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암(玉峀庵). 박연파(朴煙波)148)의 시에 차운하여 높이 우러르는 마음을 부치다.【연파의 이름은 개(漑)로, 곧 사암(思庵)149)의 형이다. 경술년(1670, 47세)】 玉峀庵。次朴煙波韻。以寓景仰之懷。【煙波名漑。卽思庵之兄。庚戌。】 강 따라 이어진 돌길 푸른 산 속으로 들어가니우뚝우뚝 층층이 선 바위 날아갈 듯 괴이하네학이 서호(西湖)150)를 떠나 신선의 그림자 끊겼으니흰 구름만 흰 갈매기의 옷을 부질없이 적시네원운(原韻)을 붙임151)작은 집 높이 매달려 자미성(紫微星)152)과 가까우니달 옆의 스님 그림자 강 건너 날아왔네서호(西湖)의 거사(居士) 찾아와 묵으니동악(東岳)의 흰 구름 풀옷을 적시네 緣江石逕入翠微立立層巖恠欲飛鶴去西湖仙影斷白雲空濕白鷗衣附原韻小屋高懸近紫微月邊僧影渡江飛西湖居士來相宿東岳白雲沾草衣 박연파(朴煙波) 박개(朴漑, 1511~1586)를 가리킨다.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대균(大均), 호는 인파처사(烟波處士)다. 향시에 합격하고 명종 때 선공감주부·참봉·고산현감(高山縣監) 등을 지냈다. 선조 때 암행어사가 되었고, 김제 군수를 지냈다. 사암(思庵) 박순(朴淳, 1523~1589)을 가리킨다. 사암(思菴)은 그의 호.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화숙(和叔)이다. 1553년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 응교, 이조참의, 대사헌, 예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문장에 뛰어나고 당시(唐詩)에 능하였다. 서호(西湖) 송(宋)나라 때의 처사 임포(林逋)가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하였데, 20년 동안 성시(城市)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채 처자 없이 매화를 심고 학을 기르며 살았으니 당시 사람들이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칭하였다. 《宋史 卷457 林逋列傳》 원운(原韻)을 붙임 김만영은 이 원운을 박개(朴漑)의 시라 하였으나, 실제로는 이후백(李後白, 1520~1578)의 문집 《청련집(靑蓮集)》에 〈무제(無題)〉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이후백의 시는 여기에 실린 원운과 비교해볼 때 3구의 '거(居)'가 '처(處)'로, '숙(宿)'이 '방(訪)'으로 되어 있을 뿐, 나머지 부분은 모두 동일하다. 자미성(紫微星) 북두성(北斗星)의 북쪽에 있는 성좌(星座)로, 천제(天帝)가 거처하는 곳이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