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슬사 鞠蝨辭 갈관박17) 선생은양쪽 옷깃이 메추라기를 매단 듯하고,18)풀로 양쪽 옷깃을 꿰매면서긴 세월 동안 가난하였지만19)고금의 서책을 한가롭게 읊으면서깊은 사고로 묵묵히 이해하네.자그마한 천지에홀연히 어떤 한 생물이그늘진 속에서 나타나모이고 모였는데 많기도 많구나.그 무리가 아주 많은데전갈처럼 가늘며개미처럼 하얗고부리는 벌의 독침과 같네.사람의 살갗을 파고들어어깨를 넘어 겨드랑이로 내려가고등에서 오금까지 이르면짧은 시간 내에온 몸이 소름이 돋네.선생은 이에 정신을 모으고 고요히 앉아서책을 거두어 덮고는원량20)의 갈옷을 풀어헤치고자릉21)의 갖옷을 벗으며나무토막을 갖추어 숯을 태우면입에서 곧 거품이 흘러내리네.솜에서부터 가선까지옷깃에서 시작하여 옷단까지터럭이나 실을 세세히 분석하여크고 작은 것 가리지 않네.이미 그 어미를 잡고또 그 동생까지 잡고는평상 아래에 펼쳐놓고이에 그 죄를 따지네."너는 천지에서가장 작은 생물로구차하게 모발에서 목숨을 연명하고살갗에 기생하며잠복하면서 알까지 기르는데무리와 벗들까지 끌어 들이구나.내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마는나의 고혈을 빼앗아가고게다가 나의 몸과 살갗은부모님께서 남겨주신 것이니어찌 기꺼이 두려워하며너에게 해를 당하겠느냐.매우 넓은 천지에서생물들이 살고 있는데커다란 곤붕22)은백성들에게 은택을 내리고인지의 교화는23)성인의 상서이다.작은 벌이나 개미도그 의리를 숭상할 만하고24)가는 지렁이나 거미도그 재주가 빼어나도다.하늘이 만물을 낳음에또한 각각의 쓰임이 있는데어찌하여 너라는 생물은유독 그 종이 무리를 이루느냐.이미 가두거나 갈아버렸는데도그 무리를 다 없애버리기 어렵고,아침에 네 조상을 벌하였는데도저녁이면 그 자손이 보이구나.높으신 손님이 문에 있으면죽은 꿩으로25) 예를 갖추고주인이 단정히 홀을 들고 있으면동쪽 계단을 향하여 종종걸음하며읍양을 하며 당에 올라26)도를 논하고 옛날 일을 이야기하도다.너희들은 이러한 때에가슴과 배를 멋대로 휘저으니나로 하여금 긁게 하여갑자기 예모를 잃게 하구나.한가로운 마루를 깨끗이 쓸고책상은 단정히 하며삼분오전27)은 오른쪽에 있고《주문지결(朱門旨訣)》28)은 평상에 펼쳐 놓고는아득한 옛날 것에 마음을 노닐며뜻을 거슬러 헤아리니 정신이 신묘한데,너희들은 이러한 때에나의 정돈된 틈을 타서분주하게 바삐 돌아다니며정수리부터 발꿈치까지 이르구나.세상일이 비록 많아왕맹29)처럼 겨를이 없으니하물며 나는 오묘한 이치에 대해어느 겨를에 상세히 터득할까.그리고 기나긴 밤30)에범중엄처럼 걱정이 많아31)주공을 꿈꿀 수가 없었고,32)군실처럼 잠 못 이루며33)계속해서 이리저리 뒤척거리니하찮은 것이 창자와 폐에 엉켜있네.너희들은 이러한 때에더욱 그 독성이 왕성하여나의 손과 발로 하여금밤새도록 반복해서 긁게 하네.이것은 대강이니자세한 것은 다하기도 어렵도다."이에 그 무리들을 몰아서장차 맹렬한 불길에 나아가게 하니뒷걸음치며 물러나 두려워 벌벌 떨고34)원망한 듯 우는 듯하구나.이미 입술과 혀도 없어청컨대 마음을 대신 헤아렸네."내 비록 지극히 미천하지만이 또한 천하의 생물이고비록 그대에게 의지하여 살았지만또한 그대가 스스로 취한 것이네.내 그대에게 분명히 말하니청컨대 그대는 살펴보아라.크고 넓은 집 아래고운 털 담요 위서늘한 고운 삼베35)순면의 솜제나라의 비단36)과 촉나라의 비단37)영롱하며 휘황찬란한 빛38)가득한 고량진미향기로운 옥 같은 살갗내가 바라지 않은 것은 아니나부여잡을 길이 없으니지금 그대는 백 번 기운 겹겹의 옷과십년 된 해진 갓으로팽택령처럼 무릎이나 들어갈 만 한 집39)에 살고사마광처럼 찢어진 이불40)을 덮도다.