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흥【선생이 열네 살에 지은 것이다】 感興【先生年十四作】 어떤 사람이 빈 골짜기에 있는데1)가슴에 만 곡의 시름을 삼켰도다근심하는 것은 어찌 하여야 하는가종신토록 해야지 하룻저녁이 아닐세2)우러러 태극의 처음을 생각하니두 기3)가 나뉘어 열리었도다양기는 위로 올라가 맑고음질은 아래도 내려가 탁하도다참된 정수 이로부터 합해지고온갖 변화 이로부터 쪼개지네사람이 태어남과 만물이 생겨남은바로 그 지극한 것을 얻어서이네사람이 가장 귀하게 여겨지는 것은허령하여 진실로 헤아릴 수 없어서이네4)귀히 여길 것은 무슨 일에 있는가다만 도와 덕뿐이라오사도는 본래 하늘에 있는데육합5)에 널리 퍼져 가득하다오천지보다 먼저 생겨서만고토록 혹여라도 쉼이 없다네복희와 신농이 처음 얻었고당요와 우순이 정히 빛냈네삼대6)는 연원이 오래되었으니성인들이 서로들 전하여 얻었다오깊고도 원대한 노나라 문선7)은급급하게 목탁을 울렸네8)이구9)엔 해와 달이 밝고수사10)엔 하늘과 땅이 확 트였어라춘추는 기록이 이미 끊겼고육경은 공연히 역력하여라기수에는 호연한 기운 발하고11)누추한 골목12)에는 봄빛이 푸르도다하나로 꿰뚫는 이치 증씨에게 전하니13)성인의 자손이 마침내 잇게 되었도다14)우뚝하신 호연자15)가양묵을 막을 것을 말하였네16)우리 도의 운이 마침내 곤궁해져서미치광이 진나라가 불을 질러 막았네한나라 당나라에서도 오랫동안 침몰되어푸른 이끼가 죽백17)에 생겼도다하늘의 조화는 멀어도 쇠하지 않으니송나라의 덕 어찌 그리 드높던가사문의 운이 다시금 창성하여일맥으로 염락18)에게 전해졌네하남19)에는 도의 기운 새롭고관민20)에는 광풍이 빛났도다하늘이 회암옹21)을 내어이전 성인의 자취를 잇게 하였네도의 근원이 다시 이로부터 밝아져서찬란하게 별과 해처럼 환해졌도다줄 끊어진 요금이 이어지고먼지 쌓인 보갑이 씻겨졌네22)정통이 힘입어 실추되지 않아추나라 노나라와 공적을 견주었네선생이 한 번 떠나가신 뒤로세상인심 뒤집힘이 많았네천년의 세월 동안 쓸쓸도 하여욕망의 물결이 거세게 파도쳤다오영원히 밤인 채로 다시는 날이 밝지 않아어두침침하고도 길이 적막하였네간혹 흥기하는 자가 있었으나좌선하며 육구연을 배우는 이가 많았네23)머리는 있으나 그 꼬리를 잃었으니누가 본말을 밝힐 수 있었으리오또다시 박잡한 무리가 있어뿌리를 버리고 가지와 잎만을 취하였네초려에서 남몰래 시름에 겨웠으나그런데도 잘못을 면치 못하였네분분하게 두서가 많아마침내 돌아가 머물 곳이 없게 되었네하물며 이곳은 만리 밖이요바다 모퉁이 한 외딴 지역임에랴허둥지둥 이록을 쫓느라천작24)을 닦을 겨를 없었네예의가 이미 꽉 막혔으니온 세상이 모두 황폐한 집25)이었다오포옹26)은 닭 속의 봉황처럼 출중하였고점필재27)는 그 자취를 좇았다네예닐곱의 어진 이들 성대히 일어났으니도수28)가 그 적통을 이었다오슬프도다! 한나라는 금고하였고29)참혹하도다 송나라는 위학이라 하였네30)붕새 날아오르자 돌풍이 꺾어버린 것 아니랴31)난초 싹이 트자 서리가 먼저 내렸다오남은 향기 끊어진 지 이미 오래고큰 장마 당하여 때마침 어려웠네지금까지도 학철32)에서 허우적거리니길이 갈리어 남북이 따로 없게 되었네갈팡질팡 길을 잃은 사람들이여문을 나서서는 다시 들어가기를 잊었도다33)그러므로 나와 같은 소자는밤낮으로 늘 시름에 잠긴다네근심해봤자 끝내 얻을 것 없으니지의만 한갓 움츠러들 뿐이라오34)사도는 진실로 어떤 물건인가한 번 제대로 보기라도 해보았으면내가 옛 성인의 글을 살펴보니도는 본래 콩과 조와 같은지라일상생활하는 사이에 행해지는 것이요내 마음 깊숙이 간직된 것이라 하네구하면 반드시 얻는 법이니무슨 까닭으로 항상 울적하리오구하기를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놓아버린 