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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신재집(日新齋集) 21권 12책 日新齋集 日新齋集 고서-집부-별집류 교육/문화-문학/저술-문집 문집 국역 日新齋集 丁卯 丁卯 [1927] 鄭義林 목활자본 『일신재집(日新齋集)』 12 有界 10行22字 註雙行 한자 內向3葉花紋魚尾 전남대학교도서관_불명처1 전남대학교도서관 1927년에 간행한 조선 말기의 학자 정의림(1845~1910)의 시문집. 『일신재집(日新齋集)』은 21권 12책으로 문인 박준기(朴準基), 홍승환(洪承渙) 등과 족인(族人) 정병해(鄭炳海) 등이 유고를 모아 1927년 간행했으며, 서문과 발문은 없다. 권1은 시 175제가 수록되어 있다. 대체로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으며, 사우들을 만나고 지은 교제시가 대부분이며, 뒷부분은 만시가 많다. 그는 노문삼자로 불리웠던 정재규와 특별한 교분이 있어서 서로 영호남을 방문하고 시를 남겼으며, 1902년에는 『노사선생문집(蘆沙先生文集)』중간을 위해 단성의 신안정사를 방문하고 이어 최익현(崔益鉉), 기우만(奇宇萬), 정재규(鄭載圭), 최숙민(崔琡民) 등과 칠불사(七佛寺)에서 함께 지은 시가 남아 있다. 대표적인 시로는 「서석창수운(瑞石唱酬韻)」10수를 들 수 있다. 정의림은 이 시의 서문에서 1887년 8월 17일부터 8월 23일까지 7일간 친구나 문인들과 함께 화순에서 무등산의 광석대(廣石臺), 상봉(上峯), 증심사(澄心寺)를 거쳐 다시 화순의 만연사선정암(萬淵寺禪定庵), 능주의 영벽정(映碧亭)과 동귀봉(東歸峯)을 다녀오면서 지은 것이라고 하였는데, 방문한 곳에 대한 자신의 느낌과 그 곳의 풍광을 잘 묘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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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 양공【재성】에 대한 만사 挽華奄梁公【在成】 어디에 고반237)이 있는가 (何處考盤在)화표의 학238) 만 겹이나 시름겹네 (華鶴萬疊深)몸은 초야에서 늙었고 (身世老漁樵)사업은 거문고와 책에 부쳤네 (事業付書琴)고상한 의리 향리에 드러났고 (高義著鄕里)맑은 의표 운림을 움직였네 (淸標動雲林)어찌하여 다 떠나 버렸나 (如何乘化盡)나를 버리고 찾지 않네 (棄我不相尋)옛 벗은 새벽별처럼 드무니 (故舊如晨星)교유함에 누구와 함께하랴 (交遊誰盍簪)병으로 변변치 않은 제물 올리지 못하고 (病違鷄酒奠)흰 구름 낀 봉우리를 슬피 바라보네 (悵望白雲岑)이 몇 줄의 만사를 지어서 (述此數行誄)눈물을 닦으며 한번 읊조리네 (拭淚試一吟) 何處考盤在。華鶴萬疊深。身世老漁樵。事業付書琴。高義著鄕里。淸標動雲林。如何乘化盡。棄我不相尋。故舊如晨星。交遊誰盍簪。病違雞酒奠。悵望白雲岑。述此數行誄。拭淚試一吟 고반(考盤) 『시경(詩經)』의 편명으로, 산림에 은거하며 안빈낙도하는 은사의 생활을 즐긴다는 말로 쓰인다. 화표(華表)의 학 화표는 요동(遼東)을 가리킨다. 요동 사람 정영위(丁令威)가 선도(仙道)를 배워 터득한 뒤 천 년 만에 학으로 변해 고향 땅에 돌아와서 화표주(華表柱)에 앉아 있다가 탄식하며 날아갔다는 전설이 있다. 『搜神後記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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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뢰【치만】에게 답함 答宋聖賚【致萬】 병으로 고요히 지내는 가운데 어떤 소년이 사뿐사뿐 문으로 들어왔으니, 그 아름다운 용모와 단아한 위의는 묻지 않아도 법도가 있는 집안의 자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어보니 과연 노형의 손자였습니다. 사랑스러운 마음 그지없었습니다. 이윽고 또 보내준 한 폭의 심화(心畫 편지)를 받아서 여러 번 완상하니 감격스러움을 말로 표현할 수 없고 고마움을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이 천루함을 돌아보면 얼마나 형편없습니까. 그런데도 그 뜻을 보인 진중함과 마음을 전한 친밀함이 이처럼 지극하단 말입니까. 근래 보양하는 데 신명의 도움이 있으며 기력은 강건하십니까. 사모하여 우러러(르)는 마음 너무나 지극합니다. 저는 앓고 있는 한 가지 질병이 물러나지 않고 있으니 괴롭습니다. 이는 목숨이 다하려는 만년의 상황인데 어찌 오래 살 이치가 있겠습니까. 다만 죽음을 기다릴 따름입니다. 