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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술 自述 인간 세상 돌아봄에 풍진(風塵)이 가득하니영수(潁水)에서 귀 씻은 이 누구이며 그대로 지나친 이 누구인가24)세도(世道)와 만약 끝내 맞지 않는다면서산(西山)에서 백이(伯夷)의 객이 되어 살아갈 것이네25)두 번째【당시 영평(永平)26)에서 금강(錦江)27) 가로 거처를 옮겼다.】담소하는 사이에 종적을 감추고 거두니본성을 기르고 정신을 수양하여 절로 한가롭네근심과 즐거움 더는 세상에 대한 생각이 없으니백년토록 즐거운 얼굴28)로 지낼 수 있을 것이네 人間回首足風塵洗耳何人過?濱世道若將終不合西山期守伯夷賓其二【時自永平移居錦濱】藏踪斂跡笑談間養性頤神自在閒憂樂更無關世慮百年歸宿好容顔 영수(潁水)에서……누구인가 요(堯) 임금 때 허유(許由)와 소부(巢父)라는 고사(高士)가 기산(箕山)에 은거하고 있었다. 허유는 요 임금이 천하를 물려주려 하자 이를 거절하고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하면서 영수(潁水)에서 귀를 씻었으며, 소부는 영수 가로 소를 끌고 와서 물을 먹이려고 하다가 허유가 귀를 씻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러운 물을 먹일 수 없다고 하면서 소를 끌고 상류로 올라가서 먹였다 한다. 《高士傳 許由》 서산(西山)에서……것이네 자신이 끝내 세도(世道)와 어울리지 못한다면 백이(伯夷)처럼 세상에 나가지 않고 지조를 지키며 곤궁하게 살아갈 것임을 말한 것이다. 은(殷)나라 고죽군(孤竹君)의 아들인 백이와 숙제(叔弟)는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정벌하려 하자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서 만류했으나 듣지 않았다. 이에 주나라 곡식을 먹을 수 없다 하여 서산(西山)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으며 숨어 살다가 굶어 죽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史記 卷61 伯夷列傳》 영평(永平) 전라도 나주(羅州) 남평현(南平縣)의 다른 이름이다. 본래 백제의 미동부리현(未冬夫里縣)이었는데, 신라가 현웅(玄雄)이라 고쳐서 무주(武州)의 영현(領縣)으로 하였고, 고려가 남평현으로 고쳐서 나주에 소속시켰다. 《新增東國輿地勝覽 卷36 全羅道 南平縣》 금강(錦江) 오늘날의 영산강을 말한다. 나주(羅州)의 옛 이름이 금성(錦城)이므로 영산강을 금천(錦川) 또는 금강(錦江)이라고도 부른다. 즐거운 얼굴 원문은 '호용안(好容顔)'이다. 도연명(陶淵明)의 시 〈의고(擬古) 9수〉 중 제5수에, "동방에 선비 하나, 옷차림 늘 허름하네. 한 달에 아홉 번 밥을 만나고, 십 년 동안 갓 하나 썼다네. 고달픔 이에 비할 바 없지만, 언제나 즐거운 얼굴이라네.[東方有一士 被服常不完 三旬九遇食 十年著一冠 辛苦無此比 常有好容顔]"라 한 데서 유래한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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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깬 뒤 자조(自嘲)하며 醒後自嘲 정밀한 쇠를 무수히 제련하여 용천(龍泉)37)을 주조하니틈 사이로 새어드는 달빛 그림자가 하늘까지 비치네술잔 가득한 맑은 죽엽(竹葉)38)을 쪼개어하단전(下丹田)이 황폐해져 버리는 것을 면하게 하리39) 精金百鍊鑄龍泉隙月斜明影射天斫破滿樽淸竹葉免敎荒却下丹田 용천(龍泉) 보검의 이름이다. 진(晉)나라 때 북두성과 견우성 사이에 늘 보랏빛 기운이 감돌기에 장화(張華)가 예장(豫章)의 점성가(占星家) 뇌환(雷煥)에게 물었더니 보검의 빛이라 하였다. 이에 풍성(豊城) 감옥터의 땅 속에서 춘추 시대의 보검인 용천과 태아(太阿)를 얻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晉書 卷36 張華傳》 맑은 죽엽(竹葉) 원문은 '청죽엽(淸竹葉)'이다. '죽엽(竹葉)'은 술 이름으로 죽엽청(竹葉淸) 또는 죽엽청(竹葉靑)이라고도 하는데, 전하여 미주(美酒)를 가리킨다. 《주보(酒譜)》에 의하면, 창오(蒼梧) 지방에서 술을 빚을 때 청결을 위해 죽엽을 섞어 빚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술잔……하리 '하단전(下丹田)'은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세 곳의 단전 중 하나로, 배꼽 아래 한 치쯤 되는 곳을 일컫는다. 김만영이 술에서 깬 뒤, 앞으로는 술을 절제하여 단전(丹田)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 권18 〈외도부(外道部)‧수양(修養)〉에, "상고하건대, 《도경(道經)》에서 말하는 단전(丹田)은 하단전(下丹田)을 가리켜 말한 것이 많다. 당나라 유허백(劉虛白)은 술을 좋아하였는데 시를 지어 말하기를, '취향(醉鄕)에는 호세(戶稅)가 없음을 알겠으니, 하단전이 황폐해지는 대로 내버려두네.'라 한 것이 이것이다.[按道經所謂丹田 多指下丹田而言 唐劉虛白嗜酒 有詩曰 知道醉鄕無戶稅 任他荒却下丹田是已]"라 한 대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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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孟子 호연(浩然)한 기운261) 가을 하늘과 닮았으니추(鄒)나라에서 아성(亞聖)의 자태 지닌 분 나왔다네262)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학설 힘껏 배척하고263)문왕(文王)과 무왕(武王), 요순(堯舜)의 다스림을 회복하는 데 뜻을 두었네제 선왕(齊宣王)과 양 혜왕(梁惠王)은 맹자의 말을 써 주지 않았고264)안평중(安平仲)과 관이오(管夷吾)가 한 일 하지 않기로 맹세했네265)인욕(人欲)이 이미 다함에 천리(天理)가 바루어지니지금까지 이어지는 공덕 후세 사람들이 알고 있네 浩然之氣秋天像孕出鄒邦亞聖姿力排楊朱墨翟徒志復文武唐虞治齊宣梁惠言無用平仲夷吾矢不爲人欲已消天理正至今功德後人知 호연(浩然)한 기운 천지(天地) 사이에 성대히 유행(流行)하는 정기(正氣)를 말한다. 맹자가 자신의 부동심(不動心)을 말하면서 "나는 말을 알며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라 하니, 공손추(公孫丑)가 "감히 묻겠습니다. 무엇을 호연지기라 하는 것입니까?[敢問 何謂浩然之氣]"라고 물었다. 이에 맹자가 이르기를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 그 기운 됨이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니, 곧음으로 길러서 해치지 않으면 천지 사이에 꽉 차게 되느니라.[難言也 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乎天地之間]"라 한 데서 나온 말이다. 《孟子 公孫丑上》 추(鄒)나라에서……나왔다네 맹자는 전국 시대 추(鄒)나라 출신이며, '아성(亞聖)'은 '다음가는 성인'이라는 뜻으로 맹자를 가리키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양주(楊朱)와……배척하고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은 전국 시대의 학자들로 각각 위아설(爲我說)과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였는데, 맹자는 이들의 설을 극력 비판하였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양주는 자신만을 위하니 이는 임금을 무시하는 것이요, 묵적은 똑같이 사랑하니 이는 아비를 무시하는 것이다. 아비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하면 이는 금수이다.……양주와 묵적의 도가 종식되지 않으면 공자의 도가 드러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부정한 학설이 백성을 속여 인의(仁義)를 꽉 막는 것[楊氏爲我 是無君也 墨氏兼愛 是無父也 無父無君 是禽獸也……楊墨之道不息 孔子之道不著 是邪說誣民充塞仁義也]"라 한 대목이 보인다. 제 선왕(齊宣王)과……않았고 제 선왕(齊宣王)과 양 혜왕(梁惠王)은 전국 시대의 제후다. 맹자는 이들의 초빙을 받아 왕도 정치를 실현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맹자집주(孟子集註)》 〈서설(序說)〉에, "도에 이미 통달한 뒤에 제나라에 가서 선왕을 섬겼으나 선왕이 쓰지 못하였고, 양나라에 갔으나 양 혜왕도 말한 바를 행하지 못하였으니, 오활하여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여김을 받은 것이다.[道旣通 游事齊宣王 宣王不能用 適梁 梁惠王不果所言 則見以爲迂遠而濶於事情]"라 한 대목이 보인다. 안평중(安平仲)과……맹세했네 '안평중(安平仲)'은 춘추 시대 제 경공(齊景公) 때의 재상 안영(晏嬰)이고, '관이오(管夷吾)'는 제 환공(齊桓公) 때의 재상 관중(管仲)으로, 모두 제후의 패업(霸業)을 도운 인물들이다. 맹자는 이들과 달리 왕도(王道)를 추구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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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읊다 吟雪 세밑의 강 하늘에 눈이 펑펑 쏟아지니천지가 모두 수정 주머니 속에 들어갔네눈발 흩날리는 푸른 바다 은색 용이 꿈틀대고눈 날려 떨어지는 단산(丹山)273) 옥봉(玉鳳)이 높이 나네만 그루 배꽃 희고 고운 자태 뽐내고천 줄기 대나무 잎 푸른빛을 잃었네양원(梁園)에서 눈 읊기에는 재주가 비록 부족하나274)파수(灞水)에서 매화 찾으니 흥이 다시 생겨나네275) 歲暮江天雪正雱乾坤盡入水晶囊飄零碧海銀龍動飛落丹山玉鳳翔萬樹梨花誇素艶千竿竹葉失靑光梁園賦雪才雖短灞水尋梅興更長 단산(丹山) 봉황이 산다는 전설적인 산으로, 단혈(丹穴)이라고도 한다. 《산해경(山海經)》 〈남산경(南山經)〉에, "단혈의 산에……새가 사는데, 그 모양은 닭과 같고 오색 무늬가 있으니, 이름을 봉황이라고 한다.[丹穴之山……有鳥焉 其狀如雞 五采而文 名曰鳳皇]"라 하였다. 양원(梁園)에서……부족하나 서한(西漢)의 양 효왕(梁孝王) 유무(劉武)가 양원(梁園)이란 호사스러운 자신의 원림(園林)에서 세모(歲暮)에 사마상여(司馬相如)‧매승(枚乘)‧추양(鄒陽) 등과 함께 주연(酒筵)을 베풀고 놀다가 눈이 오자 흥에 겨워 먼저 시를 읊고는 종이를 주면서 사마상여에게 시를 짓게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진(晉)나라 사혜련(謝惠連)이 이 일을 〈설부(雪賦)〉라는 제목의 부로 읊었다. 《文選 卷13 謝惠連 雪賦》 파수(灞水)에서……생겨나네 당(唐)나라 시인 맹호연(孟浩然)이 나귀를 타고 매화를 찾아 눈발 휘날리는 파교(灞橋)를 지나다가 그럴 듯한 시상(詩想)을 떠올렸다는 '답설심매(踏雪尋梅)'의 고사를 전거로 한 말이다. 《全唐詩話 卷5 鄭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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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2 卷之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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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언율시) 詩(五言律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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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려의 선대체11)로 쓴 시12)의 운을 사용하여 감회를 적다 用韓昌黎扇對軆書懷 지난해 봄 지독한 가뭄이 들었을 제백성들 얼굴빛은 청황으로 물들었지13)올해에는 보리에 싹이 나지 않으니이 백성들 쌀겨로 죽 끓여 먹는다네사람 마음 어찌 그리도 서글프단가하늘의 뜻은 끝내 아득하기만 하여라장저와 걸익은 비록 세상을 잊었으나14)가생은 눈물이 절로 주르륵 흘렀다네15)'묘'가 어떤 본에는 '穗'로 되어있다. 去年春苦旱民色采靑黃今歲麥無苗斯民饘有糠人心何慽慽天意竟茫茫沮溺雖忘世賈生涕自滂【苗一作穗】 선대체(扇對軆) 선대격(扇對格)을 말한다. 구체시(舊體詩)의 대우(對偶) 격식(格式) 가운데 하나로, 한 구를 격(隔)하여 대우하는 것인데, 1구와 3구가 대우가 되고, 2구와 4구가 대우가 되는 것이다. 격구대격(隔句對格)이라고도 한다. 