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17956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前面)三山壇儒會所 僉座下(後面)高山書院答通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省禮拜言 向日作別 其翌日作冠山行 今月六日日歸巢 離家曠日 如是許多耳 還巢則 兄有枉訪 兼致 惠儀 是何事耶 還切不安 罔以爲謝 謹請潦炎孝中棣體萬支 渾儀勻慶 仰不已溸祝 弟 一依前樣 奉何復喩耶 先稿收集 以壽傳其暗唾爲人子者 繼志述事之一端事也 令人感賀 實非淺尠 誠力所到 必有景梨鋟行 實爲賀萬千年 在傍魯宗東春準泰諸兄安過耶 忙未各幅 罪多罪多 以此傳告 如何如何 餘多 不備疏禮 丙申五月十三日 弟 閔弘基 拜疏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大谷 侍右 追謝書一書未復久矣 更惟夏令侍中學况 待時曾吉 馳溯憧憧不任 課日咿唔於家乎 於齋乎 所與游從 又是何人 討一區靜室 先爲此身安頓之所 隨時隨力 一味趲程 切不可對 閒人客做 閒况話悠悠 而廢日也 無志則已 旣有志焉則如救火如追亡 人一已百 人十已千 此是第一法况來喩紛紜之日常多 專一之時常少 又曰未免忘助之病 此可謂自知之深 而自省之切也 然旣知如此是病 便是不如此時藥舍 此豈有別方哉 一幅示訓 吾非其人 只切愧愧 順文才性 開悟可與共學此在朋友有不易得 况族親之間寧不喜幸 惟種種相規 共爲 門戶大來之望 千萬懇望 今方告行 悵缺亡已 餘留不宣癸卯四月晦日 義林 頓首謝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大谷 哀前疏上頓首言 日月不居先大夫人練期奄忽來臨 伏惟孝思根天 撫時觸境 哀慕何極 區區慰溯 不任懇忱 義林忝在親素之末 理合趍走 以慰於專席變制之日 而繫縶窮齋 疾病沉綿 抽身出脚 計莫自遂 辜負之重 悲愧萬萬 只祝節哀順變練事利行 令郞告歸 畧此替慰 餘留 不備疏禮 伏惟哀照乙巳五月二十日 生 鄭義林 拜疏上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김종렬(金宗烈)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金宗烈 □…□(6.0×6.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관에서 김종렬에게 발급한 준호구 이 문서는 관으로부터 발급받은 호구증명서인 준호구(準戶口)이다. 준호구는 오늘날의 호적등본과 주민등록등본의 성격을 갖고 있으며, 호주의 신청에 의해 발급되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현재의 등본이 신분을 증명하는 것으로 활용되었다면, 준호구는 신분 증명 이외에도 소송관련 사건이 있을 때나 도망간 노비를 찾을 때, 부역을 부과할 때에 증명하는 자료로 활용되었다. 준호구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신청인의 주소와 가족 구성원 등의 정보를 담은 호구단자(戶口單子)를 관에 먼저 제출해야 했다. 관에서는 호구단자를 살펴본 뒤 내용상 문제가 없을 경우 새로운 종이에 준호구를 작성하여 신청인에게 발급하였다. 호구단자와 준호구를 작성하는 서식은 ?경국대전(經國大典)? 예전(禮典) 용문자식(用文字式)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부터는 이러한 절차가 점차 간소화되어 호구단자와 준호구를 구분하지 않게 되었다. 신청인이 준호구 형식의 문서를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관에서는 이를 살펴본 뒤 수령의 서명과 관인을 찍어 돌려주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준호구에 따르면 김종렬은 전라도 모처에 거주하였고 현재 나이는 57세였다. 가족으로 처 진씨(陳氏, 57세), 아들 경임(璟任, 35세), 며느리 김씨(金氏, 35세)를 가족으로 두었다. 이밖에 이분(以分)이라는 이름의 비(婢)를 소유하고 있으나 이분은 현재 도망간 상태이다. 준호구의 하단부에 관인이 답인되어 있으나 인문(印文)이 낡아 판독하기 어렵다. 