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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대신하여 지은 이웃 부인에 대한 만사 代人輓隣婦 곧고 조용한 규문의 의범 맹광(孟光)322)을 이었으니거안제미(擧案齊眉)를 32년여 동안 하였네서리가 옥 나무 꺾으니 산이 자줏빛을 슬퍼하고323)바람이 경지(瓊芝)를 끌어당기니 계곡이 향기 없음을 원망하네324)다섯 줄기의 향기로운 난초에 꽃이 비로소 열리고가지 하나의 계수나무 떨기에 잎이 처음 자라나네이로부터 이날의 끝없는 한 알겠으니백발의 늙은이325) 슬피 울고 봉(鳳)이 황(凰)을 잃었네326) 貞靜閨儀後孟光齊眉三十二年強霜摧玉樹山哀紫風掣瓊芝谷怨香五朶芳蘭花始茁一枝叢桂葉初長從知此日無窮恨鶴髮悲號鳳失凰 맹광(孟光) 후한(後漢)의 은사 양홍(梁鴻)의 처다. 부덕(婦德)이 훌륭하여 남편을 잘 섬겼다고 한다. 밥상을 들고 올 때에도 양홍을 감히 마주 보지 못하고 이마 위에까지 들어 올렸다는 '거안제미(擧案齊眉)'의 고사가 유명하다. 《後漢書 卷83 梁鴻列傳》 서리가……슬퍼하고 이는 여인이 이른 나이에 사망한 것에 대한 전고인 '자옥(紫玉)'의 고사를 염두에 두고 쓴 구절이다. 당나라 이백(李白)의 시 〈경난후장피지섬중유중최선성(經亂後將避地剡中留贈崔宣城)〉에 "호상(胡床) 위의 자줏빛 옥피리, 도리어 푸른 구름에 앉아서 부네.[胡床紫玉笛 却坐靑雲叫]"라 하였고, 두보의 〈도죽장인(桃竹杖引)〉에, "뿌리 자르고 껍질 벗기매 자줏빛 옥과 같으니, 강비와 수선이 애석해도 어쩔 수 없어라.[斬根削皮如紫玉 江妃水仙惜不得]"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만사의 대상인 부인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바람이……원망하네 '경지(瓊芝)'는 곧 옥지(玉芝)로, 선경(仙境)에 있는 영지(靈芝)를 뜻한다. 옛 사람들은 이것을 복용하면 장생할 수 있다고 여겼다. 남조(南朝) 양(梁)나라 심약(沈約)의 〈여도홍경서(與陶弘景書)〉에, "경지(瓊芝)를 씹어 삼켜 청도(淸都)를 출입한다.[咀嚥瓊芝 出入淸都]"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즉, '바람이 경지를 끌어당긴다'는 것은 장수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음을 의미한다. 백발의 늙은이 원문은 '학발(鶴髮)'이다. 두루미의 깃털처럼 희다는 뜻으로 머리가 하얗게 된 노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봉(鳳)은 황(凰)을 잃었네 봉황 가운데 수컷을 '봉(鳳)'이라 하고 암컷을 '황(凰)'이라 한다. 남편이 부인을 잃었음을 비유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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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백경옥(白慶玉)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嘉慶十五年庚午正月 日 白慶玉 行郡守 嘉慶十五年庚午正月 日 白慶玉 전남 영암군 [署押] 1개, [官印] 1개 6.5*6.5(정방형) 적색 1개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1810년(순조 10) 영암군(靈巖郡) 곤이시면(昆二始面) 장전리(長田里) 2통 4호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백경옥(白慶玉)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 1810년(순조 10)에 영암군(靈巖郡) 곤이시면(昆二始面) 장전리(長田里) 2통 4호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백경옥(白慶玉)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작성 당시 호주(戶主) 백경옥은 67세로, 처(妻) 장씨(張氏)(61)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경옥의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김씨의 본관은 광산(光山), 장씨의 본관은 인동(仁同)이었다. 백경옥의 부(父)는 백창윤(白昌潤), 조(祖)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백민징(白敏徵)이다. 수원백씨 가문에는 백민징이 가선대부에 임명되면서 받은 교지(敎旨)가 보관되어 있다. 가선대부는 조선시대의 종2품 품계로 초기에는 문무산계(文武散階)로 사용하였으나 후기에는 종친(宗親)과 의빈(儀賓)의 품계로도 사용하였다. 이때 백민징은 82세의 고령이어서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를 받았다. 증조부는 백신헌(白信憲), 외조부는 김수용(金壽龍)으로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호주 백경옥의 처 장씨(張氏)의 부는 천익(天翼), 조부는 한우(漢佑), 증조부는 선장(善長), 외조부는 박사덕(朴師德)으로 밀양(密陽)이 본관이다. 문서의 끝 부분에 이 집안이 거느리고 있는 노비의 명단이 실려 있는데, 29살 먹은 계집종이 하나 있었으며, 외거비 신량(申良)이 하나 있었지만 도망가고 없었다. 조선시대의 호적에는 이처럼 도망을 간 노비들의 이름도 반드시 기입하였는데, 이는 나중에 있을 지도 모르는 노비의 소유권 분쟁과 관련이 있었다. 호구단자의 맨 끝에는 "丁卯戶口相凖"이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이때 작성된 호구단자를 정묘년, 즉 1807년의 호적과 대조하였다는 의미이다. 수원백씨 가문에 전하는 백경옥의 호구단자를 보면, 1786년, 1792년, 1798년, 1801년, 1804년, 1807년, 1810년, 1813년 등 8건이 전하고 있다. 그는 영암군 곤이시면 장전리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지 않고 내내 살았는데, 오늘날의 영암군 장전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백경옥은 처음에는 어머니 김씨(金氏)를 봉양하였으나 김씨가 죽은 뒤에는 부부가 단둘이 살았다. 그와 처 장씨의 거주 형태는 나이 70세가 되는 1813년, 즉 이 호구단자가 작성되는 시점에 와서 아들 백사형(白思亨)이 며느리와 함께 들어와 2대가 거주하는 형태로 바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816년에는 그 아들 백사형이 독립된 호주로서 강진(康津)에서 호구단자를 작성하고 있으며, 더 이상 백경옥의 호구단자는 작성되지 않고 있다. 아마 그 사이 사망했거나 호구단자가 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수원백씨 가문의 호구단자는 백경옥과 아들 백사형의 것말고도 백경옥의 조부 백민징(白敏徵), 부 백창윤(白昌潤)의 것들도 전하고 있어서 백민징 – 백창윤 – 백경옥 – 백사형 등 4대에 이르는 가계도를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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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제(從弟)가 사암산(莎巖山) 아래에 작은 정자를 지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멋대로 써서 부치다. 聞從弟將構小亭于莎巖山下。謾筆以寄。 들판 넓고 강 굽어 푸른 산 휘감으니푸른 잔디 자란 바위 가 작은 낚시터 사이라네하늘이 좋은 땅 아끼는 것 어찌 뜻이 없으리오사람들 그윽히 살 곳 부족한데 홀로 염치없이 차지하였네여울은 원망하는 소리 내보내 멀리서 온 객 꾸짖고75)새는 맑은 생각 머금고서 시 짓느라 센 머리76) 한스러워하네마름풀 옷과 연잎 옷 입은 자77)에게 말 전하노니반평생 누린 한가함을 그대에게 기꺼이 나누어 주겠는가 野闊江盤繞碧山靑莎巖畔小磯間天慳勝地寧無意人欠幽棲獨厚顔灘送怨聲誚遠客鳥含淸思恨詩班寄言芰製荷衣子肯許分君半世閒 여울은……꾸짖고 여울이 산속의 고요함을 지키기 위해 꺼림칙한 물소리를 내어 멀리서 찾아오는 외부인을 쫓아낸다는 의미다. 시……머리 원문은 '시반(詩班)'으로, 곧 '시반(詩斑)'을 말한다. 시를 짓느라 노심초사하여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진 것을 말한다. 당(唐)나라 중이 지은 시에 '시를 짓다가 머리털이 희끗희끗해졌네.[髮爲作詩斑]'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山堂肆考 卷127 詩斑》 마름풀……자 원문은 '기제하의자(芰製荷衣子)'다. 은자(隱者)를 가리킨다.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주옹(周顒)이 은거를 그만두고 조정에 나가자 벗 공치규(孔稚圭)가 그를 비난하며 지은 〈북산이문(北山移文)〉에, "그동안 입고 있던 마름풀 옷을 불살라 버리고 연잎 옷을 찢어 버린 채, 먼지 낀 얼굴을 뻣뻣이 치켜들고서 속된 모습으로 마구 달려 나갔네.[焚芰製而裂荷衣 抗塵容而走俗狀]"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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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靈巖) 홍(洪) 수령59)【종운(鍾韻)】에게 부치다 寄靈巖倅洪【鍾韻】 산수로 이름난 고을에 그대 인연 있는데전원(田園)과 구학(丘壑)에 나 홀로 지내네띳집 처마 쓸쓸하여 문에 거적 드리웠는데60)화각(畫閣) 영롱하여 비단으로 자리 만들었네61)단필(丹筆)로 송사(訟事) 처리하는 것 후한(後漢)의 성길(盛吉)보다 나은데62)주사(朱砂)로 《주역(周易)》에 점 찍으며 선천(先天)을 헤아리네63)자오곡(子午谷)이 정묘교(丁卯橋)보다 낫다고 말하지 말라64)육지에서 어부와 나무꾼으로 늙어가는 것 또한 신선이라네 65)두 번째푸른 하늘의 영악(靈岳) 떠나서 인연 없으니그대 때때로 올라 마음 확 트이는 것 부러워하네신은 푸른 옥 쪼아 책상과 도마에 늘어놓았고구름은 창해(滄海)와 이어져 성대한 연회를 접하네기운은 명해(溟海)와 발해(渤海)를 삼켜 남쪽으로 날개를 옮기고66)시야는 진(秦)나라67)까지 뻗쳐 북쪽으로 하늘을 바라보네형산(衡山)이 즐길 만한 곳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68)취한 늙은이의 풍채 또한 신선이라네 山水名鄕子有緣田園邱壑我塊然茅簷寂歷門垂席畫閣玲瓏錦作筵丹筆訟冤凌後漢朱砂點易筭先天莫言子午勝丁卯陸老漁樵亦是仙其二淸空靈岳去無緣羡子時登意豁然神琢碧瓊排案俎雲連滄海接華筵氣呑溟渤南徙翼目極亟秦北望天休道衡山非可翫醉翁風彩亦神仙 영암(靈巖) 홍(洪) 수령 홍종운(洪鍾韻, 1613~1658)을 가리킨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화백(和伯)이다. 1639년 과거에 급제하여 정언, 장령 등을 역임하였다. 1655년(효종6) 영암 군수(靈巖郡守)에 임명되었다. 문에 거적 드리웠는데 원문은 '문수석(門垂席)'이다. 문에 거적을 매달아 놓는다는 뜻으로, 청빈한 집이나 은자(隱者)의 거처를 뜻한다. 《사기(史記)》 권56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에, "집이 성곽을 등진 누추한 골목에 있었고 다 떨어진 거적으로 문을 달았는데도, 문 밖에는 장자(長者)의 수레바퀴 자국이 많이 나 있었다.[家乃負郭窮巷 以弊席爲門 然門外多有長者車轍]"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화각(畫閣)……만들었네 '화각(畫閣)'은 채색을 한 화려한 누각을 말한다. 영암 군수인 홍종운의 생활공간을 빈한하게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공간과 대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단필(丹筆)로……나은데 '단필(丹筆)'은 법관(法官)이 죄상을 기록할 때 쓰는 붉은 색의 붓이다. 후한(後漢) 사람 성길(盛吉)은 마음이 어질고 남의 아픔을 긍휼이 여기는 성품을 지녔다. 그가 정위(廷尉)가 되어 동짓날 형옥을 판결할 때 부인이 곁에서 촛불을 밝혀주었는데, 두 사람 모두 밤새 눈물을 흘리며 붓을 쥐고 마주 보고만 있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古今事文類聚 前集 卷12 丹筆相對》 홍종운이 수령으로서 인자한 다스림을 펼치고 있음을 칭송한 말이다. 주사(朱砂)로……헤아리네 주묵(朱墨)으로 비점(批點)과 관주(貫珠)를 쳐 가며 《주역》을 열심히 읽는다는 말이다. 당나라 고변(高駢)의 〈보허사(步虛詞)〉에, "동구 문은 깊게 잠겼고 푸른 창은 차가운데, 이슬로 주사 갈아 《주역》에 점을 찍네.[洞門深鎖碧窓寒 滴露硏朱點周易]"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또 '선천(先天)'은 복희씨(伏羲氏)가 만든 역(易)을 말한다. 송나라 소옹(邵雍)은 복희씨(伏羲氏)의 《주역》을 선천역(先天易)이라 하고, 문왕(文王)의 《주역》을 후천역(後天易)이라 하였다. 수령으로서 정사를 처리하는 홍종운의 모습과 대비되는 자신의 모습을 읊은 것이다. 자오곡(子午谷)이……말라 '자오곡(子午谷)'은 중국 장안(長安) 남쪽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계곡으로, 은거의 공간을 뜻하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현도단가기원일인(玄都壇歌寄元逸人)〉에, "오랜 친구 예전에 동몽산(東蒙山) 봉우리에 숨어, 이미 함영(含景)의 글자 새긴 창정룡(蒼精龍) 검을 찼다오. 오랜 친구 지금은 자오곡(子午谷)에 살며, 홀로 응달언덕 초가집에 있네.[故人昔隱東蒙峰 已佩含景蒼精龍 故人今居子午谷 獨在陰崖結茅屋]"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또 '정묘교(丁卯橋)'는 당나라 시인 허혼(許渾)의 별장 정묘장(丁卯莊) 근처에 있는 다리로, 강소성(江蘇省) 단도현(丹徒縣)에 있다. 이들 공간을 아울러 언급한 것으로는, 송나라 섭몽득(葉夢得)의 시에 "은자는 옛날에 자오곡에 살았는데 시객은 홀로 정묘교를 찾았네.[逸人舊住子午谷 詩客獨尋丁卯橋]"라 하였고, 육유(陸游)의 시 〈소축(小築)〉에 "비록 은사가 머무는 자오곡은 아니지만 어찌 시인이 지내는 정묘교에 부끄럽겠는가.[雖非隱士子午谷 寧媿詩人丁卯橋]"라 한 대목이 보인다. 즉 여기에서 '자오곡'은 김만영이 은거하고 있는 곳을, '정묘교'는 홍종운이 부임해 있는 곳을 가리키는 것으로, 자신의 은거 공간이 반드시 홍종운의 생활공간보다 낫다고 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육지에서……신선이라네 어부나 나무꾼으로서 한가로이 살아가는 것 또한 신선 같은 삶일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두보(杜甫)의 시 〈옥대관(玉臺觀)〉에, "홍안에 날개 돋아 하늘에 오르는 신선이야 어찌 또 바라리요, 흰머리의 어부나 나무꾼으로 늙어 감이 마땅하리라.[更肯紅顔生羽翼 便應黃髮老漁樵]"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杜少陵詩集 卷13》 기운은……옮기고 '명해(溟海)와 발해(渤海)'는 남쪽 바다와 북쪽 바다로, 보통 큰 바다를 뜻한다.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붕새가 북쪽 바다에서 남쪽 바다로 옮겨 갈 적에 날개를 치면 물결이 3천 리나 인다고 한 대목을 참고한 구절이다. 진(秦)나라 원문은 '극진(亟秦)'이다.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라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였으므로 이렇게 표현한 듯하다. 