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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김영순(金永淳)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永淳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오년 7월 15일, 동문제 김영순이 동문 형에게 자신이 초록한 책을 보내며 살펴보고 다시 정리하여 보내 줄 것을 청한 서간. 경오년 7월 15일, 동문제(同門弟) 김영순(金永淳)이 동문 형에게 그동안의 안부를 전하고 자신이 늘그막에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서 초록하여 만든 소책자를 보내며 읽어보고 읽을 만하지 않은 것은 빼고 다시 자신에게 보내 줄 것을 청한 서간이다. 먼저 당신의 농장에서 만나지 못하고 갑자기 이별한 것이 슬펐다고 인사하고 담대헌(澹對軒)에서의 편지가 진열(珍烈) 편에 도착했는데 우편을 믿지 못하여 답장을 지연시켰으니 스스로 게을럿던 것을 반성한다고 했다. 이제 여름으로 장마더위로 날씨가 이상한데, 경학하시는 당신이 아드님과 잘 지내고 있는지 물었다. 자신은 4월 이후로 둘째 며느리가 우연히 이상한 병에 걸려 두통과 가슴놀람증으로 의원을 맞이하여 치료했는데, 사지가 역절풍이 와서 또 아파하여 부득이 상림의국(上林醫局)에서 조리하였다고 했다. 전의 증세는 나았는데 뒷 증세가 다 낫지 않은 상태에서 엊그제 집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복약 중이라고 했다. 자신이 어려서 공부를 하지 못했다가 뒤늦게 후회가 막급하다는 것, 쇠한 기력 때문에 책을 많이 읽을 수가 없어 략초(略抄)로 사색(思索)등의 글을 수렴하여 하나의 작은 책자로 편집해서 조석으로 공부한다는 것, 이것으로 남은 생을 보내는 자료로 삼기로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형의 손을 지나지 않으면 어찌 말이 되겠느냐며 자신의 족숙(族叔)편에 보내니 보시고, 읽을 만하지 않은 것은 빼버리고 다시 하나의 소책자를 만들어 보내주시면 어떻겠느냐고 부탁했다. 정시(亭詩)는 눈을 뜨게 해 주었다며 감동받은 좋은 글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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客冬修候送, 未承 覆, 恒切悵仰, 專因 令允覲行, 槩聞二音, 稍豁遠懷. 謹伏問暮春者旅中動止, 一直安勝, 本職之 見解, 可謂无妄之灾. 第似爲他職, 幸復之一機會, 則又安知憑氷失寒爲得失之理耶. 以是仰慰萬萬. 世下生 ▣度了, 餘無足聞. 侄息以輪症,初則無事出場矣. 間以添發,方用▣▣劇, 而昨秋又有▣▣別症多般藥治, 而憬慮萬無不到矣. 季次使與 咸郞以是深慮, 至於忘當尤用莫比耳. 此去文書▣迷兒與受者 次以喪禍, 餘劫寡妓, 急出斜本錢拾▣緡▣…上, 從近必送如何. 至企至企. 興陽倅或有相知之道, 則某条得簡, 已爲持守.畓訟時, 得力之道, 則其非受 賜之多乎, 至仰至仰. 餘心撓, 不備狀上. 伏惟下在. 謹候狀上.丁未三月旬日, 世下生 金萬鑑 拜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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仙庄未穩, 霎別悵惘, 日切繼以雅圅可敵御李, 適此澹對軒書, 珍烈便來到, 難容憑郵幷寄者, 故逋謝遷延, 自訟自慢而已. 今夏潦炎,偏酷異常, 不審經體冲裕曁賢胤輩安侍殷課慥慥, 未幷願聞之至. 弟自四月以來, 次婦偶罹奇祟, 頭痛也胷驚也. 延醫纔治未了, 以四肢逆節風又痛, 不得已騎送于上林醫局調理矣. 前祟雖夬, 而後祟尙未夬, 再昨還家, 方在服藥中耳. 閔焦閔焦而已. 鄙之自小失學晩暮追悔莫及, 而自顧衰力, 誠難廣讀, 惟有淺計略抄收斂思索等文, 而集爲一小冊子. 朝夕爲課, 以送餘年之資矣. 且更思之, 則不經吾兄之手, 恐有邯鄲故客臘以此說及, 則罪惟方此祭故也. 