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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14년 이동신(李東信)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朝鮮科宦譜出版所 李東信 朝鮮科宦譜出版所章(4.5×4.5), 南廷燮章(2.1×2.1)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4년 5월에 조선과환보출판소(朝鮮科宦譜出版所)에서 이동신을 전라남도 진도군 모집원으로 선정하는 문서 1914년 5월 조선과환보출판소(朝鮮科宦譜出版所)에서 이동신(李東信)을 전라남도 진도군의 모집원으로 선정하는 망기(望記)이다. 문서 말미에 출판소의 인장을 답인한 뒤 출판소 총무 남정섭(南廷燮)이 이름을 적고 자신의 인장을 답인하였다. 망기는 해당 직임에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선정하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이다. 일반적으로 3명의 후보자를 적었으나[三望] 1명만을 적는 경우도 빈번하였다[單望]. 후보자를 적어 올리면 임명자가 이를 확인한 뒤 적합한 후보자의 이름 위아래에 낙점(落點)하고 인장을 찍어 선정하였는데, 이 문서의 경우 후보자가 1명이므로 따로 낙점하지 않았다. 망기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용어로는 망단자(望單子)가 있다. ?조선과환보?는 조선시대 관직자의 명단을 가문별로 분류한 유서(類書)로 1914년본과 1918년본이 전해지고 있다. 두 판본은 모두 서병찬(徐丙贊)이 서문을 썼고 목판으로 간행되었다. 1914년본의 경우 서문에 남정섭 등이 업무를 총괄하였다[始終尸事]고 기록하였으나 1918년본에서는 남정섭 등의 이름이 삭제되고 말미에 판권지(版權紙)가 추가되었다. 판권지에 따르면 1918년본은 1918년 3월 29일에 인쇄되어 4월 2일에 발행하였고 발행인은 남주원(南㴤元), 발행처는 전라남도 남원군 남원면 양사재(養士齋)이다. 양사재는 주로 지방에서 선비들의 학문 증진을 위해 향교 내에 설치한 교육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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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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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876년 이지만(李之萬)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珍島府使 李之萬 使<押> □…□(8.0×8.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6년 2월 29일에 진도부사가 이지만을 진도향교 유사에 선정하는 망기. 1876년 2월 29일에 진도부사가 이지만을 진도향교 유사에 선정하는 망기이다. 문서에 답인된 인장이 '珍島府使之印'이므로 문서에 나타나는 향교를 진도향교로 추정하였고, ?인신등록(印信謄錄)?에 따르면 진도군(珍島郡)이 진도부(珍島府)로 승격된 시점은 1866년이므로 서두의 병자년을 1876년으로 추정하였다. 향교 도유사 김달홍(金達弘)이 3명의 후보자를 적어 진도부에 올렸고 진도부사가 이지만의 이름 아래 낙점함으로써 이지만이 향교 유사에 선정되었다. 망기는 해당 직임에 합당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선정하기 위해 작성하는 문서이다. 일반적으로 3명의 후보자를 적었으나[三望] 1명만을 적는 경우도 빈번하였다[單望]. 후보자를 적어 올리면 임명자가 이를 확인한 뒤 적합한 후보자의 이름 위아래에 낙점(落點)하고 인장을 찍어 선정하였는데, 이 문서의 경우 후보자가 1명이므로 따로 낙점하지 않았다. 망기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 용어로는 망단자(望單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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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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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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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795년 부옹(婦翁) 분재기(分財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婦翁 愼章學 李慶鶴<着名>, 李慶臣<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95년 윤2월에 장인어른이 딸 사위인 신장학에게 토지와 노비를 물려주면서 작성한 분재기. 1795년 윤2월 22일에 장인어른이 둘째 딸 사위인 愼章學에게 토지와 노비를 물려주면서 작성한 분재기이다. 