한창려(韓昌黎)의……시 「송이원외원장분사동도(送李員外院長分司東都)」라는 시를 가리키는 듯하다.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해 가을 이슬 내릴 때, 나그네로 동쪽 길 나섰는데, 올해 봄 풍광 일렁일 제, 말을 달려 서울을 이별하네. 술 마시며 서로 돌아볼 땐 기뻤건만, 전송하고 홀로 돌아오는 마음 쓸쓸하네. 두 곳 천 리만큼 멀어지진 않았으니, 부는 바람에 두어 마디 부쳐볼거나.[去年秋露下, 羇旅逐東征, 今嵗春光動, 驅馳别上京, 飲中相顧色, 送後獨歸情, 兩地無千里, 因風數寄聲.]" 《御定全唐詩 卷344 韓愈》 백성들……물들었지 지독한 흉년이 든 탓에, 백성들의 안색이 좋지 못한 것을 표현한 말인듯하다. 장저(長沮)와……잊었으나 은둔하여 직접 농사 지으며 세상일에 관심을 두지 않던 은자들이다. 이들은 공자가 난세(亂世)에 은거하지 않고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것을 비판하였다. 《論語 微子》 가생(家生)은……흘렀다네 한(漢)나라의 가의(賈誼)를 가리킨다. 한나라 문제(文帝) 때 나라가 선우족(單于族)에게 모욕을 당하고 제후왕(諸侯王)이 반역을 꾀하는 등 시국이 위태롭고 혼란하자, 가의가 시국을 바로잡는 치안책(治安策)을 써서 문제에게 올렸다. 그 내용에 "신이 삼가 사세를 살펴보건대, 통곡할 만한 것이 한 가지요, 눈물을 흘릴 만한 것이 두 가지요, 장탄식할 만한 것이 여섯 가지입니다.[臣竊惟事勢, 可爲痛哭者一, 可爲流涕者二, 可爲長太息者六.]"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漢書 卷48 賈誼傳》 《古文辭類纂 奏議類 陳政事疏》 여기에서는 김만영이 시국을 걱정하는 마음을 가의에 빗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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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의 문한에 종사하는 여러 어른에게 부치다 寄江舍翰墨諸老 긴긴 여름 날 산의 정자에서는베개 높이 베고서 샘물 소리 듣겠지요격절한 건 신문의 딱따기 소리이고16)화평한 건 태산 영계기의 거문고 소릴테지요17)운거를 돌려 하늘에 노닐었고18)시냇물 흐른 탓에 세간에 전해졌답니다19)강가의 어른들에게 한 마디 부치노니동천20) 속 신선놀음 어떠하신지요 山亭長夏午高枕聽鳴泉激切晨門石和平岱啓絃回雲天上弄流水世間傳寄語江邊老何如洞裏仙 신문(晨門)의 딱따기 소리이고 신문은 새벽에 문(門) 여는 것을 맡은 사람으로, 노(魯)나라의 은사(隱士)이다. 《논어》 「미자(微子)」 문지기는 야경(夜警)을 돌며 딱따기를 친다고 한다. 태산(泰山)……소릴테지요 원문의 '岱'는 태산이다. 영계기(榮啟期)는 주(周)나라의 은자이다. 세 가지 즐거움을 노래한 것을 이른다. 공자가 태산을 유람하다가 성(郕) 땅의 들판을 걸어가는 영계기를 보았는데, 그는 사슴 갖옷에 노끈 띠를 매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고 있었다. 공자가 "선생은 뭐가 그리 즐거우시오?" 하고 묻자, 영계기가 "천지 만물 중에 오직 사람이 귀한데 내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이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한데 내가 남자로 태어났으니 이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세상에 태어나 해와 달을 보지 못하고 포대기에 싸인 채로 요절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나이가 90세이니 이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지요."라고 답하였다. 공자가 이 말을 듣고 "훌륭하다. 스스로 위로할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찬탄하였다. 《列子 天瑞》 운거(雲車)를……노닐었고 운거는 전설상에 신선이 탄다는 수레로, 오운거(五雲車)라고도 한다.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 「송공소보사병귀유강동겸정이백(送孔巢父謝病歸游江東兼呈李白)」에, "봉래의 직녀가 운거를 돌려서, 허무를 가리켜 귀로를 인도하네.[蓬萊織女回雲車, 指點虛無引歸路.]"라고 하였다. 참고로, 허무는 텅 비고 아득한 선경을 뜻한다. 물줄기……전해졌답니다 도잠(陶潛)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의하면, 동진(東晉) 태원(太元) 연간에 무릉(武陵)의 한 어부가 일찍이 복사꽃이 떠내려오는 물길을 따라 배를 타고 거슬러 올라갔다가 문득 복사꽃이 만발한 선경(仙境)을 만나 깊숙이 들어갔는데, 진(秦)나라 때 난리를 피해 들어와 대대로 살고 있던 사람들을 만났다. 그곳 사람들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고 수일 후에 그곳을 떠나 배를 얻어 타고 되돌아왔는데, 그 후로는 다시 그 도화림(桃花林)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陶淵明集 卷6 桃花源記》 동천(洞天) 신선이 산다는 선경(仙境)을 뜻한다. 도교(道敎)에서는 이러한 선경이 36개가 있다고 하여 36동천(洞天)이라고 한다. 《述異記 卷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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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암(朴思菴) 상공(相公)25)의 시26)에 차운하다 和朴思菴相公韻 백 년 전 사람 떠난 자리에 푸른 산이 있으니산 아래엔 아직도 계곡 속 난초가 남아 있네지난 일 아득하여 구름 끝없이 멀고나그네 마음 흔들려 물결 일렁이네가벼운 배 불어오는 바람에 의지해 떠다니고잔에 담긴 술 차가운 밤기운을 그런대로 막네술 취한 채 푸른 강 위에 뜬 달을 이고서시 읊으며 돌아와27) 흰 갈매기 노니는 여울 한가히 거슬러 오르네 百年人去有靑山山下猶餘谷裏蘭往事蒼茫雲漠漠羈懷搖蕩水漫漫輕舟信放遊風泛樽酒聊防夜氣寒醉戴淸江江上月咏歸閑溯白鷗灘 박사암(朴思庵) 상공(相公) 박순(朴淳, 1523~1589)을 가리킨다.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화숙(和叔), 호는 사암(思菴). 1553년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 응교, 이조 참의, 대사헌, 예조 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문장에 뛰어나고 당시(唐詩)에 능하였다. 박사암(朴思菴) 상공(相公)의 시 《사암집(思菴集》 권3에 수록되어 있는 박순(朴淳)의 시 〈자용산귀한강주중구호(自龍山歸漢江舟中口號)〉를 가리킨다. 해당 시는 다음과 같다. "거문고와 책 끼고 낭패당해 뒤집어 둔 채 용산을 내려가니, 한 개 노로 훌쩍 떠나 목란선(木蘭船)에 의지하네. 노을은 석양을 둘러 조각조각 붉고, 비는 가을 물결에 더해져 넘실넘실 푸르네. 강리(江蘺)의 잎 생기 잃어 시인이 원망하고, 물여뀌 꽃 시들어 잠자는 해오라기도 추워하네. 백발 머리에 또 한강의 객이 되어, 서리 이슬 잔뜩 맞고 거센 여울 거슬러 올라가네.[琴書顚倒下龍山 一棹飄然倚木蘭 霞帶夕暉紅片片 雨增秋浪碧漫漫 江蘺葉悴騷人怨 水蓼花殘宿鷺寒 頭白又爲江漢客 滿衣霜露泝危灘]" 시……돌아와 원문은 '영귀(咏歸)'다. 한가로이 자연을 노니는 모습을 말한다. 《논어》 〈선진(先進)〉에, 공자가 증점(曾點)에게 장래 포부를 물어보자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에서 바람을 쐰 뒤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 대답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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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자년(1660) 庚子 경자년(1660, 현종1) 2월 6일 소양(少陽)퇴계(退溪)와 고봉(高峯)이 주고받은 편지 몇 편을 읽고 개연(慨然)히 옛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였다. 대개 학자는 의리와 출처 사이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으면 편지를 주고받으며 논변하여 반드시 바른 데로 돌아가야 한다. 이는 바로 심문(審問), 명변(明辨)하는 우리 유가의 학문에서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근세에 세도(世道)가 사익만 추구하고 선비들은 사당(私黨)에 아부하니 편지를 주고받으며 심문하고 명변한 것을 지적하여 서로 공격하며 칼자루를 잡고 노려보지 않는 자가 드물다. 지금 이 편지를 읽고, 학통을 전수한 것을 탄복하여 여기에 기록한다.2월 20일 대양(大陽)종제(從弟) 서봉명(徐鳳鳴)이 우계(牛溪), 율곡(栗谷)을 〈문묘에 종사할 것을 청하는 소[請從享文廟疏]〉 2도(度)을 소매 속에서 꺼내 보여 주었다. 대개 호남(湖南) 유생들이 진청(陳請)하는 것으로, 하나는 전 직강(直講) 이기발(李起浡)이 지었고, 하나는 전 현감 최유지(崔猷之)가 지었다. 결국 최유지가 지은 것을 올렸다고 한다. 직강 이기발은 바로 일사(逸士) 이흥발(李興浡)의 아우이니, 명리(名利)를 추구하지 않고 벼슬에서 물러난 것으로 이름이 드러났다. 최유지는 고 승지 최온(崔蘊)11)의 양자이다. 승지는 학행(學行)으로 세상에 이름이 드러났다. 최유지는 현재 승지의 거상 중에 있다.3월 12일 소양(少陽)이문석(李文碩)이 와서 수학하였다. 이문석 군이 스스로 말하기를 "저는 바로 치재(恥齋) 홍인우(洪仁祐) 공의 외증손입니다. 공께서는 고행하며 학문에 힘쓰시다 거상 중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내부인(內夫人)께서 뵙기를 청하였지만 공께서는 허락하지 않고 돌아가셨으니, 이는 거상 중에 부녀를 가까이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옛사람이 행실을 절제하는 엄정함과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삼가는 태도가 이와 같았다.4월 3일 소양(少陽)이문석(李文碩)이 와서 수학하였다. 이문석 군이 전하기를 "부친이신 사군(使君)께서 서울에서 와서 말씀하기를 '주상(主上)께서 근래 안질을 알아 증세가 매우 나빠 사물을 보지 못하시니 대신과 경상(卿相) 들의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청평위(靑平尉) 심익현(沈益顯)이 편전(便殿)으로 들어가 절하였는데 상께서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시자 여론이 애태우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의관 윤후익(尹後益)이 세 차례 침을 놓자 불현듯 나았다고 하니, 신민의 기쁨과 경사가 지극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말씀하기를 '장령 허목(許穆)이 상소하여12) 「대왕대비는 선왕에 대해서 이미 적손(嫡孫)이 승중(承重)한 것이 되니 마땅히 참최(斬衰) 삼년복을 입어야 하는데 지금 기년복(朞年服)을 입는 것은 예가 아니다. 주공(周公)의 제도로 말하면 기년의 상은 제후에게는 없으니 대왕대비가 기년복을 입는 것은 더욱 예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상서(尙書) 송준길(宋浚吉)이 상소하여 허목이 잘못되었다고 논변하였지만 비답이 오래도록 내리지 않아 어떻게 결말이 났는지 모르겠다.'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대개 국상 초기에 송시열과 송준길이 '선왕이 비록 양자로 들어가 중통(重統)을 이었지만 세적(世適)이 아니고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상에 대왕대비가 이미 삼년상의 복을 입었으니, 예에는 적자(適子)가 둘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지금 다시 참최(斬衰)를 입는 것으로 거행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대왕대비는 기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한 것이다.13)5월 4일 대음(大陰)4경(更) 초점(初點)에 객관으로 들어갔다. 태수(太守) 및 참봉 서행(徐荇)과 관아의 뜰에 모여서 곡하였다. 이날 전 참의 윤선도(尹善道)가 대왕대비의 복제(服制)를 논하였는데 언관이 그 죄를 쟁론하여 율문에 따라 처분하기를 청하였다고 한다. 