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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와38) 민 어른【삼현】에게 올림 上謙窩閔丈【三顯】 봄 초에 나아가 인사드린 것은 실로 수년 간 앙모하던 나머지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일정이 너무 촉박하여 평온하게 가르침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물러나고서 섭섭한 마음이 지금까지 그치지 않습니다. 한가로이 수양하시며 덕을 닦는 체후는 시절 따라 강녕하시며, 자제분의 제절(諸節)은 두루 편안하십니까? 앙모하는 구구한 마음 가눌 수 없습니다. 소생은 객지에서 칩거하느라 다른 곳에는 또한 조금도 힘을 기울이는 곳이 없고 오직 떠도는 객지 신세는 사람으로 하여금 견디기 어렵게 합니다. 아, 덕망 있는 선배는 지금 모두 세상을 떠나고 오직 존장(尊丈)만 도를 가정에서 전수받아 연세와 덕망이 매우 높아 후생이 덕을 상고할 곳이 아직 있습니다. 소생은 세파에 시달려 비록 스스로 힘쓰기 어렵지만 마땅히 종전에 앙모하는 정성을 애써 펴서 이로부터 의지할 계책을 삼고자 하는데, 받아주시겠습니까. 다시 바라건대 도를 위해 더욱 건강하시어 구구한 이를 위로해 주십시오. 春初晉拜。實出數年慕仰之餘。而行期甚促。未得穩承薰陶。退而悵歎迄今亡已。未審燕養德體對時康寧子舍諸節均安溯仰區區不任生旅蟄他所。亦且未見其毫分進力處。而惟有離旅之懷。令人難遣。嗚呼。先輩宿德。今皆云亡。而惟尊丈道傳家庭。年德方高。後生考德。尙有所在。小生困於世故雖難自力。然當有以勉圖其從前慕仰之誠。以爲自此依賴之計。幸有以受之否。更乞爲道增康。以慰區區。 겸와(謙窩) 민삼현(閔三顯, 1815~?)으로, 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중덕(仲德), 호는 겸와이다. 기정진의 문인이다. 민백우의 둘째 아들이며, 전라도 화순 사평에서 살았다. 학행으로 사헌부 지평에 증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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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 김문현98)【규원】과 노닐다 與金友文現【奎源】遊 강남의 아침 비에 나그네는 옷을 추어올리고 (江南朝雨客褰衣)이끼 낀 뜰을 소제하려 사립문을 여네 (爲掃苔庭闢草扉)생애는 분수에 따르니 마음은 외물과 다툼이 없고 (生涯隨分心無競)학업은 과정이 있으니 지의는 돌아갈 곳이 있네 (學業登程志有歸)태곳적 정신은 바람과 달 속에서 좋고 (太古精神風月好)석양녘 경치는 이내와 구름 속에서 희미하네 (夕陽景色靄雲微)부춘산99)은 어디인가, 내 은거하려 하니 (富春何處吾將隱)그대 가서 한번 옛 낚시터를 보라 (君去試看古釣磯) 江南朝雨客褰衣。爲掃苔庭闢草扉。生涯隨分心無競。學業登程志有歸。太古精神風月好。夕陽景色靄雲微。富春何處吾將隱。君去試看古釣磯。 김문현(金文現) 문현은 김규원(金奎源, 1852∼1895)의 자이다. 부춘산(富春山) 후한(後漢) 때 은사(隱士)인 엄광(嚴光)이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의 부름을 완곡하게 거절하고 부춘산에 들어가 은거하며 동강에서 낚시로 소일하였다. 8구에 낚시터가 있으므로 낚시한 이야기가 주석에 보여야 할 듯합니다.) 『後漢書 卷83 逸民列傳 嚴光』예로부터 고사(高士)가 은거하는 곳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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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심【동일】에게 보냄 與奇道心【東一】 얼마 전 감사하게도 좋은 과일을 보내서 병중에 있는 사람의 입맛을 돋우어 주시고 뒤이어 얼마 되지 않아서 친히 왕림하여 병상(病狀)을 물으셨습니다. 이러한 성의는 절대 우연이 아니니 감사한 마음을 어찌 말로 다하겠습니까. 댁에서 지난번에 겪은 일은 실로 사람의 도리로는 차마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찢어질 듯한 심정을 어떻게 견디고 계십니까. 정경(情景)을 생각하면 사람을 눈물짓게 합니다. 그러나 장수와 요절은 천명(天命)에 달려 있고 서참(舒慘)35)은 운수(運數)에 달려 있습니다. 여기에 어찌 인력(人力)이 용납되겠습니까. 바라건대 모름지기 마음을 너그럽게 하고 많이 드시면서 잘 조섭하여 만년(晩年)의 옥체를 보호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후사를 잇는 일36)은 우리 형이 당장 치러야 하는 큰일이고 만년의 급선무입니다. 늦추지도 말고 서두르지도 말아 사의(事宜)에 알맞게 하십시오. 日者。惠送佳果以助病味。繼而未幾。親自枉屈。以問病狀。此意極不偶然。感感何喩。宅上曩者所遭。實是人理所不忍當之事。其如割之情。何以堪遣。言念情景。令人動涕。然脩短有命。敍悿有數。此豈人力可容之地耶。望須寬心坦懷。加餐善攝。以爲珍葆晩景之地。如何。繼後一節。此是吾兄今日之大事。晩年之急務。無緩無速。以適其宜也。 서참(舒慘) 《문선(文選)》 장형(張衡)의 〈서경부(西京賦)〉에 "사람이 봄과 여름에는 쾌활하고 즐거우며, 가을과 겨울에는 근심에 젖고 슬퍼한다.【夫人在陽時則舒, 在陰時則慘.】"라고 하였는데 복(福)과 화(禍), 상(賞)과 벌(罰), 낙(樂)과 고(苦), 청(晴)과 음(陰), 풍(豐)과 겸(歉) 등 두 개의 대립되는 개념을 포괄적으로 가리킨다. 후사를 잇는 일 직계의 아들이 없어 양자를 들여 가계(家系)를 잇는 일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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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종제 경방과 노닐다 夜與敬方弟遊 동산에 핀 꽃은 화사한데 (灼灼園中花)시냇가에 지은 집은 쓸쓸하네 (寥寥溪上家)그대를 만나 밤 책상에 마주하니 (得君開夜榻)정취가 더욱 맑고 아름답네 (意味轉淸佳) 灼灼園中花。寥寥溪上家。得君開夜榻。意味轉淸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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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중에 한식을 만나다 途中寒食 도중에 한식을 만나니 (行路逢寒食)집집마다 다투어 묘소에 가네 (家家競上墳)우리 가야동을 생각하니 (想我伽倻洞)사람은 없고 풀만 절로 향기로우리 (無人草自薰) 行路逢寒食。家家競上墳。想我伽倻洞。無人草自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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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사문【교신】에게 답함 答具士文【敎信】 인편이 있으면 항상 편지를 보내주니 오랜 벗이 나를 향하는 마음에 대해 실로 감탄이 이네. 인하여 부모를 모시고 학문을 하면서 줄곧 건강이 좋다고 하니 더욱 마음에 위안이 되네. 나는 한 가지 병도 차도가 없어서 날로 더욱 심해지니 염라대왕의 부름이 반드시 머지않을 것이기에 다만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네. 머리를 감추고 자취를 숨길 때 독서만한 것이 없다고 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대단히 지극한 논의이네. 참으로 이미 이와 같다면 꿋꿋이 서서 새로 출발함이 다만 자신에게 달렸으니 이는 마치 팔을 굽히고 펴는 것처럼 쉬울 것이네.72) 어찌 다시 훗날을 기다릴 필요가 있겠는가. 어진 그대가 근래 책을 읽는 과정에 대해 자세히 할 수는 없으니, 보아야 하는 책을 어떻게 정해 줄 수 있겠는가. 이 또한 그대가 스스로 헤아려 처리함에 달려 있네. 다만 바라건대 이렇게 젊은 좋은 시절에 의지를 굳게 세워서 끝내 원대함에 이르러 집안의 기대하는 뜻에 부합하는 것이 어떻겠는가.질문 : "사랑을 지극히 하면 마음에 보존되고 정성을 지극히 하면 나타나게 된다. 어찌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73)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정성을 지극히 한다[致慤]는 말에서의 정성은 곧 경(敬)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앞에서는 애(愛)와 경(敬)을 겸하여 말하였는데, 뒤에서는 경 한 글자로 문장을 맺은 것은 어째서입니까.답변 : '각(慤)'은 참으로 정성스럽다는 뜻이니, 사랑을 지극히 하고 정성을 지극히 하는 것은 경이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없네.질문 : "어른이 주시면 어린이와 천한 자는 감히 사양할 수 없다."74)고 하였는데, 대개 사양한 후에 받아야 하는 것은 예의로 보면 참으로 그렇습니다만 '감히 사양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어째서입니까.