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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년 이돈덕(李敦德)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基榮 李敦德 李基榮<着名>, 李命建<着名>, 李奎衡<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4년 3월 26일에 李基榮이 門族인 李敦德에게 토지를 매도하면서 작성해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이기영은 재산을 매도하는 이유를 별도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 팔고 있는 토지는 조상에게 전래받은 텃밭의 동쪽 변에 있는 은행나무 바깥쪽의 唐字 자호 1마지기이다. 밭이기 때문에 면적을 '~~耕'으로 표기하는 관례가 있었지만, 숫자는 비워두고 '所耕'만 기재하였다. 結負數는 4부 1속이다. 토지와 함께 밭 바깥에 있는 뽕나무도 매도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본래 매도하는 목적물의 소유 경위를 증명해줄 문서인 本文記도 함께 넘겨야 하지만, 여기서는 '都文記에 함께 적혀있기 때문에' 지급하지 못한다고 하고 있다. 여기서 都文記는 재산을 물려주면서 여러 수취자의 재산목록을 통괄하여 작성한 문서를 가리킨다. 즉 이기영이 팔고 있는 토지는 물려받을 때 함게 작성한 분재기가 본문기가 도지만, 다른 재산이 함께 적혀 있어서 이를 넘길 수 없다는 뜻이다. 매도하면서 받은 대금은 동전 28냥이며, 문중 동족인 幼學 李命建이 증인을, 문중 동족인 幼學 李金衡이 필집을 맡아 문서 작성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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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7년 광주포충서원재회소(光州褒忠書院齋會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光州褒忠書院齋會所 古阜儒林 1顆(墨印, 6.5×4.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989 1877년 4월 21일 1877년 4월 21일 광주 포충서원 재회소에서 고부유림에 부안면에 사는 정은필의 순수하고 독실한 실적을 조정에 알려서 그가 발탁되는 은전을 입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알린 통문 1877년(고종 14) 4월 21일 광주 포충서원 재회소 17인이 고부유림(古阜儒林)에 부안면에 사는 정은필(鄭溵弼)의 순수하고 독실한 실적을 조정에 알려서 그가 발탁되는 은전을 입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알린 통문이다. 서두에 "자하가 말하기를 어진이를 어질게 여기되 여색을 좋아하는 것처럼 하고, 부모를 섬기되 그 힘을 다한다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 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그를 배웠다고 말하겠다"는 『논어』 문장을 인용하여 인효(仁孝)의 중요성을 언급한 뒤, 고부군(古阜郡) 부안면(富安面)에 사는 선비 정은필의 16대조인 예문관 응교 승보(承甫)부터 8대조 갑산부사(甲山府使) 집(緝)까지 9대조의 계보를 열거하여 그가 명망있는 문벌 후손임을 말하였다. 실재 정은필의 효행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집이 너무 가난하여 입에 풀칠할 계책도 전혀 없어 품팔이 하며 부모를 봉양하였다. 『시경』과 『서경』을 읽지 않았는데도 어른을 예의와 공경으로 대하고, 차례가 있음을 잘 알며, 어진이를 여색 좋아하듯 하였으니 이 사람은 배우지 않았는데도 배움에 능한 선비라고 할 만 하다'고 칭송하였다. 또, '어버이가 여러 해 동안 병을 앓자 온갖 방법으로 약물을 써서 온마음으로 치료하고, 밤낮으로 곁에서 모시면서 똥을 맛보고 안부를 살펴 거듭 나아지는 효험을 보았다. 부모상을 당하자 피눈물을 흘리며 애통해하여 조문하는 자가 열복(悅服)하였다. 장례를 치른 뒤 묘 곁에 여묘살이 하며 하루에 3번 성묘하고 밤에 5번 일어나 살아 계실 때처럼 섬기니 정성이 하늘에 닿아 사물의 본성이 감발(感發)되었다. 이때문에 한 쌍의 백조가 몇 떨기 황국(黃菊)을 물고 세 때에 와서 위로함에 네 계절 내내 황국이 피었으니, 하늘에 근본한 효성이 아니라면 물성이 감흥했겠는가?'라며 그의 실적에 감탄하였다. 이어서 정은필이 근 70세에도 부모 산소에 매일 성묘하여 산골짜기에 길이 생기고, 부모 기일 3일 전부터 소식(素食)하고 재계하며 죽을 때까지 부모를 잊지 못한 달효(達孝) 및 수신(修身)의 방도와 제가(齊家)의 절도, 접빈(接賓)의 예 등을 열거한 뒤 '빛나는 덕행이 한 성의 공의에 미쳤으므로 침묵할 수 없어서 이에 통문을 보내니 여러 선비들이 이 순수하고 독실한 실적을 조정에 알려 특병히 발탁되는 은혜를 입으면 매우 다행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포충서원은 현 광주광역시 남구 포충로 767에 있는 포충사(褒忠祠)로, 임진왜란 초기 호남 지방에서 의병 7천 명을 모집하여 금산성 전투와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고경명·고종후·고인후 3부자와 유팽로·안영 등 5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603년(선조 36)에 건립하여 사액받은 사당이다. 