예조에서 해당 관부에 공문을 보내 "소상(小祥) 뒤에 조정의 사대부는 연포(練布)로 사모(紗帽)를 싸고, 이어서 대(帶)를 띠고 이어서 최복(衰服)을 입으며, 문신과 무신 당상의 아내는 길복(吉服)을 입는다.……"라고 하였다. 이윽고 또다시 공문을 보내 "사대부의 정복(正服)은 칠승(七升)의 생포(生布)로 단령의(團領衣)를 만들고 의대(衣帶)는 숙마 (熟麻)로 착용하라.……"라고 하였다.능주(綾州)의 좌수(座首) 이위(李魏)가 61세로 이번에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하여 호창(呼唱)하는 4인을 거느리고 피리를 불고 고을 거리로 들어갔다고 한다. 목사 이성징(李聖徵)이 호창하는 4인을 잡아 옥에 가두고 말하기를 "나라에 국상이 나서 아직 연제(練祭)도 지내기 전인데 풍악을 울리며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너희들에게는 편안한가?"라고 하니, 이위는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며 돌아갔다고 하였다. 듣고는 한 번 웃을 만하였다. 시류와 관련 있으므로 기록한다.5월 24일 대양(大陽)정승 연양부원군(延陽府院君) 이시백(李時白)이 졸하였다고 한다. 공은 바로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의 장자이니, 거의공신(擧義功臣)14)으로 인조(仁祖)를 섬기고 세 조정에서 벼슬하여 지위가 정승의 반열에 올랐지만 살림살이가 청빈하여 일개 한사(寒士)와 같았다고 한다.5월 25일 대음(大陰)송준길(宋浚吉)이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대개 전 참의 윤선도(尹善道)가 올린 상소에 비난하는 말이 있었는데, 상소가 올라가자 즉시 물러났고 윤선도도 삼수(三水)에 안치(安置)되었다고 한다.한성부 좌윤 권시(權諰)가 조정에서 물러났다고 한다. 대개 윤선도의 상소가 올라가자 양사(兩司)에서 서로 소장을 올려 처벌하기를 청하니, 권 공도 차자를 올려 윤선도를 감언지사(敢言之士)라고 논변하였는데, 양사가 인혐하였으므로 권공도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8월 28일 신해(辛亥) 대양(大陽)이문석(李文碩)이 서울에서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고, 또 장령 허목(許穆)이 올린 〈의례상복도(儀禮喪服圖)〉를 보냈다.11월 23일 소양(少陽)장령 허목(許穆)이 외직인 삼척 부사(三陟府使)에 제수되자 식자들이 애석하게 여겼다고 한다.12월 16일 대음(大陰)이날 저물도록 정좌(靜坐)하니 마음과 기운이 화평하였다. 밤이 되어서 자질구레한 일로 화가 치밀어 올라 한밤중까지 심기가 불편하였는데 억지로 너그러운 마음으로 억제하자 편안해졌다. 이어서 생각해 보니, 몸의 지나친 행동은 마음의 지나침으로 말미암고, 마음의 지나침은 형기(形氣)의 사사로움으로 말미암는다. 형기의 사사로움은 모두 귀로는 좋은 음악을 듣고자 하고, 눈으로는 여색을 탐하고자 하고, 입으로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자 하고, 사지는 편안하고자 하고, 물욕은 쾌락을 추구하고자 하는 데에서 나온다. 다섯 가지 천성적인 욕심15)은 외물에 감응하여 마음에 동하고, 마음에서 생겨 일에 드러난다. 하루 동안 마음이 고요한 때는 적고 동요하는 때는 많으니, 이 마음이 어떻게 그 바름을 얻겠는가. 나는 매일 자시(子時)부터 오시(午時)까지, 오시부터 자시까지 이 마음을 점검하여 밖으로 달아나지 않게 한다. 하지만 이따금 잠깐 사이에 갑자기 정욕(情慾)에 끌려가니 일이 지난 뒤에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진다. 내 기질의 병통은 늘 나약함에 있으니, 아는 것은 혹 민첩하지만 지킴이 굳건하지 못하여 낭패하는 근심이 있기까지 하는 것이 매양 이와 같다. 하루 동안 심지(心志)가 발현하는 것은 남들이 보지 못하고 자기만 홀로 아는 것이니, 마음의 선악을 붓 가는 대로 기록하여 경계하고 반성하는 자료로 삼는다.12월 17일 무술(戊戌) 대음(大陰)일찍 일어나 고요히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고 잘못을 반성하니 부끄러운 마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다. 생각건대, 아침에-원문 1, 2자 결락-얼굴을 씻었다. 이어서 스스로 생각하니, 사람이 날마다 세수하는 것은 얼굴에 때가 끼었을까 두려워해서이다. 이 마음을 옮겨서 날마다 짐짓 마음에 때가 끼었을까 두려워해야 한다. 얼굴의 때는 사람들이 반드시 보고 마음의 때는 신이 틀림없이 안다. 더구나 마음속에 싹트는 것은 반드시 일에 드러나게 마련이니 사람도 끝내 속일 수 없다.낮에 해가 창에 비쳤지만 한기가 여전히 매서웠다. 이어서 생각하기를, 겨울의 해나 여름의 해나 같은 해인데, 한기와 열기가 확연하게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계절의 기운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어서 생각건대, 사람의 본성은 지극한 선을 함께 타고 났지만 현명함과 어리석음의 다름이 있는 것은 기질이 그렇게 한 것이다. 배우는 자는 마땅히 기질에 대해서 공부해야 한다. 기질이 준수한 자는 대체로 자잘한 일에 구애되지 않기 때문에 잘못이 많고, 기질이 용렬한 자는 두려워하고 조심하기 때문에 잘못이 적다. 내가 준수한 기질을 타고나지 않았는데도 잘못이 많은 것은 대체로 혈기가 거친 데서 생기는 잘못이니, 경계할 줄 알아야 하므로 기록한다.낮에 윤선삼(尹先三)이 와서 수학하였다. 책 한 줄을 읽는데 음을 세 번이나 잘못 읽었다. 내가 말하기를 "이는 마음이 경(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마음이 흩어졌는데도 거두어들이지 못하므로 마음과 입이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심경(心經)》을 보았는데 〈극기복례장(克己復禮章)〉에 이르러 스스로 해석하기를 "예를 회복하는 곳이 어떻게 인(仁)이 되는가? 인이라는 것은 곧 천리(天理)이니, 자신의 사욕을 이기면 곧 천리이므로 예를 회복하는 것이 바로 인이다. 그러므로 '예의(禮儀) 300가지와 위의(威儀) 3000가지 가운데 한 가지 물건도 인이 아닌 것이 없다'16)고 한 것이다." 하였다.이날 오전에 불편했던 심기는 오후가 되자 마음이 화평하고 기운이 편안해졌다.12월 18일 기해(己亥) 소음(少陰)새벽 이후가 되어서야 심기가 조금 편안해졌으니, 야기(夜氣)17)를 잘 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성인은 동짓날에 관문(關門)을 닫는 것18)이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二月初六日少陽。 讀退溪高峯往復書數篇。 慨然不勝愴古之懷矣。 蓋學者於義理出處之間。 有所疑晦。 則往復論辨。 必歸於正。 乃吾家審問明辨之學。 不可已者也。 近世世道偏私。 士阿所黨。 往復問辨。 指爲相攻。 不爲按劍相視者。 幾希矣。 今讀此書。 感歎伊塞。 而記于此。二十日大陽。 從弟徐鳳鳴。 袖示牛溪栗谷請從享文廟疏二度。 蓋湖南儒生等所陳請。 而一卽前直講李起浡所製。 一前縣監崔猷之所製也。 竟用崔製云。 直講李君卽逸士興浡之弟。 以恬退著名。 崔卽故承旨蘊之繼後子也。 承旨以學行名世。 猷之方在承旨憂艱中。三月十二日少陽。 李文碩來學。 李君自言"渠乃恥齋洪公仁祐之外曾孫也。 公苦行力學。 居憂而歿。 將歿也。 內夫人請見。 公不許而歿。 蓋以居憂不可近婦女也"云。 古人制行之嚴正終之愼如此。四月初三日少陽。 李文碩來學。 李君傳言: "乃翁使君自京來言'主上頃患眼疾。 症勢極不吉。 不能視物。 大臣卿相。 憂憫罔極。 靑平尉沈益顯入拜便殿。 上不能辨視其爲誰。 輿情遑遑。 罔知攸爲。 醫官尹後益三度下鍼。 廓然復常云。 臣民之喜慶至矣'。 又云'掌令許穆上疏。 言「大王大妃於先王。 旣爲嫡孫承重。 則當服斬衰三年之服。 而今服朞非禮也。 周公之制。 朞之喪。 諸侯絶。 則大王大妃之服朞。 尤爲非禮云云」。 宋尙書浚吉上疏。 論許公之非。 批敎久未下。 不知結末之如何'云。" 蓋國喪初。 兩宋以爲'先王雖入系重統。 非世適。 而昭顯之喪。 大王大妃旣服三年之喪。 則禮無二適固也。 今不可復擧斬衰'云。 故大王大妃服朞服云。五月初四日大陰。 四更初點。 入于客館。 與太守及參奉徐荇。 會哭于館庭。 是日聞前參議尹善道論大王大妃服制。 言官爭論其罪。 請案律處置云云。 禮曹行會: "小祥後。 朝士大夫。 練布裹紗帽。 仍垂帶。 仍衰服。 文武堂上妻。 從吉服云云。" 俄而又改行會: "士大夫正服。 以七升生布製團領。 衣帶用熟麻云云。" 聞綾州座首李魏六十一歲。 得忝今榜進士。 率呼唱四人。 吹管入于州街。 牧使李聖徵。 執呼唱四人囚于獄曰: "國有大慽。 凶服未練。 作樂遊街。 於汝安乎?" 李惕赧而歸云。 聞可一笑。 又關於時。 故記之。二十四日大陽。 聞李政丞延陽府院君時白卒。 公卽延平之長子。 以擧義元勳事仁祖。 歷三朝。 而位躋台鼎。 家業貧淸一寒士云。二十五日大陰。 聞宋公浚吉。 退歸田園。 蓋以前參議尹公善道疏中。 有指斥之語。 疏入卽退。 而尹公亦安置三水云。聞漢城左尹權公諰退朝。 蓋尹疏旣入。 兩司交章請罪。 權公亦上箚。 論尹公以敢言之士。 兩司引嫌。 故權公亦退歸云。八月二十八日 辛亥大陽。 李文碩自京送書相問。 又遺許掌令穆所上《儀禮喪服圖》。十一月二十三日少陽。 聞掌令許穆。 出拜三陟府使。 識者惜之云。十二月十六日大陰。 是日終夕靜坐。 心氣和平。 至夜仍細瑣底事。 忿懥之念起。 至夜分。 心氣不平。 强加寬制而平。 仍念身之過動。 由於心之過動。 心之過動。 由於形氣之私。 形氣之私。 皆出於耳之欲聲。 目之欲色。 口之欲味。 四肢之欲安佚。 物慾之欲快情。 五性2)之欲。 感於外。 而動於中。 生於心而發於事。 一日之內。 心靜時小。 動時多。 此心安得其正哉? 余於每日。 自子至午。 自午至子。 點檢此心。 不使外馳。 而往往造次之頃。 忽爲情慾引去。 事過之後。 不覺慚忸。 而余氣質之病。 常在於懦弱。 知之或敏。 而守之不固。 以至狼狽之患。 每每如是。 日間心志之發。 人所不見。 而已所獨知處。 一念之善惡。 隨筆箚記。 以爲警省之資焉。十七日。 戊戌大陰。 早起靜坐。 平心省愆。 有不勝愧赧底氣。 意朝-缺-頮面。 仍自念人之日日洗面。 恐面有垢也。 移此心。 日日且恐心上有垢可也。 面上有垢。 人必見之。 心上之垢。 神必知之。 况萌於心者。 必顯於事。 則人亦終不可欺也。 午日當窓。 寒氣猶慄烈。 仍念冬日之日。 是夏日之日。 而寒熱判異。 何也? 以其時氣之使然也。 仍念人之性。 同得至善而有賢愚者。 氣質之使然也。 學者當於氣質上用工可也。 氣質俊邁者。 多不拘小節。 故多過。 氣質之庸下者畏守。 故小過。 余非俊邁之質而多過者。 大抵其氣麤之過也。 不可不知戒。 故記之。 午尹先三來學。 讀過一行書。 三失字音。 余曰: "是心不敬之故也。 此心放散而不克收斂。 故心口不相應矣。" 又看《心經》。 至克己復禮章。 自解曰: "復禮處。 何以爲仁歟? 仁者便是天理。 克己之私。 則便是天理。 故復禮是仁也。 故曰: '禮儀三百威儀三千。 無一物之非仁也。'" 是日午前。 心氣有交戰之象。 午後心和氣平。十八日。 己亥少陰。 平朝之後。 心氣小斂。 以夜氣之不善養故也。 所以聖人至日閉關。 可不愼哉! 최온(崔蘊) 1583~1659.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휘숙(輝淑), 호는 폄재(砭齋)이다. 남원 출신이다. 허목(許穆)이 상소하여 1659년 효종(孝宗)이 승하하자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服喪) 문제를 두고 허목 등의 남인이 삼년복설(三年服說)을 주장하며 올린 상소를 이른다. 대개……것이다 1659년 효종이 승하한 뒤에 기해예송(己亥禮訟)이 발생하였다. 효종의 국상에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 즉 조 대비가 입을 상복을 두고 송시열과 송준길 등 서인은 기년복을 주장했다. 효종이 차남인 데다 장남인 소현세자(昭顯世子)가 사망했을 때 조 대비가 이미 장자(長子)에 해당하는 상복인 삼년복을 입었으므로 기년복이 타당하다는 논리였다. 이에 허목, 윤휴 등 남인은, 효종이 비록 차남이지만 왕위를 계승했으므로 조 대비가 삼년복을 입는 것이 옳다고 맞섰다. 거의공신(擧義功臣) 인조반정에 공을 세워 공신으로 책봉된 사람들을 말한다. 정사공신(靖社功臣)이라고도 부른다. 다섯……욕심 원문은 '五音之欲'인데, 문맥을 살펴 '音'을 '性'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예의(禮儀)……없다 《근사록》 〈도체(道體)〉에서 장재(張載)가 "하늘이 사물의 본체가 되어 빠뜨리지 않음은 인이 일의 본체가 되어 있지 않은 데가 없는 것과 같다. 예의 300 가지와 위의 3000가지 가운데 한 가지 물건도 인 아닌 것이 없다.[天體物不遺, 猶仁體事而無不在也. 禮儀三百威儀三千, 無一物之非仁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야기(夜氣) 한밤중의 깨끗하고 맑은 기운으로, 밤중에 고요히 생각할 적에 생겨나는 양지(良知)와 선념(善念)을 말한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야기가 보존될 수 없으면 금수(禽獸)와의 거리가 멀지 않다.[夜氣不足以存, 則其違禽獸不遠矣.]" 하였다. 성인은……것 《주역(周易)》 〈복괘(復卦) 상(象)〉에 "우레가 땅속에 있는 형상이 복괘이니, 선왕이 보고서 동짓날에 관문을 닫아 장사꾼과 여행자가 다니지 못하게 하며 임금 자신은 사방을 순시하지 않는다.