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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언절구) 詩(五言絶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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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 정군평8)의 「제승축」 시에 화운하다9) 和東溟鄭君平題僧軸韻 물속에 하늘이 비치니천심이 또한 수심일세마음이 두 가지 근본이 있다고 여겨선림에서 벽을 마주하고 앉았들랑10) 마오 水底暎天心天心亦水心莫看心二本面壁坐禪林 동명(東溟) 정군평(鄭君平) 정두경(鄭斗卿, 1597~1673)으로, 동명은 그의 호이고, 군평은 그의 자이다. 본관은 온양(溫陽)이다. 정회(鄭晦)의 아들이며, 이항복(李恒福)의 문인이다. 14세 때 별시 초선(初選)에 합격하여 문명을 떨쳤으며, 1626년(인조4) 문장으로 유명한 중국 사신의 접대에 포의의 신분으로 참여하였다. 1629년 별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부수찬과 정언 등을 지냈으나, 이후로는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조 판서와 대제학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동명집》 26권이 있다. 「제승축」 시에 화운하다 《동명집(東溟集)》 권2 「제승축(題僧軸)」에 "도령 이에 문을 닫고 누워 있는데, 응진 이에 석장 타고 날아서 왔네. 하루 종일 뜨락 온통 고요만 한데, 마주하여 이끼 위에 앉아 보내네.[閉門陶令臥, 飛錫應眞來, 竟日庭除靜, 相携坐碧苔.]"라고 하였고, 《동명집(東溟集)》 권3 「제승축(題僧軸)」에 "내게 시편 부탁하러 자주자주 오가느라, 수고하는 산승 모습 보니 정말 우습고야. 홀로 낙락장송 아래 고이 앉아 있으면서, 서강의 물 잔으로 떠다 마심만 못하리라.[爲索詩篇數往來, 山僧笑爾亦勞哉, 不如獨坐長松下, 吸盡西江水一杯.]"라고 하였다. 선림에서……앉았들랑 불가(佛家)에서 좌선의 수행을 통해 깨우치는 것을 말한다. 보리달마(菩提達摩)가 남조 양(南朝梁)나라 때 인도에서 중국에 온 뒤에,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 머물면서 9년 동안이나 아무 말 없이 면벽(面壁)하며 좌선을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벽관바라문(壁觀婆羅門)이라고 했다고 한다. 《景德傳燈錄 卷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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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4 卷之十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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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교일기 상 南郊日記(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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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기록하다.【병소서(幷小序). 무신년(1668, 45세) 여름 나는 백봉산(白鳳山)314)의 절에 우거하였는데, 이는 곧 내 선영(先塋)의 재소(齋所)이다. 근심 없이 고요히 거처하여 날마다 좋은 뜻을 품었으니, 지난날 가졌던 세상사에 대한 생각이 아무 것도 없는 듯이 빠져나갔다. 그러다 문득 5월 11일 새벽꿈에서 절구 한 수를 읊었는데 깨고 난 뒤에도 기억할 수 있었으니, 말뜻이 맑고 기이하여 몹시도 신기하였다. 다만 기구(起句)를 이해하기 어려워 다음날 멋대로 기록하였다.】 紀夢【幷小序。戊申夏。余寓居白鳳山之佛舍。卽我先隴之齋所也。靜居無慮。日有好意。向念世間事。脫若無物。忽於五月十一日曉夢。自吟一絶。覺能識得。辭意淸異。殊亦奇也。但起句難曉。翊日慢紀之。】 인간 세상의 아침저녁 봄가을과 같으니여름 베옷과 겨울 갖옷 없을 수 없네315)만 봉우리 푸른 산의 운수(雲水) 속에둥글고 맑은 명주(明珠) 하나 고이 간직하게두 번째【기유년(1669, 46세) 11월 4일 꿈에서 어떤 사람이 나에게 '변(邊)', '천(天)', '면(眠)' 세 운을 주기에 내가 차운하였는데, 깬 뒤에도 기억할 수 있었다.】어떤 객이 적막한 변방으로 나를 찾아오니흰 구름에 푸른 산 솟은 큰 강 위의 하늘이네속세의 어지러운 일 전하지 말라노쇠하고 병들어 근년 이래로 곤히 잠자고 있으니 人間朝夕似春秋夏葛冬裘不可無萬峀靑山雲水裏好藏圓淨一明珠其二【己酉十一月初四日。夢有人贈我邊天眠三韻。余次其韵。覺能記之。】有客來尋寂寞邊白雲靑嶂大江天莫傳塵世煩擾事衰病年來困睡眠 백봉산(白鳳山) 전라남도 나주시 왕곡면(旺谷面) 송죽리(松竹里)에 있는 산이다. 여름……없네 이 구절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한유(韓愈)의 〈원도(原道)〉에, "여름에 베옷을 입고 겨울에 갖옷을 입으며 목마르면 마시고 배고프면 먹는 것이 그 일은 비록 다르지만 지혜가 되는 것은 하나이다.[夏葛而冬裘 渴飮而飢食 其事雖殊 其所以爲智一也]"라 한 부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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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대로 읊다【활발하고 자유로운 기상을 가진 사람은 마땅히 위아래 사방으로 막힘없이 두루 흐르기를 선인(仙人) 여암(呂巖)의 시318)와 같이 하는 것이 옳다. 그의 시에 화답하여 나의 마음을 보이니, 이 시를 보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으로 나의 뜻을 해석하는 것도 괜찮다.】 浪吟【人之自在活潑通脫氣像。當於上下四方。周流無滯。若呂仙之詩則可矣。和之以見意。看者以意迓志。可也。】 북해(北海)와 창오(蒼梧)를 아침저녁 사이에 노닐고동정호(洞庭湖)와 악양루(岳陽樓)에도 머무네319)인간 세상의 형승 두루 다 둘러보고 난 뒤에훌쩍 날아 십주(十洲)320)에 이르네 北海蒼梧朝暮遊洞庭湖與岳陽樓人間形勝周觀盡然後飄然到十洲 선인(仙人) 여암(呂巖)의 시 '여암(呂巖)'은 당나라 말기의 도사로, 자는 동빈(洞賓), 호는 순양자(純陽子)이다. 종리권(鍾離權)을 따라 신선이 되었다고 전해지며, 도교 팔선(八仙) 중의 한 사람으로 칭해진다. 여기서 말하는 '여암의 시'는 〈동빈유악양(洞賓遊岳陽)〉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시에 "아침에는 북월에서 저녁에는 창오에서 노니니, 소매 속엔 청사검 하나뿐 거리낌이 없는 마음. 악양에 세 번 들어가도 아는 사람 없으니, 낭랑하게 시 읊으며 동정호를 건너간다.[朝遊北越暮蒼梧 袖裏靑蛇膽氣麤 三入岳陽人不識 朗吟飛過洞庭湖]"라 하였다. 북해(北海)와……머무네 '창오(蒼梧)'는 호남성(湖南省) 영원현(寧遠懸) 경계에 있는 산 이름으로, 구의(九疑)라고도 한다. 순 임금이 남쪽으로 순행(巡行)하다가 이곳에서 죽어 장사 지냈다는 곳이다. 