歲餘无多, 須爲襲送云, 然於往來之際, 若掛於他眼, 則不諒鄙之衰悔, 而輒誚以渠, 何足爲蒐述之有, 豈非悚之者乎. 故不嫌尊老. 鄙族叔緊便送上, 雖是 衰境勞焦, 若非吾兄則何敢率爾. 乃爲第待靜暇獨勘, 而幸勿置於露處仰之. 覽下則想有不滿矣. 然則撮其不可不讀者, 更爲一小冊子何如何. 亭詩使人洗眼, 有足感動, 眞佳作也. 俯示鹿洞行或曰某也不詳其海如何, 故有此輕行云, 予答曰, 積城問宋家題主人誰耶. 栗谷先生良久乃曰喪人輩草土號泣之中, 屬望甚懇, 予甚以爲難, 而不得已題之云,以大賢之事, 推之容或無怪也. 又曰於此有爲人欺罔者, 則不責欺人者而先責爲人罔者耶. 不責鄕中, 而但責某也何也, 一座笑曰, 然之矣. 餘惱於家故洞故, 而神昏艱草, 不備只此. 冀珍嗇以慰遠忱.庚午七月十五日, 同門弟 金永淳 拜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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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 김만감(金萬鑑)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萬鑑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미년 3월 10일, 세하생 김만감이 안부를 묻고 돈을 보내 줄 것과 소송에 도움을 받고자 흥양 수령과의 인맥을 트는 일에 관해 언급한 서간. 정미년 3월 10일, 세하생(世下生) 김만감(金萬鑑)이 안부를 묻고 돈을 보내 줄 것과 소송에 도움을 받고자 흥양 수령과의 인맥을 트는 일에 관해 언급한 서간이다. 작년 겨울에 편지를 보낸 뒤로 답장을 받지 못하여 항상 답답했다가 아드님 근행(覲行)으로 대략의 소식을 듣게 되어 위로되었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3월의 날씨에 집을 떠나 있는 상대가 안녕한지 묻고 상대가 본직(本職)에서 떠나게 된 것을 위로하고, 자신은 그럭저럭 지낸다고 했다. 질식(侄息)의 유행병을 앓아 걱정이라고 한 뒤, 이번에 보내는 문서(文書)에 대해 설명하고, 돈을 반드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흥양(興陽)의 수령과 혹 서로 알게 될 방도가 있다면 편지를 얻어서 가지고 있으면 전답에 대한 소송 때에 힘이 될 것이라는 말 등을 전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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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吳友)의 은재수송(隱齋壽頌) 피봉(皮封) 고문서-시문류-시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467 벗 오 모가 은재 권 모의 회갑을 축하하는 내용으로 지은 차운시의 피봉. 벗 오(吳) 모가 은재(隱齋) 권(權) 모의 회갑을 축하하는 내용으로 지은 차운시의 피봉(皮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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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위계룡(魏啓龍)의 청계당족형수모회시축서(淸溪堂族兄壽母會詩軸序) 고문서-시문류-서 魏啓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0년 음력 5월 5일 천중절에 족제 위계룡이 지은, 청계당 족형의 어머니 칠순을 맞아 설행한 모임인 수모회의 시축 서문. 1900년 음력 5월 5일 천중절에 족제 위계룡(魏啓龍)이 지은 청계당(靑溪堂) 족형의 어머니 수연(壽筵)을 설행하며 결성한 수모회(壽母會)의 시축(詩軸) 서문이다. 