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17956건입니다.

정렬갯수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수운정서 峀雲亭序 큰 바다의 동쪽 땅과 웅진(雄鎭)의 서편 벌에 물은 광주(光州)와 능주(綾州)를 합하고 산은 서석산(瑞石山)과 금성산(錦城山)으로 나뉘도다. 어느 때에 조물주가 한 구역 명승(名勝)을 빚어냈던가? 오늘 명공이 서너 이랑에 정사(精舍)를 높이 여니, 추녀는 기미(箕尾)73)의 영채(英彩)에 임하고 보휘(寶輝)는 하늘을 능멸하며 문이 제나(濟羅)의 아득한 바람을 받아들이니 호방한 기운 난간에 가득하도다. 주인 영공(令公)74)은 인간 달존(達尊)75)의 반열이요, 천상에 노전(老躔)76)의 정수로다. 대대로 아름다운 명성이 있고 가문에 효우(孝友)를 전하여 봉황의 반열에 수리처럼 서 있으니 어찌 삼어연(三語掾)77)의 맑은 품격보다 못하겠는가? 봉치(鳳峙)의 계림(鷄林)이 천년 구국(舊國)을 위무하니 중거(仲擧)78)의 긴 고삐를 잡고 거원(巨源)79)의 아무 언덕[某邱]80)을 생각하도다.구양수(歐陽脩)81)의 백발창안(白髮蒼顔)에 날렵한 고각(高閣)이요, 사안(謝安)82)의 청산녹수(靑山綠水)에 삽상한 명창(明窓)이도다. 문미에 화려한 편액은 멀리 도연명(陶淵明)83)의 멋진 글귀를 계승하고 바위틈 걸출한 건축은 가까이 박상공(朴相公)84)의 옛터를 이었도다. 구름과 새가 서로 나니 의연히 삼경(三逕)85)의 풍미요 물과 달이 서로 비치니 얼핏 이양정(二養亭)86)【박사암(朴思庵)이 이곳에서 말년에 이양정을 지었다.】의 정신 같도다.이에 가을 만(灣)에 장마 물 잦아드니 갈대 여울에 돌 불거지고, 봄 물결에 비 더하니 버들 언덕에 조수가 평평하도다. 어부의 긴 노래에 물새들이 날개를 접고 열사(烈士)의 높은 읊조림에 고기가 비늘을 번뜩이도다. 혹 외로운 배에 노 젓고 혹 짧은 지팡이 짚고서 푸른 물결 읊조리며 달구경하고 높은 언덕에 서서 바람을 뿜도다. 이 세상에 세 가지 즐거움,87)【여기에 일구(一句)가 빠진 것 같다】 홍교(虹橋) 백 척에 이르러선 용이 파도에 눕고 월악(月岳) 천 층은 붕새가 해변에 멈춘 것 같도다.88) 바위의 분장단벽(粉嶂丹壁)을 우러르니 조석의 상서로운 광채 드러내고 봉우리의 녹옥창규(綠玉蒼珪)를 노래하니 운우(雲雨)의 기이한 자태를 바치도다. 사시(四時)의 광경을 선물하고 일실(一室)의 술잔을 마련하도다. 난간 밖 장강(長江)에 이르러선 아련히 오초(吳楚)에 이어지고 문 앞의 큰길은 멀리 경화(京華)에 접했도다. 작방용축(雀舫龍軸)의 돛대는 나루에서 익수(鷁首)89)와 교차하고 구장호부(龜章虎符)의 관개(冠盖)는 큰길에서 사마(駟馬)의 굽을 정비하니 넉넉한 정우(停宇)의 조망이요 장쾌한 유거(幽居)의 안목이로다. 오호라! 올라가 경물을 구경하니 지나간 날 아득하고 고금을 둘러보니 천지가 역려(逆旅)90)로다. 서호(西湖)91)에 학 떠나가니 처사의 풍류 이미 사라지고 동리(東里)92)에 용 올랐으니 전왕의 포부 어디에 있는가?배견와(拜鵑窩)93) 상공(相公)【사암(思庵)이 또 영평(永平)에 배견와(拜鵑窩)를 지었다.】의 청수(淸水)한 정기를 거두어들이고 배에 행장 꾸린 노선(老仙)이도다.【사암의 형 연파(烟波) 박개(朴漑)94)의 '일엽편주에 흰 달을 싣고[葉舟載素月]'라는 시구가 있으므로 이 말을 한 것이다.】 창해(滄海)의 먼 곳에 뜻 아득한데 더군다나 매창(梅窓)의 밤은 적적하고 난실(蘭室)의 봄 허허하도다. 노을이 삭막한데 명월은 홀로 오르고 새가 슬피 우는데 주옹은 어디에 있는가? 물가에 길이 있어 납극(蠟屐)95)의 유풍 알 수 있고, 길가 이끼에 흔적 없어 구장(鳩杖)96)의 자취 찾을 길 없도다. 의지하는 것은 당나라 마군(馬君)97)의 삼세이니 뜰에 옥란(玉蘭)98)이 자라고 송나라 왕씨의 쌍벽이니 집에 금우(金友)가 있도다. 평천장(平泉莊)99)의 꽃과 돌, 찬황공(贊皇公)100)의 규모에 뒤지지 않고 상락(常樂)의 솔과 대, 어이 백향산(白香山)101)의 봉식(封植)으로 하겠는가? 청상(靑箱)102)의 구업을 전하여 절로 예를 논하고 시 즐기며 묵유(墨帷)의 고장(古藏)을 간수하여 거문고 타고 피리 부는 것만이 아니도다. 나그네는 천지에 한 마리 좀[一蠹]103)이요 강호에 병마[二竪]104)가 있어 대화(大化)105)의 그침이 없음을 보겠도다. 기꺼이 물가에 임하여 전현을 좇아 미치지 못하니【글자가 빠진 듯하다】 산하에 부끄럽도다. 가벼운 갈매기의 만 리 마음은 일천(一天)의 갠 달이요. 늙은 학의 천년 의지는 백련(百鍊)106)의 맑은 파도로다. 오늘 명승을 찾아와 정자의 통활(通豁)한 데에 서서 이러한 뜻 펼치고 우주의 여풍(餘風)을 거슬리도다. 시부(詩賦)는 현사들에게서 여망 있건만 강정(扛鼎)107)의 필력 부족함 한탄하고 시는 옛 자취에서 찡그림 흉내내니[效嚬]108)어찌 자리에 도움이 될 신공(神功)을 기대하겠는가? 대략 흉금(胸襟)을 펼쳐 창과 벽을 더럽히도다. 大海東域。 雄鎭西郊。 水合光綾。 山分瑞錦。 何年造物。 孕出一區名疆? 此日明公高開數畝精舍。 軒臨箕尾之英彩。 寶輝凌空。 門納濟羅之長風。 灝氣盈檻。 主人令公 人間達尊之列。 天上老躔之精。 世有令名。 家傳孝友。 鶚立鵷序。 豈欠三語淸標? 鳳峙鷄林。 爲撫千年舊國。 按仲擧之長轡。 憶巨源之某邱。 歐公之白髮蒼顔。 翼然高閣。 謝老之靑山綠水。 爽乎明窓。 楣上華扁。 遠述晉徵士之佳句。 巖間傑構。 近襲朴相公之遺墟。 雲鳥交飛。 依然三逕之風味。 水月相暎。 怳若二養【朴思庵卜居末年。 嘗作二養亭】之精神。 於是潦落秋灣。 蘆灘石出。 雨添春浪。 柳岸潮平。 漁父長歌。 沙禽戾翼。 烈士高咏。 潛魚躍鱗。 或棹孤舟。 或扶短策。 詠滄浪而翫月。 臨斷臯而噓風。 三樂於斯世。【此一句恐缺】至若虹橋百尺。 龍臥波心。 月峀千層。 鵬蹇海浴。 仰巖之粉嶂丹壁。 呈朝暮之瑞輝。 歌岑之綠玉蒼珪。 獻雲雨之奇態。 輸四時之光景。 供一室之樽罍。 又如檻外長江。 遙連吳楚。 門前大道。 遠接京華。 雀舫龍軸之柁檣。 交鷁首於津泊。 龜章虎符之冠盖。 織駟踶於康衢。 侈停宇之睡望。 壯幽居之心目。 嗚呼! 登臨覽物。 往事蒼茫。 俯仰古今。 乾坤逆旅。 西湖鶴去。 處士之風流已空。 東里龍興。 前王之壯圖安往? 拜鵑相公。【思庵又作拜鵑窩於永平】淸水之正氣收藏。 裝舟老仙。【思庵之兄烟波漑。 有葉舟載素月之句。 故如此云云】滄海之遠意綿漠。 而况梅窓夜寂。 蕙室春虛。 雲霞索寞兮明月獨來。 禽鳥哀吟兮主翁何處? 汀沙有路。 認是蠟屐餘塵。 逕苔無痕。 難尋鳩杖遺躅。 所賴唐馬君之三世。 庭生玉蘭。 宋王氏之雙璧。 宅存金友。 平泉花石。 不墜贊皇公之規模。 常樂松篁。 焉用白香山之封植? 傳靑箱之舊業。 自有說禮諶詩。 守墨帷之古藏。 非但彈絲弄竹。 客有一蠹天地。 二竪江湖。 看大化之無停。 喜臨川上。 追前脩而莫及。 愧【恐缺】山阿。 輕鷗萬里心。 一天晴月。 老鶴千齡志。 百鍊澄瀾。 今來勝區。 立臺榭之通豁。 此意愈暢。 遡宇宙之餘風。 賦有望於衆賢。 恨乏扛鼎筆力。 詩效嚬於往轍。 豈待助席神功? 略抒胸襟。 庸塵窓壁。 기미(箕尾) 28수(宿)에서 동쪽 별자리인 기수(箕宿)와 미수(尾宿)에 해당하는 중국의 유연(幽燕) 지역, 즉 요동 일대를 가리킨다. 은(殷)나라의 명재상 부열(傅說)이 죽은 뒤에 그의 정신이 하늘로 올라가 기성(箕星)과 미성(尾星) 사이에 별자리를 이루었다는 고사를 원용한 것이다. 《장자》 〈대종사(大宗師)〉에 "부열이 도(道)를 얻어서 무정을 도와 천하를 모두 소유하였으며, 죽은 뒤에는 동유성을 타고 기성과 미성을 몰아 열성과 나란하게 되었다.[傅說得之, 以相武丁, 奄有天下, 乘東維, 騎箕尾, 而比於列星.]"라고 하였다. 영공(令公) 정삼품과 종이품 관리를 높여 이르던 말이다. 달존(達尊) 천하 사람이 공통적으로 존중해야 할 덕목이라는 뜻으로, 작위[爵]와 연령[齒]과 덕(德)을 삼달존(三達尊)이라고 한다. 《맹자》 〈공손추 하(公孫丑下)〉에 "천하에 달존이 세 가지가 있으니, 관작(官爵)이 하나요, 연치(年齒)가 하나요, 덕(德)이 하나이다. 조정에는 관작만 한 것이 없고, 향당에서는 연치만 한 것이 없고, 세상을 돕고 백성을 자라게 하는 데는 덕만 한 것이 없다.[天下有達尊三, 爵一齒一德一. 朝廷莫如爵, 鄕黨莫如齒, 輔世長民莫如德.]"라고 하였다. 노전(老躔) 노인성(老人星)을 가리키는 말로 노인성은 장수를 상징하는 별이다. 후한(後漢)의 진식(陳寔)이 자질(子姪)을 데리고 순숙(荀淑)의 집을 방문하였는데, 그때마다 하늘에서는 덕성이 모이는 상서(祥瑞)가 보였다고 한다. 이를 보고 태사(太史)가 임금께 아뢰기를 "500리 안에 반드시 현인들의 회합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後漢書 권62 荀淑列傳》 《世說新語 德行》 삼어연(三語掾) 사도(司徒) 왕융(王戎)이 완첨(阮瞻)을 처음 만나서 성인(聖人)의 명교(名敎)와 노장(老莊)의 차이점을 물었을 때 완첨이 "아마 같지 않을 것이다.[將無同]"고 대답하자, 왕융이 한동안 감탄하다가 추천하여 연리(掾吏)로 삼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완첨을 보고 삼어연(三語掾)이라고 하였다. 《晉書 阮瞻傳》 중거(仲擧) 진번(陳蕃, ?~168)을 가리킨다. 중거는 그의 자이다. 동한(東漢) 말의 명신이다. 젊을 때 아버지의 친구가 방문했을 때, 손님이 오는데도 청소를 깨끗이 하지 않는지 이유를 묻자 "대장부가 일을 처리함에 마땅히 천하를 청소해야지 어찌 집 하나를 일로 여기겠습니까?[大丈夫處事, 當掃除天下, 安事一室乎?]"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후에 환관을 척결하려고 도모하다가 피살되었다. 《後漢書 권66 陳蕃列傳》 거원(巨源) 진(晉)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산도(山濤, 205~283)의 자(字)이다. 진(晉)나라 하내(河內) 회현(懷縣) 사람으로, 죽림칠현의 일원으로 마흔이 넘어서야 관직에 나갔다. 상서 우복야를 거쳐 이부 상서(吏部尙書)가 되어 좋은 인물을 많이 등용하였다. 대표적으로 문제(文帝) 때 참소를 입어 억울하게 죽은 혜강(嵆康)의 아들 혜소(嵆紹)를 무제(武帝) 때 천거하여 비서승(祕書丞)이 되게 하였다. 혜강(嵇康)·여안(呂安)과 친하였는데 뒤에 혜강이 처형을 당할 때 아들 혜소(嵇紹)에게 "거원이 있으니, 너는 외롭지 않을 것이다.[巨源在, 汝不孤矣.]"라고 하였다. 《晉書 권43 山濤列傳》 모구(某邱) 아무 언덕이란 뜻으로, 고향 땅의 언덕을 뜻한다. 한유(韓愈)의 송양소윤서(送楊少尹序)에 "이제 돌아가서는 그 나무를 가리키면서 '아무 나무[某樹]'는 나의 아버님께서 심으신 것이고, '아무 물[某水]'과 '아무 언덕[某邱]'은 내가 어린 시절에 낚시질하고 뛰어놀던 곳이다.' 하면, 고향 사람들이 모두 공경할 것이다.[今之歸, 指其樹曰: "某樹, 吾先人之所種也, 某水某丘, 吾童子時所釣遊也."]"라고 하였다. 구양수(歐陽脩) 1007~1072.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중국 송(宋) 나라 인종(仁宗)·신종(神宗) 때의 문신·문인이다. 한유(韓愈)로부터 큰 영향을 받아 고문(古文) 부흥에 힘썼다. 추밀부사(樞密副使)·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을 지냈다.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훌륭한 고문(古文)을 많이 창작하였고, 문집으로 《구양문충공집》 153권이 있다. 《신당서(新唐書)》와 《오대사기(五代史記)》 등을 편찬하였다. 사안(謝安) 320~385. 진(晉)나라 사람으로, 자는 안석(安石), 시호는 문정이다. 젊어서부터 청담(淸談)을 좋아하여 여러 차례 벼슬을 거절하고 회계군(會稽郡) 산음현(山陰縣)의 동산(東山)에서 왕희지(王羲之), 손작(孫綽) 등과 어울렸으나, 후에 벼슬길에 올라서는 공적을 쌓고 이름을 날렸다. 재상이 되었을 때 전진(前秦)의 부견(符堅)이 대군을 이끌고 침입하자 이를 격파하였다. 도연명(陶淵明) 365~427. 남북조 시대 진(晉)나라의 은사(隱士)이며 시인으로, 자는 원량(元亮)이며 뒤에 도잠(陶潛)으로 개명하였는데, 일설에는 연명이 그의 자라고도 한다. 팽택 현령(縣令)이 되었으나, 80일 만에 벼슬을 버리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전원으로 돌아와 문 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칭하였다. 시호는 정절(靖節)이다. 박상공(朴相公) 박순(朴淳 1523~1589)으로, 자는 화숙(和叔), 호는 사암(思菴), 본관은 충주(忠州),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명종(明宗)·선조(宣祖) 때의 문신·학자이다. 서경덕(徐敬德)의 문인(門人)으로, 영의정(領議政)을 지내고 이이(李珥)·성혼(成渾) 등과 교유하였으나, 서인(西人)으로 지목되어 탄핵을 받고 영평(永平) 백운산(白雲山)에 은거하였다. 저서에 《사암집(思菴集)》이 있다. 삼경(三逕) 은자가 사는 집을 비유하는 말이다. 한(漢)나라 장후(蔣詡)라는 사람이 왕망(王莽)이 집권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향리인 두릉(杜陵)에 은거하면서 대밭 아래에 오솔길 셋을 내고 벗 구중(求仲)과 양중(羊仲) 두 사람하고만 교유한 데서 유래하였다. 《蒙求 蔣詡三逕》 이양정(二養亭) 박순의 별업(別業)으로, 영평현(永平縣) 영평천(永平川) 가에 있었다. 세 가지 즐거움 맹자(孟子)께서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으니, 천하에 왕 노릇하는 것은 여기에 끼지 않는다. 부모가 다 생존하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시키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君子有三樂, 而王天下不與存焉.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仰不愧於天, 俯不怍於人, 二樂也.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라고 하였다. 《孟子 盡心上》 붕새가 ……같도다 '鵬蹇海浴의 [浴]'을 '龍臥波心의 [心]'과 대(對)를 맞추기 위하여 [沿]으로 고쳐 번역하였다. 익수(鷁首) 익조(鷁鳥)는 백로 비슷한 새로 바람에 잘 견딘다고 한다. 《회남자(淮南子)》 〈본경훈(本經訓)〉에 "익(鷁)은 큰 새이다. 그 새의 모양을 그려서 뱃머리에다 붙이기 때문에 익수(鷁首)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역려(逆旅) 나그네가 잠시 머물다 가는 여관을 말한다. 이백(李白)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에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광음은 백대의 과객이다.[夫天地者, 萬物之逆旅, 光陰者, 百代之過客.]"라고 하였다. 여기서의 역려는 천지 사이에서 한가롭게 노닌다는 뜻이다. 서호(西湖) 서호는 송나라 때 임포(林逋)가 살던 곳이다. 임포는 서호의 고산에 은거하여 20년 동안 성시(城市)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으며, 서화와 시에 능하였고 특히 매화시가 유명하다. 