《한서(漢書)》 〈가의전(賈誼傳)〉에, "속담에 '앞 수레가 뒤집힘에 뒤 수레가 조심한다.' 하였습니다. 진(秦)나라가 빨리 망하게 된 원인은 그 바퀴 자국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를 피하지 않는다면 뒤 수레가 또 장차 뒤집히고 말 것입니다.[鄙諺曰 前車覆後車戒 秦氏所以亟絶者 其轍跡可見 然而不避 是後車又將覆也]"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형산(衡山)이……말라 은거하는 공간이 충분히 즐길 만하다는 뜻이다. 중국 오악(五岳)의 하나인 '형산(衡山)'은 호남성(湖南省)에 위치한 산으로, 남조(南朝) 송(宋)나라 유응지(劉凝之)와 종병(宗炳), 당나라 이필(李泌) 등 역대 여러 인물이 이곳에 은거하였다. 형산이 중국 남쪽에 위치해 있고, 자신 역시 현재 호남에 은거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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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使君) 윤종지(尹宗之)가 천관산(天冠山)69)을 유람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쳐 올리다 聞尹使君【宗之】遊天冠山寄呈 하늘 남쪽의 동쪽 모퉁이 가장 이름난 지역땅은 봉래(蓬萊) 영주(瀛洲)70)와 만리 길로 접해있네진(秦)나라 불사약 이르지 않는데71) 푸른 바다만 드넓고노(魯)나라 뗏목72) 자취 없는데 성난 파도만 철썩철썩인간세상의 풍랑 천 층(層)으로 일어나건만물외(物外)의 푸른 산 한 점 외롭게 서 있네초탈한 흥취 즐기는 사군 몹시도 부러우니죽여(竹輿)에 서둘러 올라 방호(方壺)73)에 이르렀네 天南東角最名區地接蓬瀛萬里途秦藥不來滄海闊魯桴無跡怒濤呼人間波浪千層起物外靑山一點孤深羡使君乘逸興竹輿催駕到方壺 천관산(天冠山) 전라남도 장흥에 위치한 산이다. 꼭대기의 바위 모습이 천자(天子)의 면류관(冕旒冠)과 같다 하여 천관산이라 불린다. 봉래(蓬萊) 영주(瀛洲) 신선이 산다고 하는 산으로, 방장(方丈)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이라 불린다. 동해(東海) 가운데에 있다고 한다. 진(秦)나라……않는데 진 시황(秦始皇)이 동해(東海)의 삼신산(三神山)에 불사약이 있다는 방사(方士) 서복(徐福)의 말을 듣고 그에게 동남동녀(童男童女) 수천 명과 함께 배를 타고 가서 불사약을 구해 오게 하였으나, 이들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6 秦始皇本紀》 노(魯)나라 뗏목 공자는 노(魯)나라에서 도(道)가 행해지지 않자 노나라를 버리고 다른 나라로 가겠다고 탄식하면서, "나의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 들어갈까 한다.[道不行 乘桴浮于海]"라 하였다. 《論語 公冶長》 방호(方壺) 신선이 살고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방장(方丈)이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천관산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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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짓날 감회가 있어 長至日有感 하나의 양(陽) 돌아와 회복하는 것이 천근(天根)이니140)한밤중의 뇌성 하늘의 문을 열어젖히네삼십육궁(三十六宮)에 봄 차례로 시작되고141)천만의 가호(家戶)엔 기운이 정(貞)에서 원(元)으로 이어지네142)인간 세상에선 매서운 눈바람만 보일 뿐이니지하에서 온화한 기운 움직이는 줄 누가 알리오이날 서생은 깊이 뜻한 바 있으니창 밖에 핀 작은 매화에 은연중에 넋이 생겨나네143) 一陽來復是天根半夜雷聲啓九門三十六宮春次第萬千家戶氣貞元人間但見馳風雪地下誰知動暖暄此日書生深有意小梅窓外暗生魂 하나의……천근(天根)이니 《주역(周易)》에서 동지(冬至)에 하나의 양(陽)이 처음 아래에서 생기는 것이 복괘(復卦)인데, 이를 '천근(天根)'이라고도 한다. 송(宋)나라 소옹(邵雍)의 〈관물음(觀物吟)〉에, "이목(耳目)이 총명한 남자 몸으로 태어났으니, 천지조화의 부여가 빈약하지 않구나. 월굴을 탐구해야만 물을 알 수 있거니와, 천근에 못 올랐다면 어찌 사람을 알리요. 건이 손을 만난 때에 월굴을 살펴보고, 지가 뇌를 만난 곳에서 천근을 볼 수 있으니, 천근과 월굴이 한가로이 왕래하는 가운데 삼십육궁이 온통 봄이로구나.[耳目聰明男子身 洪鈞賦與不爲貧 須探月窟方知物 未躡天根豈識人 乾遇巽時爲月窟 地逢雷處見天根 天根月窟閒往來 三十六宮都是春]"라 하였다. 삼십육궁(三十六宮)……시작되고 송(宋)나라 소옹의 〈관물음(觀物吟)〉에, "천근과 월굴이 한가히 왕래하는 중에, 삼십육궁이 모두 봄이로구나.[天根月窟閒往來 三十六宮都是春]"라 한 데서 취해 온 구절이다. '삼십육궁'은 64괘(卦)와 같은 것으로서 64괘 모두가 하나의 봄기운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삼십육궁과 관련하여, "'64괘중에 변역(變易)하는 괘가 8이니, 건괘(乾卦)‧곤괘(坤卦)‧감괘(坎卦)‧이괘(離卦)‧이괘(頤卦)‧대과괘(大過卦)‧중부괘(中孚卦)‧소과괘(小過卦)이고, 교역(交易)하는 괘가 56이니, 둔괘(屯卦)‧몽괘(蒙卦) 이하가 그것이다. 변역은 8괘가 각각 한 궁이 되고, 교역은 2괘가 합하여 한 궁이 된다.'라고 하였으니, 이 해설이 가장 타당하다 하겠다."라 하였다. 《星湖僿說 卷20 經史門 三十六宮》 천만의……이어지네 원문의 '정원(貞元)'은 《주역》의 원형이정(元亨利貞) 사덕(四德) 가운데 정(貞)과 원(元)을 말한다. 오행(五行)에서 정은 겨울에, 원은 봄에 해당하는 것으로, 동지가 되었으므로 집집마다 봄기운이 생겨나기 시작함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창……생겨나네 매화의 고결한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송나라 소식(蘇軾)의 〈송풍정하매화성개(松風亭下梅花盛開)〉에, "나부산 아래 매화 마을에는, 옥설이 뼈가 되고 얼음이 넋이 되었네.[羅浮山下梅花村 玉雪爲骨氷爲魂]"라 하였다. 《東坡全集 卷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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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1659, 36세) 봄 응지상소(應旨上疏)를 짓고 점을 쳤는데 둔괘(屯卦)와 둔괘(遯卦)의 점괘를 얻었으므로 올리지 않았으니, 감회가 있어 짓다145) 己亥春。應旨筮疏。遇得屯遯不進。感而作。 시절에 상심하여 슬피 흘리는 눈물 은연중에 소매를 적시니한 폭의 소장(疏章)에 작은 마음 쏟아 냈네시내 건너에 사는 고사(高士)의 비웃음 면하기 어려우나146)해를 향하는 해바라기의 마음 금할 수 없네147)가의(賈誼)【'의(誼)'는 '생(生)'이 되어야 할 듯하다】는 교분이 얕았으나 말은 부질없이 절실하였고148)주자(朱子)는 상소를 불태웠어도 뜻은 또한 깊었다네149)온종일 대나무 창가에서 부질없이 북쪽을 바라보니천지를 돌아봄에 짙은 구름 뭉쳐 있네. 傷時哀淚暗垂襟一幅封章寫寸忱難免隔溪高士笑不禁傾日野葵心賈誼【誼恐乍生】交淺言空切晦老疏焚意亦深盡日竹窓空北望乾坤回首結層陰 기해년……짓다 1659년 구언(求言)에 응하여 〈만언소(萬言疏)〉를 지은 후, 상소의 길흉을 점쳐 둔괘(屯卦)와 둔괘(遯卦)의 점괘를 얻자 상소 올리는 일을 포기하고 지은 시이다. 《韓國文集叢刊解題 南圃集》 둔괘는 고난을 만나 형통하지 못한 것을 상징하는 괘이며, 둔괘는 좋지 못한 세상을 만나 군자가 은둔하는 것을 상징하는 괘이기 때문이다. 시내……어려우나 세상에 대한 명성을 추구하다가 은거하는 선비의 비웃음을 산다는 말이다. 북송(北宋) 사람 장영인(張詠人)의 시 〈도중(途中)〉에, "인정이 다하여 관직의 영화로움 무거우니, 내가 동쪽으로 돌아감에 작은 길이 맞이하네. 옛 시내 고사(高士)의 비웃음을 면치 못하니, 천진(天眞)을 모두 잃고 헛된 명성만 얻었네.[人情到底重官榮 見我東歸夾路迎 不免舊溪高士笑 天眞喪盡得浮名]"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해를……없네 '해바라기'는 항상 해를 향해 피므로, 이로 인하여 임금에게 충성을 바치고자 하는 정성을 뜻한다. 《삼국지(三國志)》 권19 〈위지(魏志) 진사왕조식전(陳思王曹植傳)〉에, "해바라기 잎은 태양을 향하니, 태양이 비록 그쪽으로 방향을 돌려 비춰 주지 않더라도 태양을 향하는 것이 해바라기의 정성이다.[若葵藿之傾葉 太陽雖不爲之回光 然向之者誠也]"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가의(賈誼)는……절실하였고 한 문제(漢文帝) 때 참소(讒訴)를 입어 장사왕 태부(長沙王太傅)로 좌천된 가의(賈誼)가 흉노의 변경 침입 및 제후의 발호로 인한 국가의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치안책(治安策)〉을 올린 일을 말한다. 이 글에서 가의는 시사의 문제점으로 통곡할 만한 일 하나, 눈물 흘릴 만한 일 둘, 장탄식할 만한 일 여섯 가지에 대한 대책을 진언하였다. 《漢書 卷48 賈誼傳》 주자(朱子)는……깊었다네 송 영종(宋寧宗) 때 간신 한탁주(韓侂胄)가 재상 조여우(趙汝愚)를 축출하자 군소(群小)들이 날뛰므로 주희(朱熹)가 소장을 올려 극언하려 하였다. 이에 문인들이 안위를 걱정하여 극구 말렸지만 그 뜻을 꺾을 수가 없자, 채원정(蔡元定)이 점을 쳐서 결정하자고 청하였다. 점을 친 결과 둔괘(遯卦)가 가인괘(家人卦)로 변하는 불길한 괘가 나오자 주희는 그 상소를 불태워 버리고 둔옹(遯翁)이라 자호하였다. 《朱子大全 附錄 卷6 年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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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6 卷之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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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언고시) 詩(七言古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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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사(宋史)》의 희풍(煕豐)‧원우(元祐) 연간의 기록1)을 읽고 讀宋史煕豐元祐紀 송나라 쇠락해 가던 즈음에 당론(黨論)이 일어나니낙당(洛黨)과 촉당(蜀黨)2)의 여러 현인들 동서로 나뉘었네하중(河中)의 선생3)은 옛 성인(聖人)의 뜻을 이은 분이요미옹(眉翁)4) 또한 어찌 범범하고 어리석은 무리에 속한 분이리오한 마디 말을 서로 겨루어 큰 틈이 벌어지니이로 인해 종사(宗社)로 하여금 거센 물결과 같아지게 하였네묘당(廟堂)에서 초한(楚漢)의 형세를 나누어 열고굴신(屈伸)을 반복하고 엎치락뒤치락하며 자웅을 다투네물결이 일어났다 사라기를 반복하여 오래도록 잠잠해지지 않으니세월이 오래되자 음산한 바람이 많아지네아침저녁으로 눈을 부릅뜨며 대치하는 형세5)가 이루어지고의관을 갖춰 입은 조정 반열에서도 마음으로 전쟁을 벌이네호(胡)와 월(越)로 함께 달려가 심복이 되기를 허락하고6)취향이 같지 않은 형제 음률을 달리하네7)혜초의 지조와 난초의 자태 조개풀과 도꼬마리8)로 변하고비굴하게 아첨하는 자9)가 어질고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네쌍정(雙旌)과 칠류(七旒)가 큰 번진(藩鎭)에서 나와10)구명(九命)과 삼석(三錫)의 경공(卿公)이 되네11)묻노니 어떻게 하면 이와 같은 상황에 이르러뜻 맞는 이를 만나 천공(天工)12)을 온전히 할 수 있겠는가주공(周公)과 소공(召公)13)이 혀끝을 놀리고윤길보(尹吉甫)와 중산보(仲山甫)14)가 턱 속을 따르네15)나라의 성쇠 대수롭지 않은 일로 여기고부귀와 공명으로 그 몸을 영화롭게 하네유림(儒林)이 분분하여 따라서 혼탁한 데로 젖어드니산림(山林)16)의 높은 뜻 누가 숭상할 수 있으리오하간(河間)에서 헛되이 늙어간 자리 위의 봄바람이요17)낙중(洛中)에서 오랫동안 움츠린 심의옹(深衣翁)이라네18)함께 천지의 기화(氣化) 속에서 태어나하나의 이치에 함께 뿌리를 두고 서로 흘러 통하네백성은 나의 동포이고 만물은 나의 동류이거늘19)더구나 함께 벼슬하면서 임금에게 조회하고 있지 않은가20)마음을 공정히 하고 뜻을 함께 하여 요순(堯舜)21)을 보좌하니태평한 삼황오제(三皇五帝)22)의 시절 화기(和氣)가 충만하였네고요(皐陶)와 기(夔), 후직(后稷)과 설(契)23)이 천직(天職)을 함께 받들고팔원(八元)과 팔개(八凱), 태전(太顚)과 굉요(閎夭)24)가 그 공을 이루었네하나의 당 위에서 정사를 논의하니25)팔도의 백성들 풍성함을 회복하였네어찌하여 바른 길을 버려두고서 가지 않는가26)걷기 어려워하고27) 넘어지고 지친 것이 마치 병들고 노쇠한 사람과 같네저 보잘것없는 장돈(章惇)과 채경(蔡京)28)은 말할 것도 없으니고르게 나누려다 마땅함이 지나친 것은 모두 마찬가지라네시기와 의심, 편벽됨과 괴팍함이 살기(殺氣)로 변하니살기가 재앙을 불러와 어지럽고 괴롭네날씨가 알맞음을 잃어 사계절이 뒤섞이며비바람이 고르지 않아 천도(天道)가 곤궁하네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농사를 근본으로 삼으니농사가 이미 결실을 이루지 못하자 나머지 일이 모두 공허해졌네전쟁과 토목 공사가 또 따라서 일어나니조세와 역(役)이 번다하고 무거워 백성들 근심 가득하네나라의 안위는 비록 대신(大臣)에게 달려 있는 것이지만해바라기29)에게 어찌 하늘을 향해 기우는 마음이 없겠는가시 짓고서 가생(賈生)의 눈물30)을 남몰래 닦고충직하고 사모하는 마음 다만 장공(張公)의 애통함31)보다 절실하네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정강(靖康)의 큰 화32)가 당쟁의 틈에서부터 시작된 것원죄(原罪)를 미루어 보자면 원풍 연간에 있다네 皇宋垂尾黨論起洛蜀羣哲分西東河中先生繼往聖眉翁亦豈凡羣蒙片言相角大釁開坐使宗社奔波同廟堂分啓楚漢勢屈伸翻覆爭雌雄流波起滅久不平年深歲舊多陰風睢盱朝暮鷸蚌成衣冠班列心兵戎同趍胡越許心腹異趣兄弟殊徵宮蕙操蘭姿變菉葹奴顔婢膝爲賢忠雙旌七旒出大藩九命三錫爲卿公問之何以至若此得遇同志專天工周公召公掉舌上吉甫山甫隨頤中邦家興替等閒事富貴功名榮乃躬儒林紛紛隨涵濁山林高義誰能崇河間空老座上春洛中久蠖深衣翁共生天地氣化中同根一理相流通民吾同胞物吾與况乃聯簪朝四聰公心協志輔華勛太平三五和冲融臯夔稷契共天職元凱顚夭成厥功都兪吁咈一堂上八路民物回豐隆如何正路舍不由窘步顚疲如病癃唾彼章蔡不足道平分過宜皆均洪猜疑偏愎變殺氣殺氣召眚紛倥傯寒暖失節四序錯風雨不調天道窮國本於民民本農農旣失實餘皆空兵戈土木又從興賦役煩重民忡忡安危雖有大臣在葵藿豈無傾天衷詩成暗拭賈生淚忠戀但切張公恫君不見靖康大禍黨釁啓推原罪在於元豐 《송사(宋史)》……기록 '희풍(熙豐)'은 북송(北宋) 신종(神宗)의 연호인 희령(熙寧, 1068~1077)과 원풍(元豐, 1078~1085)을 말하며, '원우(元祐)'는 철종(哲宗)의 연호(1086~1093)다. 신종 때에는 신법(新法)을 제창한 왕안석(王安石)과 이를 반대한 사마광(司馬光)‧조변(趙抃)‧범진(范鎭)‧정호(程顥)‧구양수(歐陽脩)‧소철(蘇轍) 등이 서로 공격하였는데, 사마광을 위시한 구신(舊臣)은 모두 축출되고 신법을 시행한 신진(新進)이 대거 등용되었다. 신종이 죽자 철종의 초년에는 선인태후(宣仁太后)가 수렴청정(垂簾聽政)하면서 사마광 등의 구신을 새로 불러들였고, 철종이 장성한 뒤에는 왕안석의 일파인 채경(蔡京)‧여혜경(呂惠卿)‧장돈(章惇)‧채확(蔡確) 등이 서로 잇달아 권세를 부려 구신들을 축출하였다. 희풍~원우 연간의 기록은 《송사(宋史)》권14~18에 해당한다. 낙당(洛黨)과 촉당(蜀黨) 북송(北宋) 철종(哲宗) 원우(元祐) 연간에는 조정에 낙당(洛黨)‧삭당(朔黨)‧촉당(蜀黨)의 세 당이 있어 이를 '원우 3당'이라 하였다. 