청계당 족형의 어머니는 광산김씨(光山金氏)로, 족형이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약 30년에 이르기까지 모셨던 홀어머니의 칠순을 축하하는 뜻으로 결성한 모임이 수모회(壽母會)이다. 수모회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과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읊은 내용이다. 마지막에 서문의 일자를 적고 나서 7언율시 1수를 적었다. 운자(韻字)는 당(堂), 강(康), 방(方), 장(藏)이며 '미정고(未定稿)'라고 적고 마쳤다. 위계룡(1870~1948)의 본관은 장흥(長興), 호는 오헌(梧軒), 관산읍 방촌리 호동 태생이다. 면암 최익현, 연재 송병선, 송사 기우만, 일신 정의림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최익현이 의병을 일으키자 참여하였으며 이후에도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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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溪堂族兄 壽母會 詩軸序七旬壽會, 人間盛事, 然非安樂, 無此會非此會, 無以見樂. 其樂之意, 何以知其然也. 於吾淸溪族兄壽母會見之, 矣溪兄幼而失怙, 承歡偏慈, 今三十年, 慈氏花甲七旬, 動息康寧, 茂彊之慶可期. 慈夫人金氏貫光山. 律身以禮, 誨子以義, 方步步繩尺. 盖不合於內則 女史之旨者寡矣. 而溪兄之蒙家,完美存心, 實信秋毫皆慈敎也. 粤在丙申春, 余造其堂,溪兄泣謂余曰, 人孰無父母, 人孰無鞠養之恩. 余以甇孑早孤, 依仰於吾老慈者, 其情實有異於人. 今年卽吾老慈回甲也. 賞與吾荊妻議敬爲生朝別其酒肉會親戚而介眉壽罔極之德, 庶報萬一, 不幸荊妻, 遽已黃壤矣. 此計遂左, 非特心有所不忍也. 方老慈以爲天奪, 吾孝婦盡宵慟怛. 此時飾慶勢不可行也. 因出祭夫人文而示之, 俄來口中語, 具載無遺,苟非忍人. 讀此文鮮, 有不涔涔者. 余於是愀然改容而謹復曰,是亦哭則不歌之義. 吾兄之心, 安得不然也. 向所謂非安樂無此會者, 此類是已, 比續室承歡養志一如前日, 盖見積善家福祿有方進未艾之象盛矣哉. 曁庚子春, 以其慈氏之命, 重修淸溪堂, 工告訖壽辰, 適會於是, 遂置酒速賓, 以謀一日之樂. 四月望日, 實維其時, 奉華觴而登堂, 着班衣而舞庭, 一如古孝子之爲. 且賡和晦翁壽母詩十七韻, 以見畢生孺慕之意, 一座詠嘆, 各爲四韻, 而美之此其軸也, 畵出壽席情意, 盖彬彬矣. 或有難之者曰, 人子當父母生朝, 辦甘脆祝壽考職耳. 無庸爲言, 至於備酒殽速賓客設宴飾喜, 視程夫子悲痛之訓, 似涉不可, 而且不幾於誇耀聽聞乎. 余曰否否, 必有酒肉, 必請所與,事親之禮也. 推此義則釃酒與人見其樂其樂之意, 夫誰曰不可. 矧今吾溪兄之擧, 盖其親志也. 而堂適成飮落之意寓焉.嘗聞古之人, 作室以聚國. 族於斯爲善頌善禱, 然則聚賓燕喜, 亦何有傷也. 一日之會, 兩義存焉. 此所謂道並行, 而不相悖者也. 曷足難焉. 或唯唯, 而退溪兄, 以吾知顚末, 命置序於軸端. 余啞然笑曰, 吾聞君子周{隱-阝}, 不繼富兄之手足矣. 豈復他人爲也. 無乃吾兄孝養之節, 有以非所能自言者, 欲借我而發之耶? 陳葉二詩, 來田地都被, 占却敎人, 無下手處者. 此朱先生辭人文字語也. 今此軸也, 當時詞翰諸公之若, 詩文非陳葉二詩而止. 顧惟文拙. 奈踏磨{馬+盧}迹, 何雖然余亦獲參坐末, 目擊艶矣. 那得無一語, 但懼寸莛力微, 不稱撞於洪鍾, 使吾兄子母孝慈之美, 反有以{黑+乙}昧也. 秉筆復閣, 駐不得而後, 敢書非曰文也. 亦各言其志也.是歲之天中節 族弟啓龍 書于壹谷之一梧軒壽軸序不揆陋拙 旣敢犯手於其詩 復以下里之歌 賡載獻羊 何益續貂 可愧滿庭竹栢動微亦 爲慶班衣戱北堂 職供董生耕且讀福全箕範壽而康 速客于需非直宴 悅親之節亦其方 年年此日來無盡 永使中廚甘脆藏未定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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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위계관(魏啓寬)의 이연암(李蓮菴) 제문(祭文) 피봉(皮封) 고문서-시문류-제문 魏啓寬 李蓮菴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위계관 생이 이연암을 위해 지은 제문을 넣은 피봉. 