관인 외에도 준호구에는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나 주협기개자(周挾改幾字)라는 인장을 답인하였다. 주협무개인은 삭제[周挾]하거나 수정[改]한 글자가 없다는 의미이다. 변경사항이 있을 경우 주협기개자를 답인하고 '幾'부분에 변경된 사항이 몇 개인지 숫자를 적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第二戶 幼學金宗烈 年五十七癸未 本金寧父 學生 允益祖 學生 聲玉曾祖 學生 垕昌外祖 學生 尹龍世 本柒原妻陳氏 齡五十七癸未 籍驪陽父 學生 有億祖 學生 宗旭曾祖 學生 德文外祖 學生 辛興瑞 本靈山率子璟任 年三十五乙巳率婦金氏 齡三十五乙巳 籍金海賤口奴以分 逃亡[官印]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계사년 조기주(曺基周)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曺基周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사년 4월 6일, 제 조기주가 은거하며 공부를 하고 있는 상대에게 보낸 안부 서간. 계사년 4월 6일, 제(弟) 조기주(曺基周)가 집을 떠나 공부를 하고 있는 상대에게 그리운 마음을 전하고 한번 찾아가겠다고 전한 안부 편지이다. 지난번의 답장을 받고 또 오늘 송(宋) 형이 거기로 갔다는 소식에 그리운 마음이 인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4월의 날씨에 객지에 있는 상대가 잘 공부하고 있는지 묻고 자신은 여전히 못난 모습으로 지낸다는 것, 그간 공부를 하지 못해 부끄럽고 당신이 부럽다고 했다. 언제 만날 수 있을지, 자신이 일찍이 시도도 해 보았지만 모든 일을 떨어버리고 가지 못했다며, 조만간 한 번 가서 만나 뵙겠다고 전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을사년 석동(晳東)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晳東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사년 11월 3일, 소제복인 석동이 관직을 지내고 있는 상대에게 초겨울의 안부를 전하고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은 마음을 전한 서간. 을사년 11월 3일, 소제복인(少弟服人) 석동(晳東)이 관직을 지내고 있는 이에게 초겨울의 안부를 묻고 언제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은 마음을 전한 서간이다. 지난번 감영이 있는 곳에서 인사한 후 지금까지 그리워하고 있다고 인사한 후 정사를 돌보고 있는 상대의 안부가 초겨울을 맞아 더욱 잘 계실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어찌해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한탄하며 때때마다 소식을 들을 수 없어 자신의 마음이 수고롭다고 전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向者營下拜晤, 至今懷耿. 伏惟政候起居履, 玆初寒益淂衛重,▣區具則幸矣. 何以則可更奉晤聲息, 莫憑有時, 只勞瞻言而已. 餘不備,伏惟下照. 謹拜上候狀.乙巳至月初三日, 少弟服人 晳東 拜.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809년 도백(道伯) 이면응(李冕膺) 문안단자(問安單子)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冕膺 羅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9년 4월 25일 전라도관찰사 이면응이 나 생원에게 보내는 문안단자 1809년 4월 25일 전라도관찰사 이면응이 나 생원에게 보내는 문안단자이다. 단자는 조선시대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던 문서의 유형이다. 