붕우들이 죽고 나서 속마음을 말할 곳이 없으니, 아침저녁으로 대나무 아래 안석 사이에 끊임없이 찾아가려는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저의 질병이 조금 나으면 마땅히 지팡이를 짚고 가서 두 사람이 서로 만나 기쁘게 한번 악수하고 싶은데 병마가 나에게 허락해 줄지 모르겠습니다. 病榻涔寂。有一少年。翩然入門。其婉孌之容。端詳之儀。不問可知爲法家子弟。問之果是老兄抱孫也。心乎愛矣。不能已也。旣而又進一幅心畫。奉玩數周。感不容喩。謝不容喩。顧此淺陋。何等無狀。而其遣意之重。致情之密。若是其至耶。不審日間頤養有相。氣力康適。懸仰冞至。弟一疾沈綿。五朔不退。苦事。此是濛汜殘景。豈有悠久之理。只當待之耳。但朋知彫落。無可話心此。晨夕一念未嘗不憧憧往來於竹下几屛之間也。賤疾稍可。第當傴僂扶曳。兩衰相對。懽然一握。而未知二竪子爲之假我否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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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숙【증한】에게 답함 答梁允淑【曾瀚】 얼마 전 보내주신 서한이 이르렀을 때는 마침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라서 황망하여 답장을 못 하였습니다. 돌이켜 생각하니 잊히지 않아 아쉽기만 합니다. 게다가 정초에 춘부장(春府丈)께서 저의 집으로 엄숙한 모습으로 왕림하셨건만 서로 길이 어긋나 인사를 여쭙지 못하였습니다. 지난번에는 좌우(左右)께서 또 외람되게도 저를 찾아와 위로하시고 이어서 편지로 안부를 물어주셨습니다. 간절한 뜻이 앞뒤로 빈번하게 이어지니 사사로운 마음에 고마움이 절실하고도 지극합니다. 다만 이렇게 칩거하는 처지가 마치 바늘에 걸려있는 물고기와 같아 한번 상하(床下)에 나아가서 사례를 표하는 의절(儀節)을 갖추지 못하였으니 부끄러워 몸 둘 곳이 없습니다. 서신 끝에 보내신 율시 한 수는 저를 멀리하지 않는 뜻이 더욱 드러나기에 가까이 두고 끊임없이 읽고 있습니다. 부모를 모시고 지내는 안부는 더욱 장중하시고 때때로 대략 서책을 보면서 의리를 깊이 탐색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간혹 정신을 기르면서 마음을 안정하고 오직 한 곳에만 집중하는 것이 병을 다스리는 계책일 뿐만 아니라 또한 마음을 함양하고 덕을 닦는 요체입니다. 보잘것없는 제가 아껴주시는 마음을 본받고자 간절히 바라지만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日者。惠書之來。方作還巢之行。忙未修謝。追念耿缺。況歲初春府丈儼臨鄙室。交違未候。向也左右。又賜枉慰。繼以書存。旨意懇惻。前後頻仍。私心感祝。非不切至。而顧此寄蟄身勢。如魚掛鉤未得一晉床下。以修回謝之儀。愧愧無地。尾示一律。尤見不遐。愛玩無已。未審侍候增莊。時時略綽看書。沈索義理。間間愛養精神。寧靜專一。不惟爲養病之話。計亦爲養心進德之要。區區跂顒。敢效相愛之意。未知何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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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일당 김공52)에 대한 제문 祭愛日堂金公文 성인과 세상이 멀어지고 말씀이 인몰되니풍속이 경박하고 상하였네추향에 실마리가 많으니배워서 익숙한 것을 떳떳함으로 삼네군자가 있지 않으면누가 그 참됨을 깨우치랴처음 동류에서 뛰어난 이오직 공이 그 사람이네지기가 원대하며타고난 것이 높고 밝았네학문으로 겸비하여 이룬 것이더욱 크고 넓었네사문의 은미하고 깊은 뜻공이 실로 참여하여 들었네우리들 강론하며 모임에공이 실로 창도하였네쌍계사에 봄바람 불고취정에서 밤에 달 뜰 때창수가 정다웠고위의가 정연하였네공이 이미 병들었다 하였고나도 돌아와 또 쉬게 되었네날마다 원기를 회복하길 바라며옛 날의 교유 이으려 하였네누가 알았으랴 영원한 작별이갑자기 이에 있을 줄을거문고 부셔지고 줄이 끊어짐53)은만고에 같은 슬픔이네사론이 분열되니거두어 쇄신할 기약이 없네또 한 분의 현인을 잃었으니여생을 어찌하리오내 사는 곳 막히고 멀어오래도록 달려가 문상하는 것 미루었네세월이 한해가 지났으니유풍 여운이 날로 멀어지네구운 닭과 술54) 올리니상생55)은 여전하네큰 소리로 길게 울부짖으니눈물이 샘처럼 쏟아지네 世遠言湮。風澆俗傷。趍向多端。習熟爲常。不有君子。孰覺其眞。出類發軔。惟公其人。志熟磊落。禀賦高明。濟以學問。益大益宏。師門微蘊。公實聞焉。吾儕講聚。公實倡焉。雙寺春風。翠亭夜月。唱酬款款。威儀秩秩。公旣告病。我歸且休。日望天和。擬續舊遊。誰知永別。遽爾在兹。琴破弦斷。萬古同悲。士論分裂。收刷無期。又失一賢。餘生何其。我居阻遠。久稽奔問。星霜一周。風韻日遠。灸雞漬綿。象生依然。大聲長號。淚隕如泉 애일당(愛日堂) 김공(金公) 김치희(金致煕, 1828∼?)를 말한다. 자는 장여(章汝), 호는 애일당,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기정진의 문인으로 낙안(樂安)에 거주하였다. 