재산을 물려주는 사연은 적혀 있지 않고, 수취자에게 해당되는 재산목록만 적혀 있다. 따라서 아버지가 여러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주면서 작성한 都文記가 별도로 있을 가능성이 높다. 문서형식상 수취자는 사위이지만 실제로는 딸에게 물려주는 재산으로 보아야 한다. 물려주는 재산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토지: 德津橋 川邊坪에 있는 吊字 자호의 논 5마지기(負數 15부 7속), 德津橋 洑內에 있는 吊字 자호의 논 5마지기(負數 2부), 같은 지역 같은 자호의 논 3마지기(負數 13부), 永興村 前坪에 있는 陶字 자호의 논 8마지기, 德津 後坪에 있는 民字 자호의 논 4마지기(負數 13부 7속), 津橋 洑內에 있는 吊字 자호의 논 6마지기(負數 30부), 군종면 津橋坪에 있는 巨字 자호의 논 4마지기(負數 13부), 북일면 津橋 뒤 長橙坪에 있는 논 4마지기(負數 16부), 細同坪에 있는 裳字 자호의 논 7마지기(負數 28부 8속), 水鉄洞에 있는 唐字 자호의 논 2마지기(負數 6부 7속), 西始面 鳩林可亭子坪에 있는 男字 자호의 논 4마지기(負數 16부), 望湖亭村에 있는 忘字 자호의 논 3마지기, 長山坪에 있는 短字 자호의 논 4마지기(負數 20부 2속), 排置同에 있는 可字 자호의 논 6마지기(負數 20부), 排置同에 있는 覆字 자호의 논 6마지기(負數 24부 1속). 노비 : 매입한 奴 季淡과 婢 命舟 및 그들이 뒷날에 낳은 소생. 물려 주고있는 재산이 토지는 논 15개 필지 71마지기, 노비는 2명에 이르고 있다. 증인으로 5촌 조카인 李慶鶴과 필집으로 7촌 조카인 李慶臣이 문서 작성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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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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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925년 위계관(魏啓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魏啓寬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5년 11월 22일, 위계관이 혼인을 약속한 집안에 택일 이후 혼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에 대하여 문의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와 1925년 12월 20일, 위계관이 딸을 시집보내고 사돈댁에 쓴 인사 편지. 1925년 11월 22일, 위계관(魏啓寬)이 혼인을 약속한 집안에 친사(親事)가 어긋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전하며 택일한 일자가 왜 문제가 되는지 살펴주실 것을 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이다. 1925년 12월 20일, 위계관(魏啓寬)이 딸을 시집보내고 사돈댁에 쓴 인사 편지이다. 하룻밤 잘 만났다며 오랫동안 함께 하며 가르침을 받지 못한 것이 한스럽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상대의 안부를 묻고 자신도 전과 같이 지낸다고 했다. 그리고 새로 맞은 사위가 매우 옥 같고 사랑스러운 청년으로, 온 집안의 큰 보배라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의식을 잘 갖추지 못했다며 죄송하다고 인사했다. 