장가를 들지 않아 자식이 없었으며 매화를 심고 학을 길러 짝을 삼으니, 당시에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하였다. 사후에 화정(和靖)이란 시호를 받았다. 《世說新語 棲逸》 동리(東里) 춘추 시대 정(鄭)나라의 재상 자산(子産)을 가리킨다. 그가 동리에 살았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기도 하였다. 정자산은 수십 년 동안 국정을 잡고 있으면서 두 강대국인 진(晉)나라와 초(楚)나라의 사이에 끼어 있는 약소한 정나라가 외세의 침략을 전혀 받지 않도록 하는 수완을 발휘하였다. 그는 특히 외교 문서를 잘 작성하여, 《논어》 헌문(憲問)에, "공자가 말씀하셨다. 사명(辭命)을 만들 때 비침(裨諶)이 초고를 만들고 세숙(世叔)이 토론하고 행인(行人) 자우(子羽)가 수식하고 동리(東里) 자산(子産)이 윤색하였다.[子曰: "爲命, 裨諶草創之, 世叔討論之, 行人子羽修飾之, 東里子産潤色之."]"라고 하였다. 배견와(拜鵑窩) 박순이 1568년에 영평에 왔다가 산천의 빼어남을 보고 머물러 살 때 지은 집의 이름이다. 배견은 두견새에게 절한다는 뜻으로, 흔히 임금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두보(杜甫)가 촉(蜀)에서 지은 〈두견(杜鵑)〉에 "두견새가 늦은 봄 날아와서, 슬프게 내 집 곁에서 울었지. 내가 보고는 항상 재배했나니, 옛 망제의 넋임을 존중해서였네.[杜鵑暮春至, 哀哀叫其間, 我見常再拜, 重是古帝魂.]"라고 하였다. 박개(朴漑) 1511~1586. 본관은 충주(忠州), 자는 대균(大均), 호는 연파처사(烟波處士), 박우(朴祐)의 아들이다. 납극(蠟屐) 밀랍을 발라서 반질반질하게 한 나막신을 말하는데, 남조 송(南朝宋)의 사령운(謝靈運, 385~433)이 산에 올라가 노니는 것을 좋아하여 항상 나막신을 준비해 신고 다니면서 올라갈 때는 신의 앞굽을 떼고 내려갈 때는 신의 뒷 굽을 떼 내었다고 한다. 《宋書 권67 謝靈運傳》 구장(鳩杖) 옥구장(玉鳩杖)의 준말로, 나이 70이 되어 치사(致仕)한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한(漢)나라 때 나이 70이 되면 옥장(玉杖)을 주고 그 손잡이 끝에 비둘기 모양의 장식을 하였는데, 이는 비둘기가 체하는 법이 없기에 노인도 체증(滯症)이 없기를 바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後漢書 권15 禮儀志中》 마군(馬君) 마계조(馬繼祖)로, 한유는 마계조를 비롯하여 그의 부친 마창(馬暢), 조부 마수(馬遂) 삼대(三代)와 모두 친분이 있었는데, 생전에 이들 모두를 차례로 먼저 떠나보냈다. 이에 마계조의 묘문을 지으면서 이들과의 각별한 인연을 서술하고 서글픈 심정을 절절히 드러내었다. "처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40년도 못되었는데, 그들 할아버지, 아들, 손자 삼세의 죽음을 곡하였으니, 인간 세상에서 어떠하겠는가? 사람들이 오래도록 죽지 않고 이 세상에 살아감을 보려고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自始至今未四十年, 而哭其祖子孫三世, 于人世何如也? 人欲久不死而觀居此世者, 何也?]"라고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韓昌黎集》 권33 〈전중소감마군묘지(殿中少監馬君墓誌)〉 옥란(玉蘭) 지란옥수(芝蘭玉樹)와 같은 말로 남의 집안의 우수한 자제(子弟)를 예찬하는 말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 〈언어(言語)〉에 진(晉)나라 사안(謝安)이 여러 자제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묻자, 그의 조카인 사현(謝玄)이 "비유하자면 지란옥수가 뜰 안에 자라게 하고 싶습니다.[譬如芝蘭玉樹, 欲使其生於階庭耳.]"라고 대답했다는 구절이 보인다. 평천장(平泉莊) 평천장은 당(唐)나라 때 찬황백(贊皇伯)에 봉해진 명상(名相) 이덕유(李德裕, 787~850)의 별장이다. 이덕유가 하남(河南) 낙양현(洛陽縣) 남쪽에 평천장을 세웠는데, 둘레가 40리이고 기이한 초목과 돌이 많아 그 경치가 선경(仙境)과 같았다고 한다. 찬황공(贊皇公) 당나라의 재상인 이덕유(李德裕)를 지칭하는 말로, 그가 조군(趙郡)의 찬황(贊皇) 사람이므로 '찬황공'이라고 부른다. 백향산(白香山) 향산(香山)은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별호이다. 자는 낙천,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취음선생(醉吟先生)이다. 일찍이 형부 상서(刑部尙書)로 치사(致仕)한 뒤 동도(東都) 이도리(履道里)에 살면서 향산(香山)에 석실을 짓고 못을 파고 나무를 심었으며, 팔절탄(八節灘)을 만들었다고 한다. 《舊唐書 권166 白居易列傳》 청상(靑箱) 집안에 대대로 전해지는 학문을 말한다. 육조 송(宋)나라 때 왕준지(王准之)의 집은 대대로 강좌(江左)의 옛일을 잘 알아서 이를 기록하여 푸른 상자[靑箱]에 넣어 두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이를 일러 '왕씨(王氏)의 청상학(靑箱學)'이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宋書 권60》 일두(一蠹) 송(宋)나라 학자 이천(伊川) 정이(程頥)가 일찍이 말하기를 "농부가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오곡을 농사지으니 내가 그것을 먹고, 백공(百工)이 기물(器物)을 만드니 내가 그것을 사용하고, 군사들이 갑옷에 무기를 들고 나라를 지키니 내가 편안히 지낸다. 나는 사람들에게 혜택도 주지 못하고 세월만 보내고 있으니, 천지간에 한 마리 좀과 같은 존재이다. 다만 성인(聖人)이 남기신 글을 모아 엮어서 보충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하였다. 《二程遺書 권17》 이수(二竪) 병마(病魔)를 이른다. 진(晉)나라 경공(景公)이 병으로 누워있을 때 병마가 두 아이로 화신(化身)하여 왔다는 고사(故事)에서 나온 말이다. 대화(大化) 인간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네 단계의 큰 변화로, 유아기·청년기·노년기 그리고 죽음을 말한다. 《列子 天瑞》 백련(百鍊) 옛날 3대 보검의 하나로 꼽혔던 칼 이름이다. 강정(扛鼎) 큰 정(鼎)을 들 만한 힘을 가졌다는 뜻으로, 힘이 대단히 센 것을 말한다. 《사기》 권7 〈항우본기(項羽本紀)〉에 "항우는 힘이 세서 세 발 달린 솥을 두 손으로 불끈 들 만하였다.[力能扛鼎]"라고 하였는데, 한유의 시에 "용 무늬 새겨 백 곡을 담은 세 발 달린 큰 솥을 홀로 불끈 들 만한 필력을 그대는 가졌다오.[龍文百斛鼎, 筆力可獨扛.]"라는 표현이 보인다. 《韓昌黎集 권5 病中贈張十八》 효빈(效嚬) 찡그리는 것을 본받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분수를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남을 흉내 내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장자(莊子)》 〈천운(天運)〉에, "서시(西施)가 가슴이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자, 그 마을에 사는 추한 사람이 보고 아름답게 여겨 역시 가슴을 움켜쥐고 얼굴을 찡그리니, 그 마을에 사는 부자는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가난한 자는 처자를 거느리고 달아나 버렸다."라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구암서실팔영시서 龜巖書室八詠詩序 졸렬하고 우직한 우부(愚夫)는 일찍이 말을 하고자 하지 않았는데 정양(靜養)하는 자가 팔영시(八詠詩)를 부탁하면서 말하기를 "대저 사람은 말을 하고자 하지 않으나 어찌 또한 뜻을 말하고자 하지 않겠습니까?"109) 라고 하였다. 우부(愚夫)가 빙그레 웃으며 말하기를 "거북이 상서롭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자라가 신령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변화해서 바위가 되고 고개[嶺]가 되고, 흥기하여 구름이 되고 노을이 되니 하늘이 장차 이 구름과 노을로 비를 만들어 창창한 생명에 미치려고 하는 것인가? 아니면 높은 바위와 고개를 지켜 아침저녁으로 완상하게 하여 뜻을 고상하게 하려는 것인가? 적(篴)은 8번째에 죽(竹)이 되고 종(鍾)은 6번째에 궁(宮)이 되니 하늘이 장차 두 개의 음으로 소호(韶頀)110)를 연주하여 새와 짐승으로 춤을 추게111) 하고자 한 것인가? 아니면 범패[漁梵]112)에 깃들게 하여 불평을 울리게 한 것인가? 이 두 가지 것은 하늘에 있고 하늘에 있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마땅히 청송(晴松)으로 지조 삼고, 제월(霽月)113)로 마음가짐 삼아야 한다. 혹은 조양(朝陽)114)에서 울어서, 문왕의 서상(瑞祥)을 춤추는 것도 명이요, 택반(澤畔)에서 홀로 술 깨어115) 창랑의 돛배를 띄우는 것 또한 명(命)이다. 지인(至人)116)은 무심(無心)하여 더불어 화하여 함께 흘러가니 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구암서실(龜巖書室) 팔영시(八詠詩)〉에 화운하여 노래한다. 拙默愚夫嘗欲無言。 靜養子囑以八言曰: "夫人不言。 盍亦言志?" 愚夫菀爾曰: "龜吾知爲瑞。 鰲吾知爲靈。 化而爲巖爲嶺。 興起雲霞。 則天將使是雲霞爲雨澤而及蒼蒼者生耶? 抑守高巖嶺。 爲尙志朝暮之玩耶? 篴在八爲竹。 鍾在六爲宮。 天將使二音奏之韶頀。 使蹌蹌者舞耶? 抑寓於漁梵而鳴其不平耶? 斯二者在乎天。 在天者吾末如之何矣。 然則奈何? 當以晴松爲操。 霽月爲懷。 倘或鳴之朝陽。 爲舞文瑞命也。 澤畔孤醒。 泛滄浪帆亦命也。 至人無心。 與化同流。 吾何言哉?" 賡以八律而歌之。 대저 …… 않겠습니까 《서경》 〈순전〉에, 제순(帝舜)이 기(夔)에게 음악을 담당하게 하면서 "음악의 가사인 시(詩)는 뜻을 말한 것이고, 노래[歌]는 그 가사를 사람이 길게 늘여 부르는 것이고, 악기의 소리[聲]는 그 긴 목소리에 맞추어 연주하는 것이고, 율(律)은 악기의 그 소리를 조화시키는 것이다.[詩言志, 歌永言, 聲依永, 律和聲.]"라고 말한 데서 발췌한 것이다. 소호(韶頀) 좋은 음악이라는 뜻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양공(襄公) 29년 조에는 은(殷)나라 탕왕(湯王)의 음악이라 하였고,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상림부(上林賦)〉 주에 소는 순(舜)의 음악, 호는 탕왕의 음악이라 하였다. 새와 …… 추게 《서경》 〈익직(益稷)〉에 "관악기와 도고를 설치하고 축과 어를 써서 음악을 합하고 멈추되, 생과 용을 번갈아 울리니 새와 짐승들이 춤을 추며 소 음악을 아홉 번 연주하니 봉황이 와서 춤을 추었다.[下管鼗鼓, 合止柷敔, 笙鏞以間, 鳥獸蹌蹌, 簫韶九成, 鳳凰來儀.]"라고 하였다. 어범(漁梵) 어산(魚山)은 지명인데 또한 어산(漁山)이라고도 칭한다. 염불을 의미한다. 위(魏) 조식(曹植)이 이곳에 있으면서 비로소 범패(梵唄)를 제작하였으므로 이로 인해 범패를 어범(漁梵)이라 하였다. 또 《현찬 사(玄贊 四)》에 "진사왕(陳思王)이 어산(漁山)에 올라 암수(巖岫)에서 경외는 소리를 들으니 청완(淸婉)하고 추량(遒亮)하여 먼 골짜기에까지 메아리치므로 뒤이어 그 소리에 비겨 범패를 지었다. 그러므로 지금 속중(俗中)에서 어범이라 이른다."라고 하였다. 제월(霽月) 광풍제월(光風霽月)을 말한다. 광풍제월은 비 갠 뒤의 맑은 바람과 밝은 달로, 인품이 고결하고 마음이 탁 트인 사람을 비유한다. 황정견(黃庭堅)이 《산곡집(山谷集)》 권1 〈염계시(濂溪詩)〉의 서(序)에서 주돈이(周敦頥)를 평하면서 "용릉(舂陵)의 주무숙은 인품이 매우 고상하고 가슴속이 쇄락(灑落)하여 마치 비 온 뒤의 맑은 바람과 밝은 달 같다.[人品甚高, 胸中灑落, 如光風霽月.]"라고 하였다. 조양(朝陽) 봉명조양(鳳鳴朝陽)으로, 어진 인재가 때를 만나 일어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시경》 〈권아(卷阿)〉에 "봉황이 우니, 저 높은 언덕에서 울도다. 오동이 자라니, 저 산 동쪽에서 자라도다.[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라고 하였다. 당(唐)나라 때에 저수량(褚遂良) 등의 간신(諫臣)이 죽은 뒤로 감히 직간하는 신하가 없었는데, 이선감(李善感)이 어느 날 상소하여 직간을 하자 당시 사람들이 기뻐하면서 '봉명조양(鳳鳴朝陽)'이라고 한 고사가 있다. 《新唐書 권105 韓瑗列傳》 택반(澤畔)에서 …… 술 깨어 굴원이 축출당한 뒤의 모습을 〈어부사(漁父辭)〉에 "굴원이 방출당해 강담을 거닐고 택반에서 읊조릴 때 안색이 초췌하고 모습이 깡 말랐다.[屈原旣放, 游於江潭, 行吟澤畔, 顔色憔悴, 形容枯槁.]"라고 묘사하고, 축출당한 이유에 대해 묻자, 굴원이 "온 세상이 모두 탁한데 나만 청정하고 뭇사람들이 다 취했는데 나만 깨어 있기 때문이네.[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라고 대답한 것을 원용한 표현이다. 지인(至人) 일반적으로 덕이 높은 사람을 말한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지인은 아집이 없다.[至人無己]" 하였고, 《장자(莊子)》 〈천하(天下)〉에 "도의 대종(大宗)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을 천인이라 하고, 도의 정수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을 신인이라 하며, 도의 진수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을 지인이라 한다.[不離於宗, 謂之天人, 不離於精, 謂之神人, 不離於眞, 謂之至人.]"라고 하였다. 《장자(莊子)》의 외편 〈전자방(田子方)〉에도 백혼무인이 열자에게 도를 체험한 초월자의 절대 자유로운 경지를 가르쳐 주는 내용이 나오는데, "지인이란 위로는 푸른 하늘을 들여다보고 아래로는 황천에 잠기며, 팔방으로 멋대로 날아다니되 정신이나 기백이 변치 않는 것이다.[夫至人者, 上窺靑天, 下潛黃泉, 揮斥八極, 神氣不變.]"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제정생초동책후서 題鄭生抄東策後序 광주 사람 정생(鄭生)이 〈동구책대(東邱策對)〉를 가지고 와서 나에게 보여주며 말하기를 "공께서는 솜씨 좋은 장인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까? 