거문고……끊어짐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이른 말이다. 춘추(春秋) 시대 거문고의 명인 백아(伯牙)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가 죽자 자기 음악을 들어줄 사람이 없는 것을 한탄하고는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絶絃]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列子 卷5 湯問》 구운 닭과 술 원문의 '적계지면(炙鷄漬綿)'을 풀이한 말인데, 친구 간에 조상(弔喪)하거나 묘에서 제사 지내는 것을 뜻한다. 후한(後漢)의 서치(徐穉)는 자가 유자(孺子)로 남주(南州)의 고사(高士)라 일컬어졌다. 그는 먼 곳으로 문상(問喪)하러 갈 때 솜을 술에 적셔 햇볕에 말린 다음 그것으로 구운 닭을 싸서 휴대하기 간편하도록 만들어 가지고 가서 솜을 물에 적셔 술을 만들고 닭을 앞에 놓아 제수를 올린 뒤 떠났다 한다. 《後漢書 卷35 徐穉列傳》 상생(象生) 궤연을 말하는데 망자가 살아생전에 사용했던 기물들을 진열하여 살아있을 때를 그대로 본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두우(杜佑)의 《통전(通典)》 권49 〈시향천신부(時享薦新附)〉에 "사당에 신주를 보관하여 사시제를 지내고, 침전(寢殿)에는 의관과 궤장 등 살아생전에 쓰던 기물을 두고서 그곳에 새로운 음식물을 올린다.[廟以藏主, 以四時祭, 寢有衣冠几杖象生之具, 以薦新物.]"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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縣監徐公敏淳捐廩事實記 世衰道微邪說盈天下匪類煽亂曳瀾接踵圖撤學校者有之侵侮聖賢者起焉三風十愆幾乎家國俱忘而上自搢紳不得樹扶綱之風下至章甫未能守講學之規國儉荐臻家難未堪及夫 大成殿丁享之節正簿之供不承釋菜之權輿籩豆諸品極爲菲薄寧不爲後學之嗟嘆也縣監徐公敏淳甚爲慨然於有司者擬伸文治於一隅歲丁酉南至厚招儒生試藝於樂英齋因謁聖廟捐廩食三百五十金以補上丁享費二百金付之本校經始久遠之計噫斥邪扶正這箇意非素所蓄積何能乃爾於異端橫議仁義充塞之日也哉今夫聚斂自給自滔滔皆是而公獨以大義不吝半千之財寓愛存羊之禮明倫堂題目更覺淸肅嗚呼苟使列邑守土者皆得如徐公則異端掃盡聖道復明洙泗之風蔚然於濂洛千載之下矣吾將以歐陽子嘉祐之功爲徐公頌之也 崇禎五戊戌上元日晉陽程在榮謹記○都有司利川徐鳳寬掌議晉州鄭在夏咸陽朴漢豐色掌東萊鄭寅植海州崔鳴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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校宮修繕記 孟子曰設爲庠序學校以敎之皆所以明人倫也學校不修則敎不立敎不立則倫常不明倫常不明則人道廢矣是以遠自三代之盛逮夫我聖朝國有學州有序黨有庠躬行身敎風動響應化大行而俗專美矣邇來本郡校宮瓦漏墻毁樑朽榱折而修繕之方漠然矣何幸徐候敏淳視事本郡有意於興化捐廩二百金付校宮而殖之以爲興學之需用越明年又議校宮之修理堂廡垣門各得其完而財用區劃則不費於民郡之民士興感有望於來後曰願借我候數年儒化大行則吾鄕之士其將陶鑄薰沐之不已人人孝悌而克復禮義之性則儒林之受賜於徐候豈不大乎哉余亦治化中一物也記諸堂而竢之焉己亥二月六日晉陽鄭邦鉉謹記○都有司咸平魯淵白掌議晉州鄭洛源坡平尹琪炳色掌天安全相衡竹山安鍾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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養士齋隨行案序 本齋之僅存其名于今有年而其來艱且難也越在甲寅年間金侯五應氏來莅也不侫有知契累陳刱立之言適値籍年自官經紀三年斗田方營齋宇之構成而卿中諸長老時設雇馬補役之廳以萬民均惠之意歸是田於雇廳本齋之計遂寢不行見方是田又成雇廳文書中虛具而已其爲文士之恨尤如何哉然長老旣處之事鄕中後進猝不可改易故鄭丈道貫氏嘗慨然謂余曰吾與子合辭發論推還是田於本齋則事體似好云此蓋吾兩家先子之刱立雇廳故也其後鄕議多岐迄未歸一齋之設其將無期矣何幸李侯聖檍氏以同道朝士來尙文化不侫時適忝任黌舍常言邑士之無敎養之所侯乃憫之特惠迪租五十石爲本穀置訓長一員別有司二員主管之以首吏牟喜耕特定色吏俾爲拮据設接之資使色吏薦差庫直且爲接儒支供之道然後始有本齋之名然而久則易怠執任無誠吏輩冒用略干債本年年未捧只傳舊色虛卷而已金後光國氏出自臺閣來治鄙土而不我之遐故爲言本齋修護之道侯乃奮發劃出還牟五十石買置土田十五斗更依他邑例許給保率四十名春秋受米以爲設接時供饋之具我侯右文勸奬之功庶將有辭於來後也其時鄭戚馨郁稚叔鄭友錫元汝長安戚復胤深彦合力幹事與余共之乃立大槪規節以爲永久遵守之典曁乎丙戌之春自營門有各廳保率革罷之令而本齋保率亦入於混動之中其時從侄基晉以本齋執任與鄭友錫朋汝百安戚致磐士固亦陳官前得免革罷設接之保有是日者亦豈非主侯待士之致乎噫十餘斗之土出四十名之保捧三十儒一月之接足可成樣而中間別有司以熟事老士付之則居接之時儒不過十餘人做未滿十餘日有名無實心實慨惋接中年少時抄時肄科業者爲本齋案而自接中圈點付標別有司使之檢收穀米永作齋規以做一月之工蓋其條約則謀於不侫而成之者也惜乎成案之後亦不無携貳之端鄕中知舊之議更欲廢閣本案不侫亦不之强而第慮圈點之規從而不行則設接會文之好事復歸於前日之蔑如何不勉哉且至於訓長則恐非接外儒之所可堪當須以居接中博識之望儒定之每當設接之時不怠勸課講討文義則豈不好耶至於接抄則精選應赴人得免遺珠之嘆者別有事之任也嗚呼齋名之設今幾年矣吾鄕之雅士亦非不足數椽之營尙稽盛會之設常窘玆豈非後來者之所可勉耶余今老矣文翁之儒化世必復有嗟乎吾黨勿替敬之哉 