광문처럼 비록 가난하고41)법조처럼 허리가 크지만42)낙토여 낙토여이에 내 살 곳으로 얻었으니43)어찌 안을 돌아보지도 않고도리어 나와 원수가 되느냐.?선생은 이에 수심에 차 기쁘지 않은 듯안석에 기대어 누워 있네.이에 동자에게 손을 저어 물리가게 하니곁에 있던 객이 다음과 같이 말하네."지금 비록 하나를 들었지만도리어 세 이치를 알게 되었네.44)유방의 법45)이 문란하지 않으니위나라 적46)이 마음으로 따랐고당나라가 법을 멋대로 하지 않으니번진47)도 멋대로 하지 못하네.임금이 성스럽고 신하가 어지니귀신이나 괴기한 것이 능히 멋대로 하랴송나라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니간사하고 아첨한 자가 뜻을 얻었네.스스로 치면 남들도 치게 되니48)성인이 경계하셨네.″선생은 옷깃을 여미고 다시 앉아엄숙히 다시 책을 읽는데낭랑한 맑은 소리가마치 금석에서 나온 듯 하였네.49) 褐寬先生鶉懸兩袵草綻雙襟蓬門永日古今閑吟玄思默會天地寸心忽有一物在著裏陰兟兟集集厥醜千億似蝎而細如蟻而白觜若蜂尾砭人膚革踰肩下脅仍背至膕俄頃之內百體生粟先生乃凝神靜坐襲撤方冊披元亮褐解子陵裘具櫍燎炭口正沫流從絮至緣始領及裔毫分縷析莫有巨細旣執其母又獵其弟布列床下乃目厥罪曰汝天地爲物最微假息毛髮寄生膚肌涵淹卵育引類連朋余何負汝浚我膏血况余軆膚父母所遺安肯伈伈爲汝所殃天地至廣物無不生鯤鵬之大澤霖于氓麟趾之化惟聖之禎蜂蟻之微其義可尙蚕蛛之細其巧可長天生萬物亦各有用胡乃爾生獨醜厥種旣鎖而屑難盡其類朝刑乃祖暮見其孫至若尊賓在門死雉禮具主人端笏從東階趍揖讓升堂論道談古爾於此時肆縱胷肚使我把搔頓失禮貌及夫淨掃閒軒几案端詳墳典在右旨訣鋪床遊心邃古泝意神妙爾於此時乘我整暇奔走馳騁自頂及踝世事雖多王猛不遑况我隱奧暇得其詳又如永夜長漏仲淹多憂周公不夢君實無寐脉脉反側寸結腸肺爾於此時益逞其毒使我手足終夜反復此其梗槩難悉委曲於是欲驅其醜將赴烈焰逡廵觳觫如怨如泣旣無唇舌請代以臆我雖至微亦是天物雖憑子生亦子自取我明語子請子咨諏廣廈之下細氊之上絺絡之凉純綿之纊齊紈蜀錦陸離輝煌膏粱所充玉膚芳香我非不欲無路攀援今子百結重裳十年蔽冠容彭澤膝破司馬衾廣文雖貧法曹腰大樂土樂土爰得我所胡不內顧反我爲讎先生乃蹙然不悅隱几而臥乃使童子麾而却之傍有客曰今雖聞一理可反三劉綱不紊魏賊腹心李法不橫藩鎭不橫主聖臣良鬼怪能逞宋辟不辟奸諛得志自伐人伐惟聖之戒先生斂袵更坐肅然復讀琅琅淸韻若出金石 갈관박 갈(褐)은 모포(毛布)이고 관박(寬博)은 헐렁한 옷으로, 천한 자가 입는 옷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하찮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증자(曾子)가 자양(子襄)에게 한 말에 "스스로 반성해 보아 바르지 못하다면 비록 천한 사람일지라도 내가 두렵게 하겠으며, 스스로 반성해 보아 바르다면 비록 천만 사람이 있는 곳에라도 나는 가서 대적할 것이다.〔自反而不縮, 雖褐寬博, 吾不惴焉; 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라고 하였다. 메추라기를 매단 듯하고 원문의 '순현(鶉懸)'은 너덜너덜 기운 누더기 옷을 이르는데, 메추리는 털이 얼룩지고 꽁지에 깃이 없으므로 이렇게 비유한다. 《순자(荀子)》 〈대략(大略)〉에 "자하가 가난하여 입은 옷이 마치 털 빠진 메추리와 같았다.[子夏貧, 衣若縣鶉.]"라고 하였다. 가난하였지만 원문의 '봉문(蓬門)은 '봉문필호(蓬門蓽戶)'의 줄인 말로 쑥대나 싸리로 만든 문이라는 뜻인데, 집이 가난하고 누추함을 이른다. 원량 도잠(陶潛, 365~427)으로, 자는 원량 또는 연명(淵明)이니,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고 하였다. 동진(東晉) 때의 저명한 문학가로 항상 전원생활을 그리워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귀거래사(歸去來辭)〉 등이 있다. 