답변 : 사양한 후에 받는 것은 붕우의 예이며, 어른을 섬기는 도리가 아니네. 有便每有垂訊。故人相向之意。實可感歎。因詢侍中學履。連護增祉。尤以爲慰。義林一疾不退。日益沈劇。閻羅消息。行必不遠。只惟俟之而已。縮首晦蹤。莫如讀書。此誠切至之論。誠旣如此。則着足發軔。只在自家如臂屈伸而已。何用復爲等待之有。近來賢者讀書程曆。未及詳知。則所看之書。何以指定耶。此亦在賢者自料之如何耳。惟願趁此靑陽好時節。牢着脊梁。卒究遠大。以副家庭責望之意如何。致愛則存。致慤則著。著存不忘乎心。夫安得不敬乎。盖致慤之慤卽指敬。然則上以愛敬兼言。而下以敬一字單結何。慤是誠慤之意。致愛致慤。非敬不能。長者賜。少者賤者不敢辭。盖辭而後受。禮固然也。而不敢辭云者何。辭而後受。朋友之禮。非事長之道。 팔을……쉬울 것이네 《심경부주(心經副註)》 〈안연문인(顔淵問仁)〉에서 "그러나 기(己)는 인욕(人欲)의 사(私)이고 예는 천리의 공(公)이니, 한 마음의 가운데에 두 가지가 병립할 수 없으나 그 서로간의 차이는 털끝만큼도 못된다. 여기에서 나오면 저기로 들어가고, 저기에서 나오면 여기로 들어오니, 이는 극(克)과 불극(不克), 복(復)과 불복(不復)이 손을 뒤집는 것과 같고 팔뚝을 굽히고 펴는 것과 같이 쉽다. 그리하여 자신이 진실로 하고자 할진댄 그 기틀이 참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을 뿐이니, 어찌 타인이 관여할 바이겠는가.〔己者 人欲之私也 禮者 天理之公也 一心之中 二者不容竝立 而其相去之間 不能以毫髮 出乎此則入乎彼 出乎彼則入於此矣 是其克與不克 復與不復 如手反覆 如臂屈伸 誠欲爲之 其機固亦在我而已 夫豈他人之所得與哉〕"라고 하였다. 사랑을……있겠는가 《예기》 〈제의(祭義)〉에 "선왕의 효도는 부모님의 안색을 눈에 잊지 못하며, 소리가 귀에 끊이지 않으며, 마음과 좋아하시던 것을 마음에 잊지 못하니, 사랑을 지극히 하면 보존되고 정성을 지극히 하면 나타나듯이 된다. 나타나고 보존하는 것을 마음에 잊지 않는데, 어찌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先王之孝也, 色不忘乎目, 聲不絶乎耳, 心志嗜欲, 不忘乎心, 致愛則存, 致慤則著. 著存不忘乎心矣, 夫安得不敬乎?〕"라는 하였는데, 이 구절은 《소학》 〈명륜〉에 다시 실렸다. 어른이……없다 《소학》 〈명륜〉에 보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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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경【중엽】에게 답함 答曺泰卿【重燁】 보내준 편지에서 '외적인 사고와 망령된 생각이 흉중에서 서로 싸운다.'고 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보통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겪는 걱정거리라네. 반드시 구차하게 억제하려다가 더욱 분란함에 이르게 하지 말고, 다만 경(敬)을 위주로 하여 앎을 지극하게 하는 공부에 더욱 깊이 뜻을 두고서 조금도 중단하지 않는다면 이른바 망령된 생각이란 것은 점점 가볍게 될 것이니 정자가 말한 '체득이 깊으면 유혹의 작음을 알 수 있다.'75)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네. 뒤에 기록하여 보낸 여러 조목은 아마도 모두 옳은 듯하니, 근래 조예의 깊음을 볼 수 있네. 이는 다만 그대가 참으로 노력하여 이른 것뿐만이 아니라 또한 종유한 사람들의 도움이 없지 않네. 두 번째 조목에서 '음양은 하나의 도이다.'76)라는 말은 즉 주자(周子)의 '음양은 한 태극이다.'77)라는 뜻이니, 앞에 기록한 것이 옳네. 여덟 번째 조목인 기질설은, 대저 기가 리를 따른다면 기가 곧 리이니, 별도로 기질을 말할 필요가 없네. 아홉 번째 조목인 미발설은, 대저 중인(衆人)은 미발의 때가 없으니, 만약 있다면 성인과 같네. 열 번째 조목인 용은 한가지인데, 문명의 상(象)으로 말하면 양이 되고, 물속의 생물로 말하면 음이 되네. 무릇 사물은 음 안에 양이 있고, 양 안에 음이 있으니, 분명하게 나뉘어 음만 되거나 양만 되는 이치는 없네. 이 모두 의리의 핵심인데, 이와 같은 나의 억견이 어찌 오류가 없겠다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다시 자세히 살펴보게나.질문 : 《대학》의 〈치국장〉에서는 '사랑[慈]'을 말하였고,78) 〈평천하장〉에서는 '고아를 돌본다.[恤孤]'를 말하였습니다.79)답변 : 성인이 효를 말하고 자(慈)를 말하지 않았으니, 대저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아는 것은 부모의 사랑만한 것이 없네. 그러므로 이어지는 문장의 앞에서80) '억지로 함을 빌리지 않음81)을 말하는 곳에서 자(慈)를 들어 밝혔으니 미뤄 넓힌다는 의미이며, 아래 문장에서 '노인을 노인으로 대하고 어른을 어른으로 대함'을 말하는 곳에서 어린이를 어린이로 대한다고 말하지 않고 다만 고아를 돌본다고 말한 것이네.질문 : 〈비부가여사군장(鄙夫可與事君章)〉의 장하주(章下註)에서 호씨는 근재지의 말을 인용하여 "공훈과 명성에 뜻을 둔 자는 부유함과 귀함이 그 마음을 더럽힐 수 없다.……"라고 하였는데, 공훈은 부유함, 귀함과는 서로 다르지만 명성은 즉 부유하여도 또한 명성이 나고 귀하여도 또한 명성이 나니 그렇다면 부유함, 귀함에 뜻을 두는 것은 공훈과 명성에 뜻을 두는 것과 또한 같습니다.답변 : 공훈과 명성, 부유함과 귀함은 비록 맑고 탁함이 같지 않지만 이로움을 추구하는 마음은 같네. 근재지의 생각은 의리에 뜻을 두고 부유함과 귀함이 그 마음을 바꾸지 못하는 옛날의 호걸의 선비로서 말한 것이니, 장량이나 제갈량 같은 무리들이네.질문 :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82)라 하였는데, 예를 알지 못하거나 말을 알지 못하면 모두 군자가 아니거늘, 오직 명을 알지 못한다는 말 아래에 군자가 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답변 : 예를 알지 못하거나 말을 알지 못하면 참으로 군자가 될 수 없네. 그러나 한번 예를 잃거나 한번 말을 실수하는 것은 비록 군자라도 면할 수 없지만 명을 아는 여부는 즉 향배와 취사의 사이에 한 몸의 큰 절개가 연관되어 있으니, 이 때문에 특별히 군자라고 말한 것이네. 示中外思妄念。交戰胸中。此固衆人通患。不必區區排抑。益致紛亂。但於主敬致知之功。深加意焉。而無容間斷。則所謂妄念。漸漸輕歇。程子所謂得深則可以見誘之小者。此也。後錄諸條。恐皆得之。可見近日所造之深。此不惟賢誠力之所到。而亦未始非遊從之助也。第二條陰陽一道。卽周子陰陽一太極之意。所錄前說爲是。第八條氣質說。夫氣之循軌處。氣卽理也。不必別言氣質。第九條未發說。夫衆人無未發時。若有之則與聖人同。第十條龍一也。而以文明之象而言。則陽也。以鱗潛之物而言。則陰也。凡物有陰中之陽。陽中之陰。無截然爲陰爲陽之理也。此皆義理肯綮。以若臆見。安保無至差繆也。更加詳確。治國章言慈。平天下章言恤孤。聖人言孝不言慈。夫不敎而自知者。莫如慈。故於上文言不假强爲處。擧慈而明推廣之義。於下文言老老長長處。不言幼幼。而特以恤孤言。鄙夫可與事君章下。胡氏引斳裁之言曰。志於功名者。富貴不足以累其心云云。功則與富貴相別。而名則富亦有聲聞。貴亦有聲聞。然則志於富貴。則志於功名。亦自在矣。功名富貴。雖淸濁不同。而其爲利心則一也。裁之之意。以古之一種豪傑之士。志乎義理。不以富貴移其心者言之。如張良諸葛亮之流。不知命。無以爲君子云云。不知禮。不知言。皆非君子。而特於不知命下云。無以爲君子。不知禮不知言。固不得爲君子。然一禮之失。一言之失。雖君子而或不免焉。至於知命與否。則向背取舍之間。一身之大節繫焉。此所以特言君子。 체득이……있다 ; 정이(程頤)가 "마음이 진중하면 외물의 가벼움을 이길 수 있고 체득한 것이 깊으면 유혹이 작음을 알 수 있다.[內重則可以勝外之輕 得深則可以見誘之小]"라고 하였다. 《二程遺書 卷6》 음양은 하나의 도이다 《이정전서(二程全書)》 〈역서(易序)〉에 보이는 말이다. 음양은 한 태극이다 주렴계의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보인다. 〈치국장〉에서는 사랑을 말하였고 《대학장구》 전 9장에 "군자는 집을 벗어나지 않고서도 나라에 교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니, 나의 효(孝)를 신하가 본받으면 임금을 잘 섬기게 되고, 제(弟)를 본받으면 장관을 잘 섬기게 되고, 자(慈)를 본받으면 대중을 잘 부리게 된다.[君子不出家而成敎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衆也]"라는 말이 나온다. 〈평천하장〉……말하였습니다 《대학장구》 전 10장에 "이른바 천하를 평안히 함이 그 나라를 다스림에 있다는 것은,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대우하매 백성들이 효를 흥기하며, 윗사람이 어른을 어른으로 대우하매 백성들이 공경함을 흥기하며, 윗사람이 고아를 구휼하매 백성들이 저버리지 않는다. 이러므로 군자는 구(矩 곱자)로 재는 도가 있는 것이다.〔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라고 하였다. 이어지는 문장의 앞에서 본문의 '상문(上文)'은 이어지는 문장의 앞 문장을 가리키고 '하문(下文)'은 이어지는 문장에서 상대적으로 뒷 문장을 가리킨다. 