崇禎三周戊子端陽下澣咸平李廷熻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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附條約 一本齋古無今有吾鄕立志之士各加勉勵使至傳後事一訓長一員自接中付標居接時以爲勸課事一別有事二員自接中薦望四員圈點而從多點付標事一居接製述三十人講經五人定式事一居接時自接中特定接有司一員白場及收米時應下記外餘數米谷元有司設接日一一傳授事一本齋庫畓當初買得時皆給準價決定先坐風霜虫水四災外皆捧代石事一畓租每石八斗作米事一保率四十名這這充數春秋收米一百六十斗無減畢捧事一別有司秋收打租時供饋責應於作者保米收捧時每行無過累日事一保率收米外有司不得來食而接抄白場五時支供一錢紙價完定事一元有事接糧傳授時如有升合違約之弊自接中責罰事一節扇元有司二員各一柄色吏一柄庫直一柄價錢各柄三錢爲定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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校宮修理記 余讀春秋竊有感焉孔子於當時諸候宮室之修皆有貶論而獨於學宮無之豈其偶然也哉其義則深矣蓋今之校宮卽三代學校舊制而又有所重夫子廟在焉有壞有補不可闕者也挽近二百餘年之間神州陸沈庠序學校爲汙池園蔬而惟我靑邱一片地爲碩果不食而有復生之理矣陽九之厄漸極於年來倭肚洋腸之輩覬覦覘覗於列邑欲剝其校有餘財者滔滔皆是則其心毁瓦畵墁不卽快其情而出義修補曾未聞幾人矣惟我慶候龍重氏來莅本郡者未數月捐其廩一百五十金付時任掌議李璋範修補本宮而於是乎先自殿廡以至講堂齋舍門墻廳廊庶得其完巋然如新若慶候深得春秋之義者也修補校宮雖斂於民可也而況捐其廩也哉其宜尙矣噫慶候之於咸邑未滿其苽而遞歸咸之人其不幸也歟若久糾於咸則興學設敎其將有緖也庚子復月小望晉州鄭在夏記○都有司坡平尹相龍掌議咸平李璋範咸平牟時和色掌光山金九鉉慶州李鶴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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校宮懸板序 夫校宮卽莫嚴淸肅之地也貫天道德昭如日月雖愚夫雖氓莫不尊崇故國有太牢之祭鄕有釋菜之享而挽近綱紀頹敗禮節紊淪籩豆之設揖讓之儀便同畵樣無非疏忽事體道理曷勝悚悶且以享祀費言之春秋五百金之劃下莫非朝家之盛典也以若此數計其需用甘醴盛菜足可豐備而柰之何專委於禮吏之手凡干擧行尤不成樣是豈成說乎此若不及今矯正末流之弊將不知至於何境故各項條件臚列于左恪遵施行永久勿替則彬彬文物井井禮儀必當改觀也哉辛丑八月日知郡李昌翼謹書○都有司晉州鄭在夏掌議坡平尹相祖咸平李翊憲色掌晉州鄭秉源金海金亨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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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형 백언84)이 방문하다 族兄伯彥見訪 이별한 뒤에 아득히 세월이 흘러 (別後茫茫歲月深)오산으로 가는 길에 다시 왕림하였네 (鰲山歸路更光臨)맑은 바람 부는 탁자에 진면목이 열리고 (淸風一榻開眞面)찬 달빛 비치는 밤에 고인의 마음을 강론하네 (寒月中宵講古心)사업하는 것 예전처럼 하지 말고 (克將事業休依舊)용맹하게 공부하는 것 결단코 지금부터 하세 (勇下功夫斷自今)내일 아침 다시 강남의 약속 잡을 것이니 (明朝復有江南約)국화 피고 단풍 드는 팔월 숲에서 만나세 (黃菊丹楓八月林) 別後茫茫歲月深。鰲山歸路更光臨。清風一榻開眞面。寒月中宵講古心。克將事業休依舊。勇下功夫斷自今。明朝復有江南約。黃菊丹楓八月林。 백언(伯彥) 정시림(鄭時林)의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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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서 김 선생의 경석정85)에 올라 원운에 삼가 차운하다 登河西金先生竟夕亭。謹次原韻 선정이 어느 때 이 강단을 세웠는가 (先正何時築此壇)필암서원 위 난봉이 높이 솟았네 (筆巖之上卵峯端)오랜 세월을 겪은 산천의 정기가 예스럽고 (山川閱劫精輝古)서리 맞은 송죽은 절조가 굳세네 (松竹經霜節操寒)해는 충심을 비춰 집 모서리에 걸렸고 (日照丹衷懸屋角)비는 맑은 눈물에 더해져 정자 난간에 뿌리네 (雨添淸淚灑亭欄)가을 못 같은 맑은 도맥 천년에 흐르니 (秋潭道脈流千載)사숙한 여생은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私淑餘生不亦歡) 先正何時築此壇。筆巖之上卵峯端。山川閱劫精輝古。松竹經霜節操寒。日照丹衷懸屋角。雨添清淚灑亭欄。秋潭道脈流千載。私淑餘生不亦歡。 