자릉 《후한서(後漢書)》 권83 〈엄광열전(嚴光列傳)〉에 보면 "엄광은 자가 자릉(子陵)이고, 다른 이름은 준(遵)이다. 어렸을 때부터 명성이 자자하였고 광무제(光武帝)와 함께 공부하였다. 광무제가 황제가 된 뒤에 그를 등용하고자 백방으로 찾았으나 그는 이름을 바꾸고 은신한 채 나타나지 않았다. 뒤에 제(齊)나라에서 상언(上言)하기를 '어떤 남자가 양 갖옷을 입고 연못에서 낚시를 하고 있다.[有一男子 披羊裘釣澤中]'라고 하였다."라는 구절이 있다. 따라서 '양 갖옷'은 은자 혹은 은거 생활을 일컬을 때 쓰인다. 곤붕 《장자(莊子)》의 우화에 나오는 큰 물고기와 새의 이름이다. 장자가 말하기를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이 곤(鯤)이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그것이 변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이 붕(鵬)이다. 붕의 등[背]은 몇 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다. 이 새가 남쪽 바다로 갈 때 9만 리를 날아올라 여섯 달을 가서야 쉰다."라고 하였다. 《莊子 逍遙遊》 인지의 교화는 《시경》 〈관저〉의 소서(小序)에 "〈관저〉와 〈인지(麟趾)〉의 교화는 왕자의 풍(風)이기에 이것을 주공에 연계시켰다.[關雎麟趾之化 王者之風 故繫之周公]"라는 말을 인용하였다. 작은 벌이나……숭상할 만하고 벌과 개미에게는 본디 군신(君臣)의 의리가 있다는 데서 온 말이다. 《중용혹문(中庸或問)》 상권(上卷)에 "범과 승냥이에게 부자간의 친함이 있고, 벌과 개미에게 군신간의 의리가 있고, 승냥이와 수달이 조상에게 제사할 줄을 알고, 징경이에게 암수의 분별이 있는 것으로 말하자면, 그 형기가 한편으로 치우친 반면에 또 의리의 얻은 바를 보존한 것이 있다.[至於虎狼之父子, 蜂蟻之君臣, 豺獺之報本, 雎鳩之有別, 則其形氣之所偏, 又反有以存其義理之所得.]"라고 하였다. 죽은 꿩으로 《의례(儀禮)》 〈사상견례(士相見禮)〉에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예물[摯]로 겨울에는 죽은 꿩[雉]을 사용한다.[摯 冬用雉.]"라고 한 것에 대하여 정현의 주에는 "사(士)가 예물로 꿩을 사용하는 것은 꿩의 굳세고 강직한 성정을 취한 것으로, 꿩은 교미하는 것에 때가 있고 헤어져도 윤서(倫序)가 있다. 반드시 죽은 것을 사용하는 것은 산 채로는 길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士摯用雉者, 取其耿介, 交有時, 別有倫也. 雉必用死者, 爲其不可生服也.]"라고 하였다. 읍양을……올라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에게 양보하는 예교의 풍속을 말한다. 《논어》 〈팔일(八佾)〉에 "군자는 다투는 것이 없으나 반드시 활쏘기에서는 경쟁을 한다. 상대방에게 읍하고 사양하며 올라갔다가 활을 쏜 뒤에는 내려와 벌주를 마시니, 이러한 다툼이 군자다운 다툼이다.[君子無所爭 必也射乎 揖讓而升 下而飮 其爭也君子]"라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인데, 다만 여기서는 활쏘기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 삼분오전 원문의 '분전(墳典)'은 삼분오전(三墳五典)의 약칭인데, 전설 중에 나오는 옛날 책 이름이다. 