[雷在地中, 復先王以, 至日閉關, 商旅不行, 后不省方.]"라고 하였다. 性 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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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5 卷之十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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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교일기 하 南郊日記(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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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上舍) 나위(羅褘)19)의 강가 우소(寓所)에 답하다 酬羅上舍【褘】江上寓所 비가 가을 강 씻어내 강월(江月) 밝으니십 리 뻗은 맑은 물결 깊고도 고요하네산옹(山翁)의 조용한 경계 마음을 깨울 수 있고20)어부의 창랑(滄浪) 갓끈을 씻을 만하네21)누가 옥섬돌 향해 귀한 거문고22) 울리는가금계(金契)23) 다투어 쥐다가 큰 술잔 넘어뜨리네천성에 근본한 그대의 효성에 감동하니서리와 이슬24) 내릴 때면 지극한 정 모인다네【나위의 시에 세상을 떠난 부모를 그리워하는 뜻이 있었다. 그러므로 말구(末句)에서 언급하였다.】 雨洗秋江江月明澄波十里湛然平山翁靜界能惺意漁父滄浪可濯纓誰向玉階鳴寶軫爭携金契倒深觥感君誠孝根天性霜露仍時總至情【羅詩有離親思慕之意。故末句及之。】 나위(羅褘) 자세한 사항은 미상이나, 김만영의 모친이 나주 나씨(羅州羅氏)인 점으로 볼 때 김만영의 척족(戚族)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그가 김만영에게 지어준 제문(祭文)을 보면 자신을 '금성척인나위(錦城戚人羅褘)'라 밝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南圃集 附錄 卷2 祭文》 마음을……있고 원문은 '성의(惺意)'다. 마음을 맑게 깨우는 것을 뜻한다. 《심경부주(心經附註)》 〈경이직내장(敬以直內章)〉에, 사양좌(謝良佐)가 "경은 항상 성성하는 법이다.[敬是常惺惺法]"라고 한 데 대해, 주희(朱熹)가 "서암의 중은 매일 항상 스스로 '주인옹은 성성한가?'라고 묻고는 '성성하다.'라고 스스로 대답하곤 했다.[瑞巖僧 每日間 常自問主人翁惺惺否 自答曰惺惺]"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어부의……만하네 '갓끈을 씻는다'는 것은 진속(塵俗)을 초탈하여 자신의 고결한 신념을 지키는 것을 뜻하는 행위다. 굴원의 〈어부사(漁父辭)〉에,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我足]"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귀한 거문고 원문은 '보진(寶軫)'이다. '진(軫)'은 거문고 줄을 받치는 기러기발로, 거문고를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금계(金契) 맹서를 새긴 계권(契券)을 말한다. 당나라 권덕여(權德輿)의 〈제강반구거(題江畔舊居)〉에, "평생에 걸쳐 맺은 깊고 두터운 교분, 여기에 이르러 두 줄기 눈물 흐르네.[平生斷金契 到此淚成雙]"라 한 대목이 보인다. 서리와 이슬 원문은 '상로(霜露)'다. 돌아가신 부모를 그리는 마음을 뜻한다. 《예기(禮記)》 〈제의(祭義)〉에 "가을에 서리와 이슬이 내리거든 군자가 그것을 밟아 보고 반드시 슬픈 마음이 생기나니, 이는 날이 추워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또 봄에 비와 이슬이 내려 땅이 축축해지거든 군자가 그것을 밟아 보고 반드시 섬뜩하게 두려운 마음이 생겨 마치 죽은 부모를 곧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된다.[霜露旣降 君子履之 必有悽愴之心 非其寒之謂也 春雨露旣濡 君子履之 必有怵惕之心 如將見之]"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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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흥【선생이 열네 살에 지은 것이다】 感興【先生年十四作】 어떤 사람이 빈 골짜기에 있는데1)가슴에 만 곡의 시름을 삼켰도다근심하는 것은 어찌 하여야 하는가종신토록 해야지 하룻저녁이 아닐세2)우러러 태극의 처음을 생각하니두 기3)가 나뉘어 열리었도다양기는 위로 올라가 맑고음질은 아래도 내려가 탁하도다참된 정수 이로부터 합해지고온갖 변화 이로부터 쪼개지네사람이 태어남과 만물이 생겨남은바로 그 지극한 것을 얻어서이네사람이 가장 귀하게 여겨지는 것은허령하여 진실로 헤아릴 수 없어서이네4)귀히 여길 것은 무슨 일에 있는가다만 도와 덕뿐이라오사도는 본래 하늘에 있는데육합5)에 널리 퍼져 가득하다오천지보다 먼저 생겨서만고토록 혹여라도 쉼이 없다네복희와 신농이 처음 얻었고당요와 우순이 정히 빛냈네삼대6)는 연원이 오래되었으니성인들이 서로들 전하여 얻었다오깊고도 원대한 노나라 문선7)은급급하게 목탁을 울렸네8)이구9)엔 해와 달이 밝고수사10)엔 하늘과 땅이 확 트였어라춘추는 기록이 이미 끊겼고육경은 공연히 역력하여라기수에는 호연한 기운 발하고11)누추한 골목12)에는 봄빛이 푸르도다하나로 꿰뚫는 이치 증씨에게 전하니13)성인의 자손이 마침내 잇게 되었도다14)우뚝하신 호연자15)가양묵을 막을 것을 말하였네16)우리 도의 운이 마침내 곤궁해져서미치광이 진나라가 불을 질러 막았네한나라 당나라에서도 오랫동안 침몰되어푸른 이끼가 죽백17)에 생겼도다하늘의 조화는 멀어도 쇠하지 않으니송나라의 덕 어찌 그리 드높던가사문의 운이 다시금 창성하여일맥으로 염락18)에게 전해졌네하남19)에는 도의 기운 새롭고관민20)에는 광풍이 빛났도다하늘이 회암옹21)을 내어이전 성인의 자취를 잇게 하였네도의 근원이 다시 이로부터 밝아져서찬란하게 별과 해처럼 환해졌도다줄 끊어진 요금이 이어지고먼지 쌓인 보갑이 씻겨졌네22)정통이 힘입어 실추되지 않아추나라 노나라와 공적을 견주었네선생이 한 번 떠나가신 뒤로세상인심 뒤집힘이 많았네천년의 세월 동안 쓸쓸도 하여욕망의 물결이 거세게 파도쳤다오영원히 밤인 채로 다시는 날이 밝지 않아어두침침하고도 길이 적막하였네간혹 흥기하는 자가 있었으나좌선하며 육구연을 배우는 이가 많았네23)머리는 있으나 그 꼬리를 잃었으니누가 본말을 밝힐 수 있었으리오또다시 박잡한 무리가 있어뿌리를 버리고 가지와 잎만을 취하였네초려에서 남몰래 시름에 겨웠으나그런데도 잘못을 면치 못하였네분분하게 두서가 많아마침내 돌아가 머물 곳이 없게 되었네하물며 이곳은 만리 밖이요바다 모퉁이 한 외딴 지역임에랴허둥지둥 이록을 쫓느라천작24)을 닦을 겨를 없었네예의가 이미 꽉 막혔으니온 세상이 모두 황폐한 집25)이었다오포옹26)은 닭 속의 봉황처럼 출중하였고점필재27)는 그 자취를 좇았다네예닐곱의 어진 이들 성대히 일어났으니도수28)가 그 적통을 이었다오슬프도다! 한나라는 금고하였고29)참혹하도다 송나라는 위학이라 하였네30)붕새 날아오르자 돌풍이 꺾어버린 것 아니랴31)난초 싹이 트자 서리가 먼저 내렸다오남은 향기 끊어진 지 이미 오래고큰 장마 당하여 때마침 어려웠네지금까지도 학철32)에서 허우적거리니길이 갈리어 남북이 따로 없게 되었네갈팡질팡 길을 잃은 사람들이여문을 나서서는 다시 들어가기를 잊었도다33)그러므로 나와 같은 소자는밤낮으로 늘 시름에 잠긴다네근심해봤자 끝내 얻을 것 없으니지의만 한갓 움츠러들 뿐이라오34)사도는 진실로 어떤 물건인가한 번 제대로 보기라도 해보았으면내가 옛 성인의 글을 살펴보니도는 본래 콩과 조와 같은지라일상생활하는 사이에 행해지는 것이요내 마음 깊숙이 간직된 것이라 하네구하면 반드시 얻는 법이니무슨 까닭으로 항상 울적하리오구하기를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놓아버린 뜻을 잘 수렴하는 것일 테지얻기를 또한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먼저 마음의 검은 때를 씻어야 한다네선행을 힘써서 참으로 쌓는다면자연스레 그 악은 없어지게 된다오옛날에 선을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두 그릇에 흰콩과 붉은 콩을 놓았다오처음엔 대부분 붉은 것이 그릇을 채우더니오랫동안 보니 대부분 흰 것이 쌓였다오35)뜻을 세우는 것은 응당 이와 같이 하여야외부의 적을 물리칠 수 있다오요임금도 사람이요 나도 사람이니하기만 하면 모두 이와 같이 된다네36)주일무적37)이라는 글자는잡은 것은 요약되나 그 베풂은 넓다네처음을 탐색하고 또 끝을 돌이켜야지극히 치밀하기가 자물쇠와 같아진다오머리가 없으면 무엇을 이겠는가발이 있으니 바야흐로 넘어지지 않으리라두 가지 중에 하나라도 치우쳐서는 안 되니밖을 방정하게 하고 안을 곧게 하여야 한다네허물이 있으면 서둘러 고치는 것이 귀하고돌을 쪼아야 옥을 볼 수 있다오오직 광자만이 성인이 될 수 있으니닭이 울면 모름지기 깨달을 수 있으리라나의 말이 진실로 망령되지 않으니절차탁마하는 것은 그대들의 몫일세아! 우리 당의 소자들아힘쓰고 힘쓰며 또 노력할지어다 有人在空谷胷呑愁萬斛所憂如之何終身非一夕仰思太極初二氣相分闢陽氣上而淸陰質下而濁眞精自此合萬化由是折人生與品物乃得其所極人爲最貴者虛靈誠不測所貴在甚事只是道與德斯道本在天彌漫於六合生於天地先萬古無或息羲農初得之唐虞正光赫三代久淵源聖聖相傳得穆穆魯文宣汲汲鳴木鐸尼丘日月明洙泗乾坤廓春秋筆已絶六經空歷歷沂水浩氣發陋巷春光碧一貫傳曾氏聖孫乃得續巖巖浩然子能言拒楊墨吾道運乃竆狂秦烟火塞漢唐久淪沒莓苔生竹帛天造遠不衰宋德何嶷嶷斯文運再昌一脉傳濂洛河南道氣新關閩光風奕天生晦庵翁得接前聖跡道源復此明炳炳星日白瑤琴絶絃續寶匣塵埃滌嫡統賴不墜並駕鄒魯績先生一去後世情多翻覆寥寥千載間慾浪波怒激永夜不復曙沉沉長寂寂間或有作者坐禪多學陸有頭失其尾誰能明本末又有駁雜徒舍根取枝葉草廬暗生愁猶且不免失紛紛頭緖多無地竟歸宿况此萬里外海隅一孤域遑遑逐利祿無暇修天爵禮義已充塞擧世皆荒屋圃翁鳳出鷄佔畢追其蹟蔚蔚六七賢陶叟承迺適嗟矣漢禁錮慘矣宋僞學鵬騰颶毋挫蘭茁霜先落餘香絶已久大霖當時澁沉涸及今日路歧無南北倀倀失道人出戶復忘入所以余小子日夜長慼慼慼慼竟無得志意徙局束斯道信何物願一見其的吾觀古聖書道本如菽粟行於日用間藏諸吾心曲求之必得之何用常欝抑求之奈如何放志收斂克得之亦如何先淸心上黑爲善力眞積自然消其惡古有作善人兩器豆白赤初多赤滿器久見多積白立志當如此可以防外賊堯人我亦人服爲皆是若主一無適字操約其施博原始又返終至密猶鎖鑰無頭何所戴有足方不蹶二者一不偏外方而內直有過貴速改琢石可見玉惟狂可作聖鷄鳴須得覺吾言信不妄在爾能切琢嗟吾黨小子勉勉復勖勖 어떤……있는데 빈 골짜기에 있다는 것은 《시경(詩經)》 「소아(小雅) 백구(白駒)」에 "희디흰 백구가 저 빈 골짜기에 있네.[皎皎白駒, 在彼空谷]"라고 한 데서 온 말로, 귀인이 산속에 깊이 은둔함을 형용하는 말로 쓰인다. 근심하는……아닐세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군자는 종신토록 하는 근심은 있어도 하루아침의 걱정은 없는 것이다. 근심하는 바로 말하면 있으니, 순임금도 사람이며 나도 사람인데 순임금은 천하에 모범이 되시어 후세에 전할 만하시거늘 나는 아직도 향인이 됨을 면치 못하였으니, 이는 근심할 만한 것이다. 근심하면 어찌하여야 하는가. 순임금과 같이 할 뿐이다.[君子有終身之憂, 無一朝之患也. 乃若所憂則有之, 舜人也, 我亦人也, 舜爲法於天下, 可傳於後世, 我由未免爲鄕人也, 是則可憂也. 憂之如何? 如舜而已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두 기 음(陰)과 양(陽)을 가리킨다. 허령(虛靈)하여……없어서이네 마음을 가리켜 한 말로, 사람에게는 이러한 마음이 있어서 가장 귀하게 여겨진다고 한 것이다. 허령은 우리 마음이 텅 빈 가운데 신령스럽다는 말로, 《대학장구(大學章句)》 경1장(經一章)의 "재명명덕(在明明德)"에 대한 주희(朱熹)의 주석에 "명덕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늘로부터 얻은 것으로, 허령하고 어둡지 않아 온갖 이치를 갖추고 만사에 응하는 것이다.[明徳者, 人之所得乎天而虚靈不昧,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라고 하였다. 또, 《소학(小學)》 「가언(嘉言)」에 "마음은 강자 안에 있어야 한다.[心要在腔子裏.]"라고 한 데 대하여, 주희는 "마음이란 물건은 지극히 허령하여 신묘하고 헤아릴 수 없어 항상 한 몸의 주인이 된다.[心之爲物, 至虛至靈, 神妙不測, 常爲一身之主.]"라고 하였다. 또, 《주자대전(朱子大全)》 권4 「재거감흥(齋居感興)」 20수(首) 중 세 번째 시에 "사람의 마음은 오묘하여 헤아릴 수 없으니, 출입함에 기의 기미를 타네.[人心妙不測, 出入乘氣機.]"라고 하였다. 육합(六合) 천지(天地)와 사방(四方)으로, 온 세상을 의미한다. 삼대(三代) 하(夏)ㆍ은(殷)ㆍ주(周)를 말한다. 노(魯) 나라 문선(文宣) 공자(孔子)를 말한다. 당(唐) 나라 현종(玄宗)이 736년 공자를 문선왕(文宣王)에 추증(追贈)하였다. 급급(汲汲)하게……울렸네 공자가 세상에 도(道)를 행하기 위하여 마냥 바쁘게 천하를 두루 돌아다녔던 것을 말한다. 