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유람을 추억하며 종형 문백(文伯)81)에게 부치다.【이름은 한탁(漢倬)이다. 만년에 고월정(孤月亭)을 지어 한 시대의 제현(諸賢)과 함께 시와 술을 즐겼다.】 憶舊遊行。 寄宗兄文伯。【名漢倬。 晩築孤月亭。 與一代諸賢。 詩酒自娛。】 만고에 변함없는 영강(靈江) 푸른 물이 흐르니북쪽으로는 방장(方丈)과 이어지고 남쪽에는 영주(瀛洲)【어떤 본에는 '주(州)'로 되어 있다.】라네82)강을 따라 옥 부용(芙蓉)을 다듬어 내니거울 위의 푸른 비단 천추에 이름났네그 사이에서 몇 명의 영웅을 낳았나백 년 인생 한바탕 꿈과 같아 물거품이 되었네아, 내가 태어난 것 다행히도 이 땅이었건만용봉(龍鳳)은 이미 떠나가고 하루살이만 남았네마음을 함께 할 이 없어 긴 무지개에게 마음 토로하니저물녘 하늘 향해 휘파람 불자 정신이 편안해지네백 척(尺)의 난초는 만 경(頃)의 물결에 흔들리는데형제를 가득 싣고서 긴 물가에 떠 있네황금 물결 만 곡(斛)으로 옥 두꺼비 목욕시키고한 조각의 푸른 옥 같은 하늘은 은빛 갈고리 흘려 보내네83)〈파인(巴人)〉을 부른 영(郢) 땅의 객 〈백설(白雪)〉을 노래하니84)혜련(惠連)과 강락(康樂)이 푸른 눈길을 보내네85)천지는 한 점이요 하나의 작은 잔이니86)밤낮으로 창해(滄海)에 둥근 달이 떠 있네우리들 조그맣게 이 세상에 부쳐 살고 있으니꿈속을 헤매는 신세로 소요하며 노니네천 년 전의 지난 일 큰 웃음에 부치고서한 국자의 좋은 술87) 그대와 함께 주고받네이별한 뒤로 산 위의 달 이미 기울고 다시 찼으니강머리에서의 멋진 유람 옛 흔적이 남아 있네창랑(滄浪)에서 지내는 형은 화려한 갓끈 씻으려 하고88)석실(石室)에서 지내는 동생은 홀로 구름 갖옷을 걸쳤네89)좋은 가을의 훌륭한 승경 양측의 달에 속해 있건만예라(禮羅)가 높이 걸려 천구(天球)를 울리네90)바라노니 학생(郝生)의 뱃속에 있는 만 권의 책을 볕에 쬐고91)취옹(醉翁)의 장대같이 큰 붓끝을 휘두르기를92)이어 두 시어사(竇侍御使)의 상주하러 들어가는 수레를 돌려93)완화계(浣花溪)의 그윽한 거처에 찾아오기를94)편주(扁舟)에 함께 올라 눈앞 가득 술을 사고95)돛단배 한 척 다시 푸른 강물에 띄우세듣건대 푸른 바다 서쪽 해안이 동쪽 제(齊) 땅이라 하니옛날에 노중련(魯仲連)이 바다 언덕을 밟았다고 하더군96)두 번째곤륜산(崑崙山) 북쪽 줄기 다시 동쪽으로 흐르니흘러서 청구(靑邱)의 삼백 고을97)을 이루었네삼경(三京)98)이 아름다움을 홀로 독차지하지 않으니이남(二南)99)의 웅장한 도읍 몇 년이나 이름을 떨쳤나금강(錦江)100)의 형승 영남과 호남에서 제일이니마치 바퀴처럼 도는 소용돌이가 작은 물거품 가까이 있는 듯두세 명의 준걸이 땅의 영기(靈氣)를 받아 태어났으니가을에는 귀뚜라미 울고 어두워지면 하루살이 나오는 법이라네101)정상(鄭相)이 세운 공업(功業) 동한(東韓)에서 으뜸이니102)큰 길을 따르되 걸음을 알맞게 하였지103)군산(君山)의 밝은 달 금남(錦南)과 접해 있고104)동악(東岳)의 흰 구름 창주(滄洲)와 이어져 있네105)송로(松老)의 문장 오묘한 경지에 들어갔고106)사옹(思翁)의 심학(心學) 심오한 이치를 궁구하였네107)전현(前賢)은 이미 떠나가고 물은 부질없이 흘러가니108)낙엽 진 빈 산에 꽃이 눈을 어지럽히네풍화(風花)와 설월(雪月) 누가 품평하는가109)한 점의 한가로운 갈매기 물결 위에 떠 있네연전의 멋진 유람에 어찌 뜻이 없겠는가들새는 도리어 나의 맑은 노님을 의아해 하네일찍이 연석(燕石)을 가지고 보석 가게에 팔았는데110)좋은 옥돌로 와서 수창해 주심을 외람되이 입었네111)난새가 현포(玄圃)에 날자 뭇 신선 내려오고112)봉황이 구산(緱山)을 떠났어도 맑은 소리 