억지로……않음 《대학장구》 전 8장에, "〈강고(康誥)〉에 이르기를 '적자(赤子)를 보호하듯이 한다.' 하였으니, 마음에 진실로 구하면 비록 딱 맞지는 않으나 멀지 않을 것이다. 자식 기르는 것을 배운 뒤에 시집가는 자는 있지 않다.〔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 不遠矣 未有學養子而后嫁者也〕"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에 "이는 《서경》을 인용하고 이것을 해석하여, 또 가르침을 세우는 근본이 억지로 함을 빌리지 않고, 그 단서를 알아서 미루어 넓힘에 있을 뿐임을 밝힌 것이다.〔此引書而釋之 又明立敎之本 不假强爲 在識其端而推廣之耳〕"라고 하였다. 명을……없다 《논어》 〈요왈(堯曰)〉에서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알지 못하면 설 수 없으며,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라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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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견에게 답함 答金叔見 앓고 있는 것이 오래 묵은 병인가, 아니면 또 다른 병인가. 어찌 그리 수시로 증세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하면서 이처럼 지리하게 끄는가. 이는 피곤이 쌓인 나머지 혈기가 펼쳐지지 못하여 생긴 것이니, 있는 힘을 다해 조섭하여 머지않아 회복되기를 깊이 바라네. 나는 옛날의 병이 비록 약간은 차도가 있는 듯하지만 정신과 근력은 붙들어 세울 수 없는데다가 숙견이 곁에 없으니 홀로 쓸쓸하게 거처하며 더욱 의지할 곳이 없으니 어찌하면 좋은가. 대저 이 몸은 노쇠한 나이에 병으로 칩거하고 붕우들은 흩어져 떨어져 있는데, 가까운 이웃에 다행히 우리 숙견이 있어서 나를 위로하고 나를 부축해주는데 목이 마를 때 따뜻한 마음으로 적셔주는 것 그 이상이니, 이 몸이 숙견에게 의지하는 것에 대해 내 마음이 과연 어떠하겠는가. 원컨대 더욱 몸을 아끼고 조섭하여 고통 받고 있는 병이 햇볕에 비친 눈처럼 사라지길 바라네.질문 : 마음[心]과 성(性)은 하나이면서 둘인데, "심은 태극이다."83)라고 하며 또는 "성은 태극이다."84)라고 하여 분간이 없는 듯합니다.답변 : 성이 태극이 된다는 것은 나눠서 말한 것이요, 심이 태극이 된다는 것은 하나로 합하여 말한 것이네.질문 : 심과 명덕은 본래 한 사물이니, 즉 성과 정이 마음 안에 담겨 있는 것이 명덕입니까. 답변 : 심과 명덕은 본래 한 사물이라고 한 것은 대단히 명쾌하게 말한 듯하네.질문 : 성은 심의 체이며, 정은 심의 용이니, 리(理)로써 말한다면 심, 성, 정은 모두 리이며, 기로써 말한다면 심, 성, 정은 모두 기입니다.답변 : 심, 성, 정이 모두 리라고 한다면 괜찮지만, 심, 성, 정이 모두 기라고 한다면 옳지 않네.질문 : 천지간에 가득 찬 것은 광경이 드러난 것 아님이 없으니, 광경은 기가 아님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귀신이 사물에 체화(體化)되어 빠트린 것이 없는 것은 이런 이치가 아닙니까.답변 : 그렇다네.질문 : 심(心)자의 본래 명목은 성(性)과 지각(知覺)을 합쳐야 합당합니다. 그러므로 심을 기라고 해도 참으로 불가함이 없으며, 심을 리라고 해도 또한 불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심을 기라고 하니, 중점을 두는 바는 리에 있습니다.답변 : '그러나[然]' 이하는 삭제하는 것이 좋을 것 같네.질문 : 성은 심의 체이고 정은 심의 용이니 그렇다면 심의 본연은 성정의 덕이 아닙니까.답변 : 좋은 말이네.질문 : 명덕의 본질은 순수하게 신령하며 진실한 리(理)이니, 애초부터 아주 조금의 형기도 섞이지 않은 것입니다.답변 : 신령 두 글자는 삭제하는 것이 좋은 듯하니, 논한 바는 아마도 옳은 듯하네.질문 : 심은 곧 명덕이며 명덕은 곧 심이니, 애초부터 심 밖에 따로 덕이 있는 것이 아니며, 덕 밖에 따로 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가운데 나아가 명목을 세밀하게 나눠보면, 심은 도와 기(器)를 겸하였으나 덕은 다만 도로써 말하였고, 심은 리와 기를 합하였으나 덕은 다만 리로써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심은 망령됨이 없을 수가 없으나 덕은 참되어 망령되지 않고, 심은 사특함이 없을 수가 없으나 덕은 올발라서 사특함이 없습니다.답변 : 좋은 말이네.질문 : 성은 곧 정이고 정은 곧 성인데, 다만 동과 정의 구분이 있을 뿐 애초부터 판연히 두 사물이 아닙니다.답변 : 좋은 말이네.질문 : 성인의 마음은 거울이 물건을 비추는 것과 같으니, 어여쁨과 추함이 저쪽에 있습니다."공자는 조문을 가서 곡한 날에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85)라고 하였는데, 성인의 마음도 또한 밖의 상황에 구애되어 이끌려 가는 것이 있습니까.답변 : 성인의 마음은 굳어서 막힘이 없으며 또한 뒤섞여 잡스러움이 없으니, 천지의 조화가 봄에는 오로지 봄이고 여름에는 오로지 여름인 것과 같네. 그러나 운행을 점차적으로 하니, 추위와 더위에 살리고 죽이는 것이 그 때가 같지 않네. 所苦是宿證耶。或是別證耶。何其進退無常而支離乃爾。此是積瘁之餘。血氣不暢之致。千萬攝理。不遠復常。是祝是祝。義林昔者之疾。雖若少間。而精神筋力。扶竪不得。加以叔見不在傍。踽踽索居。尤無聊賴。奈何奈何。大抵此身。衰年病蟄。知舊散落。而比隣之近。幸有我叔見。爲之慰我扶我。不啻渴涸之照濡。則此身之所以奇倚於叔見者。其心果何如哉。願加愛加護。使區區見苦之證。如雪見晛也。心性一而二。而曰心爲太極。曰性爲太極。似無分間。性爲太極。是分開說。心爲太極。是合一說。心與明德。本是一物。則性情之涵於心裏者。卽明德耶。心與明德本是一物云者。恐說得太快。性是心之體。情是心之用。則心之本然。非性情之德耶。好。性者心之體。情者心之用。以理言則心性情皆理也。以氣言則心性情皆氣也。謂心性情皆理可。謂心性情皆氣不可。盈天地之間者。無非光景之露面。光景莫非氣也。而鬼神之體物不遺。非此理耶然。心字本來名目。合性與知覺而得之。故以心爲氣。固無不可。以心爲理。亦無不可。然以心爲氣。其所重則在理。然字以下。刪之似宜。性是心之體。情是心之用。則心之本然。非性情之德耶。好。明德本地。純是神靈眞實之理。而初不雜一毫形氣之爲。神靈二字。刪之似宜。所論恐得之。心卽明德。明德卽心。初非心外別有德德外別有心。就其中。細分名目。則心兼道器。而德則惟以道言之。心合理氣。而德則惟以理言。故心不能無妄。而德則眞而不妄。心不能無邪。而德則正而不邪。好。性卽情。情卽性。只有動靜之分。初非判然二物。好。聖人之心。如鑑之照物。姸媸在彼。夫子之於是日哭則不歌。聖人之心。亦有拘牽於彼者乎。聖人之心。無所固滯。而亦無混雜。如天地之化。春專於春。夏專於夏。然運行有漸。而寒暑生殺。不同其時。 심은 태극이다 소옹(邵雍)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 권14 〈관물 외편 하(觀物外篇下)〉에 ㅂ이는 말이다. 성은 태극이다 《주자어류》 권5에 보이는 말이다. 공자는……않았다. 《논어》 〈술이(述而)〉에 보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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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실【현채】에게 답함 答鄭元實【現采】 서로 모여지내다가 갑자기 헤어지니 서글픈 마음은 배나 더하여 멈추질 않네. 인하여 부모를 모시고 공부하면서 줄곧 건강하다고 하니, 실로 걱정하던 마음이 놓이네. 나는 모든 것이 전날과 같네. 보내준 편지에서 길고 자세하게 말한 것에서 뜻을 세워 부지런히 공부함을 알 수 있으니 기특한 마음이 그치지 않았네. '마음은 하늘과 같다.…'라 하였는데,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네. 그렇다면 그대처럼 말하여도 무방하고 애장(艾丈)86)처럼 말하여도 무방하니, 어찌 일정하여 바뀌지 않겠는가. 본연의 심(心)과 기질의 심이라고 한 부분도 또한 자못 온당하지 않네. 성은 하나인데, 다만 그 성을 가리키면 본연의 성이라 하고 기를 겸하여 가리키면 기질지성이라 하네. 지금 만약 이로써 비준하여 '다만 그 심을 가리켜 본연의 심이라고 하고 그 기를 겸하여 가리키면 기질의 심이라 한다.'라고 말한다면, 아마도 온당하지 않은 것 같네. 심이란 사물은 본래 단지 리(理)자만으로 마칠 수 없고 또한 단지 기(氣)자 만으로 마칠 수 없으니, 반드시 리와 기가 합한 뒤에 이름을 얻은 것이라면 아마도 성(性)자의 본연이나 기질로 논할 수 없는 것 같네. 또한 본연의 심을 도심(道心)에 대응시키고 기질의 심을 인심(人心)에 대응시킨 것도 또한 옳지 않은 것 같네. 비록 성인이라도 인심이 없을 수 없다면 또한 기질의 심이 없을 수 없는 것 아닌가.마음이 비록 미발과 이발의 다름이 있지만 기(氣)로써 리(理)를 싣는 것은 마찬가지이니, 어찌 미발을 다만 리라고 이르고 이발을 전적으로 기라고 이를 수 있는가. 형기(形氣)와 신리(神理)에 대해 논한 것은 말이 혹 통창하지 못하지만 뜻은 괜찮네. 다만 마지막 단락의 '성(性)과 정(情) 이외에 다시 마음이 없다.