서원철폐령 당시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훼철되지 않은 전라도 지방의 2개 서원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폐사되었다가 광복 후 지역의 유림에서 재건립하였으며, 1974년 5월에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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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이동우(李棟宇) 처 유인최씨(孺人崔氏)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孺人崔氏 1顆(10.3×10.4)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3113 1892년 6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동우의 부인 유인 최씨를 종부직 정부인으로 임명한 4품이상고신 1892년(고종 29) 6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동우의 부인 유인 최씨를 종부직(從夫職) 정부인(貞夫人)으로 임명한 4품이상고신이다. 정부인은 정·종2품관의 부인에게 내리는 작호(爵號)이다. 발급 연호 위에 어보(御寶)인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있으며, 연호의 좌우방(左右傍)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오위장 처를 법전에 의거하여 남편의 직(職)에 따른 일'이라는 봉직사유가 방서(傍書)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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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孺人崔氏封貞夫人者嘉善大夫同知中樞府事五衛光緖十八年六月 日將妻依法典從夫職事[施命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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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옥(文鈺)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文鈺 性伯老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제 문옥이 성백 노형에게 『중헌집』을 기록하는 일은 완료했는지 묻고 지난달에 최흠이 보내온 부조금 2천원을 지금 보내니 받아달라는 서간. 제(弟) 문옥(文鈺)이 성백(性伯) 노형(老兄)에게 『중헌집(重軒集)』을 기록하는 일은 완료했는지 묻고 지난달에 최흠(崔欽)이 보내온 부조금 2천원을 지금 보내니 받아달라는 서간이다. 재사에 거주하고 있는 상대가 어찌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중헌집(重軒集)을 기록하는 일은 완료했는지 물었다. 자신은 일전에 동복(同福)에 갔다가 도중에 아내가 거의 넘어간다며 앞으로 생사를 알 수 없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을 말로 할 수 없다고 했다. 최흠(崔欽)이 지난달에 부쳐 온 부조금 2천원을 오랫동안 내가 가지고 있다가 이제야 이번에 온 노인 박병은(朴炳殷)씨에게 부치니 받으시라고 전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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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 이경원(李敬元)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敬元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사년 1월 초2일, 척종복인 이경원이 이웃 읍에 부임했던 척종에게 보낸 새해 안부 서간. 을사년 1월 2일, 척종복인(戚從服人) 이경원(李敬元)이 쓴 안부서간이다. 다섯 마리 말이 그려진 마패를 들고 이웃 읍에 부임하신 후에 지금까지 한 번 만났다며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아 슬프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새해 정월을 맞아 정사를 돌보는 상대가 평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그 이후의 내용은 서간지의 결락으로 내용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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省式. 