《史記 卷1 五帝本紀》 이 구절은 여암의 시 〈동빈유악양(洞賓遊岳陽〉의 내용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이다. 십주(十洲)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신선들이 산다고 하는 바다 가운데 10개의 산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선경(仙境)을 가리킨다. 《해내십주기(海內十洲記)》에, "한 무제(漢武帝)가 이미 서왕모가 말한 팔만(八萬)의 큰 바다 가운데에 조주(祖洲)‧영주(瀛洲)‧현주(玄洲)‧염주(炎洲)‧장주(長洲)‧원주(元洲)‧유주(流洲)‧생주(生洲)‧봉린주(鳳麟洲)‧취굴주(聚窟洲) 등이 있다고 한 말을 들었는데, 이 10개의 주는 인적이 아주 드문 곳이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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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4 卷之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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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칠언절구) 詩(七言絶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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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 독서하다 시커먼 파리에게 시달려서 짓다 夏日讀書 爲皁蠅所困有作 나는 여름 해가 긴 것을 사랑하니육십 각에 일각을 더하였다오살랑 바람이 책상으로 시원히 불어오면서책을 마주하고는 글을 외운다네지극한 뜻이 막 이해되려 하고만 가지 실마리가 막 밝혀지려는 찰나인데앵앵대는 것은 어떤 놈이기에떼를 지어 내 곁으로 오는 것인가눈자위에 모여 들어 눈물을 탐하고입술로 향하여 남은 찌꺼기를 얻으며호흡 따라 입속으로 들어오고땀을 쫓아 이마로 몰려드네입을 꾹 닫아 글을 읽을 수가 없어두 손을 힘들게 휘두르며 내쫓아 보지만한갓 근력만을 허비하는 것일 뿐모조리 휘저어 내쫓을 수 없다오어떤 때는 서책에 모여들어전 성인의 자취를 잘못되게도 하니물 수자에 두 획을 더하여 얼음 빙 자가 되게 하기도 하고날 일자에 한 획을 점찍어 눈 목자가 되게 하기도 한다네문자 사이에 어지럽게 하여불분명하게 그 정확한 것을 놓치게 하니이러한 뒤에는 계속 글을 읽을 수가 없어책을 덮고 책상을 거둔다오물러나 성긴 창가에 기대 누워다만 생각이 시름겨움을 깨닫노니[어떤 본에는 '只覺'이 '徒切'로 되어 있다]하늘은 어찌 이런 물을 내어나를 온통 고생스럽게 한단 말인가그러므로 옛날 사람들은백옥을 더럽히는 것을 탄식하였으니47)어느 날에나 매서운 서리가 내려남은 놈 없이 모조리 죽일꼬 我愛夏日長六十增一刻微風爽几案唔咿對簡策至意方欲會萬緖初向析營營有何物簇簇來其側集眶探其液向唇得餘瀝仍吸入喉吻趁汗趍庭額口噤不能讀兩手煩撝斥徒能費筋力不能盡揮逐有時集方策使訛前聖蹟添雙水作冰點一日成目紛紜文字間糢糊失其的然後莫能支襲冊撤床席退臥倚踈欞只覺思慽慽【一作徒切】天何生此物使我一至厄所以古之人歎其瑕白玉何日嚴霜降殺盡無餘族 백옥을……탄식하였으니 《시경(詩經)》 「청승(靑蠅)」에 "윙윙거리는 파리여, 울타리에 앉았도다. 개제한 군자는 참소하는 말을 믿지 말지어다.[營營靑蠅, 止于樊. 豈弟君子, 無信讒言.]"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그 전(傳)에 의하면 "파리는 더러워서 백색과 흑색을 변란시킨다.[靑蠅汚穢, 能變白黑.]"라고 하였고, 정현(鄭玄)의 주(註)에는 "파리라는 벌레는 흰 것을 더럽혀 검게도 만들고, 검은 것을 더럽혀 희게도 만든다.[蠅之爲蟲, 汚白使黑, 汚黑使白.]"라고 하였다. 당나라 때 시인 진자앙(陳子昻)의 「연호초진금소(宴胡楚眞禁所)」 시에 의하면 "파리가 한 점의 티를 만들어, 흰 구슬이 끝내 억울하게 되었네.[靑蠅一相點, 白璧遂成冤.]"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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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거하는 집의 세 가지 빼어난 것 幽居三勝 가지 늘어진 푸른 소나무6) 천 길 높이 솟아 있으니저물녘 하늘의 비바람에도 굳은 자태 빼어나네저녁 까마귀야 가지를 쪼지 말라학의 눈처럼 흰 털 더럽힐까 두렵노라【세한자(歲寒子)7)】오래된 마을 남쪽 머리에 자란 옥 만 떨기저녁 바람 불어와 두드리니 푸른 빛 영롱하네옥 가지는 뭇 새들이 깃들이는 것 허락하지 않으니낭간(琅玕)8)이 이 안에 맺혀 있기 때문이라네【소쇄군(蕭灑君)9)】빙옥 같은 정신 지닌 섣달 뒤의 자태10)금은(金銀)의 향기로운 약속 세한(歲寒)을 기약하네11)매화와 국화 두 군(君)의 정절 누가 품평 하리오한가한 사람에게 맡겨져 혼자서만 알고 있네【눈 내린 가지와 서리 내린 꽃12)】 落落蒼髥千丈高暮天風雨鐵姿豪昏鴉莫向枝間啄恐汚仙禽白雪毛【歲寒子】古巷南頭玉萬叢晩風吹戛碧玲瓏瓊枝不許凡禽宿爲有琅玕結此中【蕭灑君】冰玉精神臈後姿金銀香契歲寒期二君貞節誰題品付與閒人獨自知【雪枝‧霜葩】 푸른 소나무 원문은 '창염(蒼髥)'이다. 푸른 솔잎이 마치 노인의 수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소나무의 별칭이다. 소식(蘇軾)의 시 〈불일산영장로방장(佛日山榮長老方丈)〉에, "산중에는 단지 푸른 수염 늙은이 있어, 쓸쓸한 몇 리 길에서 사람을 맞이하고 보낸다.[山中只有蒼髥叟 數里蕭蕭管送迎]"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세한자(歲寒子) 소나무를 가리킨다. 《논어》 〈자한(子罕)〉에, "날씨가 추운 뒤에야 송백이 뒤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라 한 데에 근거하여 김만영이 붙인 별칭이다. 낭간(琅玕) 옥과 비슷한 아름다운 돌인데, 흔히 대나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봉황은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고 한다. 《시경(詩經)》 〈대아(大雅)‧권아(卷阿)〉의 전(箋)에, "봉황은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이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鳳凰之性 非梧桐不棲 非竹實不食]"라 하였다. 소쇄군(蕭灑君) 시의 내용으로 볼 때 김만영이 대나무에 대해 붙인 별칭인 듯하다. 빙옥……자태 한 겨울에 피는 매화의 모습을 읊은 것이다. '빙옥'은 얼음과 옥처럼 맑고 깨끗한 지조를 비유한 말로, 흔히 매화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 소식(蘇軾)의 시 〈영매서강월(詠梅西江月)〉에, "뼈가 옥 같으니 어찌 장무를 근심하랴. 빙옥 같은 자태 절로 선풍이 있도다.[玉骨那愁瘴霧 氷姿自有仙風]"라 하였다. 금은(金銀)의……기약하네 추운 날씨 속에서 피는 국화를 두고 이렇게 읊은 것이다. '금은(金銀)'은 국화의 색을 표현한 것으로, 국화의 한 종류인 '금은황(金銀黃)'을 의미하는 듯하다. 권별(權鼈)의 《해동잡록(海東雜錄)》에, "금은황이라는 것은 옅은 황색으로 다소 일찍 피며 서울 사람들이 많이 심는다.