혼인을 치른 이후에 신랑을 둔 사돈댁에 보낸 인사 편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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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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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全羅道內儒生進士李以鉍洪順寬幼學金堯晙等謹齋沐再拜上書于大宗伯閤下伏以董邵南隱於淮水之間而發於韓公之文孫明復處於泰山之下穪於范翁之篇今夫遐方窮巷之隱淪君子若無 閤下之進擧雖有微〖尾〗生孝己之行終歸於泯沒故生等居在一省不可含黙摭實仰籲于大宗伯閤下特軫垂察焉本道古阜郡士人鄭溵弼系出東萊即藝文館應敎諱承甫之十六代孫大護軍諱 絪之十五代孫吏曺判書諱 昇之十四代孫禮曺判書諱可宗之十三代孫吏曺判書 賜號楓川諱守弘之十二代孫兵曺判書諱 傑之十一代孫生員進士諱孝孫之十代孫參奉諱 確之九代孫甲山府使諱 緝之八代孫也淸宦継世行義傳家斯人也天賦性度仁孝節儉事親至誠敬長盡禮及其長也晝出而耕夜歸而讀心主於養親志篤於守身晨昏定省朝夕甘旨去益不懈侍湯三年不離病側扇枕負米之誠可儔於黃香仲由之實蹟冰川之鯉夏雨之雉追述於王公郭氏之至孝丁其考妣之喪泣血靣墨哀毁逾制送終襄奉一遵禮度事死如生三年如初行素食粥望朔省掃山磎成路方今年將七旬每當考妣之諱日齋沐三日追遠感時之痛復如袒括之日大㦲孝者百行之源萬善之道也故篤老年來不知官門杜門蔵蹤巖穴林下不求名譽松籬竹扉自修操履口不道惡言足不入亂方畏天命和人意齊家之節飭躬之行可謂一鄕善義之士十室忠信之人故其在士林之公議玆敢聯名齊聲仰瀆伏願使此至孝篤行特爲 褒揚興孝勸善之地千萬無任祈恳大宗伯 閤下戊寅五月日全羅道儒生 進士宋秀鉉 李以斗 幼學金在永 朴海昇 南濟 柳百煥 李東旭 金龍祖 權鴻壽 李継浩 趙鍾台 羅章燁 尹相賢 鄭海斗 進士金源錫 尹箕浩 幼學吳學源 申泰休 邊昌容 白喆洙 崔遇亨 曺世浩 朴台東 權相奎 許旭 安思忠 蘇輝哲 林益相 全容澤 魏廷碩 任泰永 成基龍 黃在顯 張永豊 宣秉旭 韓柱臣 姜在壽 李容煥 洪鍾浩 郭永箕 孫東學 金錫浩等〈題辭〉至孝篤行若是兼備聞甚欽歎而褒揚之典姑俟公議向事初七日[官印]禮曹[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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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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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876년 무성서원도회소(武城書院道會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武城書院道會所 古阜鄕校 1顆(墨印, 7.5×5.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989 1876년 12월 무성서원 도회소 21인이 고부향교에 의를 행하고 선을 행한 정은필의 실적이 사라져서는 안되므로 유생들이 한목소리로 고부군수에 아뢰어 관찰사와 예조에 고하게 하여 포장의 은전을 입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알린 통문 1876년(고종 13) 12월 무성서원 도회소 21인이 고부향교(古阜鄕校)에 의를 행하고 선을 행한 정은필(鄭溵弼)의 실적이 사라져서는 안되므로 유생들이 한목소리로 고부군수에 아뢰어 관찰사와 예조에 고하게 하여 포장(褒獎)의 은전을 입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을 알린 통문이다. 문서 서두에 '민자건의 효는 『논어』에서 일컬어졌고, 동중서의 행실은 한유의 글에서 드러났으며, 고금에 이르기까지 진실로 실효(實孝)와 독행(篤行)이 있으면 그 사람을 포상하고 그 행실을 천명하는 것이 하나의 큰 성전(聖典)'이라는 인효(仁孝)의 포양(褒揚)을 강조한 뒤에 '얼핏 듣자니 고부군 부안면(富安面)에 사는 선비 정은필의 계보는 동래에서 나온즉 예문관 응교 승보(承甫)의 16대손, 대호군 인(絪)의 15대손, 이조판서 승(昇)의 14대손, 예조판서 가종(可宗)의 13대손, 이조판서 수홍(守弘)의 12대손, 병조판서 걸(傑)의 11대손, 생진사 효손(孝孫)의 10대손, 참봉 확(確)의 9대손, 갑산부사(甲山府使) 집(緝)의 8대손'이라고 열거하여 그가 명문가 자손임을 밝혔다. 실재 정은필의 효행과 독행(篤行)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성품이 온화하고, 인효(仁孝)는 하늘에 근본하며, 덕과 선이 남보다 뛰어났다. 부모를 섬김에 겨울철 온돌을 지피느라 하룻밤에 다섯 번이나 일어났으며, 여름철 잠자리에서 부채질하느라 매 시간마다 3번씩 깼다. 장성하여서는 효로써 옮겨 행하여 자연 속에 은거하고서 두문불출하여 명예를 구하지 않았다.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완색(玩索)하였으며, 하늘의 도를 이용하고 땅에서 나는 이로움을 써서 선대의 제사를 받들고, 자손을 가르치고 친족을 화목하게 하는 도리와 수신(修身) 제가(齊家)의 방도를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경계하여 법도를 잃지 않았다. 