여장(櫲樟)117)의 나무는 땅에서 자라 하늘에 닿으면 솜씨 좋은 장인이 취해서 동량(棟樑)을 만들고, 기재(杞梓)118)의 재목은 줄기가 곧고 결이 세밀하니 솜씨 좋은 장인이 취해서 가야금·거문고를 만들기 때문에 크고 가늘고 넓고 좁은 것이 모두 승묵규척(繩墨規尺)119)으로 헤아려져서 그릇의 쓰임에 합당하게 됩니다. 군주의 사람 씀이 어찌 이것과 다르겠습니까? 조정에서 과거제도를 설치하여 밝은 집사(執事)를 선발하여 팔도에 보내 위포(韋布)120)의 선비에게 책(策)을 물어 '모의 일은 마땅한가, 마땅하지 않은가?'라고 하면 제자가 대답하기를 '마땅한 것은 마땅하고 마땅하지 않은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집사가 선발하여 왕에게 올리면 왕이 큰 것은 크게 작은 것은 작게 선택하는 것을 마치 솜씨 좋은 장인이 그 재목의 크고 작은 것을 가려서 사용하는 것과 같을 것이니 그 일이 어찌 중차대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집사께서는 맞은 도(道)로서 묻질 않기 때문에 제자가 그에 맞지 않은 법으로 대답하였습니다. 번다하게 잘 꾸민 문장이고 잘 꾸민 말이며 속이고 거짓 행실일 뿐이니 어찌 법도·규격에 맞는 그릇을 취하여 사용하겠습니까? 군자가 군주에게 고하는 것 또한 이와 같으니 대부가 인재를 취하는 것이 아마도 여기에 그치지 않겠습니까? 슬픕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그 말을 듣고 어질게 여겨서 책의 뒤에 그대로 기록한다. 光之人鄭生。 持東邱策對來示于余曰: "公未見夫良工巨匠乎? 櫲樟之木。 生于地而戾于天則良工取之而棟樑。 杞梓之材。 幹直而理細則良工取之而琴瑟之。 故巨細洪纖。 皆繩墨規尺度。 合於器用。 君之用人。 豈異於此哉? 國朝設爲科圍。 選明執事送八路。 問策于韋布之士曰: '某事當乎不當乎?' 則弟子對曰: '當者當不當者不當。' 執事取而進之于王。 王擇其大者大之。 小者小之。 若良工之巨細其材而用之。 其爲事豈不重且大歟? 然今之執事者。 問之不以其道。 故弟子對之不以其法。 藻章而錦句而已。 誕譎而詐飭而已。 安敢取其繩墨尺度器用哉? 君子之告君上者。 亦猶乎是。 大夫之取人材者。 其止此歟? 悲夫!" 余聞其言而賢之。 仍記于卷後云。 여장(櫲樟) 좌사(左思)의 〈오도부(吳都賦)〉에 나오는 나무 이름으로 녹나무의 일종인데 훌륭한 재목으로 쓰인다. 이 녹나무는 중국 남방에 자생한다. 기재(杞梓) 기재는 먹구슬나무와 가래나무로, 대표적인 좋은 목재인데 훌륭한 인재라는 뜻이다. 초(楚)나라 영윤(令尹) 자목(子木)이 성자(聲子)에게 묻기를 "진(晉)나라 대부와 초나라 대부를 비교할 경우 어느 쪽이 더 훌륭한가?" 하니, 성자가 대답하기를 "진나라의 경(卿)은 초나라 경보다 못하다. 초나라 대부는 훌륭한 재목이 매우 많아 전부가 경의 재목이다. 이는 마치 기재와 피혁(皮革)을 초나라에서 수입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26年》 승묵규척(繩墨規尺) 모두 목공이 집을 지을 때 쓰는 연장이다. 규는 둥근 자이고, 척은 일반 자이며, 승묵은 목재를 바르게 재단하기 위한 먹줄이다. 따라서 이것들은 모두 규범과 법도를 말한다. 위포(韋布) 위대포의(韋帶布衣)의 준말로, 가죽으로 만든 띠와 베로 만든 옷을 말한다. 벼슬하기 전에 입는 옷인데, 흔히 벼슬하지 않은 선비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이공(李公)【단상(端相)165)】의 시에 차운하여 명(明)나라 사람 임인(林寅)166) 등에게 주다 次李公【端相】韻。贈大明人林寅等。 한(漢)나라의 의관 쓴 이 어느 곳에서 왔는가변방의 구름과 연(燕)나라의 풀 길을 누가 열었는가목릉(穆陵)167)에 전날 밤 뜬 3경(更)의 달석로(石老)168)의 곧은 혼 눈물 삼키면서 맴도네 大漢衣冠何處來塞雲燕草路誰開穆陵前夜三更月石老貞魂飮泣迴 단상(端相) 이단상(李端相, 1628~1669)을 가리킨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유능(幼能), 호는 정관재(靜觀齋)다. 1648년 과거에 급제하여 교리, 병조 정랑, 인천 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664년 집의가 되어 입지권학(立志勸學)에 관한 다섯 조목을 상소하고 스스로 관직을 떠났다. 그의 문하에서 아들인 이희조(李喜朝)와 김창협(金昌協)·김창흡(金昌翕)·임영(林泳) 등의 학자가 배출되었다. 임인(林寅) 임인관(林寅觀)으로 추정된다. 중국 복건성(福建省) 열서도(烈嶼島) 출신인 임인관, 진득 등 95명이 일본에 무역하러 갔다가 제주도 대정현(大靜縣)에 표류해 왔는데, "명(明)나라가 망한 갑신년(1764, 영조40) 이후로 바다에 나온 지 10년이 지났다. 이제 연해(沿海)가 평온하다 하므로 부모처자를 찾아 돌아가고자 한다." 하였다. 그런데 조정에서 이들을 압송해 청(淸)나라 예부(禮部)로 보냄으로써 이들을 모두 처참하게 죽게 만들었다. 《顯宗實錄 8年 6月 21日, 10月 3日》 목릉(穆陵) 선조(宣祖)와 그 비인 의인왕후(懿仁王后) 박씨(朴氏), 그리고 계비(繼妃)인 인목왕후(仁穆王后) 김씨(金氏)의 능이다. 석로(石老) 김상헌(金尙憲, 1570~1652)을 가리키는 듯하다.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석실산인(石室山人)이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예조 판서로서 주화론(主和論)을 배척하고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펴다가 인조(仁祖)가 항복하자 안동으로 은퇴하였다. 1639년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요구한 출병에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가 청나라에 압송되어 6년 후 풀려 귀국하였다. 1645년 특별히 좌의정에 제수되고,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윤 사군【종지169)】이 천관산(天冠山)170)을 노닐고서 엮은 시록(詩錄) 뒤에 제하다 題尹使君【宗之】遊天冠山詩錄後 하늘 너머의 대붕(大鵬)171)과 여섯 자라의 머리172)당시 진 시황(秦始皇)은 배를 띄우지 못하였네173)누가 알았으리오 남창(南昌)의 신선처럼 늙은 사군174)죽여(竹輿)에 서둘러 올라 영주(瀛洲)175)에 이를 줄을 大鵬天外六鰲頭當日秦皇未泛舟誰識南昌仙老伯竹輿催駕到瀛洲 종지 당시 남평 현감(南平縣監)으로 있던 윤종지(尹宗之, 1597~?)를 가리킨다.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임종(林宗), 호는 백봉(白篷), 자호(自號)는 송월정(松月亭)·소수주인(小睡主人)이다. 1618년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대과(大科)에는 급제하지 못하였다. 호란 때 난리를 만나 영남으로 피신, 유리(流離)생활을 하다가 효종 즉위년에 다시 음직(蔭職)에 발탁되어 남평 현감, 곡산 군수(谷山郡守), 대구 부사(大邱府使) 등을 역임하였다. 천관산(天冠山)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 꼭대기의 바위 모습이 천자의 면류관(冕旒冠)과 같다 하여 천관산이라 불린다. 하늘 너머의 대붕(大鵬) 높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붕새를 말한다. 《장자》 〈소요유(逍遙遊)〉에, "북쪽 바다에 물고기가 있으니, 그 이름은 곤이다. 곤의 크기는 몇 천 리인지 모른다. 변화하여 새가 되니, 그 이름은 붕이다. 붕의 등짝은 몇 천 리인지 모른다. 기운차게 떨쳐 날아오르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에 드리운 구름과 같다. 이 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남쪽 끝의 검푸른 바다로 날아가려고 한다. 남쪽 바다란 하늘의 못, 천지다.[北冥有魚 其名爲鯤 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 化而爲鳥 其名爲鵬 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是鳥也 海運則將徙於南冥 南冥者 天池也]"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여섯 자라의 머리 '여섯 자라'는 바닷속에서 삼신산(三神山)을 머리에 이고 있다는 전설상의 동물이다. 거인국인 용백국(龍伯國)의 어떤 사람이 한 번의 낚시로 이 자라 여섯 마리를 한꺼번에 낚았다고 한다. 《列子 湯問》 당시……못하였네 진 시황(秦始皇)이 바다를 건너서 해 돋는 곳을 보고자 하여 석교(石橋)를 놓으려 하였는데, 해신(海神)이 나타나서 다리 기둥을 세워 주었다. 진 시황이 이를 고맙게 여겨 만나 보려고 하니, 해신이 말하기를 "내 모습이 추하니, 내 모습을 그리지 않기로 약속한다면 만나겠다."라 하였다. 이에 진 시황이 들어가 해신과 만났는데, 진 시황의 좌우 사람들이 몰래 해신의 발을 그렸다. 그러자 해신이 성을 내면서 빨리 나가라고 하였다. 진 시황이 말을 타고 곧장 나왔는데, 말 뒷다리가 석교에서 미처 떨어지기도 전에 석교가 무너졌다는 고사가 있다. 《藝文類聚 卷79》 남창(南昌)의……사군 윤종지(尹宗之)를 가리킨다. 한(漢)나라 때 매복(梅福)이 일찍이 남창위(南昌尉)로 있다가 왕망(王莽)이 정권을 잡자 벼슬을 버리고 구강(九江)에 가서 신선의 도를 얻었다고 한다. 《漢書 卷67 梅福傳》 영주(瀛洲)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三神山)의 하나인데, 여기서는 천관산을 가리킨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잠 箴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자신잠 自新箴 천명이 밝게하늘에서 내려오고하늘에서 내려와천하에 베풀어진다사람이 이를 얻어서바로 명덕이라 하니하늘에서 내려온지라밝고도 깨끗하다밝고도 깨끗하니광대하게 통철한다저울처럼 공평하고거울처럼 맑으며비어 있되 신령하여이치와 일이 모두 드러난다그러나 혹 가려지면본연의 성이 닫히니신령함이 되레 막히고광대함도 좁아진다밝게 비추는 거울을먼지와 때가 차지하고깨끗한 보옥도티와 흠이 쌓이나니다듬지 않고 쪼지 않으면하자가 절로 벗겨지지 않는다빨지 않고 닦지 않으면먼지가 어찌 절로 씻기랴몸의 때는씻어서 말끔해지지만마음의 가려짐은예가 아니면 씻기 어렵다머리 감고 몸을 씻어내 몸을 정결히 하듯씻어내고 빨아내어내 덕을 새롭게 하라어떻게 새롭게 하는가날로 새롭고 또 새롭게 하라명덕이 밝아지는 것은사람으로 인해 밝아진다밝히지 않으면 밝지 않고새롭게 하지 않으면 새로워지지 않는다명덕은 저기에 달려 있으나새롭게 하는 것은 나에게 달려있다명덕이 밝아지는 지 여부는내가 새로워지는 지 여부에 달려있고내가 새로워지는 지 여부는마음이 바른 지 여부에 달려있다마음이 진실로 바르면나는 절로 새로워지고내가 정말 새로워지면덕은 절로 새로워진다구습을 바꾸고 없애면신명이 펴질 것이다사욕이 와서 물들면 보존하지 못하고앞서 바로잡으면 도리어 허령해진다나의 마음과 몸은나란히 어두움과 밝음의 원인이 된다내 몸은 내가 붙드는 것이고내 마음은 내가 적시는 것이다새롭게 하느냐 새롭게 하지 않느냐는나에게 달려 있지 어찌 저에게 있겠는가내가 명덕을 밝히려 한다면어찌 밝아지지 않겠는가내가 새롭고 새로워지려 한다면어찌 새로워지지 않겠는가악이 있으면 제거하고사욕이 있으면 저지하라사욕을 막고 인을 행하면심덕이 모두 새로워질 것이다나의 덕이 이미 새로워지면백성의 덕도 새로워질 것이다백성이 이미 새로워지면나라가 평안해질 것이다아 나 소자여어찌 각기 힘써 바로잡지 않으랴 命之赫然。 降之自天。 降之自天。 天下來宣。 人於是得。 乃謂明德。 降之自天。 明且潔焉。 旣明且潔。 廣大通徹。 如衡之平。 如鑑之淨。 虛而且靈。 理事具形。 然或有蔽。 本然性閉。 靈者反塞。 廣者又窄。 昭然明鑑。 塵垢是陷。 潔然寶玉。 瑕玷是積。 非磨非琢。 玼不自剝。 不濯不硏。 塵豈自湔。 身上之垢。 浴以淸瀏。 心上之蔽。 非禮難洗。 沐矣浴矣。 我身潔矣。 滌焉濯焉。 我德新焉。 如何以新。 日新又新。 惟明之明。 因人以明。 不明不明。 不新不新。 明者在彼。 新之在己。 明之明否。 在我新否。 在我新否。 在心正否。 心苟正矣。 我自新矣。 我苟新矣。 德自新矣。 舊習革去。 新命有舒。 來染未全。 前正反虛。 惟我心身。 昏明並因。 我身我持。 我心我洽。 惟新不新。 在己焉彼。 我欲明明。 胡焉不明。 我欲新新。 焉乎不新。 有惡斯去。 有慾斯沮。 窒慾行仁。 心德具新。 我德旣新。 民德可新。 民旣新矣。 國可平矣。 嗟余小子。 盍各勉正。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계타잠 戒惰箴 내가 칠정을 아쉽게 여기는 건게으름이 이름에 없는 것이다44)무릇 나의 한 뜻을세움이 견정하지 않아서그 죄에 따라 벌을 받는 것은모두 게으름으로 인해 생긴다사체가 이미 게으르게 되면그로 인해 총명을 잃는다겉이 이미 장중하지 않으면안도 따라서 태만해지니음란한 생각과 난잡한 상념은그로 인해 복잡다단하게 되며배움이 실추되어 황폐해지고성도 따라서 어두워진다그 허물을 깊이 생각해보면불경이 과오가 된 것이니마음이 주일무적한다면외물과 함께 변화하지 않는다종일토록 공경하여상제를 마주 대한 듯하면비록 태만하고 싶어도어찌 감히 스스로 방종하랴엄연한 천군45)이오직 나의 엄한 스승이라엄숙하고 단정해야 하니감히 조금이라도 방자하랴혹시라도 어김이 있으면이 잠언의 말을 볼지어다 我惜七情。 惰惟無名。 凡我一志。 立不堅貞。 案伏其罪。 儘從惰生。 四軆旣惰。 仍失聰明。 外旣不莊。 內從而慢。 淫思亂想。 仍此多端。 學墜而荒。 性隨而昏。 深思厥咎。 不敬爲過。 心若主一。 不與物化。 欽欽終日。 對越在上。 雖欲惰慢。 豈敢自放。 儼然天君。 惟我嚴師。 肅拱端默。 其敢小肆。 如或有違。 視此箴辭。 칠정을……것이다 '칠정(七情)' 가운데 '惰'가 포함되지 않은 것이 아쉽다는 것이다. 칠정은 사람의 일곱 가지 감정을 말한다. 《예기(禮記)》 〈예운(禮運)〉에 "무엇이 칠정인가,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두려움과 사랑함과 미워함이다.[何謂七情, 喜怒哀懼愛惡欲.]" 하였다. 천군(天君) 마음을 가리킨다. 《순자(荀子)》 〈천론(天論)〉에 이르기를, "마음이 한가운데 빈자리에 있으면서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을 다스리는 까닭에 마음을 하늘의 임금이라고 하는 것이다.[心居中虛, 以治五官, 夫是之謂天君.]"라고 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중원(中原)에 전란이 많다는 소식을 듣고 聞中原多亂 사해(四海)에 전란이 일어난 지 20년남아의 머리 위로 푸른 하늘 바라보기 부끄럽네한밤중에 기운 토하여 무지개 피어나고밝은 해가 길게 신음하여 구름과 안개 이어지네주의(周顗)의 정자 가에서 누가 눈물을 닦아줄까203)공명(孔明)의 두둑 위에서 다만 밭을 갈 뿐이네204)어찌 알겠는가 위수(渭水) 북쪽에 낚싯줄 드리운 자가만고의 경륜(經綸)을 홀로 차지하고 있을 줄205) 四海干戈二十年男兒頭上愧蒼天中宵吐氣虹霓發白日長吟雲霧連周凱亭邊誰拭淚孔明隴上但耕田焉知渭北垂絲者萬古經綸獨自專 주의(周顗)의……닦아줄까 원문의 '주개(周凱)'는 '주의(周顗)'의 잘못이다. 