五馬來莅隣邑後迨謂一次奉晤矣. 竟未如意瞻悵曷勝. 卽伏惟新元政候起居迓新▣…區區無任之至. 戚從粗▣…▣…▣…▣專恃專恃. 餘…▣姑不宣, 伏惟下照. 謹候狀.乙巳元月初二日, 戚從服人 李敬元 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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性伯老兄 靑照.近來齋居何似. 重軒集錄役, 業已完了否. 鈺, 日前往同福, 道聞室憂, 濱危顚倒, 將來其死生, 尙未可知, 愁腦何喩. 崔欽月前寄來, 扶金貳千元留於我久矣. 今付此來朴老人炳殷氏俯領若何. 旣到乞以數字報之.弟 文鈺 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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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부)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父(手決)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월 24일에 아버지가 과거 시험을 치르러 간 아들에게 안부를 걱정하고, 시험장에서의 당부, 시험이후의 당부 등을 한 서간. 1월 24일에 아버지가 과거 시험을 치르러 간 아들에게 안부를 걱정하고, 시험장에서의 당부, 시험이후의 당부 등을 한 서간이다. 넌 아직도 길가는 도중일 거라며 네가 떠난 후에 바람 부는 추위가 심해지니 건강이 좋지 않아 질까 걱정이라는 말로 편지를 시작했다. 자신은 임금의 특별 용서를 받아 어쩔 줄 모르겠다며 눈물이 턱에 고인다고 했다. 수쇄(收刷)를 지체한 것 때문에 다음달 12일 간에 여기에서 떠나 집으로 돌아갈 계획인데 그때가 도방(到榜)하기 전일 듯 하다며 연방(連榜)하게 된다면 곧장 집으로 오는게 좋겠다고 했다. 김(金)·임(任) 양 군도 잘 가고 있는 것이냐고 묻고 여러 가지 일들을 잘 상의하고 헤아려 처리하기를 당부했다. 솔창(率倡)도 잘 해결하기를 바란다는 것, 양 대감 댁에는 틈나는 대로 가서 뵙고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것을 묻도록 하라고 했다. 소록(小錄)은 득과(得科)한 뒤에 처리할 일이니 어찌 하라는 당부, 과거 이후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나중에 일일이 가서 보는 것이 좋다는 당부, 6월 세초(歲抄)할 때에는 반드시 임명을 받고, 직첩(職帖)을 환급할 때에는 직접 만나서 받는 것이 어떠하냐는 이야기와 급제 이후의 행동을 어찌해야 할지 당부하였다. 마지막으로 과거 시험장에 들어간 뒤의 여러 가지 일들을 절대 부동(浮動)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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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7년 이돈상(李敦相) 입안(立案) 고문서-증빙류-입안 咸平縣監 李敦相 行縣監[着押]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532 1797년 함평현에서 이돈상에게 발급한 노비 매매 사급입안 1797년 함평현에서 이돈상에게 발급한 노비 매매 사급입안(斜給立案)이다. 이돈상은 노비 주인인 이창서(李昌緖)에게 15세 계묘생인 계집종 오목개(五木介)를 전문(錢文) 20냥을 주고 후소생(後所生)까지 아울러 매득하였다. 이후 이돈상이 함평현에 노비 매득 사실을 공증받기 위해 입안을 신청하는 소지를 제출하였고, 함평현에서는 요청에 따라 노비 매매에 참여한 방매인(放賣人)과 증인 등의 초사(招辭) 및 오목개가 이창서(李昌緖)의 소유임을 확인할 수 있는 본문기(本文記)를 제출 받아 검토한 뒤 이 입안을 발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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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 이효영(李孝永) 등 회문(回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李孝永 原州李氏門中圖印(흑색, 7.5×5.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628 1905년 11월 초6일, 전주이씨 문중의 집강 이효영 등 2인이 묘동 선산의 산지기 방을 중건하고자 문파의 배당액을 후록하여 보낸 통문. 1905년 11월 초6일, 전주이씨 문중의 집강(執綱) 이효영(李孝永) 등 2인이 묘동 선산의 산지기 방을 중건하고자 문파(門派)의 배당액을 후록하여 보낸 통문(通文)이다. 