귀정에서 강회를 파하고 읊다【2수】 詠歸亭講罷吟【二首】 높디 높은 정자 동천을 누르니 (亭子高高壓洞天)속진의 시끄러움 이르지 않아 하루가 일 년 같네 (囂塵不到日如年)예를 때때로 익혀 더욱 주밀하였고 (節文時習加周密)의리를 궁구하여 더욱 온전히 하였네 (義理窮研更穩全)지금 세상에 어떤 사람이 먼저 꿈을 깨랴 (今世何人先覺夢)예부터 무슨 일이 가벼운 안개와 같았던가 (古來甚事等輕煙)유연히 강회를 마치고 배회하며 서 있으니 (悠然停講徘徊立)숲 사이 석양이 강석을 비추네 (萬樹斜陽下墨筵)느릿느릿 지는 해가 숲에 비춰 밝으니 (遲遲斜日入林明)조용히 흉금을 마음껏 털어놓네 (剩得從容暢敍情)들마다 모를 심으며 일이 지체될까 재촉하고 (野野秧移催役晚)집집마다 보리를 타작하며 풍년을 즐거워하네 (家家麥打樂豐成)늙어서 초년의 뜻을 부질없이 저버렸으니 (老年虛負初年志)후세에 누가 이 세상에 살다 간 줄 알리오 (後世誰知此世生)그래도 두 세 명의 벗이 예전처럼 남아 있어 (也賴二三朋舊在)매번 단란한 모임에서 괴로운 마음 편안해지네 (每從團聚苦懷平) 亭子高高壓洞天。囂塵不到日如年。節文時習加周密。義理窮研更穩全。今世何人先覺夢。古來甚事等輕烟。悠然停講徘徊立。萬樹斜陽下墨筵。遲遲斜日八林明。剩得從容暢敍情。野野秧移催役晚。家家麥打樂豐成。老年虛負初年志。後世誰知此世生。也賴二三朋舊在。每從團聚苦懷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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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암 김 어른에 대한 제문 祭重庵金丈文 천하에 인간이 살아온 지가 오래 되었으니, 한 번 다스려지고 한 번 혼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스려짐에 진실로 성인이 위에 있어 그 도를 행함이 있었고, 그 혼란해 짐에 또한 성인이 아래에 있어 그 도를 호위함이 있었습니다. 만약 위태로운데도 잡아주지 않고 넘어지는데도 부축하지 않아 그 절로 되는대로 맡겨두고 그 가는대로 놓아두었다면 인류가 멸망한 지 이미 오래 되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등급이 점점 낮아져 치우치고 방탕한 말들이 더욱 성하여 온 천하가 날마다 긴 밤으로 달려가, 산악이 꺾이고 상하며 해와 별이 어두워지고 잠겨 깨끗함을 조금 보존한 한 모퉁이의 우리나라까지도 또한 장차 면하지 못하게 될 지경입니다.오직 선생께서는 화양(華陽)23)을 사숙하였고 벽문(蘗門)24)의 적전으로 천고를 안아 짊어지고 한 시대를 담당하였습니다. 후덕(厚德) 대도(大道)와 위론(偉論) 직절(直節)은 산같이 높고 바다가 품은 듯, 얼음처럼 맑고 옥처럼 깨끗하여 도깨비나 짐승 같은 이들로 하여금 비록 방자함을 지극히 하더라도 능히 유자의 복장을 한 사람이 보고 듣는 것을 되돌리게 하지 못하게 한 것이 오래되었습니다. 호전(胡銓)25)의 상소와 진동(陳東)26)의 일은 과연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소청(疏廳)에 편지를 보내 격려하고27) 해도(海島)로 귀양 갔으니,28) 또 이는 어떤 일입니까? 천지의 정대한 기운과 국가의 강상(綱常)의 책임은 벽계(蘗溪)의 문정(門庭)에서 다 나오지 않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고, 강토(講討)하고 찬조(贊助)한 바의 힘은 또 누군들 선생에게 있지 않다고 하겠습니까.오호라! 긴 밤이 끝나지 않았는데 큰 횃불이 문득 꺼지고, 여러 음(陰)이 바야흐로 성한데 미약한 양(陽)이 갑자기 막혀, 시상(時象)과 풍색(風色)이 나날이 더욱 심한데도 이것을 강화시키고 저것을 어렵게 만들어 유지하고 보호할 사람이 없으니, 인륜과 세도가 또 장차 어느 곳에 도달할지 모르겠습니다.아! 