서진(西晉) 말년에 중원이 전란에 휩싸이면서 진 나라 왕실이 남으로 옮겨가 동진(東晉)을 세웠다. 동진의 여러 명사(名士)들이 신정(新亭)에 모여 술을 마시면서 즐기는데, 주의가 탄식하며 "풍경은 다르지 않은데 눈을 들어 바라보니, 산하(山河)가 다르다." 하였다. 이에 왕도(王導)가 얼굴빛을 고치고 "함께 나랏일에 힘을 바쳐 신주(神州)를 회복해야 하는데, 어찌하여 초수(楚囚)처럼 맞대고 울기만 하는가?"라 하였다. 《晉書 卷65 王導列傳》 공명(孔明)의……뿐이네 '공명(孔明)'은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으로, 그는 출사(出仕)하기 전 남양(南陽)에서 몸소 농사지으며 생활하였다. 어찌……줄 주 문왕(周文王)이 강태공(姜太公)을 얻은 고사를 말한다. 문왕이 사냥을 나가기 전에 점을 쳤는데, 그 점괘에 "잡을 것은 용도 아니요 이무기도 아니며, 호랑이도 아니요 말곰도 아니요, 범도 아니요, 비휴도 아니다. 얻을 것은 패왕의 보좌이다.[所獲 非龍非彲 非虎非羆 所獲 霸王之輔]"라 하였다. 사냥을 나간 뒤에 과연 위수(渭水) 가에서 강태공을 만나 후거(後車)에 싣고 돌아와 스승으로 삼았다고 한다. 《史記 卷32 齊太公世家》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섬돌 옆 푸른 잣나무 아래 해당화(海棠花)가 있어 붉고 푸른빛이 서로 비쳤다. 이에 감회가 일어 제하다 階邊翠栢下有海棠。紅綠相暎。仍起感而題。 푸른 잣나무 섬돌 옆에 해당화 심어져 있으니선명한 붉고 푸른빛 몹시 빼어나네이슬 같은 볼과 붉은 뺨 바람 앞에 곱고눈 견디는 자태215)와 푸른 수염216) 비 온 뒤에 자라나네금수(錦水)의 와룡(臥龍)217) 마치 접할 수 있을 듯혜주(惠州)의 선인(仙人)218) 마치 서로 바라보는 듯두 공의 기개 지금 천년이나 되었으니그대들 대하며 나직이 읊조림에 상심 어린 흥이 이네 翠栢階邊樹海棠分明紅綠出尋常露腮丹臉風前嫰雪態蒼髥雨後長錦水臥龍如可接惠州仙子若相望二公氣槩今千載對爾沉吟興有傷 눈 견디는 자태 원문은 '설태(雪態)'다. 잣나무는 눈 내리는 겨울에도 시들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논어》 〈자한(子罕)〉에, "한 해가 다하여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라 하였다. 푸른 수염 원문은 '창염(蒼髥)'이다. 잣잎을 노인의 수염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소식(蘇軾)의 시 〈불일산영장로방장(佛日山榮長老方丈)〉에, "산중에는 단지 푸른 수염 늙은이 있어, 쓸쓸한 몇 리 길에서 사람을 맞이하고 보낸다.[山中只有蒼髥叟 數里蕭蕭管送迎]"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금수(錦水)의 와룡(臥龍) '와룡(臥龍)'은 촉한(蜀漢)의 승상 제갈량(諸葛亮)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천성(四川省) 금관성(錦官城)에 제갈량의 사당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으로 보인다. 두보(杜甫)의 〈촉상(蜀相)〉에, "승상의 사당을 어느 곳에서 찾을꼬, 금관성 밖에 잣나무가 늘어선 곳이로다.[丞相祠堂何處尋 錦官城外栢森森]"라 하여 제갈량 사당에 심어진 잣나무를 읊은 대목이 보인다. 혜주(惠州)의 선인(仙人) '혜주(惠州)'는 중국 광동성(廣東省) 혜양현(惠陽縣) 서쪽에 있는 지명이다. 송나라의 소식(蘇軾)이 이곳으로 유배된 일이 있었으므로, 여기서의 선인은 곧 그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소식은 일찍이 〈우거정혜원지동잡화만산유해당일주토인부지귀야(寓居定惠院之東雜花滿山有海棠一株土人不知貴也)〉라는 시를 지어 해당화에 대해 읊은 바 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사잠서 四箴序 내가 어려서 이 유가의 학문에 뜻을 두어 나이 15, 6세에 대강 《논어(論語)》·《맹자(孟子)》·《중용(中庸)》·《대학(大學)》의 대의를 통하였는데 18세에 부모님을 잃고 그로 인해 큰 병을 얻었다. 숨이 끊어질 듯 연명을 해오던 거의 10여 년 동안 이에 의방복이(醫方服餌)의 책을 얻어 공부해보고 침잠(沉潛)하고 섭렵(涉獵)하여 그 내용을 대략 알았다. 집은 가난하고 몸은 병들어 약재를 구하기 어려워 또 도인법(導引法)121)을 단련하고 병을 늦추고 생명을 연장하는 방술을 구하여 의지와 실천을 한 지 여러 해 되었는데 대개 병의 7, 80%는 제거되었다. 이때 선친 무덤의 이장의 일이 있어서 또 감여(堪輿)122)의 학문에 골몰하느라 몇 년을 낭비하여 병은 이미 조금 나아졌지만 어린 나이에 기가 거칠어졌다. 그로 인하여 개연히 병법(兵法)에 뜻을 두어 자못 그것에 힘을 썼다. 이것으로 인하여 중후한 기운은 수련하고 단련하는 과정에서 사라져 가볍고 방탕하게 변하였고, 총명한 기질은 여러 해 침아(沉疴)의 나머지에 빼앗겼으며, 몸가짐의 굳은 의지는 지관(地官)의 탄괴(誕怪)와 병가(兵家)의 임기웅변의 술책에서 흔들림을 당하였다. 그로 인하여 호산(湖山)의 질탕(跌宕)한 뜻과 시와 술로 안일하게 세월만 보내게 되어 본연의 진실은 이미 8.90%를 잃게 되었다.해 무술년(1658, 효종9) 가을에 우연히 집에 보관된 서적을 열람해보고는, 한 편에 《심경(心經)》123)을 얻어서 읽고 나도 모르게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바로 10년간 잘못 들어간 뜻을 다 포기하고는 옛 학문에 머리를 돌린 것이 지금 1년이 되었는데 치우친 성품을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날로 심해졌다. 돌아보니 올해 나이가 36살인데 길을 잃고 방황하며 갈림길에서 분주했다. 지금 조금 깨달은 것이 있지만 구습에 물들어 벗어나기 어렵다. 반세기를 돌아보니 자신을 상실했음이 확연(廓然)하여 이에 사잠(四箴)124)을 지어서 벽에 걸어놓고 마음의 경계로 삼는다. 某早有志于此學。 年十五六。 粗通論孟庸學大意。 十八而孤。 仍得大病。 奄奄垂盡幾十年餘。 於是搜得醫方服餌之書。 沉潛涉獵。 略知其意。 家貧身病。 殫於藥料之難得。 又求導引修鍊弛病延生之術。 着意行之有年。 盖病去七八。 於是有先親移葬之事。 又汨於堪輿之學。 費意數年。 病旣小愈。 年少氣麤。 仍慨然有志于兵家。 頗用力焉。 於是重厚之氣。 見消於修鍊導達之習而變爲輕放。 聰明之質。 見奪於積年沉疴之餘而變爲躁妄。 操守之志。 見搖於地家誕怪兵家奇變之術而化作曠蕩。 仍有跌宕湖山之志。 詩酒玩揭之興。 本然之眞。 已斲喪八九矣。 歲戊戌秋。 偶閱家藏書籍。 得一篇心經而讀之。 不覺愧汗沾背。 乃盡棄十年誤入之志。 而回頭舊學者一年于今。 而性偏難克者。 日又日甚。 自顧今年三十有六。 而失路倀倀。 奔走歧塗。 今有小覺而舊染難脫。 回顧半世。 廓然自喪。 於是乃作四箴。 揭帖于壁。 以戒于心云云。 도인법(導引法) 도인술(導引術)이라고도 하며, 음강(陰康)에 의하여 창안되었다고 전하는 도가의 무병장수를 위해 행한 건강법이다. 손과 발을 움직여 기(氣)와 혈(血)을 신체 각 부위에 골고루 통하게 하는 방법으로 전신의 굴신(屈伸)과 지압(指壓)을 동시에 행하는 신체 운동과 병을 없애 수명을 연장하는 주문법, 호흡법 등을 포괄한다. 감여(堪輿) 집터나 묘지의 형세 또는 그것을 보아서 길흉을 판단하는 일이다. 《심경》 송나라 진덕수(眞德秀)가 경전(經傳)과 송나라 도학자들의 저술에서 심성 수양(心性修養)에 관한 격언을 모아 편찬한 책이다. 진덕수(眞德秀, 1178~1235)는 주자의 제자로, 자는 경원(景元)이고 호는 서산(西山)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영종(寧宗) 경원(慶元) 5년(1199) 진사(進士)에 급제하여 호부 상서와 한림학사를 역임하였다. 저서에 《심경》·《대학연의(大學衍義)》·《당서고의(唐書考疑)》·《독서기(讀書記)》·《문장정종(文章正宗)》·《정경(政經)》·《서산문집(西山文集)》 등이 있다. 사잠(四箴) 안연(顔淵)이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조목을 물었을 때 공자가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라고 답하였다. 《論語 顔淵》. 이것에 대해서 정이가 〈시잠(視箴)〉·〈청잠(聽箴)〉·〈언잠(言箴)〉·〈동잠(動箴)〉을 지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기 記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춘풍루기 春風樓記 천지는 만물을 생육하는 것으로 마음을 삼는 자이니 물(物)에서 생(生)하는 것은 원(元)보다 앞선 것이 없다. 원이란 천지의 대용(大用)이면서 사람에게는 인(仁)이 되고, 때[時]에는 봄[春]이 된다. 춘(春)은 사시(四時)의 원(元)이요, 원은 사덕(四德)125)의 수(首)이다. 인仁)이란 오상(五常)126)의 원이요, 원은 사덕(四德)의 수(首)가 되어 형(亨)·이(利)·정(貞)에 또한 각각 왕성하다. 춘은 사시의 시작이고, 하(夏)·추(秋)·동(冬)에 토(土)와 더불어 같은 덕으로 사계절에 왕성하니, 춘원(春元)의 쓰임[用]이 어찌 크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자라게 하고 길러주는 춘원(春元)의 바람이 만물을 고동(鼓動)하여 만물을 양생한다. 그렇다면 춘(春)이란 사시의 전체이고 풍(風)이란 춘원의 대용(大用)으로 만물을 생육하니 군자의 풍(風)도 또한 이와 같고 군자의 인(仁)도 또한 이에 근본 한다. 옛사람이 춘·풍으로써 그 누정을 명명(命名)하는 이가 있었으니, 대개 여기에서 뜻을 취한 것이다.이 누정을 지음에 천근(天根)으로 들보 삼고 월굴(月窟)로 기둥 삼으며127) 간석(艮石)128)으로 대를 삼고 건곤(乾坤)으로 문을 삼도다. 인온(氤氳)한 기운은 창문에서 교감하고 염염(苒苒)한 햇살은 방문에서 화순(和順)하도다. 양곡(暘谷)129)에 해 돋으니 자시자생(資始資生)의 숙기 융융하고 동방에 훈풍 부니 구십춘광(九十春光)의 풍물 곳곳에 있도다.130) 상하의 산광 서로 푸르고 앞뒤의 물색 널리 푸르니 참 근원의 일맥 기묘하여 기록할 수 없도다. 당에 오르니 자홍색 봄빛 한창이고 방에 들어가니 난초 향기 진하도다. 팔방의 창문 사방으로 열리고 꽃과 버들은 사심이 없도다. 대나무 창은 양지를 향하고 뜰의 풀은 싱그러움 띠도다. 앞내에 비 지나가니 청산은 의구하고 후원에 바람 살랑대니 봄새가 지저귀도다. 누항(陋巷)131)으로 우이(嵎夷)132)를 삼고 궐리(闕里)133)로 양곡(暘谷)을 삼아 선천후천(先天後天)134)이 모두 가운데에 부쳐 삼십육궁(三十六宮)135)이 사이에 열 이루도다. 난간 밖 복숭아·자두는 동군(東君)136)의 고운 햇볕 자랑하고 창문 앞 매화·소나무는 건원(乾元)137)의 화창한 기운 알리도다. 누정 위 하늘 아득한 곳에 솔개 높이 날고 누정 아래 연못 만경(萬頃)에 물고기 뛰도다.138)문 닫고 바라보면 마음[天君]139)이 태평하여 사단(四端)140)이 온화하고 문 열고 살펴보면 맑은 봄날 경치 좋아 온갖 이치 함께 밝도다. 삼지일(三之日)·사지일(四之日)141)에 봄옷 만들어지거든 목욕하고 바람 쐬고 노래하며 돌아오는 흥을 미루어,142) 덕에 배부른 정신 깨끗하고 술병의 상쾌한 기운 투철하도다. 이에 훈증(薰蒸)하고 이에 도야(陶冶)한 즉 하남(河南)143)의 당상 좌중에 춘풍의 조화 이어가리라. 화려한 집과 금 구슬은 주옹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요, 인의 넓은 거처와 편안한 집144)은 이것이 주인이 즐기는 것이로다. 그러한 즉 하형(夏亨)의 장(長)은 이 누정이 밑천이요, 추리(秋利)의 성(成)도 이 누정이 밑천이요, 동정(冬貞)의 수(遂)도 이 누정이 밑천이니 만물의 자시자생(資始資生)이 어찌 이것에서 벗어나겠는가?누의 동쪽으로 치자면 인목(仁木)이 울창하여 동풍이 살랑살랑 천만 가지 꽃들 희디희고 붉디붉도다. 모두 봄철의 한 기운을 얻어 화평하고 아름다우니 윤택한 원시(元始)의 인택(仁澤) 같고, 크고 작고 높고 낮은 종류와 하늘을 날고 물에 잠기는 동물·식물이 제자리를 얻지 아니함이 없도다. 누의 서쪽으로 치자면 정로(正路)가 숫돌처럼 탄탄하여 하나의 티끌도 없으며 광풍이 쇄락하여 비 갠 뒤의 청명함이로다.145) 누의 남쪽으로 치자면 드높이 우뚝 솟은 하나의 예문 위로 달 오르자 거문고 타니 청허함[虛白]146) 일도다. 이에 공자·맹자와 이에 안자·증자의 문물이 여기에 있고 예악(禮樂)이 여기에 있도다. 누의 북쪽으로 치자면 지수(智水)는 천 길을 주야로 쉬지 않고 혼혼(混混)히 흘러 웅덩이 채우고 목표에 도달하여 문채 이루니147) 물고기가 파도를 희롱하고 백조는 깨끗하도다.148) 그렇다면 이 누를 세움에 실로 군자 이후에 이를 즐길 수 있다 하리라.149)이에 주인옹이 소요(逍遙)하고 서성이며 인을 구해 인을 얻어 상제(上帝)를 마주하여 집구석에 부끄럼 없고150) 일거일동에 부끄럼 없어 천지가 자리 잡고 만물이 생육됨에 이르도다. 이로 말미암아 원형이정(元亨利貞)151)의 천도(天道)와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유행과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인도가 이에 빈빈(彬彬)하고, 삼강오상의 인륜과 이오(二五) 사팔(四八)의 문채가 이에 혁혁(爀爀)하도다. 아! 지극하도다. 모든 군자가 이어서 수리해가면 이 누는 영원하리로다. 주관하는 자 누구인가? 송나라 선비 장남헌(張南軒)152)이요, 기록하는 자 누구인가? 해동(海東)의 사람이로다. 天地以生物爲心者也。 生乎物者。 莫先乎元。 元者天地之大用。 而於人爲仁。 於時爲春。 春者四時之元。 元者四德之首。 仁者五常之元。 元爲四德之首而於亨於利於貞。 亦各旺焉。 春爲四時之始而於夏於秋於冬。 與土同德而旺於四季。 春元之用。 豈不大哉。 故春元長養之風。 鼔動萬物而萬物養生。 然則春者四時之全體。 風者春元之大用而生育萬物。 則君子之風。 亦猶乎是。 君子之仁。 亦本於是。 古之人有以是名其樓者。 盖取於此也。 斯樓之作。 以天根爲樑。 以月窟爲棟。 艮石爲臺。 乾坤爲門。 氤氳之氣。 交感於軒窓。 苒苒之光。 和順於房櫳。 東暘載陽。 資始資生之淑氣融融。 長男薰風。 九十春光之景物在在。 上下山光交翠。 前後水色漾綠。 眞源一脉。 妙難勝記。 至於升堂則紫紅之韶光濃郁。 入室則芝蘭之香氣芬芳。 八窓四闢。 花柳無私。 竹牖向陽。 庭草含滋。 前川雨過。 靑山依舊。 後園風微。 春鳥嚶嚶。 以陋巷爲嵎夷。 以闕里爲暘谷。 先天後天。 都付其中。 三十六宮。 成列其間。 檻外桃李。 矜東君之艶陽。 窓前梅松。 稟乾元之和氣。 樓之上玉宇寥廓。 鳶飛戾矣。 樓之下銀塘萬頃。 魚物躍矣。 闔戶而觀之。 天君泰靜。 四端藹然。 開門而察之。 春晴物佳。 萬理俱明。 三之日四之日。 春服旣成則浴風咏歸之興可推而飽德之精神淸越。 玉壺之爽氣透澈。 薰蒸於此 鎔陶於此 則河南堂上。 座中春風之化可承焉。 玉戶金壁。 非主翁之所喜。 廣居安宅。 是主人之所樂。 然則夏亨之長。 此樓之所以資。 秋利之成。 此樓之所以資。 冬貞之遂。 亦此樓之所以資。 則稟物之所以資始資生者。 豈有外於此哉? 至如樓之東。 仁木蔥鬱。 東風習習。 千蘂萬葩。 白白紅紅。 咸得靑陽之一氣。 熙皡賁若。 潤元始之仁澤。 而洪纖高下之類。 飛潛動植之物。 無不得所焉。 