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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매기 盆梅記 매화는 초목 중에 하나의 식물일 뿐이다. 봄에 자라나 가을에 낙엽이 지니 천시(天時)를 따라서 자라고 죽는 일반적인 초목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옛사람은 그 향기롭고 정결하고 일찍 피고 곧음을 아껴서 당실(堂室) 사이에 심어서 정원의 실제로 삼았다. 오래되어 등걸이 되고, 기이하고 오래되고, 뿌리는 말리고 가지는 파리한 것과 기괴한 것 또한 전지를 가하여 화분에 심어져 당(堂)에 올라가 집 안으로 들어간다.우리 집에 또한 고장(古莊) 한 뿌리가 있었다. 내가 일찍이 그 이치를 미루어 장점을 말하기를 "사물이 처음 생겨남에 만 가지 품목이 모두 땅에서 자라나니 귀천(貴賤)·청탁(淸濁)의 이치는 본래 다르지 않다. 다만 매화의 성품은 정결로 사람에게 취함을 받으니 숲 덤불의 가운데를 사양하고 특별하게 뜰 정원에 서 있다. 뿌리를 견고하게 심어서 줄기가 멀리 뻗어 화실(花實)이 잡스럽지 않으니 비유하면 둘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과 같다. 혈기(血氣)가 체를 갖춘 것은, 그 종류가 한둘이 아니지만, 오직 우리 인간이 둘 사이에서 인의를 귀하게 여기니 어버이를 친히 하고 남을 사랑하고 은혜가 있고 의리가 있는 것이다. 비록 그렇지만 식물의 무리 중에서 더러운 곳에 거처하는 것은 분양(糞壤)에 뿌리를 내리고 형극(荊棘)에 가까이 살면서 그 줄기가 지나치게 무성하면서도 성기지 않고, 그 잎이 무성하여도 깨끗하지 않으며 그 혹 비·바람·서리·눈이 때에 맞지 않고, 꽃과 열매 또한 그 절기를 잃으며 도끼든 나무꾼과 양·돼지가 혹 침범하여 생기 또한 시들게 된다. 오직 분재(盆栽)만이 뿌리가 번다하지 않고도 가지가 더욱 성기며 토양이 오염되지 않고도 입이 더욱 청초하며 서리·눈이 내리지 않고도 꽃이 일찍 피며 양·돼지가 이르지 않고 그 생을 이룬다. 봄에 자라도 무성해지지 않고 가을에 서리가 시들게 하여도 시듦을 알지 못하고 정정(亭亭)하니 우뚝 서서 사람이 친애(親愛)하지 않음이 없으니 비유하자면 뭇사람 가운데에 지인(至人)191)이 있는 것과 같다. 그 생을 양성하고 그 욕심을 절제하여 번화(繁華)하고, 부귀(富貴)로 그 몸에 더하지 않고도 세상에 남아 독립하여 천고(千古)를 표출(表出)하고 물(物)이 진번(塵煩)을 끼쳐도 모두 나를 더럽히지는 못하는 것이다. 비록 그렇지만 그 열매는 혹 대갱(大羹)192)에 간으로 쓰이는데 다섯 가지 맛이 잘 섞어지니 이윤(伊尹)193)·태공(太公)194)이 이에 해당한다. 물(物)이 비록 미약하지만, 그 이치는 원대한 것에서 미루어 볼 수 있으니 물이 이것에 더없이 가까운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내가 지극히 아껴 그 말들을 기록한다. 梅林林中一植物耳。 春生秋落。 順天時而生死。 與凡草木何異焉? 古人愛其香而潔早而貞。 樹之堂室之間。 爲庭實焉。 其老而査奇而古根拳而枝瘦者。 巧者又加芟治。 栽之盆器。 升堂而入室焉。 余家亦有古莊一根。 余嘗推其理而長之曰: "物之初生。 萬品皆土之毛。 貴賤淸濁。 理本不殊。 獨梅之性。 以潔貞見取於人。 辭林莽薈蔚之中而特立於階庭。 植本固而條枝遠揚。 花實不雜。 譬若生之兩間。 血氣具軆者。 厥類不億。 而惟吾人以仁義貴於兩間。 親親而仁人。 有恩而有義者也。 雖然其羣於植物而處於汚下者。 根於糞壤。 近乎荊棘。 其枝過茂而不踈。 其葉蘩蔓而不淸。 其或風雨霜雪之不時。 而花實又失其節。 斧斤羊豕之或侵而生氣亦至薾爾。 惟盆栽者。 根不煩而其枝益踈。 土不汚而其葉尤淸。 霜雪不及而其花早。 羊豕不至而其生遂。 春生而不加茂。 秋殺而不知謝。 亭亭獨立。 人莫不親愛。 譬若衆人之中。 有至人者。 養其生節其慾。 不以繁華富貴加其身。 而遺世獨立。 表出千古。 物累塵煩。 渾不我浼者矣。 雖然其實或和之大羹。 五味具和則伊尹,太公當之。 物雖微而其理可推於遠者。 物莫近乎此者。" 是以吾愛之至而記其說。 지인(至人) 일반적으로 덕이 높은 사람을 말한다. 대갱(大羹) 양념을 하지 않고 맹물로 끓인 고깃국을 말한다. 《예기(禮記)》 〈악기(樂記)〉에 "대갱에 간을 하지 않는 것은 남은 맛을 두기 위한 것이다.[大羹不和, 有遺味者矣.]"라고 하였다. 이윤(伊尹) 은(殷)나라 탕왕(湯王)의 어진 재상이다. 신야(莘野)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중에 탕왕이 세 번이나 폐백을 보내어 출사하기를 간곡하게 청하자, 마침내 탕왕을 도와 하(夏)나라 걸왕(桀王)을 멸망시키고 은나라를 천자국으로 만들었다. 태공(太公) 중국 주(周)나라 초기의 정치가로 본명은 강상(姜尙)이다. 여(呂) 나라에 봉해져 '여상(呂尙)'이라고도 하고 '태공망(太公望)'이라고 한다. 백이, 숙제와 달리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켜 천하를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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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재권후발 三學齋券後跋 해[歲舍]195)기해년(1659, 현종 즉위년)의 늦가을에 영평(永平)의 삼학재(三學齋)가 완성되었다. 완성된 날에 서재의 제군들이 재생(齋生)의 명적(名籍)을 취하여 나에게 글을 부탁하며 말하기를 "선생님은 이미 책 머리말을 쓰셨으니 어찌 또 한마디 말로 발문(跋文)을 쓰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그들의 뜻을 마치자 내가 의리상 구차한 변명으로 면하기 어려워 바로 삼학재의 설을 추연(推衍)하여 제생에게 큰 소리로 말하기를 "학(學)은 하나일 뿐인데 그것을 삼(三)이라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내가 일찍이 듣건대 하남(河南) 정숙자(程叔子)196)께서 말하기를 '옛날의 학은 하나인데 지금의 학은 셋이니 첫째는 훈고학(訓詁學)이고, 둘째는 문장학(文章學)이며, 셋째는 유자학(儒者學)이다. 도(道)에 빨리 도달하려고 유학을 버리는 것은 불가하다'라고 하였으니 아! 유학이 세상에서 밝혀지지 않은 것이 오래되었다. 저 유방(劉邦)의 한나라가 과거로 선발하여 사람을 취하면서부터 이(李)씨의 당(唐)나라와 조(趙)씨의 송(宋)나라에 미쳐서는 학문이 날로 이목(耳目)에 달려가서 삼분의 학문이 시작되었다. 대저 자구(字句)나 해석하고 명분·의리나 탐구하고 오로지 기문(記聞)의 업(業)을 숭상한 것이 훈고(訓詁)의 학이니 지금에 '강경과(講經科)'197)를 말한다. 시구를 장식하고 장구(章句)를 꾸며서 한묵(翰墨)의 마당을 달리는 것이 문장(文章)의 학이니 지금에 이른바 '문예과(文藝科)'이다. 학문이란 한 구절은 곧 그 이치를 아는 것이니 그 이치를 알면 곧 독실하게 실행할 수 있게 된다. 마음에 근본 하여 몸에서 실행하는 것은 쇄소(灑埽)로 말미암아 천리(天理)에 도달하고198) 가정에서 시작하여 천하에 미치는 것이니 유자의 학이다. 삼대(三代)가 이미 멀어지고 옛 도를 회복하기 어려우니 지금 비록 주공(周孔)의 덕(德)과 안자·증자의 학(學)이 있더라도 과업(科業)을 통하지 않고 군주에서 신임을 얻어 도를 행하기 어려우니 문장(文章)·훈고(訓詁)의 학문을 어찌 전부 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이 서재를 삼학(三學)이라고 이름 붙인 뜻이다. 무릇 이 서재에 들어가 이 학문을 강(講)하는 자들은 동몽(童蒙)들은 먼저 훈고(訓詁)를 배우고 조금 자란 자는 문사(文辭)를 학습하고 성인은 전적으로 의리(義理)를 위주로 하여야 한다. 박문약례(博文約禮)199)는 먼저 그 큰 것을 세운 연후에 내가 소유한 것을 미루어 문사(文辭)의 사이에 도달하고, 그 남긴 가르침의 나머지에 응당 진취의 도구를 들어서 그 큰 근본을 확충하고 효친(孝親)·경형(敬兄)·충군(忠君)·제장(悌長)의 도(道)로 삼는다면 학문을 하는 도가 거의 원류가 혼탁하지 않아서 본말이 서로 닦이게 될 것이다. 만약 말(末)에 치달리고 근본을 버려서 투박하고 사치스럽고 장단(長短)을 다툼에 힘쓰며 명예에 치달리고 영리(榮利)에 뜻을 두어 그 본체를 상실한다면 서재를 이름 붙인 본래의 의미가 아닐 것이다."라고 하였다. 모두 "예"라고 대답하였다.인하여 그 말들을 기록하여 책의 끝에 써서 경계로 삼는다. 아침저녁으로 의관을 정제하고 서재에 들어가 서생들을 이끌고 장구(章句)를 가르치는 자는 영평(永平) 문만욱(文晩郁) 군, 진양(晉陽) 정지(鄭榰) 군, 파평(坡平) 윤선기(尹先夔) 군이 그들이다. 장자후(張子厚) 선생200)의 이른바 '교인사익(敎人四益)'201)을 세 사람이 알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太歲舍己亥之暮秋。 永平之三學齋成。 成之日。 齋之諸君取齋生名籍屬余曰: "子旣序其券首矣。 盍又一言以跋之?" 以卒其意。 余義難以辭苟免。 乃推衍三學齋之說。 嘏于諸生曰: "夫學一而已矣。 謂之三者何也? 竊嘗聞河南程叔子有言曰: 古之學者一。 今之學者三。 一曰'訓詁之學'。 二曰'文章之學'。 三曰'儒者之學'。 欲趍道。 舍儒學不可。 嗚呼! 儒學之不明於世久矣。 粤自劉漢氏以科選取人。 逮李唐趙宋。 學日趍於耳目而三分之學作矣。 夫字解句釋。 探賾名義。 專尙記聞之業者。 訓詁之學也。 今之所謂講經科也。 藻語葩辭。 繡章錦句。 馳騁翰墨之場者。 文章之學也。 今之所謂文藝科也。 學一句便知其理。 知其理便篤行之。 本之心而行之身。 由灑埽而達之天理。 始於家而及於天下者。 儒者之學也。 三代旣遠。 古道難復。 今雖有周孔之德顔曾之學。 不由科業。 難於得君而行道。 則文章訓詁之學。 安可專廢也? 此命斯齋三學之義也。 凡入是齋講斯學者。 童蒙者先學訓詁。 稍長者學習文辭。 成人者專以義理爲主。 博文約禮。 先立其大者。 然後推吾所有。 達之文辭之間。 以其緖餘。 爲應擧進取之具而擴充其大本。 以爲孝親敬兄忠君悌長之道則爲學之道。 庶乎源流不渾。 本末交修矣。 若夫趍末而棄本。 以標竊偸靡。 爭長競短爲務。 馳心於聲譽。 騖意於榮利。 喪失其本軆則非名齋之本意也。" 僉曰: "唯。" 仍記其說。 書于卷末以警之。 朝暮整衣冠入齋中。 引諸生訓章句者。 永平文居晩郁,晉陽鄭君榰,坡平尹君先夔其人也。 張子厚先生所謂敎人四益。 三君亦不可不知云。 세사(歲舍) 세재(歲在), 세차(歲次)와 같은 말이다. 정숙자(程叔子) 북송(北宋)의 학자 정이(程頥, 1033~1107)로, 자는 정숙(正叔)이고 이천(伊川) 선생으로 불린다. 형 정호(程顥)와 함께 이른 나이에 주돈이(周敦頥, 1017~1073)에게 수업하여 북송 이학(理學)의 터전을 다졌고, 오랜 기간 낙양(洛陽)에서 강학하였기 때문에 '낙학(洛學)'이라 불렸다. 후인들이 그들의 논설과 저작을 정리하여 《유서(遺書)》·《문집(文集)》·《경설(經說)》 등을 편찬하였고, 이를 《이정전서(二程全書)》에 수록하였다. 강경과(講經科) 과거 시험에서 시험관이 지정하여 주는 경서의 대목을 외던 일을 말한다. 