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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남 이공에게 답함【지호】 答芝南李公【贄鎬】 헤어진 지 며칠 되었는데 사모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합니다. 뜻밖에 편지를 보내주셨기에 받아서 서너 번 읽고서는 마치 보배로운 구슬을 얻은 것처럼 기뻤습니다. 아, 세상에 모종의 나약하고 십분 용렬한 것이 누가 저와 같은 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정성스럽게 돌보아 주고 버리지 않으신 것이 이와 같은 데 이르렀단 말입니까. 너무나 부끄럽고 송구합니다. 《정암집(靜庵集)》을 간행하는 일은 사방에서 뜻을 모아 차근차근 체제가 잡혀 간다고 하니, 듣고서 매우 위로되고 다행스러웠습니다. 이는 사문(斯文)의 큰일이니, 지남(芝南)이 담당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근년에 우리 고을에 현송(絃誦)하는 풍습이 차츰 진작되니, 계획하여 경영한 것도 지남의 힘이 아님이 없습니다. 천하가 요동치니 세도의 근심스러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어찌 가난하고 힘이 없는 유자(儒者)가 만회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 처하고 만나는 곳에 따라 이를테면 향당에서 교유하는 곳에서 후진을 이끌고 일깨워 악의 구렁에 빠져드는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하는 것이 또한 하나의 일입니다. 부디 유념해 주십시오. 離違有日。懸仰彌切。謂外翰命。受言三復。如得拱璧。嗚呼。世間一種懦散。十分醜劣。孰有如義林者。而爲之眷眷不棄。至於如是耶。愧悚萬萬靜庵集刊役四方同聲次第就緒。聞極慰幸。此是斯文大事。非芝南爲之擔當。則何以到此。近年吾鄕絃誦之風。稍稍振起。其設始條畫。亦莫非芝南之力也。寰字滔滔。世道之憂。有不可勝言。然此豈窮儒殘力所可挽回者乎。只因其所居所接。如鄕黨遊從之地。而爲之提撕警覺。不至胥溺。亦是一事也。惟千萬在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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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형신에게 답함 答魏亨信 가뭄과 장마가 서로 자리를 내주며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니, 이러한 때가 되면 그리워하는 마음이 평소보다 배나 된다네. 한 통의 귀한 편지가 바람을 따라 이르니 마음에 위안과 고마움이 이는데 마치 침상을 나란히 하거나 책상을 마주한 것 같으니 90리가 먼 곳인지 잘 모르겠네. 더구나 부모를 모시면서 기쁜 일이 많고 건강도 좋다고 하니, 더욱 멀리서 바라는 마음에 부합하네. 편지지 가득 길고 자세하게 쓴 것에서 깨닫지 못해 분하게 여기고 표현을 못하여 답답하게 여겨30) 격앙하는 뜻이 지극한 정성에서 나온 것을 알게 되었네. 이것은 학문이 앞으로 나아갈 노맥(路脈)이니, 서로 헤어진 뒤로 우리 벗의 공부가 반드시 허투루 하지 않음을 알겠네. 편지에서 '헛되이 인생을 보내 초목과 함께 썩어간다.'라 하니, 사람으로 하여금 감탄이 일게 하네. 또한 '심지(心地)를 진실되게 하고 각고의 공부를 한다.'라는 말과 '솥을 깨뜨리며 막사를 태우고 삼일의 식량을 지닌다.'31)는 등의 말에서 학문하는 입지(立志)의 참된 법과 요결이 이에 지나는 것이 없음을 더욱 절실하게 깨닫네. 早寮相禪。金火交遞。此際懷想。有倍平昔。而一角珍函。颺風而至。慰沃感豁。怳然若聯床對榻。不知三舍之爲闊也矧審省侍歡慶。體度茂謐。尤協遠祝。滿幅縷縷。可見憤悱激昂之意。出於至誠。此是進步路脈。吾友別後功夫。必不草草也。所謂虛住百年。草木同腐。令人感歎。又謂眞實心地。刻苦功夫。及破釜燒廬。持三日粮等語。尤覺痛切。爲學立志。眞詮要訣無過於此。 깨닫지……여겨 분비(憤悱)의 분은 마음속으로 뭔가를 통해 보려고 애쓰는 것을 말하고, 비는 입으로 말을 해 보려고 애쓰는 것을 말한다. 공자(孔子)가 이르기를 "마음속으로 통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열어 주지 않고, 입으로 말해 보려고 애쓰지 않으면 말해 주지 않거니와, 한 귀퉁이를 들어 주었는데, 이로써 세 귀퉁이를 유추해서 알지 못하면 다시 더 말해 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論語 述而》 솥을……지닌다 원래 살아 돌아올 기약을 하지 않고 결사의 각오로 싸우겠다는 결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항우(項羽)가 진(秦)나라와 싸우러 가면서 하수(河水)를 건넌 뒤 배를 모두 가라앉히고, 솥과 시루를 깨뜨리고, 막사를 불태우고, 사흘 양식을 지니고서 사졸에게 반드시 죽을 것임을 보여 주었던 것[沈船破釜甑, 燒廬舍, 持三日糧, 以示士卒必死]에서 유래한다. 《史記 項羽本紀》 여기서는 죽을 각오로 공부에 매진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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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일에게 보냄 與奇會一 해가 바뀌는 때를 맞아 형의 체후가 약간 편안하지 못하다고 들었습니다. 새해가 시작된 이래로 다시 편안한 일상을 회복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대한 근심과 걱정을 어떻게 달래고 계십니까? 형을 향한 그리움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의림(義林)은 지난번에 길을 나서지 못하여 이어서 설을 쇤 뒤 열흘 안으로 한 번 가서 마음에 쌓아둔 몇 가지 생각을 여쭈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몸의 병과 집안의 근심이 겹겹이 더해지고 가시지 않아 또 그대로 주저앉게 되었으니 한탄스러움이 어떠하겠습니까. 애산(艾山 정재규(鄭載圭))의 거취는 근래 혹시 들으셨고 궐리(闕里)47)의 회합은 과연 또한 잘 이루어졌는지요? 형께서 장차 열읍에 통지로 알려 열읍에서 1만 명까지 연명(聯名)으로 상소하게 하려고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형의 진심 어린 정성이 사람을 감격하여 눈물짓게 합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향상(向上)의 뜻을 갖지 않은 지 오래되었고 이적(夷狄)으로 변한 자가 많습니다. 일제히 한목소리를 내고 분기(奮起)하여 모일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우리나라는 궁벽한 바다 모퉁이에 있어 사방에서 반드시 빼앗고자 하는 땅이 아니며 반드시 빼앗고자 자는 오직 왜(倭)뿐입니다. 왜(倭)가 우리를 향해 침을 흘린 것이 어찌 일조일석의 일이겠습니까. 근래 우리가 쇠약해진 것으로 인해서 제멋대로 틈을 엿보아 침입하더니 개화(開化)라는 구호를 내세워 30여 년에 걸쳐 이루지 않은 계책이 없고 이루지 못한 뜻이 없었습니다. 온 나라의 병사를 쓸어버리고 온 나라의 재물을 다 소진하였으며 청나라 군대를 요동(遼東)으로 내치고 러시아인을 여순(旅順)에서 막아버렸으니 이것이 어찌 이웃 나라를 보살피려고 한 것이겠습니까. 단지 우리의 원조를 끊고 우리 땅을 뺏으려는 것입니다. 수많은 비용을 소모하고 여러 해의 노고를 거듭하여 산을 뚫고 골짜기를 메꾸어 철로(鐵路)를 깔고 전기선을 설치한 것도 어찌 통상(通商)을 하려고 한 것이겠습니까. 장차 판도(版圖)를 마련하고 관원(官員)을 두어 아침저녁으로 왕래하기 위한 계책입니다. 겸병(兼倂)하여 하나로 합치는 것이 그들의 커다란 욕망이고 이미 정해진 계책이니, 3천 리 강토는 이제 그물 안으로 들어간 물고기 신세입니다. 아득히 먼 시골에서 올린 소장(疏章)과 각 나라의 담판이 어찌 저들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흔들 수 있겠습니까. 진(晉)이 화하(華夏)의 맹주가 되었는데도 계씨(季氏)에게 뇌물을 받아 소공(昭公)이 돌아오지 못하고 건후(乾侯)에서 죽게 하였습니다.48) 이제 절역의 오랑캐 무리가 유독 왜노(倭虜)의 뇌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이미 그들의 뇌물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우리나라 백성과 선비들의 여론은 거리낄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뜻하지 않은 행운은 전혀 없습니다. 또 형께서 매번 크게 탄식하면서 "아무개, 아무개는 모두 나라를 위해서 죽었건만, 나만 죽지 않았으니 어찌하겠는가?"