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심도심도 人心道心圖 성명(性命)을 통섭하고 형기(形氣)를 포괄하고 일신(一身)의 주재(主宰)가 되는 것은 심(心)이다. 리(理)는 기(氣)에 깃들고 기는 형(形)에 깃들고 심은 가운데에서 통섭하니 이른바 심이라는 것은 하나일 뿐이지만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리는 허령불매(虛靈不昧)130)하니 심의 체(體)이고 지각운동(知覺運動)은 발하여 용(用)에 응하는 것이니 심의 용이다. 그 지각의 때를 당하여 성명(性命)의 바름[正]에 근원 하는 것을 '도심(道心)'이라 말하고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생겨나는 것을 일러 '인심(人心)'이라고 한다. 이 때를 당하여 원(原)은 은미하여 드러나지 않고 생(生)은 쉽게 위태로움에 흐르니 두 가지 것의 경계(經界)가 처음에는 나누어져서 귀결 처에 미치지 못할 뿐이다. 이 지경에서는 선악(善惡)·성광(聖狂)이 갈림길에 임한 것과 같아서 이에 성인이 정일(精一)의 공(功)을 더하여 중(中)을 잡았다.131)도심을 위주로 하는데 이르러서는 인심이 명령을 듣고 간직한 마음[操存]132)이 출입함에 발한 것이 모두 절도에 맞게 된다. 중인은 정일(精一)의 공(功)을 이루지 못하여 사(私)에서 생기는 것이 위태롭고, 인욕이 골몰(汨沒)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바름에 근원 한 것이 은미하여 이미 끊어지게 된다. 선악(善惡)·성광(聖狂)은 여기에 이르러 서로의 거리가 만 리나 되고 득실이 하늘과 땅의 차이가 되기 때문에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은 외면상의 행동은 같으나 내면의 실정은 다르다.'133)라고 한 것이니 대개 요순(堯舜) 이후 정주(程朱) 이전의 전후 수천 년은 그 도리[一揆]134)를 닦고 같은 영역에 귀착되는 것이 모두 여기에 근본하였다. 그 말과 그 법은 모두 방책(方策)135)에 실어 후세에 남겼으니 비록 저 같은 무지한 사람도 대충 경전 중에서 그 말들을 얻었다. 저 알지도 못하고 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와 대충 그 방법을 통하고서 나처럼 포기한 자는 '자적(自賊)'136)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일찍이 주자가 인심도심(人心道心)137)의 설과 오봉(五峯)의 동행이정(同行異情)138)의 말을 채집 하여 손으로 그려 도를 완성하여 사색과 성찰의 도구로 삼았다. 그러나 과연 주자 선생의 뜻에 합당한지 모르겠다. 인하여 그 말들을 기록하여 지혜 있는 자가 질정해 주기를 기다린다. 統性命包形氣。 作一身之主宰者心也。 理寓於氣氣寓於形。 心統於中。 所謂心者一而已矣。 而仁義禮智之理。 虛靈不昧者。 心之體也。 知覺運動發而應用者。 心之用也。 當其知覺之際。 原於性命之正。 是謂道心。 生於形氣之私。 是謂人心。 當此之時。 原者微而不著。 生者易流於危。 二者經界始分而未及歸宿地耳。 在此地頭。 善惡聖狂。 有若臨歧然。 於是聖人加精一之功而執中焉。 以至於道心爲主。 人心聽命。 操存出入。 發皆中節。 衆人不能致精一之功而生於私者。 危而至於人欲之汨沒。 原於正者。 微而已絶矣。 善惡聖狂。 至此而相去萬里。 得失天壤。 故曰: '天理人欲。 同行異情也。' 盖堯舜以下。 程朱以上。 前後數千載。 其所以脩之一揆。 歸之一域者。 皆本於此也。 其言其法。 具載方策。 以貽後世。 雖以某之無知。 粗得其說於經傳中矣。 彼不知而不爲者。 無可怪者。 粗通其方而自棄如我者。 其名曰'自賊'。 可不懼哉? 嘗採朱夫子人心道心之說及五峯同行異情之語。 手畫成圖。 以爲思省之具。 然未知果合於朱夫子之意否。 仍錄其說。 以待知者正焉。 허령불매(虛靈不昧) 사람의 마음은 공허하여 형체가 없으나, 그 기능은 거울처럼 맑고 환함을 이른다. 《대학장구》 제1장의 '명덕(明德)' 주석에서 주희(朱熹)는 "명덕이란 사람이 하늘에서 타고난 것으로, 허령불매하여 뭇 이치[衆理]를 갖추어 만사(萬事)에 응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정일(精一)의 …… 잡았다 집중(執中)은 중도(中道)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순임금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안 성인이기 때문에 요(堯) 임금이 그에게 제위를 선양하면서 '집중(執中)'이라는 말만을 전수하였고, 우 임금은 배워서 이치를 안 성인이기 때문에 순임금이 그에게 제위를 선양하면서 공력을 쓰는 차례를 가지고 전수한 것이라 말한 것이다. 조존(操存) 마음을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공자가 이르기를 '잡고 있으면 보존되고, 놓아 버리면 없어지며,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일정한 때가 없고, 어디를 향할지 종잡을 수 없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을 두고 말한 것이다.[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하였다."