주로 오경(五經)인 《시경(詩經)》·《서경(書經)》·《주역(周易)》·《예기(禮記)》·《춘추좌전(春秋左傳)》과, 사서(四書)인 《대학(大學)》·《중용(中庸)》·《논어(論語)》·《맹자(孟子)》에서 출제(出題)되었다. 성적은 등급 중 통(通)이 첫 번째이다. 다음은 약(略), 조(粗), 불(不)이다. 쇄소(灑埽)로 …… 도달하고 쇄소응대(灑掃應對)는 물 뿌리고 청소하며 응하고 대답하는 것으로, 소학(小學)의 공부이다. 대학(大學)에서 최종 목표인 치국(治國)·평천하(平天下)는 소학(小學)에서 강조한 물 뿌리고 쓸고 응답하는 쇄소응대(灑掃應對), 즉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상 속에서부터 그 공부를 시작한다는 말이다. 하학(下學)을 통해 상달(上達)한다는 말은 아래로 인사(人事)를 배운 뒤에 위로 천리(天理)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박문약례(博文約禮) 글을 통하여 지식을 넓히고 예를 통해서 행동을 검속하는 것이다. 《논어》 〈옹야(雍也)〉에 "군자가 글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요약한다면 또한 도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장자후선생(張子厚先生) 북송의 학자 장재(張載, 1020~1077)로, 자는 자후(子厚), 시호는 헌공(獻公)이다. 횡거(橫渠)는 그의 호이다. 유가와 도가의 사상을 조화시켜 우주의 일원적 해석을 설파함으로써 이정(二程)·주희(朱熹)의 학설에 영향을 끼쳤다. 저서에 《정몽(正蒙)》, 《장자전서(張子全書)》 등이 있다. 교인사익(敎人四益) 어린 후학을 가르치는 네 가지 유익함을 말한다. 장재(張載)가 말하기를, "어린이를 가르치는 데에도 유익한 점이 있으니, 자신을 얽어매어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는 것이 첫 번째 유익함이요, 남에게 자주 가르쳐 주다 보면 자신도 글 뜻을 깨닫게 되는 것이 두 번째 유익함이요, 어린이를 대할 적에도 반드시 의관을 바르게 하고 자세를 의젓하게 갖는 것이 세 번째 유익함이요, 항상 자기로 인해서 남의 재주를 잘못되게 하는 것을 걱정하면 감히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는 것이니 네 번째의 유익함이다.[敎小童亦可取益, 絆己不出入, 一益也. 授人數數, 己亦了此文義, 二益也. 對之必正衣冠尊瞻視, 三益也. 常以因己而壞人之才爲憂則不敢惰, 四益也.]"라고 하였다. 《近思錄 권10 政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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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집성202)서발 農家集成書跋 우리 인간이 찬수(鑽燧)203)이후에 불에 의해 먹고, 뇌누(耒耨)의 이익을 대개 익괘(益卦)204)에서 취하였다. 천하의 근본은 여기에 달려있다. 옛날에 백성의 부모가 된 자는 이것에 힘써서 흥하고 소홀히 하다가 망했음을 역사를 상고해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 백성이 드리운 지 삼백 년에 이익을 즐기고 생을 편안히 여기고 성화(聖化)의 가운데에서 경착(耕鑿)205)하여도 누구의 힘인지 알지 못한 것은 《농가직설(農家直說)》의 반포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삼백 년을 앞서서 이 백성이 이익을 즐기고 생을 편안히 한 것이 《농가직설》에 있었다면 이후의 억 만년을 누릴 태평성대의 근본이 또한 우리 성상께서 이 책을 반포하는 데 있지 않았겠는가? 나 같이 어리석으면서도 밭고랑의 가운데에서 요순(堯舜)을 즐거워하는 자는 반포한 이 책을 공경히 받아서 훈화(勛華)206)의 은택에 친히 목욕하였으니 흔연(欣然)히 이 글을 써서 함포(含哺)의 노래207)를 바치고자 한다. 自吾人鑽燧之後。 食之以火而耒耨之利。 盖取諸益。 天下之本。 其在是矣。 古之作民父母者。 務此而興。 忽之以亡。 考前史班班可見。 東民之垂三百年。 樂利安生。 耕鑿於聖化之中。 不自知而誰之力者。 在於農家直說之頒非耶? 前三百而使斯民樂利安生者在於直說。 則後此億萬年無彊之本。 亦不在於我聖上此書之頒耶? 若余之愚。 樂堯舜於畎畝之中者。 敬受是書之頒。 親沐勛華之澤。 遂欣然書此。 以效含哺者歌。 농가집성 효종 때 신속(申洬)이 편찬한 책이다. 세종 때 정초(鄭招)와 변효문(卞孝文)이 엮은 《농사직설(農事直說)》, 성종 때 강희맹(姜希孟)이 금양(衿陽) 곧 시흥(始興)에서 농사지으면서 자신의 경험을 기록한 《금양잡록(衿陽雜錄)》, 중국 당나라의 한악(韓鄂)이 지은 《사시찬요(四時纂要)》에서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고 조선의 농업 관련 사항을 추가하여 펴낸 《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 등 세 농서를 기본으로 하고, 세종의 〈권농문(勸農文)〉과 주희(朱熹)의 〈권농문〉 등을 보태고, 신속 자신이 지은 《구황촬요(救荒撮要)》까지 포함하여 편찬하였다. 1655년 왕명으로 처음 간행되었고 그 후 여러 차례 개정되거나 증보되었다. 찬수(鑽燧) 찬수개화(鑽燧改火)의 준말로, 철이 바뀔 때마다 그 계절의 나무를 비벼 대어 새로 불을 취하는 일이다. 뇌누(耒耨)의 …… 익괘(益卦) 《주역(周易)》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신농씨가 나오시어 나무를 깎아 쟁기를 만들고 나무를 휘어 쟁기 자루를 만들어, 쟁기와 호미의 이로움으로써 천하를 가르쳤으니 대개 〈익괘〉에서 취하였다.[神農氏作, 斲木爲耜, 揉木爲耒, 耒耨之利, 以敎天下, 蓋取諸益.]"라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경착(耕鑿) 밭 갈고 우물 판다는 뜻으로, 태평 시대를 구가한다는 말이다. 요(堯) 임금 때에 어느 노인이 지었다는 〈격양가(擊壤歌)〉에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면서, 샘을 파 물 마시고 밭을 갈아서 밥 먹을 뿐이니, 임금님의 힘이 도대체 나에게 무슨 상관이겠는가?[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食, 帝力於我何有哉?]"라는 말이 나온다. 훈화(勳華) 상고 시대의 성군이었던 요 임금과 순 임금을 가리킨다. 《서경》 〈요전(堯典)〉에서 요 임금을 방훈(放勳)이라 하였으니, 요 임금이 일찍이 설(契)을 사도(司徒)로 삼아서 백성들에게 인륜(人倫)을 가르치게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순전(舜典)〉에서 순 임금을 중화(重華)라고 하였으니, 중화는 순 임금의 문채가 요 임금과 거듭 합치되었다는 뜻이다. 함포(含哺)의 노래 함포고복(含哺鼓腹)의 준말이다. 실컷 먹고 배를 두드린다는 뜻으로, 태평성대에 백성들이 풍족한 생활을 하는 것을 표현할 때에 주로 사용하였다. 《장자》 〈마제(馬蹄)〉에 "옛날 혁서씨(赫胥氏) 시대에는, 백성들이 집에 있을 때에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를 따지지 않았고 길을 갈 때는 어디로 가야 할지 요량하지 않았다. 음식을 입안 가득 넣고서 즐거워하였으며 배를 두드리며 놀았다."라고 하였다. 이는 또한 요 임금 때에 어느 노인이 지었다는 〈격양가(擊壤歌)〉와도 관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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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초당(復初堂)211)에 부치다 寄復初堂 남쪽 나라 아름다운 이 맨 처음에 뜻을 두니곧은 난초와 길게 자란 대나무 마음이 처음과 같네동방의 고사(高士) 능히 추억할 수 있으니매화 아래의 꽃다운 맹약 조용히 그 처음을 생각하네두 번째산 앞의 고요한 집이 나의 처음인데몇 해 동안 길을 헤매어 점차 처음을 잃었네이로부터 고향에서 다시 주인이 되었으니병주(幷州)의 갈림길212) 처음이 아님을 알겠네.세 번째상자 속의 밝은 구슬 맨 처음처럼 맑으니거듭 갈아도 처음에 내려 받은 마음213)은 변하지 않네내 집으로 가는 길을 분명히 알고서 취하니구름 모두 걷힌 하늘 한가운데 달이 막 떠오르네 南國佳人志一初貞蘭脩竹意如初東方高士能相憶梅下芳盟暗記初其二山前淨舍是吾初幾歲迷塗漸失初從此故鄕還作主並州歧路認非初其三櫝裏明珠湛一初重磨不變降衷初分明識取吾家路雲盡天心月上初 복초당(復初堂) '복초(復初)'는 처음의 선한 본성을 회복하는 것을 말한다. 《소학집주(小學集註)》 〈소학제사(小學題辭)〉에, "이치를 궁구하고 몸을 닦는 것은 학문의 큰 것이다. 밝은 본성이 환히 빛나서 안과 밖이 있지 않으니, 덕이 높고 업적이 넓어야 그 처음을 회복할 수 있다.[窮理修身 斯學之大 明命赫然 罔有內外 德崇業廣 乃復其初]"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병주(幷州)의 갈림길 오랫동안 생활하여 정이 든 타향을 뜻한다. 당(唐)나라 시인 가도(賈島)가 병주(幷州)에 오래 살다가 떠난 후 그곳을 고향처럼 그리워한 데서 유래하였는데, 그의 시 〈도상건(渡桑乾)〉에, "병주의 나그네살이 십 년이 지나도록, 밤낮으로 고향 함양에 돌아가고팠어라. 무단히 다시금 상건수 물을 건너니, 돌아보매 병주가 바로 고향처럼 느껴지더라.[客舍幷州已十霜 歸心日夜憶咸陽 無端更渡桑乾水 却望幷州是故鄕]"라 하였다. 내려 받은 마음 원문은 '강충(降衷)'이다. 상제가 내려준 떳떳한 마음을 말한다. 《서경》 〈탕고(湯誥)〉에, "훌륭하신 상제가 하민들에게 충(衷)을 내려주셨다.[惟皇上帝 降衷于下民]"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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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를 읊다 詠梅 흰 옷 입고서 낙조 아래 서 있는 이 누구인가233)좋은 구슬 패물로 차고 둥근 옥을 옷으로 삼았네나는 알겠네 옥빛처럼 아름다운 정명도(程明道)234)의얼굴 가득한 춘풍(春風)235)에 덕스런 광채 모여 있음을【뜰에 오래된 매화 한 그루가 있었는데, 단정하고 곧게 자라 장인(丈人)과 군자(君子)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 봄을 맞아 일찍 피어 온 가지에 밝은 구슬이 가득하여 지초와 난초의 향기가 사람에게 스며드는 듯한 느낌236)이 있었으니, 마침내 붓을 잡고서 감탄하며 썼다.】 素服何人立落暉良珠爲佩璧爲衣吾知玉色程明道滿面春風總德輝【庭有古梅一樹。端直整束。甚肖丈人君子之象。當春早發。萬枝明珠。