[曰金銀黃 淺黃色 開稍早 都下人爭植之]"라는 기록이 보인다. 눈……꽃 시의 내용으로 볼 때 각각 매화와 국화를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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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論語 천지의 정기(精氣) 받아 소왕(素王)255)이 나시니옥으로 금속 악기 소리 거두어 집대성(集大成)하셨네256)예악(禮樂)과 위의(威儀) 담장 안에 갖추어지고257)전장(典章)과 문물(文物)로 방 안이 환하네258)인(仁)을 두터이하고 의(義)를 넓힘에 하늘과 사람이 바로 서고부친께 효도하고 임금께 충성함에 나라가 평안해지네하도(河圖)와 낙서(洛書) 비록 보지 못하였으나259)가을날 햇볕과 강한(江漢) 같은 덕 지금까지 맑네260) 乾坤精氣素王生玉振金聲集大成禮樂威儀墻內備典章文物室中明敦仁博義天人立孝父忠君家國平河洛圖書雖未見秋陽江漢至今淸 소왕(素王) 제왕(帝王)의 덕을 지니고도 제왕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성인(聖人)을 이르는 말로, 공자(孔子)를 가리킨다. 왕충(王充)의 《논형(論衡)》에 "공자는 왕을 하지 않았으니, 소왕의 업은 《춘추》에 있다.[孔子不王 素王之業 在於春秋]"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옥으로……집대성(集大成)하셨네 공자가 성인(聖人)의 덕을 크게 이루었음을 말한 것이다. 《맹자》 〈만장 하(萬章下)〉에, "공자 같은 분을 두고 집대성했다고 하는 것이니, 집대성이란 금속 악기 소리[金聲]로 시작하여 옥의 악기로 소리를 거두는 것과 같은 것이다.[孔子之謂集大成 集大成也者 金聲而玉振之也]"라 하였다. 예악(禮樂)과……갖추어지고 공자의 학문 수준을 표현한 말이다. 《논어》 〈자장(子張)〉에, 자복경백(子服景伯)이 숙손무숙(叔孫武叔)의 말을 빌려 자공(子貢)이 공자보다 낫다는 말을 전하자 자공이 "집에다 비유하자면 나의 담장은 어깨 높이라 나의 살림을 엿볼 수 있지만, 부자의 담장은 몇 길이라 문을 통해 들어가 보지 못하면 종묘의 아름다움과 백관의 성대함을 알 수가 없소. 그런데 그 문으로 들어가 본 이도 사실 드무니 숙손무숙의 말이 또한 당연하지 않은가.[譬之宮牆 賜之牆也及肩 窺見室家之好 夫子之牆數仞 不得其門而入 不見宗廟之美百官之富 得其門者或寡矣 夫子之云 不亦宜乎]"라 하여 공자의 학문을 높은 담장에 비유한 대목이 나온다. 전장(典章)과……환하네 공자의 학문 경지를 표현한 말이다. 《논어》 〈선진(先進)〉에, "자로(子路)는 마루에는 올랐으나 아직 방에는 들어오지 못하였다.[由也升堂矣 未入於室也]"라 하여 학문 경지를 집 구조에 비유한 대목이 나온다. 하도(河圖)와……못하였으나 공자가 결국 세상에 도(道)를 실현하지 못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하도(河圖)'는 복희씨(伏羲氏) 때에 하수(河水)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1부터 10까지 그려져 있던 그림으로 복희씨가 이것을 보고 《주역》의 팔괘(八卦)를 그었다 하며, '낙서(洛書)'는 하(夏)나라 우왕(禹王) 때에 낙수(洛水)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1부터 9까지 그려져 있던 그림으로 우왕이 이것을 보고 《서경》의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만들었다 한다. 때문에 하도와 낙서는 도를 전하는 상징으로 사용된다. 가을날……맑네 공자의 덕을 찬미한 것이다. 《맹자》 〈등문공 상(滕文公上)〉에 증자(曾子)가 공자를 찬미하여 "선생의 덕은 강수(江水)와 한수(漢水)로 씻는 것과 같고 가을볕으로 쪼이는 것과 같아서 깨끗하고 깨끗하여 더할 수 없다.[江漢以濯之 秋陽以暴之 皜皜乎不可尙已]"라 한 내용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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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도심도 人心道心圖 성명(性命)을 통섭하고 형기(形氣)를 포괄하고 일신(一身)의 주재(主宰)가 되는 것은 심(心)이다. 리(理)는 기(氣)에 깃들고 기는 형(形)에 깃들고 심은 가운데에서 통섭하니 이른바 심이라는 것은 하나일 뿐이지만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리는 허령불매(虛靈不昧)130)하니 심의 체(體)이고 지각운동(知覺運動)은 발하여 용(用)에 응하는 것이니 심의 용이다. 그 지각의 때를 당하여 성명(性命)의 바름[正]에 근원 하는 것을 '도심(道心)'이라 말하고 형기의 사사로움에서 생겨나는 것을 일러 '인심(人心)'이라고 한다. 이 때를 당하여 원(原)은 은미하여 드러나지 않고 생(生)은 쉽게 위태로움에 흐르니 두 가지 것의 경계(經界)가 처음에는 나누어져서 귀결 처에 미치지 못할 뿐이다. 이 지경에서는 선악(善惡)·성광(聖狂)이 갈림길에 임한 것과 같아서 이에 성인이 정일(精一)의 공(功)을 더하여 중(中)을 잡았다.131)도심을 위주로 하는데 이르러서는 인심이 명령을 듣고 간직한 마음[操存]132)이 출입함에 발한 것이 모두 절도에 맞게 된다. 중인은 정일(精一)의 공(功)을 이루지 못하여 사(私)에서 생기는 것이 위태롭고, 인욕이 골몰(汨沒)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바름에 근원 한 것이 은미하여 이미 끊어지게 된다. 선악(善惡)·성광(聖狂)은 여기에 이르러 서로의 거리가 만 리나 되고 득실이 하늘과 땅의 차이가 되기 때문에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은 외면상의 행동은 같으나 내면의 실정은 다르다.'133)라고 한 것이니 대개 요순(堯舜) 이후 정주(程朱) 이전의 전후 수천 년은 그 도리[一揆]134)를 닦고 같은 영역에 귀착되는 것이 모두 여기에 근본하였다. 그 말과 그 법은 모두 방책(方策)135)에 실어 후세에 남겼으니 비록 저 같은 무지한 사람도 대충 경전 중에서 그 말들을 얻었다. 저 알지도 못하고 하지도 않고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자와 대충 그 방법을 통하고서 나처럼 포기한 자는 '자적(自賊)'136)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니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일찍이 주자가 인심도심(人心道心)137)의 설과 오봉(五峯)의 동행이정(同行異情)138)의 말을 채집 하여 손으로 그려 도를 완성하여 사색과 성찰의 도구로 삼았다. 그러나 과연 주자 선생의 뜻에 합당한지 모르겠다. 인하여 그 말들을 기록하여 지혜 있는 자가 질정해 주기를 기다린다. 統性命包形氣。 作一身之主宰者心也。 理寓於氣氣寓於形。 心統於中。 所謂心者一而已矣。 而仁義禮智之理。 虛靈不昧者。 心之體也。 知覺運動發而應用者。 心之用也。 當其知覺之際。 原於性命之正。 是謂道心。 生於形氣之私。 是謂人心。 當此之時。 原者微而不著。 生者易流於危。 二者經界始分而未及歸宿地耳。 在此地頭。 善惡聖狂。 有若臨歧然。 於是聖人加精一之功而執中焉。 以至於道心爲主。 人心聽命。 操存出入。 發皆中節。 衆人不能致精一之功而生於私者。 危而至於人欲之汨沒。 原於正者。 微而已絶矣。 善惡聖狂。 至此而相去萬里。 得失天壤。 故曰: '天理人欲。 同行異情也。' 盖堯舜以下。 