樓之西。 有正路坦坦如砥。 無一塵垢。 光風灑落。 霽月淸明焉。 樓之南。 有一禮門。 巍然屹立。 月出淸琴。 虛白乃生。 孔孟於是。 顔曾於是。 文物在玆。 禮樂在玆焉。 樓之北。 智水千仞。 混混源源。 不舍晝夜。 進以盈科。 達以成章。 遊魚弄波。 白鳥鶴鶴焉。 然則此樓之作。 眞可謂君子而後樂此者也。 於是主人翁。 逍遙焉徜徉焉。 求仁得仁。 對越上帝。 不愧屋漏。 俯仰無怍。 以至於天地位萬物育焉。 由是而元亨利貞之天道。 春夏秋冬之流行。 仁義禮智之人道。 彬彬於玆。 三綱五常之倫。 二五四八之文。 爀爀於玆。 猗歟至哉! 凡百君子。 踵武而葺之。 則庶斯樓之不朽也。 主之者誰? 宋朝名儒張南軒也。 記之者誰? 海東人也。 사덕(四德) 《주역(周易)》에서 말하는 천지자연의 네 가지 덕인 원(元)·형(亨)·이(利)·정(貞)을 말한다. 오상(五常)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의 다섯 가지 덕을 말한다. 천근(天根)으로 …… 삼으며 천근은 《주역》의 복괘(復卦)를, 월굴(月窟)은 구괘(姤卦)를 가리키는데, 각각 양(陽)과 음(陰)을 비유한 것으로서 천지 음양의 이치를 말할 때 쓰는 표현이다. 이 두 말은 송(宋)나라 소옹(邵雍)의 〈관물(觀物)〉에 "이목 총명한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니 하늘이 부여한 것 빈약하지 않네. 월굴을 탐구하여야만 물건을 알 수 있고 천근을 밟지 않으면 사람을 어찌 알겠느냐? 건괘가 손괘를 만난 때에 월굴이 되고 지괘가 뇌괘를 만난 곳에 천근을 보도다. 천근과 월굴이 한가히 왕래하니 삼십육궁이 모두 봄이라오.[耳目聰明男子身, 洪鈞賦與不爲貧. 須探月窟方知物, 未躡天根豈識人. 乾遇巽時爲月窟, 地逢雷處見天根. 天根月窟閒往來, 三十六宮都是春.]"라고 읊은 시에 함께 보인다. 간석(艮石) 간괘(艮卦)가 물상(物象)에 있어 산이 되고 작은 길이 되고 돌[石]이 된다고 하였다. 《周易 說卦傳》 양곡(暘谷) 해가 나오는 곳을 말한다. 《서경》 〈요전(堯典)〉에 "희중(羲仲)에게 나누어 명하여 우이(嵎夷)에 머물게 하시니 양곡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는데, 공안국(孔安國)의 전(傳)에 "양(暘)은 밝음이니 해가 그 곡(谷)에서 나와 천하가 밝아지기 때문에 양곡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구십춘광(九十春光) 봄의 석 달 90일 동안을 말한다. 누항(陋巷)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의 안빈낙도(安貧樂道)를 뜻한다. 공자가 안회를 칭찬하기를, "한 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로 누추한 거리에 사는 것을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뎌 내지 못하는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아니하니, 어질구나 안회여.[一簞食一瓢飮, 在陋巷, 人不敢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라고 하였다. 《論語 雍也》 우이(嵎夷) 해가 떠오르는 곳이다.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희중(羲仲)에게 따로 명하여 우이(嵎夷)에 살게 하였으니 그곳이 바로 양곡(暘谷)이다. 떠오르는 해를 공손히 맞이하여 봄 농사를 고르게 다스리도록 하였다.[分命羲仲, 宅嵎夷曰'暘谷', 寅賓出日, 平秩東作.]"라는 말이 나온다. 궐리(闕里) 중국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에 있는 마을로 공자의 고향이다. 선천후천(先天後天) 우주의 본체와 만물의 본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송나라 소강절(邵康節)이 주역(周易)의 괘도(卦圖)를 해설하고 선천도(先天圖)와 후천도(後天圖)를 구분하여, "복희씨(伏羲氏)의 팔괘(八卦)는 선천(先天)이요, 주문왕(周文王)의 팔괘는 후천(後天)이다."라고 하였다. 삼십육궁(三十六宮) 삼십육궁은 64괘(卦)와 같은 것으로서 64괘 모두가 하나의 봄기운의 연속이라는 뜻이다.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삼십육궁과 관련하여, "64괘 중에 변역(變易)하는 괘가 8이니, 건괘(乾卦)·곤괘(坤卦)·감괘(坎卦)·이괘(離卦)·이괘(頥卦)·대과괘(大過卦)·중부괘(中孚卦)·소과괘(小過卦)이고, 교역(交易)하는 괘가 56이니, 둔괘(屯卦)·몽괘(蒙卦) 이하가 그것이다. 변역은 8괘가 각각 한 궁이 되고, 교역은 2괘가 합하여 한 궁이 된다."라고 하였다. 《星湖僿說 권20 經史門 三十六宮》 동군(東君) 봄을 맡은 신 이름이다. 봄은 동방(東方)과 청색(靑色)으로 대표되기 때문에 동제(東帝)· 동황(東皇)·청황(靑皇)·청제(靑帝) 등으로 불렸다. 건원(乾元) 《주역》 〈건괘(乾卦) 단(彖)〉에 이르기를, "위대하도다! 건원이여. 만물이 이를 힘입어 비롯하나니, 이에 하늘을 총괄하였도다.[大哉!乾,元 萬物資始, 乃統天.]"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주희(朱熹)의 《본의(本義)》에 의하면, "건원은 하늘의 덕의 큰 처음이므로, 만물이 생겨남에 있어 모두가 그것을 힘입어 시작으로 삼는 것이다.[乾元天德之大始, 故萬物之生, 皆資之以爲始也.]"라고 하였다. 누정 …… 뛰도다 연비어약(鳶飛魚躍)으로,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뛴다는 뜻으로, 만물이 각기 제자리를 얻어 이치가 환히 드러남을 형용한 말이다. 《중용장구》 제12장에 "《시경》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서 하늘에 이르고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 하였으니, 상하에 이치가 밝게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詩云, 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뛰노는 현상은 다르지만, 그 이치는 같다는 뜻으로 쓰였다. 천군(天君) 사람의 마음을 의인화(擬人化)하여 일컫는 말이다. 《순자(荀子)》 〈천론(天論)〉에 "이목구비와 형체는 각각 접촉하는 것이 있어서 다른 것은 할 수 없으니, 대개 이를 천관이라 한다. 마음은 가운데 빈 곳에 있으면서 오관을 다스리니, 이를 천군이라 한다.[耳目鼻口形, 能各有接而不相能也, 夫是之謂天官, 心居中虛, 以治五官, 夫是之謂天君.]"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사단(四端)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 "측은히 여기는 마음은 인(仁)의 단서이고, 자신의 불선(不善)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불선을 미워하는 마음은 의(義)의 단서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단서이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은 지(智)의 단서이다. 사람에게 이 네 가지 단서가 있는 것은 마치 사람의 몸에 사지가 있는 것과 같다.[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人之有是四端也, 猶其有四體也.]"라고 하였다. 삼지일(三之日)·사지일(四之日) 3월·4월을 가리키는 말로, 《시경》 〈빈풍(豳風) 칠월(七月)〉에 "삼월에는 나가서 쟁기를 수리하고, 사월에는 뒤축 들고 밭갈이한다.[三之日于耟, 四之日擧趾.]" 에서 온 말이다. 봄옷 …… 미루어 공자의 제자 증점(曾點)이 "늦은 봄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벗 대여섯 명과 아이들 예닐곱 명을 데리고 기수에 가서 목욕을 하고 기우제 드리는 무우에서 바람을 쏘인 뒤에 노래하며 돌아오겠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자신의 뜻을 밝히자, 공자가 그가 유연(悠然)하고 쇄락(灑落)한 기상이 있는 것에 대해 깊이 감탄하며 허여한 내용이 《논어》 선진(先進)에 나온다. 하남(河南) 하남 출신인 북송(北宋) 때 성리학자 정이(程頥, 1033~1107)로, 자는 정숙(正叔), 시호는 정공(正公)이다. 하남(河南) 낙양(洛陽) 사람으로, 이천백(伊川伯)에 봉해져서 이천 선생이라 불린다. 정호(程顥)의 아우이며, 주돈이(周敦頥)의 문인으로, 이기(理氣) 철학을 제창하여 유학을 부흥시켰다. 저서에 《역전(易傳)》·《춘추전(春秋傳)》·《이정유서(二程遺書)》 등이 있다. 넓은 …… 편안한 집 광거안택(廣居安宅)으로 인(仁)을 뜻하는 말이다. 맹자(孟子)가 인을 '천하의 넓은 집[天下之廣居]'과 '사람의 편안한 집[人之安宅]'이라는 말로 표현한 데서 나온 것이다. 《孟子 滕文公下 公孫丑上》 광풍이 …… 청명함이로다 광풍제월(光風霽月)로, 인품이 고결하고 마음이 탁 트인 사람을 비유한다. 허백(虛白)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의 "빈방 안에는 흰빛이 생기고 거기에는 좋은 징조가 깃든다.[虛室生白, 吉祥止止.]"라는 말에서 유래하여, 마음이 청허(淸虛)하여 욕심이 없으면 도심(道心)이 절로 생겨나는 것을 의미한다. 지수(智水)는 …… 이루니 이 내용은 《맹자》 〈이루 하(離婁下)〉의 "근원이 좋은 물이 계속 흘러서 밤낮을 그치지 아니하여 구덩이가 가득 찬 뒤에 나아가 사해(四海)에 이른다.[原泉混混, 不舍晝夜, 盈科而後進, 放乎四海.]"라고 보이는데, 이는 사람의 학문이 끊임없이 진전하여 높은 경지에 이름을 비유한 것이다. 백조는 깨끗하도다 백조학학(白鳥鶴鶴)을 이르는 말로, 《시경》 대아(大雅) 영대편(靈臺篇)에, "왕이 영유에 계시니 거기 있도다. 우록은 탁탁하거늘 백조는 학학하도다. 왕이 영소에 계시니 아! 그득하게 고기가 뛰논다.[王有靈囿, 麀鹿攸伏, 麀鹿濯濯, 白鳥鶴鶴, 王在靈沼, 於牣魚躍.]"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 하리라 맹자가 양 혜왕을 보았을 때에 왕이 못 가에 있다가, 기러기와 사슴을 돌아보고 말하기를, "어진 사람도 이러한 것을 즐거워합니까?"라고 물었다. 맹자가 대답하기를, "어진 사람인 뒤에야 이러한 것을 즐거워할 수 있으니, 어질지 못한 사람은 비록 이를 갖고 있더라도 즐거워하지 못합니다.[孟子見梁惠王, 王立於沼上, 顧鴻鷹麋鹿曰: "賢者亦樂此乎?" 孟子對曰: "賢者而後, 樂此, 不賢者, 雖有此, 不樂也."]"라고 하였다. 《孟子 梁惠王上》 집구석에 …… 없고 불괴옥루(不愧屋漏)는 방안 깊숙한 곳에 있을 때에도 부끄럽지 않다는 뜻으로, 마음이 밝아서 혼자 있을 때에도 사심이 일어나지 않음을 말한다. 《시경》 〈억(抑)〉에 "네가 방에 있음을 보건대 옥루에 부끄럽지 않게 해야 한다.[相在爾室, 尙不愧于屋漏.]"라고 하였다. 원형이정(元亨利貞) 《주역》 〈건괘(乾卦)〉에 "건은 원하고 형하고 이하고 정하다.[乾, 元亨利貞.]"라고 하였다. 곧, 원형이정은 사물의 근본 원리라는 말인데, 원은 만물의 시(始)로 봄에 속하고 인(仁)이며, 형은 만물의 장(長)으로 하(夏)에 속하고 예(禮)이며, 이는 만물의 수(遂)로 추(秋)에 속하고 의(義)이며, 정은 만물의 성(成)으로 동(冬)에 속하고 지(智)가 된다. 장남헌(張南軒) 남송(南宋)의 성리학자 장식(張栻, 1133~1180)으로, 자는 경부(敬夫)·흠부(欽夫)·낙재(樂齋), 호는 남헌이다. 면죽(綿竹) 출신으로, 호굉(胡宏)에게 정자(程子)의 학문을 전수받았으며, 주희(朱熹)와 절친한 벗이기도 하다. 학자들이 그를 존경하여 남헌선생(南軒先生)이라 불렀으며, 주희·여조겸(呂祖謙)과 더불어 '동남(東南)의 삼현(三賢)'이라 불렸다. 저서에 《논어해(論語解)》, 《맹자설(孟子說)》, 《남헌역설(南軒易說)》, 《남헌집(南軒集)》 등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이륜153)재기 彝倫齋記 아! 사람이 사람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의관(衣冠)을 입고 하늘과 땅이라는 둘 사이에 서서 천지와 함께 삼재(三才)로 칭해지는데 금수와 다른 것은 어떤 점인가? '삼강(三綱)154)·오상(五常)'155)이라고 말할 뿐이다. 삼강이란 천서(天叙)의 대경(大經)이요, 오상이란 천부(天賦)의 지리(至理)이다. 삼강과 오상이 이미 하늘에 근본하고 있는데 사람이 잘 행한다면 사람이 하늘·땅과 셋으로 나누어졌다 하더라도 그 체(體)는 하나가 될 것이다. 미미한 한 몸이 천지에 참여하여 셋이 되고, 합하여 하나 된다면 사람이라는 이름은 아마도 지극히 큰 것이 아니겠는가?비록 그렇지만 형기(形氣)가 이미 완성되면 외물이 형기에 접촉하고 마음 가운데에 감화되니 칠정(七情)156)이 생겨나고 사욕(私慾)이 타게[乘] 된다. 사욕이 이미 이기면 삼강·오상의 천(天)이 매몰되고 상실되어 금수에 빠지게 되어 천지와 등져서 둘이 되고 천지 사이에 한 마리 해충이 되면 사람이라는 이름이라고 부를 수 없으니 심히 두려워할 만하다.옛날 성인이 이것을 매우 두려워해서 이에 사람을 가르치는 법을 세웠으니 상서학교(庠序學校)157)가 설립되었고, 사서(四書)158)·육경(六經)159)의 서적이 만들어졌다. 대개 사서·육경이란 삼강·오상을 밝히는 책이고 상서학교란 삼강·오상을 행하던 곳이다. 이 때문에 옛사람은 국가의 학교뿐만 아니라 향촌(鄕村)·향사(巷社)에 모두 학사를 세워서 15세에 들어갔으니, 소학(小學)·대학(大學)의 절목(節目)이 차례가 상세하고 강목이 엄정하였다. 사람이 천지 사이에 태어나서 말을 할 때부터 늙어 죽을 때까지 하루도 익히고 배우지 않은 때가 없었으니 순박하고 선한 풍속이 어찌 일어나지 않았으며, 효제충신(孝悌忠信)이 어찌 독실하지 않았으며, 지치(至治)160)의 큰 교화가 어찌 행해지지 않았겠는가? 이 삼대(三代)161)의 세상에 사람이 모두 예로 사양하여 집마다 봉할 만하였는데[比屋可封]162) 후세에는 학교의 이름이 있어도 학교의 실이 없었고 향촌의 학교는 명(名)과 실(實)이 둘 다 없어진 것이 오래되었다. 천 리의 나라를 지나가도 거리에 글방이 있는 것을 아직 한둘 보지 못했으니 옛것을 배운 유식한 선비가 누가 옛것을 어루만지면서 마음 아파하지 않겠는가?우리 고을의 남쪽에 '덕곡(德谷)'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한두 학문을 좋아하는 선비가 향당에서 뜻이 있는 사람과 마을 어귀 오른쪽에 서재를 세웠다. 삭망(朔望)으로 동관(童冠)을 모아놓고 강학하였는데 책에 그 이름을 적어놓고 책머리에 나의 뜻 한마디를 청하였다. 내가 옛것을 회복하여 선을 행하는 것을 공경히 여겨 삼가 사람의 사람됨이 삼강·오상에서 벗어나지 않고, 옛사람이 학문을 가르치는 것 또한 삼강·오상의 도(道)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 책의 머리말로 하고, 그 서재를 이름 붙여 '이륜(彝倫)'이라고 하였다. 