평소 심성은 근검 절약하고 남을 호랑이처럼 두려워하였으며, 장차 나이 70세에 사사로이 남과 싸운적이 없었다. 안빈낙도하며 만족할 줄 알고 분수를 알았으며, 입조심과 삿된 생각을 굳게 억제하였다'고 하나하나 거론하여 드러내었다. 마지막으로 '작은 마을의 의를 행하는 사람이자 한 고을의 선을 쌓는 선비가 지금까지도 민몰되어 있으니 이는 절대 사림의 분의(分議)가 아니므로 이에 통문을 유생들이 한목소리로 함께 응하여 바로 관에 아뢰어 관찰사와 예조에 고하게 하여 특별히 포장의 은전을 받게 한다면 매우 다행이겠다'는 뜻을 밝혔다. 무성서원은 현재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에 있는 서원으로 최치원과 신잠(申潛)을 모시고 있다. 처음에는 '태산서원(泰山書院)'이라 칭하였으나 1696년(숙종 22)에 사액을 받아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유지되던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현재 사적 정식 명칭은 '정읍무성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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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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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戊申七月日, 在傑洞做所, 十九日二十日夜, 連拜於京津主人家, 二十一日夜,拜於勿染先亭, 泮家則冠珮威儀, 怳如卿宰. 先亭則琹書棊局, 宛容處士. 昔宋名臣陳茶判相州壽宴日, 其侄修獨獻五湖圖, 故篇內幷及之.戊申秋七月, 三夜拜吾親, 冠珮大夫列, 琹書處士身, 晝宵情感感, 行止道相因, 袖裏五湖畵,留須獻壽茵.七月二十四日, 子 得周 敬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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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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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향약홀기(鄕約笏記) 고문서-치부기록류-홀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향약의 의례 절차를 기록한 향약홀기 절첩본. 향교에서 설행했던 향약 모임의 의례 절차를 기록한 향약 홀기이다. 향교에서 설행하는 향약 모임의 의례 절차를 기록하고 뒷면에는 향음주례(鄕飮酒禮) 시 구성원의 배치도를 그려 놓았다. 절첩의 형식으로 긴 종이가 6면으로 구획되도록 접고 내용을 기록하였다. 향음주례는 매년 음력 10월 향촌의 선비·유생들이 향교·서원 등에 모여 학덕과 연륜이 높은 이를 주빈으로 모시고 술을 마시며 잔치를 하는 일종의유교의례. 향촌의례로 어진 이를 존중하고 노인을 봉양하는 데 뜻을 두었다. 매년 음력 10월에 개성부(開城府), 각 도 · 주 · 부 · 군 · 현에서 길일을 택해 그 고을 관아가 주인이 되어, 나이가 많고 덕이 있으며 재주와 행실이 갖추어진 사람을 주빈으로 삼고 그 밖의 유생을 빈(賓)으로 하여, 서로 모여 읍양(揖讓)하는 예절을 지키며 주연(酒宴)을 함께 하고 계(戒)를 고했던 행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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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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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겉표지)鄕約笏記.(앞면)約正副正直月皆深衣俟于鄕校設先聖先師之像于北壁下◯先以長少序拜于東序【此約副正直月, 先至行禮也.】◯同約者, 如其服, 而至俟於外次. 旣集以齒爲序立於門外東向北上.【東向立以北爲上】◯約正以下出門西向南上.【西向立以南上】◯揖迎入門至庭中北面皆四拜◯約正升堂上香.◯與在位者皆四拜.◯揖分東西向立.◯約正三揖客三讓.◯約正先升客從之.◯皆北面立.◯約正少進西向立副正直月次其右少退.◯直月引導者東向南上.◯長者西向南上.◯約正再拜. 凡在位者皆再拜.◯尊者受禮如儀退北壁下, 南向東上立.◯直月引長者東面如初禮退立於尊者西東上.◯直月又引稍長者東向南上.◯約正與在位者皆再拜.◯稍長者答拜, 退立于西序東向北上.◯直月又引稍少者, 東面北上, 拜約正.◯約正答之.◯稍少者退立于稍長者之南.◯直月以此引少者東北向西北上拜約正.