뜻을 잘 수렴하는 것일 테지얻기를 또한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먼저 마음의 검은 때를 씻어야 한다네선행을 힘써서 참으로 쌓는다면자연스레 그 악은 없어지게 된다오옛날에 선을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두 그릇에 흰콩과 붉은 콩을 놓았다오처음엔 대부분 붉은 것이 그릇을 채우더니오랫동안 보니 대부분 흰 것이 쌓였다오35)뜻을 세우는 것은 응당 이와 같이 하여야외부의 적을 물리칠 수 있다오요임금도 사람이요 나도 사람이니하기만 하면 모두 이와 같이 된다네36)주일무적37)이라는 글자는잡은 것은 요약되나 그 베풂은 넓다네처음을 탐색하고 또 끝을 돌이켜야지극히 치밀하기가 자물쇠와 같아진다오머리가 없으면 무엇을 이겠는가발이 있으니 바야흐로 넘어지지 않으리라두 가지 중에 하나라도 치우쳐서는 안 되니밖을 방정하게 하고 안을 곧게 하여야 한다네허물이 있으면 서둘러 고치는 것이 귀하고돌을 쪼아야 옥을 볼 수 있다오오직 광자만이 성인이 될 수 있으니닭이 울면 모름지기 깨달을 수 있으리라나의 말이 진실로 망령되지 않으니절차탁마하는 것은 그대들의 몫일세아! 우리 당의 소자들아힘쓰고 힘쓰며 또 노력할지어다 有人在空谷胷呑愁萬斛所憂如之何終身非一夕仰思太極初二氣相分闢陽氣上而淸陰質下而濁眞精自此合萬化由是折人生與品物乃得其所極人爲最貴者虛靈誠不測所貴在甚事只是道與德斯道本在天彌漫於六合生於天地先萬古無或息羲農初得之唐虞正光赫三代久淵源聖聖相傳得穆穆魯文宣汲汲鳴木鐸尼丘日月明洙泗乾坤廓春秋筆已絶六經空歷歷沂水浩氣發陋巷春光碧一貫傳曾氏聖孫乃得續巖巖浩然子能言拒楊墨吾道運乃竆狂秦烟火塞漢唐久淪沒莓苔生竹帛天造遠不衰宋德何嶷嶷斯文運再昌一脉傳濂洛河南道氣新關閩光風奕天生晦庵翁得接前聖跡道源復此明炳炳星日白瑤琴絶絃續寶匣塵埃滌嫡統賴不墜並駕鄒魯績先生一去後世情多翻覆寥寥千載間慾浪波怒激永夜不復曙沉沉長寂寂間或有作者坐禪多學陸有頭失其尾誰能明本末又有駁雜徒舍根取枝葉草廬暗生愁猶且不免失紛紛頭緖多無地竟歸宿况此萬里外海隅一孤域遑遑逐利祿無暇修天爵禮義已充塞擧世皆荒屋圃翁鳳出鷄佔畢追其蹟蔚蔚六七賢陶叟承迺適嗟矣漢禁錮慘矣宋僞學鵬騰颶毋挫蘭茁霜先落餘香絶已久大霖當時澁沉涸及今日路歧無南北倀倀失道人出戶復忘入所以余小子日夜長慼慼慼慼竟無得志意徙局束斯道信何物願一見其的吾觀古聖書道本如菽粟行於日用間藏諸吾心曲求之必得之何用常欝抑求之奈如何放志收斂克得之亦如何先淸心上黑爲善力眞積自然消其惡古有作善人兩器豆白赤初多赤滿器久見多積白立志當如此可以防外賊堯人我亦人服爲皆是若主一無適字操約其施博原始又返終至密猶鎖鑰無頭何所戴有足方不蹶二者一不偏外方而內直有過貴速改琢石可見玉惟狂可作聖鷄鳴須得覺吾言信不妄在爾能切琢嗟吾黨小子勉勉復勖勖 어떤……있는데 빈 골짜기에 있다는 것은 《시경(詩經)》 「소아(小雅) 백구(白駒)」에 "희디흰 백구가 저 빈 골짜기에 있네.[皎皎白駒, 在彼空谷]"라고 한 데서 온 말로, 귀인이 산속에 깊이 은둔함을 형용하는 말로 쓰인다. 근심하는……아닐세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군자는 종신토록 하는 근심은 있어도 하루아침의 걱정은 없는 것이다. 근심하는 바로 말하면 있으니, 순임금도 사람이며 나도 사람인데 순임금은 천하에 모범이 되시어 후세에 전할 만하시거늘 나는 아직도 향인이 됨을 면치 못하였으니, 이는 근심할 만한 것이다. 근심하면 어찌하여야 하는가. 순임금과 같이 할 뿐이다.[君子有終身之憂, 無一朝之患也. 乃若所憂則有之, 舜人也, 我亦人也, 舜爲法於天下, 可傳於後世, 我由未免爲鄕人也, 是則可憂也. 憂之如何? 如舜而已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두 기 음(陰)과 양(陽)을 가리킨다. 허령(虛靈)하여……없어서이네 마음을 가리켜 한 말로, 사람에게는 이러한 마음이 있어서 가장 귀하게 여겨진다고 한 것이다. 