라고 한 데서 나왔다. 천리(天理)와 …… 다르다 송유(宋儒)인 오봉(五峯) 호굉(胡宏)이 "사람들이 천리(天理)와 인욕 (人欲)을 대하는 것이, 외면상의 행동은 같아도 내면의 실정은 다르다.[天理人欲, 同行異情]."라고 말한 내용이 《심경부주(心經附註)》 〈인심도심장(人心道心章)〉에 나온다. 일규(一揆) 동일한 도리라는 말인데,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서 맹자가 순(舜)임금과 주 문왕(周文王)의 정치를 논하면서, 비록 천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앞의 성인과 뒤의 성인의 그 도리가 똑같다.[先聖後聖, 其揆一也.]"라고 말한 데에서 나온 것이다. 방책(方策) 서책(書冊)이다. 방(方)은 목판(木版)이고, 책(策)은 간책(簡策)인데, 옛날에 종이가 없을 때에 목판이나 간책에 모든 것을 기록하였으므로 서책의 대명사로 쓰인다. 자적(自賊) 스스로 해친다는 말로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나온다. "측은지심은 인의 단서이고, 수오지심은 의의 단서이고, 사양지심은 예의 단서이고, 시비지심은 지의 단서이다. 사람이 이 사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체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으니, 이 사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자신을 해치는 자이고, 자기 군주가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군주를 해치는 자이다.[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知之端也. 人之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 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 自賊者也, 謂其君不能者, 賊其君者也.]"라는 말이 나온다. 인심도심(人心道心) 《고문상서(古文尙書)》 대우모(大禹謨)에 나오는 말이다. 원래 요(堯)가 순(舜)에게 전할 때에는 '윤집궐중(允執厥中)'이라는 네 글자에 불과하였는데, 순이 우(禹)에게 전할 때에 이렇게 덧붙여서 말했다고 한다. 주희(朱熹)가 이 대목을 요와 순과 우가 서로 도통(道統)을 전한 '십륙자 심전(十六字心傳)'이라고 강조한 뒤로부터 이 말이 송명(宋明) 이학(理學)에서 막중한 지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주희는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이 심성(心性)의 본체라는 이(理)의 측면에서는 하나라는 이일(理一)의 입장을 전제하면서도, 그것이 발현되어 나오는 용(用)의 분수(分殊)라는 측면에서 보면 도심은 공정 무사한 이른바 '성명지정(性命之正)'에서 나오고 인심은 사벽(邪僻)의 요소가 내재한 이른바 '형기지사(形氣之私)'에서 나오는 만큼 도심과 인심은 둘로 나뉘어진다는 '도심인심위이(道心人心爲二)'라는 명제를 제기하고는, 여기에 이기(理氣) 및 선악(善惡) 등의 이론과 도덕 수양의 실천 문제를 결부시켜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반면에 육구연(陸九淵) 등은 정주(程朱)의 이러한 '일분위이(一分爲二)'의 마음에 대한 이론을 반박하며, 도심과 인심이 두 가지가 아니고 모두 지선(至善)의 본심(本心)인 만큼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을 도심과 인심으로 분별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도심인심합일(道心人心合一)'의 설을 주장하고 있다. 그 이후로 이 두 학파의 논란이 끈질기게 계속되다가, 급기야는 청(淸) 나라 고증학자들의 실증적 조사 결과에 따라 《고문상서》가 위서(僞書)라는 판명이 내려지면서 이 논쟁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오봉(五峯)의 동행이정(同行異情) 오봉은 송나라 성리학자 호굉(胡宏, 1106~1161)으로, 자는 인중(仁仲), 오봉은 그의 호이다. 호안국(胡安國)의 아들로 남송 호상학파(湖湘學派)의 개창자다. 어린 시절 양시(楊時)와 후중량(侯仲良)에게 배웠으며, 아버지의 이학사상(理學思想)을 계승하여 도학 진흥을 평생의 임무로 여겼다. 저서로는 《지언(知言)》, 《황왕대기(皇王大紀)》 등이 있다. 호굉(胡宏)은 《지언(知言)》에서 천리와 인욕이 체는 같으나 용이 다르며[同體異用.], 행은 같으나 정이 다르다.[同行異情.]고 주장하였다. 주자(朱子)는 이러한 호굉의 주장 중에서 '체는 같으나 용이 다르다.[體異用.]'는 설은 비판하고 물리쳤으나, '행은 같으나 정이 다르다.[同行異情.]'는 설은 긍정하여 받아들였다. 즉 시청언동(視聽言動)이나 식색(食色)과 같은 행동은 성인도 범인과 마찬가지이지만, 성인은 그것이 예(禮)와 합치되게 함으로써 천리(天理)를 따른다는 점에서 정(情)이 다르다고 보았다. 《朱子語類 卷101 程子門人 胡康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