라고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충의(忠義)로 인한 울분에 격앙되어 편안히 지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죽을 수 있는 날은 반드시 적지 않을 것입니다. 어찌하여 꼭 그때 죽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기겠습니까. 예전에 선생을 모실 때 "문산(文山)과 첩산(疊山)49)은 어찌하여 나라가 망하고 도성이 점령되는 날에 죽지 않고 도리어 몇 년 뒤 자살하라는 명을 받고 부름을 받은 날에 죽었습니까?"하고 여쭈었습니다. 선생께서 "처의(處義)가 어떠한지를 볼 뿐이다. 어찌하여 꼭 죽음이 이르고 늦음을 따지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형께서도 역시 일찍이 들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곽면우(郭俛宇 곽종석(郭鍾錫))가, 군주가 치욕을 당하여 신하로서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의리를 자부하고 그날 대궐로 달려 나갔지만 끝내 낭패를 당하고 돌아와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거울로 삼을 만한 하나의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마음에는 확정한 계산이 없고 일에는 좋은 계책이 없으면서 우선 눈앞에 닥치는 일만 따르기에 힘을 쏟아 시선을 가리고자 한다면 이러한 지경에 이르지 않는 자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의리(義理)는 반착(盤錯)50)의 상황에서 잘못되기 쉽고 지기(志氣)는 전패(顚沛)되는 곳에서 버티기 어렵습니다. 바라건대 노형(老兄)께서는 이른지 늦은지 따지지 말고 진퇴를 따지지 말며 오직 자신의 뜻을 잃지 않고 자신의 절조를 굽히지 않는 것을 궁극의 계책으로 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옛날에는 나라가 망했을 경우에 죽을 수 있는 의리가 한가지라서 신하는 사직이 망하는 날 죽었습니다. 지금은 나라가 망할 경우에 죽을 수 있는 의리가 두 가지라서 신하는 사직이 망했을 때 죽고 선비는 사람과 금수로 갈릴 때 죽습니다. 그러나 사직이 망했을 때는 간혹 죽지 않고도 여전히 절조를 온전히 하는 자가 있지만, 사람과 금수로 나뉠 때는 죽지 않고 사람이 될 수 있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과 금수의 구별은 사직의 멸망보다 중요하고, 도를 위해 죽는 의리는 사직을 위해 죽는 절의보다 중요합니다. 문을 잠그고 담 구멍을 막아놓은 채 나의 복식(服飾)을 입고 나의 두발(頭髮)을 보존하다가 치의(緇衣)를 입고 머리를 깎는 재앙51)이 아주 가까이 이른 뒤에 자신의 분수를 지키더라도 어찌 늦겠습니까. 제가 자처하는 생각은 이와 같습니다만, 득실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변고와 험액(險阨)을 당하여 더불어 마음을 얘기하고 의리를 강구할 수 있는 사람으로 오직 노형(老兄)만 우러러볼 뿐입니다. 바라건대 자세히 일깨워주어 뜻이 맞는 사람과 함께 돌아가는 은혜를 아끼지 않으시기를 천 번 만 번 바랍니다. 면암(勉菴)은 근래 상황이 어떠합니까? 연재(淵齋)52)는 서울에 간 지 여러 달이 지났으니 또한 이미 돌아왔겠지요? 전우(田愚)도 지난번에 상소했다고 합니다. 전날 출가하지 않았던 여식(女息)은 이제 시집을 가서 다른 집안의 며느리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령 부모가 괴이한 증상, 급작스러운 질병이 생겼을 경우 발광(發狂)하면서 큰 소리로 부르짖건만, 자식이 된 자가 수수방관하다가 기식(氣息)이 끊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질환을 물어서야 되겠습니까. 이것이 무슨 의리이겠습니까. 한탄스럽습니다. 노신암(盧愼庵)53)은 요사이 거조(擧措)가 어떠합니까? 근래에는 직지(直指)54)의 위엄은 산읍(散邑)의 임시 아전에게도 행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왕조의 위엄을 떨치지 못하고 있으니 과연 나라에 평온함이 찾아오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온 나라 안에 비분강개하여 신포서(申包胥)55) 처럼 더불어 큰일을 할 수 있는 자가 없지 않으리라고 생각되니 나라를 보존하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실타래 같은 희망이 여기에 걸려 있습니다만, 또한 하늘의 뜻이 어떠한지 모르겠습니다. 臨歲回便。聞兄體薄有不安之節。未審開歲以來。趁復安常否。時憂世慮。何以慰遣。傾溯無任。義林曩行未就繼以歲後旬內。擬爲一造。以質多少積蘊矣。以身恙家憂。層疊不霽。亦未免見停。歎恨何爲。艾山去就。近或得聞。而闕里之會。果亦利就否耶 。聞兄將欲通喩列邑。令列邑限萬人爲聯疏之擧。其苦懇血心。令人感涕。然民無向上者久矣。人化爲狄者多矣。其能齊聲奮聚。有幾人乎。我國僻在海隅。非四方必爭之地。而必爭者。獨倭也。倭之垂涎於我。豈一朝一夕哉。近因我之衰弱。肆然闖入。號爲開化。三十餘年。計無不遂。志無不得。掃一國之兵。傾一國之財。逐淸軍於遼東。距俄人於旅順者。豈恤隣爲哉。特以絶吾援而奪吾地也。糜距萬之費。積數年之勞。穿山塡壑。置鐵路而設電繩者。亦豈通商爲哉。將以設版圖置官員。爲朝往夕來計也。兼倂合一。此其所大之欲。已定之計。而三千里疆域。今爲入綱之魚矣。窮鄕之疏章。各國之談判。何足以動彼之一髮哉。晉爲華夏之盟主。而受季氏之賂。使昭公不返。而卒於乾侯。今安知絶域介鱗之類。獨不醉於倭虜之賂乎。旣醉其賂。則我國之民論士論。亦無足憚矣。以此以彼。絶無萬一之幸。且聞兄每太息曰。某某人皆死於國。我獨不死。柰何柰何。此固忠憤所激。按往不得處也。然前頭可死之日。想必不少。何必以不死於曩時爲可恨也。昔侍先生問。文山疊山。何不死於國亡城敗之日。而乃死於數年後賜死被召之日耶。先生曰。惟視處義之如何。何必以死之早晏爲計耶。想兄亦曾聞之矣。郭俛宇以主辱臣死自許。而卽日赴闕。竟未免狼狽而歸。其爲失望大矣。此非今日吾輩之一副前鑑也耶。心無定算。事無良策。姑欲勉循目前。以塞視瞻。則其不至於此者。幾希矣。義理易失於盤錯之際。志氣難持於顚沛之地。願老兄不計早晩。不計進退。惟以不失吾意。不屈吾節。爲究竟之策。如何。古之亡國也。可死之義一。臣死於社稷之亡。今之亡國也。可死之義二。臣死於社稷之亡。士死於人獸之判。然社稷之亡也。則或有不死而猶全其節者。人獸之判也。則未有不死而可以爲人者。此人獸之判。重於社稷之亡。殉道之義。大於殉社之節也。杜門塞竇。衣吾服。存吾髮。以至緇削之災。切近床膚而後。爲之自靖。亦豈爲晩乎。此區區自處之意如此。未知得失何居耶。當此變險。可與話心可與講義者。惟老兄是仰。幸細細示及。不惜惠好之歸。千萬千萬。勉菴近狀何如。淵齋赴京有月。亦已回轅否。田愚向亦上疏云。未知前日未嫁之女。今爲已嫁之婦耶。如父母有怪證急疾。發狂號呼。而爲子者。袖手恬視。至於氣絶而後。乃問其疾耶。此何義理。可嘆可歎。盧愼庵近日擧措何如。近來直指之威。不能行於散邑之一權吏。王靈之不振如此。未知果能使魯有鳩乎。擧國之內。想不無忿憤。慷慨。可與有爲如申包胥者。則安知存楚之日。必無其時乎。一縷懸望。惟在於此。而亦未知天意之何如也。 궐리(闕里) 노성(魯城)의 궐리사(闕里祠)를 가리킨다. 노성은 현재의 충청남도 노성면이다. 진(晉)이……하였습니다 춘추 시대 노나라 계씨(季氏)가 전횡을 저지르자, 소공(昭公)이 토벌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소공 25년에 망명하여 제(齊)나라로 갔다가 28년에 진(晉)나라로 가서 건후(乾侯)에 머물다가 32년에 그곳에서 죽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소공(昭公) 25, 32년 조 참조. 문산(文山)과 첩산(疊山) 송나라가 원나라에게 멸망당했을 때 절의를 지켜 원나라에 벼슬하지 않은 문천상(文天祥, 1236~1282)과 사방득(謝枋得, 1226~1289) 두 사람을 가리킨다. 문천상의 자는 송서(宋瑞)ㆍ이선(履善), 호는 문산이다. 이종(理宗)과 익왕(益王)을 섬겼고, 임안(臨安)이 함락된 뒤에도 송나라 단종(端宗)을 받들고 근왕군을 일으켜 원군(元軍)과 싸웠으며, 위왕(衛王) 때 조양(潮陽)에서 패전하여 원군의 포로가 되어 연경에 3년 동안 억류되었다. 원나라의 온갖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정기가(正氣歌)〉를 지어 자신의 충절을 나타내고 죽었다. 《宋史 巻418 文天祥列傳》 사방득의 자는 군직(君直), 호는 첩산이다. 1256년에 문천상과 함께 진사에 급제하였다. 직언을 좋아하여 가사도(賈似道)에게 미움을 받아 쫓겨났다가 1267년에 사면되었다. 1275년에 신주(信州)를 맡았을 때, 원나라 군대가 침공하여 성이 함락을 당하자, 당석산(唐石山)에 은둔하여 제자를 가르치며 살았다. 송나라가 망한 뒤, 원나라 조정에서 누차 출사를 권했으나 굳게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원나라 지방관이 억지로 호송하여 북경에 억류해 두었으나, 굴복하지 않고 단식하다가 죽었다. 문집에 《첩산집》이 있다. 《宋史 卷425 謝枋得列傳》 반착(盤錯) '반근착절(盤根錯節)'의 준말로, 뿌리가 뒤엉키고 가지가 어지러이 교차된 것을 말하는데, 처리하기 어려운 일을 비유한다. 