오직 소자는 일찍 높은 의리를 강론하였으나 아직 덕에 나아가기를 미루고 있으니, 광풍제월(光風霽月)29)의 기상을 비록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생각이 간절하지만 남쪽 바닷가와 북쪽 모서리에 떨어져 있어 힘이 미치지 못하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멀리서 향하여 바라보고 절하며 단지 천만 무강한 장수를 누려 사문과 세도를 위한 계획을 축원하였는데, 어찌 하늘이 원로를 남겨두지 않아 부고가 갑자기 들릴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슬프도다! 우리들 누구를 통하며 누구에게 가야 합니까? 산도 슬퍼하고 물도 시름하니, 만고에 아득합니다. 天下之生久矣。不得不一治一亂。然其治也。固有聖人在上而行。其道。其亂也。亦有聖人在下而衛其道。若危而不持。顛而不扶。任其自爲。聽其所之。則人之類滅己久矣。世級浸降。詖滛愈熾。寰宇率濱。日趍長夜。山岳摧剝。日星晦沈。至於一隅靑邱稍保乾凈者。亦將不免。惟先生以華陽私淑。蘖門嫡傳。抱負千古。擔當一世。厚德大道。偉論眞節。如山高而海涵。冰清而玉潔。使魑魅魍魉羽毛鱗介之屬。雖極恣睢。而不能。迴冠儒服儒之視聽久矣。胡銓之疏陳東之舉。果是何人。疏廳之書。海島之行。又是何事。天地正大之氣。國家綱常之責。不可謂不盡出於蘖溪門庭之間。而所以講討贊助之力。又孰謂不在於先生耶。嗚呼。長夜未艾。而巨燭旋滅。群陰方盛。而微陽遽閼。時象風色。日甚一日。而無強此艱彼維持調護之人。未知人倫世道。又將稅泊於何地耶。嗟惟小生。夙講高義。尚稽就德。光風霽月。雖切寤寐之思。而南涯北角。其奈事力之未逮。遙向瞻拜。只祝千萬無彊之壽。爲斯文世道計也。豈意天不憗遺。凶音遽聞耶。哀我人斯。誰因誰極。山哀浦思。萬古悠悠。 화양(華陽) 화양동으로 우암(尤菴)이 강학했던 곳인데, 여기서는 송시열(宋時烈, 1607∼1689)를 말한다.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우재(尤齋), 본관은 은진(恩津)이다. 생원시를 거쳐 산림(山林)으로 벼슬길에 나아가 이조 판서와 죄의정 등의 벼슬을 지냈다. 저서로는 《송자대전(宋子大全)》이 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벽문(蘗門) 이항로(李恒老, 1792∼1868) 문하를 말한다. 이항로의 자는 이술(而述), 호는 화서(華西), 본관은 벽진(碧珍)이다. 초명은 광로(光老)이다. 1808년(순조8) 한성부 초시에 합격하였으나, 이후로는 과거를 포기한 채 향리에서 강학을 하여 최익현, 김평묵(金平默), 유중교(柳重敎) 등을 길렀다. 동부승지, 공조 참판 등을 지냈다. 호남의 기정진(奇正鎭), 영남의 이진상(李震相)과 함께 조선 말기 주리철학의 3대가로 꼽힌다. 존왕양이(尊王壤夷)의 춘추대의(春秋大義)를 강조함으로써, 위정척사론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저서로는 《화서집》, 《주자대전차의집보(朱子大全箚疑輯補)》 등이 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호전(胡銓) 1102∼1180. 송(宋)나라 고종(高宗) 때의 직신(直臣)이다. 상소하여 왕륜(王倫), 진회(秦檜), 손근(孫近) 세 사람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다가 축출되었다. 《宋史 卷374 胡銓列傳》 진동(陳東) 송(宋)나라의 태학생으로 자는 소양(少陽)이다. 태학생의 신분으로 흠종(欽宗) 때에는 간신인 채경(蔡京) 등을 논박하였고, 고종(高宗)이 강남으로 천도(遷都)한 후에는 명재상인 이강(李綱)을 등용하고 황잠선(黃潛善) 등을 파면할 것을 청원하는 상소를 수십 번 올렸다가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참형을 당하였다. 《宋史 卷455 陳東列傳》 청(疏廳)에……격려하고 1881년 김평묵이 63세 때에 영남 유생 이만손 등 1만 3천여 명이 대궐에 이르러 조정의 개항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는데, 이때 중암은 유중교와 같이 연명하여 소청(疏廳)에 글을 보내 격려하였다. 