대략 그 뜻을 펼쳐서 고하기를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가서는 공손하며 노인을 노인으로 여기고 어른을 어른으로 여기며163) 말은 충신하고 행동은 독경하며 어버이를 친히 여기고 어진 이를 높이며 때때로 경을 익히고 예를 익히는 여가에 겸하여 정식(程式)의 문장164)을 통하고, 유사(有司)의 일에 응하여 입신양명하여 그 부모를 드러내는 것 또한 효제의 도이다. 이 서재에 들어가는 자가 혹시 이것에 위반하여 더러운 분쟁이 있고 말이 겸손하고 공경하지 못하여 서재를 세운 뜻을 처음부터 끝까지 어긴다면 서재 이름의 뜻에서 죄를 얻어 깊게 사람의 이름에 부끄러움이 있게 될 것이니 힘쓰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모두 "네"라고 대답하였다. 그 말을 기록해서 경계의 법도로 삼는다. 嗚呼! 人之得名爲人。 衣服冠而立天地兩間。 與天地幷稱爲三才。 而禽獸異塗者何耶? 曰'三綱五常'而已。 三綱者。 天叙之大經也。 五常者。 天賦之至理也。 三與五旣本於天而人能行之。 則人與天地分雖三。 其體則一也。 以藐然之一身。 與天地參而爲三。 合而爲一。 則人之爲名。 其至大矣哉? 雖然形氣旣成。 外物觸於形而感於中。 則七情生而私慾乘之。 私慾旣勝則三綱五常之天。 汨喪而淪於禽獸。 與天地背而爲二。 爲天地間一賊蠹則不可以人名之也。 甚可懼也。 古之聖人深懼於此。 於是立敎人之法。 則庠序學校之設起焉。 四書六經之籍作焉。 夫四書六經者。 明三綱五常之書也。 庠序學校者。 行三綱五常之地也。 是以古之人。 非獨邦國之學也。 鄕村巷社皆得以立學舍。 入歲十五。 小學大學之節次第詳盡。 綱目嚴明。 人之生於兩間者。 自能言至于老死。 無一日非講學之時。 則淳風善俗。 安得不興。 孝悌忠信。 安得不篤。 而至治大化。 安得不行哉? 此三代之世。 人皆禮讓而比屋可封者然也。 後世有學校之名。 無學校之實。 而鄕村之學則名與實兩亡者久矣。 歷千里之邦而巷有塾者未見一二。 則學古有識之士。 孰不撫古而感傷也哉? 吾鄕之南。 有村曰'德谷'。 一二好學之士。 與鄕黨有志之人。 創立齋舍于里門之右。 朔望會童冠講學。 書其名于卷。 請余志一言于卷首。 余欽其能復古而行善。 謹以人之能爲人。 不出於三綱五常。 而古之所以敎所以學者之亦不出三綱五常之道。 弁其卷而名其齋曰'彝倫'。 略申其意而告之曰: "入則孝出則悌。 老老而長長。 言忠信行篤敬。 親親而尊賢。 時以講經習禮之暇。 兼通程式之文。 應有司之擧。 立身揚名。 顯其父母。 亦孝悌之道也。 入是齋者。 倘違於此而在醜紛爭。 言不謙恭。 使立齋之意。 始終參差。 則得罪於齋號之義。 而甚有愧於爲人之名矣。 可不勖哉?" 咸曰: "諾。" 記其說以爲警式。 이륜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이다.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은(殷)나라를 정벌한 뒤 기자를 방문하여 이륜(彛倫)을 펴는 이치에 대해 물었는데, 이에 기자가 대답한 것이 홍범구주이다. 《書經 洪範》 삼강(三綱) 유교 윤리의 근본인 세 가지의 기본 강령을 말한다. 즉 임금은 신하의 벼리가 되고[君爲臣綱], 아비는 아들의 벼리가 되고[父爲子綱], 남편은 아내의 벼리가 됨[夫爲婦綱]이다. 오상(五常) 보통은 오륜(五倫) 즉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을 가리킨다. 칠정(七情) 인간의 7가지 감정인 희(喜)·노(怒)·우(憂)·사(思)·비(悲)·공(恐)·경(驚)을 가리키기도 하고, 희(喜)·노(怒)·애(哀)·구(懼)·애(愛)·오(惡)·욕(欲)을 말하기도 한다. 상서학교(庠序學校) 맹자(孟子)가 설명한 중국 고대의 교육기관으로, "상·서·학·교를 설치하여 백성들을 가르쳤으니, 상은 봉양한다는 뜻이고, 교는 가르친다는 뜻이며, 서는 활쏘기를 익힌다는 뜻이다. 하나라에서는 '교'라 하였고, 은나라에서는 '서'라 하였고, 주나라에서는 '상'이라 하였으며, 학은 삼대가 공통으로 두었으니, 이는 모두 인륜을 밝히는 것이었다.[設爲庠序學校, 以敎之, 庠者, 養也, 校者, 敎也, 序者, 射也. 夏曰'校', 殷曰'序', 周曰'庠', 學則三代共之, 皆所以明人倫也.]"라고 하였다. 《孟子 滕文公上》 사서(四書) 사서는 《대학》·《논어》·《맹자》·《중용》을 가리키는데 《대학》과 《중용》에 각각 《장구(章句)》와 《혹문(或問)》이 있으며, 사서에 모두 주희의 《집주(集註)》가 있다. 육경(六經) 육경은 《시경》·《서경》·《주역》·《예경》·《춘추》·《악경(樂經)》을 가리키는데 《악경》은 없어졌고 그 이론만이 《예기》 〈악기(樂記)〉에 수록되어 있다. 지치(至治) 안정되어 번영하고 교화가 널리 행해지는 정치적 국면이다. 《서경》 〈군진(君陳)〉에 "지극한 다스림은 향내가 풍기는 것 같아서 신명을 감동시키니, 제수가 향기로운 것이 아니요, 밝은 덕이 오직 향기로운 것이다.[至治馨香, 感于神明, 黍稷非香, 明德惟香.]"라고 하였다. 삼대(三代) 중국 고대의 요순(堯舜) 시대와 하(夏)나라, 은(殷)나라, 주(周)나라 시대의 태평성대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비옥가봉(比屋可封) 요순시대에는 교화가 사해에 두루 미쳐 집집마다 모두 봉(封)을 받을 만큼 덕행이 뛰어난 인물이 많았다는 뜻이다. 곧 천하가 잘 다스려져 백성의 풍속이 순후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서(漢書)》 〈왕망전(王莽傳)〉에 "요순시대에는 집집마다 다 봉하여도 되었다."라고 하였으며, 《신어(新語)》 〈무위(無爲)〉에 "요순의 백성이 집집마다 봉할 만하고 걸주의 백성이 집집마다 주벌할 만한 것은 교화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堯舜之民, 可比屋而封, 桀紂之民, 加比屋而誅者, 敎化使然也.]"라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노인을 …… 여기며 《대학장구(大學章句)》 전10장에 "이른바 평천하가 치국에 달려 있다는 것은, 윗사람이 노인을 노인으로 봉양하면 백성들이 효행을 일으키고, 윗사람이 어른을 어른으로 대우하면 백성들이 공손한 마음을 일으키며, 윗사람이 고아를 돌보아 주면 백성들이 서로 저버리지 않나니, 이 때문에 군자는 혈구의 도가 있는 것이다.[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라는 말이 나온다. 정식(程式)의 문장 일정한 격식을 갖춘 글로, 여기에서는 과거 시험에 적합한 형식의 글을 의미한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열락재기 悅樂齋記 열락재(悅樂齋)가 이미 완성되어 '열락(悅樂)'이라고 편액하고 서재의 학생들이 서재 아래에 서서 나에게 묻기를 "청컨대 '열락(悅樂)'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응하여 말하기를 "그대는 《노론(魯論)》 수장(首章)의 경(經)165)을 익히지 않았는가? 옛사람의 학문은 효제(孝悌)일 뿐이다. 효제에 마음을 두면 효제를 배우지 않을 수 없고 효제를 배우면 효제를 익히지 않을 수 없으니 앉음에 시동처럼 함은 앉아 있을 때의 익힘이요, 섬에 재계하는 것처럼 함은 서 있을 때의 익힘이다.166) 안에서는 심지(心志)요, 밖에서는 언동(言動)이니 가운데를 말미암아 겉으로 드러나니 수면앙배(粹面盎背)167)라는 것은 효제 아닌 것이 없으니 그 마음의 화열(和悅)이 어떠하겠는가? 이 때문에 이 마음이 한 가정에서 행해지면 부모에게 유순하고 형제 사이에 화목하며, 나라에서 행해지면 군주와 신하가 바르게 되고 친구가 따르게 되니 그 기(氣)의 화락(和樂)이 어찌 그침이 있겠는가? 이것이 군자의 열락(悅樂)이다. 한나라 이후로는 과거제도로 사람을 취하니 배우고 때로 익히는 것이 문장일 뿐이다. 육경을 표절하고 권모술수를 출입하여 문장으로 드러내어 남의 이목을 현혹시키면 그 마음이 기쁜 것이다. 예원(藝園)에서 한묵을 구사하여 세상에 이름을 올리고 생을 즐기고 죽음을 잊고 분쟁을 좇으면 그 기운이 즐거운 것이니 이것은 소인의 열락(悅樂)이다. 이 두 가지 것에서 그대들은 어디에 속하는가?"라고 하였다.별안간 줄에서 비웃는 이가 있어 말하기를 "이런 것이 있구나! 그대 말의 우활함이여. 삼대(三代)는 이미 옛일이고 옛 도는 되돌리기 어려우니 지금의 세상을 살면서 옛날의 도를 되돌리고자 한다면 황하의 물을 되돌려 곤륜(崑崙)의 제방에 주입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고 하였다. 내가 응답하여 말하기를 "아! 그대는 홀로 하늘에서 진성(眞性)을 품부 받지 않았는가? 그대와 나는 위로는 요순(堯舜)에 이르고, 원래 처음 태어날 때 하늘에서 함께 얻었으니 우리 무리가 계획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을 회복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비록 그렇지만 한미한 시골에서 늦게 나와 품부 받은 바탕이 비루하고 용렬하며 습속(習俗)이 누적되어 견문이 구차하면서 과거 시험을 겸하고자 한다면 이른바 '하늘에 근본 한다.'라는 것이 날짐승·들짐승의 탐욕에 흐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것이 《노론(魯論)》이 편 머리에 학습(學習) 두 글자를 들고 있는 까닭이다. 그렇지만 세도(世道)의 변화 또한 따르지 않을 수 없으니 부모의 바람은 과거 시험에 있고 군신이 만날 즈음이 과거 시험에서이니 과거에 응시하는 것 또한 폐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제생에게 바라는 것은 학습이 비록 과거 시험 공부에 있더라도 심지(心志)가 득실에 빠지지 않고, 문사가 비록 법식을 숭상하더라도 열락(悅樂)은 오로지 효제에 있으니 고금(古今)을 참고하여야 거의 그 바름을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근원을 미루어 본원에 돌아가 요순의 하늘을 회복하는 것 또한 바랄 만하다. 이것이 내가 서재를 이름 붙인 지극한 뜻이다."라고 하였다. 제생이 모두 절하고 말하기를 "공경히 가르침을 취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벽에 그 말들을 써서 나를 반성하고 제생을 경계하고자 한다.갑진년(1664, 현종5) 하지에 구고산옹(九臯散翁)이 쓰다. 悅樂齋旣成。 扁以悅樂。 齋之諸生。 立齋下問余曰: "請聞悅樂之義。" 應之曰: "子不講魯論首章之經乎? 古人之學。 孝悌而已。 心乎孝悌。 不能不學于孝悌。 學乎孝悌。 不敢不習乎孝悌。 坐如尸。 坐時習孝悌也。 立如齊。 立時習孝悌也。 內而心志。 外而言動。 由中顯表。 粹面盎背者。 無非孝悌。 則其心之和悅如何哉? 以是心行之一家。 父母順兄弟怡。 行之邦家。 君臣正朋類從。 則其氣之和樂。 容有已乎? 此君子之悅樂也。 漢氏以降。 科制取人。 則學而時習者。 文藻而已。 摽竊六籍。 出入權數。 發爲文章。 眩人耳目則其心悅矣。 馳翰藝園。 騰名世路。 樂生忘死。 紛爭追逐則其氣樂矣。 此小人之悅樂也。 二者子等何居焉?" 俄有笑于列者曰: "有是哉! 子言之迂也。 三代旣古。 古道難回。 居今之世。 欲反古之道。 何異倒黃河之流。 注崑崙之坂哉?" 余應之曰: "嗟乎! 子獨不稟眞性於天矣乎? 子與我。 上至堯舜。 原厥初生。 同得乎天。 則爲吾徒計者。 不過曰'復乎天'而已也。 雖然寒鄕晩出。 稟質汚庸。 習俗之累。 聞見之拘。 兼之而科目之慾則所謂本乎天者。 幾何而不流於飛走之嗇哉? 此魯論之所以揭學習二字於篇首者也。 然而世道之變。 亦不可不循。 父母之望。 在於科第。 君臣之際遇。 在於科第。 則應擧之業。 亦何可廢也。 余之所冀於諸生者。 學習雖在於擧業。 心志不溺於得失。 文辭雖尙於程式。 悅樂專在於孝悌。 則酌古參今。 庶得其中。 推原反本。 復之於堯舜之天。 亦可希矣。 此余名齋之至意也。" 諸生咸拜曰: "敬就敎矣。" 遂書其言于壁。 以省己而警諸生云。 歲在甲辰之日長至。 九臯散翁書。 《노론(魯論)》 수장(首章)의 경(經) 《논어》 〈학이편(學而篇)〉의 첫째 장에 "공자가 말하기를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해도 성내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라는 구절을 말한다. 앉음에 …… 익힘이다 주희는 《논어집주(論語集註)》에서 "이미 배우고 또 '때때로 그것을 익힌다면[時時習之]' 배운 것이 익숙해져서 중심에 희열을 느껴 그 진전이 자연히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여, '시습'을 '시시습지' 즉 '때때로 그것을 익힘'으로 해석하였는데, 또 하나의 설로 '시습'을 '무시불습' 즉 '항상 익힘'으로 해석한 사양좌의 설을 채록해 넣었다. 사양좌는 "시습이란 때마다 익히지 않음이 없는 것이니, 앉음에 시동처럼 함은 앉아 있을 때의 익힘이요, 섬에 재계하는 것처럼 함은 서 있을 때의 익힘이다.[時習者, 無時而不習, 坐如尸, 坐時習也, 立如齊, 立時習也.]"라고 하였다. 수면앙배(粹面盎背) '맑게 얼굴에 드러나며 등에 가득하다.'는 뜻으로 《맹자(孟子)》 〈진심 상(盡心上)〉에 "군자의 본성은 인의예지가 마음속에 뿌리내려, 그 드러나는 빛이 얼굴에 윤택하게 나타나고 등에 가득하게 나타난다.[君子所性, 仁義禮智根於心, 其生色也, 睟然見於面盎於背.]"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옥성재기 玉成齋記 을사년(1665, 현종6) 가을에 열락재(悅樂齋)가 훼손되어 김생 진화(金生振華)·윤생 유(尹生瑜)가 연화평(蓮花坪)의 남쪽 기슭에 서재를 중수하여 지어놓고 이름을 청하였다. 편액을 '옥성(玉成)'이라 하였으니 대개 정완(訂頑)168)의 용옥여성(庸玉汝成)169)의 뜻을 취한 것이다. 대략 그 뜻을 부연 설명하자면 "찬 서리가 내리면 훌륭한 재목도 떨어지지 않음이 없고, 완석(頑石)으로 다스리면 형박(荊璞)170)이 그 빛을 이룬다. 풍상(風霜)이 숙살(肅殺)하고 거친 돌이 치고 때리면 누군들 하늘을 찌르는 줄기와 햇빛 아래 빛나는 보배를 향해 그 최락(摧落)하고 소력(消礫)하는 참상을 애석하게 여기지 않겠는가? 급기야 연약한 것이 강실(剛實)해지고 울퉁불퉁한 것이 매끄럽게 되어서 들보를 걸쳐놓고 채단을 올려놓으면171) 누가 규모가 크고 화려한 집[輪奐]172)의 완성을 흠모하고 감상하지 않겠는가? 그런 즉 예전의 숙살(肅殺)하는 것과 격박(擊拍)하는 것은 진실로 나의 질병을 고치는 약석(藥石)173)이 아니겠는가? 장자(張子)174)가 말하기를 '가난하고 천함, 근심과 걱정은 너를 옥처럼 갈고 닦아서 훌륭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하니 가난하고 천함, 근심과 걱정은 사람들에게 심한 고통이 아닌 것이 없지만 끝내 옥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어째서인가? 무엇을 하지 않아도 이루는 자는 상지(上智)요, 중인(中人) 이하는 반드시 격(激)한 것이 있고 난 뒤에 뜻이 독실해지고 실천에 힘이 들어간다. 오직 너 유(瑜)와 화(華)는 굽어보아 고인의 책을 읽고 우러러 이 서재를 중수한 까닭을 하루에 세 번 생각한다면 글 읽는 소리가 비록 입술에서 끊어지고자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진실로 규모가 크고 화려한 집의 완성이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그런 후에 서리와 돌이 원망할 대상이 아니고 나의 뜻을 마칠 수 있는 재료가 될 것이다. 