……'라 한 것은 아마도 옳지 않은 듯하네. 성과 정이 비록 마음의 체와 용이기는 하지만 성과 정을 주재하는 것은 마음이 아닌가. 이 의미를 다시 더욱 정밀하게 생각해보는 것이 어떠한가. 뒤에 보낸 편지에서 《주역》 괘효와 무극 태극에 대하여 논하였는데, 일단 이것은 한쪽으로 제쳐두고서 견해가 한 층 더 발전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어떻겠는가. 대저 평소 눈앞에 보이는 일과 사물에 나아가 그 소당연(所當然)과 소이연(所以然)을 궁구하는 것이 바로 절실하게 묻고 자신의 가까이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학문이 이에 근거하여 추측하는 곳이 있게 되네. 만약 이를 도외시하고 마음을 현묘하여 알기 어려운 곳에 내달린다면 바람과 달을 붙잡으려 하는 것과 어찌 다르겠는가.질문 : 배우고 때로 익히는 것은 인(仁)이며 벗이 먼 곳에서 온 것은 예(禮)이며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는 것은 의(義)인데, 지(知)와 신(信)이 들어가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 이 세 가지를 잘 다스리면 말하지 않아도 이 세 가지 안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까.답변 : '기쁘다[悅]'는 말에는 인의 뜻이 있고 '즐겁다[樂]'는 말에는 예의 뜻이 있고 '성내지 않는다[不慍]'는 말에는 의의 뜻이 있을 뿐이니, 어찌 일찍이 때로 익히는 것이 인이 되며 벗이 찾아오는 것이 예가 되겠는가. 지(知)란 다만 이것을 아는 것이요, 신(信)이란 이것을 신실하게 하는 것이네.질문 : "성은 서로 가깝다."87)는 것에 대해 정자는 전적으로 기질지성이라고 하였고 주자는 기질을 겸하여 말하였다고 하였는데,88) '겸(兼)'자는 대단히 정밀합니다. 대개 성이 서로 가까운 것은 바로 본연지성이 기질의 안에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기질을 따라 따로 한 성이 되었지만 그 본연의 것은 항상 주인이 되니 그러므로 기질을 겸하였다고 말하였으며 전적으로 기질을 주로 하여 말하지 않았습니다.답변 :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은 본래 서로 다른 두 성이 아니니, 정자와 주자의 말씀이 어찌 다름이 있겠는가. 相聚之餘。遽爾分張。悵悢之懷。一倍難任。因詢侍旁學履。一視崇謐實副懸情。義林一如前日而已。示喩縷縷。可見存意之勤。感感亡已。心如天云云。此在人所見之如何。然則如賢說亦得。如艾丈說亦得。豈有一定不易者哉。本然之心。氣質之心。亦頗未穩。性一也。而單指其性。則曰本然之性。兼指其氣則曰氣質之性。今若以此準之。而曰單指其心則曰本然之心。兼指其氣則曰氣質之心。則恐不穩當矣。心之爲物。本非單理字可了。又非單氣字可了。必是理與氣合而得名者。則恐不似性字之以本然氣質論也。且以本然之心配道心。氣質之心配人心。亦恐不然。雖聖人不能無人心。則亦不能無氣質之心耶。心雖有未發已發之殊。而其爲以氣載理則均矣。豈何以未發獨謂之理。而已發專謂之氣哉。形氣神理以下。語或未暢而意則可矣。但末段性情之外更無心云云。恐未然。性情雖爲心之體用。而所以主宰性情者。非心耶。此意更加細思如何。後書周易卦爻。無極太極之說。姑且倚閣。以俟所見之長得一格如何。大抵就日用眼前事事物物上。究覈其所當然與所以然。此是切問近思。有依據捉摸處。若外此而馳心於玄妙怳惚之間。與捕風捉月。何異哉。學而時習仁。朋自遠方禮。不知不慍義也。知與信不參何也。治此三者。則不言而在此三者之中耶。悅有仁底意。樂有禮底意。不慍有義底意云耳。何嘗以時習爲仁朋來爲禮耶。知只是知此者也。信只是實此者也。性相近。程子專以爲氣質之性。朱子以爲兼氣質而言。兼字尤精。盖其所以相近者。正以本然之性。寓在氣質之中也。雖隨氣質。各爲一性。而其本然者。常爲之主。故兼氣質而言。非專主氣質而言也。本然氣質。本非兩性。則程子朱子之訓。亦豈有不同。 애장(艾丈) 애산(艾山) 정재규를 가리킨다. 성은 서로 가깝다 《논어》 〈양화(陽貨)〉에서 공자가 "본성은 서로 가까우나 습관에 의해 멀어진다.〔性相近也 習相遠也〕" 하였다. 정자는……하였는데 정자는 "이는 '기질의 성〔氣質之性〕'을 말한 것이지 성(性)의 본연을 말한 것이 아니다. 그 본연을 말하면 성(性)이 곧 이(理)이고 이(理)는 불선함이 없으니……어찌 비슷함이 있겠는가?〔此言氣質之性 非言性之本也 若言其本 則性卽是理 理無不善……何相近之有哉〕"라고 하였고, 주자는 여기에서 말한 성(性)은 기질을 겸하여 말한 것이다. '기질의 성〔氣質之性〕'은 본디 아름답고 추악한 차이가 있지만, 처음 상태로 말하면 모두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 다만 선을 익히면 선해지고 악을 익히면 악해지니, 이리하여 비로소 차이가 크게 되는 것이다.〔此所謂性 兼氣質而言者也 氣質之性 固有美惡之不同矣 然以其初而言 則皆不甚相遠也 但習於善則善 習於惡則惡 於是始相遠耳〕"라고 하였다. 〈양화〉의 장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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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수【승복】에게 답함. 答李德受【承福】 항상 분하고 답답하게 여겨89) 참으로 독실하게 공부하는 우리 벗의 마음을 보는데, 이는 오늘날 실로 보기 드문 경우라네. 이 때문에 사색이 열려 원활하고 사의(辭意)가 치밀하게 되었는데 날로 달로 크게 발전한다고 이를 수 있으니, 대단히 아끼며 칭송하네. 이로 말미암아 더욱 의지를 굳게 하여 마침내 원대한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네. 천하의 사물은 리(理)가 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 리가 없으면 어찌 이 사물이 있겠는가. 사람 한 몸의 사지와 온갖 신체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모두 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네. 맑음과 탁함, 순수함과 잡박함, 혼매함과 총명함, 강함과 약함의 구분 같은 것은 리가 본래 가지고 있는 것이라 이를 수 없으니, 이미 리가 본래 가진 것이 아니라면 그 허물을 기에 귀속시킬 수밖에 없네. 예를 들면, 물이 아래로 달려가는 것은 본래 그러한 것인데, 물을 쳐서 이마를 넘어가거나 산꼭대기에 있는 것은 그 형세가 그렇게 만든 것이네. 이로써 미뤄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네.질문 : 어떤 사람이 주자에게 묻기를 "이 장90)은 본래 절조와 재주를 겸하여 말하였는데, 그러나 긴요한 곳은 바로 절조91) 상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주자는 "그렇지 않다. 세 구는 모두 같은 것을 말하였으니, 모름지기 재주와 절조를 완전히 겸비하여 완전하여야 바야흐로 군자라고 이를 수 있다."92)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래 문장에서 다시 정자가 절조를 말한 것93)을 인용한 것은 어째서 그렇습니까.답변 : 정자는 특별히 절조에 대해 말하였는데, 주자가 장하(章下)에 인용하였으니, 그 은미한 뜻을 알 수 있네.질문 : 어찌하여 유독 선비는 도량이 넓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까.94) 대개 '하지 않으면 안 된다.[不可以不]'는 구절은 선비는 이와 같지 않음을 용납할 수 없음을 강조하여 말한 것입니다. 대개 인도(仁道)는 대단히 큰데, 선비의 책임은 인을 구하는 것보다 큰 것이 없습니다. 인은 본체를 온전히 하여 그치지 않음95)을 이르는 것인데, 오직 체를 온전히 하기 때문에 한 리(理)도 포함하지 않음이 없으니 도량이 드넓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오직 그치지 않기 때문에 한 생각도 간단이 없으니 굳세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선비의 책임이 무겁고 길이 먼 것이 이와 같으니 어찌 다른 사람과 비교하겠습니까.답변 : 선비는 학자를 통칭하는 말이네. 그대가 말한 전체불식의 뜻은 훌륭하네.질문 : 《대학》은 공부의 차례를 말한 것인데, 다만 성의(誠意)를 말하고 성정(誠情)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뜻[意]은 따져보고 헤아려보는 것으로 그 기미가 느슨하여 나에게 달려 있으며, 정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발하여 나와서 자신을 말미암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공부가 더욱 어렵습니다.답변 : 그렇다네.질문 : 기로써 말한다면 바르고 통한 것을 얻으면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 것을 얻으면 사물이 됩니다. 바르고 통함과 치우치고 막힌다[正通偏塞]는 네 글자 중에서 바름과 치우침, 치우침과 바름은 서로 반대가 되어 서로 합할 수 없습니다.96) 그 아래 문장의 맑고 탁함과 아름답고 나쁜 것97)은 바르고 통한 가운데 다만 아주 조금 같지 않은 곳일 뿐입니다. 