程朱以上。 前後數千載。 其所以脩之一揆。 歸之一域者。 皆本於此也。 其言其法。 具載方策。 以貽後世。 雖以某之無知。 粗得其說於經傳中矣。 彼不知而不爲者。 無可怪者。 粗通其方而自棄如我者。 其名曰'自賊'。 可不懼哉? 嘗採朱夫子人心道心之說及五峯同行異情之語。 手畫成圖。 以爲思省之具。 然未知果合於朱夫子之意否。 仍錄其說。 以待知者正焉。 허령불매(虛靈不昧) 사람의 마음은 공허하여 형체가 없으나, 그 기능은 거울처럼 맑고 환함을 이른다. 《대학장구》 제1장의 '명덕(明德)' 주석에서 주희(朱熹)는 "명덕이란 사람이 하늘에서 타고난 것으로, 허령불매하여 뭇 이치[衆理]를 갖추어 만사(萬事)에 응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정일(精一)의 …… 잡았다 집중(執中)은 중도(中道)를 행하는 것을 말한다. 순임금은 태어나면서부터 이치를 안 성인이기 때문에 요(堯) 임금이 그에게 제위를 선양하면서 '집중(執中)'이라는 말만을 전수하였고, 우 임금은 배워서 이치를 안 성인이기 때문에 순임금이 그에게 제위를 선양하면서 공력을 쓰는 차례를 가지고 전수한 것이라 말한 것이다. 조존(操存) 마음을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의미로, 《맹자》 〈고자 상(告子上)〉에 "공자가 이르기를 '잡고 있으면 보존되고, 놓아 버리면 없어지며,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일정한 때가 없고, 어디를 향할지 종잡을 수 없는 것은 오직 사람의 마음을 두고 말한 것이다.[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하였다."라고 한 데서 나왔다. 천리(天理)와 …… 다르다 송유(宋儒)인 오봉(五峯) 호굉(胡宏)이 "사람들이 천리(天理)와 인욕 (人欲)을 대하는 것이, 외면상의 행동은 같아도 내면의 실정은 다르다.[天理人欲, 同行異情]."라고 말한 내용이 《심경부주(心經附註)》 〈인심도심장(人心道心章)〉에 나온다. 일규(一揆) 동일한 도리라는 말인데,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서 맹자가 순(舜)임금과 주 문왕(周文王)의 정치를 논하면서, 비록 천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앞의 성인과 뒤의 성인의 그 도리가 똑같다.[先聖後聖, 其揆一也.]"라고 말한 데에서 나온 것이다. 방책(方策) 서책(書冊)이다. 방(方)은 목판(木版)이고, 책(策)은 간책(簡策)인데, 옛날에 종이가 없을 때에 목판이나 간책에 모든 것을 기록하였으므로 서책의 대명사로 쓰인다. 자적(自賊) 스스로 해친다는 말로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나온다. "측은지심은 인의 단서이고, 수오지심은 의의 단서이고, 사양지심은 예의 단서이고, 시비지심은 지의 단서이다. 사람이 이 사단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체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으니, 이 사단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자신을 해치는 자이고, 자기 군주가 인의를 행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군주를 해치는 자이다.[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知之端也. 人之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 有是四端而自謂不能者, 自賊者也, 謂其君不能者, 賊其君者也.]"라는 말이 나온다. 인심도심(人心道心) 《고문상서(古文尙書)》 대우모(大禹謨)에 나오는 말이다. 원래 요(堯)가 순(舜)에게 전할 때에는 '윤집궐중(允執厥中)'이라는 네 글자에 불과하였는데, 순이 우(禹)에게 전할 때에 이렇게 덧붙여서 말했다고 한다. 주희(朱熹)가 이 대목을 요와 순과 우가 서로 도통(道統)을 전한 '십륙자 심전(十六字心傳)'이라고 강조한 뒤로부터 이 말이 송명(宋明) 이학(理學)에서 막중한 지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주희는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이 심성(心性)의 본체라는 이(理)의 측면에서는 하나라는 이일(理一)의 입장을 전제하면서도, 그것이 발현되어 나오는 용(用)의 분수(分殊)라는 측면에서 보면 도심은 공정 무사한 이른바 '성명지정(性命之正)'에서 나오고 인심은 사벽(邪僻)의 요소가 내재한 이른바 '형기지사(形氣之私)'에서 나오는 만큼 도심과 인심은 둘로 나뉘어진다는 '도심인심위이(道心人心爲二)'라는 명제를 제기하고는, 여기에 이기(理氣) 및 선악(善惡) 등의 이론과 도덕 수양의 실천 문제를 결부시켜서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반면에 육구연(陸九淵) 등은 정주(程朱)의 이러한 '일분위이(一分爲二)'의 마음에 대한 이론을 반박하며, 도심과 인심이 두 가지가 아니고 모두 지선(至善)의 본심(本心)인 만큼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을 도심과 인심으로 분별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도심인심합일(道心人心合一)'의 설을 주장하고 있다. 그 이후로 이 두 학파의 논란이 끈질기게 계속되다가, 급기야는 청(淸) 나라 고증학자들의 실증적 조사 결과에 따라 《고문상서》가 위서(僞書)라는 판명이 내려지면서 이 논쟁도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오봉(五峯)의 동행이정(同行異情) 오봉은 송나라 성리학자 호굉(胡宏, 1106~1161)으로, 자는 인중(仁仲), 오봉은 그의 호이다. 호안국(胡安國)의 아들로 남송 호상학파(湖湘學派)의 개창자다. 어린 시절 양시(楊時)와 후중량(侯仲良)에게 배웠으며, 아버지의 이학사상(理學思想)을 계승하여 도학 진흥을 평생의 임무로 여겼다. 저서로는 《지언(知言)》, 《황왕대기(皇王大紀)》 등이 있다. 호굉(胡宏)은 《지언(知言)》에서 천리와 인욕이 체는 같으나 용이 다르며[同體異用.], 행은 같으나 정이 다르다.[同行異情.]고 주장하였다. 주자(朱子)는 이러한 호굉의 주장 중에서 '체는 같으나 용이 다르다.[體異用.]'는 설은 비판하고 물리쳤으나, '행은 같으나 정이 다르다.[同行異情.]'는 설은 긍정하여 받아들였다. 즉 시청언동(視聽言動)이나 식색(食色)과 같은 행동은 성인도 범인과 마찬가지이지만, 성인은 그것이 예(禮)와 합치되게 함으로써 천리(天理)를 따른다는 점에서 정(情)이 다르다고 보았다. 《朱子語類 卷101 程子門人 胡康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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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후【종지이다】4)가 부쳐 온 시에 차운하여 시를 지어 보내다 次尹侯【宗之】寄詩韻以呈 봄날 교외에 가랑비 개이니솔개 날고 물고기 뛰놀아5) 아름다운 흥취 일어나네버들 언덕엔 저물녘 바람 불어오고오동나무 계단엔 달이 막 떠오르누나뜰에선 생기 있는 풀을 바라보고6)책상엔 정신 수양할 책 놓여있네아름다운 시편을 공경히 읽어보니다정스레 쓸쓸히 지내는 안부를 물었네 春郊微雨霽佳興在鳶魚柳岸風來夕梧階月上初庭看生意草床有養神書敬服瓊琚什殷勤問索居 윤종지(尹宗之) 1597(선조30)∼?.