낙당은 낙양 사람인 정이(程頤)를 영수로 한 당이고, 촉당은 촉 지방 사람인 소식(蘇軾)을 영수로 하는 당이며, 삭당은 북쪽 사람인 유지(劉贄)를 영수로 하는 당이다. 이들은 서로 대립하였는데, 그 중 낙당과 촉당의 갈등이 특히 심하였다. 하중(河中)의 선생 정호(程顥)‧정이(程頤) 형제를 가리킨다. 이들이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들은 송대 성리학(性理學)을 개창한 인물들로 평가된다. 미옹(眉翁) 소식(蘇軾)을 가리킨다. 그가 미산(眉山)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대치하는 형세 원문은 '휼방(鷸蚌)'으로, 대립하는 두 세력이 잔뜩 버티고 맞서 겨루면서 조금도 양보하지 않는 형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큰 조개가 입을 벌리고 있을 적에 지나가던 황새가 쪼아 먹으려다가 조개가 입을 닫자 주둥이가 물렸는데, 계속 서로 버티다가 어부에게 모두 잡히고 말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戰國策 燕策》 호(胡)와……허락하고 중국 북쪽의 호(胡)와 남쪽의 월(越)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관계가 매우 소원함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당시 송나라 신하들이 저마다 두 당파에 속하여 대립하였던 상황을 이러한 비유를 통해 표현한 것이다. 취향이……달리하네 '음률'의 원문은 '치궁(徵宮)'으로, '치'와 '궁'은 모두 궁(宮)‧상(商)‧각(角)‧치(徵)‧우(羽)로 이루어진 오음(五音)에 속하는 음이다. 당시 송나라 신하들이 같은 조정에 있으면서도 당파에 따라 뜻을 달리하였음을 이와 같은 표현으로 비유한 것이다. 조개풀과 도꼬마리 원문은 '녹시(菉葹)'다. 모두 악취가 나는 나쁜 풀로, 흔히 참소를 잘하는 간사한 자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굴원(屈原)의 〈이소(離騷)〉에, "남가새, 조개풀, 도꼬마리가 집에 가득한데, 홀로 멀리하고 어울리지 않네.[薋菉葹以盈室兮 判獨離而不服]"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비굴하게 아첨하는 자 원문은 '노안비슬(奴顔婢膝)'이다. 노비와 같이 상대에게 비굴한 얼굴을 하고 무릎을 꿇는다는 말로, 아첨하는 모습을 형용한 것이다. 쌍정(雙旌)과……나와 '쌍정(雙旌)'은 지방관이 가지고 가는 한 쌍의 깃발이다. 당나라 때 절도사(節度使)에게 쌍정과 쌍절(雙節)을 지급하여, 정(旌)으로 포상하고 절(節)로 처벌하게 하였던 데서 유래하였다. 《新唐書 卷49 百官志》 '칠류(七旒)'는 술[旒]이 일곱이고 술마다 구슬이 7개씩 달린 면류관을 말한다.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져 지방관의 세력이 지나치게 비대해진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구명(九命)과……되네 '구명(九命)'은 주(周)나라 아홉 등급의 관직 체계 가운데 가장 상위 등급에 해당하는 것으로, 곧 상공(上公)을 가리킨다. 《周禮 大宗伯》 '삼석(三錫)'은 임금이 세 번 명을 내린다는 뜻으로, 총사령관으로 임명하는 것을 말한다. 《주역》 〈사괘(師卦) 구이(九二)〉에 "구이는 군대에서 중도(中道)를 얻어 길하고 허물이 없으니, 왕이 총애하는 명령을 세 번이나 내린다.[九二 在師 中 吉无咎 王三錫命]"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나라의 기강이 해이해진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천공(天工) 하늘이 백성을 다스리는 일로, 곧 나라의 정치를 말한다. 주공(周公)과 소공(召公)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아들로, 형인 무왕(武王)을 도와 폭군인 주왕(紂王)을 토벌하고 조카인 성왕(成王)을 도와 주나라의 기틀을 다졌다. 윤길보(尹吉甫)와 중산보(仲山甫) 주(周)나라 선왕(宣王) 때의 어진 신하들이다. 턱 속을 따르네 원문은 '수이중(隨頤中)'이다. '이(頤)'는 물건을 씹는 턱을 뜻하는 말로, '턱 속을 따른다'는 것은 곧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탐욕을 부리는 것을 의미한다. 《주역》 〈이괘(頤卦) 초구(初九)〉에, "자기의 신령스러운 거북을 놔둔 채 나를 보고서 턱을 우물거리니 흉하다.[舍爾靈龜 觀我 朶頤 凶]"라 하였다. 산림(山林) 학덕(學德)이 높은 은사(隱士)를 말한다. 하간(河間)에서……봄바람이요 하남(河南) 사람인 정호(程顥)에 대해 말한 것이다. '헛되이 늙어갔다'는 것은 그가 왕안석(王安石)과 뜻이 맞지 않아 자청하여 외관말직으로 물러나고 이후 학문에 잠심(潛心)한 일을 가리킨다. '자리 위의 봄바람'은 그의 온화한 기상을 묘사한 말이다. 주희(朱熹)의 《근사록(近思錄)》 권14에, "주공담이 여주에서 명도 선생을 뵈었다. 한 달을 머무르다 돌아가 사람들에게 '광정이 춘풍(春風) 속에 한 달을 앉아 있었다네.'라고 하였다.[朱公掞見明道於汝州 逾月而歸 語人曰 光庭在春風中坐了一月]"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낙중(洛中)에서……심의옹(深衣翁)이라네 낙양 사람인 사마광(司馬光)에 대해 말한 것이다. '오랫동안 움츠렸다'는 것은 그가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에 반대하여 새로 임명된 추밀부사(樞密副使)의 직책을 사양하고 낙양(洛陽)으로 물러나 독락원(獨樂園)을 짓고서 15년 동안 은거한 일을 가리킨다. 그가 은거할 때 《예기(禮記)》에 의거하여 심의(深衣)를 만들어 착용하였으므로 그를 '심의옹(深衣翁)'이라 지칭한 것이다. 백성은……동류이거늘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 내용 가운데 "천지의 사이에 가득한 것은 내가 형체로 삼았고 천지의 장수는 내가 성으로 삼았다. 백성은 나의 동포요, 만물은 나의 동류다.[天地之塞 吾其體 天地之帥 吾其性 民吾同胞 物吾與也]"라 한 대목이 보인다. 임금에게……않은가 원문의 '사총(四聰)'은 임금이 귀를 열어 사방 만백성의 소리를 듣는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그와 같이 귀를 기울이는 임금'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서경》 〈순전(舜典)〉에 순(舜) 임금이 즉위하고 나서, "사악에게 자문을 구하며 사방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아 사방의 눈으로 자신의 눈을 밝게 하고 사방의 귀로 자신의 귀를 통하게 하였다.[詢于四岳 闢四門 明四目 達四聰]"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요순(堯舜) 원문은 '화훈(華勛)'으로, '화훈(華勳)'이라고도 한다. 순(舜) 임금과 요(堯) 임금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다. 《서경》 〈요전(堯典)〉에 "옛날 제요(帝堯)를 상고해 보니, 방훈(放勳)이라 하였다."라 하였고 또 〈순전(舜典)〉에 "옛날 제순(帝舜)을 상고해 보니, 중화(重華)라 하였다."라 하였다. 삼황오제(三皇五帝) '삼황'은 복희(伏羲)‧신농(神農)‧헌원(軒轅)을 가리키며, '오제'는 소호(少昊)‧전욱(顓頊)‧제곡(帝嚳)‧요(堯)‧순(舜)으로, 태평성대를 이룩한 상고 시대의 제왕을 이른다. 고요(皐陶)와……설(契) 순(舜) 임금 때의 어진 신하들이다. 고요(皐陶)는 법의 집행을 맡은 사(士)였고, 기(夔)는 교육과 음악을 전담한 전악(典樂)이었으며, 후직(后稷)은 농업을 담당하였고, 설(契)은 민정 장관이라 할 사도(司徒)의 직책을 관장하였다. 팔원(八元)과……굉요(閎夭) '팔원(八元)'은 고신씨(高辛氏)의 재자(才子) 8명이고, '팔개(八凱)'는 고양씨(高陽氏)의 재자 8명을 말하는데, 요(堯) 임금 때 순(舜) 임금이 이들을 천거하여 잘 다스렸다. 팔원은 백분(伯奮)‧중감(仲堪)‧숙헌(叔獻)‧계중(季仲)‧백호(伯虎)‧중웅(仲熊)‧숙표(叔豹)‧계리(季貍)이고, 팔개는 창서(蒼舒)‧퇴애(隤敱)‧도인(檮戭)‧대림(大臨)‧방강(尨降)‧정견(庭堅)‧중용(仲容)‧숙달(叔達)이다. 《春秋左氏傳 文公18年》 '태전(太顚)'과 '굉요(閎夭)'는 주(周)나라 무왕(武王) 때의 신하로, 무왕을 보필하던 열 사람의 훌륭한 신하인 '십란(十亂)'에 속하는 인물들이다. 《書經 泰誓》 정사를 논의하니 원문은 '도유우불(都兪吁咈)'이다. 군주와 신하가 서로 자유롭게 정사를 논의하고 의견을 교환한다는 뜻이다. '도(都)'와 '유(兪)'는 찬성의 의미, '우(吁)'와 '불(咈)'은 반대의 의미를 표하는 감탄사이다. 《서경(書經)》 〈익직(益稷)〉에 "우(禹)가 말하기를 '아, 훌륭합니다. 황제이시여, 지위에 있음을 삼가소서.' 하니, 제순(帝舜)이 '아, 너의 말이 옳다.' 하였다.[禹曰 都 帝 愼乃在位 帝曰 兪]"라 하고, 《서경》 〈요전(堯典)〉에 "모두가 '아, 곤(鯀)을 추천합니다.' 하니, 제요(帝堯)가 '아, 너희 말이 옳지 않다.' 하였다.[僉曰 於 鯀哉 帝曰 吁 咈哉]"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어찌하여……않는가 '바른 길'은 곧 의(義)를 가리킨다. 이 구절은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인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고, 의는 사람의 바른 길이다. 편안한 집을 비워두고서 거처하지 않으며, 바른 길을 버려두고서 가지 않으니, 슬프다![仁 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 曠安宅而弗居 舍正路而不由 哀哉]"라 한 데서 취해 온 것이다. 걷기 어려워하고 원문은 '군보(窘步)'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 조비(曹丕)의 시 〈맥상상(陌上桑)〉에, "가시나무를 입고 천맥을 구하여 발을 조심조심 내딛으며 홀로 어렵게 걷는다.[被荊棘 求阡陌 側足獨窘步]"라 하였다. 장돈(章惇)과 채경(蔡京) 송나라 철종(哲宗) 때의 간신으로,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복구하고 동문관옥(同文館獄)을 조작하여 유현(儒賢)인 사마광(司馬光)‧유지(劉摯)‧양도(梁燾)‧여대방(呂大防) 등을 축출한 인물들이다. 《宋史 卷200 刑法2》 해바라기 원문은 '규곽(葵藿)'으로, 해바라기를 가리킨다. 해바라기가 해를 향하는 것처럼 임금을 향해 정성을 다하는 신하의 마음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삼국지(三國志)》 권19 〈위지(魏志) 진사왕조식전(陳思王曹植傳)》에 "해바라기 잎은 태양을 향하니, 태양이 비록 그쪽으로 방향을 돌려 비춰 주지 않더라도 그럼에도 태양을 향하는 것이 해바라기의 정성이다.[若葵藿之傾葉 太陽雖不爲之回光 然向之者誠也]"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가생(賈生)의 눈물 '가생(賈生)'은 한(漢)나라의 가의(賈誼)를 가리킨다. 시문(詩文)에 능하여 20여 세의 젊은 나이로 박사가 되고 문제(文帝)를 보좌하여 여러 가지 개혁 정치를 펼쳤으나, 강후(絳侯) 주발(周勃)과 영음후(潁陰侯) 관영(灌嬰) 등의 모함을 받아 조정에서 쫓겨났다. 그 뒤 다시 양 회왕(梁懷王)의 태부(太傅)가 되었는데, 양 회왕이 낙마(落馬)하여 죽자 가의 역시 상심하여 겨우 33세의 나이로 죽었다. 《漢書 卷48 賈誼傳》 '가생의 눈물'은 한 문제(漢文帝) 때 한나라가 선우족(單于族)에게 모욕을 당하고 제후왕(諸侯王)이 반역을 꾀하는 등 시국이 위태롭고 혼란하자, 가의가 우국충정으로 시국을 바로잡은 치안책(治安策)을 한 문제에게 올렸는데, 그 첫머리에 "신이 삼가 사세를 살펴보건대, 통곡할 만한 것이 한 가지요, 눈물을 흘릴 만한 것이 두 가지요, 장탄식할 만한 것이 여섯 가지입니다.[臣竊惟事勢 可爲痛哭者一 可爲流涕者二 可爲長太息者六]"라 한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48 賈誼傳》 《古文辭類纂 奏議類 陳政事疏》 장공(張公)의 애통함 '장공(張公)'은 당나라 장구령(張九齡)을 가리킨다. 장구령은 현종 시기 개원의치를 이룬 인물이지만, 이임보의 이간질로 인해 한직으로 쫓겨났다. 정강(靖康)의 큰 화 '정강(靖康)'은 송나라 흠종(欽宗)의 연호다. '정강의 큰 화'란 흠종 2년(1127)에 금나라 태종(太宗)에 의해 송나라 수도 변경(汴京)이 함락되고 휘종(徽宗)과 흠종 부자를 비롯하여 많은 황족(皇族)과 정신(廷臣)이 사로잡혀 간 일을 말한다. 이후 휘종의 아들 고종(高宗)이 남경(南京)에서 즉위하였는데 이로부터 남송(南宋)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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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탄(七夕歎)33) 七夕歎 맑은 하늘과 무거운 땅에 각각 고하(高下)를 정하니황도(黃道)와 적도(赤道)34) 두 길 일월을 나누었네궁융(穹隆)한 하늘35) 끝없이 광대(廣大)하여 빛나고 드넓으니법상(法像)의 존엄(尊嚴)함을 어찌 함부로 할 수 있으리오별자리 선명하고 위수(位數)가 밝으니하루에 삼백 육십 도를 두루 운행하네어찌하여 인간 세상은 음란하고 공교한 것을 좋아하는가하늘을 더럽히고 기강을 업신여겨 편벽된 말36)이 횡행하네돈을 빌려 예를 치렀다는 말은 세시기(歲時記)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요37)오작교(烏鵲橋)에 관한 《회남자(淮南子)》의 이야기 더욱 허탄하네38)문단(文壇)의 몇몇 어린 아이들비흥(比興)39)을 높이 노래하여 천 년 동안 흘러왔네객성(客星)의 허황된 말 한(漢)나라 사신을 그르치고40)〈명하편(明河篇)〉의 비루한 작품 주(周)나라 기강을 어지럽혔네41)인간 세상에 7월 7일이 몇 해나 있었나하늘 위의 밝은 별 부끄러움을 머금고 있네누가 은하수 수만 곡(斛)의 물을 부어천년의 황당한 설을 말끔히 씻어 줄까바라건대 도공(陶公)의 크고 붉은 번개를 빌려42)고금의 교묘한 혀43)들을 베어 버렸으면밝은 빛 밤마다 구천(九天)에 떠오르니부족하거나 빠진 곳 없이 사해(四海)를 환히 비추어 주네 天淸地重奠高下黃赤二道分日月穹隆磅礡赫弘敞法像尊嚴安可褻星躔的歷位數明一日周行三百六如何人世喜淫巧瀆天慢紀行詖說錢禮作俑歲時記鵲橋更誕淮南子詞壇幾箇小兒輩比興高唱流千祀客星荒辭誤漢使明河陋作淫周紀人間幾歲七月七天上明星含愧恥誰注銀河水萬斛洗盡千載荒唐說願借陶公大赤電爲斬今古如簧舌明輝夜夜九天上照臨四海無欠缺 칠석탄(七夕歎) '칠석(七夕)'은 7월 7일 밤을 말한다. 해마다 이날이면 견우성(牽牛星)과 직녀성(織女星)이 오작교(烏鵲橋)에서 서로 한 번씩 만난다는 전설이 있다. 황도(黃道)와 적도(赤道) '황도(黃道)'는 지구에서 보이는 하늘에서 해가 한 해 동안 지나는 길이다. '적도(赤道)'는 천체를 네모진 지구를 덮고 있는 구체로 상정했을 때 지구 표면의 거리가 남북으로 서로 같아지는 지점의 원주선(圓周線)을 가리킨다. 《서경》 〈홍범(洪範)〉의 "해와 달의 운행에는 겨울이 있고 여름이 있다.[日月之行, 則有冬有夏]"라 하였고, 이에 대한 채침(蔡沈)의 주에서 "해는 중도가 있고 달은 아홉 가지 길이 있다. 중도는 곧 황도이다.……아홉 길은 흑도 둘, 적도 둘, 백도 둘, 청도 둘에 황도까지 합하여 아홉이다."라 하였다. 궁융(穹隆)한 하늘 '궁융(穹隆)'은 중앙이 높고 주위가 차차 낮아지는 형상으로, 곧 하늘의 모습을 형용하는 말이다. 편벽된 말 원문은 '피설(詖說)'이다.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서 공손추가 "무엇을 지언(知言)이라 합니까?"라 묻자, 맹자가 "편벽된 말에서 그 가려진 바를 알고, 방탕한 말에서 빠져 있는 바를 알고, 부정한 말에서 괴리된 바를 알고, 도피하는 말에서 논리가 궁함을 알 수 있다.