◯約正受禮如儀, 拜者復位.◯又引幼者亦如之.◯旣畢揖各就次.◯約正揖就坐.◯直月抗聲讀約.(뒷면)[鄕飮酒禮時 執事 配置圖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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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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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계유년 신현설(申鉉卨)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申鉉卨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유년 3월 26일, 생 신현설이 자신의 상대로부터 부탁 받은 윤 대감의 명의를 얻어오는 일에 성공했음을 전한 서간. 계유년 3월 26일, 생(生) 신현설(申鉉卨)이 자신이 윤 대감의 명의를 얻어 온 것에 대해 보고하고 지난날 성의 없어 보였던 행동에 사정을 전한 서간이다. 편지를 받고 위로되고 감사했다며 상대가 더욱 복되시게 계시니 자신이 바람과 부응한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다만 편지지에 넘치게 써주신 말씀은 나를 허물하고 저버리지 않으시려는 것이라 송구하여 땀이 등을 적셨다고 했다. 지난날엔 윤대감이 병으로 누워 만날 수가 없었기에 그리 했는데, 이처럼 무성의한 모양이 되었다며 자신을 너무 꾸짖지 말아 달라고 하였다. 이제야 비로소 윤 대감의 명의(名義)를 얻었으니 이것으로 용서를 바란다고 전하고 들어간 돈은 삼(三)을 더하여야 하고, 모두 실제 쓴 돈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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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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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悚企中拜訊, 以慰以感藉. 審尊體增祉, 實副願言. 第溢幅 辭敎, 罔非此漢之辜負, 悚汗沾背. 頃日則尹台病臥, 無路面懇, 故不得已某台生■(前)〔存〕時懸去致此無誠意樣, 幸勿慘誚焉. 今始得尹台名義, 以呈惠諒原宥, 如何如何. 費入加三, 果是實用之致, 未安則切. 餘惟冀恕愛, 姑不備上.癸酉三月卄六日,生 申鉉卨拜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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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피봉)堂姪追候. 完.(簡紙)客秋一札, 迨用披豁, 未知新元寓况連得安善, 逢新觸感, 想非…▣而兒少景光, 亦漸多難抑變矣.…▣谷喪事, 聞甚慘悼, 而女兒住接, 尤…▣(苟)且, 吾種種疚懷, 能有酬遣道否, 仰…▣念切而已. 叔寓狀一行, 遽然經歲,…▣一宿, 今已有年. 大政布邑末擬而…▣蒙点, □(莫)非此苦債之猶未盡艾, 而…▣衰境供劇, 殆難支吾, 瑣味亦難堪…▣, 體欲脫歸而亦不得. 只自愁鬱之中,…▣年多景之難免難測之, 而徒令人促…▣此將奈何奈何. 神川三川, 俱得聞信…▣極孫室憂, 聞極驚念. □□(倽伀)之成人【可幸以去遠】…▣家俱能無故否. 豊德從, 想或已闋制▣…▣始付慰, 此意幷傳之也. 新營將卽□將…▣後孫, 而與吾累朔作僚情親者也.(제2장)玆令存問, 而仲明名字, 以吾善忘痰症, 忽地忘置, 以明字使之存問, 而亦有▣事□□(顧護)之托矣. 如有尋見之事, 則以某字改名爲言, 爲好矣. 諸山侄馬事, 亦有所托, 隨時呈訴, 以爲推出之道, 似好耳.餘眼花近尤甚, 如是胡艸, 只此不具.京耗非遠書可旣, 而領相金致仁, 右〖左〗相李䃼〖福〗源, 右相金熤, 吏判尹蓍東,兵判金履素耳. 明□(橋)台方帶禮判, 而方差貴人嘉禮都監堂上矣. 貴人揀擇, 似以幼學朴浚〖準〗源女爲之耳.丁元月十一日, 堂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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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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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기사년 함평현 전령(傳令) 고문서-첩관통보류-전령 大洞面任 3顆(6.5×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기사년 함평현에서 대동면 면임과 갈구자동 동장에게 내린 전령 기사년 8월 8일에 대동면(大洞面) 면임(面任)과 갈구지동(葛九池洞) 동장(洞長)에게 내린 전령이다. 