《법언(法言)》 「학행(學行)」에, "요ㆍ순ㆍ우ㆍ탕ㆍ문ㆍ무는 급급하였고, 중니는 황황했다.[堯舜禹湯文武汲汲 仲尼遑遑]"라고 하였고, 반고(班固)의 「답빈희(答賓戲)」에 "공자의 앉은 자리는 다스릴 겨를이 없었다.[孔席不暖.]"라고 하였다. 《文選 卷45》 목탁을 울렸다는 것은 《논어》 「팔일(八佾)」에 "의(儀) 고을의 봉인(封人)이 공자를 뵙고 나서 말하기를 '천하가 무도한 지 오래되었으니, 하늘이 장차 부자를 목탁으로 삼으시리라.[天下之無道也久矣 天將以夫子爲木鐸]'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이구(尼丘)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에 있는 산으로,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이 어머니 안씨(顔氏)와 함께 이구산(尼丘山)에 기도하여 공자를 얻었으므로 이름을 구(丘)라 하고, 자를 중니(仲尼)라고 하였다. 《史記 孔子世家》 수사(洙泗)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를 지나는 두 개의 강물 이름 곧 수수(洙水)와 사수(泗水)로, 이곳이 공자의 고향에 가깝고 또 그 강물 사이의 지역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기수(沂水)에는……발하고 호연한 기운이란 인욕(人慾)이 없고 천지의 만물과 함께 유행하여 천리(天理)가 충만한 기상을 말한다. 각자 자신의 뜻을 말해 보라는 공자의 명에 따라, 제자 증점(曾點)이 "모춘에 봄옷이 이루어지거든 관을 쓴 어른 대여섯 사람과 동자 예닐곱 사람과 함께 기수에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고 시를 읊으면서 돌아오겠습니다.[莫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하였다. 《論語 先進》 누추한 골목 공자의 제자인 안연(顏淵)이 거처했던 곳으로, 보통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자세를 의미하는 말이다. 《논어》 「옹야(雍也)」에 "어질다, 안회여! 한 그릇 밥과 한 표주박 물을 마시며 누추한 골목에 사는 것을 사람들은 근심하며 견뎌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回也!]"라고 하였다. 안회는 안연이다. 하나로……전하니 하나로 꿰뚫는 이치라는 것은 《논어》 「이인(里仁)」에 공자(孔子)가 제자 증삼(曾參)을 불러서 "우리의 도는 하나의 이치로 모든 일을 꿰뚫고 있다.[吾道一以貫之.]"라고 하자, 증삼이 "네, 그렇습니다.[唯.]"라고 대답하였고, 다른 문인들이 공자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 묻자, 증삼이 말하기를 "부자의 도는 바로 충서이다.[夫子之道, 忠恕而已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증삼은 여기에서 말한 증씨(曾氏), 곧 증자(曾子)이다. 성인의……되었도다 공자가 증자에게 전한 도통이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에게 전해진 것을 의미한다. 호연자(浩然子) 맹자를 가리킨다.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맹자가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我善養吾浩然之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양묵(楊墨)을……말하였네 《맹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맹자가 "능히 양묵을 막을 것을 말하는 자는 성인의 무리이다.[能言距楊墨者, 聖人之徒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또, 맹자가 이단(異端)의 학문이 횡행하는 것을 우려하여 "내가 이 때문에 두려워하여 선성의 도를 보위하여 양묵을 막으며 바르지 않은 말을 추방하여 부정한 학설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吾爲此懼, 閑先聖之道, 距楊墨, 放淫辭, 邪說者不得作.]"라고 하였다. 참고로, 한유(韓愈)의 「여맹간상서서(與孟簡尙書書)」에 "양자운(揚子雲)이 이르기를 '옛날에 양묵적이 정도를 막으므로 맹자가 말로 밝혀 물리쳐서 환하게 터놓았다.' 하였다.[揚子雲曰, 古者楊墨塞路, 孟子辭而闢之廓如也.]"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古文眞寶後集》 양묵은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으로, 유가에서는 이들을 이단(異端)으로 보아 물리치기를 힘썼다. 양주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인 자애설(自愛說)을 주장하였고, 묵적은 극단적인 박애주의인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였다. 죽백(竹帛) 고대에 종이가 없을 때 죽간(竹簡)과 명주에 글을 썼던 데서 온 말로 사서(史書)나 서책을 뜻한다. 염락(濂洛) 염계(濂溪)의 주돈이(周敦頤), 낙양(洛陽)의 정호(程顥)ㆍ정이(程頤) 형제를 합하여 이르는 말이다. 하남(河南) 중국 낙양(洛陽)의 별칭으로, 그곳에서 이학(理學)을 천명(闡明)했던 송(宋)나라 때의 대학자 정호(程顥)와 정이(程頤) 형제를 가리킨다. 관민(關閩) 관중(關中)의 장재(張載), 민중(閩中)의 주희(朱熹)를 합하여 이르는 말이다. 회암옹(晦庵翁) 주희(朱熹)를 가리킨다. 줄……씻겨졌네 사도가 다시 밝아짐을 의미한다. 증극(曾極)이 도주(道州)에 유배되었을 때, 당시 간신(奸臣) 한탁주(韓侂冑)에 의해 위학(僞學)이라는 배척을 받고 역시 도주에 유배 중이던 채원정(蔡元定)에게 부친 시이다. "거문고만 공연히 보갑에 들어 있을 뿐, 줄이 끊어져 소리는 들을 수가 없네그려.[瑤琴空寶匣, 絃斷不堪聽.]"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詩人玉屑 卷19》 좌선(坐禪)……많았네 육구연(陸九淵, 1139~1192)은 자는 자정(子靜), 호는 존재(存齋) 또는 상산(象山)이다. 주희와 함께 당대에 명망이 높았는데, 학문적 견해는 서로 대립적이었다. 육구연은 '심즉리(心卽理)'의 주관적 유심론(主觀的唯心論)을 주창하여 주자(朱子)의 '성즉리(性卽理)'와 천리인욕설(天理人欲說)에 대항하였는데, 이때부터 유학은 주(朱)와 육(陸)의 두 학파로 갈라졌다. 뒤에 육학은 왕양명(王陽明)에게 계승되어 양명학(陽明學)으로 발전하였다. 이때 주희의 학문을 따르는 학자들이 내세운 논리 중 가장 중요한 명분은 육왕의 학문적 방향이 선종(禪宗)을 닮았다는 것이었다. 이는 좌선을 통해 모든 사념을 잊으려는 공부가 오히려 잡념을 불러일으켜 한순간도 쉬지 않고 잡념과 싸워야만 하게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천작(天爵) 천연적인 작위(爵位)로, 고상한 도덕과 수양을 가리키는 말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인의충신과 선을 좋아하여 게을리하지 않는 것은 천작이다.[仁義忠信樂善不倦, 此天爵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황폐한 집 주희가 말하기를, "대개 몸은 하나의 집과 같고 마음은 한 집의 주인과 같은 것이다. 이 집의 주인이 있은 뒤에야 문호를 청소하고 사무를 정돈할 수 있으니, 만약 주인이 없다면 이 집은 하나의 황폐한 집에 불과할 뿐이다.[蓋身如一屋子, 心如一家主. 有此家主然後, 能灑掃門戶, 整頓事務. 若是無主, 則此屋, 不過一荒屋爾.]"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心經附註 卷3》 포옹(圃翁) 정몽주(鄭夢周, 1337~1392)로, 그의 호가 포은(圃隱)이므로 이른 말이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으로, 점필재는 그의 호이다. 도수(陶叟) 이황(李滉, 1501~1570)으로, 도수는 그의 호이다. 한나라는 금고(禁錮)하였고 조선의 유학(儒學)에 대한 박해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후한 환제(桓帝) 때 정권을 전횡하던 환관(宦官)들이 자기들을 비판한 진번(陳蕃), 이응(李膺) 등의 우국지사(憂國之士)들을 도리어 조정을 반대하는 당인(黨人)으로 몰아 옥에 가두거나 죽이고 종신금고(終身禁錮)에 처했던 이른바 당고(黨錮)의 화(禍)를 두고 한 말이다. 《後漢書 卷67 黨錮列傳》 송나라는……하였네 위와 마찬가지로, 조선의 유학에 대한 박해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송나라 영종(寧宗) 때 한탁주(韓侘冑)가 정권을 잡자, 그 추종자인 호굉(胡紘)이 한탁주의 사주를 받아 주희ㆍ조여우(趙汝愚)를 축출하려고 하였다. 이에 조여우를 탄핵하고 또 조여우가 주희를 끌어들여 위학(僞學)을 한다고 비방하였던 일련의 일을 가리킨다. 곧, 한탁주가 정권을 잡고 자기와 의견이 다른 사람을 제거하기 위하여 도학(道學)을 위학이라 칭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붕새……꺾어버린 것 아니랴 원문은 '鵬騰颶毋挫'이다. 내용상 앞뒤의 문맥이 통하지 않아 '毋'를 빼고 번역하였다. 학철(涸轍) 수레바퀴 자국에 아주 조금 괸 물을 말한다. 《장자(莊子)》 「외물(外物)」에 의하면, 붕어 한 마리가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에 허우적거리면서 길 가는 장주(莊周)에게, 한 말이나 한 되쯤 되는 물을 가져다가 자기를 살려 줄 수 있겠느냐고 하므로, 장주가 장차 오월(吳越) 지방으로 가서 서강(西江)의 물을 끌어다 대 주겠다고 하자, 그 붕어가 화를 내며 "나는 지금 당장 한 말이나 한 되쯤의 물만 얻으면 살 수 있는데, 당신이 이렇게 엉뚱한 말을 하니, 일찌감치 나를 건어물 가게에서 찾는 것이 낫겠다.[吾得斗升之水然活耳, 君乃言此, 曾不如早索我於枯魚之肆.]"라고 했다는 데서 온 말로, 전하여 곤경에 처한 것을 비유한다. 문을……잊었도다 유학을 버린 이후 바른 학문으로 되돌아올 줄 몰랐다는 의미이다. 徙 저본에는 '徙'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근거하여 '徒'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옛날에……쌓였다오 스스로를 경계하며 선을 행함을 의미하는 말이다.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영조(英祖) 즉위년 10월 24일 기사에 "조변(趙抃) 같은 경우는 또 항상 붉은 콩과 검은 콩을 놓고 한 번이라도 삿된 생각이 들면 바로 검은 콩을 놓고 한 번이라도 착한 생각이 들면 바로 붉은 콩을 놓았는데, 처음에는 검은 콩이 많았으나 나중에 가서는 붉은 콩이 많아지는 경지에 이르렀다 합니다."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이를 가리키는 듯하나, 자세하지 않다. 요임금도……된다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자기가 원하는 사람처럼 그대로만 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亦爲之而已矣.]"라고 전제한 뒤에, "요 임금의 옷을 입고, 요 임금의 말을 외우고, 요 임금이 행한 대로 행하면, 바로 요 임금이 되는 것이다.[服堯之服, 誦堯之言, 行堯之行, 是堯而已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주일무적(主一無適) 정이(程頤)가 '경(敬)'을 설명하기 위해서 제시한 하나의 명제이다. 주일(主一)은 하나를 위주로 한다는 뜻으로 마음을 전일(專一)하게 하는 것을 말하고, 무적(無適)은 옮겨 감이 없다는 뜻으로 마음속에 잡념이 없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정수언(二程粹言)》 권상(卷上)에 "주일을 경이라 하고, 무적을 일이라 한다.[主一之謂敬 無適之謂一]"라고 하였다. 이에 대하여 주희는 《주자어류(朱子語類)》 권120에 "정자가 말한 주일무적의 주일은 단지 전일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程子所謂主一無適, 主一只是專一.]"라고 하였고, 또 《논어》 「학이(學而)」의 '경사이신(敬事而信)'에 대한 주희(朱熹)의 주석에 "경은 주일무적을 의미한다.[敬者, 主一無適之謂.]"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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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先塋) 아래 마을에 묵으며 느낀 바 있어【신묘년(1651, 28세) 정월 개장(改葬)하는 일로 김애반(金崖盤)이 사는 계곡에 머물렀다.】 