경석정(竟夕亭) 1590년(선조23) 호남 유림들이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의 도학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필암서원(筆巖書院)에 있는 정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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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천으로 가는 도중에 박생 경립140)의 시에 화운하다 福川途中和朴生景立 어느새 나이가 노년이 되었으니 (冉冉時華際暮年)무단히 나그네 되어 또 즐겁게 노니네 (無端爲客且留連)지팡이 짚고 함께 묵으니 유봉에 달이 떴고 (一筇伴宿酉峯月)손을 잡고 돌아가니 서석산엔 안개가 끼었네 (雙袖携歸瑞石煙)쓸데없는 생각은 노쇠하여도 그치지 않고 (浮想不隨衰境歇)빈궁한 생활 속에서 어지러운 세상일에 이끌림이 많네 (窮途多被世紛牽)평소의 회포 누구에게 말하랴 (平生襟抱向誰語)술잔 기울이며 몇 곡조 호탕한 노래 부르네 (數曲浩歌樽酒邊) 冉冉時華際暮年。無端爲客且留連。一笻伴宿酉峯月。雙袖携歸瑞石烟。浮想不隨衰境歇。窮途多被世紛牽。平生襟抱向誰語。數曲浩歌樽酒邊。 박생 경립(朴生景立) 박준기(朴準基, 1864~1940)이다.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경립, 호는 겸산(謙山)이다. 저서에 『겸산유고(謙山遺稿)』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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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생의 운에 화운하다 和諸生韻 붉은색 푸른색 짙게 물들어 수놓은 옷과 같으니 (稠紅積翠繡如衣)여기에서 춘심이 다 드러나네 (到此春心盡發揮)양자강141) 가에 아침 비가 그치고 (楊子江頭朝雨歇)구지산 위에 저녁 구름 얕게 끼었네 (九芝山上暮煙微)노쇠한 나이에 병이 많아 늘 병상에 누웠고 (衰年多病常支枕)궁벽한 곳 사람이 없어 늘 사립문을 닫았네 (僻地少人長掩扉)육십의 나이 되돌릴 수 없으니 (六十光陰追不得)세간에서 아주 못난 사람이 된 것 부끄럽네 (世間愧作下愚歸) 稠紅積翠繡如衣。到此春心盡發揮。楊子江頭朝雨歇。九芝山上暮烟微。衰年多病常支枕。僻地少人長掩扉。六十光陰追不得。世間愧作下愚歸。 양자강(楊子江) 능주천이 화순군 이양면 강서리 예성산 아래 송석정에 이르면 양자강 또는 용강(龍江)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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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사6)에서 돌아오며 自下沙歸 함연7)에서 강론 파하고 돌아가고픈 마음 일어 (函筵講罷動歸心)다시 황룡강8)을 건너니 강물이 깊네 (回渡黃龍江水深)백발이 성성한 부모님은 사립문 아래에서 (白髮吾親蓬蓽下)저녁이면 애타게 기다린 날 많았으리 (應多暮暮倚閭尋) 函筵講罷動歸心。回渡黃龍江水深。白髮吾親蓬蓽下。應多暮暮倚閭尋。 하사(下沙) 기정진이 거처하며 강학하던 곳으로, 노산(蘆山) 아래에 있다. 정의림은 당시에 기정진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함연(函筵) 선생(先生)이나 장자(長者)가 앉는 자리로, 함장(函丈)이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황룡강(黃龍江) 전라남도 장성군, 나주시, 광주광역시 광산구를 흐르는 하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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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찬형【영환】에게 보냄 與金贊炯【永煥】 갈대가 흰 이슬에 젖고 추수(秋水)가 때맞춰 이르니 바로 현인(賢人)을 우러러 흠모하는 시기입니다. 다만 그리운 마음을 실행에 옮길 방도가 없어 그저 길이 험하고 거리가 멀다는 탄식만 절실할 뿐입니다. 서늘한 초가을 기운이 바야흐로 한창인데 부모를 모시면서 경서(經書)를 익히는 안부가 계속해서 신의 보위(保衛)를 입어 편안하신지 모르겠습니다. 현인을 향해 치닫는 그리움을 견딜 수 없습니다. 의림(義林)은 갯버들 같은 쇠잔한 몸이라 죽어가는 목숨 지탱하고 있는데 근래 가을을 알리는 바람 소리가 나무에 깃드니 아득하여 끝없는 감회가 더욱 절실합니다. 영랑(令郞)이 이제 막 하직하고 떠나서 그리움이 배가 되어 괴롭습니다. 