허령은 우리 마음이 텅 빈 가운데 신령스럽다는 말로, 《대학장구(大學章句)》 경1장(經一章)의 "재명명덕(在明明德)"에 대한 주희(朱熹)의 주석에 "명덕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늘로부터 얻은 것으로, 허령하고 어둡지 않아 온갖 이치를 갖추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明徳者, 人之所得乎天而虚靈不昧,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라고 하였다. 또, 《소학(小學)》 「가언(嘉言)」에 "마음은 강자 안에 있어야 한다.[心要在腔子裏.]"라고 한 데 대하여, 주희는 "마음이란 물건은 지극히 허령하여 신묘하고 헤아릴 수 없어 항상 한 몸의 주인이 된다.[心之爲物, 至虛至靈, 神妙不測, 常爲一身之主.]"라고 하였다. 또, 《주자대전(朱子大全)》 권4 「재거감흥(齋居感興)」 20수(首) 중 세 번째 시에 "사람의 마음은 오묘하여 헤아릴 수 없으니, 출입함에 기의 기미를 타네.[人心妙不測, 出入乘氣機.]"라고 하였다. 육합(六合) 천지(天地)와 사방(四方)으로, 온 세상을 의미한다. 삼대(三代) 하(夏)ㆍ은(殷)ㆍ주(周)를 말한다. 노(魯) 나라 문선(文宣) 공자(孔子)를 말한다. 당(唐) 나라 현종(玄宗)이 736년 공자를 문선왕(文宣王)에 추증(追贈)하였다. 급급(汲汲)하게……울렸네 공자가 세상에 도(道)를 행하기 위하여 마냥 바쁘게 천하를 두루 돌아다녔던 것을 말한다. 《법언(法言)》 「학행(學行)」에, "요ㆍ순ㆍ우ㆍ탕ㆍ문ㆍ무는 급급하였고, 중니는 황황했다.[堯舜禹湯文武汲汲 仲尼遑遑]"라고 하였고, 반고(班固)의 「답빈희(答賓戲)」에 "공자의 앉은 자리는 다스릴 겨를이 없었다.[孔席不暖.]"라고 하였다. 《文選 卷45》 목탁을 울렸다는 것은 《논어》 「팔일(八佾)」에 "의(儀) 고을의 봉인(封人)이 공자를 뵙고 나서 말하기를 '천하가 무도한 지 오래되었으니, 하늘이 장차 부자를 목탁으로 삼으시리라.[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이구(尼丘)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에 있는 산으로,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이 어머니 안씨(顔氏)와 함께 이구산(尼丘山)에 기도하여 공자를 얻었으므로 이름을 구(丘)라 하고, 자를 중니(仲尼)라고 하였다. 《史記 孔子世家》 수사(洙泗)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를 지나는 두 개의 강물 이름 곧 수수(洙水)와 사수(泗水)로, 이곳이 공자의 고향에 가깝고 또 그 강물 사이의 지역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기수(沂水)에는……발하고 호연한 기운이란 인욕(人慾)이 없고 천지의 만물과 함께 유행하여 천리(天理)가 충만한 기상을 말한다. 각자 자신의 뜻을 말해 보라는 공자의 명에 따라, 제자 증점(曾點)이 "모춘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을 쓴 어른 대여섯 사람과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하였다. 《論語 先進》 누추한 골목 공자의 제자인 안연(顏淵)이 거처했던 곳으로, 보통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자세를 의미하는 말이다. 《논어》 「옹야(雍也)」에 "어질다, 안회여! 