위계관(魏啓寬) 생(生)이 이연암(李蓮菴)을 위해 지은 제문(祭文)을 넣은 피봉(皮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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完文右完文爲永久遵行事 本邑處在於三甫孔路之邊 兵水兩營之間 其所受弊 比他邑不啻陪蓰 而所謂秋房廳素參闊殘 不勝淸寒 陪官之行路 粮難辦 出站之路 人馬莫辦 目下難支 乃一邑之最 恒庸捄弊 此無所出矣 何幸郡內望湖亭居李生員主 洞燭難支之實狀 特出黎字三斗畓負數十一卜六束庫 以補萬一治如河水 恩高泰山 其匍匐之道 不可晏然 同宅山所禁養之節 其他仰報之方 隨其處分 合力圖報 毋孤顧恒之恩譯 錄載秋房之古冊 恒誦同宅之德誼 於萬斯年 依此遵行幸甚己未十月二十八日 刑房 韓宗黙[着名] 金翊魯[着名] 金顯澤[着名] 林成春[着名] 河永祿[着名] 吉有宗[着名] 尹守儉[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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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6년 전여옥(田汝玉) 별급명문(別給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田汝玉 長孫婦 田汝玉<着名>, 梁大千<着名>, 劉世彰<着名> □…□ 5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26년 4월에 전여옥이 장손자 며느리에게 노비 1명을 물려주면서 작성한 분재기. 1726년 4월 6일에 시할아버지인 田汝玉이 장손자며느리에게 노비를 상속하면서 작성해 준 別給明文이다. 전여옥은 본문 서두에서 재산을 물려주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집안의 흥하고 쇠함은 오로지 내조를 잘하는 여부에 달려 있다. 지금 손자며느리의 자태와 용모를 보아하니, 五品의 형상이 거듭 모여 있다. 어찌 가상하고 다행이지 않는가. 이러한데 조부된 도리로 영리한 손자에 대한 높은 정을 참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물려주는 재산은 婢 1명인데, 그 인적 사항은 '내 몫으로 물려받은 婢 亍音花의 세 번째 소생인 婢 巡禮, 나이 15세 임진년생'이다. 證保로 梁大千과 筆執으로 劉世彰이 문서 작성에 참여하고 있다. 문서 뒷면에는 배탈입안이 기재되어 있다. 입안은 분재기를 작성한지 31년 뒤엔 1757년 3월에 咸平縣에서 발급하였다. 입안의 내용은 함평현에 거주하는 幼學 田福載가 노비를 같은 함평현에 거주하는 幼學 李命龍에게 노비를 매도했음을 증빙하는 사항이다. 팔고 있는 노비는 31년 전 분재기에서 물려받은 婢인 巡禮가 포함되었고, 아울러 그녀의 첫째 소생인 奴 男奉(23세, 을묘년생), 둘째 소생인 婢 二尙(19세, 기미년생), 셋째 소생인 婢 舍每(16세, 임술년생), 넷째 소생인 婢 禿德(11세, 정묘년생), 다섯째 소생인 奴 福男(6세, 임신년생)도 해당되었다. 모두 6명의 노비를 매도하고 받은 금액은 동전 16냥이다. 배탈 문서에 기재된 田福載은 田汝玉에게 재산을 물려받은 손자며느리의 후손으로 추측할수 있다. 즉 전복재는 어머니 또는 할머니가 물려받은 노비를 그 자손과 함께 매도한 사실을 알 수 있다. 