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冠誡 사람이 사람 되는 도를 아는가? 사람들은 항상 '천지인(天地人)'이라고 말하는 데 지극히 크고 지극히 넓어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은 천지가 아니겠는가? 그렇지만 삼재(三才)라고 칭하는 자들이 반드시 사람을 천지에 참여시켜 함께 '천지인'이라고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역(易)》에서 '사람의 도를 세워서 인과 의'9)라고 하였고, 《서경(書經)》에서 말하기를 '하늘의 밝은 명을 돌아본다.'10)라고 하였으며, 삼성자(三省子)11)는 '밝은 덕을 밝힌다.'12)라고 하였고, 성인이 찬술한 것을 전(傳)하여 말하기를 '천명지성(天命之性)'13)이라고 하였다.대저 하늘이 품성을 내리는 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계(傳係)14)를 하는 것과 같으니 고하(高下)·대소(大小)가 비록 현격(懸隔)하고 멀어서 서로 접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 하나의 기가 유행하여 상하에 통하고 홀연히15) 틈이 없고 실제로 피차가 없기 때문에 '천지인(天地人)'이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나의 몸이 중차대함에 이르러서는 천지와 틈이 없는 것을 어째서 알지 못할 까닭이 있겠는가? 태상(太上)이 덕(德)을 세우고 그 수양의 차례와 세운 법이 성현(聖賢)의 경전(經傳)에 갖추어져 있으니 사람으로 하여 순서에 따라 들어가 자득하여 위로 천덕(天德)에 도달한다면 그 말은 오묘하고 그 도는 은미해질 것이다. 지금 우선 시행해야 할 것이다. 다음이 칙행(飭行)이니, 칙행의 조목은 다섯 개가 있는데 '부자(父子)·군신(君臣)·부부(夫婦)·장유(長幼)·붕우(朋友)'이며 행하는 것은 하나이니 '성(誠)'이니라. 성(誠)에 들어가는 도는 거경(居敬)에 있고 거경의 도는 숙연(肅然)하여 방일(放逸)하지 않는 것이다. 지기(志氣)로 하여 깨끗하고 밝아서 분분하게 멸(滅)을 일으키는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용모를 바르게 하며 꾸밈을 단정히 하여 나태하고 방탕한 기가 베풀어지지 않게 하여, 일일 이내에 일심(一心) 사이에 맑은 것이 탁한 것보다 많아지고 고요한 것이 동한 것보다 많아지게 한다면 자연히 심지가 투명하여 사(事)를 보는 것이 쉽게 밝아질 것이니, 다섯 가지 조목은 만나는 것마다 어둡지 않아서 만 가지 일을 미루어 밝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몸가짐을 단속하는 것의 대략이고 하학상달(下學上達)16)의 문호(門戶)이니라. 이것으로 인하여 구한다면 하늘을 섬기고 참여하는 도 또한 멀지 않을 것이다.향당에 거처하면 자기를 바르게 하고 치우치지 않고, 몸을 세움에 먼저 실이 있게 한 뒤에 이름이 나게 하고, 사람을 접함에는 화합으로써 하고 믿게 하며, 집에 거처할 때에는 예로써 하고 공손하여야 한다. 음식·의복·성색(聲色)·화재(貨財)·명리(名利) 등의 다섯 가지 것은 사람을 함정에 빠트리는 기정(機穽)이요, 성(性)을 벌(伐)하는 도끼이니 먼저 그 큰 것이 세워지면17) 움직이지 않아도 얻어질 것이다.종질(宗侄) 이상(履相)18)은 아주 어릴 적에 고아가 되었는데 지금은 장성하게 되었다. 예(禮)는 삼가(三加)19)가 마땅하니 성인의 도는 금일로부터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당숙(堂叔) 모(某)가 사람이 삼재에 참여하는 설을 미루어 펼쳐서 초례(醮禮) 자리의 경계20)로 삼는다. 또 명하여 말하기를 "시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슬프고 슬프다, 부모여, 나를 낳으시느라 몹시 수고하셨다.'21)라고 하였으니, 사체(四體) 중에 하나의 터럭, 하나의 머리카락을 누가 준 것인가? 몸을 돌아보고 어버이를 생각하고, 어버이를 돌아보고 몸가짐을 조심하는 것은 그 생을 주신 이[所生]에게 욕을 보이고자 하지 않는 것이다. 