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임종(林宗). 호는 백봉(白篷)이다. 1618년(광해10)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대과(大科)에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호란 때 난리를 만나 영남으로 피신하여 유리(流離) 생활을 하다가, 1649년(효종 즉위년)에 다시 음직(蔭職)에 발탁되어 곡산현감(谷山縣監), 대구부사(大邱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백봉유고(白篷遺稿)》가 있다. 솔개……뛰놀아 원문의 '연어(鳶魚)'는 '연비어약(鳶飛魚躍)'의 준말로, 도(道)가 하늘 끝에서 깊은 못 속까지 환하게 드러남을 형용한 말이다. 《시경(詩經)》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鳶飛戾天, 魚躍於淵.]"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참고로, 이를 인용하여 《중용장구(中庸章句)》 제12장에 "《시경》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 하였으니, 상하에 이치가 밝게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詩云, 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라고 하였다. 생기(生氣) 원문은 '生意'인데, 이는 생기, 생명력 등을 뜻하는 말이다. 주돈이가 살던 곳의 창 앞에 풀이 무성히 자라도 베지 않기에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물었더니, "이 풀의 생의가 나의 뜻과 같기 때문이다.[與自家意思一般.]"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近思錄 卷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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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 삼근에게 주다 贈上人三勤 병서이다. 지리산의 승려 삼근이라는 자가 와서 시축을 보여주고는 나에게 속초7)하여 줄 것을 청하였다. 원운은 바로 백헌(白軒) 상공8)이 지은 것인데, 백강(白江)과 잠곡(潛谷)9) 등 여러 재상 및 당시의 이름난 이들이 모두 이에 화답하였다. 나는 평소에 영동10)의 산수로 아주 들어가는 것을 꿈에 그렸으나, 병들어 아직까지 유람도 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삼근이 여러 공의 시에 화답할 것을 청함을 인하여 붓을 끌어다 시구를 완성하여 그 영동의 산수에 대해 적노니, 나의 시의 뜻을 보는 자는 혹 나를 불러서 전원으로 돌아가려는 흥취가 있을 것이다.대관령 너머 신선 세상을평생을 병들어 유람하지 못하였네승려를 만남에 그곳 뛰어난 경치를 말하니시골 초막에 누워있는 내 신세 부끄러워라구름과 노을의 말에 귀를 씻고산과 물의 이야기에 마음을 깨우치리라어느 해에나 대지팡이 한 자루 짚고바다 동남쪽 땅 마음껏 구경할거나 【幷序。 智異山僧三勤者。 來示詩軸。 請余續貂。 原韻乃白軒相公作。 白江潛谷諸相曁一時名流皆和之。 余平生夢想長入嶺東山水而病未得遊者。 仍三勤而請和諸公詩。 援筆成句。 以書其東嶺之山水。 覽余詩意。 或有招我歸來之興否耶。】嶺外神仙界平生病未探逢僧說勝地愧我臥郊菴洗耳雲霞語醒心山水談何年一竹杖遊盡海東南 속초(續貂) '구미속초(狗尾續貂)'의 준말로, 졸렬한 시(詩)로 뛰어난 시를 이어 짓는다는 뜻의 겸사(謙辭)이다. 이는 고대에 임금을 가까이서 보필하는 높은 관리들은 담비의 꼬리로 관의 장식을 썼는데, 진(晉)나라 때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이 조정의 정사를 전단하면서 봉작(封爵)을 너무 많이 내린 나머지 담비 꼬리가 부족하여 개 꼬리로 보충하였던 데서 유래하였다. 《晉書 卷59 趙王倫列傳》 백헌(白軒) 상공 이경석(李景奭, 1595~1671)으로, 백헌은 그의 호이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상보(尙輔)이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양관(兩館) 대제학 등을 거쳐 인조 말년에 영의정을 역임하였고, 1659년(현종 즉위년)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저서로는 《백헌집(白軒集)》이 있다. 백강(白江)과 잠곡(潛谷) 이경여(李敬輿, 1585~1657)와 김육(金堉, 1580~1658)으로, 백강은 이경여의 호이고, 잠곡은 김육의 호이다. 이경여는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직부(直夫),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세종(世宗)의 7대손으로, 1609년(광해군1)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전라도와 경상도 관찰사, 형조 판서, 우의정, 영의정을 역임하였다. 김육은 본관은 청풍(淸風), 자는 백후(伯厚)이다. 1605년(선조38) 진사시에 급제하였고, 1624년(인조2)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대사헌,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구황벽온방(救荒辟瘟方)》이 있다. 영동(嶺東) 강원도 대관령 동쪽 지역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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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1649) 己丑 【기축년(1649, 인조27)부터 경인년(1650, 효종1)까지, 또 기해년(1659, 효종10)부터 을사년(1665, 현종6)까지이다.】기축년 7월 19일 병자(丙子)은명(恩命)을 받아 서울로 가기 위해 출발하였다. 이는 국상이 있어1) 감히 물러나 있지 못하고 장차 분곡(奔哭)2)한 다음 숙배(肅拜)하려고 하였으므로 병든 몸을 추슬러 출발한 것이다.8월 5일 임진(壬辰)새벽에 막소(幕所)에 나아갔다. 날이 밝을 무렵 궐문으로 들어가 분곡례(奔哭禮)를 행하여 사배(四拜)하고 빈청(賓廳)에서 쉬었다. 해가 높이 떠 진시(辰時)가 되자 숙배례(肅拜禮)를 행하였다. 저녁에 병세가 심하여 순장(旬狀)3)을 병조에 올렸다. 참판 임담(林墰),밀양(密陽)의 나위소(羅緯素)가 모두 나에게 서울에 머물라는 뜻으로 권유하였다. 내가 답하기를 "신하로서 군주를 섬기고 싶지만 병이 깊어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것을 어찌 하겠습니까. 6일에 좌랑(佐郞) 권시(權諰)가 편지를 보내 묻고 대답하였는데, 이때 이 사람이 일사(逸士)로서 특명에 의해 불려왔지만 또한 병으로 순장을 올렸습니다."라고 하였다.오시(五時)에 김징(金澄)이 또 좌랑 권시의 말을 나에게 고하기를 "국장(國葬)이 임박하였으니 어찌 교송례(郊送禮)를 행하지 않고 물러나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대답하기를 "병이 깊지 않으면 어찌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갈 마음을 먹겠습니까. 