雍正四年丙午四月初六日 長孫婦處 別給明文 右明文爲事段 無他 家之興衰 但在於內助之▣ 也 今觀孫婦之姿容 則五品之象 再執 亦豈非嘉 幸耶 以玆祖行之道理 不耐其怜孫之情高乎 無物表悰 衿得婢亍音花三所生婢巡禮 年 十五壬辰 後所生幷以 右孫婦處 永永許給 爲去乎 日後良中 子孫中若有雜談相 爭之弊 則持此文告 官卞呈事 亦在 元財主 祖父 田汝玉 [着名] 證保 梁大千 [着名] 筆執 劉世彰 [着名] (背面) 乾隆二十二年丁丑三月日 咸平縣背頉 本縣居幼學田福載 衿得婢亍音化三所生婢巡禮 年四十六壬辰 同婢 一所生奴男奉 年二十三乙卯 二所生婢二尙 年十九己未 三所生婢舍 每 年十六壬戌 四所生婢禿德 年十一丁卯 五所生奴福男 年六壬申 六母子乙 價折錢文十六兩 依數捧上爲遣 本縣居幼學李命龍 前 後所生幷以 永永放賣 印 行縣監 [署押] [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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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十八年九月 日同福縣考癸酉成籍戶口帳內內西靣第七學堂里第卅七綂第一戶幼學張旭年五十甲申本興德父學生漢臣祖學生孝智曾祖學生致彦外祖學生金振彩本光山妻李氏歲四十五己丑籍全州父學生苾達祖學生甲勳曾祖成均生員相檜外祖學生李宅垕本公州卛子幼學允文年二十甲寅賤口秩婢禮先母班婢水永介父私奴突潤 庚午戶口相凖印[同福縣監之印]行縣監[署押][周挾無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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凖道光元〖二〗年九月 日同福縣考壬午成籍戶口帳內內西靣第 學堂里第 統第四戶幼學張 旭年五十九甲申本興德父學生漢臣 祖學生孝智曾祖學生致彦外祖學生金振彩本光山妻李氏歲五十四己丑籍全州父學生苾達祖學生甲勳曾祖成均生員相會外祖學生李宅垕本公州卛子幼學允文年二十九甲寅賤口秩婢禮先母班婢水永介父私奴突潤己卯戶口相準印 [周挾無改印][同福縣監之印]行縣監[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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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內儒生進士李以斗羅時鑽幼學金龍欽等謹齋沐再拜上書于巡相閤下伏以周之三物之典司徒興之漢之一藝之聞刺史擧之今我東 朝興孝勸善之盛敎亦一周漢之治也則今此實孝篤行第當式抄若無 閤下之 啓薦草野隱淪之行豈不終歸於泯沒乎道內古阜郡士人鄭溵弼系出東萊卽藝文館應校〖敎〗諱承甫之十六代孫大護軍諱 絪之十五代孫吏曺判書諱 昇之十四代孫禮曺判書諱可宗之十三代孫吏曺判書 賜號楓川諱守弘之十二代孫兵曺判書諱 傑之十一代孫生員進士諱孝孫之十代孫參奉諱 確之九代孫甲山府使諱 緝之八代孫而忠孝古家簮纓后裔也斯人自在孩提天賦仁孝謹愼事親之道敬長之節頗有良知良能矣親老家貧晝出耕耘夜入織梱僅得數畒之田以爲奉先養親之道遽當親癠之沉重百方藥餌一心調治甞糞之誠扇枕之節無減於黃香黔寠〖婁〗之孝友及其丁憂也攀號擗踊哀毁骨立廬墓三年蔬食墨面三年不懈年將七旬望朔省掃山磎成路每當考妣之忌日內外齋沐哀慕感時之痛復如袒括之日自少至老畏天命和人意守口如甁防意如城避名遯蹤食貧陋巷知足安分竹扉松籬捿息山水間篤老年光不知官門四隣一鄕咸穪瀛洲山處士翁齊家庭訓子侄之方克遵古賢之遺訓是以 營邑之題鄕道之議已有宿昔而今當式抄玆敢更禀于宣化孝理之下如斯純孝卓行 特爲 啓達俾蒙抄報之典無任祈恳之地巡相 閤下戊寅十二月日幼學林鳳相 金龍柱 李秉德 高英鎭 朴載榮 宋仁萬 吳泰永 金相益 崔慶奎 柳榮極 權鍾壽 丁在基 邊吉容 趙敬淳 安學律〈題辭〉啓聞体重益探公議事卄三日[官印]巡使[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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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 이이필(李以鉍)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以鉍 禮曹判書 禮曹[着押] 3顆(7.5×7.