입신양명(立身揚名)으로 부모를 드러내는 것은 효도의 시작이요, 임심리박(臨深履薄)22)의 태도로 살면서 자연의 순리에 따르다가 죽어서는 편안한 것은23) 효도의 마지막이다. 이상은 경계하여라. 나의 말은 망녕되지 않다."라고 하였다. 若知夫爲人之道乎? 人有恒言曰'天地人'。 至大至廣。 不可得以名言者。 非天地耶? 然而稱三才者。 必以人參之於天地而幷數之曰'天地人'者何哉? 在易曰'立人之道'曰'仁與義'。 在書曰'顧諟天之明命'。 三省子有言'明明德'。 述聖子傳之曰'天命之性'。 夫天之降稟於人者。 猶父之傳係於子。 高下大小。 雖若懸絶。 邈不相接。 其一氣流行。 通于上下。 然無間。 實無彼此。 故曰'天地人'。 然則吾之身。 其至重且大。 與天地無間者。 奚可不知其所以耶? 太上立德。 其修之之序立之之法。 具在聖賢經傳。 使人循序而入。 令其自得而上達天德。 則其言邃矣。 其道微矣。 今姑不暇及。 其次飭行。 飭行之目有五。 曰'父子君臣夫婦長幼朋友'。 而行之者一也曰'誠'。 入誠之道。 在於居敬。 居敬之道。 在於肅然不放。 使志氣淸明而紛紜起滅之念不生。 正容端莊而怠惰放逸之氣不施。 一日之內一心之間。 淸多於濁。 靜多於動。 則自然心志明透。 見事易曉。 五者之目。 隨遇不昧。 而推之萬事。 無不明矣。 此飭行之大略而下學上達之門戶也。 仍此求之。 事天而參之之道。 亦不遠矣。 居鄕則正己而不偏。 立身則先實而後名。 接人以和而信。 處家以禮而恭。 至於飮食衣服聲色貨財名利五者。 陷人之機穽。 伐性之斧斤。 先立其大者而不爲所動則得矣。 宗侄履相。 未孩而孤。 今其壯矣。 禮當三加。 成人之道。 式自今日。 堂叔某推人參三才之說以申之。 爲醮席之戒。 又命之曰: "'詩不云乎? 哀哀父母。 生我劬勞'。 吾之四體。 一毫一髮。 是誰之賜? 顧軆思親。 思親飭行。 所以不欲忝厥所生也。 立身揚名。 以顯父母。 孝之始也。 臨深履薄。 順生沒寧。 孝之終也。 履相戒之。 吾言不妄。" 사람의 …… 의 《주역》 〈설괘전(說卦傳)〉에 "하늘의 도를 세움은 '음과 양'이요, 땅의 도를 세움은 '유와 강'이요, 사람의 도를 세움은 '인과 의'이니, 삼재를 겸하여 두 번 하였다.[立天之道曰'陰與陽', 立地之道曰'柔與剛', 立人之道曰'仁與義', 兼三才而兩之.]"라고 하였다. 하늘의 …… 돌아본다 《대학장구》 전1장에서 《서경》 〈태갑 상(太甲上)〉의 말을 인용하여 "하늘의 밝은 명을 돌아본다.[顧諟天之明命.]"라고 한 것에 대해, 주희가 "사람은 천지의 중(中)을 받아 태어난다. 그러므로 사람의 명덕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늘이 나에게 명하여 지극한 선이 보존되어있는 것이니, 그 전체와 대용이 어느 때고 발현되지 않은 적이 없다.[人受天地之中以生, 故人之明德, 非他也, 卽天之所以命我而至善之所存也, 是其全體大用, 蓋無時而不發見於日用之間.]"라고 답한 것을 이른다. 삼성자(三省子) 증자(曾子)를 가리키는 말로, 그가 "나는 하루에 세 가지 일로 자신을 반성하니, '다른 사람과 도모하면서 충실하지 못했던가? 벗과 사귀면서 미덥지 못했던가? 스승에게 배운 것을 익히지 않았던가?' 하는 것이다.[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라고 하였다. 《論語 學而》 밝은 …… 밝힌다 '명덕을 밝힌다'는 명명덕은 《대학장구》 경1장에 "《대학》의 도는 명덕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지선에 그침에 있다.[大學之道,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라는 구절에 보인다. 천명지성(天命之性) 천명지성은 《중용장구》 제1장에 "하늘이 명(命)하신 것을 성(性)이라 이르고, 성(性)을 따름을 도(道)라 이르고, 도(道)를 품절(品節)해 놓음을 교(敎)라 이른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라고 한 구절이 보인다. 전계(傳係) 재산을 누구에게 상속시킨다는 뜻을 적은 문권(文券)이다. 원문의 '然'은 문맥을 살펴 '忽然'으로 해석하였다. 하학상달(下學上達) 사람의 일을 배우고 나아가 자연의 법칙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논어》 〈헌문(憲問)〉의 "나는 하늘을 원망하지도 않고 사람을 탓하지도 않는다. 아래로는 인간의 일을 배우고 위로는 하늘의 이치를 터득하려고 노력할 따름인데, 나를 알아주는 분은 아마도 하늘일 뿐일 것이다![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 其天乎!]"