후한(後漢)의 우후(虞詡)가 "반근착절의 상황을 만나지 않는다면 칼이 예리한지 무딘지 분간할 수가 없으니, 지금이 바로 내가 공을 세울 때이다.【不遇盤根錯節, 無以別利器, 此乃吾立功之秋.】"라고 말한 고사에서 나왔다. 《後漢書 卷58 虞詡列傳》 치의(緇衣)를……재앙 나라가 망해 치의를 입고 머리를 깎고 중이 되는 것을 말한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1836~1905)의 호이다. 송병선은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화옥(華玉)으로 송시열(宋時烈)의 9세손이며, 큰아버지 송달수(宋達洙)에게 성리학과 예학을 수학하였다. 경연관(經筵官), 서연관(書筵官), 시강원 자의(侍講院諮議) 등에 차례로 선임되었으나 모두 거절하였다. 1905년 11월 일제가 무력으로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고 국권을 박탈하자, 12월 30일에 황제와 국민과 유생들에게 유서를 남겨놓고 자결하였다. 저서로는 《연재집》이 있다. 노신암(盧愼庵) 신암(愼庵)은 노응규(盧應奎, 1851~1907)의 호이다. 노응규의 자는 성오(聖五), 본관은 광주(光州)이다.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출신이다. 허전(許傳, 1797~1886)의 문인이고, 최익현(崔益鉉, 1833~1907) 등을 사사하였다. 1895년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자,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을 장악하였으나, 일본군의 공격과 내부의 반란으로 성이 함락되자, 아버지와 형은 살해되고 가산이 몰수되는 비운을 겪었다. 1902년 한때 조정의 관직을 맡은 적이 있으나,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관직을 버리고 다시 의병 활동을 계속하다가 1907년 결국 체포되어 옥사하였다. 직지(直指) 지방에 파견되는 어사를 말한다. 한 무제(漢武帝) 때에 처음으로 조정에서 각 지방의 정사를 전담할 관원을 두어 그를 직지사자(直指使者)라 칭했던 데서 온 말인데, 그에게 수의(繡衣)를 입혔던 데서 직지수의사자(直指繡衣使者)라고도 칭하였다. 신포서(申包胥) 춘추 시대 초(楚)나라 대부이다. 오자서(伍子胥)가 오(吳)나라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를 공격했을 때, 신포서가 진(秦)나라 조정에 가서 7일 밤낮을 통곡하며 호소한 결과, 구원병을 얻어 국난을 타개한 고사가 있다. 《春秋左氏傳 定公4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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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경에게 답함 答任宇卿 새 봄이 저물어 가는데 소식이 없으니 애타게 그리운 마음을 어찌 견딜 수 있겠는가. 인편에 편지 한 통이 이러한 때 전해지니 위안과 감사함을 어떻게 형용할지 모르겠네. 더구나 조부모와 부모를 모시고 학문하면서 줄곧 건강이 좋다고 함을 알았음에랴. '자신을 얽어맨다.'3)고 하였는데, 이는 참으로 가난을 참고 견디는 본래 모습으로 면할 수 없는 것이네. 다만 횡거(橫渠) 장재(張載)가 말한 사익(四益)과 같이 하면서 실로 더욱 공부를 더한다면 그대가 말한 '망령된 계책'이란 것이 또 어찌 올바른 계책이 아니라고 장담하겠는가. 마음이 흔들려서 사물에 이끌려 가버리는 것은 이 또한 보통 사람들이 다 같이 겪고 있는 걱정거리이네. 무릇 사물이 자신에게 닥쳐올 때 반드시 리(理)로 이겨서 사물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지 않는 것이 옳은 일이네. 그러나 마음을 존양하고 이치를 궁구하는 공부가 없다면 이(理)가 있는 곳을 알지 못하며, 또한 비록 알더라도 그 힘이 이기지 못하니, 이는 실로 일상생활에서의 제일가는 중요한 일이네. 힘쓰고 또 힘쓰게나. 향당의 학교를 '상(庠)'이라고 하고 주의 학교를 '서(序)'라 하며 나라의 학교를 '학(學)'이라고 하며, '교(校)'는 가르친다는 의미라네. 상(庠), 서(序), 학(學)은 사람을 가르치는 것 아님이 없으니, 그러므로 연달아 거론하여 문장을 이룬 것이네. 또한 교(校)는 하(夏)나라의 학교이니, 헤아릴 때 빼서는 안 되네. 우(虞)는 순(舜)의 씨이며, 하(夏)는 우(禹)의 씨이니, 이는 상고 시대의 다른 씨족류의 의미이네. 은(殷)과 주(周)는 나라 이름이요, 씨족의 호칭이 아니네. 나의 견해가 이와 같은데, 잘 모르겠네만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나 독서는 반드시 대의를 힘써 궁구해야 하니, 만약 한 글자의 위 아래와 한 구의 같고 다른 곳에 대의가 있지 않으면 참으로 급급할 필요가 없네. 정자가 말하기를 "대개 문장을 이루려고 하면 형세가 모름지기 이와 같아야 하니, 반드시 매 글자마다 각각 그 의미를 구할 필요는 없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까닭이네. 가르치고 공부하는 여가에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마음을 존양하는 공부를 더하여 나의 힘으로 하여금 저 한가롭고 태만한 것을 이기게 하고 한가롭고 태만한 것이 나를 이기게 하지 말게나. 新春向暮。音聞寂然。懷想憧憧。曷以勝堪。便頭一幅。際此來至。慰豁感沃。又不知所以爲諭。矧詢重省學履。連序佳告者乎。且示絆已之云。此固固窮本色。而有不得免者。只得如橫渠四益之云。而實加功焉。則賢所謂妄計者。又安知不爲得計也。戚戚牽引。此亦衆人通患。凡事物之來。必以理勝而不與俱往。爲可爲可。然非有存養窮索之功。則不知理之所在。雖知之。而其力又不能以勝之矣。此實日用第一事。勉之勉之。黨曰庠。州曰序。國曰學。而校者敎也。庠序學。無非所以敎人者。故連擧成文。且校是夏學。而不可以關數也。虞是舜之氏。夏是禹之氏。此是上古氏別族類之義。殷與周是國名。非氏號也。鄙見如此。未知何如。然讀書必須務窮大義。若其一字上下。一句同異。非大義所存。固不必汲汲爾也。程子曰。盖欲成文。勢須如此。不必每字。各求其義。正爲此也斅學之暇。更加端莊存養之功。使吾之力。足以勝彼之優優。而勿爲優優之所勝也。 자신을 얽어맨다 《근사록(近思錄)》 권10 〈정사(政事)〉 64조에 나오는 내용이다. "횡거 선생(橫渠先生)이 말하기를 '사람들이 어린 아이를 가르치는 일에도 또한 유익함을 취할 수 있으니, 자기를 옭아매어 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첫 번째 유익함이요, 사람을 여러 번 가르침에 자신도 글 뜻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 두 번째 유익함이요, 아이들을 대할 적에 반드시 의관을 바르게 하고 시선을 공경하게 하는 것이 세 번째 유익함이요, 항상 자신으로 인해 남의 인재를 파괴함을 근심한다면 감히 게을리 하지 못할 것이니, 이것이 네 번째 유익함이다'[人敎小童, 亦可取益, 絆己不出入, 一益也, 授人數數, 己亦了此文義, 二益也, 對之, 必正衣冠, 尊瞻視, 三益也, 常以因己而壞, 人之才爲憂, 則不敢墮, 四益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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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경에게 답함 答任宇卿 지척의 거리에서 서로 가로막혀 있으니, 더욱 마음이 아프네. 그러나 그대는 병이 들고 나는 얽매어 있으니 형세가 참으로 그렇게 되었네. 다만 그대 병이 조금 나아 이전 배운 것을 깊이 연구하여 의심난 조목이 편지에 가득하니, 학문을 즐기는 독실함이 이와 같기에 대단히 기쁘네. 그러나 오랫동안 병을 앓은 뒤에 마땅히 한가롭게 노닐면서 성정(性情)을 함양하여야 하며, 모름지기 정신을 힘들게 하면서 괴롭게 궁리하여 조섭을 해쳐서는 안 되네. 이미 사색한 것이 있다면 또한 평소 대하는 사물에 나아가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는[切問近思] 공부를 행하며, 반드시 성명(性命)의 허원(虛遠)한 것을 더듬어 상상할 필요는 없네. 어떻게 생각하는가. 질문한 여러 조목에 대해서는 나의 생각으로 대략 답을 할 것이니, 만일 온당하지 않다고 여기면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 어떻겠는가."성(性)은 곧 기(氣)이며, 기는 곧 성이다[性卽氣, 氣卽性]"4)라는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이(理)와 기가 서로 떨어지지 않은 곳이네. 그러나 '이는[是]'이라고 하지 않고 '곧[卽]'이라고 하였으니, 또한 섞이지 않는다는 뜻도 볼 수 있네.이(理)에 선과 악이 있다는 것은 사람의 기품에 맑음과 탁함, 순수함과 잡박함이 있음으로서 말한 것이네. 악도 또한 성이라고 이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마음의 발용에 과와 불급이 있음으로서 말한 것이네. 