[詖辭 知其所蔽 淫辭 知其所陷 邪辭 知其所離 遁辭 知其所窮]"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돈을……것이요 '세시기(歲時記)'는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를 가리킨다. 《형초세시기》에, "견우가 직녀를 아내로 맞이할 때 천제에게 이만전을 빌려 예를 치렀다. 오래도록 갚지 못하여 쫓겨나 영실 안에 있게 되었다.[牽牛娶織女 借天帝二萬錢下禮 久不還 被驅在營室中]"라 한 내용이 보인다. '처음 만들어졌다'는 것의 원문은 '작용(作俑)'이다. 고대 중국에서 나무인형인 용(俑)을 만들어 사람을 장사 지낼 때 함께 묻었는데 이것이 후세에 순장(殉葬) 하는 계기가 되었으므로, 전하여 좋지 못한 선례(先例)를 처음 만드는 것을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 "처음 용을 만든 자는 그 후손이 없을 것이다.[始作俑者 其無後乎]"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오작교(烏鵲橋)에……허탄하네 7월 칠석날 밤에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수를 메워 다리를 만들어서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1년에 한 번 그 다리를 건너 만나게 해 준다는 전설이 《회남자(淮南子)》에 실려 있다고 각 문헌에 나오는데, 현존 《회남자》에는 이 내용이 빠져서 보이지 않는다. 비흥(比興) '비(比)'와 '흥(興)'은 모두 시에서의 수사법을 가리키는 말이다. 비는 비유이고, 흥은 자신의 감정을 말하기 앞서 그와 유사한 속성을 가진 어떤 대상물을 먼저 읊는 것이다. 여기서는 시(詩)에 대한 범칭으로 사용되었다. 객성(客星)의……그르치고 '한(漢)나라 사신'은 장건(張騫)을 가리킨다. 한 무제(漢武帝) 때 장건(張騫)이 사명(使命)을 받들고 서역(西域)에 나가던 길에 황하의 근원을 찾아 한없이 거슬러 올라갔는데, 한 성시(城市)에 이르러 보니 한 여인은 방 안에서 베를 짜고 있었고 한 남자는 소를 끌고 은하(銀河)의 물을 먹이고 있었다. 그들에게 "여기가 어디인가?"라고 묻자, 그 여인이 지기석(支機石) 하나를 장건에게 주면서 "성도(成都)의 엄군평(嚴君平)에게 가서 물어보라." 하였다. 장건이 돌아와서 엄군평을 찾아가 지기석을 보이자, 엄군평이 말하기를 "이것은 직녀의 지기석이다. 아무 연월일에 객성(客星)이 견우성과 직녀성을 범했는데, 지금 헤아려보니 그때가 바로 이 사람이 은하에 당도한 때였도다."라 하였다. 《傳物志》 명하편(明河篇)의……어지럽혔네 '명하편(明河篇)'은 당나라 송지문(宋之問)이 지은 은하수를 주제로 한 노래이고, '주(周)나라'는 측천무후(則天武后)가 당나라를 없애고 세운 나라를 말한다. 당나라 고종(高宗) 때 재상의 권한을 억제하고자 재주 있는 문사(文士)들을 불러서 금중(禁中)의 의논에 참가시키고 조서(詔書)를 초하게 하였는데, 이를 북문학사(北門學士)라 불렀다. 송지문이 측천무후에게 북문학사로 임명해 주기를 청하였으나 무후가 들어주지 않자 〈명하편〉을 지어 자신의 뜻을 보였는데, 이는 측천무후를 은하수에 비유하여 스스로 총애 받지 못함을 서글퍼하는 내용이었다. 그 마지막 부분에 "은하수를 바라만 볼 뿐 가까이하지 못하니, 뗏목 타고 나루터를 한 번 물어보려네. 직녀의 베틀 밑에 고였던 돌 가져다가, 성도의 점치는 이를 찾아가 보리라.[明河可望不可親 願得乘槎一問津 更將織女支機石 還訪成都賣卜人]"라 하였다. 바라건대……빌려 '도공(陶公)'은 도안공(陶安公)을 가리킨다. 도안공은 육안(六安)이라는 지역의 대장장이였는데, 주작(朱雀)이 가마에 내려앉아 말하기를 "7월 7일에 적룡을 보내 너를 맞이할 것이다."라 하였다. 과연 그때가 되자 적룡이 내려와 도안공을 태우고 하늘로 올라갔다 한다고 한다. 《列仙傳 卷下 陶安公》 교묘한 혀 원문은 '여황설(如簧舌)'이다. '황(簧)'은 관악기의 소리를 내게 하는 떨림판인데, 소인(小人)들이 교묘하게 꾸며내는 참언(讒言)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시경》 〈소아(小雅) 교언(巧言)〉에, "황(簧)과 같은 공교로운 말은 얼굴이 두껍기 때문이다.[巧言如簧 顔之厚矣]"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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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로난(行路難)44) 行路難 예문(禮門)과 인택(仁宅)45) 오래도록 무성한 풀에 가려 있고바른 길46) 한 줄기엔 찬 안개 생겨나네서로 다투며 달도(達道)를 촉도(蜀道)로 변화시키는데47)구의산(九疑山)과 삼위산(三危山)48)에 마음이 단정해지네양장(羊腸)과 우판(牛坂)49)이 한 번 손을 뒤집으니밝은 해 솟은 평평한 육지에 거센 물결이 생겨나네옛날 헌황(軒皇)이 배와 수레를 만든 때로부터50)길이 천하에 통하여 평평하고도 넓었네백성들의 바위를 깎아내고 개척하여 평탄한 길을 만드니임금의 배가 건너기에 편리하고51) 거센 물결을 되돌렸네순(舜) 임금이 큰 숲에 들어가자 뇌우가 맑게 개고52)우(禹) 임금이 산천을 다스리자 홍수가 안정되었네53)요(堯) 임금의 하늘 이미 저물고 걸(桀)의 해 사라지니54)성난 산과 탐욕스런 골짜기가 험준함을 다투네정전(情田)이 백 보(步)의 고개에서 갑자기 일어나니55)태항산(太行山)과 무협(巫峽)56)엔 겹겹의 산57)이 늘어서 있네요진(要津)의 거센 물결 환해(宦海)와 만나니58)지수(智水)와 영연(靈淵)59)이 마르려함을 근심하네용양(龍驤)으로도 천 곡(斛)의 물을 오히려 건너기 어렵건만60)뗏목 띄워 바다로 나가는 일 탄식할 만하네61)은(殷)나라 수레 무교구(舞交衢)에 의지할 수 없으니62)좋은 말이 귀 늘어뜨리고 두 눈썹을 찌푸리네63)길 다하였으니 어느 곳에서 나루를 물을 수 있을까64)양주(楊朱)의 눈물65) 모두 흘려 부질없이 아롱진 흔적을 남기네어찌하면 과아씨(夸娥氏)의 두 역사66)를 얻어가파른 바위를 깎아내고 굴곡진 곳을 평평하게 만들며서산(西山)의 목석으로 정위(精衛)의 힘을 들여67)염여(灧澦)를 육지로 만들어 위태로운 여울이 없게 하여68)왕량(王良)처럼 채찍 끼고서 여섯 고삐를 잡고69)축수곡(逐水曲)과 축금좌(逐禽左)로 화란(和鑾)을 조화롭게 하며70)길 가운데로 가면서 단정하게 아름다운 이를 위하여 인도하여의로운 길71)을 편하게 걸으며 의관을 밝힐 수 있을까그렇지 않으면 돌아와 수운(水雲) 사이에 누워동해(東海)에서 한가로이 어부의 낚싯대 드리우고서72)도리어 시와 술로 신선술 배우며 늙어감을 비웃으며평생 행로난(行路難)을 괴로이 읊조릴까 禮門仁宅久榛蕪正路一脉煙生寒爭將達道變蜀道九疑三危方寸端羊腸牛坂一翻手白日平陸生風湍昔自軒皇造舟車道通天下平而寬刊開民巖作坦塗君舟利涉回奔瀾重華大麓雷雨霽夏禹山川洚水安堯天已暮桀日喪忿山慾壑爭巑岏情田突起百步坂太行巫峽排層巒要津氣浪接宦海智水靈淵愁欲乾龍驤千斛尙難濟浮海乘桴嗟可歎殷輅無賴舞交衢嚙膝垂耳雙眉攢塗窮何處可問津泣盡朱淚空斑汍安得夸娥兩力士剗却巉巖平屈蟠西山木石費精衛灧澦成陸無危灘王良挾策六轡組水曲禽左調和鑾中行端爲美人導平步義路明衣冠不然歸臥水雲間東海閒垂漁父竿却笑詩酒老調仙苦吟平生行路難 행로난(行路難) 악부(樂府)의 잡곡 가사(雜曲歌辭) 이름으로, 대부분 세상살이의 어려움과 이별의 정을 담고 있다. 원래는 민간의 가요였는데, 문인들이 이 곡에 비겨 시를 지음으로 인하여 악부에 수록되었다. 그중에 남조(南朝) 송(宋)나라 포조(鮑照)의 〈의행로난(擬行路難)〉 19수와 당나라 이백(李白)의 〈행로난〉 3수가 특히 유명하다. 예문(禮門)과 인택(仁宅) '예(禮)'와 '인(仁)'을 각각 문과 집에 비유한 것이다.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무릇 의는 길이고 예는 문이다. 오직 문자만이 이 길을 걸어가고 이 문으로 드나들 수 있다.[夫義 路也 禮 門也 惟君子能由是路 出入是門也]"라 하고,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인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고, 의는 사람의 바른 길이다. 편안한 집을 비워 두고 거처하지 않으며, 바른 길을 버려두고 가지 않으니, 슬프다![仁人之安宅也 義人之正路也 曠安宅而弗居 舍正路而不由 哀哉]"라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바른 길 곧 '의(義)'를 가리킨다.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인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고, 의는 사람의 바른 길이다. 편안한 집을 비워두고서 거처하지 않으며, 바른 길을 버려두고서 가지 않으니, 슬프다![仁 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 曠安宅而弗居 舍正路而不由 哀哉]"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서로……변화시키는데 '달도(達道)'는 천하 사람 모두가 행해야 할 공통된 도리이고, '촉도(蜀道)'는 한중(漢中)에서 촉(蜀) 지방으로 통하는 험준한 잔도를 말한다. 구의산(九疑山)과 삼위산(三危山) '구의산(九疑山)'는 중국 호남(湖南) 영원(寧遠) 서남쪽에 있는 산으로, 순(舜) 임금을 장사 지낸 곳이다. '삼위산(三危山)'는 중국 서쪽 변방에 있는 산으로, 순 임금이 삼묘(三苗)를 귀양보낸 곳이다. 양장(羊腸)과 우판(牛坂) '양장(羊腸)'은 태항산(太行山)에 있는 판도(坂道)의 이름으로, 길이 양의 창자처럼 구불구불하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우판(牛坂)'에 대해서는 미상이다. 옛날……때로부터 '헌황(軒皇)'은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를 가리킨다. 헌원씨는 처음으로 지역을 분할하고 시장을 설치하였으며 배와 수레를 만들었다고 한다. 건너기에 편리하고 원문은 '이섭(利涉)'이다. 큰 내를 건너는 것이 순탄하고 이롭다는 뜻으로, 세상의 어려움을 잘 극복하는 것에 대한 비유로도 흔히 사용된다. 《주역》 〈수괘(需卦)〉에, "수는 성신(誠信)이 있어 광명하여 형통하고 정하여 길하니, 큰 내를 건넘이 이롭다.[需 有孚 光亨貞吉 利涉大川]"라 하였다. 순(舜) 임금이……개고 원문의 '중화(重華)'는 곧 순(舜) 임금을 가리키는 말로, 〈순전(舜典)〉에 "옛날 제였던 순을 상고하건대, '거듭 빛남이 제요에게 합치되었다.[重華協于帝]'"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요(堯) 임금이 순(舜)을 시험하기 위하여 큰 숲 속으로 몰아넣은 적이 있었는데[納于大麓], 그때 사나운 바람이 불고 비가 쏟아지며 천둥 벼락이 쳤는데도 방향을 잃지 않았다고 하는 고사가 전한다. 《書經 舜典》 우(禹) 임금이……안정되었네 우(禹) 임금이 홍수를 다스린 일을 말한다. 요(堯) 임금 때 9년 동안 장마가 계속되자 우에게 홍수를 다스리도록 명하였는데, 우가 자연적인 형세에 따라 치산치수(治山治水)를 하여 홍수를 막고 백성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하였다. 《書經 禹貢》 《孟子 滕文公上》 요(堯) 임금의……사라지니 '요(堯) 임금의 하늘'은 요(堯) 임금의 천하, 곧 태평성대를 뜻한다. 《논어》 〈태백(泰伯)〉에, "위대하도다. 요의 임금노릇 하심이여. 높고 크도다. 오직 저 하늘이 가장 크거늘 오직 요 임금만이 하늘과 같으셨으니, 그 공덕이 넓고 넓어서 백성들이 뭐라 형용하지 못하는구나.[大哉 堯之爲君也 巍巍乎 唯天爲大 唯堯則之 蕩蕩乎 民無能名焉]"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또 '걸(桀)'은 하(夏)나라의 마지막 임금이다. 그는 매우 무도하였는데, 그가 일찍이 "내가 천하를 소유한 것은 마치 하늘에 해가 있는 것과 같으니, 저 해가 없어져야 내가 비로소 망한다."라 하였으므로, 당시에 그의 학정(虐政)을 원망하던 백성들이 "이 해는 어느 때나 없어질까? 내 너와 함께 없어져 버리자.[時日曷喪 予及女偕亡]"라 하였다. 《書經 湯誓》 정전(情田)이……일어나니 '정전(情田)'은 곧 마음을 뜻한다. 《예기》 〈예운(禮運)〉에, "인정이라는 것은 성인의 밭이다. 예를 닦아 경작하고 의를 진설하여 파종하며, 강학하여 김을 매고 인을 근본하여 모으며, 즐거움을 전파하여 안정시킨다.[人情者聖王之田也 修禮以耕之 陳義以種之 講學以耨之 本仁以聚之 播樂以安之]"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백 보(步)의 고개'는 곧 청니판(靑泥坂)으로, 감숙성(甘肅省)에 있는 험준한 고개다. 높은 절벽을 끼고 비와 구름이 많아 사람들이 진흙 때문에 애를 먹는다고 한다. 이백(李白)의 〈촉도난(蜀道難)〉에, "청니판은 어찌 그리도 구불구불한가. 백 보에 아홉 번을 꺾이면서 바위 뿌리 감도네.[靑泥何盤盤 百步九折縈巖巒]"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즉 이 구절은 위태로운 지경을 만나 마음이 불안정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태항산(太行山)과 무협(巫峽) '태항산(太行山)'은 중국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산으로 험준하기로 유명하며, '무협(巫峽)'은 사천성(四川省) 삼협(三峽)의 하나로 물살이 세기로 유명하다. 당나라 백거이(白居易)의 〈태항로(太行路)〉에, "태항산 산길이 험하여 수레를 부순다고 하지만 님의 마음에 견주면 이는 평탄한 길이고, 무협의 강물이 거칠어 배를 뒤엎는다고 하지만 님의 마음에 견주면 이는 잔잔한 물이라오.[太行之路能摧車 若比君心是坦途 巫峽之水能覆舟 若比君心是安流]"라 한 대목이 보인다. 겹겹의 산 원문은 '층만(層蠻)'인데, 문맥을 살펴 '만(蠻)'을 '만(巒)'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요진(要津)의……만나니 '요진(要津)'은 중요한 나루, 곧 요직을 말한다. '환해(宦海)'는 벼슬길의 험난함을 바다의 풍파에 비유한 말이다. 지수(智水)와 영연(靈淵) '지수(智水)'는 《논어》 〈옹야(雍也)〉에 "인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자는 물을 좋아한다.[仁者樂山 知者樂水]"라 한 데서 유래한 말로, 지혜로운 이가 즐기는 맑은 물을 뜻한다. '영연(靈淵)'은 한(漢)나라 양웅(揚雄)의 《태현(太玄)》 〈거(去)〉에, "초일이니, 이 영연(靈淵)을 떠나고 저 마른 동산을 버린다.[初一 去此靈淵 舍彼枯園]"라 한 데서 유래한 말로, 깊은 연못을 뜻한다. 용양(龍驤)으로도……어렵건만 '용양(龍驤)은 진(晉)나라 때 용양장군(龍驤將軍) 왕준(王濬)이 오(吳)나라를 정벌하기 위하여 만든 큰 배로, 군량(軍糧) 만 곡을 실을 수 있다 하여 만곡선(萬斛船)이라고도 불린다. 송나라 소식(蘇軾)의 〈대풍유금산양일(大風留金山兩日)〉 시에, "만곡이나 되는 용양도 지나가지 못하고, 일엽편주 어선은 바람 따라 춤추었지.[龍驤萬斛不敢過 漁舟一葉從掀舞]"라 한 대목이 보인다. 뗏목……만하네 《논어》 〈공야장(公冶長)〉에서 공자(孔子)가 천하의 어지러움을 탄식하며,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나 나갈까 보다.[道不行 乘桴浮于海]"라 한 대목에서 취한 구절이다. 은(殷)나라……없으니 원문의 '노(輅)'는 임금이 타는 수레로, '은로(殷輅)'는 곧 은나라의 수레를 가리킨다. 《논어》 〈위령공(衛靈公)〉에, 안연(顔淵)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을 묻자 공자가 "하나라의 철을 행하고 은나라의 수레를 타며 주나라의 면류관을 쓴다.[行夏之時 乘殷之輅 服周之冕]"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또 '무교구(舞交衢)'는 수레를 모는 다섯 가지 방법인 오어(五御) 중 하나로, 도로를 통과하면서 자유자재로 달려가는 것을 말한다. 훌륭한 수레를 제대로 몰 사람이나 기술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 좋은……찌푸리네 원문의 '교슬(嚙膝)'은 좋은 말의 이름이다. '귀를 늘어뜨린다'는 것은 가의(賈誼)의 〈조굴원부(吊屈原賦)〉에, "천리마가 두 귀를 늘어뜨리고 소금 수레를 끌도다.