有芝蘭襲人之氣。遂援筆感歎而書。】 흰……누구인가 '흰 옷'은 매화를 비유한 말이다. 수(隋)나라 때 조사웅(趙師雄)이 나부산(羅浮山)에 갔다가 황홀한 경지에서 향기가 감도는 어여쁜 미인을 만나 즐겁게 환담하고 술을 마시며 하룻밤을 보냈는데, 그 다음 날 아침에 보니 큰 매화나무 아래에 술에 취해서 누워 있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龍城錄 趙師雄醉憩梅花下》 옥빛처럼 아름다운 정명도(程明道) 주희(朱熹)가 정호(程顥)에 대해 지은 〈정명도화상찬(程明道畫像贊)〉에, "양기가 만물을 기르듯 하고 산처럼 우뚝 섰으며, 옥빛처럼 아름답고 종소리처럼 쟁쟁했다.[揚休山立 玉色金聲]"라 하였다. 또 송나라 문인 장도흡(張道洽)의 시 〈매화〉에 "옥빛은 홀로 천지의 정기를 받았고, 철석 같은 심장은 눈서리에도 놀라지 않네.[玉色獨鍾天地正 鐵心不受雪霜驚]"라 하였고, 섭옹(葉顒)의 시 〈고포매화(故圃梅花)〉에도 "신세는 수운의 고장이요, 차가운 살에 옥빛의 치마로다.[身世水雲鄕 冰肌玉色裳]"라 한 것에서 알 수 있듯, 매화의 색은 옥빛으로 자주 묘사된다. 얼굴 가득한 춘풍(春風) 정호(程顥)의 온화한 기상을 묘사한 말이다. 주희(朱熹)의 《근사록(近思錄)》 권14에, "주공담이 여주에서 명도 선생을 뵈었다. 한 달을 머무르다 돌아가 사람들에게 '광정이 춘풍(春風) 속에 한 달을 앉아 있었다네.'라고 하였다.[朱公掞見明道於汝州 逾月而歸 語人曰 光庭在春風中坐了一月]"라 하였다. 지초와……느낌 훌륭한 기운에 감화된다는 뜻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선한 사람과 함께 지내면 마치 지란(芝蘭)의 방에 들어간 것과 같아 그 향기는 못 맡더라도 오래 지나면 동화된다.[與善人居 如入芝蘭之室 久而不聞其香 卽與之化矣]"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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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수장 존양성찰지도 中庸首章存養省察之圖 삼가 살펴보건대 주자가 말하기를 "계신공구(戒愼恐懼)로부터 검속(檢束)하여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 편벽되고 치우친 것이 없게 되어 그것을 지켜서 잃지 않는 데 이르면 그 중을 지극히 하여 천지가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104) 근독(謹獨)으로부터 정밀하게 하여 사물을 응하는 곳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어 가는 곳마다 그렇지 않음이 없는 데 이르면, 그 화(和)를 지극히 하여 만물이 생육 될 것이다."105)라고 하였다. 대개 《중용(中庸)》 수장(首章)의 조맥(條脉) 공부(工夫)는 여기에서 다 말했고, 학자가 공부하는 처음과 끝마침이 또한 여기에 다 있으니 이른바 죽도록 써도 다 쓸 수 없는 것이다.삼가 주자의 말로 인하여 조항을 나누어 도(圖)를 그려서 눈을 붙여 생각하고 살피는 도구로 삼았다. 다만 중용에서는 비록 경(敬)을 말하지 않았으나 경이 아니면 존양·성찰의 공부를 이룰 방법이 없기에 주자가 말하기를 "군자의 마음은 항상 경외(敬畏)를 보존하여 비록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더라도 또한 함부로 소홀히 할 수 없다."106)라고 하였다. 정자(程子) 또한 말하기를 "학자는 먼저 경을 얻는 방법을 이해함만 같은 것이 없으니 경에 능하면 저절로 이것을 알게 된다."107)라고 하였으니 학자는 살피지 않을 수 없다.또 살펴보면 계신공구(戒愼恐懼)는 미발(未發)의 근독(謹獨)이요, 막현막현 (莫見莫顯)은 기발(旣發)의 근독(謹獨)이니 이것이 존심(存心)·치지(致知)·체용(軆用)을 서로 닦는 법이다.존양(存養)은 아직 솔성(率性)의 전이고 성찰(省察)은 이미 수도(修道)의 뒤이다. 비록 솔성의 전이라도 천명(天命)의 성(性)은 분명하게 그대로 있다. 마땅히 이때 계구(戒懼)하여야 하니 바로 미발(未發)의 전에 존양(存養)이라는 것이 이것이다. 謹按朱子曰: "自戒懼而約之。 以至於至靜之中。 無所偏倚而其守不失。 則極其中而天地位矣。 自謹獨而精之。 以至於應物之處。 無少差謬而無適不然。 則極其和而萬物育矣。" 盖中庸首章之條脉工夫。 此言盡之。 而學者用功之成始成終者。 亦盡於此。 所謂終身用之。 有不能盡者也。 謹因朱子之言。 條分作圖。 以爲寓目思省之具焉。 但中庸雖不言敬。 而非敬則無以致存省之功。 故朱子曰: "君子之心。 常存敬畏。 雖不見聞。 亦不敢忽。" 程子亦曰: "學者莫若先理會得敬。 能敬則自知此矣。" 學者不可不察。 又按戒愼恐懼。 未發之謹獨也。 莫見莫顯。 旣發之謹獨也。 此存心致知軆用交修之法也。 存養在於未率性之前。 省察則旣修道之後也。 雖未率之前。 天命之性。 明自若也。 當戒懼於此時。 乃存養於未發之前者此也。 계신공구(戒愼恐懼)로부터 …… 것이다 《중용장구》 수장의 끝구절에서 "중(中)과 화(和)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잘 생육될 것이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라고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자의 주에 "계신공구로부터 검속하여 지극히 정한 가운데 편벽되고 치우친 것이 없게 되어 그것을 지켜서 잃지 않는 데 이르면 그 중을 지극히 하여 천지가 제자리를 잡을 것이다.[自戒懼而約之, 以至於至靜之中, 無所偏倚而其守不失, 則極其中而天地位矣.]"라고 한 것을 가리킨다. 근독(謹獨)으로부터 ……것이다. 《중용장구》 제1장에 "중(中)과 화(和)를 지극히 하면 천지가 제자리를 편안히 하고, 만물이 잘 생육될 것이다.[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하였는데, 이에 대한 주자의 주에 "근독(謹獨)으로부터 정(精)히 하여 사물을 응하는 곳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어 가는 곳마다 그렇지 않음이 없는 데 이르면, 그 화(和)를 지극히 하여 만물이 생육될 것이다.[自謹獨而精之, 以至於應物之處, 無少差謬而無適不然, 則極其和而萬物育矣.]"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군자의 …… 없다. 《중용장구》 제1장 "이 때문에 군자는 그 보지 않는 바에도 경계하고 삼가며 그 듣지 않는 바에도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것이다.[是故, 君子戒愼乎其所不睹, 恐懼乎其所不聞.]"라는 구절에 대한 주희의 주에, "군자의 마음은 항상 '경'과 '외'를 보존하여 비록 보고 듣지 않을 때라도 또한 감히 소홀히 하지 못하니, 이 때문에 천리의 본연함을 보존하여 잠시도 도를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君子之心, 常存敬畏, 雖不見聞, 亦不敢忽, 所以存天理之本然, 而不使離於須臾之頃也.]"라는 내용이 보인다. 학자는 …… 된다 《이정유서》 권18 〈이천선생어〉 83조에 제자가 미발 때를 동(動)이라고 해야 할지 정(靜)이라고 해야 할지에 대해 묻자, 이천은 "정이라고 하면 된다. 그러나 정 가운데에는 반드시 물이 있어야 하니, 이것이 가장 어려운 곳이다. 배우는 이는 우선 경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 경을 잘하면 절로 이것을 알 것이다.[謂之靜則可, 然靜中須有物始得, 這裏便一作最是難處, 學者莫若且先理會得敬, 能敬則自知此矣.]"라고 하였다. 또 경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에 "주일만 한 것이 없다.[莫若主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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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용잠 九容箴 빠르게 달리면 넘어지니허둥대지 않고 어찌하랴편안히 가면 몸이 펴지니군자의 화평함이다발걸음의 경중에서그 마음을 볼 수 있으니빨리 하려는 자는 달려서혈기를 누르기가 어렵다발은 겨우 문을 나서면서뜻은 천리를 넘어가는데넓고 큰 자는 서행하나니예경이 그리 만든 것이다한 걸음을 막 나아가면뜻이 한 걸음에 있어야 한다힘쓸 지어다 소자야뛰어넘지 말고 조급히 하지 말라【위는 족용중(右足容重)】손은 한 몸에서으뜸으로 일을 한다그것으로 절과 읍을 하니예와 경이 나오는 곳이다잡고 쥐고 치고 박으며받들고 받으며 마시고 먹으니일상의 만사를손이 만들어 낸다한 손가락이라도 망동하면바로 예용을 잃게 되니조처할 때 필히 공경히 하고멈출 때도 필히 공손히 하라힘쓸 지어다 소자야열 개 손이 가리킨다【위는 수용공(右手容恭)】곁으로 보지 말고흘겨보지 말며빨리 돌아보지 말며찡그려 보지 말라수레에서는 눈길이 식(軾)을 넘지 않고앉아서는 모서리를 벗어나지 않아야 하니한 순간이라도 방심하면몰래 태만함이 밝음을 가리니보아도 볼 수 없게 되어소경에 가까울 것이다힘쓸 지어다 소자야예가 아니면 보지 말라【위는 목용단(右目容端)】목소리를 내고 음악46)을 하며음식을 먹고 말을 한다전쟁을 일으키고 우호를 내기도 하며선행을 하고 분쟁을 일으키기도 한다그 시작은 어디인가입으로부터 생긴다팔진미가 풍성해도의가 아니면 맛보지 않으며만종의 녹47)이 쌓여 있어도예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어눌하되 민첩하려 하고48)묵묵하되 깨어 있으려 한다힘쓸 지어다 소자야입 지키기를 병처럼 하라49)【위는 구용지(右口容止)】목소리는 마음에서 나오니마음이 바르면 목소리는 조용하다목소리는 기에게 부려지니기가 사나우면 목소리도 매섭다거울이 감응하는 것처럼저울이 공평한 것처럼감출 수가 없으니참으로 은폐하기 어렵다힘쓸 지어다 소자야목소리를 너무 사납게 하지 말라【위는 성용정(右聲容靜)】맨 위에 있으면서 원기를 체행하고오관이 자리한 곳이니위의의 법도가 되고시선의 준칙이 된다더욱 공경하고 더욱 장중하며오직 엄숙하고 오직 공손히 하라공손하되50) 곧게 세움이이 덕의 모습이다힘쓸 지어다 소자야잠시라도 방자하지 말라【위는 두용직(右頭容直)】기는 한 몸에서기르기가 어려우니온화하게 하면 쉽게 방종하고편안하게 하면 너무 느슨해진다무엇이 정숙함만 하겠는가유순하고 온화함으로 이루며보옥을 받들고 대야를 받들 듯이살얼음을 밟고 강에 임한 듯이 하라51)잠시라도 방심하면방탕한 기운이 바로 채워진다힘쓸 지어다 소자야두려워하고 경계하라【위는 기용숙(右氣容肅)】한결같이 곧은 내면이라야경이 있을 곳이고의를 바르게 하여야외면을 방정하게 할 수 있다52)방정함에는 요체가 있으니서 있는 모양이 중요하다치우치거나 기울이지 말고비뚤어지거나 구부리지 말라바르고 크며 빛나고 밝아서엄연하게 덕스러워야 한다안이 바르고 겉이 순수하며겉과 속이 단정하고 엄숙하면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지니53)성현과 똑같은 경지이다힘쓸 지어다 소자야공경히 훈계를 명심하라【위는 입용덕(右立容德)】그 기운을 온화하게 하고그 안색을 늠름하게 하여온화하되 위엄 있고엄숙하되 관대히 하라공경하지 않음이 없게 하여내면을 채우면 얼굴에 드러나니54)힘쓸 지어다 소자야장중하고 공경하도록 노력하라【위는 색용장(右色容莊)】 疾趍而蹶。 