이처럼 말이 절로 같지 않네.천하의 사물이 동(動)할 때 이(理)가 타고 기가 발하지 않음이 없으니, 어찌 기가 동하여 이가 따르고 이가 동하여 기를 끼고 있는 때가 있겠는가. 면재(勉齋) 황간(黃幹)의 이 말은 본래 의심스럽네.천하에 성(性)이 없는 사물이 없으니 즉 또한 인(仁)이 없는 물건이 없네. 그러나 또한 사람의 인으로 사물에게 인을 책임 지워서는 안 되네.'의도가 없다.'는 말에서의 '의(意)'는 사사로운 의이네. 만약 의(意)자를 모두 좋지 않은 것으로 본다면 《대학》에서 어찌 '뜻을 끊어버린다.'고 하지 않고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고 하였겠는가. 咫尺阻閡。尤庸悵然。然君病我縶。勢固然矣。但美痾稍間溫理舊業。疑難滿紙。其嗜學之篤如此。慰悅萬萬。然久愆之餘。正宜優閒遊泳以養情性。不須勞神苦索以害攝理也。旣有思索。且從日用事物上。下切問近思之功。不必摸想於性命虛遠之地。如何如何。諸條謹以鄙意略略塡去。如有未穩。更以回示也。性卽氣。氣卽性。此固理氣不離處。然不曰是而曰卽。亦可見其有不雜底義。理有善惡。以人之氣稟淸濁粹駁而言。惡亦不可不謂之性。以心之發用有過不及而言。言自不同。天下之動。無非理乘氣發。安有氣動理隨理動氣挾時節耶。勉齋此說。本涉可疑。天下無無性之物。則亦無無仁之物。然亦不可以人之仁。去責那仁。無意之意。是私意也。若以意字都作不好看。則大學何不曰絶意而曰誠意耶。 성(性)은……성(性)이다 《근사록》에 보이는 정자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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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우경에게 답함 答任宇卿 이전 편지에 답장을 보내지 못한 지가 석 달이란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또다시 이번에 편지를 받게 되니 부끄러운 마음을 말할 겨를도 없네. 그런데 우리 벗은 그에 대해 따지지 않는 도량을 지녔는데, 이는 실로 일반적인 사람보다 만 배가 큰마음에서 나왔으니 고마움과 우러름이 함께 이르네. 지난번에 한번 만난 것은 오랫동안 격조한 뒤에 이뤄진 것인데 서로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곧바로 헤어졌으니, '또한 이미 군자를 보았으니 내 마음 안정되네.'5)라고 할 수 있겠는가. 뒤미처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더욱 깊네. 잘 모르겠네만 집안에 돌아간 지 여러 날이 지났는데 부모를 모시면서 건강은 줄곧 평안한가. 그렇다는 소식을 듣고픈 마음 놓을 길이 없네. 노쇠하고 저열하며 형편없는 나는 그럭저럭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어찌 아주 조금이라도 세상에 알려질 만한 것이 있겠는가. 두 장의 문목(問目)을 길게 나열하여 수백 조목에 이르는데 누에 실이나 소털처럼6) 남김없이 분석하였으니, 마음을 정밀한 곳에 두고 공부를 애써 부지런히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렇게 할 수 없네. 이제부터의 성취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이 질문들은 성인이 평소 한 말로 학자들이 항상 강론하며 토론해야 할 것들이네. 고답적이고 심원하며 학문의 단계를 뛰어넘는 논의들에 비하면 백 배 그 이상으로 절실하네. 다만 학문이 지리멸렬한 나는 이 질문에 대해 헤아려서 답할 만한 지식이 없으며 또한 어린 동몽들이 몰려들어 왼쪽에서 다투고 오른쪽에서 떠들어 잠시라도 고요히 있을 때가 없으니, 어찌 정밀하게 생각하고 세밀하게 고증하여 정성스럽게 질문한 우리 우경(宇卿)의 뜻에 만분의 일이라도 부응하겠는가.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 분명히 적지 않을 것이니, 바라건대 귀숙처로 삼지 말고 더욱 더 연구하여 다시 보여주는 것이 어떻겠는가. 간절히 바라네. '의로써 바탕을 삼는다.'7)는 말에 대해, 나의 생각은 다음과 같네. 즉 주렴계는 〈태극도설〉에서 "성인이 중(中), 정(正), 인(仁), 의(義)로써 정하되 정(靜)을 위주로 하였다."라는 하였는데, 주자는 해석하기를 '중과 인은 동(動)에 속하고, 정와 의는 정(靜)에 속한다.'고 하였네. 그러므로 나는 공자의 '의로써 바탕을 삼는다.'는 말을 인용하여 정(靜)자의 의미를 형용하였으니, 이는 비록 《논어》 본문의 뜻은 아니지만, 단장취의(斷章取義)한 것은 참으로 그러한 예가 있네. 또한 의가 바탕이 되는 것은 동(動) 가운데의 정이 아님이 없으니, 간괘(艮卦)의 '그 등에 그치면 그 몸을 보지 못한다.'8)라는 의미와 같네. 내가 인용하여 활용한 뜻은 이와 같음에 지나지 않으니, 이치에 어긋난 지는 잘 모르겠네.질문 : 마음이 허령(虛靈)할 수 있고 신명(神明)할 수 있고 지각할 수 있고 정상(精爽)9)할 수 있는 것은 기(氣)가 하는 것입니다. 허령할 수 있는 까닭과 지각할 수 있는 까닭과 정상할 수 있는 까닭은 이(理)가 하는 것입니다. 능히 주재하는 것은 허령과 신명과 지각과 정상이 하는 것이요, 주재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즉 성(性)과 이(理)가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심(心)이 이(理)와 기(氣)를 합한 것이라고 이르는 것입니까.답변 : 대단히 옳게 보았네. 주자가 이른바 '능히 지각하는 것은 기의 령(靈)이요, 지각하게 만드는 것은 심의 리(理)이다.……'10)라고 한 것은 또한 이러한 뜻이네.질문 : 정자는 진실하여 망령됨이 없는 것을 성(誠)이라 하였으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 그 다음이라고 하였습니다.11) 또한 "감히 자신을 속이지 않으며 감히 태만히 하지 않으며 혹시라도 방 귀퉁이에서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한다는 것은 모두 경(敬)의 일이다."12)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성과 경은 그 실상은 같은 것입니까.답변 : 감히 태만하지 않고 감히 자신을 속이지 않음을 경이라고 일러도 옳으며, 성이라고 일러도 또한 옳네. 만약 세밀하게 구분한다면 감히 태만하지 않는 것을 경이요, 감히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은 성이네.질문 : 하나에 집중하는 것[主一]을 경(敬)이라고 이르는데, 이에서 '일(一)'자는 심(心)이니, 일(一)은 리(理)요 주(主)는 심이라고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답변 : 주(主)와 일(一)을 심이라고 해도 옳은 말이며 리라고 하여도 옳네. 만약 세밀하게 구분한다면 주는 심이요, 일은 리이네.질문 : 사특함을 막는 것과 성(誠)을 보존하는 것은 다만 한 가지 일입니다. 예를 들면, 담장을 보수하면 도적이 스스로 이르지 않을 것이니, 경(敬)은 담장이요, 사특함은 도적이요, 성은 집안의 물건입니다.답변 : 좋은 말이네.질문 : 사특함을 막아 성을 보존한다는 것은 뜻을 성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것은 뜻이 성실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자는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것은 성(誠)이다."13)라고 하였는데, 오씨(吳氏)가 생각에 사특함이 없는 것을 성의에 해당시키고 사특함을 막아 성을 보존한다는 것을 정심(正心)에 해당시킨 것14)은 다만 사(思)와 존(存) 두 글자를 중시하였기 때문입니다.답변 : 그대의 논의가 옳으니, 오씨의 말은 과연 의심스럽네.답변15) : 사사로운 욕심[私欲]과 사특하여 망령됨[邪妄]은 참으로 두 가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네. 그러나 만약 구분지어 말한다면 사특하여 망령됨이 근본이 되고 사사로운 욕심은 지엽이 되니, 사욕이 없기는 쉽고 사망이 없기는 어렵네.질문 : "반드시 일삼아 노력을 하되 조장하지 말라."16)는 부분에서 맹자는 기를 기르는 것으로 말하였고, 정자는 마음을 기르는 것으로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음을 기르는 이외에 별도로 기를 기르는 것이 있지 않습니다. 마음을 기르면 기는 자연스럽게 커지게 됩니다.답변 : 마음을 기르는 것과 기를 기르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 아니니, 모두 안팎과 동정(動靜)을 겸하여 말한 것이네. 예를 들면 맹자는 기를 기르는 것을 말하면서 "그 뜻을 잡고도 그 기를 해치지 말라."라고 하였으니, 그 뜻을 잡는 것은 경(敬)을 주장함을 이른 것이 아닌가. 