단자 중에는 고유한 서식과 명칭을 갖는 문서도 있었고, 낱장의 문서를 일반적으로 부를 때도 단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고유한 문서로서 단자는 백성이 수령에게 올리는 탄원서, 시전(市廛) 조직간에 통용하는 문서, 충훈부(忠勳府)에 공신자손(功臣子孫)의 세계(世系)를 증명하기 위해 올리는 문서, 호구 조사를 위해 백성들에게 제출하도록 했던 문서를 의미하기도 했다. 또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하직단자(下直單子)나 망단자(望單子)처럼 문서를 작성하는 목적을 앞에 붙여 단자의 성격을 드러내기도 하였고, 문서를 작성하는 아문의 이름을 붙여 예조단자(禮曹單子)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이 중 문안단자는 새로 부임한 수령이나 관찰사가 지역 인사에게 보내는 문서이다. 서두에 문안이라는 문구 대신 존문(存問)을 쓰기도 한다. 문안단자에 의하면 이면응은 나 생원에게 문안하며 부채 3자루를 함께 보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謹問安己巳四月二十五日 冕膺扇子參柄(皮封)同福 道伯候狀羅 生員 宅 入納省式 謹封[全羅道觀察使之印]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汝之行尙在途矣. 離發後風寒日氣, 連甚不佳, 未知能無損節.今日据過, 而亦無憊病否. 懸念不能已已. 父特蒙 宥, 還仰感坐隱, 只 自有淚交頤而已. 以收刷之遲滯, 念於來月十二間, 自此離發,還家計矣. 似於到榜前, 得連榜則直送於家爲好. 金君玄生亦無幰否. 任君亦無擾入來, 同接之道, 能無睰患之端,空坐圖得, 亦已議處否. 凡節須十分商量善處, 毋至後悔爲好.率倡之道, 今無可托, 進退闊畧之際, 必有京外間碍擅瞻聆之事, 而若等緊着要約亦須善處也. 兩台家須圖隙往見, 而 傳敎中所用意, 可知之敎. 恐未揣其所以爲敎, 此意問於兩台爲好. 第旣至特宥感祝, 則幾過三日後, 須其發卽還, 無至企待爲好. 小錄事, 得科後處之也. 科後來見之人遊街時, 一一往見爲好. 六月歲抄時, 必當蒙叙, 第無職帖還給而直叙奉否, 復探知而封因, 以今加書事, 須詳探之書之, 而旣無敍用, 則似以及第書之■.然須細問而書之, 俾無後悔, 爲好爲好. 入場時入場後凡百, 須無至浮動,爲好爲好. 餘非書可旣. 惟在汝之黙會, 不一一. 元卄四日, 父 [着名]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797년 이돈상(李敦相) 명문(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노비매매명문 李昌緖 李敦相 行縣監[着押] 咸平縣印 3顆(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532 1797년 이창서(李昌緖)가 이돈상(李敦相)에게 자신의 노비 1구(口)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노비 매매명문 1797년 3월에 이창서(李昌緖)가 이돈상(李敦相)에게 작성해준 노비 매매명문이다. 명문의 내용은 긴요하게 쓸 곳이 있어서 자신이 상속받은 계집종 오목개(五木介)를 전문(錢文) 20냥을 받고 후소생(後所生)까지 아울러 이돈상에게 영영 방매한다는 내용이다. 이 거래에 이사걸(李師杰)은 증인으로, 이사철(李師哲)은 증보(證保)로, 이유덕(李儒德)은 필집(筆執)으로 참여하고 각각 착명하였다. 노비를 매득한 이돈상은 이 명문을 첨부하여 함평현에 제출하면서 입안(立案)을 신청하였고, 입안 발급 과정에서 함께 작성된 초사(招辭)와 입안이 함께 현전한다. 이 문서의 뒷면에는 함평현에서 작성한 배탈(背頉) 입안이 기재되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回文右回喩事. 程夫子曰, 凡爲人子孫子, 有事於先祖及父母, 則當先先祖事, 先祖恩輕義重, 父母恩重義輕. 此其所以先義而後恩也. 噫! 世降俗偸者此義者鮮矣. 何可勝歎哉. 惟我卯洞先山, 卽我之隴西也. 累百年守護山直室至於傾頹而重建乃已. 今秋祭 享日, 門議感發, 先玆伐木, 以待來正, 將擧工役之意, 衆議僉同, 至若鳩財也. 別無他長, 今此門會收錢, 以爲先派錢二百兩分排後錄發文, 文到卽時, 另加誠意, 以歲內收聚輸送于卯洞, 以爲竣事, 克終之地, 幸甚.乙巳十一月初六日, 發文. 執綱 李■■(孝源)〔孝永〕, 李濟遠.