非狂而何。 安行而舒。 君子之和。 足之輕重。 可觀其心。 欲速者趍。 血氣難禁。 足纔出門。 意越千里。 涵弘者徐。 禮敬所至。 一步方進。 意在一步。 勖哉小子。 毋躐毋躁。【右足容重】手於一身。 用功之宗。 拜揖以之。 禮敬攸從。 操持擊拍。 奉受飮食。 日用萬事。 惟手之出。 一指妄動。 便失禮容。 措必以敬。 靜必以恭。 勖哉小子。 十手所指。【右手容恭】毋傾側視。 毋流邪睇。 毋疾顧眄。 毋嚬蹙眦。 驂不出式。 坐不外方。 一瞬或放。 陰怠蔽明。 視不見之。 殆乎暗盲。 勖哉小子。 非禮勿視。【右目容端】聲音律呂。 飮食言語。 興戎出好。 作善起爭。 其始維何。 由口而生。 八珍雖昌。 非義不嘗。 萬鍾雖積。 非禮不食。 欲訥而敏。 欲默而惺。 勖哉小子。 守口如甁。【右口容止】聲出於心。 心正聲靜。 聲使於氣。 氣厲聲猛。 如鑑之應。 如衡斯平。 不可揜矣。 誠難隱閉。 勖哉小子。 聲莫淫厲。【右聲容靜】首居軆元。 五官所宅。 威儀之法。 瞻視之則。 愈敬愈莊。 惟肅惟恭。 翼翼竦直。 斯德之容。 勖哉小子。 毋或暫肆。【右頭容直】氣於一身。 養之爲難。 和之易流。 舒之太寬。 孰若正肅。 濟以巽和。 奉玉承盤。 履淵臨河。 造次或放。 蕩氣卽塞。 勖哉小子。 戰戰戒欶。【右氣容肅】一以直內。 敬之所在。 惟義之正。 可以方外。 方之有要。 立容爲大。 不偏不倚。 毋邪毋曲。 正大光明。 儼然惟德。 正內粹外。 表裏端肅。 心廣軆胖。 聖賢同域。 勖哉小子。 敬佩訓戒。【右立容德】溫溫其氣。 凜凜其色。 和而有嚴。 肅而寬奕。 毋不敬矣。 充內粹面。 勖哉小子。 莊敬是勉。【右色容莊】 음악 원문의 '율려(律呂)'로, 원래 성음(聲音)의 청탁(淸濁)과 고하(高下)를 바르게 정할 목적으로 죽통(竹筒)의 길이를 각각 길고 짧게 해서 만든 12개의 악기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음악을 뜻한다. 만종의 녹 원문의 '만종(萬鍾)'으로, 종(鍾)은 곡식을 담는 도량형기인데 여기서는 많은 녹봉을 말한다. 어눌하되 민첩하려 하고 《논어》 〈이인(里仁)〉에서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고 실천은 민첩하려 한다.[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 하였다. 입을……하라 주희(朱熹)의 〈경재잠(敬齋箴)〉에 "입을 지키기를 병처럼 하고, 뜻을 막기를 성처럼 한다.[守口如甁, 防意如城.]" 하였다. 공손하되 원문의 '익익(翼翼)'은 공손하고 신중한 모양이다. 《시경》 〈대명(大明)〉에 "오직 이 문왕이 조심하고 공손하여 상제를 밝게 섬기시어 많은 복을 오게 하셨도다.[維此文王, 小心翼翼, 昭事上帝, 聿懷多福.]" 하였다. 보옥을……하라 매사를 신중히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연임하(履淵臨河)'는 《시경》 〈소민(小旻)〉에 "전전긍긍하여 깊은 못에 임하듯 얇은 얼음을 밟듯 한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라고 한 것을 원용한 것이다. 한결같이……있다 《주역》 〈곤괘(坤卦) 문언전(文言傳)〉에 "군자가 경하여 안을 곧게 하고 의롭게 하여 밖을 방정하게 하여, 경과 의가 확립되면 덕이 외롭지 않다.[君子敬以直內, 義以方外, 敬義立而德不孤.]"라고 한 데서 원용한 것이다. 마음이……펴지니 마음속이 널찍하게 관대해지고 신체가 여유 있게 펴진다는 뜻으로 《대학장구(大學章句)》 전6장에 "부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은 몸을 윤택하게 해서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지게 한다.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윤택하게 얼굴에 드러나니 원문의 '수면(粹面)'은 '수면(睟面)'과 같은 말로, 내면에 축적된 것들이 윤택하게 얼굴에 드러나고 등에 가득 넘치는 것을 뜻하는 '수면앙배(睟面盎背)'의 준말이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군자의 본성은 인의예지가 마음속에 뿌리 하여 그 얼굴빛에 나타남이 맑고 온화하게 얼굴에 나타나고 등에 가득 넘친다.[君子所性, 仁義禮智根於心, 其生色也, 睟然見於面,盎於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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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량문 上梁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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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구름이 매우 기이하였는데 누군가가 전한 시가 신운40)이 있으므로 마침내 흉내 내어41) 짓다 【평한다. "구름이 변하여 산이 되고 산이 변하여 눈이 되며, 눈이 변하여 아름다운 구슬이 되고 아름다운 구슬이 변하여 저물녘 바람이 되는 것이 또한 기이하다."】 夏雲奇甚 有人傳有神韻 遂效嚬而成【評曰雲變爲山。 山變爲雪。 雪變爲瓊璧。 瓊璧變爲晩風。 亦奇也。】 인간 세상은 무더운 여름 한창인데하늘 위엔 구름이 봉우리가 되었네42)만 개 구슬 푸른 골짜기를 감추고43)천 개 구슬 푸른 소나무를 숨겼네암벽 가엔 절이 물론 있을 것인데먼 곳에 어찌 종소리 들리리오잠깐 동안 환상에서 돌아왔더니너른 허공 저물녘 바람이 씻어 놓았네 人間大夏中天上雪成峯萬壁藏靑壑千瓊沒翠松巖邊應有寺地遠豈聞鍾俄頃歸虛幻長空掃晩風 신운(神韻) 예술 작품 속에 표현된 작가의 정신과 운치를 말한다. 흉내 내어 원문은 '效嚬'인데, 자신의 재주는 헤아리지 않고 억지로 남을 흉내 내려고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여기에서는 자기가 지은 시에 대한 겸사로 쓰였다. 춘추 시대 월(越)나라의 미인 서시(西施)가 심장병을 앓으면서 눈썹을 찡그리자[效嚬], 찡그린 모습도 매우 아름답게 보였으므로, 이웃의 추녀가 그의 찡그린 모습을 흉내 냈더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피해 버리고 보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莊子 天運》 雪 저본에는 '雪'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근거하여 '雲'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壁 저본에는 '壁'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에 근거하여 '璧'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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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형 최운로50)에 대한 만사 挽崔從兄雲路 이종사촌 간의 형과 아우는서로 무척 걱정하는 마음51) 돈독하다네자혜로운 심성을 하늘로부터 품부 받아서온화한 성품을 저절로 이루었네앞으로 장수52)를 누리리라 기대하였으니어찌 중성53)을 닫을 줄을 생각이나 했으리오남은 경사로 지란과 옥수를 남겼으니54)가업 잘 이어서 훗날 영예롭게 되겠지55) 兩姨兄及弟相篤孔懷情慈惠由天稟淳和任自成將期享大耋豈意掩重城餘慶留蘭玉克家擬後榮 최운로(崔雲路) 누구인지 미상(未詳)이다. 무척 걱정하는 마음 공회(孔懷)는 형제간에 서로를 걱정하는 마음을 가리킨다. 《시경》 「소아(小雅) 상체(常棣)」에 "사람이 죽어 초상을 치르는 두려움에 형제간에 무척 걱정하며, 언덕과 습지에 쌓인 시신을 형제가 찾아 나서네.[死喪之威, 兄弟孔懷. 原隰裒矣, 兄弟求矣.]"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장수 원문은 '大耋'인데, 해가 기울듯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노년기로, 흔히 80세를 이른다. 《주역》 「이괘(離卦) 구삼(九三)」에 "서산에 해가 기우는 형상이니, 질장구 치고 노래 부르지 않는다면 이는 노년을 한탄함이니, 흉하도다.[日昃之離, 不鼓缶而歌, 則大耋之嗟, 凶.]"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중성(重城) 무덤을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남은……남겼으니 원문의 '餘慶'은 선(善)을 쌓은 음덕으로 훌륭한 자손이 많을 것임을 뜻하는 말이다. 《주역(周易)》 「곤괘(坤卦) 문언(文言)」에 "적선한 집안에는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원문의 '난옥(蘭玉)'은 '지란옥수(芝蘭玉樹)'의 준말로, 훌륭한 자손을 뜻한다. 진(晉)나라 때 큰 문벌을 이루었던 사안(謝安)이 자질(子姪)들에게 "자제들이 또한 인사와 무슨 상관이 있기에 어찌하여 사람들은 자기 자제가 출중하기를 바라는가?[子弟亦何豫人事, 而正欲使其佳?]"하고 묻자, 조카 사현(謝玄)이 "비유하자면 마치 지란(芝蘭)과 옥수(玉樹)가 자기 집 뜰에 자라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庭階耳.]"라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晉書 卷79 謝安列傳》 가업……되겠지 극가자(克家子)라고도 하는데, 조상의 사업과 집안일을 잘 계승할 수 있는 훌륭한 자제를 지칭하는바, 《주역》 「몽괘(蒙卦) 구이(九二)」에 "구이는 몽매함을 포용해주면 길하고 부인의 말을 받아들이면 길할 것이니, 자식이 집안일을 잘하도다.[九二, 包蒙吉, 納婦吉, 子克家.]"