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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장지성(張至星)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至星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4년(순조3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至星)에게 발급한 준호구 1834년(순조34)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星)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46세이고 직역은 한량(閑良)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동거인으로 21세 딸이 있으나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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戶閑良張至星年四十六乙酉本仁同父學生大運祖折衝將軍武良曾祖學生 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率女年二十一癸巳八月日行縣監[押][帖][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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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토지전당명문(土地典當明文) 고문서-증빙류-전당문기 張明化 張明化<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2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의 논 4두락지를 전당 잡히고 100냥을 빌리면서 작성한 전당문기 1902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이 일궈서 수년 동안 경작해오던 논을 급한 용처가 있어서 전당잡히게 되었는데, 서면(西面) 대평리(大坪里) 방하교(防下橋)에 있는 려자(麗字) 논 2두락지는 70냥에, 그리고 다른 2두락지의 논은 30냥으로 값을 쳐서 100냥을 빌렸다. 전당 기한은 다음해 12월 말일까지로 하였고, 그 안에 갚지 못하고 기한을 넘기게 되면 상대방이 그대로 차지하는 것으로 하였다. 다만 그 논에서 도조(賭租)로 받는 곡식은 전례대로 주고받으며, 훗날 다른 이야기를 할 경우 이 문서가 증빙자료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다른 증인이나 필집(筆執)은 참석하지 않고 장명화가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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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년 박원호(朴遠浩)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遠浩 東上宅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580 무진년에 박원호(朴遠浩)가 옥산(玉山)의 동상댁(東上宅)에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의 소식을 전하면서 가까운 시일에 한번 모임을 갖자고 의향을 묻는 내용의 간찰 무진년 8월 6일에 박원호(朴遠浩)가 옥산(玉山)의 동상댁(東上宅)에 보낸 간찰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흩어지기는 쉽고 모이기는 쉽지 않은 법이라 남북으로 떨어져 소식이 묘연하여 벗 생각이 늘 마음에 있었는데 인편을 통해 보내준 서신을 받고 부랴부랴 펼쳐보고 소리 내어 크게 읽으니 마치 한 자리에 같이 있는 듯 반가웠다고 인사하였다. 서신을 통해 요즘 체후가 좋은 것은 알 수 있었다고 하고, 부인께서는 무슨 병을 앓고 돌아가시게 되었냐고 물었다. 자신은 연로하신 어머니께서 건강이 좋지 못하여 날로 병구완을 하느라 마음이 초조한데, 본인도 검은 머리칼이 없을 정도로 하얗게 셌고 병이 점차 침범한다고 하면서 사람 사는 것이 모두 그러할 터이니 한탄한들 어쩌겠느냐고 하였다. 노년에 길을 나설 만한 형편이 아니지만 한 자리에 단란하게 모이는 것은 우리 나이에 좋은 일이라 가까운 시일에 한번 왕림하여 풍류를 즐길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이 어떠하겠냐고 의사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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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493 을묘년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에게 계숙부(季叔夫)의 상(喪)을 위로하고 조문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을 전한 간찰 을묘년 10월 1일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계숙부(季叔夫)의 상(喪)이 천만 뜻밖이라 몹시 놀랍고 슬펐다고 심정을 전하였고, 평소 넉넉지 못한 집안 형편에 장례의 모든 것들이 군색할 것 같아 마음에 잊히지 않는다고 하였다. 고모부께서는 평소 우애가 좋으셨는데 어찌 감당하고 계시며, 상을 당한 조카는 병이나 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위로하였다. 