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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제군신병문(關聖帝君新病文) 고문서-치부기록류-병록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병을 물리치는 비방과 부적을 쓰는 방법을 전하는 관성교(關聖敎)의 포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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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6년 장무량(張武良)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武良 康津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56년(영조32)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무량(張武良)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56년(영조32) 강진현에서 병자년(1756)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무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무량은 현재 53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홍(張弘), 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증조부는 장구전(張九田), 외조부는 김선안(金善安)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처 김해김씨(金海金氏)는 53세이다. 김해김씨의 아버지는 김애련(金愛連), 조부는 김실(金實), 증조부는 김연삼(金延三), 외조부는 김원병(金元炳)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어머니 김소사는 사망하여 고(故)로 표시하였고, 아들 대언(大彦)은 15세, 성언(聖彦)은 11세이다. 장무량의 관련 호구문서인 1744년과 1747년 준호구에는 첫째 아들 태언(泰彦)이 있었는데 이 문서에는 빠져있다. 혼인하여 분가하였거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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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山郡 瑞坊面 日谷【芝山面】盧軫永 殿(피봉_뒷면)光州府 鶴岡町 六六ノ三曺秉儀 二拜鶴鳴社告白(簡紙)伏惟辰下文祺淸穆, 仰祝?摯. 第白曺斯文盤谷秉儀氏, 天性至孝,奉先養生, 誠敬純篤, 鄕里稱其篤孝, 稟賦軒昂, 惇厚勇敢慈善, 各適其宜, 見人寃柱, 極力救伸, 知舊有不能聯生者, 損物極濟, 心常向上, 進就聞善, 輒行于友之情, 務爲式好, 未嘗失和物無物我, 此其事行之畧槩也. 陰十月二日,卽其六十一初度. 鄙等爲其賀慶, 玆敢仰告, 伏願 僉君子, 庸述詩與文, 以壽其壽, 千萬幸甚.韻押 長芳香觴鄕.投稿場所 光州府 鶴岡町 六六ノ三 辛泳協方.辛巳九月 日發起人 辛泳協 曺光鎬 吳秉南 河應鎔曺喜南 呂宗鉉 朴文俠 吳亨南金台鉉 閔泳元 宋鎭杓 李鍾杓丁鳳燮 曺甲鎬 李浩榮 丁日燮鄭淳煥 曺昌煥 奇敬度 梁仁黙 等座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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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유(吳錫裕)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吳錫裕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446 오석유(吳錫裕)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안부를 전하는 내용의 간찰 모년 5월 30일에 오석유(吳錫裕)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지난번 자신이 없을 때에 찾아주었는데 만나지 못해서 몹시 섭섭했고, 매번 편지를 써서 감사함을 표하고 싶었는데 잡다한 일에 치여 겨를이 없던 차에, 마침 보내준 편지를 받고나니 더욱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하였다. 봄과 여름이 교차하는 시절에 전원생활은 어떠신지, 부친께서는 편안하신지 묻고, 아드님이 학업을 잘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축하를 전하였다. 상대방이 사는 곳이 가까운데도 찾아뵙지 못하여 더욱 그립다고 하면서 자주 방문해달라고 당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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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유(吳錫裕)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吳錫裕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446 오석유(吳錫裕)가 노진영(盧軫永)에게 시를 지어 동봉하면서 함께 쓴 간찰 모년 5월 9일에 오석유(吳錫裕)가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간찰이다. 지난번 자신이 찾아가 처음 뵙고 인사드렸을 때 운자(韻字)를 받고 돌아와 생각하니 끝내 감당할 수 없어 지금까지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돌이켜 생각하니 사양할 수가 없어 졸렬한 솜씨로나마 시를 지어 보내니 웃으며 봐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혹시 마음에 차지 않으면 다시 말씀을 해달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시를 지은 연월은 담양에서 관직생활을 할 때로 소급해서 썼는데 심한 꾸지람을 받을까 염려스럽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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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묘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493 을묘년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인 이생원(李生員)에게 중숙부의 초상에 애도를 표하고 직접 조문하지 못하는 상황을 전하며 보낸 간찰 을묘년 3월 6일에 김극영(金極永)이 고모부인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중숙부(仲叔夫)의 상(喪)에 대해 병환이 깊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기력이 강건하시니 분명 장수하실 것으로 생각했다며 소식을 듣고 매우 놀라고 슬펐다는 심정을 전하고, 상대방은 서로 우애가 깊으셨는데 애통함을 어찌 감당하고 계시냐며 위로하였다. 