[驥垂兩耳兮服鹽車]"라 한 데서 유래한 말로, 어진 이가 때를 만나지 못하였음을 비유하는 말로 자주 사용된다. 길……있을까 '길이 다하였다'는 것은 진(晉)나라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과 관련된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완적은 사람됨이 활달하여 일반적인 격식에 구애받지 않았는데, 마음속에 답답한 일이 있으면 때때로 혼자서 수레를 타고 마음 내키는 대로 가다가 길이 막혀 갈 수 없는 곳에 이르러서는 한바탕 크게 통곡하고서 돌아왔다고 한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또 '나루를 묻는다'는 것은 앞길을 물어본다는 뜻으로, 《논어》 〈미자(微子)〉에서 공자가 자로(子路)를 시켜 은자인 장저(長沮)와 걸닉(桀溺)에게 나루터를 묻게 한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양주(楊朱)의 눈물 '양주(楊朱)'는 전국 시대의 사상가이다. 《순자(荀子)》 〈왕패(王覇)〉에, "양주가 네거리 길에서 통곡을 하면서 말하기를 '반걸음이라도 길을 잘못 가면 깨닫고 난 뒤에는 이미 천 리를 잘못 가 있다.'면서 슬프게 곡을 하였다."라는 대목이 보인다. 기구한 세상의 도에 상심하여 흘리는 눈물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과아씨(夸娥氏)의 두 역사 '과아씨(夸娥氏)'는 전설에 나오는 신의 이름이다. 북산(北山)의 우공(愚公)이 앞에 산이 가로막혀 통행이 불편하였으므로 가족들과 함께 산을 옮기려고 매일 흙더미를 덜어 내었는데, 이에 감동한 천제(天帝)가 의 두 아들을 내려 보내 그 산을 등에 업고 다른 곳에 옮기게 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列子 湯問》 서산(西山)의……들여 '정위(精衛)'는 중국 고대 신화에 나오는 새 이름이다.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의 막내딸이 동해(東海)에 놀러나갔다가 빠져 죽은 뒤에 이 새가 되었는데, 그 원한을 풀기 위해 늘 서산(西山)의 나무와 돌을 물어다가 동해를 메우려 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山海經 北山經》 염여(灧澦)가……하여 '염여(灧澦)'는 곧 '염여퇴(灩澦堆)'로, 배를 타고 무사히 건너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험하다는 장강(長江) 구당협(瞿塘峽)의 여울이다. 왕량(王良)처럼……잡고 '왕량(王良)'은 춘추 시대 때 말을 잘 몰기로 이름난 사람이다. '여섯 고삐'는 수레를 끄는 네 마리 말의 고삐다. 《시경》 〈소아(小雅) 황황자화(皇皇者華)〉에, "내 말이 얼룩말이니, 여섯 고삐가 실처럼 고르도다.[我馬維騏 六轡如絲]"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축수곡(逐水曲)과……하며 '축수곡(逐水曲)과 축금좌(逐禽左)'는 수레를 모는 다섯 가지 방법인 오어(五御)에 해당하는 것들이다. '축수곡'은 골짜기의 절벽을 따라 수레를 몰되 물에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고, '축금좌'는 사냥을 할 때 짐승을 쫓으면서 왼쪽에서 활을 쏘아 잡는 것을 말한다. '화(和)'와 '난(鑾)'은 모두 임금의 수레에 다는 방울이다. 《시경》 〈육소(蓼蕭)〉에, "화란 소리 조화로우니 만복이 함께하는 바로다.[和鸞雝雝 萬福攸同]"라 한 대목이 보인다. 의로운 길 곧 의(義)를 가리킨다. 동해(東海)에서……드리우네 이는 강태공(姜太公)의 고사를 참고한 것이다. 주 문왕이 서백(西伯)으로 있을 때, 강태공은 동해 가에 거처하며 낚시질로 곤궁한 노년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주 문왕이 꿈에서 자신을 제왕이 되도록 도울 재상을 얻으리라는 점괘를 얻고서, 위수(渭水)의 북쪽에서 여상을 만나 함께 수레를 타고 돌아와 태사(太師)로 등용하였다. 《史略 卷1 周武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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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을 보며【때는 경인년(1650, 27세) 9월 보름날 밤이었다.】 觀月出【時庚寅九月十五夜】 경인년 9월 보름날 밤옥우(玉宇)73)를 깨끗이 쓸어 잔 구름 다 사라졌네하늘의 끝 높고 드넓으며 지축(地軸) 고요하니흰 이슬이 허공 가로지르며 나무 끝을 나네은거하는 이 이날 밤 맑은 정신이 갑절이나 더하니티끌 한 점 일지 않고 섬돌과 당우(堂宇)는 탁 트여 있네도연명(陶淵明)의 시 한 곡조 상쾌하게 읊으며 지나니옥호(玉壺)의 맑은 얼음74)에 가슴 속이 깨끗해지네한가로이 대나무 아래 오솔길을 걸어 나와동쪽 하늘 향해 서서 달 떠오르는 모습 바라보네천 장(丈)의 흰 비단 푸른 하늘을 쏘니떠오른 은색 바퀴 빛이 깊이 들어오네은하수 그림자 거두고 북두 사라지니만 리의 산천에 옥이 굴을 만드네75)수면에 생긴 흰 빛 맑기가 거울과 같고우뚝한 산76)의 다듬은 옥 빛깔이 눈처럼 희네십 리의 긴 교외에 고운 모래 펼쳐지고천 개의 먼 봉우리 옥가루를 입은 듯너울거리는 뜨락의 그림자 대나무 가지 수척하고곱게 젖은 섬돌의 향기 난초의 소식 알리네숲 성글어 잠든 새에게 달빛 새어들고다시 그윽한 창 향해 빛이 방으로 들어오네천삼(天三)과 지사(地四) 하나의 경관 속에 있으니77)나의 마음78)을 비추는 것도 마찬가지라오저 밝음과 이 밝음 본래 두 가지가 아니니위로도 통하고 아래로도 통하여79) 분별함이 없네삼재(三才)의 한 이치80) 끝없이 아득하니지극히 오묘한 천기(天機) 누구와 함께 말을 할까나직이 읊조리며 다시 대나무 창가에 기대니옥계(玉溪)에 구름 생겨나 한 조각 가로놓여 있네 庚寅九月十五夜玉宇淨掃纖雲滅乾端軒豁地軸靜白露橫空飛木末幽人此夜倍淸神一塵不起階宇豁陶詩一闋快詠過玉壺淸冰胷裏潔悠然步出竹下逕立向東天看月出素綃千丈射碧天輾上銀輪光透徹長河斂影北斗沒萬里山川瓊作窟水面生白淡似鏡孱顔鍊玉光疑雪長郊十里鋪瓊沙遠峀千巖披玉屑婆娑庭影竹枝瘦艶浥階香蘭聞發林踈斜暎宿鳥眠更向幽窓光入室天三地四一色中照我靈臺同一轍彼明此明本非二徹上徹下無分別三才一理浩渺邊至妙天機誰與說沉吟還倚竹窓邊玉溪雲生橫一抹 옥우(玉宇) 천제(天帝)나 신선(神仙)이 사는 곳으로 옥으로 장식한 궁전인데, 하늘을 가리킨다. 옥호(玉壺)의 맑은 얼음 옥병에 담긴 얼음이라는 뜻이다. 남조(南朝) 송나라 포조(鮑照)의 〈백두음(白頭吟)〉에 "충직하기로는 붉은색 밧줄이요, 청정하기로는 옥병 속의 얼음이네.[直如朱絲繩 淸如玉壺冰]"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또 두보(杜甫)의 〈입주행증서산검찰사두시어(入奏行贈西山檢察使竇侍御)〉에서는 두 시어사(竇侍御史)의 인품을 일러 "빛나기는 마치 만학(萬壑)에서 나온 한 조각 맑은 얼음을 한나라 영풍관 한로관의 옥병에 담아둔 것 같네.[炯如一段淸氷出萬壑 置在迎風寒露之玉壺]"라 하였다. 옥이 굴을 만드네 달빛 아래 경치가 백옥처럼 눈부시게 펼쳐져 있는 것을 말한다. 참고로 송나라 마존(馬存)의 시 〈요월정(邀月亭)〉에, "하늘의 바람 뜬구름을 깨끗이 쓸어 없애니, 천 바위 만 골짝이 경요의 굴이로다.[天風洒掃浮雲沒 千巖萬壑瓊瑤窟]"라 하였다. 우뚝한 산 원문은 '잔안(孱顔)'이다. 큰 산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말한다. 천삼(天三)과……있으니 《주역》의 수리(數理)에 의하면, 하늘은 홀수이고 땅은 짝수이다. 주희(朱熹)는 오행(五行) 생성의 이치를 말하면서 "하늘은 일(一)로서 수(水)를 낳고, 땅은 이(二)로서 화(火)를 낳고, 하늘은 삼(三)으로서 목(木)을 낳고, 땅은 사(四)로서 금(金)을 낳고, 하늘은 오(五)로서 토(土)를 낳는다.[天一生水 地二生火 天三生木 地四生金 天五生土]"라 하였다. 《近思錄集解 卷1 太極圖說註》 즉 여기서의 '천삼(天三)'은 나무, '지사(地四)'는 달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무와 달빛이 모두 하나의 경관 안에 들어와 있는 정경을 말한 것이다. 마음 원문은 '영대(靈臺)'다. 신령스러운 대(臺)란 뜻으로, 마음을 가리킨다. 위로도……통하여 상하를 모두 통한다는 말이다. 《논어》 〈자로(子路)〉에 "거처할 때에 공손히 하며, 일을 집행할 때에 공경하며 사람을 대할 때에 충성되게 하여야 한다. 이것은 비록 이적의 나라에 가더라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居處恭 執事敬 與人忠 雖之夷狄 不可棄也]"라 하였는데, 집주(集註)에 "정자가 말하기를 이것은 위로도 통하고 아래로도 통하는 말씀이니 성인은 애당초 두 말씀이 없는 것이다.[程子曰 此是徹上徹下語 聖人初無二語也]"라 하였다. 삼재(三才)의 한 이치 '삼재(三才)'는 천(天), 지(地), 인(人)을 가리킨다. 즉 하늘과 땅과 인간에 두루 공통으로 적용되는 이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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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예전의 유람을 추억하며 종형 문백(文伯)81)에게 부치다.【이름은 한탁(漢倬)이다. 만년에 고월정(孤月亭)을 지어 한 시대의 제현(諸賢)과 함께 시와 술을 즐겼다.】 憶舊遊行。 寄宗兄文伯。【名漢倬。 晩築孤月亭。 與一代諸賢。 詩酒自娛。】 만고에 변함없는 영강(靈江) 푸른 물이 흐르니북쪽으로는 방장(方丈)과 이어지고 남쪽에는 영주(瀛洲)【어떤 본에는 '주(州)'로 되어 있다.】라네82)강을 따라 옥 부용(芙蓉)을 다듬어 내니거울 위의 푸른 비단 천추에 이름났네그 사이에서 몇 명의 영웅을 낳았나백 년 인생 한바탕 꿈과 같아 물거품이 되었네아, 내가 태어난 것 다행히도 이 땅이었건만용봉(龍鳳)은 이미 떠나가고 하루살이만 남았네마음을 함께 할 이 없어 긴 무지개에게 마음 토로하니저물녘 하늘 향해 휘파람 불자 정신이 편안해지네백 척(尺)의 난초는 만 경(頃)의 물결에 흔들리는데형제를 가득 싣고서 긴 물가에 떠 있네황금 물결 만 곡(斛)으로 옥 두꺼비 목욕시키고한 조각의 푸른 옥 같은 하늘은 은빛 갈고리 흘려 보내네83)〈파인(巴人)〉을 부른 영(郢) 땅의 객 〈백설(白雪)〉을 노래하니84)혜련(惠連)과 강락(康樂)이 푸른 눈길을 보내네85)천지는 한 점이요 하나의 작은 잔이니86)밤낮으로 창해(滄海)에 둥근 달이 떠 있네우리들 조그맣게 이 세상에 부쳐 살고 있으니꿈속을 헤매는 신세로 소요하며 노니네천 년 전의 지난 일 큰 웃음에 부치고서한 국자의 좋은 술87) 그대와 함께 주고받네이별한 뒤로 산 위의 달 이미 기울고 다시 찼으니강머리에서의 멋진 유람 옛 흔적이 남아 있네창랑(滄浪)에서 지내는 형은 화려한 갓끈 씻으려 하고88)석실(石室)에서 지내는 동생은 홀로 구름 갖옷을 걸쳤네89)좋은 가을의 훌륭한 승경 양측의 달에 속해 있건만예라(禮羅)가 높이 걸려 천구(天球)를 울리네90)바라노니 학생(郝生)의 뱃속에 있는 만 권의 책을 볕에 쬐고91)취옹(醉翁)의 장대같이 큰 붓끝을 휘두르기를92)이어 두 시어사(竇侍御使)의 상주하러 들어가는 수레를 돌려93)완화계(浣花溪)의 그윽한 거처에 찾아오기를94)편주(扁舟)에 함께 올라 눈앞 가득 술을 사고95)돛단배 한 척 다시 푸른 강물에 띄우세듣건대 푸른 바다 서쪽 해안이 동쪽 제(齊) 땅이라 하니옛날에 노중련(魯仲連)이 바다 언덕을 밟았다고 하더군96)두 번째곤륜산(崑崙山) 북쪽 줄기 다시 동쪽으로 흐르니흘러서 청구(靑邱)의 삼백 고을97)을 이루었네삼경(三京)98)이 아름다움을 홀로 독차지하지 않으니이남(二南)99)의 웅장한 도읍 몇 년이나 이름을 떨쳤나금강(錦江)100)의 형승 영남과 호남에서 제일이니마치 바퀴처럼 도는 소용돌이가 작은 물거품 가까이 있는 듯두세 명의 준걸이 땅의 영기(靈氣)를 받아 태어났으니가을에는 귀뚜라미 울고 어두워지면 하루살이 나오는 법이라네101)정상(鄭相)이 세운 공업(功業) 동한(東韓)에서 으뜸이니102)큰 길을 따르되 걸음을 알맞게 하였지103)군산(君山)의 밝은 달 금남(錦南)과 접해 있고104)동악(東岳)의 흰 구름 창주(滄洲)와 이어져 있네105)송로(松老)의 문장 오묘한 경지에 들어갔고106)사옹(思翁)의 심학(心學) 심오한 이치를 궁구하였네107)전현(前賢)은 이미 떠나가고 물은 부질없이 흘러가니108)낙엽 진 빈 산에 꽃이 눈을 어지럽히네풍화(風花)와 설월(雪月) 누가 품평하는가109)한 점의 한가로운 갈매기 물결 위에 떠 있네연전의 멋진 유람에 어찌 뜻이 없겠는가들새는 도리어 나의 맑은 노님을 의아해 하네일찍이 연석(燕石)을 가지고 보석 가게에 팔았는데110)좋은 옥돌로 와서 수창해 주심을 외람되이 입었네111)난새가 현포(玄圃)에 날자 뭇 신선 내려오고112)봉황이 구산(緱山)을 떠났어도 맑은 소리 남아있네113)이어 강가의 옛날 노닐던 곳을 생각하니낚싯대 하나 드리우고서 양 갖옷을 걸쳤던 때 언제인가114)물결이 맑은 은하수와 이어지니 흰 비단을 누인 듯하고조수(潮水)가 기암(奇巖)을 때리니 옥 경쇠를 울리는 듯하네115)갈대 섬의 갈매기와 해오라기 꿈이 어찌 깊으랴지나가는 나의 모습 우두커니 바라보며 자주 머리를 드네깊은 산의 병든 학 수풀 언덕에 막혔으며두견새116) 울음소리에 산이 더욱 그윽해지네그윽한 마음으로 매어 두지 않은 배를 한가로이 수리하고다시 복사꽃 떠 있는 봄날 물결을 찾아가네117)형께서는 부디 목란선(木蘭船)118)을 대고서 기다리시기를무릉(武陵)119)이 어찌 홀로 신선의 구역이 되겠는가 萬古靈江水碧流北連方丈南瀛洲【一作州】沿江琢出玉芙蓉鏡上翠錦名千秋其間產發幾英雄百年一夢成浮漚嗟余降生幸此地龍鳳已去餘蜉蝣衷懷無與泄長虹一嘯暮天魂夷猶蘭撓百尺擊萬頃滿載兄弟浮長洲黃金萬斛浴玉蟾碧玉一片流銀鉤巴人郢客奏白雪惠連康樂輸靑眸乾坤一點一小盃日夜滄海團團浮吾人藐然寄寰中夢幻身世逍遙遊千年往事付大笑一杓流霞同子酬別來山月已虧盈勝遊江頭陳迹留滄浪兄擬濯華纓石室弟獨披雲裘良秋佳勝屬兩月禮羅高揭鳴天球願曬郝生腹萬卷揮却醉翁長杠頭仍回竇使入奏車來訪浣花溪居幽扁舟同載滿眼酤一帆更泛淸江流聞道碧海西岸是東齊往聞魯連蹈海邱其二崑山北脉又東流流作靑邱三百州三京不獨擅佳麗二南雄都鳴幾秋錦江形勝甲嶺湖有若轂渦隣微漚數三豪俊稟地靈秋生蟋蟀陰蜉蝣鄭相功業冠東韓式遵大路行猶猶君山霽月接錦南東岳白雲連滄洲松老文章妙入室思翁心學窮深鉤前賢已往水空逝葉落空山花亂眸風花雪月孰品題一點閒鷗波上浮年前勝覽豈無意野鳥却訝吾淸遊曾將燕石衒寶肆猥荷良璞來相酬鸞翔玄圃衆仙下鳳去緱山淸韻留仍思江上舊遊處一竿何日披羊裘波連淸漢練素綃潮打奇巖鳴玉球蘆洲鷗鷺夢豈圓佇望吾行頻擧頭窮山病鶴滯林臯蜀魄一聲山更幽幽懷閒理不繫舟再趁桃花春水流兄須艤待木蘭楫武陵豈獨爲仙區 문백(文伯) 김만영의 종형 김한탁(金漢倬)을 말한다. 자세한 사항은 미상이다. 북쪽으로는……영주(瀛洲)라네 '방장(方丈)'과 '영주(瀛洲)'는 모두 신선이 산다고 하는 중국 전설상의 산으로, 봉래(蓬萊)와 함께 삼신산(三神山)이라 불린다. 중국 동쪽의 발해(渤海) 가운데 있다고 한다. 한 조각의……보내네 송나라 마존(馬存)의 〈장회요(長淮謠)〉에, "황금 물결 만 곡으로 밝은 달 목욕시키고, 푸른 옥 같은 한 조각의 하늘 맑은 가을 머금었네.[黄金萬斛浴明月 碧玉一片含淸秋]"라 한 데서 취해 온 구절이다. '옥 두꺼비'와 '은빛 갈고리'는 모두 달을 형용한 말이다. 〈파인(巴人)〉을……노래하니 '파인(巴人)'과 '백설(白雪)'은 모두 초(楚)나라의 가곡 이름이다. '파인'은 민간에서 유행하던 대중적인 노래인 반면, '백설'은 곡조가 높아서 부르기 어려운 곡이었다. 어떤 사람이 초나라의 국도(國都)인 영(郢)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처음에 〈하리(下里)〉와 〈파인〉을 노래하자 그 소리를 알아듣고 화답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었고, 〈양아(陽阿)〉와 〈해로(薤露)〉를 노래하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백 명으로 줄었고, 〈양춘(陽春)〉과 〈백설〉을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몇 명밖에 되지 않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文選 卷45 對楚王問》 유람을 하면서 훌륭하고 빼어난 시문을 읊었음을 말한 것이다. 