宿先塋下村有感【辛卯正月。以改窆事。留金崖盤之谷。】 옛 무덤의 소나무와 가래나무60) 삼백 년 되었으니저물녘 구름과 시든 풀 찬 안개에 잠겼네구릉과 산은 응당 선인(先人)의 얼굴 기억할 것이니눈 닿는 곳마다 마음 처연하기 그지없네두 번째마을 사람이 김 거사(金居士)를 맞이하여 부르니고로(故老)는 아직도 박 정승(朴政丞)61)을 알고 있네그늘진 벼랑에 해 저물어 산 아래서 묵으니묵은 구름은 응당 내 심정을 알 것이네【박사암(朴思庵) 상공(相公)은 선생의 5대조 상사공(上舍公)의 생질이다.62) 일찍이 이곳에서 참배한 적이 있어 고로 가운데 아직도 아는 자가 있었다. 그러므로 말한 것이다.】세 번째고향의 묵은 풀 삼천 일이나 되었건만자식의 애통한 마음은 하루 온 종일 가득하네아득하고 넓은 천지와 같은 무한한 그리움금계(金溪)의 물과 달 또한 응당 알 것이네 舊壠松楸三百年暮雲衰草鎖寒烟邱山應記先人面觸目無非意愴然其二村人迎謂金居士故老猶知朴政丞日暮陰崖山下宿宿雲應識我心情【朴相公思庵。乃先生五代祖上舍公之宅相也。嘗參謁於此。故老猶有及見之者故言。】其三故山宿草三千日人子哀情十二時天遠地長無限思金溪水月也應知 소나무와 가래나무 예로부터 선산(先山)에 이러한 나무를 많이 심었으므로, 곧 선영(先塋)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박 정승(朴政丞) 원문은 '박 정승(朴政承)'인데, 문맥을 살펴 '승(承)'을 '승(丞)'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박 정승'은 곧 박순(朴淳, 1523~1589)을 가리킨다.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화숙(和叔), 호는 사암(思菴)이다. 1553년 과거에 급제하여 홍문관 응교, 이조 참의, 대사헌, 예조 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문장에 뛰어나고 당시(唐詩)에 능하였다. 박사암(朴思庵)……생질이다 김만영의 5대조는 성균관 생원 김효정(金孝禎)인데, 실제 기록을 보면 박순은 김효정이 아닌 4대조 김후(金候)의 생질로 되어 있다. 주석을 단 사람의 착오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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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기록하다【병서】 紀夢【並序】 한나절 한가로이 이야기 나누다가 하룻밤을 지새니덧없이 사는 신세 10년 동안의 마음 나누었네알지 못하겠구나 천 년이 지난 뒤에다시 어떤 사람이 이 삶을 위로할 줄【세상을 떠난 나의 종형(從兄) 호정(浩亭) 한영씨(漢英氏)는 타고난 자질이 호매(豪邁)하고 문장이 굉달(宏達)하여 나이 겨우 18세에 대책(大策)으로 세상을 울렸으니, 만약 하늘이 몇 년의 수명을 더 빌려 주셨다면 그 성취를 헤아릴 수 있었을 것이다.67) 그러나 불행히도 약관의 나이에 사망하여 말로는 전할 수 없는 것68)과 함께 멀리 떠나갔으니, 나는 언제나 애통한 마음을 자나깨나 떨치지 못하였다. 기축년(1649, 26세) 12월 13일 밤 꿈에 종형과 함께 선영 아래 있는 벽송당(碧松堂)으로 갔는데, 밤이 되어 촛불을 밝히고 경사(經史)를 담론하였다. 다음날 아침 나만 홀로 집으로 돌아오고 종형은 그대로 그곳에 머물렀기에 내가 이 시를 지어 증별하였다. 잠에서 깨어 이 일을 기록하니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나의 심사는 아마도 신명(神明)께서 아실 것이다.】 半日閒談一夜經浮生身世十年情不知千載歸來後更有何人慰此生【余亡從兄浩亭漢英氏。天姿豪邁。文章宏達。年纔十八。以大策鳴世。若天假數年。其成就可1)量。不幸弱冠而沒。與其不可傳者逝矣。余每痛悼。寤寐不置。歲己丑十二月十三日夜夢。與從兄同往先塋下碧松堂。入夜明燭。談論經史。明朝。余獨歸家。而從兄尙留。余作此詩以贈之。覺而記之。泫然垂泣。余之心緖。殆將神明知之矣。】 헤아릴……것이다 원문은 '향량(向量)'인데, 문맥을 살펴 '향(向)'을 '가(可)'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말로는……것 인간의 말이나 글로는 전할 수 없는 죽은 사람의 생각‧정신‧기예‧경험 따위를 가리킨다. 《장자(莊子)》 〈천도(天道)〉에, "수레바퀴를 만들 때 너무 깎으면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해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 깎지도 덜 깎지도 않는 일은 손으로 터득하여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지 입으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 법도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제가 제 자식에게 깨우쳐 줄 수도 없고 자식 역시 제게서 물려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 칠십에도 늙도록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사람도 그 전해 줄 수 없는 것과 함께 죽어 버렸습니다. 따라서 전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뿐입니다.[斲輪徐則甘而不固 疾則苦而不入 不徐不疾 得之於手而應於心 口不能言 有數存焉於其間 臣不能以喻臣之子 臣之子亦不能受之臣 是以行年七十而老斲輪 古之人與其不可傳也死矣 然則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可 원문은 '向', 문맥을 살펴 바로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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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고음(九臯吟) 九臯吟 【병서. 내가 사는 곳에는 사방에 언덕이 있어 돈대로 들어갈 적마다 마주하였다. 북쪽 기슭에 있는 서북쪽에서부터 동쪽까지의 네 언덕을 '건(乾 ☰)', '감(坎 ☵)', '간(艮 ☶)', '진(震 ☳)'이라 하고, 남쪽 기슭에 있는 동남쪽에서부터 서쪽까지의 네 언덕을 '손(巽 ☴)', '이(離 ☲)', '곤(坤 ☷)', '태(兌 ☱)'라 하였다. 집은 간고(艮臯)의 남쪽에 있고 손고(巽臯)와 이고(離臯)의 사이를 마주하였으며 진고(震臯), 태고(兌臯), 간고, 감고(坎臯) 및 건고(乾臯)가 사방에 마주해 있었다. 앞에는 샘이 모두 네 곳 있는데, 당 앞에 있는 것은 '소양(少陽)'이라 하고, 감고 앞에 있는 것은 '태양(太陽)'이라 하며, 손고 앞에 있는 것은 '소음(少陰)'이라 하고, 이고 앞에 있는 것은 '태음(太陰)'이라 하였다. 북쪽 기슭에 있는 네 언덕을 합하여 '양의(陽儀)'라 하고, 남쪽 기슭에 있는 네 언덕을 합하여 '음의(陰儀)'라 하였다. 집 뒤에는 둥근 언덕이 있어 이를 '태원고(太圓臯)'라 하였으니, 즉 태극(太極)으로, 팔괘의 돈대와 합쳐 '구고'라 하였다. 태원고 앞에 서서 사방을 멀리 바라보면 무등산(無等山)으로부터 개천산(開天山), 월출산(月出山)을 거쳐 금성(錦城)에 이르기까지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총 64개였으므로 모두 64괘(卦)로 이름을 붙였다. 무등산은 천근(天根)의 복괘(復卦)가 되고, 월출산은 월굴(月窟)의 구괘(姤卦)가 되며,70) 금성은 추분(秋分)의 돈괘(遯卦)가 되고, 개천산은 춘분(春分)의 임괘(臨卦)가 되니,71) 나의 집은 그 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나는 생각건대, 천지의 이치는 모두 자연의 조화로서 나 또한 무극(無極), 이기(二氣), 오행(五行)과 같은 자연의 조화를 받아 세상에 태어났다. 지금 우연히 머무를 땅을 차지하여 이렇게 자연 산수와 감응하게 되었으니, 지모와 계교, 안배(按排)와 견합(牽合)을 기다리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대역(大易)의 위수(位數)에 부합한 것이다. 나는 아침저녁으로 그 사이를 배회하면서 흔연히 기쁜 마음이 들었으며, 다른 사람이 미처 알지 못하는 묘한 이치를 깨닫고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에서 자적(自適)할 수 있기까지 하였다. 이에 마침내 언덕마다 절구 한 수씩을 읊어 한가한 중에 읊조릴 거리로 삼았다.】하나의 언덕 둥글고 맑으며 기운 충만하니진원(眞元)을 머금어 묘한 이치 무궁하네삼십육궁에 봄기운 충만하니72)주인옹의 심사와 은연중에 상통하네【위는 태원고(太圓臯)다.】작은 언덕 서북쪽을 '건구(乾邱)'라 부르니자리 사이의 서쪽 하늘 엄숙한 가을 기운이네만물 고요히 관찰함에 모두 수렴하여 견고히 지키니73)자신의 달아난 닭과 개를 다시 거둘 줄 아네74)【위는 건고(乾臯)다.】정중(正中)의 양기(陽氣)가 건원(乾元)75)을 얻었으니만 가지 조화의 근본 이 속에 보존되어 있네작은 돈대를 명명한 데에는 뜻이 있음을 알겠으니앞 샘의 활수(活水)에 신령한 근원이 있어서라네76)【위는 감고(坎臯)다.】은거하는 곳 동북쪽 간괘(艮卦)가 언덕을 이루니그 아래에 원천(源泉)이 있어 쉬지 않고 흐르네77)산택(山澤)은 하나의 기운으로 통하고 있음을 참으로 알겠으니빛을 머금고 절로 아름다운 것 옥을 감춰두고 있기 때문이라네78)【위는 간고(艮臯)다.】하나의 양(陽) 처음 움직여 천문(天門)을 여니79)무성한 봄빛 해가 점차 따뜻해지네홑옷과 복건(幅巾)에 쌓인 먼지 비로소 털어내니꽃 끼고 버들 따르며 맑은 근원을 찾아가네80)【위는 진고(震臯)81)다.】산이 건지(建地)【산 이름】를 도는 것 개천(開天)【산 이름】에서부터 시작되니나의 집 동남쪽에 손괘(巽卦)가 높은 봉우리 이루었네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늦봄에 시우(時雨) 내린 뒤좋은 바람이 안개 걷어내 푸른 옥 드러내는 것이라네【위는 손고(巽臯)다.】달이 명산 위에 떠올라 일봉(日封)【산 이름】을 마주하니언덕의 아름다운 기운이 두 봉우리에 접해 있네문명(文明)82)은 본래 남쪽 땅을 담당하니83)때때로 구름과 노을을 일으켜 우리 농토를 적셔주네【위는 이고(離臯)다.】태음(太陰)의 샘물가가 곤구(坤邱)이니못은 윤기 나고 산에는 안개 껴 바른 기운 떠오르네남쪽으로 종이창 열고서 고요히 마주하니헛된 생각 절로 사라지고 한가한 시름만 맺히네【위는 곤고(坤臯)다.】만상(萬象)이 근본으로 돌아가 태괘(兌卦)가 문을 이루니원기(元氣)를 닫고 감추어 추위와 더위가 적당하네가을날 될 적마다 높이 올라 바라보니큰 조화가 유행함에 흔적도 보이지 않네【위는 태고(兌臯)84)다.】 【幷序。余所居四方有臯。凡入墩相對。北岸四臯自西北而至東曰乾‧坎‧艮‧震。南岸四臯自東南而至西曰巽‧離‧坤‧兌。家在艮臯之南。面巽‧离之間。震‧兌‧艮‧坎曁乾臯在四畔相對。前有泉凡四穴。在堂前者名曰少陽。在坎臯前者曰太陽。巽臯前者曰少陰。離臯前者曰太陰。合北岸四臯曰陽儀。南岸四臯曰陰儀。家後有圓臯曰太圓臯。卽太極。幷八卦之墩爲九臯。立圓臯之前。四顧遠望。自無等歷開天‧月出至錦城【皆山名】。大小峯巒凡六十四。皆名之以六十四卦。無等爲天根之復。月出爲月窟之姤。錦城爲秋分之遯。開天爲春分之臨。余家居于其中。余惟天地之理。皆自然之化。而余亦稟無極‧二五自然之化。受生于兩間。今偶占棲宿之地。有此自然山水之應。不待智謀巧計安排牽合。而自然相符於大易之位數。余朝暮倘徉於其間。欣然於吾心。至有人不及知之妙。而自適夫至靜之中者。遂逐臯賦律歌一絶。以爲閑中吟詠之具云。】一邱圓淨氣冲融含得眞元妙不窮三十六宮春意足主翁心事暗相通【右太圓臯】小邱西北號乾邱位間金天肅氣秋萬物靜觀皆斂固自家鷄犬放知收【右乾臯】正中陽氣得乾元萬化根柢此裏存名命小墩知有意前泉活水有靈源【右坎臯】幽居東北艮成邱下有源泉不舍流山澤固知通一氣含輝自媚玉藏收【右艮臯】一陽初動闢天門藹藹春光日向暄單裌幅巾塵始拂傍花隨柳趁淸源【右震臯】山回建地【山名】自開天【山名】我屋東南巽作巓最是晩春時雨後好風開霧露蒼璇【右巽臯】月出名山對日封【山名】小邱佳氣接雙峯文明自是司南紀時起雲霞澤我農【右離臯】太陰泉畔是坤邱澤潤山蒸正氣浮南闢紙窓相對靜自無虛想結閒愁【右坤臯】萬象歸根兌作門閉藏元氣節寒暄每當秋日登高望大化流行不見痕【右兌臯】 무등산은……되며 '천근(天根)'은 '하늘의 뿌리'라는 뜻으로 양(陽)이 시작하는 복괘(復卦)를 가리키고, 월굴(月窟)은 '달의 굴'이라는 뜻으로 음(陰)이 시작하는 구괘(姤卦)를 가리킨다. 송(宋)나라 소옹(邵雍)의 〈관물음(觀物吟)〉에, "이목(耳目)이 총명한 남자 몸으로 태어났으니, 천지조화의 부여가 빈약하지 않구나. 월굴을 탐구해야만 물을 알 수 있거니와, 천근에 못 올랐다면 어찌 사람을 알리요. 건이 손을 만난 때에 월굴을 살펴보고, 지가 뇌를 만난 곳에서 천근을 볼 수 있으니, 천근과 월굴이 한가로이 왕래하는 가운데 삼십육궁이 온통 봄이로구나.[耳目聰明男子身 洪鈞賦與不爲貧 須探月窟方知物 未躡天根豈識人 乾遇巽時爲月窟 地逢雷處見天根 天根月窟閒往來 三十六宮都是春]"라 하였는데, 건(☰)이 손(☴)을 만난 것이 바로 구괘(䷫)로 월굴이고, 곤(☷)이 진(☳)을 만난 것이 바로 복괘(䷗)로 천근이다. 