맹자는 마음을 기르는 것을 말하면서 "욕심을 적게 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17)라 하였는데, 욕심을 적게 하는 것이 의를 모으는 것이 아니겠는가.질문 : 명덕(明德)을 말하면 성정(性情)을 포함하여 그 안에 있고, 성정을 말하면 명덕을 포함할 수 없습니다.답변 : 성정은 체용(體用)을 나눠서 말한 것이요, 명덕은 체용을 통합하여 말한 것이네. 만약 '성정이 명덕을 포함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성정 밖에 또 다른 명덕이 있는 것이 옳겠는가.질문 : 지(知)는 심(心)의 신명으로 여러 이치를 오묘하게 운영하고 만물을 주재합니다.18) 심(心)은 사람의 신명으로 여러 이치를 갖춰서 만 가지 일에 대응합니다.19) 갖추고 응하는 것은 성정(性情)에 중점이 있고, 오묘하게 운영하고 주재하는 것은 심(心)에 중점이 있습니다.답변 : 지(知)로써 말하였으므로 '오묘하다.' '주재한다.'고 하였고, 심(心)으로써 말하였으므로 '갖추었다.' '대응한다.'고 하였으니, 그 실상은 같네. 어찌 심에 중점을 두거나 성정에 중점을 둔 구분이 있겠는가. 또한 심(心)은 지각하는 사물이니, 지각을 제외한다면 이 심(心)이 없네. 지금 '지(知)가 심과 성과 정을 거느린다.'고 하니, 대단히 말이 되지 않네. 어찌 우리 벗이 이처럼 보고서 논한단 말인가. 깊이 생각하길 바라네.질문 : "그 근본이 참되고 고요하며……"20)라고 한 것에 대해 주자는 "오성(五性)은 바로 진(眞)이며, 발하지 않았을 때가 바로 정(靜)이다."21)라고 한 것은 다만 거듭하여 말한 것이지만, 깊이 따져보면 그렇지 않은 점이 있습니다. 대개 앞 단락은 태극의 원두에 나아가서 말한 것이므로 먼저 진(眞)을 말한 후에 정(靜)을 말하였습니다. 아래 단락은 성분(性分)의 당체(當體)에 나아가 말하였으므로 먼저 미발을 말한 후에 오성을 말하였습니다. 이는 《중용집주》에서 "이(理) 또한 부여하였다."라 한 것은 진(眞)이며, "건순오상의 덕으로 삼았다."라 한 것은 오성(五性)인 것과 같습니다.22) 천지가 정(精)을 쌓아 오행의 빼어난 것을 얻은 것이 사람이 되니, 또한 어찌 하늘이 음양오행으로 만물을 탄생시킴에 기로써 형체를 이루는 것에 해당하지 않겠습니까.답변 : 이 단락의 분변은 대단히 의의가 있네.답변23) : 하늘에 있어서 원, 형, 리, 정으로 성(性)을 삼고 따뜻함, 시원함, 추위, 더위로 정(情)을 삼는데, 이는 사람에게 있어서 인, 의, 예, 지로 성을 삼고 희, 노, 애, 락으로 정을 삼는 것과 같네. 하늘에 있어서 원과 형은 정이 되고 리와 정은 성이 되는데, 이는 사람에게 있어서 인과 중이 정이 되고 의와 정이 성이 되는 것과 같네. 가로로 말하거나 세로로 말하거나 하늘과 사람과 사물이 모두 다 똑같네.답변 : 공용(功用)과 묘용(妙用)은 본래 다른 것이 아니네. 묘용은 공용에 나아가 특별히 그 묘처(妙處)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네.질문 : 주자가 말하기를 "나눠서 말하면 원과 형은 성(誠)의 통함이며, 리와 정은 성의 회복이다.24) 그 본체와 작용이 본래 있는 것이다. 작용으로 말하면 원이 주가 되고, 본체로 말하면 정이 주가 된다."25)라고 하였습니다. 대저 성의 통함과 성의 회복은 즉 '잇는 것은 선이요 이룬 것은 성(性)이다.'26)는 것에 해당하며 본체와 작용을 함께 말한 것입니다. 다만 이는 유행(流行)의 측면에서 말한 것입니다. 만약 원두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원, 형, 리, 정은 체가 되고, 태어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고 수확하는 것은 용이 되니, 태극이 주가 됩니다.답변 : 이는 유행이나 원두로써 말할 수 없네. 음양 동정의 단서로써 말하자면 리와 정은 체가 되고 오행 중의 하나를 각각의 성으로 삼은 것으로 말하자면 원, 형, 리, 정은 모두 체가 되네. 대개 오성은 서로 상대되는 것으로 말한 것이 있으며 유행으로 말한 것이 있네.27)질문 : 〈겸괘(謙卦)〉의 단사(彖辭)에서 "천도는 가득 찬 것을 이지러지게 하고 겸허한 것을 채워준다.……"28)라는 말 이하에서 천도, 지도(地道), 인도(人道) 등 모두 '도(道)'자를 말하였는데, 오직 귀신에서는 도(道)를 말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답변 : 하늘과 땅과 사람은 모두 형체로써 말하였으니, 그러므로 도(道)자를 말하였네. 귀신은 운용의 오묘함과 조화의 실권을 가지고 있으니, 그러므로 도자를 말하지 않았네. 한편 혹은 그 문장의 기세가 순한 것을 취하였을 수도 있네.질문 : 〈간괘(艮卦)〉의 상전(象傳)에서 "군자가 이를 본받아서 생각함이 그 지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29)라 하였으니, 무릇 사물이 닥쳐올 때 마땅히 하지 않아야 하는데 하는 것과 마땅히 해야 하는데 하지 않은 것이 모두 생각함이 그 지위에서 벗어난 것입니다.답변 : 이에서 미뤄나가 아주 조금의 어긋남이나 한번 숨 쉴 때의 멈춤도 모두 그 지위에서 벗어난 것이네. 前書未復。至三朔之久。而又此承貺。私情愧恧。有不暇言。而吾友不較之量。實出尋常萬萬。感仰交至。向者一面。出於阻久之餘。而未交一語。旋卽告別。亦可曰亦旣見止。我心則降乎。追惟增悵。未審還庭有日。侍省節宣。連膺安吉。不任願聞之情。義林衰劣無狀。姑且捱過而已。安有一半分可聞者哉。問目二紙。娓娓臚列。至數百條。而蠶絲牛毛。分析無遺。如非宅心精細。爲學勤苦者。不能。從此進就。曷其量哉。況此是聖人所雅言。而學者所常講討者也。其有切於幽深高遠。躐等淩節之論。不啻百倍。但區區滅裂。無所知識可以上下於此。而又以蒙率叢冗。左鬧右聒。無霎刻靜帖時節。其安能精思細考。以副我宇卿勤意之萬一哉。其爲失答。想必不少。幸勿視爲歸宿。益加硏窮。復以見示如何。切望切望。義以爲質。鄙意以爲濂溪太極說。定之以中正仁義。而主靜。朱子解之。以中與仁。屬之動。以正與義。屬之靜。故愚引孔子義以爲質之語。以形容靜字之義。此雖非論語本文之義。而斷章取義。固有其例。且義之爲質。未嘗不是動中之靜。如艮之不獲其身也。區區取用之意。不過如此。所未知其不至悖理否也。心之能虛靈。能神明。能知覺。能精爽者。氣之爲也。所以虛靈所以神明。所以知覺。所以精爽者。理之爲也。能主宰者。卽虛靈神明知覺精爽之爲也。所以主宰者。卽性理之爲也。此其所謂心合理氣者耶。見得甚好。朱子所謂能覺者。氣之靈。所覺者。心之理云云。亦此意。程子眞實無妄之爲誠。不欺其次。又曰。不敢欺。不敢慢。尙不愧于屋漏。皆是敬之事。然則誠敬其實一也。不敢慢不敢欺。謂之敬亦得。謂之誠亦得。若細分之。不敢慢是敬。不敢欺是誠。主一之謂敬。此一字是心。似不可謂一是理而主是心。主與一。謂之心亦得。謂之理亦得。若細分之。主是心。一是理。閒邪存誠。只是一事。如修其墻垣。則寇自不至。敬者垣墻也。邪者寇賊也。誠者家內什物。說得乎。閑邪存誠者。誠意也。思無邪者。意誠也。故程子曰。思無邪者誠也。吳氏則以思無邪。當誠意。以閑邪存誠。當正心者。只以思與存兩箇字爲重看。賢論得之。吳氏說。果可疑。私欲邪妄。固非二物。然苟欲分以言之。則邪妄爲根本。私欲爲枝葉。無私欲易。無私妄難。必有事焉。勿助長。孟子以養氣爲言。程子以養心爲言。然養心外。非別有養氣。養心。氣自然浩大養心養氣。非有異事。而皆兼內外動靜言之。如孟子言養氣而曰。持其志。無暴其氣。持其志。非主敬之謂耶。孟子言養心而曰。莫善於寡欲。寡欲非集義之云耶。言明德則包性情在其中。言性情則包明德不得。性情分體用言。明德統體用而言。若曰性情包明德不得。則是性情外。別有明德。其可乎。知則心之神明。妙衆理宰萬物。心則人之神明。具衆理應萬事。具應重在性情上。妙宰重在心上。以知言故曰妙曰宰。以心言故曰具曰應。其實一也。豈有重在心重在性情之分。且心是知覺底物事。除了知覺則無此心。今曰知者統心性情。不成說不成說。豈以吾友之見而所論如是乎。千萬人思。其本也眞而靜云云。朱子曰。五性便是眞。未發便是靜。只是疊說。然深究之不然也。盖上段是就太極原頭上說下來。故先言眞而後言靜。下段是就性分當體上說上去。故先言未發而後言五性。如中庸集註。理亦賦焉。是眞也。以爲健順五常之德。是五性也。天地儲精。得五行之秀者爲人。又豈非天以陰陽五行。化生萬物。氣以成形者耶。此段所辨。其有意義。在天以元亨利貞爲性。而以溫涼寒暑爲情。猶在人以仁義禮智爲性。而以喜怒哀樂爲情也。在天以元亨爲情。而以利貞爲性。猶在人以仁中爲情。而以義正爲性也。橫說竪說。天也人也物也。皆是一般。功用妙用。本非二物妙用是就功用中。特指其妙處而言。朱子曰。分而言之。則元亨誠之通。利貞誠之復。其體用固有在矣。以用言。則元爲主。以體言。則貞爲主。夫誠之通。誠之復。卽繼之者善。成之者性。而體用之云。但以流行邊說話。若以原頭說。則元亨利貞爲體。生長遂藏爲用。太極爲主。此不可以流行原頭言也。以陰陽動靜之端言。則利貞爲體。以五行各一之性言。則元亨利貞。均之爲體。盖五性有以對待言者。有以流行言者。謙之彖。天道虧盈而益謙以下。皆言道字。而獨於鬼神不言者何。天地人。皆以形體言。故言道字。鬼神有運用之妙。造化之柄。故不言道字。且或取其順文勢耳。象曰。君子以思不出其位。凡事物之來。不當爲而爲之者。所當爲而不爲者。皆思出其位也。推而至於一毫之差。一息之斷。皆爲出位。 또한……안정되네 《시경》 〈초충(草蟲)〉에 "찌르르 찌르르 우는 풀벌레며, 팔짝팔짝 뛰는 메뚜기로다。군자를 만나 보지 못한지라, 근심하는 마음 아프노라. 또한 이미 군자를 보며, 또한 이미 군자를 만난다면, 내 마음 안정되도다。〔喓喓草蟲, 趯趯阜螽。未見君子, 憂心忡忡。亦旣見止, 亦旣覯止, 我心則降.〕"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누에 실이나 소털처럼 원나라 학자 오징(吳澄, 1249~1333)이 주희의 〈육선생화상찬(六先生畫像讚)〉을 본떠 주희의 화상을 그려 놓고 〈회암선생 주문공 화상찬(晦庵先生朱文公畵像讚)〉을 지었는데, 거기에 "현묘하고 은미한 의리는, 누에실과 소털처럼 자세히 분석했네. 