더구나 상중에 있는 조카는 시탕(侍湯)도 못하고 밖에서 부음을 듣고 부랴부랴 돌아왔으니 그 모습은 이미 말할 수도 없거니와 끝없는 한스러움을 끌어안고 있을 테니 허약한 체질에 병이나 나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리고 창졸간에 당한 상인데 여러 장례 절차를 어떻게 꾸려가고 있는지 묻고, 고모님도 이런 큰 변고를 당하여 병이 나지 않았는지 우려를 표했다. 자신이 곧바로 조문을 가야 마땅한데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못하고 자신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가지 못해 죄송하다며 마음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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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이종택(李鍾宅)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鍾宅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7월 10일, 현와 고광선의 유고 간소에서 근무하는 이종택이 노진영에게 현와집 간행비 영수증과 함께 보낸 안부 서간. 1935년 7월 10일, 현와 고광선의 유고 간소에서 근무하는 이종택(李鍾宅)이 노진영(盧軫永)에게 현와집(弦窩集) 간행비 영수증과 함께 보낸 안부 편지이다. 지난달 상대의 아버지 답장을 받고 당신이 잘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하여 상대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유고 교역(校役, 교정하는 일)을 맏고 수개월간 시간을 소비했다며 탄식했다. 상대가 편지에서 말한 것 중 스스로 자신 쪽과 견주어서 물은 것은 잘못되었다며 충헌(忠獻)을 사람마다 견줄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은 곧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지만 간소의 일이 끝나지 않아 하루를 머물며 시간을 벌고 있다며 부끄럽다고 했다. 서석(瑞石)이 날씨가 서늘해지면 보자고 했는데 그렇게 될 것이라며 먼저 상대의 아버지를 뵙고 자신의 뜻을 말씀드리겠다고 하며 답장을 가름했다. 편지에는 7월 10일자에 현와선생문집간소 비용으로 일금 45원(圓)을 받았다고 하는 영수증이 동봉되어 있다. 대금을 받은 사람은 간소(刊所)의 총무 이재춘(李載春)이며 그의 도장이 날인되어 있다. 사화(司貨)로 고재정(高在廷)의 이름도 수취자로 함께 기록되어 있다. 현와 고선생 유고 간소는 봉산정사로 광주군(光州郡) 서창면(西倉面)에 있었다. 또 한 장의 협지가 함께 동봉되어 있는데 내용은 태지(胎紙: 편지의 별지)를 주셨는데 내용이 어찌 이러하냐며 도리어 미안해진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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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日谷蘇海亭 小舍廊 回納(피봉_뒷면)光州郡 西倉面 鳳山精舍弦窩高先生遺稿刊所(簡紙)去月承春府丈惠覆, 今承賢者心畵宛見靑箱之學有自矣. 良可賀也. 光山福家非賢而誰. 况又審菜衣趍於海亭之下, 恰愉度日者乎. 以万在君, 尙無恙等語爲頌耳. 鍾宅謂承乏校空費數月垶歎也已. 所示中, 以詢自比此或西矣. 以忠獻比人人非其人何哉. 雖以江海之大譽無本之溝澮, 終是溝澮恐譽之者, 反見笑於人也, 竊爲賢者不取也. 將欲歸鄕, 而刊所尙不了役, 留一日得一日, 羞此亦自取,奈何奈何. 見涼生有瑞石之願而若爾, 當先拜春丈過庭, 幸達此意. 姑此謝狀.亥蘭秋十日, 李鍾宅 謝狀.(협지1)領收證一金四拾五圓也.右弦窩先生文集刊所費領受候也.乙亥七月十日, 刊所總務 李載春,[圓形朱印:李載春]司貨 高在廷.光州郡 西倉面 鳳山精舍弦窩高先生遺稿刊所盧鍾龍盧錫灃 座下.[正方形朱印: 弦窩先生遺稿刊所印](협지2)胎惠何必爾也. 還切未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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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全南 光州府 大正町 一一二番地盧軫永 氏 必親鑒書留(피봉_뒷면)京城府 內需町 七0,ノ七七安秉鉉(簡紙)1.阻違洽滿月餘에 未修一字候音하니 非徒日怠慢이라 依托子姪於 尊座受敎之地에 誠意滅矣요 道禮無矣라. 如是懶散之踪이 安敢望受 賜於當世之 君子乎, 難以措辞發明也.謹惟淸和貴體候度不以公務致勞하고 寶覃面面吉慶가.區區禱祝이 不能食息少弛라. 生은 省候依昔하고 外無大警하니 遠念之澤으로 압니다. 鄙孫地燮은勿論, 指導하심을 바다 日日登校함을 認識하나 素無敎導凡節에 極爲愧赦이나 然而從今無庚者은 貴座의 敎授하심을 바다 他口에魚燮成龍을 不待詹尹知之 而預切欣感萬萬耳. 餘惟祝貴體萬祉 而更■(預)以私自顒祝者은 特加垂念於鄙之穉孫ᄒᆞ시와 答之敎之耳.2.去今一週日前, 出脚他方, 再昨乘暮歸巢於光州蓬戶, 則 惠電來墜産案, 卒未得解■(語)語意中, 且郵卒累來索引云, 翌日果然投一緘書索引, 忙手披讀, 乃是吾 仁兄惠我, 而德音者也.滿紙提喩如弟愚頑足以想到於君子之復,萬一而廢一曰, 世上事運也之敎, 非好非好之辞耶.兄之中間立場, 神勞身苦, 弟是詳解, 而弟之當事, 朔望心熱腦煎, 兄亦諒燭矣.但於吾 仁兄, 自不勝未安, 千萬千萬.示中例条三回分, 旣爲消費也. 無足更論, 而二回分亦活動中消費之物, 各爲出資云, 還爲未安未安, 都是由我嫌也. 不是爲 兄咎也. 且兄之難顔面於某方者大矣. 玆以還呈, 査領傳致, 如何如何. 弟當晋 軒謝禮, 人事之當然, 而事3.有掣肘, 姑未遂素, 而限三四介月內, 期於晋軒修人事於吾 仁兄與某方計耳. 恕燭如何如何. 惠示 ■■■絶對責任云事, 聞之自不勝舞之蹈之. 然 兄之過去奪鬪勞力, 若是其未安無他, 而更以何廉恥, 敢望於吾 仁兄哉.然世上事, 先爲失敗, 後日成功之源也. 若吾 兄以育英之本位, 更以收容, 則■■■■(私幸何極)去番反還物, 臨時保管■■(自料)耳. 