해도(海島)로 귀양 갔으니 1881년 위정척사(衛正斥邪)를 주장한 일로 지도(智島)로 유배되었던 일을 말한다. 광풍제월(光風霽月) 비 갠 뒤의 맑은 바람과 밝은 달로, 인품이 고결하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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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 어른에 대한 제문 祭勉庵崔丈文 갓과 신발이 도치되는 것은 옛날에도 간혹 있었지만 화(禍)는 송나라가 망한 것보다 참혹함이 없고, 금수의 자취30)가 횡행하는 것은 세상에 간혹 있었지만 변고는 오늘의 혼란함보다 심함이 없습니다. 이미 비상한 화와 비상한 변고가 있으니, 반드시 비상한 현인이 나와 부지하여 강상(綱常)의 한 맥으로 하여금 천하 만세토록 실추시키지 않도록 함이 있으니, 송나라 문산 선생(文山先生)31)과 지금의 면암 선생勉庵先生이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니겠습니까.선생은 벽문(蘗門)32)의 고제로 중옹(重翁)과 종유하여 연원과 문로가 가장 확실하여 말과 마음으로 전수하여 함양한 것이 두텁고 힘입은 것이 깊었으니, 온축함에 덕행이 되고 행함에 사업이 된 것이 순수하여 한결같이 정대하고 광명한 영역에서 나왔습니다. 일용의 전례(典禮)로부터 고금의 사변(事變)에 이르고, 상고의 전훈(典訓)으로부터 근세 유자의 의론에 이르기까지 망라하여 깊이 체득하고 해박하게 관통하였는데 그 원위(原委)와 곡절(曲折), 향배(向背)와 취사(取舍)는 모두 스승의 설을 독실하게 믿어 지켜서 전하여 유가의 한 가닥 정맥을 보존한 것은 선생의 은혜입니다. 선생이 조정에 들어간 지 며칠 되지 않아 시사(時事)가 날로 그릇되는 것을 보고 걱정과 울분이 강개(慷慨)하여 전후의 40년 동안 아는 것은 말하지 않은 것이 없고 말한 것은 곧은 말이 아님이 없어 비록 정확(鼎鑊)33)이 앞에 있고 영해(嶺海)34)가 뒤에 있더라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비록 쓰이지는 못했지만 천한 사람이 보는 것을 용동시키고 한 시대의 마음과 눈을 일깨울 수 있었던 것은 선생의 은혜입니다.한가한 숲속에 물러나자 문하에 찾아와 학업을 청하는 이들이 온 나라에서 몰려들었는데, 타일러 부축하고 가르쳐 이끌어줌에 순순하게 하여 게을리 하지 않아 후생과 후손들로 하여금 방향이 있음을 알게 한 것은 선생이 부지해준 덕분이니, 어찌 오늘의 일에만 알맞을 뿐이겠습니까. 유운(遺韻)과 여열(餘烈)이 드러나 책에 있고 전하여 사람에게 있으니, 천년을 지나고 만세를 지나더라도 태산과 그 높음을 다툴 수 있을 것이고, 해와 별과 그 광채를 다툴 수 있을 것입니다.오호 통재라! 선생이 이 세상을 버리시니, 이 세상은 끝내 오랑캐 지역이 될 것인가? 선생이 이 사람들을 버리시니, 이 사람들은 끝내 금수 같은 부류가 될 것인가? 하늘이 이미 선생을 낳아 강상이 실추되지 않도록 하였으니, 혹 이것으로 인하여 강상의 도가 이에 다시 천하에 크게 밝아질 것인가? 하늘의 마음을 알 수 없고 기의 운수는 기필할 수 없으니, 모르겠으나 선생의 영령이 원기를 되돌려 조진(朝眞)35)하여 귀신을 합하고 조화를 도와 어둡고 어두운 가운데에서 만회하고 옮길 수 있을 것인가? 애통하고 애통하도다.의림(義林)은 기구하게 남은 목숨이 천리에 떨어져 있어 비록 책상을 지고 문하에 찾아가 배운 날은 없지만 편지를 올려 가르침을 청한 것은 끊임없이 이어져 쇠하지 않았으니, 지금 30여 년이 됩니다. 재작년에 이르러서는 질병과 상사가 이어지고 거듭하여 1년 사이에 거의 없었던 날이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가까이로는 같은 도내에서 달려가 위로 드리지 못하였고, 멀리로는 절역(絕域)의 밖에 달려가 안부도 드리지 못하였으며, 크게 두렵고 크게 놀라운 일이 종종 여기에 이르렀는데도 편안히 집에 있으면서 알지도 못하였으니, 저버린 죄가 여기에 이르러 속죄할 수 없습니다. 