학문하는 방법과 마음을 다스리는 방도는 이미 열락재(悅樂齋)에 갖추어져 있으니 화(華)와 유(瑜)는 힘쓸지어다!"라고 하였다. 乙巳秋。 悅樂齋毁。 金生振華,尹生瑜改築室于蓮花坪之南麓。 請名焉。 扁曰'玉成'。 盖取訂頑庸玉汝成之義也。 略演其義曰: "寒霜降者。 櫲樟莫不隕。 頑石攻者。 荊璞成其輝。 風霜之肅殺。 麤石之擊拍。 孰不向參天之幹曜日之珍。 愛惜其摧落消礫之慘哉? 及其軟弱者剛實。 嵯峨者滑澤。 架棟,樑升筐篚也。 孰不欽賞其侖奐孚允也哉。 然則向之肅殺者擊拍者。 眞吾砭疾之藥石也非耶? 張子曰: '貧賤憂戚。 庸玉汝于成。' 貧賤憂戚。 人莫不甚苦。 而卒能玉其成何哉? 無所爲而爲者。 上智也。 中人以下。 必有所激而後志必篤行必力。 惟爾瑜與華。 俯而讀古人書。 仰而日三思此齋之所以移築者。 則唔咿之聲。 雖欲絶於唇。 必不得矣。 侖奐孚允之成。 其不在玆耶? 然後霜石非可㤪之資。 而吾之志畢矣。 至於爲學之道。 處心之方。 已具悅樂齋。 勖哉! 華與瑜。" 정완(訂頑) 송(宋)나라 장재(張載, 1020~1077)가 서재의 동서 양쪽 창문 위에 〈폄우(砭愚)〉와 〈정완(訂頑)〉 두 개의 명(銘)을 걸어 놓고서 제생(諸生)을 경계시켰는데, 뒤에 논쟁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는 정자(程子)의 말에 따라 〈폄우〉를 〈동명(東銘)〉으로, 〈정완〉을 〈서명(西銘)〉으로 개칭하였다. 이 〈서명〉은 인의(仁義)에 입각한 유가(儒家)의 윤리설(倫理說)을 요약해서 서술한 것인데, 주희(朱熹)가 별도로 주(注)를 달아 해설하면서부터 널리 알려졌다. 《伊洛淵源錄》 용옥여성(庸玉汝成) 하늘이 시련을 주어 훌륭한 인격을 완성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장재(張載)의 〈서명(西銘)〉에 "부귀와 복택은 나의 삶을 두텁게 해 주고, 빈천과 우척은 너를 도와 성취시켜 주는 것이다.[富貴福澤, 將厚吾之生也, 貧賤憂戚, 庸玉汝於成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古文眞寶後集 卷10》 형박(荊璞) 형산(荊山)의 박옥(璞玉)으로 내면에 남다른 재주와 포부를 지니고 있지만 한미한 출신에 가려져 인정을 받지 못하는 무명자를 빗댄 사물이다. 춘추 시대 초나라 사람인 변화(卞和)가 형산(荊山)에서 박옥을 얻어 여왕(厲王)과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옥을 감정하는 사람이 보고 돌이라 하여 두 발이 잘리고 말았다. 그 후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화씨는 형산 아래서 박옥을 안고 사흘 밤낮을 울었다. 문왕이 사람을 보내 "천하에 발이 잘린 사람이 많은데 그대만이 유독 이렇게 우는 것은 어째서인가?" 하고 묻자, "저는 발이 잘린 것을 슬퍼하는 게 아닙니다. 보배로운 옥을 돌이라 하고 곧은 선비를 미치광이라 하니 이 때문에 제가 슬피 우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옥공(玉工)을 시켜 박옥을 다듬게 하니 직경이 한 자나 되고 티 한 점 없는 큰 옥이 나왔다고 한다. 이 옥을 화씨벽(和氏璧)이라 한다. 《韓非子 和氏》 들보를 …… 올려놓으면 열락재(悅樂齋)를 중수하여 상량식을 거행함을 말한다. 윤환(輪奐) 건물이 웅장하고 많음을 형용하는 말로, 건물이 낙성된 것을 축하할 때 쓰는 상투적인 표현이다. 진(晉)나라 헌문자(獻文子)가 저택을 신축하여 준공하자 진나라 대부들이 가서 축하하였는데, 그 중에 장로(張老)가 말하기를 "규모가 크고 화려하여 아름답도다! 이 집에서 살며 기쁜 일로 노래도 하고, 이 집에서 살다가 죽어 곡도 하게 되고, 이 집에서 국족들을 모아 번창함을 누리게 되시라.[美哉輪焉! 美哉奐焉! 歌於斯, 哭於斯, 聚國族於斯.]"라고 하였다. 《禮記 檀弓下》 약석(藥石) 고대 병을 치료하는 약물과 돌침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장자(張子) 북송의 문신이자 사상가인 장재(張載, 1020~1077)로, 자는 자후(子厚), 호는 횡거(橫渠), 시호는 명공(明公)이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도민정사기 道民精舍記 도민(道民)175)은 옛 현이다. 혹자는 "옛날에 도가 있는 백성이 살던 곳'이라고 해서 '도민'이라고 했다."라고 한다. 세상에 전하기를 고려 재상[麗相] 문 시중(文侍中)이 살던 곳이라고도 한다. 서석산(瑞石山)의 한 지파가 남쪽으로 2,3백 리를 흘러 덕룡산(德龍山)이 되고, 거슬러 꺾어 동쪽으로 굽이져 서석산을 돌아보며 60여 리를 뒤로 물러나 서석산을 등지고 덕룡산을 마주하며, 음지를 뒤로하고 양지를 끼고서 한 구역 작은 땅을 이루어 언덕이 서리어 사방으로 둘러 방처럼 아늑하다. 전면의 산들이 마치 하늘을 열고 땅을 세운 것처럼 월출(月出)·일봉(日封)·용치(龍峙)·봉악(鳳嶽)·붕명(鵬溟)·구곡(龜谷)의 기괴하고 수려한 것들이 혹은 몸을 부딪고 머리를 늘이며, 혹은 몸을 숨기고 쪽 머리를 드러내며, 혹은 춤추는 소매를 맞잡고 향하며, 혹은 눈썹을 치키고 얼굴을 활짝 펴며, 순종하는 모양 아리따운 자태, 활달한 모양 굳센 기상(氣像)으로 조석에 서기(瑞氣)를 드러내지 않음이 없다.골짜기에 네 개의 샘이 있는데 다 위로 솟고 개울과 합세하여 억산(億山)과 조지(鳥枝)의 양 언덕 사이로 흘러 삼태(三台) 부택(桴澤)의 물과 함께 연화정(蓮花亭) 아래로 흘러든다. 용탄(龍灘)을 경유하여 삼태 부택에 이르러 산을 감추고 물을 숨겨 밖에서 보면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았으니, 그 아름다운 기운과 청유(淸幽)한 뜻은 홑옷 속에 비단 무늬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과 같아서176) 진실로 이른바, '도가 있는 백성이 거처한다.'는 것이다. 야인의 관과 농부의 복장으로 세상과 어그러져[打乖]177) 섞여 살면서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니, 마음과 몸을 안으로부터 밖으로 드러내어 안목 있는 이에게 공경을 일으켜 우러르도록 하는 것과는 다르다. 내가 조금도 응도(凝道)178)의 자질이 없는데, 함부로 구도(求道)에 뜻을 두어 중년인 오늘까지도 전혀 알려진 것이 없어 늘 개연(慨然)히 탄식하였다. 이 지역에서 이런 이름을 얻은 특이함에 기뻐하여 마침내 터를 잡아 작은 집을 짓고, 현판을 걸어 '도민정사(道民精舍)'라고 하였다.병신년(1656, 효종7) 8월 일 주인옹(主人翁)이 기록한다. 道民。 古縣也。 或曰: "古有道之民所棲息。 故曰'道民'。" 世傳麗相文侍中所居云。 瑞石一支。 南流二三百里。 作德龍。 逆折東回。 反顧瑞石。 却步六十餘里。 背石面龍。 負陰抱陽。 成一區小地。 邱壟盤旋四環若房奧焉。 前面諸山。 若開天建地。 月出日封。 龍峙鳳嶽。 鵬溟龜谷。 羣奇衆秀。 或抵身引首。 或隱體露鬟。 或舞袖拱向。 或揚眉豁面。 媚狀姸態。 磊形健氣。 莫不呈瑞于朝暮。 谷有四泉皆上出。 涓流合勢。 放流于億山鳥枝兩邱之間。 與三台桴澤之水。 注于蓮花亭下。 由龍灘至于伽倻山。 其山藏水隱。 從外而觀。 鮮入于人人之目。 其佳氣淸幽之意。 有絅裏錦文之美。 眞所謂有道而民居者。 野冠農服。 打乖而混。 世人莫我知。 而其方寸而四軆。 自內而見外者。 起敬於具眼之瞻仰則異矣。 余少無凝道之資。 而妄有求道之志。 中身此日。 萬無一聞。 恒起慨然之喟。 欣然是地得名之異。 遂定居而營築小室。 揭曰'道民精舍'云。 歲丙申八月日。 主人翁記。 도민(道民) 김만영이 과거에 우거하던 고을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전라도(全羅道)·남평현(南平縣)〉에, "도민부곡(道民部曲)은 현에서 서남쪽으로 16여 리 떨어져 있다."라고 되어 있다. 홑옷 …… 같아서 비단옷 위에 다시 홑옷을 덧입어서 화려함을 감춘다는 뜻으로, 남에게 과시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시경》 〈위풍(衛風) 석인(碩人)〉에 "석인(碩人)이 키가 훤칠하니 비단옷을 입고 홑옷을 덧입었도다.[碩人其頎, 衣錦褧衣.]"라는 구절이 보인다. 타괴(打乖) 세상과 어그러진다는 뜻이다. 송나라 소옹(邵雍)이 〈안락와중호타괴음(安樂窩中好打乖吟)〉이란 시를 지어 자신이 세상과 어긋나는 삶을 살면서 유유자적한다는 뜻을 말하였다. 응도(凝道) 《중용장구》 제27장에 "그러므로 지극한 덕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지극한 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故苟不至德, 至道不凝焉.]"라고 보이는데, 주자는 《집주(集註)》에서 "응은 모임이며 이룸이다.[凝, 聚也, 成也.]"라고 주하였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시습재기 時習齋記 지극히 고요한 것[至靜]을 일러 '성(性)'이라 하고 동(動)이 있는 것을 일러 '기(氣)'라고 하며 정(靜)으로부터 움직이는 것을 일러 '정(情)'이라고 하고, 통괄하여 그것을 주관하는 것을 일러 '심(心)'이라고 한다. 이 마음은 은미하여 비록 마음에 거처하나 그 넓은 쓰임은 천지[六合]179)를 가득 채우고도 궁핍하지 않고 육합의 넓은 것을 마음 안에 거두어들여도 사물을 각각 사물에 맡겨두어180) 만 가지 선이 갖추어지기에 족하니 배우지 않아도 능하겠는가? 육합의 광대함과 만 가지 선의 많은 것을 마음의 작은 것에 운반하여 나르면서도 가려서 지킬 수 있고, 지켜서 행할 수 있으니 익히지 않고 능할 수 있겠는가?여기에서 치지(致知)와 역행(力行)은 학문의 처음과 끝이 되기 때문에 궐리(闕里)181)의 무리가 《논어》 20편의 수장에서 으뜸으로 삼은 것이다.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에 비록 때때로 익히는 공부를 수용하지 않았더라도 움직임이 있고 난 뒤에 만약 일식(一息)의 익힘이 없으면 곧 배움이 아니다. 치지(致知)는 지식을 익히고자 한 것이고 역행(力行)은 실행을 익히고자 한 것이다. 만약 "나의 지식이 이미 지극하고 나의 실행이 이미 힘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여 더는 때때로 익힘의 노력할 것이 없다."라고 말한다면 아는 것이 협소해지고 실행이 질퍽질퍽해질 것이다. 이미 협소하고 또 질퍽질퍽해지면 이른바 행동이 아는 것에 구애되어 지극히 고요한 가운데 또한 전일의 청명(淸明)함을 보존할 수 없어서 통괄하여 주관하는 것이 병주고향(幷州故鄕)182)에 귀착되는 것은 드물 것이다. 두려워해야 할 것이로다!우리 고을에 신여진(愼汝眞) 군이 있어 그 서재를 '시습(時習)'이라 편액하고 나에게 글을 써주기를 깊이 간청하였다. 내가 지행(知行) 두 글자를 들어 곡진하게 고했다. 나 또한 십 년 전의 사냥을 좋아하는 습관을 고치지 못했는데183) 이것으로 경계를 삼는다.임진년(1652, 효종3) 2월 10일 쓰다. 至靜之謂'性'。 有動之謂'氣'。 自靜而動之謂'情'。 統是而主焉之謂'心'。 是心之微。 雖宅於方寸。 其用之廣。 彌六合而不竆。 六合之廣。 收而致之方寸之內。 物各付物。 萬善俱足。 其不學而能之歟? 六合之廣。 萬善之衆。 運而輸之方寸之小。 擇而能守。 守而能行。 其不習而能之歟? 此致知力行。 爲學問之始終。 而闕里之徒。 弁之於二十篇之首者也。 至靜之中。 雖不容時習之功。 有動之後。 苟一息之不習則便非學矣。 致知欲其習於知也。 力行欲其習於行也。 若曰: "吾之知旣至。 吾之行旣力。 更不加時習之功。" 則所知者狹。 所行者泥。 旣狹且泥則所謂動之者。 拘於自知。 而至靜之中。 亦不能存其前日之淸明。 而所謂統而主之者。 鮮不歸幷州之故鄕矣。 其可畏也夫! 吾黨有愼君汝眞者。 扁其齋曰'時習'。 屬余求言甚懇。 余擧知行二字申告之。 余亦未革夫十年前喜獵之習者。 仍自警省焉。 壬辰仲春上澣書。 육합(六合) 상하(上下)와 사방(四方)으로 천지(天地)를 의미한다. 사물을 …… 맡겨두어 물각부물(物各付物)의 의미로, 사물을 제각각의 사물에 맡겨둔다는 뜻이다. 《근사록(近思錄)》 권4 〈존양(存養)〉에 "사람이 어떤 일을 합당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만 다른 일에 구애된 나머지 사물을 제각각의 사물에 맡겨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물을 제각각의 사물에 맡겨두면 이는 내가 사물을 부리는 것이지만, 사물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면 이는 사물에 의해 부림을 받는 것이다.[人不止於事, 只是攬他事, 不能使物各付物, 物各付物, 則是役物, 爲物所役, 則是役於物.]"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주(註)에 "사물을 제각각의 사물에 맡겨둔다고 하는 것은, 사물이 오면 반응을 하되 과도하게 하지 않고, 사물이 가면 변화하되, 그 흔적에 구애받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내가 사물을 부리게 되고 사물에 의해 부림을 당하지 않게 된다.[所謂物各付物者, 物來而應, 不過其則, 物往而化, 不滯其迹, 是則役物而不爲物所役.]"라고 하였다. 자기의 주관을 개입시키지 않고, 어떤 일이든 객관적으로 살펴서 그 일에 알맞게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궐리(闕里) 산동성(山東省) 곡부현(曲阜縣)에 있는 공자의 옛 마을로, 공자가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병주고향(幷州故鄕) 정든 타향을 고향에 비유하는 말로 당나라의 가도(賈島)가 병주(幷州)에 오래 살다가 떠나면서 지은 〈상건을 건너며[度桑乾]〉에서 "돌아서 병주를 바라보니 이게 고향인가 하노라.[却望幷州, 是故鄕.]"라는 구절에서 나온 것이다. 오랫동안 생활하여 정든 타향을 뜻한다. 여기서는 자신이 해 오던 학문 방식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깨달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냥을 …… 못했는데 정호(程顥)가 16, 7세 때에 사냥을 좋아하다가 그만두고 "저는 이미 사냥을 좋아하는 마음이 없어졌습니다."라고 하자, 그의 스승 주돈이(周敦頥)가 "말을 어찌 그리 쉽게 하는가. 지금은 그 마음이 숨어 있어 드러나지 않는 것일 뿐이네. 어느 날 싹이 터 움직이면 다시 전과 같을 것이네."라고 하였다. 그로부터 12년 뒤 석양 무렵 집으로 돌아오던 중, 들판에서 사냥하는 광경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즐거운 마음이 들자 비로소 그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줄을 알았다고 한다. 《二程全書 권8》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근서사암집후 謹書思菴集後 《사암선생집(思菴先生集)》은 모두 2책 6권으로, 부록은 백사(白沙)208)의 찬(撰)과 장(狀), 상국(相國) 청음(淸陰),209) 백헌로야(白軒老爺)210)가 실제로 서문과 발문을 썼으니 경편(瓊篇)211)·옥결(玉訣)212)이 빛나 서로 비추고 남의 이목을 빛나게 하니 아! 