라고 한 데에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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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난 물을 보며 觀漲 바다의 신 용궁 골짜기를 마구 뒤집으니천 길의 나는 듯한 파도 반공(半空)에 솟구치네위공(衛公)이 석 자의 물방울 떨어뜨리기를 기다릴 것 없고152)숭백(崇伯)이 9년 동안 하천 다스린 일 앉아서 바라보네153)고래와 곤어(鯤魚) 길을 얻어 평평한 육지로 치달리고난새와 봉황 둥지 기울어져 가시나무 덤불에 의지하네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모래와 벌레 안타까워할 것은 없으나원숭이와 학이 큰 파도 속에 잠겨 있는 것이 또한 가련하네154)두 번째예전에 듣기로 물새는 관수(官樹)155)에 둥지를 튼다고 하였는데지금 기러기 육지로 날아든 것에서 증험되었네한밤중에 독과 단지 소리 구멍 틈에서 울리고새벽되니 자라들 문과 담장으로 머리 내미네오초(吳楚)가 동남으로 갈라진 것에 문득 놀라고156)봉래산(蓬萊山) 궁궐에 일월이 장구함을 도리어 의아해 하네157)이로부터 세 섬158)을 따라 가고자 하니내년에는 기근(饑饉)에 시달리는 일 근심하지 않을 것이네 海神翻倒洞龍宮千丈飛波駕半空不待衛公三滴點坐看崇伯九川通鯨鯤得路馳平陸鸞鳳傾巢寄棘叢漂墊沙虫非足惜也憐猿鶴大濤中其二昔聞水鳥巢官樹今驗飛鴻陸地翔半夜甕甖鳴隙竅平朝鰲鱉闖門墻頓驚吳楚東南坼却訝蓬萊日月長從此欲從三島去不愁來歲困飢荒 위공(衛公)이……없고 '위공(衛公)'은 당나라 위국공(衛國公) 이정(李靖)을 말한다. 이정이 사냥을 나갔다가 밤이 깊어 한 집에 유숙하게 되었다. 그 집의 주인 노파가 "이곳은 용궁이다. 하늘에서 비를 내리라는 명령이 내렸는데 두 아들이 집에 없으니 대신 명을 수행해 달라."라고 부탁하면서 물병과 말을 주었다. 그리고 "말이 울면 물병의 물 한 방울을 말갈기에 떨어뜨려라. 물 한 방울은 지상에서 수심 석 자가 되는 양이다.[馬鳴 取瓶水一滴滴馬鬃 則平地水深三尺]"라 하였다는 고사가 전한다. 《龍文鞭影箋注》 《太平廣記 卷418 龍一》 숭백(崇伯)이……바라보네 '숭백(崇伯)'은 우(禹)의 아버지 곤(鯀)을 말한다. 요(堯) 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인재를 구했을 때, 뭇 신하들이 곤을 추천하였으므로 요 임금이 마지못해 그에게 일을 맡겼는데, 9년 동안이나 홍수를 다스리지 못한 채 결국은 순(舜)에 의해 우산(羽山)에서 복주(伏誅)되었다. 《史記 卷2 夏本紀 註》 물에……가련하네 홍수로 인해 여러 동물들이 물에 빠져 있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모래와 벌레'와 '원숭이와 학'은 주 목왕(周穆王)이 남정(南征)할 때 장교는 하루아침에 원숭이와 학으로 변하고 병졸들은 모래와 벌레[沙蟲]로 변했다는 전설에서 취해 온 말이다. 《抱朴子 內篇 釋滯》 관수(官樹) 넓은 길가에 심은 나무를 말한다. 오초(吳楚)가……놀라고 '오초(吳楚)'는 양자강(揚子江) 동쪽, 즉 강소성(江蘇省) 지방 및 양자강 하류인 호남(湖南)‧호북성(湖北省) 지방을 가리킨다. 두보(杜甫)는 그의 시 〈등악양루(登岳陽樓)〉에서 "옛날에 동정호를 말로만 듣다가 오늘에야 악양루에 올랐네. 오초가 동남으로 갈라졌고, 하늘과 땅은 밤낮으로 떠 있구나.[昔聞洞庭水 今上岳陽樓 吳楚東南坼 乾坤日夜浮]"라 하여, 드넓은 동정호의 경관을 묘사한 바 있다. 김만영은 이 시의 구절을 빌려 홍수에 의해 사방이 물로 가득 찬 모습을 표현하였다. 봉래산(蓬萊山)……하네 '봉래산(蓬萊山)'은 중국의 동쪽 발해(渤海) 가운데 있다고 하는 삼신산(三神山) 중 하나다. 백거이(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에, "소양전(昭陽殿) 안에 은혜와 사랑 끊기고 봉래산 궁궐에는 일월이 길어라.[昭陽殿裏恩愛絶 蓬萊宮中日月長]"라고 한 구절을 차용하였다. 홍수로 인해 천지에 물이 가득 찬 상황인데 봉래산 궁궐의 해와 달이 길다고 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세 섬 중국의 동쪽 발해(渤海) 가운데 있다고 하는 삼신산(三神山)으로, 봉래(蓬萊)‧방장(方丈)‧영주(瀛洲)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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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재(三學齋)에서 제생에게 보이다 三學齋示諸生 사람으로서 배우지 않으면 우마에 옷을 입힌 것과 다름이 없으니162)이러한 까닭에 지금 새로운 재(齋)를 지은 것이라네오교(五敎)의 규범은 백록동 서원(白鹿洞書院)을 따랐고163)육경(六經)의 공업(工業)을 청금(靑衿)164)에게 바라네도(道)는 예악(禮樂) 삼천 자165)에 있고인(仁)는 내 몸 마음 하나에 달려 있네그대들이 부지런히 힘쓰기를 다시 면려하니성현의 요법(要法)으로는 경(敬)이 가장 중요하다네두 번째재사(齋舍) 새로 만들어져 깨끗하고도 맑으니제생(諸生)의 강학 모임 밤낮으로 이어지네회화나무 뜰166)에 가지런히 앉아 장보관(章甫冠)을 쓰고167)비자나무 안석에서 차근차근 예(禮)와 인(仁)을 강설하네168)좋은 옥은 모름지기 그 위에 묻은 점을 제거해야 하고보배로운 거문고는 상자 속의 먼지를 거듭 닦아내야 하네제생은 갈고 닦은 힘169)을 신중히 사용하라진귀한 명주는 단지 사람에게 있을 따름이니 人而不學馬牛襟所以新齋創自今五敎規模遵白鹿六經工業望靑衿道存禮樂三千字仁在吾身一箇心更勖諸君勤用力聖賢要法敬爲箴其二齋舍新成淨且淳諸生講會屬昏晨槐庭秩秩冠章甫榧几循循說禮仁良璧須除瑜上點寶琴重拭匣中塵諸生愼用瑳磨力無價明珠只在人 우마에……없으니 원문은 '마우금(馬牛襟)'이다. 학식이 없거나 예의를 모르는 사람을 조롱하여 이르는 말이다. 한유(韓愈)의 〈부독서성남(符讀書城南)〉에, "사람이 못 배워서 고금을 통하지 못하면, 마소에 사람 옷 입혀 놓은 것과 같다.[人不通古今 馬牛而襟裾]"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오교(五敎)의……따랐고 주희(朱熹)가 지남강군(知南康軍)으로 재직하던 시절 여산(廬山)의 허물어진 백록동 서원(白鹿洞書院)을 중건하고 오교지목(五敎之目), 위학지서(爲學之序), 수신지요(修身之要), 처사지요(處事之要), 접물지요(接物之要) 등 다섯 개 항목의 규약을 서원의 벽에 게시하였다. 그 중 '오교지목'은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을 의미한다. 청금(靑衿) 유생(儒生)을 가리키는 말이다. 《시경》 〈정풍(鄭風) 자금(子衿)〉에, "푸르고 푸른 그대의 옷깃이여[靑靑子衿]"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예악(禮樂) 삼천 자 예악(禮樂)의 내용을 담은 삼천 글자의 말을 말한다. 송(宋)나라의 하송(夏竦)의 시 〈응정시(應廷試)〉에, "예악을 자유로이 끌어다 삼천 자를 내리쓰고, 대궐에서 독대할 제 해가 아직 한창이로세.[縱橫禮樂三千字 獨對丹墀日未斜]"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회화나무 뜰 '회화나무'는 학인(學人)의 성취에 대한 기원을 의미한다. 북송(北宋) 초기의 명신 왕호(王祜)가 뜰에 세 그루의 회화나무를 심으면서 자손의 성취를 기원하였는데, 뒤에 그의 아들 왕단(王旦)이 명재상이 되었다는 전고에서 유래하였다. 《古文眞寶後集 卷8 三魁堂銘》 장보관(章甫冠)을 쓰고 '장보관(章甫冠)'은 은(殷)나라 때 쓰던 관으로, 흔히 유자들이 쓰는 관을 지칭한다. 《예기》 〈유행(儒行)〉에, "저는 어려서 노나라에 살 때에는 봉액의 옷을 입었고, 장성하여 송나라에 살 때에는 장보의 관(冠)을 썼습니다.[丘少居魯 衣縫掖之衣 長居宋 冠章甫之冠]"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비자나무……강설하네 스승이 제자에게 가르침을 내리는 모습을 형용한 것이다. '차근차근'의 원문은 '순순(循循)'으로, 《논어》 〈자한(子罕)〉에 안연(顔淵)이 스승인 공자의 도에 대해서 감탄하며 술회한 뒤에, "선생님께서는 차근차근 사람을 잘 이끌어 주시면서, 학문으로 나의 지식을 넓혀 주시고 예법으로써 나의 행동을 단속하게 해 주셨다.[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라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갈고 닦은 힘 원문은 '차마력(瑳磨力)'이다. '차마'는 옥석(玉石)을 다듬기 위해 쪼고 갈고 한다는 뜻으로, 붕우 간에 서로 격려하면서 덕을 닦고 학문을 연마하는 것을 말한다. 《시경(詩經)》 〈기욱(淇奧)〉에, "절단해 놓은 듯하고 다시 간 듯하며, 쪼아 놓은 듯하고 다시 간 듯하다.[如切如磋 如琢如磨]"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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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중의 심회 病懷 병중이라 찬바람 두려워 문을 열지 않으니옷깃 풀고 머리 헝클어진 채로 들풀 위에 누워 있네처마 옆에서 우는 새 절로 봄기운 품었고고요함 속의 마음 하나 마치 식은 재227)와 같네본디 한가한 사람은 사귐이 물과 같으니228)창밖에 이미 이끼 자라남을 분명히 알겠네229)뜨락의 매화 연전(年前)의 우호 저버리지 않았으니바람이 이끈 은은한 향기 침상 위로 올라오네 病㥘風寒門不開披衣亂髮臥蒿萊簷邊啼鳥自春意靜裏一心如死灰固是閒人交若水明知窓外已生苔庭梅不負年前好風引微香枕上來 식은 재 원문은 '사회(死灰)'다. 마음이 외물(外物)에 전혀 동요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장자》 〈제물론(齊物論)〉에, "형체를 진실로 말라 죽은 나무처럼 할 수 있으며, 마음을 진실로 불 꺼진 재처럼 할 수 있겠는가?[形固可使如槁木 而心固可使如死灰乎]"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사귐이 물과 같으니 물처럼 담박한 사귐을 말한다. 《장자》 〈산목(山木)〉에, "군자의 사귐은 담담하기가 물과 같고, 소인의 사귐은 달기가 단술과 같다.[君子之交淡若水 小人之交甘若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창밖에……알겠네 병중에 벗을 그리워하는 심사를 읊은 것으로 보인다. 두보의 〈추술(秋述)〉에, "가을에 내가 병이 들어 장안의 여관에 머물고 있었는데 비가 많이 내려 물고기가 생겨나고 푸른 이끼가 자리에까지 미쳤다. 평상시에 오가던 객들이, 예전에는 비가 내리는 날도 찾아왔는데 요즘은 비가 내리면 찾아오지 않는다.[秋杜子臥病長安旅次 多雨生魚 靑苔及榻 常時車馬之客 舊雨來 今雨不來]"라 한 대목이 보인다. 