혜련(惠連)과……보내네 '혜련(惠連)과 강락(康樂)'은 남조(南朝) 송(宋)나라 사혜련(謝惠連)과 그 족형 사영운(謝靈運)을 가리킨다. '강락'은 사영운의 봉호다. 또 '푸른 눈길'의 원문은 '청모(靑眸)'로, '반가워하는 눈빛'을 뜻하는 청안(靑眼)을 말한다. 진(晉)나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이 싫은 사람을 보면 백안(白眼)을 뜨고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청안을 뜨고 대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형제 간에 시문을 읊으며 기뻐한 모습을 이와 같이 표현한 것이다. 천지는……잔이니 하늘에서 바라보면 매우 작게 보이는 땅과 바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당(唐)나라 이하(李賀)의 시 〈몽천(夢天)〉에, "멀리 제주를 바라보니 아홉 점의 연기와 같고, 큰 바닷물도 한 잔 물을 쏟아 부은 듯하네.[遙望齊州九點煙 一泓海水杯中瀉]"라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이하의 시에서 '제주(齊州)'는 중주(中州) 즉 중국을 가리킨다. 좋은 술 원문은 '유하(流霞)'다. 신선이 마시는 좋은 술을 말한다. 두보의 시 〈종무생일(宗武生日)〉에, "유하를 조각조각 나누어서, 방울방울 천천히 기울이노라.[流霞分片片 涓滴就徐傾]"라 하였다. 창랑(滄浪)에서……하고 '창랑(滄浪)'은 중국의 하천 이름이고, '갓끈을 씻는다'는 것은 진속(塵俗)을 초탈하여 자신의 고결한 신념을 지키는 것을 뜻하는 행위다. 굴원의 〈어부사(漁父辭)〉에,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석실(石室)에서……걸쳤네 '석실(石室)'은 돌로 지은 집이라는 뜻으로, 옛날에 중요한 문서나 물건을 보관하던 곳이다. 여기서는 많은 책을 보관해 둔 서실(書室)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김만영 자신이 서실에서 책을 읽으며 한가로이 지내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예라(禮羅)가……울리네 '예라(禮羅)'는 그물로 새나 물고기를 잡듯이 군주가 예(禮)로써 인재(人才)를 맞아들여 등용하는 것을 뜻한다. 당나라 대숙륜(戴叔倫)의 〈기선사사화상인(寄禪師寺華上人)〉에 "예라에다 벽옥을 더해 와서, 훌륭한 인재를 천거해 구름과 나란히 올린다.[禮羅加璧至 薦鶚與雲連]"라 하였고, 한유(韓愈)의 〈송온조처사서(送溫造處士序)〉에 "대부 오공(烏公)이 하양(河陽)에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석생(石生)을 인재라 하여 예의로 그물을 만들어[以禮爲羅] 그물질하여 막하(幕下)로 데려갔고, 몇 달이 못 되어 온생(溫生)을 인재라 하여 석생을 중매로 삼고 예의로 그물을 만들어 또 그물질하여 막하로 데려갔다."라 하였다. '천구(天球)'는 옹주(雍州)에서 생산되는 옥 이름으로, 색이 하늘빛을 띤다. 《서경(書經)》 〈고명(顧命)〉에, "옥을 오중(五重)으로 진열하고 보물을 진열하니……대옥(大玉)과 이옥(夷玉)과 천구(天球)와 하도(河圖)는 동서(東序)에 있다.[越玉五重 陳寶……大玉 夷玉 天球 河圖 在東序]"라 하였다. 학생(郝生)의……쬐고 '학생(郝生)'은 진(晉)나라 사람 학륭(郝隆)을 가리킨다. 학륭이 칠석날 대낮에 밖으로 나가 하늘을 향해 배를 드러낸 채 누워 있기에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나는 내 뱃속에 들어 있는 서책들을 볕에 쬐고 있다."라 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排調》 취옹(醉翁)의……휘두르기를 '취옹(醉翁)'은 송나라 구양수(歐陽脩)의 호다. '장대같이 큰 붓끝을 휘두른다'는 것은 구양수의 시 〈여산고(廬山高)〉에서 여산(廬山)에 은거한 유환(劉渙)의 고상한 절조를 찬미한 끝에 "장부의 장절로 그대 같은 이 드물 테니, 아 내가 그걸 말하려 해도 장대 같은 큰 붓을 어떻게 얻으랴.[丈夫壯節似君少 嗟我欲說安得巨筆如長杠]"라 한 데서 유래한 말로, 문장 솜씨가 매우 뛰어남을 뜻한다. 두 시어사(竇侍御使)의……돌려 '두 시어사(竇侍御使)'는 당나라 때의 시어사(侍御使) 두군(竇群)을 가리킨다. 두보(杜甫)는 상주하러 가는 두군을 위해 〈입주행증서산검찰사두시어(入奏行贈西山檢察使竇侍御)〉라는 시를 지어 주었다. 《杜少陵詩集 卷10》 완화계(浣花溪)의……찾아오기를 '완화계(浣花溪)'는 두보(杜甫)의 초당(草堂)이 있던 촉(蜀) 땅 성도(成都) 금강(錦江) 지류의 시내 이름으로, 김만영 자신의 은거 공간을 비유한 것이다. 김한탁에게 자신의 거처로 와서 함께 노닐자고 권유한 말이다. 눈앞……사고 두보(杜甫)의 시 〈입주행증서산검찰사두시어(入奏行贈西山檢察使竇侍御)〉에, "그대 위해 술을 사거든 눈앞 가득 살 것이고, 하인에겐 쌀밥 주고 말에겐 푸른 꼴 주리라.[爲君酤酒滿眼酤 與奴白飯馬靑蒭]"라 한 데서 취해 온 말이다. 옛날에……하더군 '노중련(魯仲連)'은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고사(高士)다. 그가 조(趙)나라에 가 있을 때 진(秦)나라 군대가 조나라의 서울인 한단(邯鄲)을 포위하였다. 이때 위(魏)나라가 장군 신원연(新垣衍)을 보내 진나라 임금을 천자로 섬기면 포위를 풀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노중련이 "진나라가 방자하게 천자를 참칭(僭稱)한다면 나는 동해(東海)를 밟고 빠져 죽겠다."라 하니, 진나라 장군이 이 말을 듣고 군사를 후퇴시켰다 한다. 《史記 卷18 魯仲連列傳》 청구(靑邱)의 삼백 고을 곧 우리나라를 가리킨다. 삼경(三京) 남경(南京)인 서울, 중경(中京)인 개성(開城), 서경(西京)인 평양(平壤)을 말한다. 이남(二南) 영남과 호남을 말한다. 금강(錦江) 오늘날의 영산강을 말한다. 나주(羅州)의 옛 이름이 금성(錦城)이므로 영산강을 금천(錦川) 또는 금강(錦江)이라고도 부른다. 두세……법이라네 땅의 영험한 기운에 힘입어 호남에서 훌륭한 인재가 배출될 수 있었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한(漢)나라 왕포(王襃)의 〈성주득현신송(聖主得賢臣頌)〉에, "세상에 반드시 성스럽고 지혜로운 군주가 있은 뒤에야 현명한 신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범이 포효하면 바람이 거세어지고 용이 일어나면 구름이 일며 귀뚜라미는 가을을 기다려 울고 하루살이는 어두운 때에 나오는 것입니다.[世必有聖知之君而後 有賢明之臣 故虎嘯而風冽 龍興而致雲 蟋蟀竢秋吟 蜉蝣出以陰]"라 한 데서 취해 온 구절이다. 정상(鄭相)이……으뜸이니 '정상(鄭相)'은 정철(鄭澈, 1536~1593)을 가리킨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이다. 1551년 조부의 묘가 있는 전라도 담양 창평(昌平)으로 이주하여 기대승(奇大升) 등 당대의 석학들에게 배우고 이이(李珥)‧성혼(成渾) 등과도 교유하였다. 1561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맡았으나, 1578년 진도(珍島) 군수 이수(李銖)의 뇌물사건으로 동인(東人)의 공격을 받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낙향하였다. 1589년 우의정으로 발탁되어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 때 서인의 영수로서 철저하게 동인 세력을 축출하였고, 다음해 좌의정에 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왕을 의주(義州)까지 호종하였고, 다음 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동인의 공격으로 사직하고 강화의 송정촌(松亭村)에 우거(寓居)하다가 58세로 별세하였다. 걸음을 알맞게 하였지 원문의 '유유(猶猶)'는 완급을 적절하게 하는 모양이다.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너무 빨리하면 촌스럽고 너무 느리게 하면 소인의 행위가 되니, 군자는 완급(緩急)을 알맞게 한다.[騷騷爾則野 鼎鼎爾則小人 君子蓋猶猶爾]"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군산(君山)의……있고 중국 호남(湖南) 동정호(洞庭湖) 어귀에 있는 산으로, '상산(湘山)'이라고도 한다. '금남(錦南)'은 김만영이 살고 있는 금강 남쪽을 가리키는 듯하나, 미상이다. 동악(東岳)의……있네 '동악(東岳)'은 중국의 오악(五岳) 가운데 하나인 태산(泰山)을 가리킨다. '창주(滄洲)'는 산수가 아름다운 은사(隱士)의 거처를 뜻하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위(魏)나라 완적(阮籍)의 〈위정충권진왕전(爲鄭冲勸晉王牋)〉에, "창주에 가서 지백에게 인사하고 기산에 올라 허유에게 읍을 한다.[臨滄洲而謝支伯 登箕山以揖許由]"라 한 대목이 보인다. 송로(松老)의……들어갔고 '송로(松老)'는 정철(鄭澈)을 가리킨다. 정철의 호가 '송강(松江)'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원문의 '입실(入室)'은 학문이 상당한 경지에 올랐음을 비유하는 말로, 《논어》 〈선진(先進)〉에, "자로(子路)는 마루에는 올랐으나 아직 방에는 들어오지 못했다.[由也 升堂矣 未入於室也]"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사옹(思翁)의……궁구하였네 '사옹(思翁)'은 박순(朴淳, 1523~1589)을 가리킨다.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화숙(和叔), 호는 사암(思菴)이다. 1553년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 응교, 이조 참의, 대사헌, 예조 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성리학에 밝고 《주역》에 조예가 깊었다. 원문의 '심구(深鉤)'는 심오한 이치를 발견한다는 말로,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숨겨진 것을 찾고 심원한 것을 끌어내어 천하의 길흉을 정하고 천하의 힘써야 할 일을 이루는 것은 시초와 거북보다 더 큰 것이 없다.[探賾索隱 鉤深致遠 以定天下之吉凶 成天下之亹亹者 莫大乎蓍龜]"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물은 부질없이 흘러가니 원문은 '수공서(水空逝)'다. 《논어》 〈자한(子罕)〉에, "공자가 시냇가에서 말하기를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이고 낮이고 멈추는 법이 없도다.'라고 하였다.[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 한 데서 온 말이다. 풍화(風花)와……품평하는가 '풍화(風花)와 설월(雪月)'은 사계절의 경색(景色)을 뜻한다. 소옹(邵雍)의 〈수미음(首尾吟)〉에, "제왕과 제후들이 가볍게 포폄을 행하여 설월과 풍화를 품평하지 않았네.[皇王帝伯輕褒貶 雪月風花未品題]"라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伊川擊壤集 卷20》 일찍이……팔았는데 '연석(燕石)'은 연산(燕山)에서 나는 옥 비슷한 돌로, 볼품없는 물건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송(宋)나라의 어리석은 사람이 오대(梧臺) 동쪽에서 이 돌을 얻어서 돌아와 간직하고 큰 보배라고 여겼는데, 주(周)나라 사람이 보고 웃으며 말하기를 "이것은 연석이니 기와나 벽돌과 다를 것이 없다."라 하자 주인이 노하여 더욱 깊이 감추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太平御覽 卷51》 좋은……입었네 '좋은 옥돌'의 원문은 '양박(良璞)'이다. 아직 가공하지 않은 좋은 옥돌로, 아직 등용되지 않은 훌륭한 인재를 비유하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여기서는 상대인 김한탁을 가리킨다. 즉 빼어난 재주를 지닌 김한탁이 과거에 보잘것없는 자신을 찾아와 함께 유람을 즐겼음을 말한 것이다. 난새가……내려오고 '현포(玄圃)'는 곤륜산(崑崙山) 꼭대기에 있는 신선의 거처로, 기이한 꽃과 나무가 있다고 한다. 봉황이……남아있네 '구산(緱山)'은 주(周)나라 영왕(靈王)의 태자인 왕자교(王子喬)가 학을 타고 신선이 되어 떠났다는 산으로, 구지산(緱氏山)이라고도 한다. 왕자교는 피리를 매우 잘 불어 피리로 봉황새의 울음소리를 낼 수 있었는데, 뒤에 신선이 되어 떠난 지 30여 년 만에 이 산 정상에 백학(白鶴)을 타고 내려왔다가 며칠 머무른 뒤 사람들과 작별하고 다시 떠나갔다고 한다. 《列仙傳 王子喬》 낚싯대……언제인가 이 구절은 한(漢)나라 엄광(嚴光)의 고사에서 취해 온 것이다. 엄광은 뒷날 한(漢)나라를 중흥시키는 광무제(光武帝)와 어릴 적에 함께 수학한 사이인데, 광무제가 즉위하자 이름과 성을 바꾸고 은거하였다. 광무제는 그를 등용하고자 그의 초상을 그려 찾게 하였는데, 제(齊)나라에서 상언(上言)하기를 "어떤 남자가 양 갖옷을 입고 못가에서 낚시질하고 있다.[有一男子 披羊裘釣澤中]"라 하였다. 이에 광무제는 그가 엄광이라 판단하여 불러 오도록 하였으나, 엄광은 물러나 일생을 부춘산(富春山)에서 은거하였다. 《後漢書 卷113 逸民列傳 嚴光》 옥……듯하네 원문은 '명옥구(鳴玉球)'다. '명구(鳴球)'는 옥으로 만든 경쇠를 쳐서 울린다는 뜻으로, 《서경》 〈익직(益稷)〉에 "옥경(玉磬)을 쳐서 울리고 금슬을 어루만지며 노래한다.[戛擊鳴球 搏拊琴瑟以詠]"라 한 대목이 보인다. 두견새 원문의 '촉백(蜀魄)'은 '촉혼(蜀魂)'이라고도 하는데, 곧 두견새를 가리킨다. 전국 시대 촉(蜀)나라 망제(望帝) 두우(杜宇)가 재상 별령(鱉令)에게 대규모 운하 공사를 맡기고 그의 아내와 간음하였다가, 뒤에 이 때문에 왕위를 뺏기고 달아나 두견새가 되었다. 이에 촉나라 사람들이 망제를 측은히 여겨 '촉백(蜀魄)' 또는 '망제혼(望帝魂)'이라 하였고, 그 울음소리가 '불여귀거(不如歸去)'라 하는 것 같다고 하여 '불여귀'라고도 하였다. 《太平御覽》 다시……찾아가네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진(晉)나라 무릉(武陵)의 어부가 복사꽃이 흘러 내려오는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가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이 세상일 잊고 평화롭게 살고 있는 도화원에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陶淵明集 卷6 桃花源記》 목란선(木蘭船) 향목(香木)인 목란(木蘭)으로 만든 배라는 뜻으로, 배에 대한 미칭(美稱)이다. 무릉(武陵) 전설상에 존재하는 선경(仙境)인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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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부