또 그 아이가 저를 따른 날이 오래되었건만 배운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만약 성인(聖人)께서 보신다면 남의 자식을 망쳐놓았다고 하지 않겠습니까. 부끄럽고 송구스러워 저도 모르게 등에 땀이 배어 발꿈치까지 흘러내립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타고난 자질이 차분하여 아낄만하니 현인을 뒤따를 희망이 없지 않습니다. 모쪼록 집안에서 가르치는 여가에 더욱 깨우쳐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蒹葭白露。秋水時至。正是懷仰賢人之時。但溯從無路。只切阻長之歎而已。未審新凉方高。侍旁經體。連衛崇謐。馳溯不任。義林蒲柳殘質。㱡㱡捱過。近得秋聲入樹。益切悠悠無窮之感。令郞今方告行。懷思一倍作惡。且渠相從日久。所學何事。若使聖人見之。其不曰賊夫人之子乎。愧愧悚悚。不覺背汗流蹠。然渠姿質安詳可愛。不無步趨之望。須於過庭之餘。極加提省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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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여37)【광선】에게 답함 答高元汝【光善】 외지고 누추한 곳에 사는 벗을 잊지 않고 외람되게도 현덕(賢德 상대방)께서 안부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형의 고매한 풍의(風儀)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겠습니까. 감격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소식을 들은 뒤 벌써 석 달이 지났는데 부모를 모시고 지내는 체후는 학문에 정진하면서 더욱 편안하신지 모르겠습니다. 멀리서 형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아우는 온갖 어려움을 겪느라 학업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머리에 가을빛이 들은 것이 지난 몇 해의 소득일 뿐입니다. 친구들과 진력(盡力)하기로 약속했던 뜻을 생각할 때마다 터럭만큼도 보답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움에 땀이 옷을 적실 뿐입니다. 문형(文兄)38)께서는 명문가의 뛰어난 후손이고 사문(斯文)의 석유(碩儒)로서 원근 지역에서 성대한 명망을 입은 지 이미 여러 해가 되었습니다. 바라건대 더욱 정진하고 더욱 삼가서 만년을 보중(保重)하고 마무리를 잘하여 보잘것없는 제가 믿고 의지하도록 하십시오. 不忘僻陋一友生。至屈賢德。惠以存訊。非兄風儀之高。何以有之。鳴感僕僕。未審信後月已三弦。侍旁體候。味道增適。遠溯懸懸。弟身嬰百艱。業沒一進。惟鬢畔秋色。是年來所得耳。每念知舊期勉之意。無絲毫可以承答者。只有愧汗沾衣也。惟文兄以名家賢裔。斯文碩儒。已負遠近藹蔚之望。爲多少年所矣。願益情益謹。以爲保晩敦終。使此區區。亦有所毗賴也。 고원여(高元汝) 1855∼1934. 본관은 장택(長澤), 자는 원여(元汝), 호는 현와(弦窩)ㆍ복헌(復軒)으로 고정헌(高廷憲)의 후손이다. 덕암(德巖) 나도규(羅燾圭, 1826~1885)와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저서로 《현와유고(弦窩遺稿)》 16권 8책이 있다. 문형(文兄) 글을 논할 수 있는 벗에게 격식을 갖추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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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곡 김경범56)에 대한 제문 祭大谷金景範文 오호라! 우리 노사 선생(蘆沙先生)께서 늦게 동방에 태어나 이미 끊어진 학문을 잇고 이미 어두워진 의리를 밝혀 사설을 물리쳐 선비들의 추향을 바르게 하고 이단의 무리를 물리쳐 세도를 밝히니, 사람들은 군신부자의 인륜이 있는 줄 알고 선비들은 격물치지 성의정심의 학문이 있는 줄 알게 되었습니다. 가까이로는 영남과 호남으로부터 멀리로는 관서와 해서에 이르기까지 문하에 찾아와 학업을 청한 사람이 무려 수천 명이었습니다.공은 묘년(妙年)의 나이에 뜻을 세워 가족을 데리고 선생을 따라 배웠는데, 독실하고 총명한 자질로 훈도하고 배양하는 가르침을 받은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30년이었습니다. 긍지(矜持)하던 것은 순수하고 견고해지고, 사색(思索)하던 것은 기쁘고 순해지고, 간단(間斷)하던 것은 접속되어 순수하게 사문의 성덕(成德)이 되고 성대하게 한 시대의 유종(宗儒)이 되었는데, 오늘에 이르러 갑자기 한 번의 병으로 마침내 천고의 사람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자연(子淵)57)이 죽고 백풍(伯豊)58)이 가버렸으니, 사문(師門)의 남은 실마리를 누가 수습할 것이며, 사문의 은미하고 깊은 뜻을 누가 발휘할 것입니까? 