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989 1878년 5월에 진사 이이필·홍순관 등 전라도 유생 45인이 예조판서에게 고부군에 사는 선비 정은필의 지극한 효성과 뛰어난 행실을 포양하여 효를 흥기시키고 선을 권면할 것을 청원한 상서 1878년(고종 15) 5월에 진사 이이필(李以鉍)·홍순관(洪順寬) 등 전라도 유생 45인이 예조판서(禮曹判書)에게 고부군(古阜郡)에 사는 선비 정은필(鄭溵弼)의 지극한 효성과 뛰어난 행실을 포양(褒揚)하여 효를 흥기시키고 선을 권면할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정은필은 청환(淸宦)이 대대로 이어지고, 행의(行義)가 집안에 전하는 후손으로, 인효(仁孝)와 절검(節儉)의 성품을 지녀 지성으로 어버이를 섬기고 예를 다해 어른을 공경하였다. 장성하여서는 낮에 농사짓고 저녁에 독서하면서 어버이를 봉양하는 데 마음 쓰고 수신(守身)에 뜻을 독실하게 하였다. 부모를 봉양함에 아침저녁으로 문안하고 맛있는 음식을 올리는 일을 나날이 성실하게 하였다. 또 약수발하는 3년 동안 병든 부모의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잠자리에 부채질하고 부모를 위해 먼 곳에서 쌀을 등에 지고 오는 정성은 황향(黃香)과 중유(仲由)의 실적과 견줄 만하고, 빙천(氷川)의 잉어와 하우(夏雨)의 꿩과 같은 일은 왕공(王公)과 곽씨(郭氏)의 지극한 효성을 이은 것이다.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피눈물을 흘려 얼굴이 검게 변하였으며, 장례 일체는 모두 예제를 따랐다. 여묘살이 3년 내내 소식(素食)하고 죽을 먹었으며, 초하루와 보름에 성묘를 다녀 산골짜기에 길이 생겼다. 지금 곧 70세가 되는데도 부모의 기일 때마다 3일 동안 목욕재계하고, 부모를 추모하고 때를 느끼는 애통함을 초상 때처럼 하였다. 70세 이후로는 산림 속에서 두문불출하고 명예를 구하지 않았으며, 천명을 두려워하고 집안을 다스리는 법도와 몸가짐을 단속하는 행실은 한 고을의 의리를 잘 지키는 선비이자 작은 마을의 충신(忠信)한 사람이라 할 만 하였다. 이에 사림의 공의(公議)로 연명(聯名)하여 지극한 효성과 독실한 행실을 특별히 포양하여 효를 흥기시키고 선을 권면할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를 접수한 예조에서는 5월 7일에 '지극한 효성과 독실한 행실을 이처럼 겸비하고 있으니 듣고서 매우 감탄하였다. 하지만 포양의 은전은 우선 공의를 기다릴 것'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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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오년 박해극(朴海克) 등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海克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오년 2월 23일, 사제 박해극 등 4인이 사돈댁 사돈어르신 상에 보낸 위문 서간. 경오년 2월 23일, 사제(査弟) 박해극(朴海克) 등 4인이 사돈댁 사돈어르신 상에 위문을 하고 장례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내용으로 보낸 위문편지이다. 사돈어르신이 돌아가셨기에 즉시 위장(慰狀)을 보냈어야 하지만 인편이 없어서 그러지 못했다며 사죄하는 것으로 편지를 시작했다. 갑자기 당한 큰 슬픔을 어찌 감당하느냐며 상대를 위로하고 복중인 여러분들과 종씨(從氏)인 애형(哀兄)의 안부가 어떠한지 물었다. 자신은 모시는 어른이 잘 계시어 다행이라는 것, 장례를 언제 치르는지 물으며 문제없이 잘 치러지면 좋겠다고 했다. 그 때 상치되는 일이 없다면 마땅히 가서 위문하겠다고 한 후 며느리가 잘 먹고 별일 없다니 매우 다행이라고 언급하였다. 발신자 4인은 박해극(朴海克), 박해각(朴海珏), 박해돈(朴海暾), 박해붕(朴海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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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省式. 