《문선(文選)》 〈동경부(東京賦)〉에 "옛날에 항상 삼분오전(三墳五典)이 없어져서 위로 염제(炎帝)와 제괴(帝魁)의 아름다운 의표를 보지 못하여 한스러워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설종(薛綜)의 주에 "삼분(三墳)은 삼황(三皇)의 글이고, 오전(五典)은 오제(五帝)의 글이다."라고 하였다. 《주문지결(朱門旨訣)》 성혼(成渾)이 《주자대전(朱子大全)》과 《주자어류(朱子語類)》의 각종 서신들과 대화들 및 주자의 행장(行狀)에서 주자의 사상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문장들을 뽑아서 초학자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을 선집해서 출간한 서적이다. 왕맹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시대 전진(前秦)의 승상을 지낸 인물로, 자가 경략(景略)이고 북해(北海) 사람이다. 젊은 시절 동진(東晉)의 대장(大將) 환온(桓溫)을 찾아가 만나는 자리에서 여유롭게 이[蝨]를 잡으면서 유창하게 천하를 담론했을 정도로 기백이 뛰어났다고 한다. 《晉書 卷114 王猛列傳》 기나긴 밤 원문의 '장루(長漏)'는 긴 밤을 말한다. 진여원(陳汝元)의 《금련기(金蓮記)‧동몽(同夢)》에 "침상을 나란히 하여 함께 잠을 잤고 서쪽 창가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긴 밤을 지세웠다.[連床共宿, 話西窗同銷長漏.]"라는 말이 있다. 범중엄처럼 걱정이 많아 범문정공(范文正公)이 말하기를 "내가 밤에 잠자리에 들 때에 곧 하루 동안 음식으로 봉양한 비용과 한 일을 스스로 헤아려 보고 과연 자신을 봉양하는 데 든 비용과 한 일이 걸맞으면 코를 골면서 푹 잤다. 혹 그렇지 않으면 밤새도록 편안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내일 반드시 들어맞게 하기를 구하였다.[吾遇夜就寢 卽自計一日飮食奉養之費及所爲之事 果自奉之費與所爲之事相稱 則鼾鼻熟寐 或不然 則終夕不能安眠 明日必求所以稱之者]"라고 하였다. 《言行龜鑑 卷2 德行門》 문정공은 범중엄(范仲淹)의 시호이다. 주공을……없었고 《논어(論語)》 〈술이(述而)〉에 "내가 너무도 쇠하였구나. 오래도록 꿈속에서 주공을 다시 뵙지 못하였으니.[甚矣 吾衰也 久矣 吾不復夢見周公]"라고 말이 나온다. 군실처럼……이루며 군실은 송나라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의 자이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군실이 항상 생각이 어지러움을 걱정하여 더러는 밤중에 일어나 아침까지 자지 못했다고 하니 참으로 스스로 힘썼다고 하겠다.……그러나 도리어 한 꾸러미의 구슬을 세는 것만 못하다. 밤이면 몸을 편히 하고 잠이 오면 눈을 감을 것이지 괴롭게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마음으로 주를 삼지 못하기 때문이다.[君實常患思慮紛亂, 有時中夜而作, 達朝不寐, 可謂良自苦.……却不如與一串數珠之愈也. 夜以安身, 睡則合眼, 不知苦苦思量箇甚. 只是不以心爲主.]"라고 하였다. 《心經附註 卷3》 두려워 벌벌 떨고 원문의 '곡속(觳觫)'은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전국 시대 제(齊)나라 선왕(宣王)이 새로 주조한 종에 소의 피를 칠하기 위해 소를 끌고 가는 자를 보고 말하기를, "놓아주어라. 나는 그놈이 벌벌 떨면서 죄 없이 죽을 곳에 나아가는 것 같은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겠노라.