제 사가의 전후 상장(喪葬)은 올해에 비로소 끝났으니, 이로부터 거의 한가한 날이 있을 것이라 스스로 생각하였는데, 문득 몸에 병이 심하여 떨쳐 일어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결국 남을 시켜 제문을 가지고 가 감히 저의 무궁한 슬픔을 고하게 함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冠屨倒置。古或有之。而禍莫慘於有宋之亡。蹄迹交横。世或有之。而變莫甚於今日之亂。旣有非常之禍。非常之變。則必有非常之賢。出而扶持之。使綱常一脉。不墜於天下萬世。宋之文山先生。今之勉庵先生。卽非其人耶。先生以蘖門高弟。重翁遊從。淵源門路。最爲端的。口傳心授。涵厚資深。蘊之爲德行。行之爲事業者粹然一出於正大光明之域。自日用典禮。至古今事變。自上古典訓。至近儒議論。包羅浸淹. 該貫愽通。而其原委曲折。向背取舍。皆篤信師說。守而傳之。以存儒門一條正脉者。先生賜也。先生立朝。曾未幾日矣。見時事日非。憂憤慷慨。前後四十年。知無不言。言無不讜。雖鼎鑊在前。嶺海在後。而莫之顧也。其言雖不見用。而有以聳褐夫之觀瞻。醒一世之心目者。先生賜也。其退閑林樊也。及門請業。傾國坌集。誘掖提絜。諄諄不倦。使後生來裔。知有方向者。先生扶持之力。豈適今日事而已哉。遺韻餘烈。著之在書。傳之在人。經千秋閱萬世。而可以與泰岳爭其高矣。可以與日星爭其光矣。嗚呼痛哉。先生棄斯世。斯世其終爲夷狄之域耶。先生棄斯人。斯人其終爲禽獸之類耶。天旣降先生。使綱常不墜。則或者因此而綱常之道。乃復大明於天下耶。天心未可知。氣運未可必。未知先生之靈。返元朝眞。合鬼神贊造化。有以挽回轉移於㝠㝠之中也耶。痛矣痛矣。義林崎嶇殘生。隔在千里。雖未有負笈踵門之日。而納書請敎。源源不賛。今三十有餘年耳。至再昨歲。疾病喪禍。連綿荐疊。一年之內。殆無間日。是以近焉。而不得奔勞於同省之內。遠焉而不得趍候於絕域之外。大震懼大驚動。種種至此。而恬然在家而不知。辜負至此。無以可贖。私家前後喪葬。臨歳始畢。自謂從此而庶有間日。旋以身憂沈苦莫振。竟不免因人操文。敢告區區無窮之悲。 금수의 자취 오랑캐가 마음대로 설치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청나라나 일본 등의 외세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송(宋)나라 구규(丘葵, 1244∼1333)의 시에 "거북 규범, 말 그림 같은 상서가 모두 안 보이니, 짐승과 새 발자국만 참으로 분분하네.[龜範馬圖俱寂寂, 獸蹄鳥跡正紛紛.]"라고 하였다. 《釣磯詩集》 문산 선생(文山先生) 남송(南宋)의 충신 문천상(文天祥, 1236∼1282)을 말한다. 문산은 그의 호이다. 그는 송 이종(宋理宗) 때 우승상(右丞相)으로 화의(和議)하러 원(元)의 궁중에 갔다가 포로가 되었으나 밤에 도망쳐서 온주(溫州)로 돌아왔다. 익왕(益王)이 즉위하여 그를 좌승상(左丞相)에 임명하고 강서(江西)의 도독(都督)으로 삼았으나 또 원군에게 패전하였다. 위왕(衛王)이 즉위하여서는 신국공(信國公)의 봉(封)을 받고 조양(潮陽)에 주둔하였다가 원장(元將) 장홍범(張弘範)에게 패전하여 포로가 되어 연경에 3년 동안 억류(抑留)되었으나, 끝내 굴하지 않고 정기가(正氣歌)를 지어 자신의 충절(忠節)을 나타내고 죽었다. 《宋史 卷418 文天祥列傳》 벽문(蘗門) 이항로(李恒老, 1792∼1868) 문하를 말한다. 정확(鼎鑊) 형벌의 도구로 사람을 삶아 죽이는 가마솥이다. 영해(嶺海) 중국 오령(五嶺)의 남쪽이나 근해(近海)의 변지(邊地)로, 험난한 땅 혹은 궁벽한 귀양지를 가리킨다. 조진(朝眞) 도교에서 진인(眞人)을 알현하는 것, 혹은 불가(佛家)의 좌선(坐禪)처럼 도가의 방식대로 수련하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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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남 최원칙에 대한 제문 祭溪南崔元則文 오호라! 공은 말세에 우뚝하게 태어나 천품이 도에 가까웠고 문로가 이미 발라 능히 함양함에 방도가 있었습니다. 