자신은 봄부터 부모님 건강이 오래도록 좋지 못하여 몸을 빼낼 겨를이 없어 진즉에 조문하지 못하여 몹시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마음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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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년 김윤(金奫)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奫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정미년에 김윤(金奫)이 옥계(玉溪)의 사돈댁에 안부를 전하며 새해 인사를 전하는 내용의 간찰 정미년 12월 14일에 김윤(金奫)이 옥계(玉溪)의 사돈댁에 보낸 간찰이다. 영애(令愛)인 이씨부인의 상(喪)을 당해서 얼마나 놀라고 슬프냐며 위로하고, 혹 건강이 상하지는 않았는지 물었다. 자신은 중후(重候)께서 오래 건강이 좋지 못하여 초조하고 걱정이 된다고 하였고, 적조했던 차에 중씨(仲氏)와 만나 여러 날 단란하게 이야기 나누며 지냈는데 이별할 때에는 마음이 울적하였다고 하였다. 섣달 그믐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오직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시기를 기원한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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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년 김연(金埏) 등 2명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埏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인년에 김연(金埏)과 김직(金{土+畟}) 형제가 사돈 이생원(李生員)에게 계씨(季氏)의 상(喪)을 위로하고, 직접 조문하지 못하여 죄송하다는 내용의 간찰 경인년 8월 2일에 김연(金埏)과 김직(金{土+畟}) 형제가 사돈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사돈의 계씨(季氏) 상(喪)은 천만 뜻밖이라 부음을 받고 너무 놀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우애가 좋으셨는데 비통함을 어찌 견디고 계시냐며 위로하였고, 가을 날씨가 쌀쌀한데 복중(服中)의 생활은 여러모로 편안하고 조카딸 모자도 병 없이 편안히 지내는지 물었다. 자신은 달려가 위로하고 겸하여 조카딸아이도 볼 계획을 세운지 오래되었지만 일이 많아서 지금까지 가보지 못했고, 몇 글자 서신을 보내는 것도 남들보다 뒤쳐졌으니 서로간의 우의가 없다고 해도 될 정도이니 너무도 부끄럽다고 마음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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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이용수(李龍洙)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龍洙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42년에 이용수(李龍洙)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육봉(六峰) 이종택(李種宅)의 문집 간행 사안에 관해 보낸 간찰 1942년 11월에 이용수(李龍洙)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육봉(六峰) 이종택(李種宅 1865~1942)의 문집 간행과 관련하여 보낸 간찰이다. 이종택은 본관은 함풍(咸豐), 자(字)는 형중(亨重), 호가 육봉(六峰)이며,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고, 만년에 영광군 대마면 남산리에 온천정사(溫泉精舍)를 짓고 그곳에서 강학활동을 한 인물이다. 이용수는 육봉의 조카로서 선생 사망 후에 유집을 발간하고자 남산리 소남재(小南齋) 안에 정초소(正草所)를 두고 일을 진행하였다. 육봉 선생과 주고받은 문인 및 지인들을 상대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본고(本稿)를 가지고 와서 대조 확인을 함으로써 훗날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해달라는 내용이다. 수고롭더라도 이러한 뜻을 인근의 여러 문인들에게 알려주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그리고 정초(正草)가 완전히 끝나면 관청의 허가를 받고 간행할 계획임을 밝혔다. 더불어 금년 봄 문생(門生)들이 계회(契會)를 했을 때에 선임한 임원 명단도 후록하였는데, 감동(監董), 총무(總務), 상무(常務), 간사(幹事), 장재(掌財)로 총 19인이다. 육봉 선생이 1942년 향년 78세로 2월 29일에 졸하였고, 동년 11월에 바로 문집 간행준비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1944년에 발간된 《육봉유집(六峰遺集)》이 현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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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지(所志) 초(草) 3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성수(成守)가 형이나 숙부와 교류 없이 남처럼 지냈음에도 도조(賭租) 횡령 등 다양한 죄를 저지르자 순검이 형과 숙부의 집에 찾아와 매년 기물을 탕진하는 것이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연도 미상의 소지(所志) 초(草) 미상의 작성인이 성수의 악행으로 인해 그 형과 형수의 집을 순검이 해마다 찾아오는 것이 부당하다고 호소하기 위해 작성한 연도 미상의 소지 초이다. 