남아있네113)이어 강가의 옛날 노닐던 곳을 생각하니낚싯대 하나 드리우고서 양 갖옷을 걸쳤던 때 언제인가114)물결이 맑은 은하수와 이어지니 흰 비단을 누인 듯하고조수(潮水)가 기암(奇巖)을 때리니 옥 경쇠를 울리는 듯하네115)갈대 섬의 갈매기와 해오라기 꿈이 어찌 깊으랴지나가는 나의 모습 우두커니 바라보며 자주 머리를 드네깊은 산의 병든 학 수풀 언덕에 막혔으며두견새116) 울음소리에 산이 더욱 그윽해지네그윽한 마음으로 매어 두지 않은 배를 한가로이 수리하고다시 복사꽃 떠 있는 봄날 물결을 찾아가네117)형께서는 부디 목란선(木蘭船)118)을 대고서 기다리시기를무릉(武陵)119)이 어찌 홀로 신선의 구역이 되겠는가 萬古靈江水碧流北連方丈南瀛洲【一作州】沿江琢出玉芙蓉鏡上翠錦名千秋其間產發幾英雄百年一夢成浮漚嗟余降生幸此地龍鳳已去餘蜉蝣衷懷無與泄長虹一嘯暮天魂夷猶蘭撓百尺擊萬頃滿載兄弟浮長洲黃金萬斛浴玉蟾碧玉一片流銀鉤巴人郢客奏白雪惠連康樂輸靑眸乾坤一點一小盃日夜滄海團團浮吾人藐然寄寰中夢幻身世逍遙遊千年往事付大笑一杓流霞同子酬別來山月已虧盈勝遊江頭陳迹留滄浪兄擬濯華纓石室弟獨披雲裘良秋佳勝屬兩月禮羅高揭鳴天球願曬郝生腹萬卷揮却醉翁長杠頭仍回竇使入奏車來訪浣花溪居幽扁舟同載滿眼酤一帆更泛淸江流聞道碧海西岸是東齊往聞魯連蹈海邱其二崑山北脉又東流流作靑邱三百州三京不獨擅佳麗二南雄都鳴幾秋錦江形勝甲嶺湖有若轂渦隣微漚數三豪俊稟地靈秋生蟋蟀陰蜉蝣鄭相功業冠東韓式遵大路行猶猶君山霽月接錦南東岳白雲連滄洲松老文章妙入室思翁心學窮深鉤前賢已往水空逝葉落空山花亂眸風花雪月孰品題一點閒鷗波上浮年前勝覽豈無意野鳥却訝吾淸遊曾將燕石衒寶肆猥荷良璞來相酬鸞翔玄圃衆仙下鳳去緱山淸韻留仍思江上舊遊處一竿何日披羊裘波連淸漢練素綃潮打奇巖鳴玉球蘆洲鷗鷺夢豈圓佇望吾行頻擧頭窮山病鶴滯林臯蜀魄一聲山更幽幽懷閒理不繫舟再趁桃花春水流兄須艤待木蘭楫武陵豈獨爲仙區 문백(文伯) 김만영의 종형 김한탁(金漢倬)을 말한다. 자세한 사항은 미상이다. 북쪽으로는……영주(瀛洲)라네 '방장(方丈)'과 '영주(瀛洲)'는 모두 신선이 산다고 하는 중국 전설상의 산으로, 봉래(蓬萊)와 함께 삼신산(三神山)이라 불린다. 중국 동쪽의 발해(渤海) 가운데 있다고 한다. 한 조각의……보내네 송나라 마존(馬存)의 〈장회요(長淮謠)〉에, "황금 물결 만 곡으로 밝은 달 목욕시키고, 푸른 옥 같은 한 조각의 하늘 맑은 가을 머금었네.[黄金萬斛浴明月 碧玉一片含淸秋]"라 한 데서 취해 온 구절이다. '옥 두꺼비'와 '은빛 갈고리'는 모두 달을 형용한 말이다. 〈파인(巴人)〉을……노래하니 '파인(巴人)'과 '백설(白雪)'은 모두 초(楚)나라의 가곡 이름이다. '파인'은 민간에서 유행하던 대중적인 노래인 반면, '백설'은 곡조가 높아서 부르기 어려운 곡이었다. 어떤 사람이 초나라의 국도(國都)인 영(郢)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처음에 〈하리(下里)〉와 〈파인〉을 노래하자 그 소리를 알아듣고 화답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었고, 〈양아(陽阿)〉와 〈해로(薤露)〉를 노래하자 화답하는 사람이 수백 명으로 줄었고, 〈양춘(陽春)〉과 〈백설〉을 부르자 화답하는 사람이 몇 명밖에 되지 않았다는 고사가 전한다. 《文選 卷45 對楚王問》 유람을 하면서 훌륭하고 빼어난 시문을 읊었음을 말한 것이다. 혜련(惠連)과……보내네 '혜련(惠連)과 강락(康樂)'은 남조(南朝) 송(宋)나라 사혜련(謝惠連)과 그 족형 사영운(謝靈運)을 가리킨다. '강락'은 사영운의 봉호다. 또 '푸른 눈길'의 원문은 '청모(靑眸)'로, '반가워하는 눈빛'을 뜻하는 청안(靑眼)을 말한다. 