위대하도다. 다만 한마디 말이 있으니 덕 있는 선비에게 있어서 귀한 것은 말을 세우고 글로 써서 길이길이 세상에 드리우는 것으로, 이는 비단 문장과 시문뿐만이 아니다. 세도(世道)에 관련이 되고 풍화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실제로 그 근본 뜻이다. 선생이 조정에 선 사십 년 동안 제상의 자리에 10여 년을 출입하면서 군덕(君德)을 보필하고 치도(治道)를 도와서 반드시 크게 건명하고 크게 수립한 것이 필시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편집 사이에 적막하게 장주(章奏)와 고계(告啓)에 대해 언급한 것이 한두 문자가 없는 것은 어째서인가? 선생은 어려서 화담(花潭)213)을 섬겨 학문이 그 통서(통서)를 이었으니 선사(先師)의 여지(餘旨)를 소술(紹述)해서 음영(吟咏)에서 발하고 장구(章句)로 전파하여 발명(發明)한 작품이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편자(片字)·척언(隻言)도 문집 중에 보이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 편집한 것은 산수(山水) 사이의 풍영(諷詠)에 불과하고, 치문(緇門)214)의 축율(軸律)은 유독 상세하게 기재하였으니 아! 한창려(韓昌黎)215)의 이른바 '별 같은 시들은 주워 모으고 해와 달 같은 석고문(石鼓文)은 빠뜨렸네.'216)라는 것이 이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아! 이것은 어찌 선생이 의탁할 만한 자제가 없어서 집안 대대로 전할 보배를 잃어버려서가 아니겠는가? 애석하도다! 아니면 대대로 전할 선생의 지위가 영상(領相)에 이르렀는데도 '좌상(左相) 사면(辭免)의 비답'이라고 했고, 율곡(栗谷)217)이 홍문관 대제학[文衡] 때에 지은 백사(白沙)의 행장에 임신년(1632, 인조10) 우상(右相)이라고 하는 데에 그쳤으니 또한 의심할 만하다. 모두 기록해서 바름을 구하기를 기다린다. 思菴先生集凡二冊六卷。 附白沙撰狀。 淸陰相國,白軒老爺實首尾之。 瓊篇玉訣。 炳琅相暎。 照人耳目。 嗚呼! 偉矣。 第有一言。 所貴乎有德之士。 立言著書。 垂示永世者。 非但文詞華藻而已。 其有關世道。 左右風化者。 實其本意。 先生立朝四十年。 出入相位一紀有餘。 輔弼君德。 羽翼治道。 必多大建明大樹立矣。 編集之間。 寂無一二文字及於章奏告啓之書何耶? 先生早事花潭。 學傳其緖。 則紹述先師之餘旨。 發於吟咏。 播之章句。 以發明之者。 必有其作。 片字隻言不見於集中何耶? 其所輯者。 不過山水間諷詠。 而緇門軸律。 獨加詳載。 嗚呼! 韓昌黎所謂掎摭星宿遺羲娥者。 非此之謂耶? 噫! 此豈先生階庭無托。 而家傳之寶。 有所遺失耶? 惜哉! 抑世傳先生位至領相。 而左相辭免批敎則栗谷秉文衡時所撰。 白沙之狀。 止於壬申右相。 亦可疑矣。 幷錄之。 以待求正云。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1556~1618)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자상(子常), 호는 백사(白沙) 등이다. 이이(李珥)의 문인으로, 1580년 문과에 급제하고 사가독서(賜暇讀書) 하였다. 이후 언관직을 두루 거쳤으며, 1589년 정여립(鄭汝立)의 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평난공신(平難功臣) 3등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 병조 판서가 되어 전란을 지휘하였으며, 광해군 즉위 후 폐모론(廢母論)에 적극 반대하다 삭탈관직되고 북청(北靑)으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사후에 복관되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다. 저서로 《백사집》이 있으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청음(淸陰) 김상헌(金尙憲, 1570~1652)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 등이다.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아우이며, 윤근수(尹根壽)의 문인이다. 1596년 정시 문과에 급제하고 1608년 문과 중시에 급제한 후 대사헌·대사성·대제학을 거쳐 육조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였다. 병자호란 때 주화론(主和論)을 배척하고 끝까지 주전론(主戰論)을 주장하다 인조가 항복하자 파직되었으며, 1639년에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요구한 출병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청나라에 압송되어 6년 후에 풀려났다. 저서에 《청음집(淸陰集)》이 있으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백헌로야(白軒老爺) 이경석(李景奭, 1595~1671)으로,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상보(尙輔)이며, 호는 백헌(白軒)이다. 종실 덕천군(德泉君) 이후생(李厚生)의 6대손이다. 김장생의 문인으로, 병자호란 때 〈삼전도비문(三田渡碑文)〉을 지었다. 1649년에 효종의 북벌 계획이 이언표(李彦標) 등의 밀고로 청나라에 알려져 사문(査問)하는 일이 있었다. 효종의 구명으로 목숨을 건지고 백마산성(白馬山城)에 위리안치되었다. 저서로는 《백헌집(白軒集)》 등이 있고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西溪集 卷12 領議政白軒李公神道碑銘 韓國文集叢刊 134輯》 경편(瓊篇) 상대방이 보내 준 아름다운 시를 뜻한다. 《시경》 〈모과(木瓜)〉에 "나에게 모과를 던져 주기에, 아름다운 옥으로써 갚는다.[投我以木瓜 報之以瓊琚]"라고 하였다. 옥결(玉訣) 도가(道家)의 주문(呪文), 비결(秘訣) 등에 대한 미칭(美稱)이다. 당(唐)나라 이백(李白)의 글 〈동야어수주자양선생찬하루송연자원연은선성산서(冬夜於隨州紫陽先生餐霞樓送煙子元演隱仙城山序)〉에, "우리 몇 사람을 맞이하여 혼원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금서와 옥결이 모두 여기에 있다.[延我數,子 高談混元, 金書玉訣, 盡在此矣.]"라고 하였다.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1489~1546)의 호이다. 본관은 당성(唐城), 자는 가구(可久), 호는 화담·복재(復齋),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평생 관직에 나가지 않고 송도(松都)에 머무르며 학문 연구와 교육에만 전념하여 황진이(黃眞伊), 박연폭포(朴淵瀑布)와 함께 '송도 3절(松都三絶)'로 불리기도 하였다. 문집에 《화담집》이 있다. 치문(緇門) 승려는 치의(緇衣)를 입으므로 승문(僧門)을 이른다. 한창려(韓昌黎) 한유(韓愈, 768~824)을 가리킨다. 한유는 당(唐)나라의 문장가로 자는 퇴지(退之)이고 시호는 문공(文公)이다. 송대(宋代)에 창려백(昌黎伯)에 추봉(追封)되었으므로 한창려(韓昌黎)라고 불린다. 유가 사상을 존중하고 도교·불교를 배격하였으며, 특히 요(堯)·순(舜)에서 공(孔)·맹(孟)으로 전해 내려오던 학문의 전통을 주장하여 송대 성리학(性理學)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저서로는 《창려선생집(昌黎先生集)》이 있다. 한창려(韓昌黎)의 …… 빠뜨렸네 한유(韓愈)가 주 선왕(周宣王) 때의 것이라고 전하는 석고문(石鼓文)을 발견하고서, 공자(孔子)가 《시경(詩經)》에 이 글을 채집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그가 석고가(石鼓歌)를 지어 노래한 가운데, "공자는 서쪽으로 진 나라를 가지 못하여, 별 같은 시들은 주워 모으고 해와 달 같은 석고문은 빠뜨렸네.[孔子西行不到秦, 掎摭星宿遺羲娥.]"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로,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 또는 석담(石潭), 시호는 문성이다. 저서에 《율곡집》이 있다.

상세정보
저자 :
유형 :
고전적
유형분류 :
집부

옥수기유기 玉峀奇遊記 면성(綿城)184)의 동쪽, 금강(錦江)의 북쪽에 하나의 기이한 봉우리가 사호(沙湖) 가에 우뚝 서 있어 이름을 '옥수(玉峀)'라고 하는데, 연파처사(烟波處士)185)가 바위틈에 하나의 작은 집을 짓고 읊은 동악백운(東岳白雲)의 시구186)가 온 세상에 빛나 산이 외롭지 않다. 내가 이 세상에서 반평생을 병마[二竪兒]187)에 시달려 아직껏 절정에 올라 고상한 자취를 살피지 못하였다. 경술년(1670, 현종11) 4월 하순에 조각배 하나를 얻기를 도모하여 물길 따라 띄워, 생각했던 대로 그 밑으로 갔다.미처 수백 궁(弓) 거리에 못 미쳐 중류에서 바라보니, 단지 첩옥(疊玉) 누경(累瓊)만이 보이는데 빼어난 세상 밖에 창송(蒼松) 취초(翠草)가 분벽(粉壁) 사이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바위 모서리에 배를 대고 언덕을 따라 올라가 구불구불 동쪽으로 돌아가다가 석대 위에서 쉬고 거듭 서쪽으로 꺾어 들자 오솔길이 있었다. 돌 비탈 6, 7보를 기어오르면서 오른편으로 백장(百丈) 층벽을 붙들고 왼편으로 천길 깊은 못을 굽어보니, 겨우 하나의 지팡이와 신발을 허용할 정도였다. 몇 걸음을 가다가 옥수암(玉峀庵) 옛터를 만났는데 면적(延袤)188)은 2장(二丈) 남짓으로 푸른 이끼와 잔디가 오래된 섬돌을 뒤덮고, 돌 사이에 오직 안석류(安石榴)189) 한 떨기가 있었는데, 처사가 손수 심은 것이었다. 그 서편 돌길에 아직도 남은 자취가 있어 풀과 가시가 자라지 않았다. 또 그 서편으로 작은 대(臺)가 있고, 작은 대에서 다시 동쪽으로 돌아 북쪽 가까이 올라가니 한걸음에 한 석대(石臺)가 층층 첩첩 쌓여 있어 번민과 피로를 잊었고, 높은 정상에 오르자 활연히 통창(通暢)하여 신선이 된 것처럼 상쾌하였다. 석대 위에 의자 같은 돌이 있고, 의자 위에 창송(蒼松)이 일산 같았다. 의자에 걸터앉아 사방으로 하늘 자락을 바라보니 이 몸이 티끌 세상의 인간이란 걸 깜빡하였다.인하여 연파 노선(烟波老仙)이 대나무 가마와 복건(幅巾)으로 사물을 보고 흥을 일으켜 붓을 뽑아 붉은 점을 찍어 월변승영(月邊僧影)의 시190)에 휘둘러 뿌리던 기상과 풍채를 상상하니, 눈앞의 일처럼 선하였다. 우러르고 굽어보는 사이에 감개가 이어졌으니, 모르겠지만 세월이 얼마나 지나야 우리 인간의 자취가 다 민멸(泯滅)하고, 또 어떤 사람이 오늘의 일처럼 세상 밖에 뜻을 두고 나중에 나의 자취를 살펴볼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석공(石工)을 시켜 연파(烟波)의 한 절구(絶句)를 석벽 위에 새기고, 그 뒤에 누추한 나의 이름을 새겨 호산(湖山)의 질탕한 회포를 붙이고 싶었으나 산랑(散浪)의 사람이라 힘이 모자라 뜻을 이루지 못하니 서글펐다. 이에 추연(愀然)하여 즐기지 못하고 발길 따라 아래로 내려오다가 산자락에 이르러 층벽(層壁)을 돌아보니, 한 늙은 중이 있었는데 어디서 온 자인지 알 수 없었으나 등 넝쿨을 헤치며 언덕을 짚고 올라 위태로운 바위꼭대기에 앉아 있기에 내가 기이하게 여겨 부르며 오게 하였으나, 행적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 또한 배에 올라 읊조리며 돌아가다가 해산(海山)을 돌아보니 좋은 꿈에서 깬 것만 같았다. 綿城之東錦江之北。 有一奇峯。 特立乎沙湖之上。 其名曰'玉峀'。 烟波處士構一小屋巖隙間。 東岳白雲之句。 炳燿一世而山不孤矣。 余半生斯世。 爲二竪兒所魔。 尙未克登絶頂而撫高躅矣。 庚戌淸和下澣。 謀得一小艇。 順流而泛。 腹猶果然而抵其下。 未及至數百弓。 中流而望則但見疊玉累瓊。 挺然天表。 蒼松翠草散亂乎粉壁間矣。 泊舟巖角。 緣崖而升。 逶迤東轉。 偃息乎石臺之上。 仍西折而有小逕。 攀磴六七步。 右扶百丈層壁。 左瞰千仞深潭。 僅容一杖。 數足而進。 得玉峀庵舊基。 延袤可二丈許。 靑蘚碧莎。 堙沒古砌。 石間惟有安石榴一叢。 盖處士手植也。 其西石逕。 尙有遺蹤。 草棘不生。 又其西有小臺。 自小臺又東轉。 近北而上。 一步一石臺。 層疊而升。 不覺惱疲而至高巓。 豁然通暢。 爽若登仙然矣。 石臺之上。 有石如椅。 椅上蒼松如偃盖。 踞椅而坐。 四望天倪。 不知此身是塵中人也。 仍想烟波老仙以筍輿幅巾。 覽物起興。 抽毫點朱。 揮灑月邊僧影之什。 其氣像神彩。 了了如眼中事也。 俛仰之間。 感慨繼之。 則未知幾經年而吾人此跡。 泯滅已盡。 又有何人志存物表如今日事。 而來撫我踵耶? 每思至此。 欲倩石工刻烟波一絶于石壁上。 又刻陋名字其後。 以寓湖山跌宕之懷。 而散浪之人。 力瑣不及遂則戚矣。 於是愀然不樂。 信步而下。 下至山足。 回望層壁則有一老衲。 不知自何來者。 披藤撫崖而上。 坐于危巖巓上。 余奇之。 呼之使來則不見所往矣。 余亦登舟諷詠而歸。 回頭海山。 如覺一好夢矣。 면성(綿城) 전라남도 무안(務安)의 별칭이다. 연파처사(烟波處士) 박개(朴漑, 1511~1586)의 호이다. 동악백운(東岳白雲)의 시구 동악백운의 시는 "작은 집 높이 매달려 자미성과 가까우니 달 옆의 스님 그림자 강 건너 날아왔네 서호의 거사 찾아와 묵으니 동악의 흰 구름 풀옷을 적시네[小屋高懸近紫微, 月邊僧影渡江飛, 西湖處士來相宿, 東岳白雲沾草衣.]"라는 7언 절구시인데 김만영은 이 원운을 박개(朴漑)의 시라 하였으나, 실제로는 이후백(李後白, 1520~1578)의 문집 《청련집(靑蓮集)》에 〈무제(無題)〉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김만영의 《남포집》 〈부원운(附原韻)〉 참조 이수아(二竪兒) 병마(病魔)의 별칭이다. 《춘추좌씨전》 성공(成公) 10년 조에 "진(晉)나라 경공(景公)이 병이 심하여 진(秦)나라의 명의(名醫)를 청하였는데, 그가 오기 전에 경공의 꿈에 두 수자(豎子)가 서로 말하기를 '내일 명의가 오면 우리를 처치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고(膏)의 밑과 황(肓)의 위로 들어가면 명의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이튿날 명의가 와서 진찰하더니 '병이 고황의 사이에 들어갔으니 치료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연무(延袤) 연(延)은 가로로서 동서(東西)의 길이, 무(袤)는 세로로서 남북(南北)의 길이를 뜻한다. 여기에서는 면적을 뜻한다. 안석류(安石榴) 한(漢) 나라 장건(張騫)이 서역(西域)에 사신으로 갔다가 안석국(安石國)에서 가지고 왔다는 석류나무이다. 월변승영(月邊僧影)의 시 《남포집》 〈부원운(附原韻)〉에 나와 있는 박개(朴漑)가 지었다는 시 구절을 말한다.

상세정보
517956
/25898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