단후(端厚)하고 장묵(莊黙)하여 위대하게 산립(山立)36)의 기상이 있었고, 온량(溫良)하고 화락[愷弟]하여 성대하게 봄기운이 불어오는 기운이 있었습니다. 바라봄에 공경할 만하니 도가 있는 기상이 되는 줄 알겠고, 나아감에 사랑할 만하니 덕 있는 군자가 되는 줄 알겠습니다. 나이가 더욱 들수록 덕은 더욱 성대하고, 몸이 더욱 막힐수록 도는 더욱 형통하여 사문의 일맥을 우주가 회양(懷襄)37)하는 가운데서 실추되지 않도록 함이 있었으니, 공은 여기에 대해서는 아마 유감이 없어 생순사안(生順死安)38) 처를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오호 통재라! 사촌(沙村)39)에서 입설(立雪)40)하고 진구(珍邱)에서 스승을 모셨으니, 옛적 어느 날이었던가? 산이 무너졌으니 누구를 우러를까? 벗들을 떠나 쓸쓸히 홀로 지낸지 몇 년이 되자, 옛 학업을 마치지 못한 것을 탄식하고 동지들이 더욱 멀어짐을 개탄하여, 이에 수시로 강론하며 모일 계획을 하였는데, 영남의 신안사(新安社)·뇌룡정(雷龍亭)과 호남의 담대헌(澹對軒)·영귀정(詠歸亭), 방장산·쌍계사·화엄사 등이 모두 그런 곳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선 세상이 혼란하다고 정지하였으니, 어찌 혼란이 끝날 기약이 없고 공이 이미 먼저 갈 줄 알았겠습니까. 우리들이 백수(白首)의 여생에 간관(間關)41)으로 서로 따르며 구구한 세한(歲寒)의 계획42)으로 삼았던 것이 지금은 모두 선천(先天)의 뜬구름이 되었습니다. 뒤에 남은 모래와 자갈 같은 사람43)은 누구를 통하며 누구44)를 의지하겠습니까. 더구나 회양(懷襄)의 경색이 나날이 더욱 심하여 눈으로 차마 볼 수 없고 귀로 차마 들을 수 없음에랴! 단지 덜컥 죽어 공과 함께 팔뚝 잡고 나란히 유람하기를 살았을 때와 같이하려고 하니, 조만간 공은 기다리시라. 嗚呼。公挺生叔世。天資近道。門路旣正。克養有方。端厚莊黙。偉然有山立之象。溫良愷弟。藹然有春噓之氣。望之可敬。知其爲有道氣象。卽之可愛。知其爲有德君子。年彌衰而德彌盛。身益否而道益亨。使斯文一脉。有以不墜於宇宙懷襄之中者。公其於此。庶乎無憾。而可以爲生順死安處矣。嗚呼痛哉。沙村立雪。珍邱侍瑟。昔何日矣。山頽安仰。離索有年。歎舊業之未卒。慨同志之愈遠。乃爲隨時講聚之計。嶺之新安雷龍。湖之澹對詠歸。方丈雙溪華巖。皆非其地耶。行之未幾。姑以世亂停止。豈知亂無了期而公已先逝耶。吾輩以白首殘年。間關相從。以爲區區歲寒之計者。今皆爲先天浮雲矣。沙石在後。誰因雖依。況懷襄景色。日甚一日。目不忍見。耳不忍聞。只欲溘然歸化。與公把臂倂遊。如在世時。早晚公其待之。 산립(山立) 주희(朱熹)의 〈정명도화상찬(程明道畫像贊)〉에 "양기가 만물을 기르듯 하고 산처럼 우뚝 섰으며, 옥빛처럼 아름답고 종소리처럼 쟁쟁하였네.[揚休山立, 玉色金聲.]"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회양(懷襄) 회산양릉(懷山襄陵)의 준말로, 재앙이 매우 큼을 뜻한다. 《서경》 〈우서(虞書) 요전(堯典)〉에 "넘실거리는 홍수가 널리 해를 끼쳐 거세게 산을 에워싸고 언덕을 넘는다.[湯湯洪水方割, 蕩蕩懷山襄陵.]"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생순사안(生順死安) 도에 입각하여 살다가 편안한 마음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뜻으로, 《논어》 〈이인(里仁)〉에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라는 공자의 말에 대해서 주희(朱熹)가 "도는 사물의 당연한 이치이니, 참으로 이것을 얻어 듣는다면, 살아서는 이치에 순하고 죽어서는 편안하여 다시 남은 한이 없을 것이다.[道者事物當然之理, 苟得聞之, 則生順死安, 無復遺恨矣.]"라고 주석한 말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말은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살아서는 천리(天理)에 따라 일을 행하고, 죽을 때에는 마음 편히 부끄러움이 없다.[存吾順事, 沒吾寧也.]"