[舍之. 吾不忍其觳觫, 若無罪而就死地.]"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맹자(孟子)》 1권 〈양혜왕 상(梁惠王上)〉 고운 삼베 원문의 '치락(絺絡)'은 치(絺)는 고운 갈포(葛布)를, 낙(絡)은 면주(綿紬)를 말하는데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실, 또는 그 실로 짠 비단을 말한다. 제나라의 비단 원문의 '제환(齊紈)'은 제(齊)나라에서 생산되는 비단을 뜻하는데, 보통 둥근 부채[團扇]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한 성제(漢成帝)의 궁인(宮人) 반 첩여(班婕妤)가 시가(詩歌)에 능하여 총애를 받다가 나중에 허 태후(許太后)와 함께 조비연(趙飛燕)의 참소를 받고는 물러나 장신궁(長信宮)에서 폐위된 태후를 모시고 시부(詩賦)를 읊으며 슬픈 나날을 보냈는데, 단선시(團扇詩)를 지어서 여름철에는 사랑을 받다가 가을이 되면 버려지는 부채에 자신의 처지를 비유한 추선(秋扇)의 고사가 있다. 《문선(文選)》 권27에 〈원가행(怨歌行)〉이라는 제목으로 이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첫머리에 "지금 막 제나라의 흰 비단을 자르니, 희고 깨끗하기가 서리와 눈 같아라. 재단하여 합환의 부채를 만들었나니, 둥글고 둥근 것이 밝은 달과 같아라.[新裂齊紈素 皎潔如霜雪 裁爲合歡扇 團團似明月]"라는 말이 나온다. 촉나라의 비단 사천(四川)에서 생산되는 채색의 비단을 지칭한다. 염색한 숙사(熟絲)로 짜서 만드는데, 색채가 화려하고 재질이 질기다. 삼국(三國) 시대 위(魏)나라 조비(曹丕)의 〈여군신론촉금서(與群臣論蜀錦書)〉에 "전후로 매번 촉금(蜀錦)을 얻을 때마다 자못 가당치 않아 의아할 뿐이었고, 선비(鮮卑)도 다시금 좋아하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영롱하며 휘황찬란한 빛 원문의 '육리휘황(陸離輝煌)'은 찬란육리(燦爛陸離)와 같은 말로 영롱한 빛이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모양을 나타낸다. 팽택령처럼……집 도연명이 팽택령(彭澤令)으로 있다가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고는 고향의 전원으로 돌아와 소나무와 국화를 심고 한가롭게 살았다. 〈귀거래사〉에 "술잔을 가져다 스스로 따르고 뜰의 나뭇가지를 돌아보며 얼굴을 편다. 남쪽 창에 기대 오만함을 부치고 무릎이 용납하기 쉬움을 알겠다.[引壺觴以自酌 眄庭柯以怡顔 倚南窓以寄傲 審容膝之易安]"라고 하였다. 사마광처럼 찢어진 이불 〈사마온공포금명(司馬溫公布衾銘)〉은 범진(范鎭, 1008~1089)이 사마광에게 준 베 이불에 대해 범순인(范純仁, 1027~1101)이 명을 지은 것으로, 베 이불을 소재로 검소(儉素)의 덕을 권면하는 내용이다. 사마광은 늙어 병이 깊어지자 심의(深衣)와 베 이불을 가지고 시신을 염(殮)하라고 유언하였다고 한다. 광문처럼 비록 가난하고 광문은 본디 당 현종(唐玄宗) 때의 문인으로 광문관 박사(廣文館博士)를 지낸 정건(鄭虔)을 가리킨다. 그는 일찍이 현종의 특별한 배려로 한직(閑職)인 광문관 박사에 임명되었으나, 몹시 빈한(貧寒)한 데다 술을 매우 즐겼으므로, 두보(杜甫)가 장난삼아 그에게 〈희간정광문戲簡鄭廣文〉이라는 시를 지어 주기도 했다. 《杜少陵詩集 卷3》 법조처럼 허리가 크지만 한유의 〈정군증점(鄭君贈簟)〉이란 작품에서 "법조참군 말직에 아무나 함부로 대하는 자리, 허리와 배 부질없이 크니 어찌하면 좋겠는가.[法曹貧賤衆所易 腰腹空大何能爲]"라 하였다. 