[印: 全州李氏門中圖書 1箇](점련별지)後卯洞派 錢三十兩山幕派 錢七十兩孟津派 錢五十兩康津派 錢五十兩各派錢有司卯洞派 李載亨山幕派 李奎河孟津派 李殷欽 內別三十兩 山直便付來康津派 李章欽原.(피봉_앞면)康津月南門中入納.海南 卯洞 齋閣 發文.(背面)乙巳 十一月 初六日[印: 全州李氏門中圖書 1箇]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06년 이효영(李孝永) 등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李孝永 李孝永<着名>, 李濟遠<着名>, 李仕銓<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628 1906년 11월 초6일, 전주이씨 문중의 집강 이효영 등 3인이 전주이씨 묘동 대문중의 선실 정비 진행사항을 전하고 벌목한 나무의 운반에 투입할 인원과 운반목의 개수를 후록하여 30일 불당치 고개로 오도록 요청하기 위해 보낸 회문. 1906년 11월 초6일, 전주이씨 문중의 집강(執綱) 이효영(李孝永) 등 3인이 전주이씨 묘동 대문중의 선실 정비 진행사항을 전하고 벌목한 나무의 운반에 투입할 인원과 운반목의 개수를 후록하여 30일 불당치 고개로 오도록 요청하기 위해 보낸 회문이다. 묘동(卯洞) 대문중(大門中)의 고사(庫舍) 및 신수문(神守門) 조성과 관련하여 오늘 26일에 목수(木手) 두 사람이 성조소(成造所)로 들어옴을 알리고 동목(棟木)을 운반할 때에 모든 곳의 족인 들이 한데 힘을 합칠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오는 30일에는 영산(英山) 불당치(佛唐峙)를 작벌할 것이니 30일에 모두 와서 갈등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후록에는 30일에 있을 영산 불당치 작벌 때에 와야 하는 각 마을별 인원과 몇 개를 운반해야 하는지를 적어 놓았다. 발신자는 집강 이효영(李孝永), 이제원(李濟遠), 성조유사 이사전(李仕銓) 등 3인이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증빙류

조흘첩(照訖帖) 2 고문서-증빙류-조흘첩 珍島府使 使<押> 珍島府使之印(8.0×8.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481 진도부사가 소학 입격(小學入格)을 증명하며 작성해 준 조흘첩 진도부사가 소학 입격(小學入格)을 증명하며 작성해 준 조흘첩이다. 문서의 결락이 심한 편이며 이 때문에 수취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조흘(照訖)이란 '대조하여 확인을 마쳤다.'는 뜻으로 과거 응시에 결격 사유가 없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소학』을 고강(考講)하여, 과거에 응시할 수 있다는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녹명(錄名)하고 과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 실시하는 『소학』에 대한 고강을 조흘강이라고 하는데, 이를 통과하였다는 증명서가 조흘첩이었다. 조흘첩은 과거장에 입장할 때 필요하였던 것은 물론이고 입장한 후나 퇴장할 때에도 그 소지 여부를 점검하였다. 조흘첩의 서식은 ⓛ발급자와 발급 목적[某爲照訖事], ②수취자의 성명·연령·거주지 등 정보, ③고강 통과 사실 통지[小學入格爲有置] ④종결어 [帖文成給爲遣 合下仰照驗施行 須至帖者] ⑤작성연월 및 발급자의 착명(着名)으로 이루어진다. 조흘첩은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서식상의 큰 차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수량을 필요로 했던 만큼 그 서식을 목판에 새겨 인출하는 사례가 빈번하였다. 