日前承院府査丈實音, 驚怛之極, 夫復何言. 合有趂時修 慰, 而未能者沒便以也. 猝當巨創, 能無憾於純孝加隆, 哀痛沉慟, 何以堪任. 不審此際, 寒喧無暇問, 而服中僉體事萬安, 從氏哀兄苫節, 不至生受, 廡內堂節勻迪否. 仰溯區區悲祝. 査弟 偏省錦安魯衛相. 將以是爲幸耳. 襄禮何間經營也. 近來風俗不如前日, 何以淂無擾過行也. 其時若無相値, 當進拜仰慰, 而未可預卜矣.婦阿善食免恙甚幸耳. 餘不備狀上.庚午二月二十三日, 査弟 朴海克, 海珏, 海暾, 海鵬 等 狀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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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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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1787년 당숙(堂叔)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堂叔 堂姪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7년 1월 11일, 당숙이 당질에게 보낸 서간. 1787년 1월 11일, 당숙(堂叔)이 당질(堂姪)에게 새 영장(營將)에게 보호해 줄 것을 부탁하는 일, 조카의 말을 부탁하는 일, 예조 판서의 가례도감(嘉禮都監) 당상(堂上) 임명 소식 등을 전한 서간이다. 먼저 객지에서 지내고 있는 당질의 새해 안부를 묻고, ▣곡(▣谷)의 상사(喪事)에 대한 슬픔과 딸아이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을 전하였다. 자신의 근황으로는 대정(大政)에서 포읍(布邑, 전세를 베로 내는 고을)의 말의(末擬)에 들었으나 낙점을 받지 못했음을 언급하고, 늘그막에 바쁜 것을 버티기 어려워 벼슬을 그만두고 돌아가고 싶지만 이루지 못해 근심스럽고 답답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손자며느리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에 대한 걱정스러운 마음을 표현하였으며, 삼년상을 마친 풍덕(豊德)의 사촌에게 위문편지와 자신의 말을 전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이어서 새 영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는데, 자신과 여러 달 동안 동료로 지내 친한 사람이라고 하고, 중명(仲明)의 이름을 잊어버려서 '명(明)'자로 존문(存問)을 하게 할 것이며 보호해 줄 것도 부탁할 것이라고 하였다. 만약 찾아가 만날 일이 있으면 개명(改名)을 했다고 말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여러 조카의 말에 관한 부탁은 수시로 소장(訴狀)을 올려서 받아내는 방도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고 하였다. 추신에서는 서울 소식을 전하였는데, 영의정은 김치인(金致仁), 좌의정은 이복원(李福源), 우의정은 김익(金熤), 이조판서는 윤시동(尹蓍東), 병조판서는 김이소(金履素)라고 하였다. 또, 예조판서는 지금 귀인(貴人)의 가례도감 당상으로 임명되었다고 하였으며, 귀인은 유학(幼學) 박준원(朴準源)의 딸이 간택될 것이라고 하였다. 귀인은 수빈박씨(綏嬪朴氏)를 가리킨다. 이때 가례도감 당상이 된 예조판서는 이명식(李命植)으로, 1787년 1월 8일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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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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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류