이 때문에 탁한 것도 변하여 맑은 것이 되며 나쁜 것도 변하여 아름답게 될 수 있는데, 다만 사물의 치우치고 막힌 것은 견고하여 변할 수 없습니다.답변 : 그렇다네.질문 : 경(敬)에 대해 정자는 마음을 집중하여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은 것[主一無適]으로 말하였고 또한 외면을 정제하고 엄숙해야 함[整齊嚴肅]으로서 말하였는데,98) 아래 문장의 소주에서 "주일무적은 경의 완성이요, 정제엄숙은 경의 시작이다."99)라고 하였습니다. 이 두 말은 내외를 합하고 시종을 포함하여 말한 것입니다.답변 : 옳은 말이네.질문 : 오행의 신령함은 각각 이 리(理)를 갖췄으니 오직 오령을 가리켜서 곧 마음이라 일러서는 안 됩니다.답변 : 그러하네.질문 : 덕은 망령됨이 없음[無妄]의 본체로, 무망은 곧 성(誠)입니다. 성과 덕은 피차간에 다름이 없습니까.답변 : 덕이라고도 하고 성이라고도 하여 말은 비록 다르지만 그 이치는 하나이네. 이치가 비록 하나지만 가리키는 뜻의 곡절은 똑같은 말로 다할 수 없네.질문 : 옥계 노씨가 '허(虛)는 마음의 고요함이요, 령(靈)은 마음의 감응이다.'100)라고 하였는데, 이 말에 의심이 있습니다. 이른바 허(虛)란 것은 마음이 아는 곳인데, 비록 사물에 감응하지 않았을 때에도 신령함은 참으로 원래부터 있는 것이니, 마음의 감응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답변 : 비록 사물에 감응하지 않았을 때에도 신령함은 참으로 원래부터 있다는 말은 매우 좋네. 다만 '이른바 허란 것은 마음이 아는 곳'이란 구절은 마땅히 '허령한 것은 마음의 본체'로 고치면 어떻겠는가.질문 : 어떤 이가 "허(虛)자는 리(理)자를 띠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허자가 과연 리라면 리는 리를 갖출 수 없으니, 그 아래에 어찌 다시 여러 이치를 갖추었다고 말하였습니까.101)답변 : 허령은 심(心)상에 나아가 말한 것이요, 리상에 나아가 말한 것이 아니네.질문 : 사람이 태어나서 천지의 리(理)를 얻고 또한 천지의 기(氣)를 얻는데, 리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리이며 기는 수화목금(水火木金)의 기입니다. 리는 형체가 없고 기는 형체가 있는데, 형체가 있는 것은 형체가 없는 것의 부림을 받고, 형체가 없는 것은 형체가 있는 것의 주인이 됩니다. 기가 아니면 리가 깃들일 곳이 없고 리가 아니면 기가 헛된 그릇이 되니, 이에서 리기는 서로 없어서는 안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의 신령함에도 그 아는 바는 정욕(情欲)과 이해(利害)의 사사로움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본다면 그 인의예지의 리를 끊어내 버렸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죽지 않고 생존하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이는 그 리가 없는데도 기가 스스로 왕래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개 본래 밝은 체를 하늘에서 얻었기에 끝내 사라질 수가 없는데, 곡직이 종횡하는 사이에 발용하는 바가 다만 과와 불급의 어긋남이 있어서 절도에 맞지 않았을 뿐입니다. 이와 같으니 또한 천지 사이에 본래 악이 되는 리는 없으며 그 악이 된 것은 대개 선이 완성되지 못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답변 : 좋은 말이네.질문 : 심(心)은 리기(理氣)를 합하여 이름을 이룬 것입니다. 전적으로 기(氣)자로서 부를 수 없으며 전적으로 리(理)자로서 부를 수 없습니다. 만약 심을 리라고 이른다면 이는 기를 리로 아는 것이며 성을 작용으로 아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 리를 갖추었다'고 한 것은 다만 리로서 리를 갖춘 실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옛사람이 글자에 의미를 담아 부르는 것과 자리를 차지하는 분수는 아마도 이와 같지 않을 것입니다. 심을 리라고 이르는 것은, 대개 리가 리라고 명명된 것102)이 기에 나아가 기가 된 바를 살펴보면 바로 리이기 때문입니다. 주자가 육자정에게 답한 편지에서 "한번 음되고 한번 양되는 것이 비록 형기에 속하지만 그러나 한번 음되고 한번 양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도체(道體)가 하는 것임을 참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103)라고 하였으니, 이에서 또한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답변 : 논한 바가 아마도 옳은 듯하네.질문 : 그 기가 오르내리고 날아올라서 일찍이 그쳐 쉬지 않으니, 그러므로 들쭉날쭉 가지런하지 않아 만 가지 변화가 생겨나는데 형적(形迹)에 건넜기 때문에 본말과 선후가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기가 함이 있고 형체가 있지 않는다면 천지는 공허하여 사물이 붙잡을 곳이 없게 되지 않겠습니까. 오직 그 리는 함이 없고 형체도 없지만 다만 오묘합니다。이른바 '없다'는 것은 그런 일이 없음을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는 기가 스스로 그런 것이 아니라 리가 오묘한 것입니다.답변 : 묘(妙)자를 주자는 운용과 주재함으로 해석하였으니, 이는 〈태극도설〉의 '묘합(妙合)'104)의 묘자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네. 每覵吾友憤悱誠篤之意。在今日實所罕見。是以其思索之開滑。辭意之綢繆。可謂日就而月將。極可愛賞。願因是而益着脊樑。卒究遠大也。天下之物。莫非理之所爲。無此理。安有此物。人之一身。四肢百體。千差萬別。而皆理之所本有也。若其淸濁粹駁昏明强弱之分。則不可謂理之所本有也。旣非理之所本有。則不可不歸咎於氣。如水之就下。其本然也。而過頹在山。則其勢使然也。以此推之。其義可見。或問於朱子曰。此章本是兼節才說。然緊要處。却在節上。朱子曰。不然。三句都是一般說。須是才節兼全。方可謂之君子。至下文。復引程子節操說何。程子特說節操。而朱子引之章下。其微意可見。如何獨士不可以不弘毅盖不可以不一句甚說士不容不如此。盖仁道最大。而士之任。莫大於求仁。仁是全體不息之謂。惟其全體也。則無一理之不該。所以不可以不弘。惟其不息也。則無一念之間斷。所以不可以不毅。士之任重道遠如此。豈他人比哉。士是學者之通稱。所言全體不息之義好。大學是工夫次第。而但言誠意而不言誠情者。意是恁地計較商量底。其機緩而在我。情是不知不覺發出來。不由自家。故其功夫爲尤難也。然以氣而言之。則得其正且通者爲人。得其偏且塞者爲物。其正通偏塞四字。則正之於偏。偏之於正也。相反而不可以相八也。至若下文淸濁美惡。則於正通中特其小小不同處耳。是以濁者可變而爲淸。惡者可變而爲美。惟物之偏塞。則牢不可變。然。敬者。程子以主一無適言。又整齊嚴肅言。下文小註。主一無適者。敬之成也。整齊嚴肅者。敬之始也。此兩語。是合內外該始終而言也。是。五行之靈。各具是理。不可單指五靈而便謂之心。然德指無妄之本體。無妄卽誠也。誠與德。無彼此之殊耶。曰德曰誠。言雖殊而理則一。理雖一。而其旨意曲折。有不可一言而盡。玉溪所謂虛者心之寂。靈者心之感也。此說有疑所謂虛者心之知處。雖未感物。靈固自若。不可曰心之感也。雖未感物。靈固自在。此說甚好。但所謂虛者心之知處一句。當改之曰虛靈者心之本體。如何。或曰以虛字帶理字看。虛字果是理。則理不能具理。其下安得復言具衆理乎。虛靈是心上說。非理上說。人生得天地之理。又得天地之氣。理是仁義禮智之理。氣是水火金木之氣。理無形。氣有形。有形者。爲無形之使。無形者。爲有形之主也。非氣則理無所寓。非理則氣爲虛器。此可見理氣之不可相無也。然以人心之靈。其所知。不過情欲利害之私觀之。則絶其仁義禮智之理者也。然而不卽死而生存者。何耶。此非無其理而氣自往來也。盖以其本明之體得之於天者。則終有不可得而滅矣。縱橫曲直之間。其所以發用者。特有過不及之差而不中於節耳。若是則又可見天地間。本無爲惡之理。而其惡者。盖善之未成者也。好。心是合理氣而成名者也。不以一氣字名之也。不以一理字名之也。若以心謂理。則是認氣爲理也。認性爲作用。而又曰具衆理云。則不惟有以理具理之失。古人名字之義。位置之分。恐不如此。以心謂理者。盖理之得名爲名。以其卽氣而觀氣之所以爲氣者。乃理也。朱子答陸子靜書云。正所以見一陰一陽雖屬形氣。然其所以一陰而一陽者。是道體之所爲也。此亦可以見。所論恐得之。其氣升降飛揚。未嘗止息。故參差不齊。而萬變生焉。涉於形迹。而有本末先後也。若非氣之有爲有形。則天地空虛。無物把捉處耶。惟其理則無爲無形。但其妙耳。所謂無者。謂無其事。然則畢竟非其氣自爾。而理之妙也。妙字。朱子以運用主宰爲訓。是指圖說妙合之妙而爲言。 분하고 답답하게 여겨 앞의 〈답황신여(答黃新汝)〉에 보인다. 이 장 《논어(論語)》 〈태백(泰伯)〉에 "육척의 어린 임금을 맡길 만하고, 제후국의 명을 부탁할 만하며, 큰 절조를 세울 때를 당하여 굽히지 않는다면, 그가 바로 군자이다.[可以託六尺之孤 可以寄百里之命 臨大節而不可奪也 君子人與 君子人也]"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절조 정의림은 '절재(節才)'라고 하였으나, 이글의 원문에는 '절조(節操)'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있다 이 문답은 《어류》 34권에 보이는데, 〈탁육척지고장(託六尺之孤)〉의 소주(小注)에도 보인다. 