고발의 주요 내용은 성수가 사음(舍音)일 때 신축년의 도조(賭租) 천 냥을 어디엔가 사용하였고, 상납해야 할 돈 가운데 150여 냥을 무엄하게 독살[石箭]을 쌓는 데에 사용하였으며, 황소 여러 마리를 바깥에 숨겨 두었고, 집 주변에 있는 텃밭[基田] 20여 마지기를 사채(私債)로 전당 잡혔으며, 왕세(王稅)로 쓸 공전(公錢)을 함부로 가져다 처자식과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었다는 것이다. 결국 관에서 순검을 보내 그의 형과 숙부의 집에 쳐들어가 온갖 집기들을 모조리 탕진하여 잔약(殘弱)한 형과 숙부가 목숨을 보전할 수 없게 되었으니 순검께서 분명하게 살펴 원통함이 없게 해달라는 내용이다. 순검은 갑오경장 때에 신식 경찰제도가 실시되면서 설치된 경찰관직으로, 1907년에 순사(巡査)로 바뀌었다. 순검의 기본임무는 민(民)의 피해 예방, 건강 보호, 방탕음일(放湯淫逸) 제지, 국법을 범하고자 하는 자를 은밀하게 탐포(探捕)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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成守爲人外若有義而內多利欲其兄其叔視若路人也辛丑年賭租舍音時餘錢■千兩用於何處㫆上納錢中一百五十餘兩無嚴截之防築石箭ᄒᆞ며黃牛數隻隱置外方ᄒᆞ고家前後左右基田二十餘斗落私債執典爲名ᄒᆞ고王稅公錢無嚴犯用ᄒᆞ야與其妻子飽食煖衣ᄒᆞ다갸至於末境官差巡檢驅入兄家叔家ᄒᆞ야盡蕩什物去年又今年ᄒᆞ니弱兄殘叔何以保全乎巡檢明察無寃켜ᄒᆞ소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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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2년 장대언(張大彦)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彦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62년(영조38)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언(張大彦)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62년(영조38) 강진현에서 임오년(1762)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언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언은 현재 22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김애현(金愛賢)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처 최씨(崔氏)는 24세이고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최씨의 사조는 아버지는 최경천(崔擎天), 조부는 최효남(崔孝男), 증조는 최학수(崔鶴壽), 외조부는 김수성(金秀成)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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錢一百六十兩黃雲仲导訪傳次辛丑六月十七日張蔓純(피봉)黃生員雲仲氏宅入納 大平里新湖留謹候書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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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秋兄伯 秋兄伯<着名>, 秋成照<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9년 추형백(秋兄伯)이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 청송평(靑松坪)에 있는 밭 7두락지를 보리이삭[牟穗]과 함께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909년 추형백(秋兄伯)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밭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이 밭은 자신이 일궈서 수년 동안 경작해온 곳인데 금년 겨울에 부득이한 형편으로 방매하게 되었다고 사유를 적었다. 토지 소재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 청송평(靑松坪)이며 자호(字號)는 금자(金字)이다. 이 밭 7두락지와 거기에 자라고 있는 보리이삭[牟穗]을 함께 방매하면서 밭은 49냥을 받고 보리이삭은 4냥 9전을 받았다. 문서는 국한문 혼용으로 작성되었고 양식은 전통적인 명문 양식 그대로인데 증서(證書)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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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隆熙三年十一月十三日 前明文右明文事段矣自起累年耕食是加可當此今冬勢不而島內西面新里靑松坪金字田七斗落四十九兩과並牟穗價四兩九錢을捧上ᄒᆞ고日後에二論이無케爲ᄒᆞ야玆에証書ᄒᆞᆷ田主秋兄伯[着名]證人■秋成照[着名]筆 張文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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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今島鎭里己卯式戶籍單子戶得哲無亡代同姓四寸張指誠年三十一己酉本仁同父閑良 大運祖折衝 武良曾祖學生 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率女阿只年五等印戊寅九月日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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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장지철(張志喆) 언간(諺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張志喆 黃雲仲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축년 장지철(張志喆)이 황운중(黃雲仲)에게 보낸 언문 간찰 신축년 6월에 아우 장지철(張志喆)이 황운중(黃雲仲)에게 보낸 간찰이다. 