라고 사용하였다. 사촌(沙村) 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에 있는 마을이다. 입설(立雪) 정문입설(程門立雪)의 준말이다. 송나라 유작(游酢)과 양시(楊時)가 처음 정이(程頤)를 찾아갔을 때 마침 정이가 눈을 감고 앉아 있으므로 두 사람은 인기척을 내지 않고 서서 기다렸는데, 정이가 눈을 떴을 때는 문밖에 내린 눈이 한 자가량이나 쌓여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정문입설'이라는 유명한 고사로,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宋史 卷428 楊時列傳》 간관(間關) 《시경》 〈소아(小雅) 차할(車舝)〉에 "덜커덩 수레 걸쇠여, 예쁜 막내딸을 생각하여 가도다.[間關車之舝兮, 思變季女浙逝兮.]"라는 말이 나오는데, 수레에 걸쇠를 설치하는 소리이다. 세한(歲寒)의 계획 세한은 해가 저물어 가는 한겨울의 매운 추위를 이르는 말인데, 노년의 지조를 비유한다. 《논어》 〈자한(子罕)〉의 "해가 저물어 날씨가 추워진 다음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라고 한 말에서 유래하였다. 뒤에……사람 원문의 "사석재후(沙石在後)"를 풀이한 말이다. 진(晉)나라 왕탄지(王坦之)와 범계(范啓)가 서로 앞을 양보하면서 걸어가다가 뒤에 처지게 된 왕탄지가 "곡식을 까불며 바람에 날리면 겨와 쭉정이가 앞에 있게 마련이다.[簸之颺之, 糠粃在前.]"라고 한마디 하자, 범계가 "조리질을 하며 물에 흔들면 모래와 자갈이 뒤에 있게 마련이다.[淘之汰之, 沙礫在後.]"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世說新語 排調》 누구 저본에는 '雖'로 되어 있으나 '誰'의 오류로 보고 수정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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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애 민 참판에 대한 제문 祭沙厓閔參判文 하늘이 현철(賢哲)을 내는 것은 장차 이 세상에 쓰이고 이 사람을 진작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순박한 시대 이후로 양(陽)의 덕이 점점 박해져 비록 이룰 수 있는 자질이 있어도 능히 이룰 수 있는 지위가 없습니다.오호라! 선생은 채와(菜窩)45)의 조카이고 매문(梅門)46)의 고제로 이른 나이에 뜻을 세워 출입하여 가르침을 받았으니, 문로가 바르고 확실하며 조예가 정밀하고 깊었습니다. 이윽고 석갈(釋褐)47)하고 조정에 올라서는 명량(明良)48)이 서로 만났고, 만년에 높이 발탁되어 아경(亞卿)49)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도를 행할 책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고 또한 천년에 한 번 만났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머뭇거리고 배회하며 오래지 않아 인년(引年)50)하였으니, 오호라! 그 덕이 있고 그 지위가 없으면 그만이지만, 그 덕이 있고 그 지위가 있는데 또한 당시에 행해짐이 있지 않았으니, 모르겠으나 하늘이 백성들로 하여금 장차 한번 다스려지는 아름다움을 다시 볼 수 없게 하려는 것입니까?돌아와 전원에 누워 문을 닫고 스스로 함양하며 노사(蘆沙) 기 선생(奇先生)과 왕복하며 강마하면서 나이가 부족한 줄도 몰랐습니다. 오호라! 이와 같은 희조(熙朝)51)의 명경(名卿)과 유문(儒門)의 장덕(長德)으로 유연히 남쪽 먼 곳 산곡(山曲)의 사이에 자취를 감추었으나 인심을 감복시키고 세도를 진정시킨 것은 어떠합니까. 그렇다면 현철이 세상에 쓰이고 사람을 진작시키는 것은 비록 지위에 있지 않더라도 그 이로움과 은택이 미치는 것은 실로 차이가 없습니다.