정자가……말한 것 장하주에서 정자는"절조가 이와 같으면 군자라고 이를 수 있다.〔節操如是 可謂君子矣〕"라고 하였다. 선비는……하였습니까 《논어(論語)》 〈태백(泰伯)〉에서 증자가 "선비는 그릇이 큼직하고 뜻이 굳세지 않으면 안 되나니, 책임이 무겁고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라 한 것을 가리킨다. 인은……그치지 않음 성인(聖人)의 인(仁)의 경지를 말한 것으로, 마음의 본체와 작용이 기품(氣稟)과 사욕에 은폐됨이 없이 온전히 보존되고 유행하는 것이다. 《논어집주(論語集註)》 〈공야장(公冶長)〉 옹야인이불녕장(雍也仁而不佞章)에 "인(仁)의 도는 지극히 커서 체(體)를 온전히 하여 그치지 않는 자가 아니면 해당될 수 없다.〔仁道至大 非全體而不息者 不足而當之〕"라 하였다. 기로써……없습니다 《대학혹문(大學或問)》 권1 〈경 1장(經一章)〉에 보인다. "그러나 그 이치로써 말하면 만물은 하나의 근원이니 참으로 사람과 물에 귀함과 천함의 차이가 없고, 기로써 말하면 바르고 통하는 것을 얻은 것은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 것을 얻은 것은 물(物)이 되기 때문에 귀해지기도 하고 천해지기도 하여 가지런하지 않은 것이다. 저 천하여 물이 된 것은 이미 치우치고 막힌 형기에 구속되어 본체의 온전함을 확충할 수 없고, 오직 태어나면서부터 바르고 통하는 기운을 얻은 사람만이 그 본성이 가장 귀하게 되기 때문에 방촌의 사이가 허령하고 통철하여 모든 이치가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대개 사람이 짐승과 구별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고, 요순이 되어 천지에 참여하여 화육을 도울 수 있는 것 또한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것이 명덕이라는 것이다.[然以其理而言之, 則萬物一原, 固無人物貴賤之殊; 以其氣而言之, 則得其正且通者爲人, 得其偏且塞者爲物, 是以或貴或賤而不能齊也. 彼賤而爲物者, 旣梏於形氣之偏塞而無以充其本體之全矣, 唯人之生乃得其氣之正且通者而其性爲最貴, 故其方寸之間, 虛靈洞徹, 萬理咸備. 蓋其所以異於禽獸者, 正在於此, 而其所以可爲堯舜而能參天地以讚化育者, 亦不外焉. 是則所謂明德者也.]"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 아래……나쁜 것 《대학혹문》 바로 앞의 주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에 "그러나 그 통함에 혹 청탁의 다름이 없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바름에 혹 미악의 다름이 없지 않을 수 없다.〔然其通也或不能無淸濁之異, 其正也或不能無美惡之殊〕"는 구절을 가리킨다. 정자는……말하였는데 《대학혹문》 〈총론〉에 보이는 내용이다. 주일무적은……시작이다 물재 정씨가 한 말로 "정재엄숙과 수렴하여 한 물건도 담아두지 않는 것은 경의 시작이요, 주일무적과 항상 마음이 깨어 있는 것은 경의 완성이다.〔整齊嚴肅 及收斂不容一物 皆敬之始也 主一無適 及常惺惺者 皆敬之成也〕"라 하였다. 옥계 노씨가……감응이다 《대학장구대전(大學章句大全)》 수장의 소주에 "옥계 노씨가 말하기를 '밝은 덕이라는 것은 단지 본마음이다. 허라는 것은 마음의 고요함이고, 영이라는 것은 마음의 감응이다.' 하였다.〔玉溪盧氏曰 明德只是本心 虛者心之寂 靈者心之感〕" 한 것을 가리킨다. 여러……말하였습니까 이 구절의 내용은 《대학》 〈경일장〉의 명덕에 대한 설명을 가리킨다. 즉 "명덕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으로, 텅 비고 신령스럽고 어둡지 않아서, 중리를 구비하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明德者 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라는 말에 대한 논의이다. 본문의 뒤의 명(名)자는 내용상 리(理)자의 오류로 보인다。 한번…… 때문입니다 《주자대전》 권35 1188년에 육자정에게 보낸 편지에 보인다. 〈태극도설〉의 묘합 〈태극도설(太極圖說)〉의 "무극의 진리와 이기오행(二氣五行)의 정기가 묘하게 합하고 엉겨서 건도는 남(男)을 이루고 곤도는 여(女)를 이루어 두 기운이 교감하여 만물을 화생하니, 만물이 낳고 낳아 변화가 무궁하게 된다.[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萬物生生而變化無窮焉.]"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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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선생1)에 대한 제문 祭蘆沙先生文 삼대(三代) 시대 여러 성인이 나온 뒤에 공자께서 나오셨고, 염락(濂洛)2)의 여러 철인이 나온 뒤에 주자가 나왔고, 동방의 여러 유자들이 나온 뒤에 선생께서 태어나셨으니, 대개 하늘이 성대하게 일어난 뒤에 한 사람을 낳아 절충하고 집성하게 하여 사문(斯文)을 위한 만세의 계획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더구나 의리는 어두워져 막히고 추향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 진 것이 이에 춘추(春秋) 시대와 남송(南宋) 때 보다 심함이 있으니, 하늘이 선생으로 하여금 한번 다스려지는 운수를 담당하게 한 것은 또 어찌 우연이겠습니까.오호라! 선생께서는 운수에 응한 것이 황하와 같고 신령함을 모은 것이 산악과 같아 오백 년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한 기와 천만 년의 오랜 유정유일(惟精惟一)3)의 학문은 장엄하기가 마치 암벽이 천 길 높이 솟은 것과 같고, 넓고 아득하기가 마치 바다가 만곡(萬斛)을 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인(仁)은 봄기운이 생동하는 것 같고 의(義)는 가을 기운이 엄숙한 것 같습니다. 좋은 금과 정결한 옥처럼 순수하여 조탁한 흔적이 없고 광풍제월(光風霽月)4)처럼 깨끗하여 속진을 벗어난 모습이 있습니다. 출처[行藏]는 나라의 시운과 관계되었고 문장(文章)은 천지의 원기에 참여하였습니다. 곡절이 만 번 변하였으나 응답함은 큰 종소리가 메아리에 응하는 것 같았고 현우(賢愚)가 다르지만 교육시킴은 조물주가 빠뜨림이 없는 것과 같았습니다.오호라! 성인이 멀어지고 말씀이 인몰되며 세도는 떨어지고 풍속은 오염되어 사람들이 그 의론을 달리하고 선비는 그 학문을 사사롭게 여겨 종횡으로 분열되어 천만 갈래로 나누어졌습니다. 오직 선생께서는 동서남북의 밖으로 나와 도덕(道德)과 인의(仁義)의 근원에 앉아 밝은 견해로 분명하게 비추어보고 담소하며 물리쳐 마치 백천(百川)의 미친 물결이 그 길을 얻어 호연(浩然)히 동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습니다.오호라! 나라에서 의뢰함이 시귀(蓍龜)5)와 같았고 사람들이 우러르기를 마치 태산북두같이 하고 백성들이 바라보기를 마치 상서로운 해와 구름같이 보았는데, 어찌 원로를 남겨두지 않아 이 세상으로 하여금 갑자기 안방(安放)의 애통함6)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까.소자가 선생을 섬긴 지 지금 십여 년입니다. 아껴주시고 가르쳐 주시며 꾸짖으시고 바라심에 그 간절한 마음 지극히 하셨는데, 소자가 보답한 것은 어떤 일입니까? 빙호수월(氷壺水月)7)을 다시 볼 수 없으니, 규구(規矩)와 준승(準繩)8)을 어디에서 본받으랴. 태산이 무너지자 개미언덕이 높아지고 태양이 사라지자 반딧불이 빛을 내니, 사문과 세도가 장차 어느 곳에 멈출지 모르겠습니다.오호라! 선생께서 계시지 않지만 그 행의(行義)와 언범(言範)이 세상에 남아 해와 별같이 빛나니, 이것이 갱장(羹墻)의 사모9)와 강한(江漢)의 생각10)을 깃들여 장차 여기에서 몸을 마칠 수 있을 것입니다.오호라! 흠향하소서. 三代群聖之後。孔子作。濂洛群哲之後。朱子出。東方群儒之後。先生生。蓋天生一人於蔚興輩出之餘。使折裏集成。爲斯文萬世計者也。況義理之晦塞趍向之多門玆有甚於春秋南宋之時。則天之所以使先生當一治之運者。又豈偶然哉。嗚呼。先生膺運河瀆。鍾靈山岳。五百年至大至剛之氣。千萬古惟精惟一之學。儼儼若壁立千仞。蕩蕩若海涵萬斛。仁如春生。義如秋肅。良金精玉。粹然無雕琢之痕。光風霽月。灑然有出塵之標。行藏係邦國之時運。文章參天地之元氣。曲折萬變。而酬答如洪鍾之應響。賢愚不齊。而敎育如化工之無遺。嗚呼。聖遠言湮。世降俗汚。人異其論。士私其學。縱橫分裂。千蹊萬逕惟先生出乎東西南北之外而坐於道德仁義之源。洞見昭晣。談笑摩之。如百川狂瀾。得其道而浩然東注也。嗚呼。邦國賴之若蓍龜。士林仰之若山斗。輿民望之若瑞日祥雲。豈不憖遺。使斯世遽遭安放之痛也耶。小子事先生。十數年于玆矣。其愛之敎之。責之望之。極其懇惻。而小子之所以報答者。爲何事也。氷壺水月。不可復覿。規矩準繩。於何可倣。泰山頹而邱垤高。大明沒而螢爝光。斯文世道。將不知稅駕於何地。嗚呼。先生不在。而其行義言範之在世。炳如日星。此可以寓羹墻之慕江漢之思。而將終身於斯焉。嗚呼。尙饗。 노사 선생(蘆沙先生) 정의림의 스승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을 말한다. 