평릉면(平陵面) 사산(射山)에 사는 이계욱(李啓郁)이 올린 정장(呈狀)에 의하면, 그들의 조모 묘가 대동면 갈구지 산기슭에 있는데 매월촌(梅月村)에 사는 김가(金哥)와 임가(任哥) 두 놈이 무단으로 나무를 베고 있으니 엄히 다스려달라는 내용이었다. 더구나 이 산은 관작(官爵)이 있는 집안의 묘소이므로 이를 용납할 수 없으니 이들을 모두 조사하여 처벌해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함평현에서는 부근 각 마을의 사람들 가운데 혹 함부로 나무를 베는 자가 있으면 법전에 따라 처벌할 것이고, 이를 잘 신칙하지 못한 면임과 동장의 경우에는 곱절의 형률을 적용할 것이니 각별히 유념하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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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876년 조흘첩(照訖帖) 고문서-증빙류-조흘첩 珍島府使 行府使<押> 珍島府使之印(8.0×8.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6년 2월에 진도부사가 소학 입격(小學入格)을 증명하며 작성해 준 조흘첩 1876년 2월에 진도부사가 소학 입격(小學入格)을 증명하며 작성해 준 조흘첩이다. 수취자의 성명과 나이, 거주지는 기재되지 않았다. 조흘(照訖)이란 '대조하여 확인을 마쳤다.'는 뜻으로 과거 응시에 결격 사유가 없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소학』을 고강(考講)하여, 과거에 응시할 수 있다는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녹명(錄名)하고 과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 실시하는 『소학』에 대한 고강을 조흘강이라고 하는데, 이를 통과하였다는 증명서가 조흘첩이었다. 조흘첩은 과거장에 입장할 때 필요하였던 것은 물론이고 입장한 후나 퇴장할 때에도 그 소지 여부를 점검하였다. 조흘첩의 서식은 ⓛ발급자와 발급 목적[某爲照訖事], ②수취자의 성명·연령·거주지 등 정보, ③고강 통과 사실 통지[小學入格爲有置] ④종결어 [帖文成給爲遣 合下仰照驗施行 須至帖者] ⑤작성연월 및 발급자의 착명(着名)으로 이루어진다. 조흘첩은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서식상의 큰 차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수량을 필요로 했던 만큼 그 서식을 목판에 새겨 인출하는 사례가 빈번하였다. 즉 목판에 기본 서식을 새겨 인출한 뒤 공란에 수취자의 정보를 채워넣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문서의 경우는 직접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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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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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1757년 이명룡(李命龍) 입안(立案) 고문서-증빙류-입안 咸平縣監 李命龍 行縣監[着押]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531 1757년 함평현에서 이명룡에게 발급한 노비 매매 사급입안 1757년 함평현에서 이명룡에게 발급한 노비 매매 사급입안(斜給立案)이다. 이명룡은 전복재(田福載)에게 46세 임진생인 계집종 순례와 순례의 다섯 소생을 합하여 총 6구(口)의 노비를 매득하고, 매득 사실을 관에서 공증받기 위해 입안을 신청하는 소지를 제출하였다. 함평현은 이명룡이 점련하여 제출한 소지 및 매매에 참여한 방매인과 증인의 초사(招辭), 그리고 순례가 어떤 경로를 통해 전복재의 소유가 되었는지를 증명하는 본문기(本文記) 등을 근거하여 검토한 이후 이 입안을 발급한 것이다. 순례는 본래 전복재의 증조모인 여옥(汝玉)이 상속받은 변음화(卞音花)의 셋째 소생이었고, 이후 여옥이 손부(孫婦)인 전복재의 모친에게 허급(許給)하였으며, 다시 모친이 아들인 전복재에게 별급해준 노비이다. 전복재가 아우상을 치르면서 생긴 상채(喪債)와 어려워진 생활형편으로 이명룡에게 순례와 순례의 다섯 소생을 모두 합하여 암소 1마리와 전문(錢文) 16냥을 받고 이명룡에게 방매하였다. 