오호라! 지금은 끝나버렸으니, 이 세상의 무궁한 근심을 어찌하며, 후학들의 다하지 못하는 슬픔을 어찌하겠습니까! 天生賢哲。將爲需斯世而作斯人也。淳古以降。陽德浸薄。雖有可致之質。而無有能致之位。嗚呼。先生以菜窩從子。梅門高弟。早年立志。出入薰染。門路端的。造詣精深。旣而釋褐登朝。明良相遇。晩際升擢。至於亞卿。此不可謂非行道之任。而亦不可謂非千載之一會也。然逡巡徘徊。非久引年。嗚呼。有其德而無其位則己。有其德有其位。而亦未有見行於時。未知天下使民將復見一治之美耶。歸卧田廬。杜門自養。與蘆沙奇先生往復講磿。不知年數之不足。嗚乎。以若熙朝各卿。儒門長德。悠然歛跡於南荒山曲之間。而所以感服人心鎭定世道者。爲何如哉。然則賢哲之於需世作人。雖不在位。而其利澤之及。固無間也。嗚呼。今焉己矣。奈斯世無窮之憂。奈後學不盡之悲。 채와(菜窩) 민백우(閔百佑, 1779~1851)를 말한다. 호는 교채와(咬菜窩),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저서로는 《교채와유고》가 있다. 매문(梅門)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의 문하를 말한다. 석갈(釋褐) 천한 자가 입는 모포(毛布)인 갈옷을 벗는다는 뜻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함을 이른다. 명량(明良) 명군(明君)과 양신(良臣)으로, 《서경》 〈우서(虞書) 익직(益稷)〉에서 고요(皐陶)가 제순(帝舜)에게 간언하기를 "원수가 현명하면 고굉이 어질어서 모든 일이 편안할 것입니다.[元首明哉, 股肱良哉, 庶事康哉!]"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원수(元首)'는 임금을, '고굉(股肱)'은 신하를 비유한다. 아경(亞卿) 조선 시대 정경(正卿)인 판서(判書)에 버금간다는 뜻으로, 육조(六曹)의 참판(參判)과 그 동급의 벼슬을 이르는 말이다. 인년(引年) 늙어서 관직을 물러나는 치사(致仕)를 뜻한다. 희조(熙朝) 잘 다스려진 왕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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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成殿內修理記 昔朱夫子理輯書院慕謁先聖擢大匠修繕學舍誘進後生其尊道興學之效何嘗賴一世而止哉夫有國而有邑有邑而有校校者敎也而大成文宣王妥靈之所也淸肅孰重於是惟我箕城素以禮義之鄕知尊夫子而百里之內尙傳絃叚之聲千載之下不墜俎豆之禮人倫賴焉而明士紀由之而立矣挽近以來校樣不古講學之節幾乎弛廢士類之歎方深未暇修理之擧矣幸我明府莅官明年政通人和見此校樣遂畵修理之策捐廩自當類月而訖功此皆慕先聖進後學之深意也自是之後士林知所依歸斯道若將復明於戱休哉縣人頌功歸之明府明府爲誰延安金澤秀也惟願諸君子效此誠意勉勉嗣守則鄕俗其庶幾乎 庚寅仲春旣望晉陽鄭在日書○都有司晉州鄭樺奎掌議利川徐鳳寬坡平尹相鼐色掌竹山安基宖咸平魯淵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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碑銘【未及立碑而揭板于東齋故姑付此】 州之有序猶國之有學大小雖殊規模則一魯泮有採芹之謠周廱有菁莪之詩此皆作興人才之化而通天下尊奉者惟 夫子廟是已猗歟我東法先王之治重先聖之道上自國都下至州縣莫不有學校而立四雅而隷三以培士氣而明人倫者也玆土卽湖南之一小縣而山川明麗風俗淳古咸知尊崇之意而幸玆延安金公學富經術才兼循良奉 命南來以興學校爲先務崇奉之節修理之規靡不庸極殿壁之傾頹者必改塗而堅之地衣之弊壞者必更新而舖之移安還安之際亦皆務盡誠敬俾中禮儀於是西序東膠奐矣維新先聖先師洋乎如在環校門而觀者咸曰賢哉我候其他政治卽此一臠可知全鼎矣以候之命終始幹事者似仔李奎燮也一日言於鄕曰使咸之多士鼓舞於鳶飛之天而幸峯昇平之樂折旋於蟻封之地而粗知趍向之方者皆候之功功不可不銘也僉曰諾建閣竪碑以表來世不朽之意屬余記之自顧蒙陋之質猥參齋長之任有不敢以不文辭謹書顚末如右云 