금성은……되니 송나라 호방평(胡方平)의 《역학계몽통석(易學啓蒙通釋)》에 있는 〈복희육십사괘절기도(伏羲六十四卦節氣圖)〉를 보면, 복희육십사괘방원도(伏羲六十四卦方圓圖)라는 하나의 권(圈)에 24절기를 나누어 배치하여 복괘(復卦)를 동지(冬至)에, 임괘(臨卦)를 춘분(春分)에, 구괘(姤卦)를 하지에, 돈괘(遯卦)를 추분(秋分)에 위치시켰다. 삼십육궁에……충만하니 송(宋)나라 소옹의 〈관물음(觀物吟)〉에, "천근과 월굴이 한가히 왕래하는 중에, 삼십육궁이 모두 봄이로구나.[天根月窟閒往來 三十六宮都是春]"라 한 데서 취해 온 구절이다. '삼십육궁'은 64괘(卦)와 같은 것으로서 64괘 모두가 하나의 봄기운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삼십육궁과 관련하여, '64괘 중에 변역(變易)하는 괘가 8이니, 건괘(乾卦)‧곤괘(坤卦)‧감괘(坎卦)‧이괘(離卦)‧이괘(頤卦)‧대과괘(大過卦)‧중부괘(中孚卦)‧소과괘(小過卦)이고, 교역(交易)하는 괘가 56이니, 둔괘(屯卦)‧몽괘(蒙卦) 이하가 그것이다. 변역은 8괘가 각각 한 궁이 되고, 교역은 2괘가 합하여 한 궁이 된다.'라고 하였으니, 이 해설이 가장 타당하다 하겠다."라 하였다. 《星湖僿說 卷20 經史門 三十六宮》 수렴하여 견고히 지키니 '수렴'은 마음을 고도로 집중함을 말한다. 《심경주부(心經附註)》 〈경이직내장(敬以直內章)〉에서 윤돈(尹焞)이 "경이란 마음을 수렴하여 한 물건도 용납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敬者 其心收斂 不容一物之謂]"라 한 대목이 보인다. 자신의……아네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放心]을 찾을 줄 안다는 뜻이다.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義)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서 따르지 않으며, 그 마음을 놓치고서 찾을 줄을 모르니, 애달프다. 닭이나 개가 달아나면 사람들이 찾을 줄을 알면서도 마음이 달아나면 찾을 줄을 모른다. 학문의 길은 다른 것이 아니다. 달아난 그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仁 人心也 義 人路也 舍其路而弗由 放其心而不知求 哀哉 人有雞犬放則知求之 有放心而不知求 學問之道無他 求其放心而已矣]"라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건원(乾元) 천덕(天德)의 큰 시초를 말한다. 《주역》 〈건괘(乾卦) 단(彖)〉에, "위대하도다 건원이여, 만물이 여기에서 나오나니, 이에 하늘의 일을 총괄하도다.[大哉乾元 萬物資始 乃統天]"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앞……있어서라네 '활수(活水)'는 근원이 있어 항상 흐르는 물을 말한다. 이 구절은 주희(朱熹)의 시 〈관서유감(觀書有感)〉에, "조그맣고 모난 연못에 한 거울이 열리어, 하늘빛 구름 그림자가 함께 배회하네. 묻거니 어이하여 그처럼 맑은가. 근원에서 활수가 솟아 나오기 때문이라네.[半畝方塘一鑑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라 한 데서 취해 온 것이다. 그……흐르네 《논어》 〈자한(子罕)〉에, "공자가 시냇가에서 말하기를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이고 낮이고 멈추는 법이 없도다.'라고 하였다.[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 한 부분과 주희(朱熹)의 시 〈관서유감(觀書有感)〉에, "조그맣고 모난 연못에 한 거울이 열리어, 하늘빛 구름 그림자가 함께 배회하네. 묻거니 어이하여 그처럼 맑은가. 근원에서 활수가 솟아 나오기 때문이라네.[半畝方塘一鑑開 天光雲影共徘徊 問渠那得淸如許 爲有源頭活水來]"라 한 부분에서 취해 온 구절이다. 빛을……때문이라네 이 구절은 주희(朱熹)의 〈재거감흥(齋居感興)〉 제3수에, "진주가 들어있기에 못 물은 절로 아름답고, 옥이 묻혀있기에 산은 빛을 머금었네.[珠藏澤自媚 玉蘊山含輝]"라 한 데서 취해 온 것이다. 《朱子大全 卷1》 하나의……여니 진괘(震卦)는 두 개의 음(陰) 아래 하나의 양(陽)이 생겨난 모습(☳)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팔괘 중에서 진괘는 방위로는 동쪽, 계절로는 봄을 상징한다. 꽃……찾아가네 이 구절은 송(宋)나라 정호(程顥)의 시 〈우성(偶成)〉에, "구름 맑고 바람 가벼운 한낮 가까운 때에, 꽃 끼고 버들 따라 앞 시내를 건너네.[雲淡風輕近午天 傍花隨柳過前川]"라 한 데서 취해 온 것이다. 《二程文集 卷1》 진고(震臯) 진괘(震卦)는 동방(東方)이고 봄에 해당하는 괘다.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만물이 진에서 나오니, 진은 동방이다.[萬物 出乎震 震 東方也]"라 하였다. 문명(文明) 이괘(離卦)는 문명(文明)함을 뜻한다. 《주역》 〈이괘(離卦) 육이(六二)〉의 전(傳)에, "황은 중앙의 색이고, 문채가 아름다우니, 문명(文明)하고 중정(中正)함은 아름다움이 성한 것이다. 그러므로 황리(黃離)라 한 것이다. 문명중정(文明中正)한 덕으로 위로 문명중순(文明中順)한 군주와 함께 하니 그 밝음이 이와 같고, 붙은 바가 이와 같다면 대선(大善)의 길함이다.[黃 中之色 文之美也 文明中正 美之盛也 故云黃離 以文明中正之德 上同於文明中順之君 其明如是 所麗如是 大善之吉也]"라 하였다. 남쪽 땅을 담당하니 '남쪽 땅'의 원문은 '남기(南紀)'다. 《시경》 〈소아(小雅)‧사월(四月)〉에, "도도한 강한이, 남국의 강기(綱紀)가 되도다.[滔滔江漢 南國之紀]"라 한 데서 유래한 말로, 전하여 남방(南方)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인다. 팔괘 중에서 이괘는 방위로는 남쪽, 계절로는 여름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태고(兌臯) 태괘(兌卦)는 서방(西方)이고 가을에 해당하는 괘다.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태는 정추(正秋)이니 만물이 기뻐하는 바이다.[兌 正秋也 萬物之所說也]"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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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초사(錦里草舍) 23영 錦里草舍二十三詠 옥을 쪼아 만든 듯한 앞산 두 봉우리 기이하니큰 강가에 우뚝하게 비껴 나왔네누가 낭간(琅玕)85)의 보석 심어 놓았나창문 앞 눈 내린 뒤의 자태를 오래도록 마주하네【위는 앞산의 푸른 대나무다.】푸른 산 한 기슭 강 머리에 자리해 있으니만 그루의 푸른 소나무 푸른 물가와 가깝네가장 사랑스러운 것은 맑은 밤의 바람과 물 소리상쾌하게 세상의 근심을 모두 씻어주는 것이라네【위는 뒷산 기슭의 푸른 소나무다.】조수가 물러난 강 가운데 백사장 드러나니한 마리 잠자는 해오라기 갈대 옆에 서 있네잠잘 때에도 깨어 있을 때와 같은 마음 있으리라 생각하니호수에서 저녁노을 좇아 나는 꿈을 꾸겠지【위는 모래톱의 잠자는 백로다.】띠 두른 듯한 푸른 안개 강촌에 일어나니붉은 여뀌 자란 물가에 한 줄기 흔적모랫가의 흰 갈매기 잠기운 가득하니작은 바람에 물결 이는 곳 별천지라네【위는 안개 낀 물가의 잠자는 갈매기다.】개펄에 어둑어둑 해 저물 때바다 위 하늘 끝이 없어 새 돌아가는 것 더디네강교(江郊)의 목동 돌아가는 뜻을 재촉하니소 등 위의 노랫소리 물 너머에서 기이하게 들려오네【위는 사초(莎草) 자란 들판의 목동 노랫소리다.】그물 걷어 돌아감에 물고기 배에 가득하니늙은이의 참된 즐거움 고요함 속의 하늘이라네배 옮겨 물가의 대나무에 늦게 다다르니한 곡조 길게 노래하며 바위 아래서 잠드네【위는 죽포(竹浦)의 어부가다.】앞의 조수(潮水) 막 떨어지자 다음 조수 일어나니백 길의 험한 여울 큰 물결 놀라워라본래 어부는 목숨을 가벼이 여기니조각배 출렁이며 이리저리 기우네【위는 여울을 거슬러 오르는 작은 배다.】눈에 가득한 긴 강 물결 참으로 고요하니저물녘 바람 불고 지나가자 옥비늘 같은 물결 일어나네큰 배 어딘가에서 저물녘에 돌아오니천 척(尺)의 높은 돛 달아 한 가닥 실처럼 가볍네.【위는 바람 끌고 돌아오는 배다.】우뚝한 모습으로 산과 바다에 웅장하게 서려 있으니사계절의 아름다운 기운 높은 하늘과 접해 있네꼭대기엔 언제나 구름과 무지개 머무르니단비를 맺어 해동(海東)을 적셔 주기 위해서라네【위는 서악(瑞岳)에 낀 짙은 구름이다.】강가에 높이 솟은 옥비녀 하나아득히 단정하고 빼어난 모습으로 하늘 가운데에 꽂혀있네저녁노을 조각조각 비단처럼 붉으니안개 반쯤 가린 나환(螺鬟)86) 같은 봉우리를 숨겨두었네【위는 백산(白山)의 저녁노을이다.】여울을 관찰하는 데 방법이 있다는 성류(聖流)의 말씀87)만 이랑으로 나뉜 파도라도 근원은 하나일 뿐이라네작은 배 가볍게 띄워 짧은 노 저으니참된 물갈래 찾아 맑은 물가로 거슬러 오르기88) 위함이라네【위는 배를 띄워 물결을 관찰한 일이다.】그윽한 회포 적적하여 홀로 배회하니바위 벼랑에 이르러 골짜기의 난초를 캐네지팡이 짚고 작은 길 걷다 머리 돌려 서니푸른 산 말 없이 구름 위로 솟아 있네【위는 지팡이 짚고 걷다 산을 본 일이다.】어촌과 산성에서 천민(天民)89)으로 늙어가니적막한 물가에서 고기 잡으며 살아가네밤나무 심어 정원 만듦에 가을에 열매 맺히니선생은 이제부터 완전히 가난하지는 않을 것이네90)【위는 밤나무 숲에서 열매를 거둔 일이다.】골짜기 가득한 푸른 소나무 만 줄기 벽을 이루었으니집을 휘감은 짙은 푸르름 처마 기둥을 적시네작은 바람도 일지 않고 국화는 늙었으니정화(精華)를 캐어다 섭생(攝生)을 할 것이네【소나무 언덕에서 꽃을 캔 일이다.】달빛 두른 이른 새벽에 홀로 호미 메니천맥(泉脈)을 찾아 산 도랑을 지나기 위해서라네골짜기에 영험한 근원이 있음을 알겠으니수확하는 일91)은 모름지기 물을 대는 처음을 점쳐야 하네【위는 도랑을 터서 곡식에 물을 댄 일이다.】비가 가벼운 먼지 적셔 봄기운 길어지니울창한 숲에 무슨 풀인들 향기롭지 않으랴질퍽한 땅 판 것은 뜰 앞의 국화 심기 위함이니너의 곧은 마음과 만절(晩節)의 향기92) 알겠네【위는 비를 맞으며 국화를 심은 일이다.】만사(萬事)를 조화옹(造化翁)의 권능에 맡겨 두니이 마음 거울 속 하늘을 전적으로 주재하네발을 걷어 맑은 강의 달빛 곧바로 맞이하니아름다운 거문고93)로 두세 곡조를 한가로이 연주하네【위는 발을 걷고 거문고를 탄 일이다.】밝고 깨끗한 종이창 향로 연기에 가리니우두커니 말을 잊은 채 해질녘까지 앉아 있네고요함 속은 진정 즐거운 곳이 되기에 충분하니숙연한 마음으로 책을 펼쳐 천군(天君)을 섬기네94)【위는 문을 닫고 책을 본 일이다.】강 길 소나무 아래 사립문으로 비껴 이어지니객이 찾아와 그런대로 안부를 물어보네기쁜 마음으로 질항아리에 든 술 따르니객과 주인 말 없이 시비를 잊네【위는 사립문을 열어 객을 맞이한 일이다.】강 하늘에서 경물 완상하는 데 이 마음을 부리니95)헛된 생각 흉금에 이르는 일이 없지 않네돌아와 눈을 감고서 우두커니 앉으니밝은 거울 흠 없고 고요한 물 깊네【위는 눈을 감고 마음을 보존한 일이다.】날 갠 뒤에 떠내려가는 얼음 강기슭을 덮어 흐르니젖은 구름 흰 갈매기 노니는 물가에서 처음 흩어지네긴 강에 점점이 높이 나는 기러기강여울에 어지러이 내려와 떠나가는 배를 뒤따르네【위는 물가에 기러기가 내려앉은 일이다.】작은 정자에 날씨 막 개어 달 밝게 뜨니창가를 거닐자 온갖 생각 잠잠해지네두루미 울음소리 먼 포구에서 들려오니이 몸 마치 변화한 듯 깃옷이 가볍네【위는 먼 물가에서 우는 학이다.】물 빠지고 여울 잔잔한 양 기슭의 모래톱강에 가로놓은 긴 그물로 물고기와 새우 잡아 올리네한껏 구경하느라 나도 모르게 늦게야 돌아오니붉은 여뀌 자란 물가에 해가 이미 기울었네【위는 여뀌 자란 언덕에서 고기잡이를 구경한 일이다.】 琢玉前山兩點奇截然橫出大江湄何人種得琅玕寶長對軒窓雪後姿【右前山翠竹】靑山一麓枕江頭萬樹蒼松近碧洲最愛淸宵風水韻爽然消盡世間愁【右後麓蒼松】潮退江心露白沙一䨥眠鷺傍蒹葭眠時想有醒時意夢入湖天趁落霞【右沙汀宿鷺】靑烟如帶起江村紅蓼汀洲一抹痕沙際白鷗眠意足小風波處別乾坤【右烟渚眠鷗】浦潊陰陰日落時海天無際鳥歸遲江郊牧竪催還意牛背歌聲隙水奇【右莎坪牧謳】捲網歸來魚滿船老翁眞樂靜中天移船晩擊汀邊竹一曲長歌巖底眠【右竹浦漁歌】前潮纔落後潮生百丈危灘大浪驚自是漁人輕性命扁舟出沒任㩻傾【右溯灘輕棹】極目長江波正平晩風吹過玉鱗生巨航何處歸來晩千尺高帆一縷輕【右引風歸帆】突兀雄蟠嶺海中四時佳氣接層穹頂頭常有雲霓住爲結甘霖潤海東【右瑞岳濃雲】江上亭亭玉一簪逈然端秀揷天心殘霞片片丹如綺藏得螺鬟霧半岑【右白山殘霞】觀瀾有術聖流言萬頃分波只一源輕理小舟浮短棹爲尋眞派泝淸濆【右理艇觀瀾】幽懷寂寂獨盤桓行趁巖崖採谷蘭柱杖小蹊回首立碧山無語出雲端【右柱杖看山】水村山郭老天民漁釣生涯寂寞濱種栗成園秋有實先生從此不全貧【右栗林收實】滿谷蒼松壁萬莖繞軒凝翠滴簷楹微風不動黃花老採得精華爲攝生【右松塢採花】帶月侵晨獨荷鋤爲尋泉脉過山渠谷中知有靈源在西事須占灌漑初【右疏渠灌稼】雨浥輕塵春意長萬林何草不芬芳穿泥爲種庭前菊知爾貞心晩節香【右帶雨種菊】萬事從他造化權此心專主鏡中天開簾直納淸江月閒弄瑤徽三兩絃【右開簾撫琴】紙窓明淨揜鑪薰塊坐忘言到日曛靜裏十分眞樂地肅然開卷事天君【右閉戶看書】江路斜連松下扉客來聊爲問寒饑欣然爲酌瓦樽酒賓主無言忘是非【右啓扉延賓】玩物江天役此心不無虛想到胷衿歸來瞑目塊然坐明鏡無痕止水深【右瞑目存心】霽後流澌沒岸流濕雲初散白鷗洲長江點點高飛鴈亂落江灘趁去舟【右滄洲落鴈】小亭新霽月生明徙倚軒窓百慮平野鶴一聲來遠潊此身如化羽衣輕【右遠潊叫鶴】水落灘平兩岸沙橫江長網遮魚蝦貪看不覺歸來晩紅蓼汀邊日已斜【右蓼岸觀漁】 낭간(琅玕) 옥과 비슷한 아름다운 돌인데, 흔히 대나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나환(螺鬟) 소라 껍질과 쪽진 머리라는 뜻으로, 산들이 둥글둥글 겹쳐 있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여울을……말씀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물을 관찰할 때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여울을 보아야 한다.