마음은 넓고 넓어서, 바다처럼 넓고 하늘처럼 높았네. 호걸스러운 재주요, 성현의 학문이었도다. 경성과 상서로운 구름이요, 태산과 교악이셨네.[義理玄微, 蠶絲牛毛. 心胸恢廓, 海闊天高. 豪傑之才, 聖賢之學. 景星慶雲, 泰山喬嶽.]"라고 하였다. 의로써 바탕을 삼는다 《논어》 〈위령공(衛靈公)〉에서 "군자는 의로써 바탕을 삼고, 예로써 그것을 행동으로 옮긴다.〔君子義以爲質 禮以行之〕"라고 하였다. 간괘의……못한다 《주역(周易)》 〈간괘(艮卦)〉에서 "그 등에 그치면 그 몸을 보지 못하여 그 뜰을 지나더라도 그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으리라.〔艮其背 不獲其身 行其庭 不見其人 无咎〕"라고 하였다. 정상 주자는 심을 기(氣)의 정상(精爽)이라 하였다. 능히……리이다 《주자어류》 권5 〈성리〉2에 보인다. 진실하여……하였습니다 이 내용은 《근사록》 〈도체(道體)〉에 보인다. 감히……일이다 《심경(心經)》에서 《주역(周易)》의 '경이직내(敬以直內)'를 논한 부분에서 정자는 "주일(主一)을 경이라 이르니, 안을 곧게 한다는 것은 바로 주일의 뜻이다. 감히 속이지 않으며 감히 태만히 하지 않으며 혹시라도 방 귀퉁이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한다는 것은 모두 경의 일이니, 다만 이것을 보존하여 함양하면 오래 할 경우 자연히 천리가 밝아진다.[主一之謂敬, 直內乃是主一之義. 至於不敢欺, 不敢慢, 尙不愧于屋漏, 皆是敬之事也. 但存此涵養, 久之, 自然天理明.]"라 하였다. 생각에……성이다 《논어》 〈시삼백(詩三百)〉장의 주에서 정이천이 한 말이다. 오씨가……해당시킨 것 오씨는 임천 오징(吳澄)이다. 그가 말하기를 "정자가 '생각에 간사함이 없는 것이 성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사' 자는 사욕과 악념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천리만 있고 인욕이 없으며 선만 있고 악이 없는 것, 이것이 간사함이 없는 것이다. 간사함이 없으면 망녕되지 않으며 망녕되지 않은 것을 성이라 이르니, 《대학》의 조목으로 말하면 성의의 일이다. 《주역》 〈문언전〉에 '사를 막아 그 성을 보존한다.'라고 하였으니, 이 '사' 자는 사욕과 악념을 말한 것이 아니다. 성이란 성인의 망령됨이 없는 진실한 마음이다. 외물이 밖에서 접해 오매 그것을 막아서 안을 범하지 않게 하여, 안의 마음이 두 갈래로 가지 않고 잡되지 아니하여 성이 저절로 보존되는 것이니, 《대학》의 조목으로 말하면 정심의 일이다.[程子謂思無邪者, 誠也, 此邪字, 指私欲惡念而言. 有理無欲, 有善無惡, 是爲無邪. 無邪, 斯不妄, 不妄之謂誠, 以大學之目, 則誠意之事也. 易文言傳曰閑邪存其誠, 此邪字, 非私欲惡念之謂. 誠者聖人無妄眞實之心也. 物接乎外, 閑之而不干乎內, 內心不二不雜, 而誠自存, 以大學之目, 則正心之事也.]"라고 하였다. 《心經附註 卷1 易 閑邪存誠章》 답변 질문은 싣지 않고 답변만 실었다. 반드시……말라 《맹자》 〈호연지기〉의 조장(助長) 부분에 보이는 말이다. 욕심을……없다 《맹자》 〈진심하〉에 보인다. 지는……주재합니다 《대학장구》 서의 '인의예지의 성〔仁義禮智之性〕'에 대한 운봉 호씨(雲峯胡氏)의 주석에서 주자가 인의예에 대해서는 풀이를 하였는데 유독 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없다고 하면서 "일찍이 주희의 뜻을 취하여 보충하기를, '지는 심의 신명이니 중리를 묘용하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라 하였다.〔嘗欲竊取朱子之意以補之曰 智則心之神明 所以妙衆理而宰萬物者也〕"라는 말이 보인다. 심은……대응합니다 《대학장구》의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힘에 있고〔大學之道 在明明德〕"에 대하여 주희는 주에서 "명덕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으로 허령불매하여 모든 이치를 갖추고서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明德者 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라고 하였다. 그 근본이 참되고 고요하며 《근사록》 〈위학(爲學)〉에서 정이천이 한 말로 "천지가 정기를 축적하여 만물을 내는데, 이때 오행의 빼어난 기운을 얻은 것이 바로 사람이 되니, 그 근본은 역시 참되고 고요하다고 할 것이다.〔天地儲精 得五行之秀者爲人 其本也 眞而靜.〕"라 하였다. 오성은……정이다 주자는 "본(本)은 본체(本體)이며, 진(眞)은 인위(人僞)가 섞이지 않은 것이다……오성(五性)이 곧 진(眞)이고 발하지 않았을 때가 곧 정(靜)이다.[本是本體, 眞是不雜人僞……五性便是眞, 未發時便是靜.]"라고 하였다. 《朱子語類 卷30 論語》 《晦庵集 卷42 答胡廣中》 이(理)……같습니다 《중용장구》 경 1장에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이른다."라고 한 데 대한 주희의 주에 "명(命)은 영(令)과 같고, 성은 바로 리이다. 하늘이 음양(陰陽)ㆍ오행(五行)으로 만물을 화생(化生)하매 기로써 형체를 이루고 리 또한 부여하니 명령함과 같다. 이에 사람과 물이 태어나매 각기 부여받은 리를 얻음으로 인하여 건순(健順)ㆍ오상(五常)의 덕을 삼으니, 이른바 성(性)이라는 것이다.〔命 猶令也 性 卽理也 天以陰陽五行 化生萬物 氣以成形而理亦賦焉 猶命令也 於是 人物之生 因各得其所賦之理 以爲健順五常之德 所謂性也〕"라고 하였다. 답변 질문은 실려 있지 않고 답변만 있다. 이후로 이와 같은 경우가 다시 나오면 주를 달지 않는다. 나눠서……회복이다 주자가 인용한 이 말은 원래 주돈이의 《주원공집(周元公集)》 권1 〈통서(通書)〉에 보인다. 나눠서……된다 《주역》 〈건괘〉 단사(彖辭)의 주에 보이는 말이다. 잇는……성이다 《주역》 〈계사전 상〉에 "한 번 음이 되고 한 번 양이 되는 것을 도라고 하니 이것을 계속 이어 가는 것이 선이요, 이것을 이루어 갖춘 것이 성이다.[一陰一陽之謂道 繼之者善 成之者性也]"라 하였다. 원형이정은……있네 이와 같은 질문이 《노사집》 권8 〈답정국언(答鄭國彥)〉에 보인다. 이에 대해 노사는 "원형 운운한 것은 춘하추동과 같고, 인의 운운한 것은 동서남북과 같으니, 대체로 유행하는 것과 상대되는 것은 본래 같은 맥락이다."라고 답하였다. 천도는……채워준다 《주역》 〈겸괘(謙卦) 단(彖)〉에 이르기를 "천도는 차서 넘치면 허물어뜨리고 겸허하면 더해 주며, 지도는 차서 넘치면 변화시키고 겸허하면 계속 흘러가게 하며, 귀신은 차고 넘치면 재앙을 내리고 겸허하면 복을 주며, 인도는 차고 넘치면 싫어하고 겸허하면 좋아한다.〔天道虧盈而益謙 地道變盈而流謙 鬼神害盈而福謙 人道惡盈而好謙〕"라 하였다. 군자가……않는다 《주역》 〈간괘(艮卦)〉에서 "산이 거듭함이 간이니, 군자가 본받아 생각함이 그 지위를 벗어나지 않는다.[兼山, 艮, 君子以思不出其位.]"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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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8) 咸於湖右諸縣最稱名鄕以地則有箕山潁水之勝以學則傳洛閩淵源之正士皆敦尙孝悌動慕賢聖科甲輩出儒化蔚興者厥有久矣第惟校齋儀節 文廟位置視諸國學雖有大小之差殊尊聖衛道則其揆一也乃玆域中章甫詢議僉同編次舊蹟釐成二冊名之曰校誌其文實倣史家紀事之法其義亦寓賢關興學之制俾後生縫掖肄業於淸肅之地閱此誌而觀感焉則濟濟乎彬彬乎自有所興起者存矣嗚呼正路蓁塞士趍未定而校誌廣布則其於立紀綱而正名分淑世敎而明彛倫烏可無少補也歟弘雨猥忝直員之任幸與諸君子協議相役不可無一言故略掇其顚末寘諸卷端云癸酉十月下澣慶州李弘雨謹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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凡例 一本郡鄕校文蹟舊無印本故殆多散逸今以一鄕僉議考據記述以爲上下二卷登榟壽後一校宮諸圖揭載卷首一五聖位及從祀諸賢事實略記于卷首以伸尊慕之意一鄕校建置事實及位置從實入錄一鄕校殿堂齋庫等或古有今廢鄕校任員名稱與定數亦古今有異倂爲隨錄以備參古證今一學田自有校宮養士齋之別養齋所有今屬咸平公普校幷爲記錄以備後日之還復一祀典諸儀逐條詳錄以備奉行之道習肄之方一圖書經傳子集之外所弆何限而旣多散失故今考所存者槪錄一本校古蹟自 宣廟己亥以後頗有可據各以年次收錄一諸契案序及跋亦以年次收錄一詩韻序其年次隨類合錄一揭板文校宮養士齋考其年次錄爲一編一三十案淸衿儒案老人宴案依存案入錄而案名與單名有異處註以案名未入單處以其序次只錄姓名備存舊考一隨行案營建有司案自有東齋養士齋之別而東齋則起自 正廟己亥養齋則起自 正廟辛丑亦間有斷爛不能接續依存案入錄一丙寅重建實錄已成只記趙郡守記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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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衿案序(7) 