1788년 나득주(羅得周) 수연시(壽宴詩) 병서(幷序) 고문서-시문류-시 羅得周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8년 7월 24일, 아들 나득주가 아버지께 올린 수연시와 서문. 1788년(정조 12) 7월 24일, 아들 나득주(羅得周)가 아버지께 올린 수연시와 서문이다. 서문에는 무신년 7월에 걸동(傑洞) 일하는 곳에서 19일, 20일 밤에는 경진(京津) 주인가(主人家)에 배알하고, 21일 밤에는 선조의 물염정(勿染亭)에 배알했는데, 반가(泮家)에서는 관패(冠珮)가 위엄 있는 모습이었고, 선정(先亭)에서는 거문고와 글씨, 바둑한판이 완연한 처사의 모습이었다고 수연잔치의 행적을 적었다. 그리고 자신은 옛날 차〔茶〕를 진헌하고, 오호도(五湖圖)를 진헌했던 일에 비추어 이처럼 편집한다고 적었다. 서문 뒤에는 5언 율시 1수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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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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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관통보류

1929년 위계관(魏啓寬) 망기(望記) 고문서-첩관통보류-망기 杜門洞七十二賢慕忠院建設期成會 魏啓寬 杜門洞七十二賢慕忠院建設期成會印(7.5×7.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9년 7월에 위계관을 찬성원으로 선정했음을 알리는 망기. 1929년 7월에 杜門洞 72賢 慕忠院 건설 기성회에서 魏啓寬에게 보낸 望記이다. 국한문을 혼용하여 작성되어 있으며, 衆望에 따라 기성회의 贊成員으로 선정한다는 내용을 전하고 있다. 魏啓寬은 '1901년 위영식(魏永植) 준호구(準戶口)'에는 위영식의 아들로 기재되어 있으며 출생년은 계유년(1873)이다. 따라서 이 당시 위계관의 나이는 57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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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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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全羅道珍島郡臨淮面居 族親衛李三萬等白活右謹陳至冤情由事段 生等以定宗大王第九男石保正子孫 流落遐陬 簪纓雖遠 來歷昭然 每式修單 本廳僅保殘閥 曾不見侮蔑侵責之患矣 近來外邑 人心不古 不念公族之自別 只蔑門戶之寒微 應爲入參之儒林 猶不許錄 反見侵於代把風憲烽燧之役 視若凡民 侵漁日甚 願念■先世 豈不冤枉乎 玆敢泣訴於糾察之下爲白去乎 參商敎是後 儒林之許入 雜役之勿侵 特爲嚴關本營 使此殘族 以保先蔭之地 千萬望良爲白只爲行下向敎是事璿源錄廳 處分己未四月 日 李季春孟奎明濟一燦三萬等所志(題辭)觀此所訴 誠甚驚駭 以中品官之支子支孫 世稱簪纓 猶得免役是在等況旀 大王子孫 代雖疎遠 省錄於璿籍者 反不如以案所錄人之子孫 以凡試匹庶小無區別 一般洞沒於雜役 尙不許入於儒林者 揆以法意 萬萬可痛 勒侵之該掌輩自本廳 依事目懲治是在果 爲先卽許儒林之意 發關巡營矣 先以此題 往付本邑宜當向事五月初七日璿源錄廳[着押][宗簿寺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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