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국기 種菊記 유거(幽居)를 일삼는 것은 아니지만, 외물의 잡념에 부림을 받는 것을 면치 못하여, 당 아래에 흙으로 모두 3등급의 계단을 만들었다. 더럽혀지지 않게 하려고, 또 사이에 잡초가 자라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상급의 상단에는 황국(黃菊) 몇 뿌리를 심고, 오른쪽과 남쪽 끝에는 백국(白菊)을 한 줄로 심고는 좌측은 비워놓고 걸으면서 감상에 편리하도록 했다. 중간 계단 남쪽 끝과 하급 계단 서남쪽에는 한 줄로 홍국(紅菊)을 심고 왼쪽을 모두 비워두었다. 상단 좌우에는 서로 마주 보게 매죽(梅竹)을 각각 한 그루씩 심고, 중간 계단도 똑같이 심어서 모두 황국(黃菊)을 향하게 하여 손을 당겨서 읍하고 공경히 복종하는 것 같은 형상이 있게 하였다. 또 향란(香蘭) 한 뿌리를 심어 채웠다.대개 누런 것[黃]은 중정(正中)하고 온윤(溫潤)한 아름다움이 있기에 상단 남쪽의 아래에 있게 하였다. 흰 것[白]은 순수하고 청결한 지조가 있기에 그 다음 계단에 심었고, 붉은 것은 비록 정순(貞純)의 자태가 있다고 하더라도 풍부(豐富)의 자태를 면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단에 올릴 수 없어서 중간층에 거처하게 하였다. 각 줄에는 모두 사이사이에 흰 것 한두 그루를 심어서 그 향기로운 꽃의 깨끗한 기(氣)를 모두 북쪽에서 사람들이 완상하도록 하였다. 물(物)에 등급을 두어서 상하(上下) 중절(中節)의 분수를 잃지 않도록 하였다. 이것은 비록 한가한 사람이 즐기는 외물의 유희이지만 그러나 우연이 아닌 뜻이 있는 것 같으므로 그대로 기록해서 뜻을 드러내고자 한다.기축년(1649, 인조27) 5월 10일 쓰다. 幽居無所事。 未免爲外物之念所役。 堂下仍土爲階凡三級。 使不塵汚。 又不許凡草生其間。 上級上種黃菊數根。 右及南端。 列植白菊。 虛左以便步玩。 中級南端下級西南。 列植紅菊皆虛左。 上級左右。 互植梅竹各一本。 中級亦如之。 使皆向黃菊。 有如控揖敬服之狀。 又種香蘭一査以實之。 盖黃者有正中溫潤之美。 故居上級上南下焉。 白者精粹潔淨之操。 故次之。 紅者雖有貞純之姿。 未免豐富之態。 故不得上上級而居中下焉。 各行皆間植白者一二根。 以淸其芬華之氣。 皆北上焉。 使人玩之。 有品制而不失上下中節之分。 此雖閒人外物之戲。 然似有不偶然之意。 故仍錄以示志焉。 己丑端陽上澣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