묘동(卯洞) 선산(先山)을 수호(守護)하는 산지기 방〔山直室〕이 무너져 중건(重建) 비용을 모으고자 하며, 각 문회(門會)에서 먼저 파전(派錢) 200냥을 모으기로 의논하였으니 올해 내로 돈을 모아서 보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별지를 이용하여 점련해 놓은 후록지에는 묘동(卯洞), 산막(山幕), 맹진(孟津), 강진(康津) 각 파에 배당하는 금액(30냥~70냥)과 각 파의 돈을 모으는 유사(有司) 이름을 적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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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흘첩(照訖帖) 1 고문서-증빙류-조흘첩 珍島府使 <押> 帖字印,珍島府使之印(8.0×8.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481 진도부사가 소학 입격(小學入格)을 증명하며 작성해 준 조흘첩 진도부사가 소학 입격(小學入格)을 증명하며 작성해 준 조흘첩이다. 문서의 결락이 심한 편이며 이 때문에 수취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조흘(照訖)이란 '대조하여 확인을 마쳤다.'는 뜻으로 과거 응시에 결격 사유가 없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소학』을 고강(考講)하여, 과거에 응시할 수 있다는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녹명(錄名)하고 과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 실시하는 『소학』에 대한 고강을 조흘강이라고 하는데, 이를 통과하였다는 증명서가 조흘첩이었다. 조흘첩은 과거장에 입장할 때 필요하였던 것은 물론이고 입장한 후나 퇴장할 때에도 그 소지 여부를 점검하였다. 조흘첩의 서식은 ⓛ발급자와 발급 목적[某爲照訖事], ②수취자의 성명·연령·거주지 등 정보, ③고강 통과 사실 통지[小學入格爲有置] ④종결어 [帖文成給爲遣 合下仰照驗施行 須至帖者] ⑤작성연월 및 발급자의 착명(着名)으로 이루어진다. 조흘첩은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서식상의 큰 차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수량을 필요로 했던 만큼 그 서식을 목판에 새겨 인출하는 사례가 빈번하였다. 즉 목판에 기본 서식을 새겨 인출한 뒤 공란에 수취자의 정보를 채워넣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문서의 경우는 직접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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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28년 이동헌(李東憲)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東憲 咸平縣監 官[着押] 1顆(6.0×6.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8년 이동헌이 함평현에 소송 상대방인 김진성이 무덤을 파 옮기기로 약속한 기간을 어길 경우 엄히 처벌하겠다는 내용으로 제사를 써줄 것을 요청하는 소지 1828년 이동헌이 함평현에 제출한 소지이다. 이동헌은 김진성(金辰成)과 산송(山訟)을 진행하여 지난달에 김진성이 패소하였고, 11월 14일 안으로 무덤을 파 옮기기로 이미 다짐을 작성했다가 다시 간청을 하여 12월 10일로 기한을 늦춰주었다. 김진성은 이 기한 안에 반드시 파 옮기겠다는 뜻으로 수기(手記)를 작성하였지만 이를 불안하게 여긴 이동헌은 김진성이 기한을 어길 시에 엄히 옥에 가두어 독촉하겠다는 뜻으로 제사(題辭)를 써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소지를 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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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四十九年甲辰三月二十六日 門族敦德前明文右明文事段 傳來垈田 西邊杏木外 唐字 一斗落 所耕 四負一束庫果 开田外自桑木處幷後山三株松下爲境界是遣價折錢文二十八兩 依數捧上爲遣 右人前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子孫中 如有雜談是去等持此文卞正事此亦中 本文記段 都文幷付 故未得出給事垈田主 門族 幼學 李基榮 [着名]證 門族 幼學 李命建 [着名]筆 門族 幼學 李金衡 [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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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 이도전(李道銓)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道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술년 12월 24일, 사제 이도전이 사돈댁에서 보내 온 풀보기 잔치음식에 감사를 전하고 며느리를 칭찬하는 내용으로 보낸 답장편지. 