큰 의리가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지고 은미한 말이 분석되다가 다시 혼잡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사문(斯文)의 불행입니다. 세도가 분열되고 이단의 무리가 점점 불어나 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것이 이 때와 같은 때가 언제 있었습니까? 사특함을 배척하고 정도를 호위하는 것은 세상에 그러한 사람 보기 어려우니, 이것은 이 세상의 불행입니다. 노사 선생께서 돌아가심으로부터 원근의 학자들이 의심스러운 것을 질정하고 덕을 고찰함에 오직 공에게 의지하여, 공경하여 감히 거만하지 못하고 두려워하여 감히 방자하지 못하였는데, 지금은 끝나버려 형세가 장차 흐트러지게 되었으니, 이것은 사문(斯文)의 불행입니다. 궁벽한 시골의 한 선비에게 시운(時運)의 비태(否泰)가 매이고 풍화(風化)의 오륭(汚隆)이 관계됨이 이와 같음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의림(義林)은 몇 년 전부터 안으로는 부모님을 여의고 밖으로는 의귀할 분을 잃었고, 게다가 세상 변고는 점점 심해지고 학문은 날로 엉성해졌습니다. 오직 공이 바라보이는 가까운 곳에 있어 우러르기를 태산북두 같이 하고 공경하기를 시귀(蓍龜) 같이 하여 만년에 서로 의지할 계획으로 삼았는데, 어찌 나를 버림이 이같이 급작스럽게 하였습니까? 외롭고 쓸쓸하게 더듬거리며 길을 찾음에 내 장차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소리 놓아 길게 불러봄에 눈물이 저승에 떨어집니다. 오호라! 말은 끝이 있지만 뜻은 무궁하니, 영령이여 지각이 있다면 이 제수 흠향하소서. 嗚呼。惟我蘆沙先生。晩出東方。繼已絕之學。明已晦之義。闢邪說而正士趍。攘異類而明世道。人知有君臣父子之倫。士加有格致誠正之學。近自嶺湖。遠至關海。及門請業。無慮數千人。公妙年立志。絜家從學。以篤實頴悟之資。受薰陶培養之教。首尾三十年。矜持者純固。思索者怡順。間斷者接續。粹然爲斯門之成德。蔚然爲一世之宗儒。誰知至於今日。而遽以一疾。竟作千古耶。子淵死矣。伯豊逝矣。師門緖餘。誰其收拾。師門微奧。誰其發揮。大義明而復晦。微言析而復混。此則斯文之不幸也。世道分裂。異類浸淫。生民塗炭。孰若此時。斥邪衛正。世難其人。此則斯世之不幸也。自先生沒後。遠近學者。質疑考德。惟公是倚。敬之而不敢慢。畏之而不敢肆。合焉已矣。勢將渙散。此則斯文之不幸也。誰知窮巷一布衣。繫時運之否泰。關風化之汚隆。有如是哉。義林年歲以來。內失怙恃。外失依歸。加以世故轉深。學問曰疎。惟公相望在邇。仰之如山斗。敬之如蓍龜。以爲晚暮相依之計。何其棄我。若是忽劇。踽踽擿埴。余將疇依。放聲長呼。淚落懸泉。嗚呼。言有盡而意無窮。靈其有知。歆此奠儀。 대곡(大谷) 김경범(金景範) 김석귀(金錫龜, 1835∼1885)를 말한다. 자는 경범, 호는 대곡,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정재규(鄭載圭), 정의림(鄭義林)과 함께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노사학파의 3대 제자로 불렸다. 저서로는 《대곡집》이 있다. 자연(子淵) 공자의 수제자 안회(顔回)의 자이다. 서른두 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백풍(伯豊) 주자의 고제(高弟) 오필대(吳必大)의 자이다. 일찍 죽었으며 저서로 《사해집(師海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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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부사 박공59) 헌양 에 대한 제문 祭長興府使朴公【憲陽】文 오호라! 부사께서 우리 고을에 부임한 것이 옛날 어느 때였던가? 정직한 풍모와 자혜로운 덕과 엄격하고 밝은 다스림과 훈도한 가르침이 사람들의 이목에 익숙하고 사람들의 구설에 회자되었던 것이 전후로 20년이 하루 같았습니다. 심지어 아녀자들과 하인들도 추모하여 생각하며 노래하면서 오래도록 잊지 못하였습니다. 두루 맡아서 공적을 쌓았고 늙어서 물러나 한가롭게 지내심에 남북으로 길이 멀어 인사드릴 길이 없었더니, 어찌 요망한 기운과 무지개[螮蝀]60)가 남쪽 지방에 들끓음에 얽힌 뿌리에 예리한 칼로 도려내는 것61)이 또 우리 부사에게 있을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백수(白首)의 조개(皁蓋)62)를 남쪽 백성들이 서로 경하하였습니다. 넉넉한 기량63)으로 복잡한 일 잘 처리하니 악한 무리들이 그칠 줄 알고 성을 지키는 조치는 오랠수록 더욱 견고하여 이웃 고을이 족히 힘입고 한 도가 매우 든든해졌습니다.