《杜詩詳注 卷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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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들부채를 읊다 詠蒲扇 당나라 황제의 대궐 안 바람은 필요치 않으니206)원규(元規)의 더러운 티끌을 스스로 뒤집어쓰지 않네207)여름 무더위가 어찌 두려우랴208)영숙(永叔)의 아름다운 작품 부질없이 공교롭네209)안회(顔回)는 팔베개 하며 살아가니 그대가 쓸모 있으며210)광문(廣文)은 자리가 없으니 네가 공을 이룰 것이네211)요(堯) 임금 뜰에서 혹 평생의 뜻 이룬다면아첨하는 이 가리키고 어진 이 부르는 일212) 너와 내가 같으리 不必唐宗閣裏風元規自未汚塵蒙趙盾威虐寧知畏永叔佳篇謾見工回也曲肱君有用廣文無席爾成功堯庭倘遂平生志指佞招賢汝我同 당나라……않으니 당나라 황실의 귀한 부채 바람은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다. 당나라 때는 황제가 대전(大殿)에 오를 적에 양쪽에서 봉황 깃털 부채로 보이지 않게 가렸다가 천자가 좌정(坐定)한 뒤에 부채를 다시 거두는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唐會要 朔望朝參》 또 황제 양쪽에서 156본(本)의 우선(羽扇)을 들고 있었다고 하는데, 두보(杜甫)의 시에 "기린을 새긴 향로에선 향연(香煙)이 위로 올라가고, 공작의 우선(羽扇) 열렸다가 부채 그림자 돌아가네.[麒麟不動爐煙上 孔雀徐開扇影還]"라 읊은 일이 있다. 《杜少陵詩集 卷6 至日遣興》 원규(元規)의……않네 '원규(元規)'는 동진(東晉) 때의 권신(權臣) 유량(庾亮)의 자다. 유량은 국구(國舅)의 신분으로 세 조정에서 잇달아 벼슬하여 권세가 막중하였으므로 사람들이 대부분 그를 붙좇았다. 그러나 왕도(王導)는 이를 불만스럽게 여겨, 유량이 있는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 티끌이 일자 문득 부채를 들어 서풍을 막으면서 "원규의 티끌이 사람을 더럽힌다.[元規塵汚人]"라 하였다. 《晉書 卷65 王導列傳》 여름 무더위가 어찌 두려우랴 사람을 두렵게 하는 여름날의 태양이라는 말이다. 춘추 시대 노(潞)나라의 대부 풍서(豊舒)가 진(晉)나라 가계(賈季)에게 "진(晉)나라의 대부 조순(趙盾)과 조최(趙衰) 중에 누가 더 어진가?"라고 묻자, 가계가 "조최는 겨울날의 태양이요, 조순은 여름날의 태양이다.[趙衰冬日之日也 趙盾夏日之日也]"라고 대답하였는데, 그 주(註)에 "겨울 햇빛은 사랑할 만하고, 여름 햇빛은 사람을 두렵게 한다.[冬日可愛 夏日可畏]"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文公 7年》 영숙(永叔)의……공교롭네 '영숙(永叔)'은 송나라의 문인 구양수(歐陽脩, 1007~1072)를 가리킨다. 그가 지은 〈증승창부(憎蒼蠅賦)〉에, "쓸데없이 하인과 아이종에게 큰 부채를 부쳐 바람을 내기도 하지만 모두 고개를 떨구고 팔이 빠지며 매양 곧장 잠들어 풀썩 쓰러진다오.[徒使蒼頭丫髻 巨扇揮颺 咸頭垂而腕脫 每立寐而顚僵]"라 한 대목이 보인다. 안회(顔回)는……있으며 '안회(顔回)'는 공자의 제자로 가난하였음에도 도(道)를 즐기며 살아간 인물이다. '팔베개 하며 살아간다'는 말은 《논어》 〈술이(述而)〉에,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개를 삼더라도 낙이 또한 그 속에 들어 있다.[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라 한 데서 취해 온 표현이다. 안회와 같이 안분자족하는 삶에 있어 부채가 쓸모 있음을 말한 것이다. 광문(廣文)은……것이네 '광문(廣文)'은 당 현종(唐玄宗) 때 광문관 박사(廣文館博士)를 지낸 정건(鄭虔)을 가리킨다. 《新唐書 卷202 鄭虔列傳》 그는 몹시 가난하였으므로, 두보(杜甫)가 일찍이 그에게 〈희간정광문(戱簡鄭廣文)〉이라는 시를 지어주면서 "재주 명성은 삼십 년을 날렸으되, 빈객은 추워도 앉을 털방석이 없네.[才名三十年 坐客寒無氈]"라 읊은 바 있다. 부들부채가 정건에게 주어진다면 그것이 방석의 역할이라도 할 수 있을 것임을 말한 것이다. 아첨하는……일 요(堯) 임금 뜰에는 '지영초(指侫草)'라는 이름의 풀이 자랐는데, 아첨하는 사람이 들어오면 반드시 그를 가리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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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략(三略)》219)을 읽고 讀三略書 남자다운 마음과 여자 같은 용모220)왕교(王喬)221)와 같은 자품으로 기(夔)와 용(龍)222)처럼 되기를 허락하였네처음 천하를 평정할 적에는 황석공(黃石公)에게 배웠고223)만년에 공명(功名)을 이루고서는 적송자(赤松子)를 벗하였네224)한(漢)과 초(楚)의 흥망(興亡) 세치 혀에서 판가름 났고225)진(秦)과 한(韓)의 묵은 원한 긴 병기(兵器) 하나로 보여 주었네226)썰렁한 서재【'한(寒)'은 어떤 본에는 '한(閑)'으로 되어 있다.】에서 당시의 비결(秘訣)을 다 보고나니나도 모르게 천지의 장대한 기운이 따라 일어나네 男子心胷女子容王喬身世許夔龍初平天下師黃石晩遂功名友赤松漢楚興亡三寸舌秦韓讎怨一長鋒寒【寒一作閑】齋閱盡當年訣不覺乾坤壯氣從 삼략(三略) 한(漢)나라의 장량(張良)이 황석공(黃石公)에게서 받았다고 하는 병서(兵書)로, 상략(上略), 중략(中略), 하략(下略)의 세 권으로 되어 있다. 남자다운……용모 사마천(司馬遷)이 장량(張良)을 평한 말에, "나는 그 사람이 체격이 크고 기이하게 생긴 줄 알았는데, 그의 화상(畫像)을 보니, 마치 아름다운 여인(女人)과 같았다."라 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왕교(王喬) 왕자교(王子喬)를 가리킨다. 유향(劉向)의 《열선전(列仙傳)》에 의하면, 왕자교는 주(周)나라 영왕(靈王)의 태자 진(晉)으로, 피리 불기를 좋아하였는데 피리를 불면 봉황새 우는 소리가 났다. 이수(伊水)와 낙수(洛水) 사이에서 노닐다가 도사(道士) 부구공(浮丘公)을 만나 숭산(嵩山)에서 신선술을 배웠고, 30여 년 뒤에 흰 학을 타고 구씨산(緱氏山) 꼭대기에 내려와 신선이 되었다고 한다. 장량 역시 공업(功業)을 이른 뒤에 적송자(赤松子)를 따라 노닐고자 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기(夔)와 용(龍) 순(舜) 임금의 어진 두 신하를 말한다. 기(夔)는 음악을 담당하였고, 용(龍)은 간언(諫言)을 담당하였다.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신하가 된 장량을 이들에 빗댄 것이다. 처음……배웠고 장량이 하비(下邳)의 다리에서 황석공(黃石公)이라는 노인을 만났는데, 노인이 다리 밑으로 떨어진 신을 주워달라고 하였다. 장량이 신을 주워 공손히 신겨주자, 노인은 그에게 강태공의 병법서를 주었다. 장량은 이를 익혀 고조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였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만년에……벗하였네 '적송자(赤松子)'는 전설상의 신선 이름이다. 장량은 천하가 통일된 뒤 자신의 몸을 보전하기 위하여 고조(高祖)에게 "인간사를 버리고 적송자를 좇아 놀기를 원합니다.[願棄人間事 欲從赤松子遊]"라 하였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한(漢)과……났고 장량이 한 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의 모신(謀臣)으로 활약하며 한(漢)나라가 초(楚)나라에게 승리를 거두는 데 많은 공을 세웠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진(秦)과……주었네 장량은 선조가 한(韓)나라 사람이었는데, 진(秦)나라에 의해 한나라가 멸망당하자 그 원수를 갚기 위해 창해역사(滄海力士)로 하여금 철퇴를 들고 박랑사(博浪沙)에서 진시황을 저격하게 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철퇴가 빗나가 진 시황이 탄 마차를 맞히지 못하고 다음 수레를 치고 말았다. 《史記 卷55 留侯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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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11 卷之十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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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설 經義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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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설 中說 천지는 지극히 크고[至大] 만물은 지극히 많으며[至衆] 일월(日月)은 지극히 밝고[至明] 산천은 지극히 넓으며[至廣] 인심은 지극히 공평하고[至公] 만사는 지극히 번잡[至煩]하다. 만물은 지극히 많으나 천지가 능히 수용할 수 있고, 산천이 지극히 넓지만 일월이 능히 비출 수 있고, 만사는 지극히 번잡하나 인심이 능히 총괄할 수 있으니 천지의 도(道)는 하나로 정해지기 때문에 그곳에 만물을 수용할 수 있고 일월의 밝음은 하나로 정해지기 때문에 산천을 비출 수 있으며 사람 마음의 신령함은 하나로 정해지기 때문에 만사를 총괄할 수 있다.여기에서 천지(天地)·일월(日月)·인심(人心)은 형이하자(形而下者)이고, 지대(至大)·지명(至明)·지공(至公)하여 하나로 정해진 것은 형이상자(形而上者)라는 것을 알 수 있다.4) 형이하자(形而下者)는 높다, 낮다, 크다, 작다 등 부르는 명칭이 비록 다른데 형이상자는 본디 피차의 구별이 없는 것은 어째서인가? 그 하나일 뿐이니 하나는 무엇인가? 중(中)일 뿐이다. 이 때문에 천지가 중에 맞지 않으면 만물을 수용할 수 없고 일월이 중에 맞지 않으면 산천을 비출 수 없고 인심이 중에 맞지 않으면 만사를 총괄할 수 없다. 천지의 큼과 일월의 밝음으로도 만약 중에 맞지 않으면 만물을 수용할 수 없고 산천을 비출 수 없는데 하물며 인심이 중에 맞지 않음이겠는가?천지가 상하에서 동정(動靜)하고 일월이 그 사이에서 운행하여 음양(陰陽)의 기(氣)·오행(五行)의 정(精)이 무극(無極)의 진(眞)을 합하여 양의(兩儀)의 사이에서 우리 인간에게 내려준 것이 이른바 '중(中)의 리(理)'이다. 먼저 우리 마음에 품부하여 천하의 사람들이 공적으로 전하여 얻은 것이지 나만 홀로 사사로이 소유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천지는 나의 큰 부모요 일월은 우리 부모의 이목(耳目)이다. 천하의 사람들은 곧 우리 부모의 자식이요 나의 형제이다. 이에 부모가 나에게 명하였다. 