즉 목판에 기본 서식을 새겨 인출한 뒤 공란에 수취자의 정보를 채워넣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문서의 경우는 직접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임신년 이병현(李炳顯)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炳顯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신년 10월 11일, 상중의 내제 이병현이 숙모님이 이르신 여종을 매매하는 일의 처리를 위해 숙모님의 큰아들에게 자신 쪽으로 와서 의논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쓴 안부 간찰. 임신년 10월 11일, 죄내제(罪內弟) 이병현(李炳顯)이 숙모님이 이르신 여종을 매매하는 일의 처리를 위해 숙모님의 큰아들에게 자신 쪽으로 와서 의논해 주기를 청하기 위해 쓴 안부 편지이다. 지난번에 자신이 찾아뵈려고 직접 갔다가 어긋나 만나지 못했던 것이 탄식스러웠다며 요즘 추운 날씨에 숙모님 기력이 어떠하신지, 모시는 종형(從兄)과 가족들 모두 안녕하신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으며 어린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고 한 후 지난번 숙모님의 말씀에 대한 본론을 이야기 했다. 숙모님이 밖으로 나가 집에 붙어있지 않는 여종이 앞으로 달아날 우려가 있다며, 이를 팔고 다른 종을 사는 것이 좋겠다고 한 것에 대해 이를 위해 자신의 생각도 그러하다며 형님이 와서 함께 논의 한 뒤에 처리하자고 내일 속히 자신의 집으로 와 줄 것을 부탁했다. 형님이 오지 못한다면 막내를 보내셔도 좋을 것이라고 전하였다. 추신에는 사랑에 머물고 있는 정(鄭) 수재(秀才)는 잘 있느냐며 바빠서 편지하지 못한다고 알려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謹再拜上候疏稽顙言. 奉拜積月之懷, 恒庸伏悵,而向前晉拜次躬往矣. 交違未拜, 心甚咄歎以歸, 尙今未已. 謹未審寒令,叔母主氣力連享康旺, 而侍中棣候益復萬安, 諸節均宜否? 幷伏哀溸區區之忱. 罪從弟頑縷堇支, 而幼兒善長, 惟是爲幸耳. 就悚, 向晋時伏聞,叔母主敎意則, 婢子畔出, 不付於家內, 莫可持托云. 大抵弟亦留連三日未見其樣則, 何以用之乎? 卽今符合於上典盡渠之心力矣. 畢境作夫之境, 有所隱匿, 有所欺罔, 而或有徒走之患矣. 至今未得服心則, 何待作夫之境乎? 已出之子, 不服父母, 而畔外則, 有所招引之人, 至於見失. 況此等之類, 尤無可論. 弟亦爲慮, 而叔母主分付內, 得其賣買處放賣, 而從當求他更買云故, 默念 敎意則果爲良策矣. 姑存則永失之患, 似在於歲前, 而雖不失畔出不在則,何異於永失乎? 自其時以來, 左右極力, 幸得一處矣. 事在時急, 若爲曠日, 從他決買矣. 不得已兄主行次, 與弟爛議, 可爲好道矣. 若失此機則,在於 兄主之處地, 以賣婢之說, 何以覓求乎? 玆以仰告, 掃萬明日枉臨, 千萬伏企伏企耳. 弟爲躬往槩言後陪行而來無防矣. 弟亦有大關之事, 莫可出身, 故如是矣. 弟雖躬往矣.兄主旣爲行次矣. 勿爲 下譴, 而卽爲命駕專仰專仰耳. 或者 兄主有大拘未得出身之端, 則季從命送似好, 而不如 兄主之行次矣. 深諒爲之若何. 餘忙草, 謹不備, 伏惟 答疎.壬申陽月旬一日, 罪內弟 李炳顯 拜疏上.舍廊鄭秀才亦爲安支否? 忙未修疎, 以此雷照, 伏企伏企耳.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계축년 백영온(白永瑥)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白永瑥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축년 2월 25일, 백영온이 사돈댁에 새해 새봄의 안부를 물은 편지. 계축년 2월 25일, 백영온(白永瑥)이 사돈댁에 새해 새봄의 안부를 물은 편지이다. 그동안 그리웠던 마음, 화창한 봄 날씨에 잘 계신지에 대한 물음, 우리 가문을 잘 살펴달라는 부탁 등의 인사를 전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楣誼罙篤, 來頭源源, 從此可期也. 未審春和,尊體候萬衛百福, 㴑仰區區, 下誠不任. 豈期托照下門. 謹差百福而呈,倘無俗礙, 則幸可以待肯否? 餘不備, 伏惟下鑑. 上狀.癸丑二月二十五日, 白永瑥 拜頓.

상세정보
517956
/25898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