한 그릇 밥과 한 표주박 물을 마시며 누추한 골목에 사는 것을 사람들은 근심하며 견뎌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回也!]"라고 하였다. 안회는 안연이다. 하나로……전하니 하나로 꿰뚫는 이치라는 것은 《논어》 「이인(里仁)」에 공자(孔子)가 제자 증삼(曾參)을 불러서 "우리의 도는 하나의 이치로 모든 일을 꿰뚫고 있다.[吾道一以貫之.]"라고 하자, 증삼이 "네, 그렇습니다.[唯.]"라고 대답하였고, 다른 문인들이 공자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증삼이 말하기를 "부자의 도는 바로 충서이다.[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증삼은 여기에서 말한 증씨(曾氏), 곧 증자(曾子)이다. 성인의……되었도다 공자가 증자에게 전한 도통이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에게 전해진 것을 의미한다. 호연자(浩然子) 맹자를 가리킨다.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맹자가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我善養吾浩然之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양묵(楊墨)을……말하였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맹자가 "능히 양묵을 막을 것을 말하는 자는 성인의 무리이다.[能言距楊墨者, 聖人之徒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또, 맹자가 이단(異端)의 학문이 횡행하는 것을 우려하여 "내가 이 때문에 두려워하여 선성의 도를 보위하여 양묵을 막으며 바르지 않은 말을 추방하여 부정한 학설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吾爲此懼, 閑先聖之道, 距楊墨, 放淫辭, 邪說者不得作.]"라고 하였다. 참고로, 한유(韓愈)의 「여맹간상서서(與孟簡尙書書)」에 "양자운(揚子雲)이 이르기를 '옛날에 양묵적이 정도를 막으므로 맹자가 말로 밝혀 물리쳐서 환하게 터놓았다.' 하였다.[揚子雲曰, 古者楊墨塞路, 孟子辭而闢之廓如也.]"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古文眞寶後集》 양묵은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으로, 유가에서는 이들을 이단(異端)으로 보아 물리치기를 힘썼다. 양주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인 자애설(自愛說)을 주장하였고, 묵적은 극단적인 박애주의인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였다. 죽백(竹帛) 고대에 종이가 없을 때 죽간(竹簡)과 명주에 글을 썼던 데서 온 말로 사서(史書)나 서책을 뜻한다. 염락(濂洛) 염계(濂溪)의 주돈이(周敦頤), 낙양(洛陽)의 정호(程顥)ㆍ정이(程頤) 형제를 합하여 이르는 말이다. 하남(河南) 중국 낙양(洛陽)의 별칭으로, 그곳에서 이학(理學)을 천명(闡明)했던 송(宋)나라 때의 대학자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형제를 가리킨다. 관민(關閩) 관중(關中)의 장재(張載), 민중(閩中)의 주희(朱熹)를 합하여 이르는 말이다. 회암옹(晦庵翁) 주희(朱熹)를 가리킨다. 줄……씻겨졌네 사도가 다시 밝아짐을 의미한다. 증극(曾極)이 도주(道州)에 유배되었을 때, 당시 간신(奸臣) 한탁주(韓侂冑)에 의해 위학(僞學)이라는 배척을 받고 역시 도주에 유배 중이던 채원정(蔡元定)에게 부친 시이다. "거문고만 공연히 보갑에 들어 있을 뿐, 줄이 끊어져 소리는 들을 수가 없네그려.