대종형(大宗兄)은 나의 군주요 계별소종(繼別小宗) 이하는 공(公)이 되고 경(卿)이 되고 대부(大夫)가 되고 사(士)가 되고, 또 그 아래는 서민(庶民)이 된다. 나는 부모의 자식으로 군주인 우리 대종형을 섬기니 충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 형제의 공·경·대부·사를 섬기니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 형제의 서민(庶民)에 임하니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때문에 군주에게 충성하지 않고 어른에게 공경하지 않고 서민을 아끼지 않는 자는 우리 부모의 자식에게 효도하지 않는 것이다.혹은 간사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지 않고 죽임이 소인(小人) 상(象)5)같이 동기(同氣)에 미치는 자는 추방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원악(元惡)을 품고 종자(宗子)를 모함하여 위태롭게 하는 관채(管蔡)6)같은 자는 죽이는 것이 좋다. 완악한 아버지 고수(瞽瞍)를 기뻐하게 한[底豫]7) 아름다운 순(舜) 같은 자를 천거하고, 부모에게서 받은 몸을 온전히 하여 되돌려 준8) 증삼(曾參) 같은 자에게 복을 주었으니 이와 같은 것은 어째서이겠는가? 나 또한 천지 중에서 받아서 천지의 아들을 기다리는 공적 존재일 뿐이다. 어찌 말세가 돌아와 천하의 마음이 스스로 사적인 데에 빠지게 되었는가? 지극히 바른 가운데에서 오로지 한편에 치우쳐 천지가 우리 부모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천하의 사람이 군신 상하가 되고 우리 형제가 된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애증(愛憎)은 한 몸의 사사로움에서 말미암으니 중도(中道)가 세워지지 않으면 호오(好惡)가 천하의 공평함을 따르지 못하게 되어 이욕(利欲)이 멋대로 흘러 부모의 명을 받고 군주가 된 우리 종형이 위에서 고립되고 공경(公卿)·대부(大夫)·사(士)와 서인(庶人)이 된 형제 무리가 분연히 명분을 나누고 서로 대립하여 한집안에서 이익을 다투면 저 위에 임하고 아래에서 질정하는 우리 천지의 대부모가 우리를 효자라고 말하겠는가? 불초(不肖)한 자식이라고 하겠는가? 천지신명[天地神祗]이 밝고 울창하게 줄지어 펼쳐져서 지대(至大)·지명(至明)·지공(至公)·지중(至中)하니 내가 어찌 감히 우리 둘 중에서 우리 형제들과 우리 종자대군(宗子大君) 앞에서 둘을 의심하여 우리 천지 대부모에게 불효했다는 꾸지람을 얻겠는가? 내가 소유한 지중(至中)은 처음 하늘에서 부여받은 것으로 우리 형제의 선각자와 함께 지키기를 원하는데 우리 형제가 중을 잘 지키지 못하고 한쪽에 치우친 것을 경발(警發)하여 이에 중설(中說)을 쓴다. 天地至大。 萬物至衆。 日月至明。 山川至廣。 人心至公。 萬事至煩。 萬物至衆。 天地能容之。 山川至廣。 日月能照之。 萬事至煩。 人心能總之。 盖天地之道正于一。 故萬物容焉。 日月之明定于一。 故山川照焉。 人心之靈定于一。 故萬事總焉。 是知天地日月人心。 形而下者也。 至大至明至公而定于一者。 形而上者也。 其形而下者。 高下大小。 號名雖殊。 其形而上者。 固無彼此之別何也? 以其一而已矣。 一者何也? 中而已矣。 是故天地不中。 萬物不能容。 日月不中。 山川不能照。 人心不中。 萬事不能總。 以天地之大日月之明。 若或不中。 萬物不能容。 山川不能照。 况乎人心之不中耶? 天地動靜於上下。 日月運行於其間。 陰陽之氣五行之精。 合無極之眞。 降生吾人於兩儀之間。 所謂中之理。 先稟於吾心。 天下之人。 公傳得之。 非有我之獨私也。 然則天地卽吾大父母也。 日月卽吾父母之耳目也。 天下之人。 卽吾父母之子而於吾兄弟也。 於是父母命我。 大宗兄爲吾之君。 繼別小宗以下。 爲公爲卿爲大夫爲士。 又其下爲庶民。 吾以父母之子。 事吾大宗兄之爲君。 可不忠乎? 事吾兄弟之爲公卿大夫士者。 可不敬乎? 臨吾兄弟之爲庶民者。 可不愛乎? 是故不忠於君。 不敬於長。 不愛庶民者。 是不孝于吾父母之子也。 或有奸傲不悌。 戕及同氣若小子象者。 放之可也。 包藏元惡。 謀危宗子若管蔡者。 誅之可也。 烝烝底豫若大舜者薦之。 軆受歸全若曾參者福之。 若此者何也? 我亦受天地之中。 待天地之子。 公而已矣。 夫何叔季歸來。 天下之心。 陷溺於自私? 至正之中。 專倚於一偏。 不知天地爲吾父母。 故不識天下之人爲君臣上下者。 爲吾兄弟也。 愛憎由於一己之私。 中道不立。 好惡不循天下之公。 利欲橫流。 吾宗兄之受父母命爲吾之君者。 孤立於上。 而羣兄弟爲公卿大夫士及庶人者。 紛紛然分名角立。 爭利於一室之內。 則彼吾天地大父母臨之在上。 質之在下者。 謂吾爲克孝子耶? 爲不肖子耶? 天地神祗。 昭布森列。 至大至明至公至中。 吾何敢二吾中。 與吾羣兄弟疑貳於吾宗子大君之前。 得不孝之責於吾天地大父母乎? 我有至中。 初賦于天。 願與吾兄弟之有先覺者共守之。 以警發於吾兄弟之不能守中而倚於一偏者。 於是作中說。 여기에서 …… 있다 형이하(形而下)는 형체가 없는 추상적 존재를 말하는 '형이상(形而上)'과 대립 되는 개념으로, 형체가 있는 구체적 존재를 말한다. 이는 원래 《주역(周易)》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형이상인 것을 도(道)라고 하고, 형이하인 것을 기(器)라고 한다.[形而上者謂之道, 形而下者謂之器.]"라고 한 데에서 나온 말인데, 이에 대하여 주희(朱熹)는 황도부(黃道夫)에게 답한 편지에서 "천지에는 이(理)와 기(氣)가 있으니, 이(理)라는 것은 형이상의 도(道)로서 만물을 낳는 근본이고, 기(氣)라는 것은 형이하의 기(器)로서 만물을 낳는 도구이다.[天地之間, 有理有氣, 理也者, 形而上之道也, 生物之本也, 氣也者, 形而下之器也, 生物之具也.]"라고 설명하였다. 《朱子大全 권58 答黃道夫》 상(象) 상은 순(舜) 임금의 이복동생이다. 평소에 순을 죽이려 하였으나 순은 너그럽게 대하였고 나중에 유비(有庳) 땅에 봉(封)해 주었다. 관채(管蔡) 주공의 형제인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을 말한다.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이 "주공이 장차 어린 성왕에게 이롭지 못하리라."라고 유언비어를 퍼뜨리자, 주공은 태공(太公)과 소공(召公)에게 정치를 맡기고 낙양의 동쪽으로 피신하였다. 《史記 권35 管蔡世家》 저예(底豫) 순임금이 온 천하가 자기를 추대하였으나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오직 완악(頑惡)했던 그의 부친 고수(瞽瞍)를 극진한 효성으로 받들어 마침내 고수를 감화시켰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온 천하가 감화되어 부자 사이의 윤상(倫常)의 기본이 확정된 것을 이르는 말이다. 《맹자》 〈이루 상(離婁上)〉에 맹자가 한 말로 "순 임금이 어버이 섬기는 도리를 다하자 고수가 기뻐하게 되었고, 고수가 기뻐하게 되자 천하가 교화되었으며, 고수가 기뻐하게 되자 천하에 부자의 도가 정해졌으니, 이것을 일러 대효라고 하는 것이다.[舜盡事親之道而瞽瞍底豫, 瞽瞍底豫而天下化, 瞽瞍底豫而天下之爲父子者定, 此之謂大孝.]"라고 하였다. 《栗谷全書 권23 聖學輯要5》 부모에게서 …… 준 《효경(孝經)》 첫머리에 나오는 〈개종명의장(開宗明義章)〉에 "이 몸은 모두 부모님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요, 자신의 몸을 바르게 세우고 바른 도를 행하여 이름을 후세에 드날림으로써 부모님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효의 마지막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라는 말이 나온다. 《논어》 〈태백(泰伯)〉에서는 증자가 죽음에 임해 제자들에게 "나의 발을 들춰 보고 나의 손을 들춰 보아라. 《시경》에 '전전긍긍하여, 깊은 못 옆에 서 있는 듯이 하고, 얇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라.' 하였으니, 이제는 내가 훼손을 면했음을 알겠노라. 얘들아.[啓予足, 啓予手, 詩云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라고 하였고, 증자는 또 《예기》 〈제의(祭義)〉에서 "부모가 온전하게 낳아 주었으니 자식이 온전하게 돌아가야 효도라 이를 수 있다. 육체를 손상하지 않고 몸을 욕되게 하지 않아야 온전하다고 이를 수 있다.[父母全而生之, 子全而歸之, 可謂孝矣. 不虧其體, 不辱其身, 可謂全矣.]"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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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冠誡 사람이 사람 되는 도를 아는가? 사람들은 항상 '천지인(天地人)'이라고 말하는 데 지극히 크고 지극히 넓어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은 천지가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삼재(三才)라고 칭하는 자들이 반드시 사람을 천지에 참여시켜 함께 '천지인'이라고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역(易)》에서 '사람의 도를 세워서 인과 의'9)라고 하였고, 《서경(書經)》에서 말하기를 '하늘의 밝은 명을 돌아본다.'10)라고 하였으며, 삼성자(三省子)11)는 '밝은 덕을 밝힌다.'12)라고 하였고, 성인이 찬술한 것을 전(傳)하여 말하기를 '천명지성(天命之性)'13)이라고 하였다.대저 하늘이 품성을 내리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계(傳係)14)를 하는 것과 같으니 고하(高下)·대소(大小)가 비록 현격(懸隔)하고 멀어서 서로 접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 하나의 기가 유행하여 상하에 통하고 홀연히15) 틈이 없고 실제로 피차가 없기 때문에 '천지인(天地人)'이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나의 몸이 중차대함에 이르러서는 천지와 틈이 없는 것을 어째서 알지 못할 까닭이 있겠는가? 태상(太上)이 덕(德)을 세우고 그 수양의 차례와 세운 법이 성현(聖賢)의 경전(經傳)에 갖추어져 있으니 사람으로 하여 순서에 따라 들어가 자득하여 위로 천덕(天德)에 도달한다면 그 말은 오묘하고 그 도는 은미해질 것이다. 지금 우선 시행해야 할 것이다. 다음이 칙행(飭行)이니, 칙행의 조목은 다섯 개가 있는데 '부자(父子)·군신(君臣)·부부(夫婦)·장유(長幼)·붕우(朋友)'이며 행하는 것은 하나이니 '성(誠)'이니라. 성(誠)에 들어가는 도는 거경(居敬)에 있고 거경의 도는 숙연(肅然)하여 방일(放逸)하지 않는 것이다. 