夫靑衿案者惟我國朝盛時上自國都以至州郡擇其土居人物中文行特秀者氏啣書底案而名曰靑衿尊閣于校齋無論某地方一入于此案則不問可知爲名下士也其後承則世襲爲淸望之族此案之尊且重果何如哉現今世敎解弛冠儒服儒漸就汚下至于冠屨倒置之境言念于此中夜憂懼思所以策勵士氣振興善俗者則莫如續修此案先爲一鄕矜式之道故域中人士僉議齊發不數月而工告訖抑亦一線陽脈不絶於衆陰之中而然歟吾鄕至道之變可指日而待者矣鉉斗寒微菲拙俾忝相役之末實是分外又以一言付尾極知僭越然惟願入案之濟濟靑衿勿以今日之入名成案以爲吾事畢了必以靑衿之本義更加勉慮戰兢孜孜德業相勸善行相導永不負爲靑衿之士則此便是吾道之指南其於世道豈曰小補也哉是役之顚末已有諸賢之述玆不更贅辛未十二月 日興城張鉉斗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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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 夫薰蕕俱是草也而古人之言薰蕕不可與同器玆曷故焉以其薰之香異於蕕而然也奚草爲然至於人亦然人之同一郡者無異於同器之薰蕕而終有薰自薰蕕自蕕之理故我朝中古以來一郡之靑衿案所以作也第念案之名義何居繹其氏族閥閱之尤著現存人物中志行之嘉尙者許入於案顧案之義重且大矣故爲案中之後承者隨其時代重修之且況我郡則綿州之五坊新入於我郡參錯新舊重修之役固其時也何幸今秋郡議詢同合成一冊噫是案之成也或者似不無薰蕕同器之誚然但入於此案者各自勉勵不爲蕕而爲薰則安知今日之案有補於風化之萬一也哉不侫猥參是役略識其顚末故忘僭而書之如右後日若有罪我者則亦可謂知我者云爾辛未十二月 日坡平尹鎔炳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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跋(2) 吾郡於湖省素稱衣冠之鄕往昔盛時絃誦不輟縉紳輩出不但爲箕穎之山水左右映帶實由乎鄒魯之風敎擩染服習而多士靑衿蔚襄興作矣柰玆挽近以來滄桑經劫氈裘交侵縫掖之徒倚席不講章甫諸儒束書不觀昔賢所謂簪裾徒在廝養何殊者不幸近之矣尙賴一線陽脈雖在九野寒威之中將有復生之理域中僉賢圖所以重刊是案選擇有儒雅文行之人列名于案中命之曰靑衿者冠儒服儒之摠稱也凡例精詳謹嚴而必書某貫某後者美其念祖修德也付諸剞劂者欲無眞贋相混也不但校齋尊閣而廣佈印本者庶幾乎觀省而有所感發也不侫猥以襪線庸才冒參是役絲毫無補而贅附數語極知僭越然亦固出於秉彛好懿之心也詩曰緇衣之宜兮弊予又改造兮記曰好賢如緇衣今此靑衿之改案亦如緇衣改造之誠也歟辛未十二月 日金海金東昕謹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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校宮門墻修繕事實記 郡邑之有學校厥惟久矣蓋其始設與夫一籩一豆無不奉令而行將圖惟永遠者以體統尊也至于季世爲治者不知政學之爲一故緩於修擧一二章縫亦不能操起弊之權而只有相顧歎惋之心噫道學之衰敗天理之逆件乃至於此耶吾咸僻在海堧距漢師遼遠學宮之弊亦坐在裏許而不得免焉金寢郞東昕爲直員謁先聖先師退而見聖廟門墉傾壞舍菜燒香之費亦難支供慨然興歎曰吾責也其敢不蘉凡係修繕罔不盡力又貯其三年手當金使之買土以佽助之於是門墉尊嚴菜香有資向所謂歎惋而無操者庶幾一朝如釋重負噫何其惠而勤而周也現今倫綱斁敗義理晦塞侮聖慢天不啻如晦翁所歎國庠茂草聖塑斷絶而已也則寢郞此擧奚但出於復故常誇壯觀以取一鄕之名聲哉蓋欲以尊先聖而倡後學使倫綱義理燦然復明於世也苟能各自惕念惟實學是務而毋徒以虛文爲能事則何患乎尊奉嗣葺之無人而庶不負寢郞當日之所期矣多士乎盍相與勉之哉多士命余記于板遂書之以爲後勸辛未九月日坡平尹桂炳記直員金海金東昕掌議坡平尹桂炳竹山安基駿光山金琯鉉咸平李敏煥晉州鄭欒燮金海金炳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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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회고 廣州懷古 광릉75)의 삼월 관향(貫鄕)에 도착하니 (廣陵三月到先鄕)천 리에서 찾아온 못난 후손은 한이 유장하네 (千里孱孫感恨長)뽕나무와 가래나무76)는 모두 심어서 우거졌고 (梓桑皆是栽培蔭)천석은 일찍이 지팡이 짚고 걸어 다녔었지 (泉石曾經杖屨行)오늘날 후손 영락한 이 많으니 (雲仍今日多零替)누가 가업을 다시 드날리겠는가 (世業何人更闡揚)성묘하고 다시 하산하는 길을 찾으니 (展墓還尋山下路)더디고 더딘 내 발걸음 무겁기만 하네 (遲遲我步不能輕) 廣陵三月到先鄕。千里孱孫感恨長。梓桑皆是栽培蔭。泉石曾經杖屨行。雲仍今日多零替。世業何人更闡揚。展墓還尋山下路。遲遲我步不能輕。 광릉(廣陵) 경기 광주(廣州)의 이칭이다. 뽕나무와 가래나무 부모가 자손에게 물려주고자 심는 나무들이다. 따라서 고향이나 노부모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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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뜬 밤에 벗 문계원77)【송규】을 만나다 月夕逢文友啓元【頌奎】 하늘에 달 뜬 밤 벗이 산당에 도착하니 (友到山堂月到天)옷깃을 부여잡고 악수한 뒤에 서연에 함께 앉았네 (携襟握手共書筵)진실된 공부 마음에 보존하지 못하였고 (實功未得存心上)학문의 힘은 극기 공부를 온전히 하기 어렵네 (學力難全克己邊)생애는 번화한 속진에서 허비하지 말고 (生涯莫促繁華界)사업은 건장한 나이에 용감하게 도모하게 (事業勇圖強壯年)더구나 부모님 살아계시고 형제 무고한 날 (況在俱存無故日)인생의 운수 십분 온전한 데이랴 (人生氣數十分全) 友到山堂月到天。携襟握手共書筵。實功未得存心上。學力難全克已邊。生涯莫促繁華界。事業勇圖強壯年。況在俱存無故日。人生氣數十分全。 문계원(文啓元) 문송규(文頌奎, 1859~1888)이다. 자는 계원, 호는 귀암(龜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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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순견이 잡초 우거진 뜰을 소제하는 것을 보고 정애산과 함께 짓다 見安舜見掃除庭穢與鄭艾山同題 구주134)에 나쁜 기운이 가려 밝지 않은데 (九有氛塵蔽不明)구구하게 어찌 한 뜰만 깨끗하게 하는가135) (區區安事一庭淸)앞으로 이 빗자루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 (將來此箒休輕用)다만 마음이 전일하여야 절로 깨우치리라 (只合靈臺自喚惺) 九有氛塵蔽不明。區區安事一庭清。將來此箒休輕用。只合靈臺自喚惺。 구주(九州) 중국 전체를 뜻하는 말로, 여기서는 천하의 의미이다. 한……하겠는가 후한(後漢) 진번(陳蕃)이 어렸을 적에 설근(薛勤)이 "아동은 어찌하여 소제를 하고서 빈객을 맞지 않는가."라고 묻자, 진번이 "대장부가 세상에 처하여 응당 천하를 소제해야지, 어찌 하나의 집을 일삼겠습니까.[大丈夫處世當掃除天下, 安事一室乎?]"라고 한 고사가 있다. 『後漢書 陳蕃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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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삼136)【경진】의 시에 화운하다 和朴孝三【璟鎭】 객지에서 봄 세 달 동안 뜰을 나가지 않고 (爲客三春不出庭)뜰 앞 풀빛이 푸른 것만 보네 (庭前草色只看靑)자주 단란하게 모여 즐기는 것 아끼지 말라 (莫惜頻頻團聚好)새벽별과 같은 노년의 나이 탄식할 만하네 (堪嗟年輩若晨星) 爲客三春不出庭。庭前草色只看青。莫惜頻頻團聚好。堪嗟年輩若晨星。 박효삼(朴孝三) 박경진(朴璟鎭, 1897~?)이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효삼, 호는 묵헌(默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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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화【병현】에게 답함 答尹致化【秉鉉】 우러러 연모하던 상황에서 보내주신 편지를 받으니 참으로 위안이 됩니다. 인하여 경서(經書)를 공부하시는 체후와 일상이 순조롭고 더욱 복되다는 것을 알았으니 제 마음이 위로를 받고 후련하여 더욱 듣고자 하는 소식이었습니다. 의림(義林)은 병으로 궁색한 침상에 엎드려 신음하지 않는 시절이 없으니 헛되이 살다가 헛되이 죽어 천지 간에 한 마리 좀 벌레〔天地間一蠹〕109)가 되는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편지에서 말씀하신 "정좌(靜坐)를 하면 혈기가 혼란스럽지 않고 정신이 들뜨지 않는다."라는 말씀은 학문의 지극히 긴요하고 지극히 간략한 곳으로 맹자가 말한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110)의 본의를 잘 이해한 것입니다. 강서(講書)에 마음을 다하여 날로 훌륭한 경지로 나아가시니 벗에게 좋은 소식이 이외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매우 부럽습니다. 瞻戀之際。得承惠幅。良慰良慰。因審經體動止。順序增休。區區慰豁。尤叶願聞。義林病伏窮榻。無非呻吟時節。只恨虛生虛死。爲天地間一蠹而已。示意靜坐。