진(晉)나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이 싫은 사람을 보면 백안(白眼)을 뜨고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청안을 뜨고 대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晉書 卷49 阮籍列傳》 형제 간에 시문을 읊으며 기뻐한 모습을 이와 같이 표현한 것이다. 천지는……잔이니 하늘에서 바라보면 매우 작게 보이는 땅과 바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당(唐)나라 이하(李賀)의 시 〈몽천(夢天)〉에, "멀리 제주를 바라보니 아홉 점의 연기와 같고, 큰 바닷물도 한 잔 물을 쏟아 부은 듯하네.[遙望齊州九點煙 一泓海水杯中瀉]"라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이하의 시에서 '제주(齊州)'는 중주(中州) 즉 중국을 가리킨다. 좋은 술 원문은 '유하(流霞)'다. 신선이 마시는 좋은 술을 말한다. 두보의 시 〈종무생일(宗武生日)〉에, "유하를 조각조각 나누어서, 방울방울 천천히 기울이노라.[流霞分片片 涓滴就徐傾]"라 하였다. 창랑(滄浪)에서……하고 '창랑(滄浪)'은 중국의 하천 이름이고, '갓끈을 씻는다'는 것은 진속(塵俗)을 초탈하여 자신의 고결한 신념을 지키는 것을 뜻하는 행위다. 굴원의 〈어부사(漁父辭)〉에,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석실(石室)에서……걸쳤네 '석실(石室)'은 돌로 지은 집이라는 뜻으로, 옛날에 중요한 문서나 물건을 보관하던 곳이다. 여기서는 많은 책을 보관해 둔 서실(書室)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김만영 자신이 서실에서 책을 읽으며 한가로이 지내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예라(禮羅)가……울리네 '예라(禮羅)'는 그물로 새나 물고기를 잡듯이 군주가 예(禮)로써 인재(人才)를 맞아들여 등용하는 것을 뜻한다. 당나라 대숙륜(戴叔倫)의 〈기선사사화상인(寄禪師寺華上人)〉에 "예라에다 벽옥을 더해 와서, 훌륭한 인재를 천거해 구름과 나란히 올린다.[禮羅加璧至 薦鶚與雲連]"라 하였고, 한유(韓愈)의 〈송온조처사서(送溫造處士序)〉에 "대부 오공(烏公)이 하양(河陽)에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석생(石生)을 인재라 하여 예의로 그물을 만들어[以禮爲羅] 그물질하여 막하(幕下)로 데려갔고, 몇 달이 못 되어 온생(溫生)을 인재라 하여 석생을 중매로 삼고 예의로 그물을 만들어 또 그물질하여 막하로 데려갔다."라 하였다. '천구(天球)'는 옹주(雍州)에서 생산되는 옥 이름으로, 색이 하늘빛을 띤다. 《서경(書經)》 〈고명(顧命)〉에, "옥을 오중(五重)으로 진열하고 보물을 진열하니……대옥(大玉)과 이옥(夷玉)과 천구(天球)와 하도(河圖)는 동서(東序)에 있다.[越玉五重 陳寶……大玉 夷玉 天球 河圖 在東序]"라 하였다. 학생(郝生)의……쬐고 '학생(郝生)'은 진(晉)나라 사람 학륭(郝隆)을 가리킨다. 학륭이 칠석날 대낮에 밖으로 나가 하늘을 향해 배를 드러낸 채 누워 있기에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으니, "나는 내 뱃속에 들어 있는 서책들을 볕에 쬐고 있다."라 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世說新語 排調》 취옹(醉翁)의……휘두르기를 '취옹(醉翁)'은 송나라 구양수(歐陽脩)의 호다. '장대같이 큰 붓끝을 휘두른다'는 것은 구양수의 시 〈여산고(廬山高)〉에서 여산(廬山)에 은거한 유환(劉渙)의 고상한 절조를 찬미한 끝에 "장부의 장절로 그대 같은 이 드물 테니, 아 내가 그걸 말하려 해도 장대 같은 큰 붓을 어떻게 얻으랴.