함평현에서는 전복재가 가지고 있는 본문기(本文記) 즉 허여성문(許與成文)에 변음화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는 부분에도 규례에 따라 배탈효주(背頉爻周)함으로써 배탈사급(背頉斜給) 입안을 써주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명룡의 노비 소유권을 확인하고 인정해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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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面)采擇古也 月緣分定氷語隨合縱忝蒹藪之依玉樹 豈非琥珀 琥珀取腐芥耶? 銘感罔喩. 謹問至沍,尊棣體啓居寧謐, 顆祝不已. 第親事差穀以呈, 庶不那爲不可耶?伏惟尊照. 謹不備, 上狀.乙丑十一月二十二日 魏啓寬 再拜(後面)一宵良晤, 耳棣尙凉,恨未得長時聯枕穩承淸誨也. 謹未審數間,尊棣體連膺萬祉. 弟狀印昔耳. 陸陸何足道?東床郎儘玉潤可愛, 擧室大紫耳. 凡儀一不成樣, 深切愧赧, 照在如何?餘不備, 謹狀.乙丑十二月二十日, 弟 魏啓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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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女壻愼章學衿北一始▣津橋後▣▣▣▣▣…▣同面德津橋川邊坪 弔字畓 五斗落只 負數十五卜七束庫果▣…▣德津橋洑內 弔字畓 五斗落只 負數二十卜庫果 同面津橋洑內 弔字▣…▣三斗落只 負數 十三卜庫果 同面永興村前坪 陶字畓 八斗落只 負數四▣…▣九束庫果 同面津橋後坪 民字畓 四斗落只 負數十三卜七束庫果 同面津橋洑內 弔字畓 六斗落只 負數三十卜庫果 郡終津橋坪 巨字畓 四斗落只 負數十三卜庫果 北一始津橋後長栍坪畓 四斗落 負數十六卜庫果 同面細同坪裳字畓 七斗落只 負數二十八卜八束庫果 同面水鉄洞 唐字畓 二斗落只 負數六卜七束庫果 西始面鳩林可亭子坪 男字畓 四斗落只 負數十六卜庫果 同面西湖亭村中 忘字畓 三斗落只 負數 庫果 同面長山坪 短字畓 四斗落只負數二十卜二束庫果 同面排置洞 可字畓 六斗落只 負數二十卜庫果 同面排置洞 覆字畓 六斗落只 負數二十四卜一束庫果 買得奴季淡 婢命丹 後所生幷以 許給是齊乾隆六十年乙卯閏二月二十二日財主 翁證 五寸侄 李慶鶴 [着名]筆 七寸侄 李慶臣 [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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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년 정흠만(鄭欽萬)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鄭欽萬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갑오년 10월 28일, 사제 정흠만이 사돈댁에서 안부편지와 함께 보내온 물건들에 감사를 표하고 사돈댁의 요청대로 아들을 보낸다는 내용으로 쓴 답장 편지. 갑오년 10월 28일, 사제(査弟) 정흠만(鄭欽萬)이 사돈댁에서 안부편지와 함께 보내온 물건들에 감사를 표하고 사돈댁의 요청대로 아들을 보낸다는 내용으로 쓴 답장 편지이다. 그리워하던 중 상대의 편지를 받고 가까이서 뵙는 것 같았다고 인사했다. 10월이 저무는 날에 상대가 평안하고 가족모두 잘 지냄을 알았다며 위로되고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자신은 겨우 모양을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는 것, 근래 어린아이에게 문제가 생겨 사적으로 매우 걱정된다고 자신의 근황을 전하였다. 사돈이 보내준 여러 가지 물건에 너무 과념하였다며 도리어 불안하다고 인사했다. 집 아이를 말씀대로 보낸다며 모레 이후 즉시 보낼 것이라고 하였다. 속히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인사한 후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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懸仰之際, 獲拜耑札, 可敵促膝穩晤. 憑審小春旣暮,棣體候連護錦安, 寶覃均慶, 何等慰釋. 査弟僅拄形骸, 而近以稚兒之故, 私切焦悶耳. 第所送諸種, 過念旋爲不安. 家兒依 敎命送, 再明後卽爲命還,如何如何. 握叙之期, 似在於鄙要,不可留待也. 不備伏惟, 謹謝狀.甲午十月二十八日, 査弟 鄭欽萬 拜謝.侄兒冠禮時多(皮封)謹拜謝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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