초명은 금사(金賜), 자는 대중(大中), 호는 노사(蘆沙), 본관은 행주(幸州)이다. 서경덕, 이황, 이이, 임성주, 이진상과 함께 성리학의 6대가(六大家)로 꼽힌다. 저서로는 《노사집》이 있다. 염락(濂洛) 염(濂)은 염계(濂溪)로 주돈이(周敦頤)가 살았던 곳이고, 낙(洛)은 정호(程顥)와 정이(程頤)가 살았던 낙양(洛陽)을 말한다. 유정유일(惟精惟一) 순임금이 우임금에게 제위(帝位)를 넘겨주면서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은미하니, 정밀하게 하고 한결같이 하여야 진실로 그 중도를 잡을 것이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書經 大禹謨》 광풍제월(光風霽月) 비 갠 뒤의 맑은 바람과 밝은 달로, 인품이 고결하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을 비유한다. 송(宋)나라 황정견(黃庭堅)의 〈염계시서(濂溪詩序)〉에 주돈이(周敦頤)를 평하면서 "용릉의 주무숙은 인품이 매우 고상하고 가슴속이 깨끗하여 마치 비 온 뒤의 맑은 바람과 밝은 달 같다.[舂陵周茂叔, 人品甚高, 胸中灑落, 如光風霽月.]"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시귀(蓍龜) 점을 칠 때 쓰는 시초(蓍草)와 거북 껍데기를 말하는데, 옛날에 일의 시비와 길흉을 점치던 것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기준을 뜻하며, 나아가서 모든 의문을 판별해 주는 원로나 국사(國士)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안방(安放)의 애통함 스승이 세상을 떠나 의지할 곳이 없어진 데 따른 애통함을 말한다. 공자가 세상을 떠나기 일주일 전에 "태산이 무너지는구나. 대들보가 꺾이는구나. 철인이 시드는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壞乎! 哲人其萎乎!]"라고 노래하였는데, 자공(子貢)이 이 노래를 듣고는 "태산이 무너지면 우리가 장차 어디를 우러러보며, 대들보가 꺾이고 철인이 시들면 우리가 장차 어디에 의지하겠는가.[泰山其頹, 則吾將安仰? 梁木其壞, 哲人其萎, 則吾將安放?]"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禮記 檀弓上》 빙호수월(氷壺水月) 빙호추월(氷壺秋月)과 같은 뜻이다. 얼음으로 만든 호리병에 맑은 가을 달이 비친 것과 같이 티 없이 고결한 정신을 뜻하는 말로, 주자(朱子)의 스승인 연평(延平) 이동(李侗)의 인품을 형용한 말에서 나왔다. 《朱子大全 祭延平李先生文》 규구(規矩)와 준승(準繩) 규(規)는 원(圓)을 만드는 기구요, 구(矩)는 방형(方形)을 만드는 기구이며, 준(準)은 측평기(測平器)요, 승(繩)은 먹줄이다. 갱장(羹墻)의 사모 국과 담장을 보기만 하여도 사모하는 마음이 든다는 말로 돌아가신 선왕이나 현인을 경모(敬慕)하고 추념(追念)함을 뜻한다. 《후한서(後漢書)》 권63 〈이고열전(李固列傳)〉에 "옛적에 요 임금이 돌아가신 뒤에 순 임금이 3년 동안 우러러 그리워하여 앉으면 담장에서 요 임금을 보았고, 밥을 먹으면 국에서 요 임금을 보았습니다.[昔堯殂之後, 舜仰慕三年, 坐則見堯於墻, 食則睹堯於羹.]"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강한(江漢)의 생각 스승을 애타게 추모는 생각을 말한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증자(曾子)가 공자를 찬미하여 "선생님의 덕은 강수(江水)와 한수(漢水)로 씻는 것과 같고 가을볕으로 쪼이는 것과 같아서 깨끗하고 깨끗하여 더할 수 없다.[江漢以濯之, 秋陽以暴之, 皜皜乎不可尙已.]"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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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대부 석당 선생11)에 대한 제문 祭族大父石塘先生文 선생은 몇 세대에 한번 나오는 기상과 하늘이 준 빼어난 재주로 멀리로는 수사(洙泗)12)의 전함을 거슬러 올랐고 가까이로는 낙민(洛閩)13)의 실마리를 궁구하여 안으로는 종애(鍾崖)14)와 노학(老學) 같은 어진 선조의 학업을 계승하고, 밖으로는 사계(沙溪)15)와 제강(堤江16)) 같은 선정의 통서를 접하여 연원이 이미 바르고 문로가 매우 컸습니다. 이(理)와 의(義)가 밝고 정밀하여 하늘과 사람의 깊은 뜻에 묵묵히 계합하였고, 도(道)와 덕(德)이 높고 높아 일찍 공보(公輔)의 명망17)을 지고 있었습니다. 둥글고 모난 규구(規矩)로 만고의 모양과 법도를 보존하고, 봄같이 온화하고 가을 같이 엄숙하여 사시의 원기를 갖추며, 봉장(封章)18) 항의(抗義)하여 음양의 숙특(淑慝)을 구분하고, 글을 저술하여 어리석음 깨우치니 족히 경전에 우익(羽翼)이 되며, 아름다운 산수에 오매(寤寐)의 즐거움 길이 맹세하고, 서울[洛陽]의 옥백(玉帛)19)은 초빙[聘辟]하는 명을 부질없이 수고롭게 하였으며, 동산에 해가 지니 다시 창생의 희망이 없고, 하루 저녁에 기둥을 꿈꾸어20) 갑자기 철인(哲人)이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오호라! 사문은 누구를 의지하며, 세도는 어디를 우러르겠습니까? 우리 집안은 백여 년부터 이래로 날로 쇠퇴하였습니다. 선생께서 일찍이 이를 위해 개연해 하여 집안을 위한 계획으로 소자에게 거듭 당부한 것이 간곡할 뿐만이 아니었으니, 어찌 오늘 갑자기 소자를 버리고 소자로 하여금 의귀할 곳이 없게 하는지요. 받은 말씀 마음에 남아 있어 비록 저버리지 않고자 하나 누가 조치하여 인도해 주며, 누가 성취시켜 줄 것입니까? 사문과 세도의 걱정은 실로 이루 말할 수 없고, 집안의 계책은 어찌하며 저를 위한 계획은 어찌하겠습니까? 모습이 영원히 막혔고 전형(典刑)은 살필 곳이 없습니다. 성묘하며 곡하니 호산(湖山)이 처량하고 암담합니다. 슬픈 마음 엮어 제문을 잡고서 감히 제사를 올립니다. 先生以間世之氣。天挺之才。遠溯洙泗之傳。近究洛閩之緖。內而襲鍾崖老學賢祖之業。外而接沙溪堤江先正之統。淵源旣正。門路甚大。理明義精。默契天人之蘊。道尊德高。早負公輔之望。規圓矩方。存萬古之樣轍。春溫秋肅。備四時之元氣。封章抗義。分陰陽之淑慝。著書開蒙。足羽翼於經傳。嘉林山水。永矢寤寐之樂。洛陽玉帛。虛勞聘辟之命。東山落日。無復蒼生之望。夢楹一夕。遽遭哲人之萎。嗚呼。斯文誰賴。世道安仰。吾門自百餘年來。日就衰替。先生嘗爲之慨然。而以門戶之計。申申於小子者。不啻懇惻。豈今日遽棄小子。而使小子俾無所依歸耶。受言在心。雖欲不負。而誰其指引之。誰其成就之。斯文世道之憂。固不可勝言。而門户之策奈何。自身之計奈何。儀容永隔。典刑無稽。展墳號哭。湖山凄黯。綴哀操文。敢奠侑儀. 석당(石塘) 선생 정의림의 족대부(族大父) 정귀석(鄭龜錫, 1790∼?)을 말한다. 수사(洙泗) 수수(洙水)와 사수(泗水)로, 노(魯)나라에 있었던 두 물의 이름인데, 공자가 이곳에 제자들을 모아 놓고 학문을 강론하였으므로, 곧 공자 및 유학(儒學)을 일컫는다. 《禮記 檀弓上》 낙민(洛閩) 낙(洛)은 낙양(洛陽)으로 정호(程顥)·정이(程頤)가, 민(閩)은 민중(閩中)으로 주희(朱熹)가 거주하던 곳이다. 종애(鍾崖) 정부(鄭敷, 1659~1712)의 호이다. 자는 대재(大哉),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의 호이다. 자는 희원(希元),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이이(李珥)와 송익필(宋翼弼)의 문인이다. 서인 명문의 대학자로 과거를 포기하고 학문에 정진하였고, 인조반정 이후 여러 차례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후진 양성에 힘써 아들인 김집(金集)을 비롯해 송시열(宋時烈), 이유태(李惟泰), 장유(張維) 등 걸출한 서인 학자를 많이 배출하였다. 저서로는 《사계전서(沙溪全書)》, 《가례집람(家禮輯覽)》, 《상례비요(喪禮備要)》, 《근사록석의(近思錄釋疑)》, 《경서변의(經書辨疑)》 등이 있다.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제강(堤江) 충청북도 제천(堤川)의 황강(黃江) 가에서 강학한 권상하(權尙夏, 1641~1721)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ㆍ한수재(寒水齋),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송시열(宋時烈)의 수제자로 기호학파의 정통 계승자이며, 인물성동이논쟁(人物性同異論爭)인 호락논변(湖洛論辨)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1660년(현종1) 진사가 되었고, 스승 송시열이 관작을 삭탈당하고 유배되는 상황 속에서 정계 진출을 포기하고 청풍 산속에 은거하며 학문을 닦았다. 1703년부터 1717년까지 해마다 대사헌, 이조 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에 임명되었고, 1721년(경종1)에는 판중추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사직소를 올리고 나아가지 않았다. 저서로는 《한수재집》 이 있다.