[丈夫壯節似君少 嗟我欲說安得巨筆如長杠]"라 한 데서 유래한 말로, 문장 솜씨가 매우 뛰어남을 뜻한다. 두 시어사(竇侍御使)의……돌려 '두 시어사(竇侍御使)'는 당나라 때의 시어사(侍御使) 두군(竇群)을 가리킨다. 두보(杜甫)는 상주하러 가는 두군을 위해 〈입주행증서산검찰사두시어(入奏行贈西山檢察使竇侍御)〉라는 시를 지어 주었다. 《杜少陵詩集 卷10》 완화계(浣花溪)의……찾아오기를 '완화계(浣花溪)'는 두보(杜甫)의 초당(草堂)이 있던 촉(蜀) 땅 성도(成都) 금강(錦江) 지류의 시내 이름으로, 김만영 자신의 은거 공간을 비유한 것이다. 김한탁에게 자신의 거처로 와서 함께 노닐자고 권유한 말이다. 눈앞……사고 두보(杜甫)의 시 〈입주행증서산검찰사두시어(入奏行贈西山檢察使竇侍御)〉에, "그대 위해 술을 사거든 눈앞 가득 살 것이고, 하인에겐 쌀밥 주고 말에겐 푸른 꼴 주리라.[爲君酤酒滿眼酤 與奴白飯馬靑蒭]"라 한 데서 취해 온 말이다. 옛날에……하더군 '노중련(魯仲連)'은 전국 시대 제(齊)나라의 고사(高士)다. 그가 조(趙)나라에 가 있을 때 진(秦)나라 군대가 조나라의 서울인 한단(邯鄲)을 포위하였다. 이때 위(魏)나라가 장군 신원연(新垣衍)을 보내 진나라 임금을 천자로 섬기면 포위를 풀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노중련이 "진나라가 방자하게 천자를 참칭(僭稱)한다면 나는 동해(東海)를 밟고 빠져 죽겠다."라 하니, 진나라 장군이 이 말을 듣고 군사를 후퇴시켰다 한다. 《史記 卷18 魯仲連列傳》 청구(靑邱)의 삼백 고을 곧 우리나라를 가리킨다. 삼경(三京) 남경(南京)인 서울, 중경(中京)인 개성(開城), 서경(西京)인 평양(平壤)을 말한다. 이남(二南) 영남과 호남을 말한다. 금강(錦江) 오늘날의 영산강을 말한다. 나주(羅州)의 옛 이름이 금성(錦城)이므로 영산강을 금천(錦川) 또는 금강(錦江)이라고도 부른다. 두세……법이라네 땅의 영험한 기운에 힘입어 호남에서 훌륭한 인재가 배출될 수 있었다고 말한 것이다. 이는 한(漢)나라 왕포(王襃)의 〈성주득현신송(聖主得賢臣頌)〉에, "세상에 반드시 성스럽고 지혜로운 군주가 있은 뒤에야 현명한 신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범이 포효하면 바람이 거세어지고 용이 일어나면 구름이 일며 귀뚜라미는 가을을 기다려 울고 하루살이는 어두운 때에 나오는 것입니다.[世必有聖知之君而後 有賢明之臣 故虎嘯而風冽 龍興而致雲 蟋蟀竢秋吟 蜉蝣出以陰]"라 한 데서 취해 온 구절이다. 정상(鄭相)이……으뜸이니 '정상(鄭相)'은 정철(鄭澈, 1536~1593)을 가리킨다.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이다. 1551년 조부의 묘가 있는 전라도 담양 창평(昌平)으로 이주하여 기대승(奇大升) 등 당대의 석학들에게 배우고 이이(李珥)‧성혼(成渾) 등과도 교유하였다. 1561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맡았으나, 1578년 진도(珍島) 군수 이수(李銖)의 뇌물사건으로 동인(東人)의 공격을 받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낙향하였다. 1589년 우의정으로 발탁되어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 때 서인의 영수로서 철저하게 동인 세력을 축출하였고, 다음해 좌의정에 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왕을 의주(義州)까지 호종하였고, 다음 해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후 동인의 공격으로 사직하고 강화의 송정촌(松亭村)에 우거(寓居)하다가 58세로 별세하였다. 