[瑤琴空寶匣, 絃斷不堪聽.]"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詩人玉屑 卷19》 좌선(坐禪)……많았네 육구연(陸九淵, 1139~1192)은 자는 자정(子靜), 호는 존재(存齋) 또는 상산(象山)이다. 주희와 함께 당대에 명망이 높았는데, 학문적 견해는 서로 대립적이었다. 육구연은 '심즉리(心卽理)'의 주관적 유심론(主觀的唯心論)을 주창하여 주자(朱子)의 '성즉리(性卽理)'와 천리인욕설(天理人欲說)에 대항하였는데, 이때부터 유학은 주(朱)와 육(陸)의 두 학파로 갈라졌다. 뒤에 육학은 왕양명(王陽明)에게 계승되어 양명학(陽明學)으로 발전하였다. 이때 주희의 학문을 따르는 학자들이 내세운 논리 중 가장 중요한 명분은 육왕의 학문적 방향이 선종(禪宗)을 닮았다는 것이었다. 이는 좌선을 통해 모든 사념을 잊으려는 공부가 오히려 잡념을 불러일으켜 한순간도 쉬지 않고 잡념과 싸워야만 하게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천작(天爵) 천연적인 작위(爵位)로, 고상한 도덕과 수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인의충신과 선을 좋아하여 게을리하지 않는 것은 천작이다.[仁義忠信樂善不倦, 此天爵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황폐한 집 주희가 말하기를, "대개 몸은 하나의 집과 같고 마음은 한 집의 주인과 같은 것이다. 이 집의 주인이 있은 뒤에야 문호를 청소하고 사무를 정돈할 수 있으니, 만약 주인이 없다면 이 집은 하나의 황폐한 집에 불과할 뿐이다.[蓋身如一屋子, 心如一家主. 有此家主然後, 能灑掃門戶, 整頓事務. 若是無主, 則此屋, 不過一荒屋爾.]"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心經附註 卷3》 포옹(圃翁) 정몽주(鄭夢周, 1337~1392)로, 그의 호가 포은(圃隱)이므로 이른 말이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으로, 점필재는 그의 호이다. 도수(陶叟) 이황(李滉, 1501~1570)으로, 도수는 그의 호이다. 한나라는 금고(禁錮)하였고 조선의 유학(儒學)에 대한 박해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후한 환제(桓帝) 때 정권을 전횡하던 환관(宦官)들이 자기들을 비판한 진번(陳蕃), 이응(李膺) 등의 우국지사(憂國之士)들을 도리어 조정을 반대하는 당인(黨人)으로 몰아 옥에 가두거나 죽이고 종신금고(終身禁錮)에 처했던 이른바 당고(黨錮)의 화(禍)를 두고 한 말이다. 《後漢書 卷67 黨錮列傳》 송나라는……하였네 위와 마찬가지로, 조선의 유학에 대한 박해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송나라 영종(寧宗) 때 한탁주(韓侘冑)가 정권을 잡자, 그 추종자인 호굉(胡紘)이 한탁주의 사주를 받아 주희ㆍ조여우(趙汝愚)를 축출하려고 하였다. 이에 조여우를 탄핵하고 또 조여우가 주희를 끌어들여 위학(僞學)을 한다고 비방하였던 일련의 일을 가리킨다. 곧, 한탁주가 정권을 잡고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제거하기 위하여 도학(道學)을 위학이라 칭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붕새……꺾어버린 것 아니랴 원문은 '鵬騰颶毋挫'이다. 내용상 앞뒤의 문맥이 통하지 않아 '毋'를 빼고 번역하였다. 