이 작품은 가난한 한유가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낙토여……얻었으니 《시경》 〈석서(碩鼠)〉에 "큰 쥐야, 큰 쥐야. 내 기장을 먹지 말지어다. 3년 동안 너와 알고 지냈거늘 나를 즐겨 돌아보지 않을진댄 떠나서 장차 너를 버리고 저 낙토로 가리라. 낙토여, 낙토여. 이에 내 살 곳을 얻으리로다.[碩鼠碩鼠, 無食我黍. 三歲貫女, 莫我肯顧. 逝將去女, 適彼樂土. 樂土樂土, 爰得我所.]"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지금……되었네 《논어》 〈술이(述而)〉의 "마음속으로 통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열어주지 말며, 애태워하지 않으면 말해주지 말되, 한 귀퉁이를 들어줌에 이것을 가지고 남은 세 귀퉁이를 반증(反證)하지 않으면 다시 더 일러주지 않는다.[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 不以三隅反, 則不復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유방의 법 약법삼장(約法三章)이라고 하는데, 한 고조 유방(劉邦)이 진(秦)나라의 가혹한 법을 폐지하고 세 조항으로 줄여서 새로 만든 법이다.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며,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와 도둑질한 자에 대해서는 그 범죄 정도와 상응하는 처벌을 한다.[殺人者死, 傷人及盜抵罪.]"라고 하였다. 《史記 卷8 高祖本紀》 위나라 적 제갈량(諸葛亮)의 〈후출사표(後出師表)〉에 '선제(先帝)는 한나라와 역적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先帝慮漢賊不兩立]'에 나오는 말로 적(賊)은 위(魏)나라 조조(曹操)를 가리킨다. 번진 당나라 초기에 중요한 주(州)에 도독부(都督府)를 두고, 예종(睿宗) 때 절도대사(節度大使)를 두고, 현종(玄宗) 때 또 변경의 10개소에 절도사를 두었는데, 이를 통틀어 '번진'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각 지역의 군정(軍政)만 담당하다가 나중에는 권력이 점차 커져 민정(民政)과 재정(財政)까지 담당하였다. 스스로……되니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뒤에 남이 그를 업신여기며, 집안은 반드시 스스로 패가(敗家)한 뒤에 남이 그를 패가하며, 나라는 반드시 스스로 공격한 뒤에 남이 공격하는 것이다.[夫人必自侮然後 人侮之 家必自毁而後 人毁之 國必自伐而後 人伐之]"라는 말이 나온다. 금석에서……하였네 글 읽는 소리가 카랑카랑하여 쇳소리와 석경(石磬)소리와 같음을 말한다. 《장자(莊子)》 〈양왕(讓王)〉의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가 위(衛)나라에 머물 적에 해진 옷은 너덜거리고 얼굴은 부어서 푸석푸석하며 손발이 모두 트고 갈라져 있었다. 3일 동안이나 밥을 짓지 못하였고 10년 동안 옷을 새로 만들어 입지 못하였다. 또 갓을 바로 쓰려 하면 갓끈이 끊어지고 옷깃을 여미려 하면 옷이 찢어져 팔뚝이 보였으며 신을 신으면 신의 뒤축이 터져버렸다. 그런데도 신발을 끌면서 《시경》의 상송(商頌)을 노래하면 소리가 하늘과 땅에 가득하여 마치 금속에서 나오는 듯하였다.[聲滿天地, 若出金石.]"라고 한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