걸음을 알맞게 하였지 원문의 '유유(猶猶)'는 완급을 적절하게 하는 모양이다. 《예기》 〈단궁 상(檀弓上)〉에, "너무 빨리하면 촌스럽고 너무 느리게 하면 소인의 행위가 되니, 군자는 완급(緩急)을 알맞게 한다.[騷騷爾則野 鼎鼎爾則小人 君子蓋猶猶爾]"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군산(君山)의……있고 중국 호남(湖南) 동정호(洞庭湖) 어귀에 있는 산으로, '상산(湘山)'이라고도 한다. '금남(錦南)'은 김만영이 살고 있는 금강 남쪽을 가리키는 듯하나, 미상이다. 동악(東岳)의……있네 '동악(東岳)'은 중국의 오악(五岳) 가운데 하나인 태산(泰山)을 가리킨다. '창주(滄洲)'는 산수가 아름다운 은사(隱士)의 거처를 뜻하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위(魏)나라 완적(阮籍)의 〈위정충권진왕전(爲鄭冲勸晉王牋)〉에, "창주에 가서 지백에게 인사하고 기산에 올라 허유에게 읍을 한다.[臨滄洲而謝支伯 登箕山以揖許由]"라 한 대목이 보인다. 송로(松老)의……들어갔고 '송로(松老)'는 정철(鄭澈)을 가리킨다. 정철의 호가 '송강(松江)'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원문의 '입실(入室)'은 학문이 상당한 경지에 올랐음을 비유하는 말로, 《논어》 〈선진(先進)〉에, "자로(子路)는 마루에는 올랐으나 아직 방에는 들어오지 못했다.[由也 升堂矣 未入於室也]"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사옹(思翁)의……궁구하였네 '사옹(思翁)'은 박순(朴淳, 1523~1589)을 가리킨다.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화숙(和叔), 호는 사암(思菴)이다. 1553년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 응교, 이조 참의, 대사헌, 예조 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성리학에 밝고 《주역》에 조예가 깊었다. 원문의 '심구(深鉤)'는 심오한 이치를 발견한다는 말로,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숨겨진 것을 찾고 심원한 것을 끌어내어 천하의 길흉을 정하고 천하의 힘써야 할 일을 이루는 것은 시초와 거북보다 더 큰 것이 없다.[探賾索隱 鉤深致遠 以定天下之吉凶 成天下之亹亹者 莫大乎蓍龜]"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물은 부질없이 흘러가니 원문은 '수공서(水空逝)'다. 《논어》 〈자한(子罕)〉에, "공자가 시냇가에서 말하기를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이고 낮이고 멈추는 법이 없도다.'라고 하였다.[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 한 데서 온 말이다. 풍화(風花)와……품평하는가 '풍화(風花)와 설월(雪月)'은 사계절의 경색(景色)을 뜻한다. 소옹(邵雍)의 〈수미음(首尾吟)〉에, "제왕과 제후들이 가볍게 포폄을 행하여 설월과 풍화를 품평하지 않았네.