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공보(公輔)의 명망 대신이 될 것이 기대되는 명성과 인망을 이른다. 공보는 삼공(三公)과 사보(四輔)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삼공은 영의정·좌의정·우의정을 이르고, 사보는 전의(前疑)·후승(後丞)·좌보(左輔)·우필(右弼)로 군주의 좌우에서 보필하는 신하들이다. 봉장(封章) 밀봉하여서 올리는 건의를 말한다. 고대에 관료들이 임금에게 기밀의 사안을 건의할 때 누설을 방지하기 위하여, 검정 주머니에 담아서 밀봉하여 올렸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다. 봉사(封事)이라고도 한다. 옥백(玉帛) 예의를 갖추어 어진 이를 부르는 것을 뜻한다. 기둥을 꿈꾸어 사람이 죽는 꿈을 말한다. 공자가 '두 기둥 사이에 앉아 제수를 받는 꿈을 꾸고[夢坐奠於兩楹之間]' 얼마 뒤에 죽은 고사에서 유래한다. 《禮記 檀弓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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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6 卷之十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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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문 祭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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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재 박 선생21)에 대한 제문 祭無邪齋朴先生文 선생은 호걸의 자질로 학문의 공을 거두었습니다. 깊은 연못에 임한 듯 얇은 얼음을 밟는 듯하였고, 잡아 지키는 것이 굳고 안정되었으며, 정밀하고 은미한 것을 깊이 연구하여 가지고 있는 것이 해박하였습니다. 학문은 온전하고 덕은 확립되어 시원스럽고 화락하였으며, 천고를 통찰하고 한 시대를 아울렀습니다. 성 동쪽에 집을 지어 유유자적하게 지내면서 광채와 자취 숨기고 감추어 죽을 때까지 스스로 즐겼습니다. 어찌하여 한 번의 운수가 만년에 더욱 기구하여 상사가 거듭하고 식구들이 흩어졌습니다. 백리의 광산(光山)에 거처를 옮겼는데, 거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산이 무너지고 들보가 꺾였습니다.22) 오호라! 하늘이 선생을 내신 것은 무슨 뜻이며 쫓아서 곤액을 준 것은 또 무슨 뜻입니까?소자의 거처가 가장 가깝고 감복함이 가장 깊어 들어가서는 궤석에서 모시고 나가서는 장구를 모신지 십여 년이 됩니다. 순순하게 기대하고 면려함에 간곡하지 않음이 없었지만 그럭저럭 세월만 보내어 그 만분에 하나의 뜻도 부응함이 있지 않습니다. 지금 의지하여 우러름에 뒤따르려 해도 미칠 수 없습니다. 단지 용산(龍山)의 수석만 여전히 옛날과 같아 저로 하여금 첨모(瞻慕)함에 다하지 못하는 한이 있게 할 뿐입니다. 눈물을 닦고 슬픈 마음 엮어 감히 이렇게 영결을 고합니다. 先生以豪傑之姿。收學問之功。臨深履薄。持守堅定。硏精鑽微抱負該洽。學全德立。淸通和樂。洞視千古。範圍一世。卜築城東。寄我翱翔。潛光歛跡。卒歳自娛。云何一運。晩而愈奇。死喪相仍。室家分離。光山百里。杖屨移臨。居未幾何。山樑遽折。嗚乎。天之生先生何意。而從而厄之。又何意耶。小子居最近而服最湥。入侍几席。出陪杖屨。爲十餘年矣。諄諄期勉。非不懇至。而因循等待。未有以副其萬一之意。今焉依仰。追從莫及。只有龍山水石。依然如古。而令人有瞻慕不盡之恨而已。抆淚綴哀。敢此告訣。 무사재(無邪齋) 박 선생(朴先生) 박영주(朴永柱, 1803∼1874)를 말한다. 자는 유석(類碩), 호는 무사재·관수재(觀水齋),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강재(剛齋) 송치규(宋穉圭, 1759∼1838)의 문인이다. 정의림(鄭義林)·이지호(李贄鎬)·최인우(崔仁宇)·공병주(孔炳柱)·조병호(趙秉浩)·구교완(具敎完) 등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저서로 《무사재집》이 있다. 산이……꺾였습니다 스승이나 훌륭한 사람의 죽음을 말한다. 공자가 아침 일찍 일어나 뒷짐을 지고 지팡이를 끌고 문 앞에 한가로이 노닐며 노래하기를, "태산이 무너지고 대들보가 부러지고 철인이 죽겠구나.[泰山其頹乎, 梁木其摧乎, 哲人其萎乎?]"라고 하였는데, 과연 7일 뒤에 세상을 떠났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禮記 檀弓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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養士齋銘 國有學以養一國之士邑有庠以養一鄕之士養士之義顧不重歟是故明府之政必以興學爲本而士林之禮義文物實自培養中做出耳蓋吾鄕庠宮之傍有養士齋今春講會之日前候尹公特加勸奬捐錢二百五十緡方劃拮据之議而事姑未就上京適遞千里之外無路願借一境章甫只慕遺愛而已猗我明府安東權公在禹自玉溪移宰本縣下車之初樹紀綱定名分先問校宮講學之制將使文風益振儒化蔚興以致家絃戶誦之治而右錢二百五十緡另賜齋中隷業有方較藝得志其於養士興學之地夾恩優澤難悉口銘故爰謀揭板略敍實蹟繼之以銘曰惟我明府事簡政淸軒冕華冑氷玉治聲下車閱月百里咸蘇興起闔境歌頌滿衢增修文學士紀復新藝苑化雨講樹陽春實地九仞箕山仰彌方塘一鑑穎水淸斯欲被管絃琴鳴單父欲鏤貞珉石出越滸爰有一板庶幾偉績永世涵濡視此齋壁 壬午春坡平尹滋學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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校宮懸板序 夫千載而慕聖師一郡而興儒化者爲善於首善之地而感人於深感之域也盤根而別利器弊局而試良手者爲治於難治之時而濟民於廣濟之境也今歲之旱無前太亢五穀之未生百菜之未生甚於穀不熟菜不熟之饑饉而靑燈寒架士廢絃誦之聲白屋窮蔀民空擔石之儲適我明府完山李公周弼氏再莅本縣民皆欣欣然相謂曰我候再莅吾民再生前旣願借今協來蘇下車之初一視如傷親察閤境先問校庄之荒廢豫圖蠲頉之方特爲捐廩一以供釋奠之享一以給學宮之資尊聖興學之政有感乎 夫子時雨化之之德於無雨之歲也洽於儒化浹於人心如逢一注甘霈勝於千金於是民皆欣欣然復歌曰我候明政先自學宮我有室居于以慰撫我有家累于以卹惠無胥流離樂此來歲萬民之口如碑如銘則至於學宮那無一言欽誦以誌永世之難忘乎爰剞一板揭于堂壁略敍其實曰有校以來春秋釋奠士之欽慕邑之重典歲何枯暵秋而不秋適我明府南來分憂捐廩旣厚式恭享祀愈久不忘百千萬祀惟我士林常顧是板惠傳其施學究其本 戊子菊秋坡平尹滋學謹序○都有司陽城李萬奎掌議咸平魯淵白仁同張志澤色掌咸平李楹緖坡平尹滋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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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2) 誌之顚末他序已殫之夏何言哉然而有愚衷所蘊者目今天下湯湯余曷歸哉校是禮義相先之地也儒非校於何依仰乎校非儒於誰擔夯乎先聖往哲精神心法寓於斯矣歷代儀物制度在於斯矣簠簋籩豆牲幣醴齊之品無不載矣官員獻祝贊謁進退揖讓之容無不具矣賓主之酬君子之爭必於是焉武城之絃誦白鹿之規約亦於是焉前聖之風遠矣哉後賢之述多矣哉誌之爲例首之以殿宇之圖繪古今之文字次之以從祀諸賢與夫雜儀終之以任司選遞之錄此可光前而垂後矣猗歟盛哉竊惟念道之傳在人而亦不無有時焉興替也今誌之所載一莫非吾道之具因此而講明之則不傳之緖旣替之運庶幾不遠復歟役告訖不顧淺劣猥置卷端之語癸酉十月下幹晉陽鄭溙源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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巡營關子【祝帖二香封四】 云云節到付義禁府關內節啓下敎今九月二十四日本府啓曰全羅監司金 狀啓內咸平縣監罪狀令司稟處事啓下矣姜時煥時在任所依例發遣府羅將拿來何如傳曰待命拿來因亦敎是置到關卽是道內咸平縣監姜時煥身乙卽爲知委上送以爲就囚之地向事關是有亦關內辭緣奉審施行宜當向事云云到是向事咸平縣鄕校 聖廟慰安祭及還安祭香祝全州校生齎持下送所經各官定校生星火賚傳而所騎馬依例定給俾無遲滯之弊爲旀咸平縣叚依例禮文祗受而慰安祭不卜日依禮文設行爲旀修改畢役後還安祭亦爲設行後獻官諸執事帖移兩報宜當自貴縣別定境內曾經有官爵主慰安祭爲先從速奉行後還安祭待畢役奉靈光兼官有病未參而自下私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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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3) 此咸平鄕校誌全二卷分爲五編也其曰校宮圖文廟享祀圖道綐源流圖學統圖祭器圖禮服圖陳設圖從祀聖賢事實略者編首也第二編則曰校宮建置事實位置校宮齋庫間架及任員儒生奴僕數學田祀典樂章齊官祝板釋奠儀笏記告事田移還安祭儀圖書古蹟各案序及跋詩韻也第三編則曰揭板文也第四編則曰三十案靑衿儒案老人案也曰東齋隨行案及直員六掌議案養士齋營建有司案及隨行案者第五編也蓋類以分編各以年代序之而一依存案者也起自 仁廟辛未止以書成日而間多斷逸者以其文獻無憑也噫顧此聖學諱禁儒化蔑裂之日得成此誌之刊未知地中一雷庶或因此發聲也盥蕤敬書如此時癸酉十月下澣也漢陽趙相允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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