라는 공자의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근사록》 〈존양(存養)〉에 "성현의 수많은 말씀도 그 요점을 살펴보면 단지 사람으로 하여 놓친 마음을 단속해서 다시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오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그 마음을 찾아서 위를 향해 나아간다면 그것이 곧 공자가 말씀하신 대로 아래로 인간의 일을 배우면서 위로 하늘의 이치를 체득하는 일이 될 것이다.[聖賢千言萬語, 只是欲人將已放之心, 約之, 使反復入身來, 自能尋向上去, 下學而上達.]"라는 정명도의 말이 나온다. 성(性)을 …… 세워지면 《시경》 〈빈풍(豳風) 벌가(伐柯)〉에 "도끼 자루를 어떻게 베어야 하나, 도끼가 아니면 하지 못한다네.[伐柯如何, 匪斧不克.]", "도끼 자루를 베나니, 그 법이 멀리 있지 않도다.[伐柯伐柯, 其則不遠.]"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법규, 본보기 등의 의미로 쓰인다. 이상(履相) 김만영의 당조카 김이상(金履相, 1639~?)을 가리킨다. 자는 사형(士亨)이다. 1675년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삼가(三加) 예전에 남자가 가관례(加冠禮)를 행할 때, 처음에는 치포관(緇布冠)을 쓰고, 다음은 피변(皮弁)을 쓰고, 다음은 작변(爵弁)을 쓰던 일을 통칭하여 일컫던 말이다. 초례(醮禮) …… 경계 김만영이 종질(宗侄) 이상(履相)의 초례 자리에서 경계한 말이다. 《예기(禮記)》〈증자문(曾子問)〉에 " …… 초(醮)라는 것은 술을 따르기만 하고 수작(酬酢)함이 없는 것을 초라 하니, 예(醴)가 중하고 초가 가벼운 것은 예는 바로 옛날 술이기 때문에 중함이 되는 것이다. 초례가 예례와 다른 까닭은 관을 세 번 가한 뒤에 통틀어서 한 번 예례를 행하고, 초례는 관을 가할 적마다 한 번씩 청주로 초례를 행한다.[ …… 謂之醮者, 酌而無酬酢曰'醮', 醴重而醮輕者, 醴是古之酒, 故爲重, 醮之所以異於醴者, 三加之後, 總一醴之, 醮則每一加而行一醮也.]"라고 하였다. 부모여 …… 수고하셨다 구로(劬勞)의 가르침은 부모님이 자신을 낳고 기르느라 수고하고 애쓰시며 가르쳐 준 은혜를 말한다. 《시경》 〈육아(蓼莪)〉에 "슬프고 슬프다 부모여, 나를 낳으시느라 몹시 수고하셨다.[哀哀父母, 生我劬勞.]"라는 구절에서 연유한 말이다. 임심리박(臨深履薄) 조심하고 삼간다는 의미이다. 《시경(詩經)》 〈소민(小旻)〉에서 "마치 깊은 연못가에 다다르거나 얇은 얼음을 밟은 것처럼 조심하고 두려워한다.[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冰.]"라고 하였다. 증자(曾子)가 병(病)이 위중하자, 제자들을 불러 말하기를 "이불을 걷고 나의 발을 보고 나의 손을 보아라. 《시경》에 이르기를 '두려워하고 조심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고, 엷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라.' 하였으니, 이제서야 나는 내 몸을 훼상시킬까 하는 근심에서 면한 것을 알겠구나, 소자들아![啓予足, 啓予手, 詩云, 戰戰兢兢, 如臨深淵, 如履薄氷, 而今而後, 吾知免夫, 小子!]"라고 하였다. 《論語 泰伯》 《詩經 小雅 小旻》 자연의 …… 것은 송(宋)나라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살아서는 내 순응하고 죽어서는 내 편안하다.[存吾順事, 沒吾寧也.]"라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온 말이다. 참고로 주희(朱熹)는 이 구절에 대해 "효자의 몸이 살아 있으면 어버이를 섬김에 그 뜻을 어기지 않을 뿐이요, 죽으면 편안하여 어버이에게 부끄러운 바가 없으며, 인인(仁人)의 몸이 살아 있으면 하늘을 섬김에 그 이치를 어기지 않을 뿐이요, 죽으면 편안하여 하늘에 부끄러운 바가 없다."라고 풀이하였다. 《近思錄集解 권2 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