지난날 명종(明宗)의 국상을 치를 적에 퇴계(退溪) 이 선생(李先生)은 지위가 재신(宰臣)의 반열에 있었지만 국장을 치르기 전에 몸을 추슬러 지레 물러났습니다. 당시에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서 어떤 의견을 갖고 있었는지 비록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필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여기에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제가 비록 감히 비길 수 없지만 이처럼 병이 위독하여 고향으로 돌아갈 마음을 이미 굳혔으므로 억지로 머무르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11월 4일김중호(金仲浩) 군이 학문하는 방법과 기질의 병통에 대해서 묻기에 답하기를 "그대는 자품이 온유하고 기상이 안온하니 그 덕을 향상시키는 공부에 대해 굳이 비루한 나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근엄하고 온후한 사람은 혹 과단성 있고 용맹하게 나아가는 공부가 부족하기도 하다. 자양(紫陽 주희(朱熹)) 선생이 일찍이 '외(畏)' 자로 '경(敬)' 자를 풀이하였는데,4) 주일(主一)5)하는 방법은 이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근래 대략 그 방법을 터득하였으니, 이 마음을 다잡고 흐트러트리지 않아 해이하고 나태한 지경에 이르지 않게 하는 것이 모두 이 '외(畏)' 자의 힘이다.……"라고 하였다.12월 26일하늘에 구름 한 점 없고 땅에 화기(和氣)가 많아 동산의 송죽(松竹)이 더욱 맑고 그윽하였다. 울타리의 닭도 울지 않고 마을의 개도 짖지 않아 세속의 번뇌와 더러운 누가 전혀 없고 확연히 천고(千古)에 홀로 서 있는 듯한 마음이 들었다. 창문은 밝고 깨끗하며, 책상은 정결하여 두서너 동자(童子)와 시서(詩書)를 담론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어서 뒷동산으로 나가 솔숲 가 대숲 길을 왕래하다가 날이 저물어 돌아왔다. 어린아이에게 막걸리 한 잔을 따를게 하고 파하였다. 【自己丑止庚寅。 又自己亥止乙巳。】己丑。 七月十九日。 丙子以恩命發洛行。 蓋國有大慽。 不敢退坐。 將奔哭肅謝。 故扶病發行。八月五日。 壬辰曉。 就次幕所。 平明入門。 行奔哭禮四拜。 就歇賓廳。 日高辰時。 行肅拜禮。 夕以病甚。 呈旬狀于兵曹。 林參判墰羅密陽緯素皆喩余以留京之意。 答曰: "臣子非不欲事君。 其於病篤曠職何? 六日權佐郞諰送書問答之。 是時此人以逸士。 特命招來。 亦以病呈旬云。" 午金澄又以權佐郞之言告余曰: "國葬將迫。 何不郊送而退?" 答曰: "病若不篤。 安有退歸之志哉? 昔者明廟之喪。 退溪李先生位至宰列。 而國葬之前。 奉身徑退。 當時意見。 雖未詳知。 然必有所重在此故也。 今某小子。 雖不敢擬。 病革若此。 歸意已定。 不能强留云云。"十一月四日金君仲浩問爲學之方及氣質之病。 答云: "賢者資稟溫柔。 氣象安穩。 其於進德。 必不須於陋劣者。 然謹厚之人。 或不足於剛毅勇進之功。 紫陽先生嘗以畏字訓敬字。 主一之法。 莫此爲先。 近者粗得其方。 使此心束而不散。 不得入於解弛怠惰之地者。 都是畏字力也云云。"十二月二十六日天無一雲。 地多和氣。 園林松竹。 更覺淸幽。 籬鷄聲靜。 巷犬不吠。 絶然無塵煩汚濁之累。 廓然有獨立千古之想。 紙窓明淨。 案書淸正。 與數三童子。 談講詩書移時。 仍出後原。 往來松邊竹逕。 至晩而還。 使小兒酌醪一觴而罷。 국상이 있어 기축년(1649) 5월 인조가 승하하였다. 분곡(奔哭) 임금이나 부모의 부음(訃音)을 듣고 달려가는 것을 말한다. 순장(旬狀) 사직을 청원하는 문서를 말한다. 각 관아의 낭관이 사임을 원할 때는 열흘에 한 번씩 세 번 계속하여 제출하게 되어 있다. 자양(紫陽)……풀이하였는데 《심경(心經)》에 《주역》의 '경이직내(敬以直內)'를 논한 부분의 부주(附註)에 면재 황씨(勉齋黃氏)가 말하기를 "경을 주일무적이라고 한 것은 정자의 말씀이다. 그러나 스승인 주자께서 또 '경'이라는 글자는 오직 두려워함이 가장 가깝다고 하셨으니, '경'이란 이 마음이 숙연하여 두려워하는 바가 있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敬者主一無適之謂, 程子語也. 然師說又以敬字惟畏爲近之, 蓋敬者, 此心肅然, 有所畏之名.]"라고 하였다. 주일(主一) 성리학의 핵심 개념 가운데 '경(敬)'을 말한다. 정이(程頥)는 "마음을 전일하게 가지는 것이 '경'이고 이리저리 옮기지 않는 것이 일이다.[主一之謂敬, 無適之謂一.]"라고 하였다. 《近思錄 권4 存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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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1650) 庚寅 경인년(1650, 효종1) 4월 1일호사(胡使 청나라 사신)가 와서 혼인을 청하여 나라에서 금림군(錦林君 이개윤(李愷胤))의 딸6)을 시집보내기로 하였다는 말을 들었다. 또 듣건대 호사가 영의정 이경석(李景奭),대제학 조경(趙絅)을 백마산성(白馬山城)에 안치(安置)하였다고 하였다.7) 나랏일이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신하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9월 23일기력이 달리고 정신이 피곤하여 안석에 기대 누워서 조카 김이상(金履相)에게 양손을 주무르게 하였다. 이어서 내 얼굴의 점을 속으로 헤아려 보니 32개였다. 내가 또 김이상의 얼굴에 난 점을 손으로 세어 보니 또한 32개였다. 마침내 기이하여 기록하였다. 대개 팔괘(八卦)가 세 번 변하면 그 수가 32이니, 어쩌면 감응한 것인가.10월 1일 신사(辛巳)일식이 있었다. 이날 듣건대, 나라에서 사대부 집안의 딸을 찾아내어 호청(胡淸)과 혼인하게 하였다고 한다. 수령이 사대부 집안 첩의 소생을 시집보내기로 하여 한밤중에 군졸을 풀어 갑자기 들이닥쳐 잡아가니 곡소리가 마을에 가득하였다. 나랏일이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어찌 피눈물을 흘리지 않겠는가.윤(閏)11월 19일한가로운 가운데 퇴계(退溪) 선생이 지은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행장(行狀)을 읽었다. '맹자(孔孟), 정자(程子), 주자(朱子)의 덕과 재주'라는 구절8)에 이르러 개탄스러운 마음을 금하지 못하였다. 과연 이와 같다면 사도(斯道)에 큰 뜻을 둔 선비가 모두 훌륭한 글을 후세에 남기는 정도에서 그칠 따름이란 말인가. 슬프고 슬프다. 이 행장을 읽고 정암이 후세에 남긴 글을 자세히 살펴보니, 포용하고 공손하여 모난 면을 드러내지 않고 혼연히 중화(中和)의 기상이 있으니, 참으로 덕이 있는 사람의 말이다. 근세에 말을 잘하는 선비 중에는 눈썹을 치켜세우고 큰소리만 치는 자가 종종 있으니 어찌 정암의 경지를 헤아릴 수 있겠는가. 四月初一日聞胡使來請婚姻。 國家以錦林女子許嫁云。 又聞胡使安置領議政李景奭,大提學趙絅于白馬山城云。 國事至此。 臣子之心如何?九月二十三日氣神疲乏。 隱几而臥。 使侄子履相摩兩手。 仍默數余面上黑子。 蓋三十有二矣。 余又手點履相面痣。 亦三十有二矣。 乃奇而記之。 蓋八卦之三變者。 其數三十二。 豈其應耶?十月初一日。 辛巳日有食之。 是日聞國家搜括士族家女子。 許婚胡淸。 守令以士夫家孼産當之。 中夜發卒。 掩襲捕捉。 號哭之聲。 