崇禎紀元後五庚寅肇秋東萊鄭海朝記○都有司東萊鄭海朝掌議東萊鄭寧朝竹山安時鎔色掌坡平尹相福咸平李澐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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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5) 孔子萬世之師也人不學則已學則當以孔子爲法顔曾思孟周張程朱天下之善學孔子者也本朝先正一國之善學孔子者也今載誌諸公亦一鄕之善學孔子者也所善學者講明其道尊慕其人而已而鄕之有校豈非其所乎蓋諸公一鄕之俊秀者也出入乎斯朝望而參謁春秋而釋奠凡繫校宮之事靡不用極周旋譬若人子之善孝其親者幹蠱之勤致祭之誠自有不得而不然者矣所謂善學者果非也耶此與享廡之聖賢雖學有大小業有輕重而亦旣爲一致之徒也則豈可終泯其名而不聞之乎此誌之所以作而諸公之附於後也顧此無似從於後者亦已有年矣其於道則無聞而尊慕之誠或有秉彝存焉故當此梓役止述曠感一端而若夫校宮之圖俎豆之儀經歷之事想開卷瞭然矣不必贅焉癸酉十月下浣商山金基鍑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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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7) 校之有誌宜矣我東五百載文運之根基開於麗季何幸晦軒安先生出以刱明斯道爲己任靡不勤誠深歎學問之衰頹募贍學錢復興國學又以餘資遣人支那畫孔夫子及七十子之像而來以祀之又購六經子史祭器與樂器敎授生徒其功於儒學實爲不可沒者逮我 太祖立國之初國有館學鄕必有校建設聖廟講聖學田是而儒風振作綱倫有序禮義有節風化敦尙庶幾與鄒魯侔隆矣美事休蹟不爲不多在昔盛時校之無誌亦非一欠事耶嗚呼人世累遷大陸沈矣竊憾文獻之無徵一鄕僉章甫大懼聖廟尊衛之蹟愈久湮沒謀所以壽其傳荷校讐某姓名掌財某姓名贊而成之者一鄕之僉彦也余亦濫竿其間修此誌者敍其春秋釋奠儀節之如何繪圖殿宇從祀諸賢之可記文字終之以任司選遞之案其所關係無巨細罔不畢載分爲上下編使覽之者瞭然可據豈尋常他史之可此也寔吾一鄕之所幸也使一鄕之所幸推之於世皆有興感者矣癸酉冬十月 日咸平李鍾河謹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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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11) 竊惟念聖人之道顯晦有時而道之顯之晦之何嘗不在人也是以三代後歷漢唐千載餘雖不無講求之人而不能大顯曁于有宋五星聚精洛閩諸賢能繼不傳之統以開無窮之緖道益廣大崇奉之道無復餘蘊而自後寥寥數百載 國朝儒賢輩出亦能繼其統尋其緖道以之顯而其崇奉之道則殆後世之莫及焉故國都州縣學校之設其廣如此夫何挽近滿庭春草不待安先生而發歎道之爲晦爲如何雖然道未嘗以晦而永亡今所以蒐輯校宮可{扌+處}文字以成此誌誌之爲誌無非求道之具其於此立脚焉存心焉則庶覬得宗廟之美百官之富而道將不晦而顯當日刊誌諸賢之志不其在此此爲跋癸酉十月下浣靑松沈棋珍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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侯供辭【十月八日上京十一月十五日還官】 白等【矣身】待罪下邑奉職無狀乃以 聖廟失火之災伏承 王府淑問之命惶懍震越無所容措是白乎旀本鄕校在邑治五里許廟庭正門及東西兩夾門頹圮已久故【矣身】赴任之後卽爲修改隔內外之限嚴開闔之節而墻外人家本自闊遠至於戒火事初非意慮之所到是白加尼前月十二日夜半忽聞驚報登時馳進是乎白則火起於東邊高柱延及於風板橫樑而勢熖已熾殆不可響邇故卽奉 五聖位板及東西廡各位位板于齋室毁瓦撤椽僅卽撲滅是白乎所莫重之地有此意外之災常時之不能檢飭一則【矣身】之罪二則【矣身】之罪惶恐遲晩是白齊 嘉慶二十一年丙子十月二十一日修改上樑主倅通訓大夫行縣監姜時煥鄕儒都監李元培【字克養號 咸平人進士亨立五代孫】齋任安仲魯【字 號 竹山人文惠公元衡後】鄭潤誠【字君伯號 晉州人晩好萬達孫】李鎭泰【字 號 咸平人進士好仁後】李基五【字 號 咸平人進士好仁後】品都監安錫圭【字 號 竹山人文惠公元衡後】座首金相郁【字 號 光山人校理錫元後】別監安致道【字 號 竹山人文惠公元衡後】典穀韓昌禹【課年申奉漢監官車仁敬】色吏金漢權戶長李命新吏房牟孝弼承發趙吉辰【汗丈奴好成庫直奴命云使令韓今得木手魯永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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