[觀水有術 必觀其瀾]"라 하였다. 학문을 함에 있어 도(道)의 근본을 향해 점진적으로 나아가야 함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거슬러 오르기 원문은 '기(沂)'인데, 문맥을 살펴 '소(泝)'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천민(天民) 하늘의 뜻을 알고 이에 걸맞게 행하는 백성이라는 뜻이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천민은 자기가 도에 통달하여 천하에 펼칠 수 있게 된 뒤에야 행하는 사람이다.[有天民者 達可行於天下而後行之者也]"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밤나무……것이네 이 시구는 두보(杜甫)의 〈남린(南鄰)〉 시의 "까만 각건 쓰신 우리 금리 선생, 정원에서 밤만 주워도 완전히 가난하지만은 않겠구려.[錦里先生烏角巾 園收芋栗不全貧]"라는 구절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杜少陵詩集 卷9》 수확하는 일 원문은 '서사(西事)'다. 가을의 추수를 말한다. 《서경》 〈요전(堯典)〉에, "지는 해를 공경히 전송하여 추수(秋收)를 고루 다스리게 한다.[寅餞納日 平秩西成]"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만절(晩節)의 향기 늦가을에 피는 국화의 향기를 표현한 말이다. 송(宋)나라 한기(韓琦)의 시에, "옛 동산 가을빛이 묽어서 부끄럽소마는, 늦가을 향기로운 국화꽃을 한번 보소.[雖慚老圃秋容淡 且看寒花晩節香]"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安陽集 卷14 九日水閣》 아름다운 거문고 원문은 '요휘(瑤徽)'다. 옥으로 만든 기러기발을 뜻하는데, 아름다운 거문고를 가리키는 말로도 흔히 사용된다. 숙연한……섬기네 송나라 진덕수(眞德秀)의 〈심경찬(心經贊)〉에, "밝은 창가 비궤 위에 맑은 대낮 향 피우고, 책을 펴고 숙연한 마음으로 나의 천군 섬기노라.[明窓棐几 淸晝鑪薰 開卷肅然 事我天君]"라 한 데서 취해 온 구절이다. 강……부리니 자연 경물을 즐기는 데 마음을 쏟아 종종 헛된 생각을 하기도 했다는 의미다. '쓸데없는 물건을 가지고 노는데 데 몰두하여 소중한 자기의 본심을 잃어버린다'는 뜻의 '완물상지(玩物喪志)'를 염두에 두고 쓴 대목이다. '완물상지'는 《서경(書經)》 〈여오(旅獒)〉에, "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하찮게 여기면 덕을 잃고, 좋아하는 사물에 빠지면 뜻을 잃는다.[玩人喪德 玩物喪志]"라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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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서실(龜巖書室) 8영 龜巖書室八詠 어느 해에 신부(神斧)로 견고하고 단단한 바위를 쪼개어96)만고에 변치 않는 거북97)의 얼굴을 새겨 놓았나복희씨(伏羲氏)와 문왕(文王)의 3획과 9획은 다시 없으니98)구름 토해낸 맑은 새벽 사립문을 감싸네【위는 구암의 새벽 구름이다.】금빛 자라 천 척(尺)이나 높아 경파(鯨波)를 압도하니고운 노을 멀리서 끌어와 푸른 산에 칠하네바다 너머 봉래산 이를 통해 접할 수 있으니십주(十洲)99)에 언제나 신령한 뗏목100)을 띄울까【위는 오령(鰲嶺)에 낀 저녁노을이다.】어렴풋한 산색(山色) 강촌에 들어오니물가의 대나무와 난초 마을 문에 접해 있네몇 가닥 어부의 피리 소리 들려오는 곳 어디인가깊은 밤 달빛 타고 그윽한 집에 이르네【위는 죽포(竹浦) 어부의 피리소리다.】숲속 창에서 자다 일어나 집 밖으로 나오니온갖 경관 소리 없고 달만 시내 위에 떠 있네너머의 작은 종소리 귓전에 울려 지나니묵묵한 깊은 감회 선천(先天)101)에 이르네【위는 송암(松庵)의 범종이다.】비 내린 뒤의 산속 집 특별히 한가하니사방 둘러싼 구름머리 푸른빛으로 쪽을 단장하였네만 줄기의 푸른 옥 처마 주위에 늘어서 있으니봄이 선생의 궤안(几案) 사이에 있다네【위는 북쪽 기슭의 비 갠 뒤의 소나무다.】비가 씻어낸 서늘한 가을 하늘에 달 한 덩이 뜨니푸른 하늘 공활하고 날이 갠 뒤의 빛 새롭네분명하게 산인(山人)의 집 곧바로 비추니뜰 넓어 일찍이 한 점의 먼지도 없네【위는 동쪽 정자의 비 갠 뒤의 달이다.】순(舜) 임금과 문왕(文王)의 밝음과 상서로움 다시 일어나기 어려우니봉황을 노래하는 맑은 소리 초(楚)나라 광인(狂人)102)에게서 나오네천 년의 덕스러운 빛 떠나가는 그림자를 미혹시키니푸른 산 예전처럼 아침 해에 빛나네【위는 봉악(鳳岳)의 아침 해다.】물러가는 조수(潮水)를 급히 올라옴에 저녁 바람 생겨나니난포(蘭浦)에 구름 걷혀 졸던 해오라기 놀라네한 곡조 뱃노래 부르는 이 어느 곳의 객인가반돛 높이 올리고서 텅 비고 밝은 데로 거슬러 올라가네【위는 저탄(猪灘)의 저물녘 배다.】 何年神斧斲堅頑刻出玄夫萬古顔無復羲文三九畫吐雲淸曉護松關【右龜巖曉雲】金鰲千尺壓鯨波遠引纖霞抹碧螺海外蓬壺從可接十洲何日泛靈槎【右鰲嶺晩霞】有無山色入江村渚竹汀蘭接巷門何處數聲漁子篴夜深乘月到幽軒【右竹浦漁篴】林窓睡覺出軒前萬境無聲月在川山外小鍾鳴歷耳默然深感到先天【右松庵梵鍾】雨後山軒特地閒四圍雲䯻碧粧鬟萬莖蒼玉排簷宇春在先生几案間【右北麓晴松】雨洗凉秋月一輪碧天空闊霽光新分明直照山人室庭豁曾無一點塵【右東亭霽月】舜文明瑞再難翔歌鳳淸聲發楚狂千載德輝迷去影碧山依舊暎朝陽【右鳳岳朝暾】歸潮上急晩風生蘭浦雲收宿鷺驚一曲棹歌何處客半帆高擧溯空明【右猪灘暮帆】 어느……쪼개어 주희(朱熹)의 〈우레 소리를 듣고 감회가 일어[聞迅雷有感]〉 시에, "누가 신부(神斧) 가져다가 모진 음기(陰氣) 깨쳐서, 땅 터지고 산 열리어 귀신이 숲 잃게 하리.[誰將神斧破頑陰 地裂山開鬼失林]"라 한 데서 취해 온 구절이다. 거북 원문은 '현부(玄夫)'로, 거북을 가리킨다. 송나라 원왕(元王) 2년에 청강(淸江)에서 신비한 거북으로 하(河)에 사신을 보냈는데, 천양(泉陽)에 이르자 어부 예저(豫且)가 그물로 잡았다. 그러자 원왕의 꿈에 거북이 나타나 "제가 환난 중에 있기에 와서 아룁니다." 하였다. 왕이 위평(衛平)을 불러 "내 꿈에 장부(丈夫)가 목을 뺐는데, 머리는 길고 검은 옷을 입었다. 이것이 무슨 물건이냐?"라고 묻자, 위평이 대답하기를 "그 이름이 거북입니다."라 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史記 卷128 龜策列傳》 복희씨(伏羲氏)와……없으니 복희씨(伏羲氏) 때에 등에 1에서부터 10까지의 문양이 그려진 용마(龍馬)가 나왔는데 이것이 하도(河圖)로, 복희씨가 이를 보고 세 획으로 이루어진 팔괘(八卦)를 그렸다고 한다. 또 하(夏)나라 우(禹) 임금 때 등에 1에서 9까지의 점이 박혀 있는 거북이 나왔는데 이것이 곧 낙서(洛書)로, 우 임금이 이를 보고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만들었다고 한다. 《尙書正義 洪範, 顧命》 '구암(龜巖)'에 대해 지은 시이므로 거북이 등장하는 이러한 고사를 사용한 듯하다. 다만 이 구절에서 '문왕(文王)'을 언급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십주(十洲) 도교에서 말하는 바닷속 선경(仙境)으로, 조주(祖洲)‧영주(瀛洲)‧현주(玄洲)‧염주(炎洲)‧장주(長洲)‧원주(元洲)‧유주(流洲)‧생주(生洲)‧봉린주(鳳麟洲)‧취굴주(聚窟洲)를 가리킨다. 《海內十洲記》 신령한 뗏목 원문은 '영사(靈槎)'다. 선계(仙界)로 향하는 뗏목을 뜻한다.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장건(張騫)으로 하여금 대하(大夏)에 사신으로 가서 황하(黃河)의 근원을 찾게 하였는데, 장건이 뗏목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다가 견우(牽牛)와 직녀(織女)를 만났다는 고사가 전한다. 《荊楚歲時記》 선천(先天) 우주의 본체와 만물의 본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북송의 소옹(邵雍)이 진단(陳摶)의 학문을 터득하여 《주역》을 설명하면서 복희(伏羲)의 역(易)을 선천, 문왕(文王)의 역을 후천(後天)이라 하였으며, 〈복희선천괘위도(伏羲先天卦位圖)〉를 만들었다. 초(楚)나라 광인(狂人)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은자(隱者)인 육통(陸通)을 가리킨다. 자(字)가 접여(接輿)이므로, 초광접여(楚狂接輿)라고도 한다. 거짓으로 미친 척하고 벼슬하지 않아 당시 사람들이 '초나라 미치광이[楚狂]'라 불렀다. 《논어》 〈미자(微子)〉에, 접여가 공자의 문을 지나가며 "봉이여 봉이여, 어찌 이리 덕이 쇠하였나.[鳳兮鳳兮 何德之衰也]"라고 풍자하는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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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장령(洪掌令)276)【종운(鍾韻)】에 대한 만사 挽洪掌令【鍾韻】 젊은 나이에 칼집277) 차고 준마에 올라타니임금을 곁에서 모신 은혜와 영광 봉지(鳳池)에 가까웠네278)세 부(府)에 수령으로 간 것은 어버이를 받들어 모시는 날이요279)양대(兩臺)에서 단정한 홀(笏) 찬 것은 바른 말을 하는 때였네280)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 바칠 것이라고 사람들이 한창 기대하였는데효성에 지나쳐 생을 마칠 줄 내 어찌 알았으리오머리 돌려 40년 속세의 일 바라보니붉은 섬돌281)에 남은 묵은 자취 탄식할 만하네 妙年龍匣駕雲螭鷄舌恩榮近鳳池三府分銅甘旨日兩臺端笏正辭時輸忠許國人方企感孝終身我豈知回首四旬塵世事可嗟陳迹在丹墀 홍 장령(洪掌令) 홍종운(洪鍾韻, 1613~1658)을 가리킨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화백(和伯)이다. 1639년 과거에 급제하여 고산 현감(高山縣監), 정언 등을 역임하고, 1654년 장령에 임명되었다. 칼집 원문은 '용갑(龍匣)'으로, 보검의 칼집을 말한다. 진(晉)나라 뇌환(雷煥)이 용천(龍泉)과 태아(太阿) 두 보검을 얻어 그중 하나를 장화(張華)에게 주었는데, 후에 장화가 주살(誅殺)당하자 그 칼의 소재를 잃었다. 뇌환이 죽고 그의 아들이 보검을 가지고 연평진(延平津)을 건널 때 갑자기 보검이 허리에서 빠져나가 물속으로 떨어졌다. 사람을 시켜 물속으로 들어가 보검을 건지도록 하였는데, 칼은 보이지 않고 몇 발이나 되는 용 두 마리가 서리어 있었다고 한다. 《晉書 卷36 張華列傳》 임금을……가까웠네 홍종운이 시종신(侍從臣)의 직임을 맡았음을 말한 것이다. 원문의 '계설(鷄舌)'은 향(香)의 일종으로, 한(漢)나라 때 시종신인 상서랑(尙書郞)이 임금에게 일을 아뢰거나 대답할 때는 반드시 이 향을 입에 머금어 구취(口臭)를 제거했다고 한다. 《通典 職官》 또한 '봉지(鳳池)'는 당(唐)나라의 중서성(中書省)에 있던 봉황지(鳳凰池)로 흔히 중서성의 별칭으로 쓰이는데, 여기서는 '임금의 주변'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세……날이요 홍종운이 부모 봉양의 편의를 위해 지방 수령을 세 차례 역임하였음을 말하는 듯하다. 원문의 '분동(分銅)'은 '동호부(銅虎符)를 나눈다.'는 말이다. 동호부는 한(漢)나라 때 구리로 만든 범 모양의 병부로 반쪽은 조정에 두고 나머지 반쪽은 지방관에게 주어 군사를 출동시키는 데 쓰게 하였는데, 후대에는 지방 수령의 관인(官印)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또 원문의 '감지(甘旨)'는 맛있는 음식으로 부모를 봉양함을 말한다. 《예기(禮記)》 내칙(內則)에, "날이 샐 무렵에 아침 문안을 드릴 것이요, 감미롭고 맛 좋은 음식을 올려서 효심을 표시할 것이다.[昧爽而朝 慈以旨甘]"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양대(兩臺)에서……때였네 홍종운이 대간(臺諫)의 직임을 잘 수행하였음을 말한다. '양대(兩臺)'는 사헌부와 사간원을 아울러 칭하는 말로, 홍종운은 사간원 정언과 사헌부 장령을 역임하였다. 붉은 섬돌 원문은 '난지(丹墀)'다. 붉은 칠을 한 대궐의 섬돌로, 대궐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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