금릉수(金陵守)120) 조씨(趙氏)【성(惺)】에게 부쳐 주다 寄贈金陵守趙【惺】 낙양(洛陽)의 재자(才子)인 청운(靑雲)의 선비121)형승으로 이름난 호남 고을에 수령으로 나왔네호랑이와 용처럼 웅크린 옛 금릉122)푸른 산과 맑은 물이 비단처럼 선명하네추제(推擠)와 결과(結課)123)는 여사(餘事)에 부치고서시 읊조리고 거문고와 술 즐기며 회포를 스스로 달래네황강(黃岡)의 시인은 대나무 자라기 좋음을 읊고124)직하(稷下)의 제생(諸生)은 책을 다투어 집네125)그대 오경(五經)의 상자를 다 보는 것이 사랑스러우니126)당송(唐宋)의 시명(詩名)을 옥의 값 구하여 파네127)수주(隨州)로 떠나는 행색 제갈각(諸葛覺)과 같으니바다에 들어가 용 찾는 모습 장차 볼 수 있을 것이네128)바람과 달을 읊조리는 것 정신을 상쾌하게 할 만하니독을 사다가 구슬을 감추어 두는 것129) 또한 사랑할 만한 일이네명부(明府)130)의 맑은 시 혹시 얻을 수 있겠는가멀리 부쳐서 시름 가득한 나의 마음 풀어 주시기를 洛陽才子靑雲士出宰形勝湖中縣虎踞龍蹲古金陵靑山白水明如練推擠結課付餘事嘯咏琴樽懷自遣黃岡騷客詠宜竹稷下諸生爭執卷憐君閱盡五經笥唐宋詩名求玉衒隨州行色許諸葛入海探龍將可見咳風嗽月足暢神買櫝藏珠須亦戀明府淸詩倘可得遠寄開我情婉轉 금릉수(金陵守) '금릉(金陵)'은 옛날 전라도 강진현에 속해 있던 군 이름이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37 全羅道 康津縣》 낙양(洛陽)의……선비 '청운(靑雲)의 선비'는 높은 벼슬에 오른 선비를 말한다. 조성(趙惺)이 서울 출신으로서 벼슬에 올랐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듯하다. 호랑이와……금릉 원문은 '호거용준(虎踞龍蹲)'이다. 지형이 몹시 험준한 것을 형용한 말이다. 제갈량(諸葛亮)이 오(吳)나라 도읍인 건업(建業)에 와서 산천의 형세를 살펴본 뒤에 "종산은 용이 서린 듯하고, 석두산은 범이 웅크린 듯하니, 이곳은 제왕이 거할 곳이다.[鍾山龍盤 石頭虎踞 此帝王之宅]"라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古今事文類聚 續集 卷1 吳都形勢》 건업의 옛 이름이 '금릉'으로 전라도 금릉과 이름이 같기 때문에 이러한 고사를 사용한 것이다. 추제(推擠)와 결과(結課) '추제(推擠)'는 소식(蘇軾)의 〈오잠령조동년야옹정(於潛令刁同年野翁亭)〉에, "야옹(野翁)에게 묻노니 무엇을 즐거워하여 삼 년 동안 떠나지 않아 번거롭게 밀어내게 하는가.[問翁何所樂 三年不去煩推擠]"라 한 데서 유래한 말인데, 이에 대해 이민홍(李德弘)은 〈고문전집질의(古文前集質疑)〉에서 "추제(推擠)는 손으로 밀어서 가게 하고 밀쳐서 엎어지게 하는 것이다. 수령된 자가 문서를 작성하고 정령(政令)을 시행하는 사이에 자주 상관의 힐책을 당하며 혹은 어리석은 백성들로부터 원망과 비방을 받는 것이 마치 남으로부터 밀쳐내는 욕을 당하는 것과 같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以手推而去之 擠而仆之也 爲守令者 簿書期會之間 屢遭上官詰責 或爲頑民怨謗 如受人推擠之辱故云]"라는 말로 '번추제(煩推擠)'를 설명하였다. 《艮齋集 續集 卷4 古文前集質疑》 또 '결과(結課)'는 공치규(孔稚圭)의 〈북산이문(北山移文)〉에, "거문고와 노랫소리가 이미 끊기고 술과 시 짓는 것을 계속하지 못하여, 항상 결과(結課)에 마음이 매여 있고 매양 옥사(獄事)를 판단하느라 어지럽다.[琴歌旣斷 酒賦無續 常綢繆於結課 每紛綸於折獄]"라 한 데서 유래한 말인데, 이에 대해 이민홍은 〈고문후집질의(古文後集質疑)〉에서 "무릇 일을 끝마친 것을 '결'이라 하며, 날마다 규식(規式)을 헤아리는 것을 '결'이라 하니, 관사(官事)에 '결'이 있고 '과'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凡事了畢謂之結 日計程式謂之課 言官事有結有課]"라고 설명하였다. 《艮齋集 續集 卷4 古文後集質疑》 즉 '추제'와 '결과'는 모두 지방 수령으로서 행해야 하는 번다한 공무를 뜻하는 말이다. 황강(黃岡)의……읊고 '황강(黃岡)'은 중국 호북성(湖北省) 황주부(黃州府)의 별칭이며, '황강의 시인'은 송(宋)나라 왕우칭(王禹偁)을 가리킨다. 왕우칭이 황주 태수가 되었을 적에 황주의 특산물인 큰 대나무를 베어다가 기와 대신에 지붕을 덮어 누각을 짓고 직접 〈황주죽루기(黃州竹樓記)〉를 지어 그 사실을 자세히 설명하였는데, 그 기문 첫머리에 "황강 지역에 대나무가 많아 큰 것은 서까래만 하다.[黃岡之地多竹 大者如椽]"라 하였다. 《古文眞寶 後集 卷6 黃州竹樓記》 직하(稷下)……집네 '직하(稷下)'는 전국 시대 제나라의 도성인 임치(臨淄)의 직문(稷門) 부근 구역을 이르는 말이다. 제 선왕(齊宣王)이 학사와 유세하는 선비를 좋아하여 직문에 학관(學館)을 지어 놓고 추연(鄒衍)‧순우곤(淳于髡)‧전병(田騈)‧접자(接子)‧신도(愼到)‧환연(環淵) 등 76인의 선비를 초빙하여 집을 주고 상대부(上大夫)로 삼아 직무 없이 토론만 하게 하였다고 한다. 《史記 卷74 孟子荀卿列傳》 그대……사랑스러우니 이는 한(漢)나라 문인 변소(邊韶)의 고사에서 취해 온 구절이다. 변소는 자가 효선(孝先)으로, 문학으로 이름나 수백 명의 학생을 가르쳤다. 하루는 그가 낮잠을 자고 있는데 한 제자가 그를 조롱하기를, "변효선은 배가 똥똥하여 글 읽기는 싫어하고 잠만 자려고 한다.[邊孝先 便便腹 懶讀書 但欲眠]"라 하였다. 그러자 변소가 대꾸하기를, "똥똥한 내 배는 오경의 상자이고, 잠만 자려고 하는 것은 경을 생각하기 위함이다.[腹便便 五經笥 但欲眠 思經事]"라 하였다. 《後漢書 卷80 文苑列傳 邊韶》 당송(唐宋)의……파네 '옥의 값을 구하여 판다'는 것은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펼치는 것을 의미한다. 《논어》 〈자한(子罕)〉에,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묻기를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다면, 상자에 넣어 두시겠습니까, 아니면 좋은 값을 구하여 파시겠습니까?"라 하니, 공자가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좋은 값을 기다리는 사람이다.[有美玉於斯 韞櫝而藏諸 求善賈而沽諸 子曰 沽之哉 沽之哉 我待賈者也]"라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조성이 당나라와 송나라의 시풍을 추구하여 당대에 이름이 났음을 말한 것이다. 수주(隨州)로……것이네 조성의 학문과 식견이 앞으로 매우 깊고 넓어질 것이라는 뜻이다. 당나라 한유(韓愈)가 수주(隨州)로 독서하러 떠나는 제갈각(諸葛覺)을 전송하며 지은 〈송제갈각왕수주독서(送諸葛覺往隨州讀書)〉에, "바다에 들어가 물고기와 용을 볼 수 있을 것이요, 날개를 쳐서 황곡도 따를 수 있을 것이다.[入海觀魚龍 矯翮逐黃鵠]"라 한 데서 취해 온 말이다. 독을……것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펼치지 않고 감추어 두는 것을 뜻한다. 《논어》 〈자한(子罕)〉에,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묻기를 "여기에 아름다운 옥이 있다면, 상자에 넣어 두시겠습니까, 아니면 좋은 값을 구하여 파시겠습니까?"라 하니, 공자가 "팔아야지, 팔아야지! 나는 좋은 값을 기다리는 사람이다.[有美玉於斯 韞櫝而藏諸 求善賈而沽諸 子曰 沽之哉 沽之哉 我待賈者也]"라 한 대목을 참고한 구절이다. 명부(明府) 지방관에 대한 경칭으로, 군수(郡守)나 현감(縣監) 등을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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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제에게 부쳐 주다【해영(海英)131)이다. 호는 광곡자(廣谷子)다.】 寄贈從弟【海英號廣谷子】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위왕(魏王)의 박이 통처럼 커서구름 돛단배가 떠오르고자 해도 강호가 좁은 것을132)또 보지 못하였는가 공명(孔明)의 사당에 있는 잣나무 언덕이나 산처럼 무거워만 마리 소가 고개를 내젓고서 끝내 버려둔 것을133)구기자나무와 가래나무 병들고 늙어 한 척이 썩었고134)큰 용광로에서 주머니 속의 철을 다투어 거두네135)지인(至人)의 마음속에 본래 다른 사물 없으니136)세상 밖의 부침을 어찌 말할 것이 있겠는가풍운(風雲)처럼 변화하는 모습을 사람들은 공교롭게 여기는데눈과 달 같은 정신은 내가 스스로 부족하게 여기네옛날에 내가 그대와 어린 시절137)을 함께하였는데책과 칼 고개를 숙이고서 배우려 하지 않았네138)중년의 지기(志氣) 무지개139)를 토해 내니장대한 마음으로 곧장 하늘의 해를 부지하고자 하네근년 이래로 나는 몇 이랑의 밭을 경작하는데그대는 붓을 쥐고서140) 아이들을 향해 따라가네요즈음 듣건대 그대 예라(禮羅)141)에서 빠졌다고 하니한 번 웃고서 다시 청산(靑山)의 바위에 눕네누가 알겠는가 웃음 속에 품은 바 있어산골 아이에게 술잔 속의 좋은 술142) 따르기를 재촉하는 줄을금강(錦江)143)이 비껴 흐르는 수백 리영해(瀛海)의 삼신산(三神山)144)이 서로 이웃해 있네편주(片舟) 위에 뜬 한 조각 달을 미리 털어 놓았으니그대와 함께 강굽이에서 실컷 노닐 것이네145)그런 뒤에 뗏목 타고 바다 너머로 나가서146)상보(尙父)의 옛 자취를 찾아가 물으리147) 君不見魏王之瓠大如樽雲帆欲擧江湖窄又不見孔明廟栢邱山重萬牛回頭終棄擲杞榟病老一尺朽洪鑪競收囊中鐵至人胷中本無物世外浮沉安足說風雲變態人所巧雪月精神吾自拙昔我與君同髫齔書劒不肯低頭學中身志氣吐虹霓壯心直欲扶天日年來我耕數畝田弄觚君向羣兒逐此日聞君漏禮羅一笑更臥靑山石誰知笑中有所懷山童催酌盃中綠錦江橫流數百里瀛海三山相際接預拂片舟一片月與君爛漫遊江曲然後乘桴泛海外往問尙父當年躅 해영(海英) 김만영의 종제 김해영(金海英)을 가리킨다. 자세한 사항은 미상이다. 위왕(魏王)의……것을 이는 다음과 같은 고사에서 취해 온 구절이다. 장자(莊子)의 친구 혜자(惠子)가 일찍이 장자에게 말하기를, "위왕이 나에게 큰 박씨 하나를 보내 주므로 이것을 심었더니 닷 섬들이 박이 열렸는데, 그 속에다 음료수를 채워 놓으니 무거워서 들 수가 없었고 다시 두 쪽으로 쪼개어 바가지를 만들었으나 너무 넓어서 쓸 수가 없었네. 속이 텅 비어 크기는 했지만, 나는 아무 소용이 없어 부수어 버렸네.[魏王貽我大瓠之種 我樹之成 而實五石 以盛水漿 其堅不能擧也 剖之以爲瓢 則瓠落無所用 非不呺然大也 吾爲其無用而掊之]"라 하였다. 그러자 장자가 말하기를, "지금 자네에겐 닷 섬들이 바가지가 있었는데, 어찌하여 그것을 큰 통으로 만들어 강호에 띄울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것이 너무 커서 쓸데가 없다고 걱정만 하는가?[今子有五石之瓠 何不慮以爲大樽而浮乎江湖 而憂其瓠落無所容]"라 하였다. 《莊子 逍遙遊》 또 '구름 돛단배'의 원문은 '운범(雲帆)'으로, 이백(李白)의 〈행로난(行路難)〉에, "거센 바람에 풍랑 헤쳐 나갈 기회가 오거든, 곧장 구름 돛 걸고 큰 바다를 건너련다.[長風波浪會有時 直掛雲帆濟滄海]"라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김해영의 재능이 몹시 뛰어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공명(孔明)의……것을 '공명(孔明)'은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을 가리킨다. 사천성(四川省) 금관성(錦官城)에 있는 그의 사당에는 거대한 잣나무가 있다. 두보(杜甫)의 〈촉상(蜀相)〉에, "승상의 사당을 어느 곳에서 찾을꼬, 금관성 밖에 잣나무가 늘어선 곳이로다.[丞相祠堂何處尋 錦官城外栢森森]"라 한 대목이 보인다. 또 '만 마리 소가 고개를 내젓고서 끝내 버려두었다'는 것은 두보의 〈고백행(古柏行)〉에, "큰 집이 무너질 때 들보를 쓰려 했더니, 산처럼 무거워 만 마리 소가 끌다 힘에 부쳐 고개 내젓누나.[大廈如傾要梁棟 萬牛回首丘山重]"라 한 데서 유래한 말로, 나무가 몹시 크고 무거움을 뜻한다. 김해영의 재능이 몹시 뛰어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구기자나무와……썩었고 '구기자나무와 가래나무'는 대들보감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크고 반듯하게 자라는 나무로, 뛰어난 자질을 지닌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이 구절은 춘추 시대 노(魯)나라의 자사(子思)가 "성인이 사람을 관리로 등용하는 것은 장인이 나무를 사용하는 것과 같아서 그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버립니다. 이 때문에 구기자나무나 가래나무가 몇 아름이 될 정도로 크면, 몇 자 정도 썩은 부분이 있어도 훌륭한 장인은 이를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夫聖人之官人 猶匠之用木也 取其所長 棄其所短 故杞梓連抱而有數尺之朽 良工不棄]"라 한 데서 취해 온 것이다. 《資治通鑑 卷1 周紀1 安王 25年》 큰 용광로에서……거두네 원문의 '홍로(洪鑪)'는 대로(大鑪)와 같은 말로, 만물을 만들어내는 큰 용광로라는 뜻이다. 천지(天地)‧조물(造物) 등에 대한 비유로 쓰인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지금 한결같이 천지(天地)를 큰 용광로로 삼고 조화옹을 큰 대장장이로 삼는다면 어디에 간들 안 될 것이 있겠는가.[今一以天地爲大鑪 以造化爲大冶 惡乎往而不可哉]"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또 '주머니 속의 철'은 '낭중지추(囊中之錐)'와 통하는 말이다. 전국 시대 조(趙)나라 평원군(平原君)이 문객인 모수(毛遂)에게 "현사의 처세는, 마치 송곳이 주머니 속에 들어 있어 그 끝을 당장 볼 수 있는 것과 같은데, 지금 당신이 나의 문하에 있은 3년 동안 아무도 당신을 칭송한 것이 없으니, 이는 당신에게 특별한 것이 없어서이다.[夫賢士之處世也 譬若錐之處囊中 其末立見 今先生處勝之門下三年於此矣 左右未有所稱誦 勝未有所聞 是先生無所有也]"라 하자, 모수가 "내가 진작 주머니 속에 들어갈 수만 있었다면 송곳 자루까지 다 나왔을 것이요, 그 끝만 보일 뿐이 아니었을 것이다.[使遂蚤得處囊中 乃穎脫而出 非特其末見而已]" 한 뒤에, 평원군과 함께 초(楚)나라에 가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여 크게 인정을 받은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史記 卷76 平原君列傳》 조물주가 김해영과 같이 훌륭한 인재를 낳았음을 말한 것이다. 지인(至人)의……없으니 '지인(至人)'은 도덕적 수양이 지극한 경지에 이른 사람을 가리킨다. 《순자(荀子)》 〈천론(天論)〉에, "천인의 분별에 밝으면 지인이라 할 수 있다.[明於天人之分 則可謂至人矣]"라 하였다. '다른 사물 없다'는 것은 마음에 잡념이 존재하지 않음을 말한다. 어린 시절 원문은 '초츤(髫齔)'이다. 다박머리에 이를 갈 시기의 어린아이로, 곧 7, 8세 정도의 아이를 말한다. 책과……않았네 '책과 칼'은 선비가 이루어야 할 문(文)과 무(武)를 상징한다. 당나라 맹호연(孟浩然)의 시 〈자락지월(自洛之越)〉에, "삼십 년을 허둥지둥, 글과 칼 다 못 이뤘네.[遑遑三十年 書劍兩無成]"라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또 '고개를 숙이고 배운다'는 것은 어떠한 것을 집중해서 익힌다는 뜻이다. 한탁이 작자보다 어리지만 작자보다 뛰어나서 고개를 숙여 배우려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무지개 원문은 '홍예(虹霓)'다. 강개한 의기(義氣)를 뜻하는 말이다. 참고로 삼국 시대 위(魏)나라 조식(曹植)의 〈칠계(七啓)〉에, "옷소매를 휘날리면 구주(九州)에 바람이 일고, 강개한 마음 품으면 그 기운이 무지개를 이룬다.[揮袂則九野生風 慷慨則氣成虹蜺]"라 한 대목이 보인다. 붓을 쥐고서 원문은 '농고(弄觚)'다. '고(觚)'는 붓을 뜻하는 말로, 진(晉)나라 육기(陸機)의 〈문부(文賦)〉에, "혹은 고를 잡고 빨리 짓는가 하면, 혹은 호를 입에 물고 더디게 짓기도 한다.[或操觚以率爾 或含毫而邈然]"라 하였는데, 그 주(註)에 "고는 나무인데, 옛 사람들이 그것으로 붓을 삼았다."라 하였다. 《文選 卷17》 즉 '농고'는 붓을 잡고 시를 짓는다는 의미다. 예라(禮羅) 그물로 새나 물고기를 잡듯이 군주가 예(禮)로써 인재(人才)를 맞아들여 등용하는 것을 뜻한다. 당나라 대숙륜(戴叔倫)의 〈기선사사화상인(寄禪師寺華上人)〉에 "예라에다 벽옥을 더해 와서, 훌륭한 인재를 천거해 구름과 나란히 올린다.[禮羅加璧至 薦鶚與雲連]"라 하였고, 한유(韓愈)의 〈송온조처사서(送溫造處士序)〉에 "대부 오공(烏公)이 하양(河陽)에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석생(石生)을 인재라 하여 예의로 그물을 만들어[以禮爲羅] 그물질하여 막하(幕下)로 데려갔고, 몇 달이 못 되어 온생(溫生)을 인재라 하여 석생을 중매로 삼고 예의로 그물을 만들어 또 그물질하여 막하로 데려갔다."