遍于閭里。 國事至此。 爲國家者。 寧不淚盡血繼?閏十一月十九日。閑中讀退溪先生所撰靜庵行狀。 至"孔孟程朱之德之才"一節。 不勝慨然之懷。 以爲果如是。 則士之有大志於斯道者。 皆可止於立言垂後而已歟? 悲夫悲夫! 讀此狀。 細觀其立言。 涵容遜順。 不露崖角。 渾然有中和氣象。 眞有德者之言也。 近世能言之士揚眉大言者。 往往有之。 豈能窺其涯涘歟? 금림군(錦林君)의 딸 의순공주(義順公主)이다. 청나라 구왕(九王)이 우리나라와 혼인하기를 원하였으므로 조정에서 이개윤(李愷胤)의 딸을 공주로 봉하여 보냈는데, 1650년에 청나라로 갔다가 1656년에 돌아왔고, 1662년에 죽었다. 호사가……하였다 백마산성(白馬山城)은 평안북도 피현군 백마산 고지에 있는 고구려 시대의 산성이다. 북쪽으로는 의주, 남쪽으로는 용천군(龍川郡)과 피현군 일대를 굽어볼 수 있어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효종 초년에는 김자점(金自點)의 밀고로 북벌 계획이 탄로 나고 척화신을 처벌하라는 청나라의 요구가 거세지자 조경(趙絅, 1586~1669)과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을 이곳에 안치하였다. 맹자(孔孟)……구절 《退溪集 》권48 〈정암선생행장(靜庵先生行狀)〉의 "공자, 맹자, 정자, 주자의 덕(德)과 재주를 써서 왕도(王道)를 일으키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울 텐데도 결국에 성취된 것은 교훈을 세워서 후세에 남기는 데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夫以孔孟程朱之德之才, 用之而興王道, 猶反掌也. 而其終之所就, 不過曰立言垂後而止耳.]"라는 구절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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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백자(程伯子)의 〈타괴음(打乖吟)〉9)의 운(韻)을 쓰고 이어서 그 체(體)를 본받다 用程伯子打乖吟韻。仍效其軆。 타괴(打乖)는 몸을 숨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농사일은 도리어 기꺼이 세속에 섞이는 것이라네몇 이랑의 전원에 스스로 만족할 줄 알고한 소쿠리의 거친 밥 있어 완전히 가난한 것은 아니네10)그림 속엔 완연한 안락와(安樂窩)의 즐거움11)이요시 위엔 예전과 변함없는 자리 위의 봄바람12)이네천년의 빼어난 인물은 만나기 어려우니흰 머리로 늙어가는 시골 사람 몹시도 부끄러워라 打乖非是欲潛身耕稼還甘渾俗塵數畝田園知自足一簞蔬食不全貧圖中宛爾窩中樂詩上依然座上春千載英豪難可接白頭深愧晩鄕人 정백자(程伯子)의 〈타괴음(打乖吟)〉 정호(程顥)의 〈화요부타괴음(和堯夫打乖吟)〉을 말한다. '타괴(打乖)'는 세상과 어그러지는 일을 한다는 뜻이다. 송(宋)나라 소옹(邵雍)이 〈안락와중호타괴음(安樂窩中好打乖吟)〉이라는 시를 지어 세상과 어긋나는 삶을 살면서 유유자적하는 뜻을 말하였는데, 이에 대해 정호가 〈화요부타괴음〉을 지어 소옹의 타괴는 화광동진(和光同塵)하여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사는 것임을 말하였다. 정호의 시는 다음과 같다. "타괴(打乖)는 몸을 편안히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 도(道)가 커서 세속과 함께 섞일 수 있다네. 누항(陋巷)에서의 일생은 안씨(顔氏)의 즐거움이요, 천고토록 맑은 풍모는 백이(伯夷)의 가난함이네. 객들은 절묘한 붓글씨 찾아 시권 들고 찾아오고, 하늘은 호방한 시 위해 봄날을 넉넉히 빌려주네. 한껏 담소 나누며 세속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니, 덕언(德言)은 오히려 시골 사람 두렵게 할 만하네.[打乖非是要安身 道大方能混世塵 陋巷一生顔氏樂 淸風千古伯夷貧 客求墨妙多攜卷 天爲詩豪剩借春 儘把笑談親俗子 德言猶足畏鄕人]" 한……아니네 시골에서의 소박한 삶을 즐긴다는 의미다. 《논어》 〈옹야(雍也)〉에, "어질다, 안회(顔回)여! 한 그릇 밥과 한 표주박 물을 마시며 누항에 사는 것을 사람들은 근심하며 견뎌 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으니, 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回也]"라 한 대목과, 두보(杜甫)의 시 〈남린(南鄰)〉에 "까만 각건 쓰신 우리 금리 선생, 정원에서 밤만 주워도 완전히 가난하지만은 않겠구려.[錦里先生烏角巾 園收芋栗不全貧]"라 한 대목을 참고한 구절이다. 안락와(安樂窩)의 즐거움 원문은 '안중락(窩中樂)'이다. 송(宋)나라 소옹(邵雍)은 여러 차례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마다하고, 낙양의 소문산(蘇門山)에 들어가 안락와(安樂窩)를 짓고서 학문에 몰두하였다. 《宋史 卷427 道學列傳 邵雍》 자리……봄바람 원문의 '좌상춘(座上春)'이다. 곧 '좌상춘풍(座上春風)'으로, 봄바람처럼 온화한 스승의 풍모를 의미한다. 송(宋)나라 때 주광정(朱光庭)이 정호(程顥)를 찾아뵙고 돌아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봄바람 속에서 한 달을 앉아 있었다.[某在春風中坐了一箇月]"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伊洛淵源錄 卷4》 정호의 시에 차운하였기 때문에 이 전고(典故)를 사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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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년(1659) 己亥 기해년(1659, 현종 즉위년) 5월 4일효종현인대왕(孝宗顯仁大王)이 승하(昇遐)하였다.5월 7일부음(訃音)이 이르자 즉시 본읍(本邑)의 객관(客館)으로 들어가 곡하였다. 부음을 들은 지 6일 째에 성복(成服)하였다.10월 25일궐문(闕門)에서 분곡(奔哭)하였다.10월 28일발인(發引)하였다. 다음 날 하관을 거행하였다.11월 1일동작진(銅雀津)을 건넜다. 밤에 과천(果川) 삼곡(三谷)에 투숙하였다. 듣건대, 지평 희중(希仲) 윤휴(尹鐫)가 와서 이웃 마을에 머문다고 하였다. 그의 훌륭한 명성을 들은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 보지 못했으므로 찾아갔다. 진사 신경윤(愼慶胤)도 함께 와 있었다. 희중은 특지(特旨)로 지평에 제수되었는데 선친의 묘소를 이장하는 일로 세 번 상소하여 체차되기를 청하고 좋은 묏자리를 잡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잠시 담소를 나눈 뒤에 희중과 마을 뒷산에 올라 경기의 산천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물녘에 헤어졌다.11월 26일내가 서용되어 군직(軍職)이 회복되었다고 한다. 성상의 은혜가 이에 이르렀으니 황송하고 감격하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12월 2일남평(南平) 수령이 조보(朝報)를 보내왔다. 그 가운데 "11월 1일에 상이 '이번 발인(發靷) 때 지방에 있는 이전에 벼슬한 관리 가운데 와서 모인 자를 일일이 서계(書啓)하도록 승정원에 분부하라.'라고 전교하였다."