학철(涸轍) 수레바퀴 자국에 아주 조금 괸 물을 말한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의하면, 붕어 한 마리가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에 허우적거리면서 길 가는 장주(莊周)에게, 한 말이나 한 되쯤 되는 물을 가져다가 자기를 살려 줄 수 있겠느냐고 하므로, 장주가 장차 오월(吳越) 지방으로 가서 서강(西江)의 물을 끌어다 대 주겠다고 하자, 그 붕어가 화를 내며 "나는 지금 당장 한 말이나 한 되쯤의 물만 얻으면 살 수 있는데, 당신이 이렇게 엉뚱한 말을 하니, 일찌감치 나를 건어물 가게에서 찾는 것이 낫겠다.[吾得斗升之水然活耳, 君乃言此, 曾不如早索我於枯魚之肆.]"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곤경에 처한 것을 비유한다. 문을……잊었도다 유학을 버린 이후 바른 학문으로 되돌아올 줄 몰랐다는 의미이다. 徙 저본에는 '徙'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근거하여 '徒'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옛날에……쌓였다오 스스로를 경계하며 선을 행함을 의미하는 말이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영조(英祖) 즉위년 10월 24일 기사에 "조변(趙抃) 같은 경우는 또 항상 붉은 콩과 검은 콩을 놓고 한 번이라도 삿된 생각이 들면 바로 검은 콩을 놓고 한 번이라도 착한 생각이 들면 바로 붉은 콩을 놓았는데, 처음에는 검은 콩이 많았으나 나중에 가서는 붉은 콩이 많아지는 경지에 이르렀다 합니다."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이를 가리키는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요임금도……된다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자기가 원하는 사람처럼 그대로만 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亦爲之而已矣.]"라고 전제한 뒤에, "요 임금의 옷을 입고, 요 임금의 말을 외우고, 요 임금이 행한 대로 행하면, 바로 요 임금이 되는 것이다.[服堯之服, 誦堯之言, 行堯之行, 是堯而已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일무적(主一無適) 정이(程頤)가 '경(敬)'을 설명하기 위해서 제시한 하나의 명제이다. 주일(主一)은 하나를 위주로 한다는 뜻으로 마음을 전일(專一)하게 하는 것을 말하고, 무적(無適)은 옮겨 감이 없다는 뜻으로 마음속에 잡념이 없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정수언(二程粹言)》 권상(卷上)에 "주일을 경이라 하고, 무적을 일이라 한다.[主一之謂敬 無適之謂一]"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주희는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20에 "정자가 말한 주일무적의 주일은 단지 전일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程子所謂主一無適, 主一只是專一.]"라고 하였고, 또 《논어》 「학이(學而)」의 '경사이신(敬事而信)'에 대한 주희(朱熹)의 주석에 "경은 주일무적을 의미한다.[敬者, 主一無適之謂.]"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