돈 285냥을 이번 달 말일 사이에 갈 것이니 착실히 받아서 회계가 다 마무리되든 되지 않든지 간에 자신의 집으로 기별하여 서로 만나서 회계를 마무리하자고 하였다. 편지로 다하지 못한 말은 훗날 대면해서 말할 터이니 그리 아시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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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生員雲仲氏宅졔벅ᄒᆞ고젼二百八十五兩금월회간의갈거니영부죡간의착실이밧좌ᄒᆞ옵시고다회게가못되든지다되든지졔의집으로기벌ᄒᆞ야셜오ᄉᆞᆼ혀여셔회게ᄒᆞ옵소셔남은말ᄉᆞᆷᄎᆞᆼᄎᆞᆼᄒᆞ와할말ᄉᆞᆷ다못ᄒᆞ오니일후면ᄒᆞ야말ᄉᆞᆷ할거신니글니아옵소셔辛丑六月十七日 인졔장지쳘ᄉᆞᆼ자는만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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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장지성(張指誠)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張指誠 康津縣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9년(순조19) 장지성(張指誠)이 자기 호(戶)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강진현(康津縣)에 제출한 호구단자 1819년(순조19)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指誠)이 자기 호(戶)의 현황을 기록하여 강진현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원래의 호주였던 장득철(張得哲)이 사망하여 동성(同姓) 사촌인 장지성이 대신 호주가 되었으며, 현재 나이는 31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다. 아버지는 한량(閑良)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지성은 아내가 없는 홀아비로서 다섯 살인 딸 아지(阿只)만 기재되어 있고 처(妻)에 대한 정보는 없다. 호구단자는 호주가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대조 및 확인 작업을 거친 후 다시 돌려주는 과정에서 지방관의 서압(署押)이나 관인(官印), 주협무개인(周挾無改因), 또는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 등이 찍히기도 하는데, 이 호구단자는 그러한 흔적은 없이 하단에 '서(書)'라고 쓰여 있어 확인 후 다른 대장(大帳)에 올렸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이 문서는 기묘식년의 호적대장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고, 실제 작성은 반년 전인 무인년(1818) 9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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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六年壬寅十二月 日 右人前明文右明文事段矣自起畓累年耕食是如可所用最急故西面大坪里防下橋伏在麗字畓二斗落價文柒拾兩果同字畓■根伏在二斗落價文參拾兩合壹百代執典是矣報期來明年十二月晦內報給若過此限永爲次知爲遣禾穀以賭租前例與受而日後若有言端以此文記憑考事自筆畓主張明化[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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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장지철(張志喆)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張志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축년 장지철(張志喆)이 같은 문중의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 신축년 8월에 장지철이 같은 문중의 누군가에게 보낸 간찰이다. 상대방의 얼굴을 뵌 지도 오래되었고 서신으로 연락한지도 오래되었는데 지난번에 보낸 편지는 잘 받아보셨냐고 물었고, 자신은 집에 돌아온 뒤로 우연히 다리에 부종이 생겨 여러 날 앓았고 아직까지 다 낫지 않았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달포 전에 말씀드렸던 족보 책값에 대해 무슨 곡절인지 끝내 답변이 없어 안타깝다고 하면서 종제(從弟)인 장만원(張蔓遠)을 대신 보내니 이 사람의 말대로 하는 것이 사리에 당연하다고 당부하였다. 족보 책값을 수금하는 것에 대해 범상하게 여기지 말고 납부하여 줄 것을 요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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