[皇王帝伯輕褒貶 雪月風花未品題]"라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伊川擊壤集 卷20》 일찍이……팔았는데 '연석(燕石)'은 연산(燕山)에서 나는 옥 비슷한 돌로, 볼품없는 물건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송(宋)나라의 어리석은 사람이 오대(梧臺) 동쪽에서 이 돌을 얻어서 돌아와 간직하고 큰 보배라고 여겼는데, 주(周)나라 사람이 보고 웃으며 말하기를 "이것은 연석이니 기와나 벽돌과 다를 것이 없다."라 하자 주인이 노하여 더욱 깊이 감추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太平御覽 卷51》 좋은……입었네 '좋은 옥돌'의 원문은 '양박(良璞)'이다. 아직 가공하지 않은 좋은 옥돌로, 아직 등용되지 않은 훌륭한 인재를 비유하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여기서는 상대인 김한탁을 가리킨다. 즉 빼어난 재주를 지닌 김한탁이 과거에 보잘것없는 자신을 찾아와 함께 유람을 즐겼음을 말한 것이다. 난새가……내려오고 '현포(玄圃)'는 곤륜산(崑崙山) 꼭대기에 있는 신선의 거처로, 기이한 꽃과 나무가 있다고 한다. 봉황이……남아있네 '구산(緱山)'은 주(周)나라 영왕(靈王)의 태자인 왕자교(王子喬)가 학을 타고 신선이 되어 떠났다는 산으로, 구지산(緱氏山)이라고도 한다. 왕자교는 피리를 매우 잘 불어 피리로 봉황새의 울음소리를 낼 수 있었는데, 뒤에 신선이 되어 떠난 지 30여 년 만에 이 산 정상에 백학(白鶴)을 타고 내려왔다가 며칠 머무른 뒤 사람들과 작별하고 다시 떠나갔다고 한다. 《列仙傳 王子喬》 낚싯대……언제인가 이 구절은 한(漢)나라 엄광(嚴光)의 고사에서 취해 온 것이다. 엄광은 뒷날 한(漢)나라를 중흥시키는 광무제(光武帝)와 어릴 적에 함께 수학한 사이인데, 광무제가 즉위하자 이름과 성을 바꾸고 은거하였다. 광무제는 그를 등용하고자 그의 초상을 그려 찾게 하였는데, 제(齊)나라에서 상언(上言)하기를 "어떤 남자가 양 갖옷을 입고 못가에서 낚시질하고 있다.[有一男子 披羊裘釣澤中]"라 하였다. 이에 광무제는 그가 엄광이라 판단하여 불러 오도록 하였으나, 엄광은 물러나 일생을 부춘산(富春山)에서 은거하였다. 《後漢書 卷113 逸民列傳 嚴光》 옥……듯하네 원문은 '명옥구(鳴玉球)'다. '명구(鳴球)'는 옥으로 만든 경쇠를 쳐서 울린다는 뜻으로, 《서경》 〈익직(益稷)〉에 "옥경(玉磬)을 쳐서 울리고 금슬을 어루만지며 노래한다.[戛擊鳴球 搏拊琴瑟以詠]"라 한 대목이 보인다. 두견새 원문의 '촉백(蜀魄)'은 '촉혼(蜀魂)'이라고도 하는데, 곧 두견새를 가리킨다. 전국 시대 촉(蜀)나라 망제(望帝) 두우(杜宇)가 재상 별령(鱉令)에게 대규모 운하 공사를 맡기고 그의 아내와 간음하였다가, 뒤에 이 때문에 왕위를 뺏기고 달아나 두견새가 되었다. 이에 촉나라 사람들이 망제를 측은히 여겨 '촉백(蜀魄)' 또는 '망제혼(望帝魂)'이라 하였고, 그 울음소리가 '불여귀거(不如歸去)'라 하는 것 같다고 하여 '불여귀'라고도 하였다. 《太平御覽》 다시……찾아가네 도연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진(晉)나라 무릉(武陵)의 어부가 복사꽃이 흘러 내려오는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갔다가 진(秦)나라의 난리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이 세상일 잊고 평화롭게 살고 있는 도화원에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陶淵明集 卷6 桃花源記》 목란선(木蘭船) 향목(香木)인 목란(木蘭)으로 만든 배라는 뜻으로, 배에 대한 미칭(美稱)이다. 무릉(武陵) 전설상에 존재하는 선경(仙境)인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