라 하였다. 당시 김한탁이 과거에서 낙방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한 듯하다. 술잔……술 원문은 '배중록(盃中綠)'이다. '녹(綠)'은 술의 이칭인 '녹의(綠蟻)'를 가리킨다. 술이 익을 무렵 쌀알만한 녹색 기포가 생기는데 그 모양이 마치 개미가 기어가는 것 같아 이를 '술개미'라 하고, 그러한 술을 '부의주(浮蟻酒)' 또는 '녹의주(綠蟻酒)'라 한다. 즉 여기서의 '배중록'은 술잔에 담긴 푸른빛의 좋은 술을 뜻한다. 금강(錦江) 오늘날의 영산강을 말한다. 나주(羅州)의 옛 이름이 금성(錦城)이므로 영산강을 금천(錦川) 또는 금강(錦江)이라고도 부른다. 삼신산(三神山) 중국 전설에 나오는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州) 세 산을 가리킨다. 중국 동쪽의 발해(渤海) 가운데 있다고 한다. 편주(片舟)……것이네 김해영이 찾아오면 강에서 즐거운 유람을 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 구절은 이백(李白)의 시 〈조춘기왕한양(早春寄王漢陽)〉에, "미리 청산의 한 조각 바윗돌의 먼지를 털어 놓았나니, 그대 만나면 며칠 계속 술 마시며 취하리라.[預拂靑山一片石 與君連日醉壺觴]"라 한 대목을 참고한 것이다. 《李太白集 卷13》 뗏목……나가서 《논어》 〈공야장(公冶長)〉에서 공자(孔子)가 천하의 어지러움을 탄식하며, "도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나 나갈까 보다.[道不行 乘桴浮于海]"라 하였다. 상보(尙父)의……물으리 '상보(尙父)'는 주(周)나라의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을 가리킨다. 그는 위수(渭水) 가의 반계(磻溪)에서 낚시질하며 천하에 큰 뜻을 펼 때를 기다리다가 문왕(文王)을 처음 만나 사부(師傅)로 추대되었다. 즉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가 옛적 태공망의 자취를 찾겠다고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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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주(明珠)192)를 읊다 明珠詠 명주 한 알 하늘에서 나왔는데잘못하여 만 장(丈)의 진애(塵埃) 속에 떨어졌네네가 와서 온갖 세상사 겪은 것 몇 해인가모래와 자갈 속에 파묻혀 빛이 흐릿해졌네어젯밤에 맑은 바람 불고 상쾌한 비193) 지나가니천지에 가득 쌓인 먼지와 흙을 말끔히 씻어 냈네밝은 빛 내며 옛날의 모습을 문득 드러내니상서로운 색 환히 비추며 푸른 하늘에 서려 있네청허(淸虛)한 기상 오묘하여 헤아리기 어려우니지극히 오묘한 그 속을 어찌 다 알 수 있으리오말이 이미 떠오를듯해도 말로 표현할 수 없으니있는 듯 없는 듯하여 시종(始終)이 없네어떻게 하면 옥병과 얼음 쟁반을 가져다영풍궁(迎風宮)과 한로궁(寒露宮)에 둘 수 있을까194)아래로는 천고 만고에 변함없는 마음을 비추고위로는 무극옹(無極翁)과 태극옹(太極翁)195)을 꿰뚫네높은 값으로 인간 세상을 흔들 필요 없으니이 구슬은 사적인 것이 아니라 도리어 공적인 것이라네 一顆明珠出自天誤落萬丈塵埃中爾來閱盡幾春秋汩沒沙礫光矇矓淸風昨夜爽雨過洗盡乾坤塵土叢明光忽發舊時容瑞色輝暎蟠靑空淸虛氣象妙難測至妙中間安可窮言之已到不可言似有疑無無始終安將玉壺與冰盤置在迎風寒露宮下照千古萬古心上徹無極太極翁不須高價動人間此珠非私乃是公 명주(明珠) 인간의 마음을 밝은 구슬에 비유한 것이다. 상쾌한 비 원문은 '상량(爽兩)'인데, 문맥을 살펴 '량(兩)'을 '우(雨)'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어떻게……있을까 이 구절은 두보(杜甫)의 〈입주행증서산검찰사두시어(入奏行贈西山檢察使竇侍御)〉에서 두 시어사(竇侍御史)의 인품을 일러 "빛나기는 마치 만학(萬壑)에서 나온 한 조각 맑은 얼음을 한나라 영풍관 한로관의 옥병에 담아둔 것 같네.[炯如一段淸氷出萬壑 置在迎風寒露之玉壺]"라 한 데서 취해 온 것이다. '영풍궁(迎風宮)과 한로궁(寒露宮)'은 한(漢)나라 진제(晉帝) 때 더위를 피하기 위해 세운 두 전각(殿閣)의 이름이다. 무극옹(無極翁)과 태극옹(太極翁) '무극(無極)'과 '태극(太極)'은 송나라 주돈이(周敦頤)가 지은 〈태극도설(太極圖說)〉에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라 한 데서 온 말이다. 이 구절에 대해 주희(朱熹)는 "하늘의 일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지만 실제로는 조화의 중심축이고 만물의 뿌리이다. 그러므로 '무극이면서 태극이다.'라고 말했으니, 태극 밖에 다시 무극이 있는 것이 아니다.[上天之載 無聲無臭 而實造化之樞紐 品彙之根柢也 故曰無極而太極 非太極之外復有無極也]"라 풀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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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7년 백창윤(白昌潤)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乾隆十二年丁卯二月日 白昌潤 行郡守 乾隆十二年丁卯二月日 白昌潤 전남 영암군 [署押] 1개, [官印] 1개 6.5*6.5(정방형) 적색 1개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1747년(영조 23)에 유학(幼學) 백창윤(白昌潤)이 작성하여 영암군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 1747년(영조 23)에 영암군(靈巖郡) 곤이시면(昆二始面) 장전리(長田里) 4호(四戶)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백창윤(白昌潤)이 작성하여 영암군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장전리는 오늘날의 영암군 장전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작성 당시 호주(戶主) 백창윤은 27세로, 처(妻) 김씨(金氏)(27)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경옥의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김씨의 본관은 김해(金海)였다. 백창윤의 부(父)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백민징(白敏徵)이다. 수원백씨 가문에는 백민징이 가선대부에 임명되면서 받은 교지(敎旨)가 보관되어 있다. 가선대부는 조선시대의 종2품 품계로 초기에는 문무산계(文武散階)로 사용하였으나 후기에는 종친(宗親)과 의빈(儀賓)의 품계로도 사용하였다. 이때 백민징은 82세의 고령이어서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를 받았다. 조부는 백신헌(白信憲), 증조부는 백상원(白尙源), 외조부는 김시호(金時豪)로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호주 백창윤의 처 김씨의 부는 수용(壽龍), 조부는 린(璘), 증조부는 귀찬(貴㜺), 외조부는 장(壵)으로 인동(仁同)이 본관이다. 문서의 끝 부분에 이 집안이 거느리고 있는 노비의 명단이 실려 있는데, 28살 먹은 계집종 신량이 있었지만 지난 병인년에 도망가고 없었다. 조선시대의 호적에는 이처럼 도망을 간 노비들의 이름도 반드시 기입하였는데, 이는 나중에 있을 지도 모르는 노비의 소유권 분쟁과 관련이 있었다. 호구단자의 맨 끝에는 "甲子戶口相凖"이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이때 작성된 호구단자를 갑자년, 즉 1744년의 호적과 대조하였다는 의미이다. 수원백씨 가문에 전하는 호구단자를 보면, 백창윤의 부 백민징과 아들 백경옥, 손자 백사형의 것들도 전하고 있어서 백민징 – 백창윤 – 백경옥 – 백사형 등 4대에 이르는 가계도를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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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백경옥(白慶玉)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嘉慶十八年癸酉月日 白慶玉 行郡守 嘉慶十八年癸酉月日 白慶玉 전남 영암군 [署押] 1개, [官印] 1개 6.5*6.5(정방형) 적색 1개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1813년(순조 13)에 영암군(靈巖郡) 곤이시면(昆二始面) 장전리(長田里) 3호(三戶)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백경옥(白慶玉)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 1813년(순조 13)에 4월에 영암군(靈巖郡) 곤이시면(昆二始面) 장전리(長田里) 3호(三戶)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백경옥(白慶玉)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이다. 작성 당시 호주(戶主) 백경옥은 70세로, 처(妻) 장씨(張氏)(64)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경옥의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김씨의 본관은 광산(光山), 장씨의 본관은 인동(仁同)이었다. 백경옥의 부(父)는 백창윤(白昌潤), 조(祖)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백민징(白敏徵)이다. 수원백씨 가문에는 백민징이 가선대부에 임명되면서 받은 교지(敎旨)가 보관되어 있다. 가선대부는 조선시대의 종2품 품계로 초기에는 문무산계(文武散階)로 사용하였으나 후기에는 종친(宗親)과 의빈(儀賓)의 품계로도 사용하였다. 이때 백민징은 82세의 고령이어서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를 받았다. 증조부는 백신헌(白信憲), 외조부는 김수용(金壽龍)으로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호주 백경옥의 처 장씨(張氏)의 부는 천익(天翼), 조부는 한우(漢佑), 증조부는 선장(善長), 외조부는 박사덕(朴師德)으로 밀양(密陽)이 본관이다. 문서의 끝 부분에 이 집안이 거느리고 있는 노비의 명단이 실려 있는데, 32살 먹은 계집종이 하나 있었으며, 외거비 신량(申良)이 하나 있었지만 도망가고 없었다. 조선시대의 호적에는 이처럼 도망을 간 노비들의 이름도 반드시 기입하였는데, 이는 나중에 있을 지도 모르는 노비의 소유권 분쟁과 관련이 있었다. 호구단자의 맨 끝에는 "庚午戶口相凖"이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이때 작성된 호구단자를 경오년, 즉 1810년의 호적과 대조하였다는 의미이다. 수원백씨 가문에 전하는 백경옥의 호구단자를 보면, 1786년, 1792년, 1798년, 1801년, 1804년, 1807년, 1810년, 1813년 등 8건이 전하고 있다. 그는 영암군 곤이시면 장전리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지 않고 내내 살았는데, 오늘날의 영암군 장전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백경옥은 처음에는 어머니 김씨(金氏)를 봉양하였으나 김씨가 죽은 뒤에는 부부가 단둘이 살았다. 그와 처 장씨의 거주 형태는 나이 70세가 되는 1813년, 즉 이 호구단자가 작성되는 시점에 와서 아들 백사형(白思亨)이 며느리와 함께 들어와 2대가 거주하는 형태로 바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816년에는 그 아들 백사형이 독립된 호주로서 강진(康津)에서 호구단자를 작성하고 있으며, 더 이상 백경옥의 호구단자는 작성되지 않고 있다. 아마 그 사이 사망했거나 호구단자가 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수원백씨 가문의 호구단자는 백경옥과 아들 백사형의 것말고도 백경옥의 조부 백민징(白敏徵), 부 백창윤(白昌潤)의 것들도 전하고 있어서 백민징 – 백창윤 – 백경옥 – 백사형 등 4대에 이르는 가계도를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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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릉(金陵) 조 사군(使君)【성(惺)】에게 화답하다 酬金陵使君趙【惺】 천지 동남쪽 푸른 바닷가에위태로운 난간 천 척(尺)의 높이 솟은 누대 하나훌륭한 시인이 술 취해 적은 시 단청(丹靑)한 벽에 남아 있고뱃사공의 고기잡이 노래 원근의 모래섬에 들리네해 돋아 나오는 부상(扶桑)81)엔 새벽노을 붉고바다 노니는 붕새의 날개82)엔 가을 구름 희네멀리서 알겠네 선위(仙尉)83)께서는 다 오르고 난 뒤에흥에 겨워 작은 배 타고서 기수(沂水)의 물결 따라 노니시겠지84) 天地東南碧海頭危欄千尺一高樓詩豪醉墨丹靑壁舟子漁歌遠近洲轉日扶桑紅靄曉運溟鵬翼白雲秋遙知仙尉登臨罷乘興扁舟任沂流 해……부상(扶桑) '부상(扶桑)'은 동해에 있다고 전해지는 전설상의 나무로, 그 아래에서 해가 떠오른다 하여 해가 뜨는 동쪽 바다를 가리킨다. 《淮南子 卷3 天文訓》 바다……날개 북쪽 바다에서 남쪽 바다로 옮겨가는 붕새를 말한 것이다.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은 곤이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인지 모른다. 변화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은 붕이다. 붕의 등짝은 몇 천 리인지 모른다. 기운차게 떨쳐 날아오르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남쪽 끝의 검푸른 바다로 날아가려고 한다. 남쪽 바다란 하늘의 못, 천지다.[北冥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 其名爲鵬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是鳥也 海運則將徙於南冥 南冥者 天池也]"라 하였다. 선위(仙尉) 한(漢)나라 때 남창위(南昌尉)를 지낸 매복(梅福)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왕망(王莽)의 전정(專政)을 증오하여 처자(妻子)를 버리고 떠나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漢書 卷67 梅福傳》 수령 조성(趙惺)을 매복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기수(沂水)의……노니시겠지 '기수(沂水)'는 노(魯)나라 도성 남쪽에 있는 물 이름으로, 한가로운 자연 공간을 상징한다. 《논어》 〈선진(先進)〉에, 공자가 증점(曾點)에게 장래 포부를 물어보자 그가 타고 있던 비파를 내려놓으며 말하기를 "늦은 봄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벗 대여섯 명과 아이들 예닐곱 명을 데리고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쐰 뒤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 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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