지기(志氣)로 하여 깨끗하고 밝아서 분분하게 멸(滅)을 일으키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용모를 바르게 하며 꾸밈을 단정히 하여 나태하고 방탕한 기가 베풀어지지 않게 하여, 일일 이내에 일심(一心) 사이에 맑은 것이 탁한 것보다 많아지고 고요한 것이 동한 것보다 많아지게 한다면 자연히 심지가 투명하여 사(事)를 보는 것이 쉽게 밝아질 것이니, 다섯 가지 조목은 만나는 것마다 어둡지 않아서 만 가지 일을 미루어 밝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몸가짐을 단속하는 것의 대략이고 하학상달(下學上達)16)의 문호(門戶)이니라. 이것으로 인하여 구한다면 하늘을 섬기고 참여하는 도 또한 멀지 않을 것이다.향당에 거처하면 자기를 바르게 하고 치우치지 않고, 몸을 세움에 먼저 실이 있게 한 뒤에 이름이 나게 하고, 사람을 접함에는 화합으로써 하고 믿게 하며, 집에 거처할 때에는 예로써 하고 공손하여야 한다. 음식·의복·성색(聲色)·화재(貨財)·명리(名利) 등의 다섯 가지 것은 사람을 함정에 빠트리는 기정(機穽)이요, 성(性)을 벌(伐)하는 도끼이니 먼저 그 큰 것이 세워지면17) 움직이지 않아도 얻어질 것이다.종질(宗侄) 이상(履相)18)은 아주 어릴 적에 고아가 되었는데 지금은 장성하게 되었다. 예(禮)는 삼가(三加)19)가 마땅하니 성인의 도는 금일로부터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당숙(堂叔) 모(某)가 사람이 삼재에 참여하는 설을 미루어 펼쳐서 초례(醮禮) 자리의 경계20)로 삼는다. 또 명하여 말하기를 "시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슬프고 슬프다, 부모여, 나를 낳으시느라 몹시 수고하셨다.'21)라고 하였으니, 사체(四體) 중에 하나의 터럭, 하나의 머리카락을 누가 준 것인가? 몸을 돌아보고 어버이를 생각하고, 어버이를 돌아보고 몸가짐을 조심하는 것은 그 생을 주신 이[所生]에게 욕을 보이고자 하지 않는 것이다. 입신양명(立身揚名)으로 부모를 드러내는 것은 효도의 시작이요, 임심리박(臨深履薄)22)의 태도로 살면서 자연의 순리에 따르다가 죽어서는 편안한 것은23) 효도의 마지막이다. 이상은 경계하여라. 나의 말은 망녕되지 않다."라고 하였다. 若知夫爲人之道乎? 人有恒言曰'天地人'。 至大至廣。 不可得以名言者。 非天地耶? 然而稱三才者。 必以人參之於天地而幷數之曰'天地人'者何哉? 在易曰'立人之道'曰'仁與義'。 在書曰'顧諟天之明命'。 三省子有言'明明德'。 述聖子傳之曰'天命之性'。 夫天之降稟於人者。 猶父之傳係於子。 高下大小。 雖若懸絶。 邈不相接。 其一氣流行。 通于上下。 然無間。 實無彼此。 故曰'天地人'。 然則吾之身。 其至重且大。 與天地無間者。 奚可不知其所以耶? 太上立德。 其修之之序立之之法。 具在聖賢經傳。 使人循序而入。 令其自得而上達天德。 則其言邃矣。 其道微矣。 今姑不暇及。 其次飭行。 飭行之目有五。 曰'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 而行之者一也曰'誠'。 入誠之道。 在於居敬。 居敬之道。 在於肅然不放。 使志氣淸明而紛紜起滅之念不生。 正容端莊而怠惰放逸之氣不施。 一日之內一心之間。 淸多於濁。 靜多於動。 則自然心志明透。 見事易曉。 五者之目。 隨遇不昧。 而推之萬事。 無不明矣。 此飭行之大略而下學上達之門戶也。 仍此求之。 事天而參之之道。 亦不遠矣。 居鄕則正己而不偏。 立身則先實而後名。 接人以和而信。 處家以禮而恭。 至於飮食衣服聲色貨財名利五者。 陷人之機穽。 伐性之斧斤。 先立其大者而不爲所動則得矣。 宗侄履相。 未孩而孤。 今其壯矣。 禮當三加。 成人之道。 式自今日。 堂叔某推人參三才之說以申之。 爲醮席之戒。 又命之曰: "'詩不云乎? 哀哀父母。 生我劬勞'。 吾之四體。 一毫一髮。 是誰之賜? 顧軆思親。 思親飭行。 所以不欲忝厥所生也。 立身揚名。 以顯父母。 孝之始也。 臨深履薄。 順生沒寧。 孝之終也。 履相戒之。 吾言不妄。" 사람의 …… 의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하늘의 도를 세움은 '음과 양'이요, 땅의 도를 세움은 '유와 강'이요, 사람의 도를 세움은 '인과 의'이니, 삼재를 겸하여 두 번 하였다.[立天之道曰'陰與陽', 立地之道曰'柔與剛', 立人之道曰'仁與義', 兼三才而兩之.]"라고 하였다. 하늘의 …… 돌아본다 《대학장구》 전1장에서 《서경》 〈태갑 상(太甲上)〉의 말을 인용하여 "하늘의 밝은 명을 돌아본다.[顧諟天之明命.]"라고 한 것에 대해, 주희가 "사람은 천지의 중(中)을 받아 태어난다. 그러므로 사람의 명덕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이 나에게 명하여 지극한 선이 보존되어있는 것이니, 그 전체와 대용이 어느 때고 발현되지 않은 적이 없다.[人受天地之中以生, 故人之明德, 非他也, 卽天之所以命我而至善之所存也, 是其全體大用, 蓋無時而不發見於日用之間.]"라고 답한 것을 이른다. 삼성자(三省子) 증자(曾子)를 가리키는 말로, 그가 "나는 하루에 세 가지 일로 자신을 반성하니, '다른 사람과 도모하면서 충실하지 못했던가? 벗과 사귀면서 미덥지 못했던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않았던가?' 하는 것이다.[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라고 하였다. 《論語 學而》 밝은 …… 밝힌다 '명덕을 밝힌다'는 명명덕은 《대학장구》 경1장에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선에 그침에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라는 구절에 보인다. 천명지성(天命之性) 천명지성은 《중용장구》 제1장에 "하늘이 명(命)하신 것을 성(性)이라 이르고, 성(性)을 따름을 도(道)라 이르고, 도(道)를 품절(品節)해 놓음을 교(敎)라 이른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라고 한 구절이 보인다. 전계(傳係) 재산을 누구에게 상속시킨다는 뜻을 적은 문권(文券)이다. 원문의 '然'은 문맥을 살펴 '忽然'으로 해석하였다. 하학상달(下學上達) 사람의 일을 배우고 나아가 자연의 법칙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논어》 〈헌문(憲問)〉의 "나는 하늘을 원망하지도 않고 사람을 탓하지도 않는다. 아래로는 인간의 일을 배우고 위로는 하늘의 이치를 터득하려고 노력할 따름인데, 나를 알아주는 분은 아마도 하늘일 뿐일 것이다![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 其天乎!]"라는 공자의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근사록》 〈존양(存養)〉에 "성현의 수많은 말씀도 그 요점을 살펴보면 단지 사람으로 하여 놓친 마음을 단속해서 다시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오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그 마음을 찾아서 위를 향해 나아간다면 그것이 곧 공자가 말씀하신 대로 아래로 인간의 일을 배우면서 위로 하늘의 이치를 체득하는 일이 될 것이다.[聖賢千言萬語, 只是欲人將已放之心, 約之, 使反復入身來, 自能尋向上去, 下學而上達.]"라는 정명도의 말이 나온다. 성(性)을 …… 세워지면 《시경》 〈빈풍(豳風) 벌가(伐柯)〉에 "도끼 자루를 어떻게 베어야 하나, 도끼가 아니면 하지 못한다네.[伐柯如何, 匪斧不克.]", "도끼 자루를 베나니, 그 법이 멀리 있지 않도다.[伐柯伐柯, 其則不遠.]"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법규, 본보기 등의 의미로 쓰인다. 이상(履相) 김만영의 당조카 김이상(金履相, 1639~?)을 가리킨다. 자는 사형(士亨)이다. 1675년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삼가(三加) 예전에 남자가 가관례(加冠禮)를 행할 때, 처음에는 치포관(緇布冠)을 쓰고, 다음은 피변(皮弁)을 쓰고, 다음은 작변(爵弁)을 쓰던 일을 통칭하여 일컫던 말이다. 초례(醮禮) …… 경계 김만영이 종질(宗侄) 이상(履相)의 초례 자리에서 경계한 말이다. 《예기(禮記)》〈증자문(曾子問)〉에 " …… 초(醮)라는 것은 술을 따르기만 하고 수작(酬酢)함이 없는 것을 초라 하니, 예(醴)가 중하고 초가 가벼운 것은 예는 바로 옛날 술이기 때문에 중함이 되는 것이다. 초례가 예례와 다른 까닭은 관을 세 번 가한 뒤에 통틀어서 한 번 예례를 행하고, 초례는 관을 가할 적마다 한 번씩 청주로 초례를 행한다.[ …… 謂之醮者, 酌而無酬酢曰'醮', 醴重而醮輕者, 醴是古之酒, 故爲重, 醮之所以異於醴者, 三加之後, 總一醴之, 醮則每一加而行一醮也.]"라고 하였다. 부모여 …… 수고하셨다 구로(劬勞)의 가르침은 부모님이 자신을 낳고 기르느라 수고하고 애쓰시며 가르쳐 준 은혜를 말한다. 《시경》 〈육아(蓼莪)〉에 "슬프고 슬프다 부모여, 나를 낳으시느라 몹시 수고하셨다.[哀哀父母, 生我劬勞.]"라는 구절에서 연유한 말이다. 임심리박(臨深履薄) 조심하고 삼간다는 의미이다. 《시경(詩經)》 〈소민(小旻)〉에서 "마치 깊은 연못가에 다다르거나 얇은 얼음을 밟은 것처럼 조심하고 두려워한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冰.]"라고 하였다. 증자(曾子)가 병(病)이 위중하자, 제자들을 불러 말하기를 "이불을 걷고 나의 발을 보고 나의 손을 보아라. 《시경》에 이르기를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고, 엷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라.' 하였으니, 이제서야 나는 내 몸을 훼상시킬까 하는 근심에서 면한 것을 알겠구나, 소자들아![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라고 하였다. 《論語 泰伯》 《詩經 小雅 小旻》 자연의 …… 것은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살아서는 내 순응하고 죽어서는 내 편안하다.[存吾順事, 沒吾寧也.]"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온 말이다. 참고로 주희(朱熹)는 이 구절에 대해 "효자의 몸이 살아 있으면 어버이를 섬김에 그 뜻을 어기지 않을 뿐이요, 죽으면 편안하여 어버이에게 부끄러운 바가 없으며, 인인(仁人)의 몸이 살아 있으면 하늘을 섬김에 그 이치를 어기지 않을 뿐이요, 죽으면 편안하여 하늘에 부끄러운 바가 없다."라고 풀이하였다. 《近思錄集解 권2 爲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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