오호라! 하늘의 마음은 알기 어렵고 시사(時事)는 평정하기 어려우니, 귀순한 도둑이 외부의 원조를 얻어 도리어 치성하고, 달아난 적이 내부의 호응을 믿어 난입[闖入]하였네. 괴뢰(傀儡)가 사방에서 모여들고 이무기[虺蝎]가 멋대로 독을 끼칩니다. 성이 함락되고 군대가 흩어짐에 물고기를 버리고 곰발바닥을 취하였습니다.64) 관산(冠山)은 광채를 더하고 호수는 문득 맑아졌습니다. 상중의 사람이 망극하여 천 리에 달려가 곡하였습니다. 태양이 밝고 밝아 원수를 이에 잡았습니다. 능주[綾陽]로 돌아오는 길에 유민들 달려가 모였습니다. 감당(甘棠)65) 같은 쌍백(雙柏)66)은 슬픔에 쌓인 채 풍상을 지났습니다. 제문을 가지고 제사 드리니, 눈물이 샘처럼 쏟아집니다. 오호 통재라! 嗚呼。侯之來莅我鄕。在昔何時。正直之風慈惠之德。嚴明之治。董陶之教。慣人耳目。膾人口舌。前後二十年如一日。以至婦孺輿㒗。莫不追思歌詠。久而不忘。歷典積勞。退老養閒。南北脩夐。拜床無階。豈意妖氛螮蝀。南路鼎沸。而盤根利器之別。又在於我侯哉。白首皁蓋。南民相慶。恢刃剸劇。匪類知戢。城守調度。久而益固。隣壤足賴。一省差强。嗚呼。天心難知。時事難平。歸順之寇。得外援而反熾。敗遁之賊。恃內應而闖入。傀儡四集。虺蝎肆毒。城陷軍散。舍魚取熊。冠山增色湖水動淸。棘人罔極。千里奔哭。天日昭昭。仇讎斯得。綾陽歸路。遺民奔聚。甘棠雙柏。悲纒風霜。操文致侑。淚隕如泉。嗚呼痛哉。 장흥 부사(長興府使) 박공(朴公) 박헌양(朴憲陽, 1830∼1894)을 말한다. 자는 계정(繼正), 본관은 반남(潘南)이다 1858년(철종9) 식년시에 진사로 합격하여 호조 정랑을 거쳐 1894년 7월에 장흥 부사로 부임하였다. 같은 해 9월 동학군이 2차 봉기하고, 10월에 공주 우금치에서 패전한 후 수만 명이 웅치에서 장흥으로 진격하여 12월에 장령성이 함락되어 전사하였다. 《梅泉野錄 卷2》 무지개[螮蝀] 무지개는 음양의 기운이 부당하게 어울려 생기는 것이므로 천지의 음기(淫氣)를 표상한다. 《시경》 〈용풍(鄘風) 체동(螮蝀)〉에 "무지개가 동쪽에 있으니, 감히 이를 가리킬 수가 없네.[蝃蝀在東, 莫之敢指.]"라고 하였다. 얽힌……것 박헌양이 뛰어난 재주를 발휘하였다는 말이다. '반근(盤根)'은 '반근착절(盤根錯節)'의 준말인데 서린 뿌리와 얼크러진 마디라는 뜻으로 처리하기 어려운 일을 비유한다. 주로 외직(外職)으로 나가 맡기 어려운 고을을 잘 다스리는 것을 뜻한다. 조개(皁蓋) 검은 비단으로 만든 수레 위에 치는 일산(日傘)으로 지방 관원의 행차를 뜻한다. 넉넉한 기량 본문의 '회인(恢刃)'을 풀이한 말인데, 이 말은 《장자》에 나온다. 포정(庖丁)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하여 소를 잡고는 문혜군에게 주면서 "저는 칼을 잡은 지 19년에 잡은 소가 수천 마리나 되지만 칼날은 금방 숫돌에 간 듯합니다. 저 관절에는 반드시 사이가 있고 칼날은 두껍지 않으니, 두껍지 않은 칼날로 그 사이에 휘두른다면 반드시 넉넉함이 있습니다.[臣之刀十九年矣, 所解數千牛矣, 而刀刃若新發於硎. 彼節者有閒, 而刀刃者無厚, 以無厚入有閒, 恢恢乎其於遊刃必有餘地矣.]"라고 하였다. 《莊子 養生主》 물고기를……취하였습니다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였다는 말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물고기도 내가 바라는 바요, 곰발바닥도 내가 바라는 바이지만, 두 가지를 모두 얻을 수 없으면 물고기를 버리고 곰발바닥을 취할 것이다. 삶도 내가 원하는 바요, 의도 내가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을진댄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魚, 我所欲也, 熊掌, 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魚而取熊掌者也; 生亦我所欲, 義亦我所欲也, 二者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감당(甘棠) 지방관이 선정(善政)을 펼친 곳을 말한다. 주(周) 문왕(文王) 때 선정을 펼친 소공(召公)이 남쪽 지방을 순행하며 감당나무 아래 머문 일이 있는데, 그 뒤 백성들이 소공의 덕을 그리워하여 감당나무를 보호하며 〈감당〉 시를 지어 읊고 제사를 지냈다. 《詩經 召南 甘棠》 쌍백(雙栢) 북송(北宋) 때 구준(寇準)이 파동현(巴東縣)의 수령으로 있을 때 선정(善政)을 베풀었으며 관청 뜰에 손수 한 쌍의 측백나무를 심었는데, 그가 심은 측백나무를 백성들이 감당(甘棠)나무에 비겼다는 '내공백(萊公柏)'의 고사가 있다. 《與猶堂全書 第五集 政法集 卷29 遺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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