則血氣不亂。精神不浮。此是學問至要至約處。甚得孟子求放心之本意也。講書鑽硏。日就佳境。朋知好消息。此外何有。甚羨甚羨 천지……벌레 송(宋)나라 학자 이천(伊川) 정이(程頤)가 일찍이 말하기를 "농부가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오곡을 농사지으니 내가 그것을 먹고, 백공(百工)이 기물(器物)을 만드니 내가 그것을 사용하고, 군사들이 갑옷에 무기를 들고 나라를 지키니 내가 편안히 지낸다. 나는 사람들에게 혜택도 주지 못하고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천지간에 한 마리 좀과 같은 존재이다. 다만 성인(聖人)이 남기신 글을 모아 엮어서 보충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하였다. 《二程遺書 卷17》 잃어버린……것 맹자가 "학문의 도는 다른 것이 없고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孟子 告子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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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운숙【영렬】에게 답함 答孫雲叔【永烈】 뜻하지 않게 영종(令從 상대방의 사촌 형제)의 방문을 받았는데 편지를 아울러 가지고 왔습니다. 오랫동안 소식이 막혀 남아 있던 서글픔이 충분히 해소되었습니다. 감격스러움을 어떻게 표현하겠습니까. 서신을 통해서 형제분의 체후가 더욱 편안하심을 알았으니 간절히 축원하던 마음에 더욱 합치됩니다. 의림(義林)은 병세가 갈수록 심해져서 약이(藥餌)로 병을 다스려 효과를 보는 일은 반드시 세상을 떠난 뒤에야 끝날 것이니 그저 기다려야 할 뿐입니다. 존선(尊先)의 비갈명(碑碣銘)과 서문(序文) 2편을 삼가 지었기에 올립니다. 살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사람이 보잘것없고 문사(文辭)가 졸렬하여 감히 요구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간절한 뜻을 어기기 어려워 이렇게 지었습니다. 송구합니다. 謂外令從枉過。兼有心畫。久阻餘悵。十分消釋。感感何喩。仍審棣體節宣。神相增謐。尤協企祝。義林病情轉深。藥餌稽效。必是乘化乃已。只當俟之耳。尊先碣銘及弁文二度。謹已泚筆。玆以仰呈。惟視至如何。人微文拙。固知其不敢承膺。而重違勤意。撰述如此。悚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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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행【윤수】에게 답함 答金士行【潤洙】 생각지도 못하게 애존(哀存 상중에 있는 사람의 편지)을 받들고 여러 차례 어루만지자니 감격스러움이 멈추지 않습니다. 편지에서 하신 말씀은 감히 스스로 외면하지 못하고 삼가 소견을 올립니다. 출계자(出繼者 양자로 간 사람)는 본생 부모에 대해 연제(練祭 소상제(小祥祭))를 지낸 후에 치립(緇笠)과 치대(緇帶)를 하여 27개월을 마쳐야 하니 그 사이에는 결코 상복을 바꾸어 입는 절차가 없습니다. 부장기(不杖期)를 하면 담제(禫祭)를 지내지 않으므로 본생 부모에 대해서는 담제가 없고 담제가 없으므로 연제 때 곧바로 치대를 합니다. 또한 지팡이라는 것은, 상인(喪人)이 몸을 극도로 상하여 힘이 없기 때문에 짚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출입할 때와 곡읍을 할 때는 모두 지팡이를 사용해야 하지만 우제(虞祭)를 거행한 뒤에는 지팡이를 가지고 실(室)에 들어가지 않고 부제(祔祭)를 거행한 뒤에는 지팡이를 가지고 당(堂)에 오르지 않으니33) 이것이 애통함을 조금씩 줄이는 것입니다.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謂外拜承哀存。靡挲數迴。感感無已。示意不敢目外。謹貢愚見。出繼子於本生父母。練後當緇笠緇帶。以終二十七月之數。則其間絶無變服之節。夫不杖則不禫。故於生親無禫。無禫故練祭卽爲緇帶矣。且杖者。喪人致毁無力。故扶杖而起者也。然則出入時。哭泣時。皆所當杖。然虞杖不入於室。祔杖不升於堂。此其殺哀者也。諒之爲望。 우제(虞祭)를……않으니 《예기(禮記)》 〈상복소기(喪服小記)〉에 보인다. 해당 경문에 대해 진호(陳澔)는 "우제(虞祭)는 정침(正寢)에서 거행하고, 제사를 지낸 뒤에는 지팡이를 가지고 실(室)에 들어가지 않는다. 부제(祔祭)는 조묘(祖廟)에서 거행하고 제사를 지낸 뒤에는 지팡이를 가지고 당(堂)에 오르지 않는다. 모두 슬픔이 줄어든 것을 나타내는 절도이다.【虞祭在寢, 祭後不以杖入室. 祔祭在祖廟, 祭後不以杖升堂. 皆殺哀之節也.】"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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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일에게 답함 答奇會一 종이 한 장의 조령(詔令)으로 억만 명의 백성이 다시 살아나는 날이 되었으니 옛날에 이르던 "광패한 장수와 억센 병졸들이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는 일"을 오늘 다시 보았습니다. 노형(老兄)께서 먼 골짜기의 벗이 괴롭고 울적한 상황을 염려하여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기쁜 소식을 전해주시니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다만 팔도 각처에서 의(義)를 외치는 목소리가 드높건만 오직 이 호남만 공허합니다. 시세(時勢)와 역량이 같지 않기 때문일까요? 안위(安危)의 향배가 일찍이 이번 거조(擧措)에 달려 있으니, 이를 격려하고 징계하는 것이 중흥의 기본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노형께서 이러한 때 소장(疏章)을 올려 한 도의 여망에 부응할 수 있었으니 또한 천하에 할 말이 있게 되었습니다. 근래 사대부들이 안락함에 빠져서 구차스럽게 눈앞의 계책만 바라고 천년이 지나도록 전에 없던 변고에 길들여진 것은 모두 개화(開化) 때문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세워야 하는 계책은 두발(頭髮)과 의복이 옛 제도를 회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정삭(正朔), 명호(名號), 관작(官爵), 격식(格式)이 하나하나 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자(夫子)께 말씀하신 정명(正名)의 뜻입니다. 이에 밝게 조서(詔書)를 내려 하늘 아래 함께 살 수 없고 죽음만 있고 삶은 없다는 뜻을 유시(諭示)하고 팔도에 널리 고하여 만백성의 눈과 귀를 일깨워 순역(順逆), 사정(邪正), 취사(取舍), 향배(向背)의 분별을 알게 하고, 위망(威望)을 지니고 책략을 갖춘 충정(忠正)한 자를 택하여 각 도의 방백(方伯) 및 병사를 모집하는 임무를 맡기셨습니다. 또 열읍(列邑)에서도 각각 1인을 택하여 군비(軍備)를 크게 일으켜 날마다 훈련하고 연변(沿邊)의 지형을 잘 살펴서 모든 요해처(要害處)에 방수(防守)와 요격(邀擊)의 계책을 세우는 것은, 오늘날 결코 그만둘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노형의 상소가 이미 발단이 되었으니 또 이러한 뜻으로 두 번 상소하고 세 번 상소하는 것 또한 어찌하여 하지 못하겠습니까? 이미 올린 상소가 시기를 놓쳤다고 생각하여 마음속으로 스스로 책망해서는 안 될 듯합니다. 스스로 생각건대 보잘것없는 제가 지위를 벗어나고 말에 분수가 없어 죄송스럽습니다. 그저 노형과 어울려 친하게 지낸다는 것만 믿고 감히 어리석은 생각을 늘어놓았습니다. 보시고 태워버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一紙溫綸。是億萬生靈再造之日。古所謂狂將悍卒。無不感泣者。又見於今日矣。老兄爲念遐峽友朋苦鬱之狀。不留晷刻。而示且喜報。感謝萬萬。但八路諸處。義聲崢嶸。而惟此湖南。及寥寥焉。是其時勢事力有不同者耶。安危向背。未嘗不在今番一擧措之間。激勵懲創。安知不爲中興基本也。老兄此時進章。可以塞一路之望。而亦足有辭於天下也。近來士大夫。狃於宴安。苟冀目前之計。而馴致一千年無前之變者。皆是開化之爲也。今者之計。不但頭髮衣服之復古。如正朔名號。官爵格式。一一反正。此夫子所謂正名之義也。於是明降詔旨。諭以不共戴天。有死無生之意。洞告八域。以醒萬民之耳目。俾知順逆邪正取舍向背之分。擇忠正有威望有謀畧者。以充諸路方伯及召募之任。又自列邑。各擇一人大作武備。日日練習。審察沿邊地形。凡於要害處。爲據守邀擊之計。此在今日而爲決不可已者也。然則老兄之疏。旣爲發端。又以此意再疏三疏。亦何不可之有哉。恐不可以已進之疏。爲過時而自咎於心也。自惟無狀。出位而言高。罪也罪也。只信和愛。敢布狂瞽。幸覽而火之。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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