경술년 12월 24일, 사제(査弟) 이도전(李道銓)이 사돈댁에서 보내온 풀보기 잔치음식에 감사를 전하는 내용으로 보낸 답장 편지이다. 하룻밤을 함께 하고 곧바로 헤어져 돌아가신 것이 마치 꿈같다며 돌아간 후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전날에 다 저물어서야 집으로 돌아왔고 집안은 별일이 없었다고 전했다. 편지의 목적은 길일(吉日)에 대례(大禮)를 잘 치렀으며 새로 온 며느리가 뜻밖에도 참 정한(貞閑: 곧고 품위 있는)한 예의범절을 갖추었다며 칭찬했다. 보내준 풀보기 잔치(혼인한지 3일 만에 베푸는 잔치) 음식에 감사를 전하고 새해를 맞이하여 만복하시기를 기원한다고 인사하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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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宵奉晤, 娓娓不已. 旋□別歸, 殆若梦境. 謹審數漢落,體上動止連衛萬重, 都節各得均安, 並慰仰區區之至. 査弟日昨乘暮低巢,別無次欠矣. 就日吉辰良大禮順成, 而且新人貞閑儀範, 寔出料外, 餘何可望, 而餪物之惠饋, 出於念□, 私悶私悶耳. 餘只祝迓新萬祉. 不備謝禮.庚戌十二月二十四日, 査弟李道銓 拜謝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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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이응훈(李應熏)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應熏 李應熏信(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3년 1월 12일, 사제 이응훈이 사돈에게 자신이 가대를 전당잡혀 받은 돈으로 서울에 가게 된 사연을 전한 서간. 1913년 1월 12일, 사제(査弟) 이응훈(李應熏)이 사형(査兄) 인수(仁洙)에게 자신의 가대(家垈)를 전당잡히고 받은 돈 10원(円)을 가지고 서울에 간다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이다. 사돈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객지에서의 일이 난처한 상황이라고 하고 노잣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가대(家垈)를 전당 잡히고 10원(円)을 마련하여 서울에 가니 훗날 가대를 팔면 이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이 이러한 행동을 허물하지 말아주길 바란다고 적었다. 서간의 중간 구두를 'ᄒᆞ고', '으로' 등 한글로 적은 것, 받는 사람의 이름 다음에 '전(展)'이라고 적은 것, 자신의 이름자 뒤에 원형 인장을 찍은 것을 통해 작성시기가 일제강점기인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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査兄 仁洙 殿奉討日爲居常, 瞻悵恪詢,比來靜體節連衛萬重, 溸仰區區, 實叶願意. 査弟客地事勢難處, 而路費無路, 故右家垈을 典執ᄒᆞ고 邊錢拾円을 不得已 得用入京ᄒᆞ니 日後家垈을放賣則, 此債報給之樣으로 玆以書呈, 幸須深諒,勿咎恕諒, 千萬企望.不備禮.癸丑元月十二日 査弟李應薰[印:李應薰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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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이명호(李明浩)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明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0년 2월 8일, 상중의 사제 이명호가 사돈댁에 새해 새봄의 안부를 묻고 사위를 보고 싶은 마음을 전한 편지. 1920년 2월 8일, 상중인 사제(査弟) 이명호(李明浩)가 사돈댁에 새해 새봄의 안부를 묻고 사위를 보고 싶은 마음을 전한 편지이다. 새해 새봄을 맞이하여 사돈어른 및 집안 식구의 안부를 물었다. 상중에 있는 자신 쪽은 식솔들이 잘 있다며 다행이라고 했다. 사위가 잘 지내고 있는지 물으며 항상 눈에 그리워 오래도록 보지 않을 수 없으니 자신 쪽으로 보내주실 수 있느냐고 묻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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分張便是年前, 景慕何時可弛. 謹未審春殷,尊春府査丈氣體候迎泰神護, 大都諸節一直佶勝否? 並溸仰切仰切. 罪弟頑縷食息, 無庶平人, 罪悚罪悚. 所率則無警, 私分之幸也.咸郞安侍善課否? 常在阿睹, 久無見止, 情私悵結, 專便有价, 愧極愧極, 望須命送如何? 餘謹不備. 伏惟尊照. 上狀.庚申二月八日, 罪査弟李明浩 拜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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