라는 내용이 있었다.12월 5일승정원이 계달(啓達)하니, 전교하기를 "이 서계(書啓) 가운데 학업과 학행(學行)이 있는 사람은 좌참찬 송시열(宋時烈)과 이조 판서 송준길(宋浚吉)에게 물어 뽑아서 아뢰라."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때 좌참찬이 어떤 사유로 인혐하여 즉시 뽑아서 아뢰지 못하였다.12월 7일전교하기를 "우참찬은 병으로 즉시 서계(書啓)하지 않았으니 시기를 놓치는 것이 염려스럽다. 이조 판서의 서계를 먼저 써서 들이도록 분부하라."라고 하였다.12월 8일이조 판서 송준길(宋浚吉), 참판 이일상(李一相), 참의 조복양(趙復陽)이 아뢰기를 "전 교리 이수인(李壽仁)은 시종신으로 명리(名利)를 추구하지 않고 사직하여 지조를 지키니 세상 사람들이 칭찬합니다. 사업(司業) 윤선거(尹宣擧)와 사업 윤원거(尹元擧)는 모두 실직(實職)이 있으므로 비록 원래 단자(單子)에 있던 이전 직함의 인원수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9) 일찍이 탑전(榻前)에서 다 갖추어 진달하였습니다. 전 좌랑 신석번(申碩蕃), 전 좌랑 최휘지(崔徽之)는 일찍이 선조(先朝)에서 곧장 6품으로 올렸습니다. 전 자의(諮議) 이상(李翔), 전 자의 송기후(宋基厚)는 일찍이 이미 강관의 직임에 제수되었습니다. 전 세마(洗馬) 김만영(金萬英)은 일찍이 자의에 의망된 적이 있고, 신석번(申碩蕃), 이상(李翔)은 더욱 뛰어난 사람입니다. 황공한 마음으로 감히 아룁니다."라고 하니, 전교하기를 "여기에서 뽑아 아뢴 사람은 다음번에 비록 결원이 없더라도 아울러 모두 부직(付職)하도록 분부하라."라고 하였다.12월 9일이조가 아뢰기를 "전교가 내렸습니다. 참상(參上)은 현재 실제로 결원이 있으니 즉시 의망하고, 참하(參下)는 궐원이 없는 곳은 우선 송서(送西)하여 주의(注擬 의망)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하라."라고 하였다. 이날 신석번(申碩蕃)은 사복시 주부에, 최휘지(崔徽之)는 활인서 별제에 제수되고, 이상(李翔)은 사직(司直)에, 송기후(宋基厚)는 사정(司正)에, 김만영(金萬英)은 사용(司勇)에 부직하였다고 한다. 성상께서 선비를 좋아하는 지극한 뜻을 숭상할 만하다. 다만 중전(中殿)께서 공주를 낳았다고 하니, 온 나라 신민들의 실망스러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12월 11일어떤 사람이 패랭이를 쓰고 짚신을 신고 포의(布衣) 차림으로 와서 당상(堂上)에서 배알하였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그 이름을 물으니, 김구성(金九成)이라고 하였다. 유학(儒學)에 대해서 말하니 대략 대의가 통하였다. 음양술학(陰陽術學)과 자미지수(紫微之數)10)를 언급하였는데, 모두 그 뜻을 통달하였다. 거처하는 곳을 물으니, 본래 서울 사람인데 무장현(茂長縣) 해안에 우거한다고 하였다. 五月初四日孝宗顯仁大王昇遐。初七日。 訃至。 卽入哭于本邑客館。 第六日成服。十月二十五日奔哭于闕門。二十八日發引。 翌日下玄宮。十一月初一日渡銅雀津。 夜投于果川三谷。 聞尹持平鐫希仲來住隣村。 久聞其盛名。 而未得見。 故往訪之。 愼進士慶胤亦同來矣。 蓋希仲以特旨拜持平。 以遷卜其先親葬地。 三疏乞遞。 以求山來此云矣。 少話後。 與希仲登村後山。 望畿甸山川。 仍穩話。 日晩而別。二十六日聞余敍復軍職。 天恩至此。 惶感無言。十二月初二日南平主倅送來朝報。 其中有曰: "十一月初一日。 上傳敎曰: '今發靷時。 在外前朝官來會者。 一一書啓事。 分付政院。'"初五日政院啓達。 則傳曰: "此書啓中。 學業學行之人。 問于左參贊宋時烈吏判宋浚吉。 抄啓。" 是時參贊以事引嫌。 未卽抄啓。初七日傳曰: "右參贊以病未卽書啓。 失時可慮。 吏判書啓。 爲先書入事。 分付。"初八日吏判宋浚吉參判李一相參議趙復陽啓曰: "前校理李壽仁。 以侍從之臣。 恬退守志。 爲世所稱。 司業尹宣擧司業尹元擧皆有實職。 故雖不出於元單子前銜1)之數。 而曾於榻前備盡陳達。 前佐郞申碩蕃。 前佐郞崔徽之。 曾於先朝直出六品。 前諮議李翔前諮議宋基厚。 曾已授講職。 前洗馬金萬英。 曾擬於諮議望。 而申碩蕃李翔。 尤其表著者也。 惶恐敢啓。" 傳曰: "此抄啓之人。 後次雖非闕。 竝皆付職事。 分付。"初九日吏曹啓曰: "傳敎矣。 參上則方有實闕。 卽爲擬望。 而參下則卽無闕處。 姑爲送西注擬如何?" 傳曰: "依啓。" 是日申碩蕃除司僕主簿。 崔徽之除活人別提。 李翔付司直。 宋基厚付司正。 金萬英付司勇云。 聖上好士之至意可尙矣。 但聞中殿誕生公主。 一邦臣民之缺望。 不可言不可言。十一日有人冐蔽陽笠著藁鞋衣布衣。 來拜于堂上。 坐良久。 問其名。 則金九成。 語及儒學。 粗通大義。 語及陰陽術學紫微之數。 皆通其意。 問其所居。 則曰"本以京人。 寓居于茂長海曲云。" 비록……않았지만 원문은 '雖不出於元單子前御之數'인데, 문맥을 살펴 '御'를 '銜'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자미지수(紫微之數) 점술에 관한 용어이다. 자미(紫微)는 별의 이름으로, 제왕에 해당하는 성좌(星座)이다. 銜 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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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래각(飛來閣) 주인에게 드리다【주인은 승지 임련(林堜)2)이다. 선생이 어렸을 때 지은 시로, 당시 나이 14세였다.】 呈飛來閣主人【主人卽林承旨堜。先生兒時作。時年十四。】 영공(令公)께서 병이 많아 벼슬을 그만두시고금강(錦江)3) 서쪽에 약 달이는 부엌4) 새로 열었네백년토록 변함없는 창해(滄海)에 기러기 멀리 날아가고천 길 뻗은 벽오동(碧梧桐)엔 봉황이 높이 깃들었네5)문 앞의 푸른 물은 마음을 통과하여 깨끗하고난간 밖 푸른 산은 기운과 함께 가지런하네무엇보다도 주인옹께서 참된 즐거움 누리시는 곳은달 밝은 낚시터에서 한 가닥 낚싯줄 드리운다네 令公多病投簪笏藥竈新開錦水西滄海百年鴻遠擧碧梧千仞鳳高棲門前綠水通心淨檻外靑山與氣齊最是主翁眞樂處月明磯畔一絲低 임련(林堜) 1589~1648.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동야(東野), 호는 한호(閑好)다. 호조 정랑, 사헌부 장령 등을 지냈으며, 1643년 동부승지에, 1648년 우승지에 임명되었다. 금강(錦江) 오늘날의 영산강을 말한다. 나주(羅州)의 옛 이름이 금성(錦城)이므로 영산강을 금천(錦川) 또는 금강(錦江)이라고도 부른다. 약……부엌 원문은 '약조(藥竈)'다. 벼슬에서 물러나 한가한 곳에서 요양하고 있는 임련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두보(杜甫)의 시 〈기팽주고삼십오사군적괵주잠이십칠장사참삼십운(寄彭州高三十五使君適虢州岑二十七長史參三十韻)〉에, "대숲의 집에는 약 달이는 부엌이요, 꽃 핀 섬에는 책 읽는 책상이라.[竹齋燒藥竈 花嶼讀書床]"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천……깃들었네 봉황은 오동나무에 둥지를 튼다고 전해진다. 《시경》 〈대아(大雅)‧권아(卷阿)〉에 "봉황이 우니 저 높은 언덕이요, 오동이 자라나니 아침 해 뜨는 동산이라.[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라 하였고, 두보(杜甫)의 〈추흥팔수(秋興八首)〉에, "향도의 남은 싸라기는 앵무가 쪼던 싸라기요, 벽오동의 늙은 가지는 봉황이 깃든 가지로다.[香稻啄餘鸚鵡粒 碧梧棲老鳳凰枝]"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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