周周諒燭, 企仰企仰. 寒喧姑閣, 而惟仰問者,吾兄萬齡, ■…■趁爲遂洗完企耶. 以是裕.五月十五日, 弟 盧軫永 二拜.非但成事之幸也, 鄙家擧門之大運也. 則 諒此殘門之情勢如何.○ 관련 문서1939년 안병현(安秉鉉) 서간(書簡)1939년 노진영(盧軫永) 간찰별지(簡札別紙)_우편물수령증(郵便物受領證)1939년 노진영(盧軫永) 통상위체금수령증서(通常爲替金受領證書)노승현(盧承鉉) 서간(書簡)1939년 노승현(盧承鉉) 서간(書簡)1940년 노승현(盧承鉉) 서간(書簡) 11940년 노승현(盧承鉉) 서간(書簡)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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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노진영(盧軫永) 간찰별지(簡札別紙)_우편물수령증(郵便物受領證) 고문서-증빙류-영수증 1939 盧軫永 安秉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365 1939년 5월 15일, 노진영이 안병현으로부터 받은 소포의 우편물 수령증. 1939년 5월 15일, 광주(光州) 대정전(大正町)에 사는 노진영이 서울의 안병현(安秉鉉)으로부터 받은 소포의 우편물 수령증이다. 수령은 1건이며, 우편료는 14전(錢)이다. 영수증의 발행장소는 광주 대정정에 있는 '우편국소/우편취급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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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三十九年 月日康津縣考甲午式成籍戶口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張大雲年二十四庚午本仁同父折衝將軍武良祖學生弘曾祖學生德龍外祖學生金愛賢本金海等前准印行縣監[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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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2년 장계득(張戒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戎得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92년(정조1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계득(張戒得)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92년(정조16) 강진현에서 임자년(1792)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계득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계득은 현재 28세인 홀아비[鰥夫]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천익(張天翼),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서공명(徐公明)으로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올해 8세인 딸 아지(阿只)가 있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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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五十七年 月日康津縣考壬子式成籍戶口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鰥夫張戒得年二十八乙酉本仁同父天翼祖折衝武良曾祖弘外祖徐公明本達城女阿只年八等印行縣監[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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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년 장지성(張之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之誠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2년(순조22)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之誠)에게 발급한 준호구 1822년(순조22)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之誠)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34세이고 직역은 한량(閑良)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앞의 준호구에 나온 장지성(張指誠)과 동일인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동거인은 9세 딸인 아지(阿只)이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 형식이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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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今島鎭里壬午式戶籍單子戶閑良張之誠年三十四己酉本仁同父學生大運祖折衝將軍武良 【書】曾祖學生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率女阿只九辛巳九月日 【壬午式】行縣監[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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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文守許所捧錢壹百伍十兩內百五兩爲先捧上印癸卯十二月初六日張仁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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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장만순(張蔓純) 자문(尺文) 고문서-증빙류-자문 張蔓純 黃雲仲 □…□ 2顆 (적색, 원형, 2.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축년 장만순(張蔓純)이 황운중(黃雲仲)에게 발급한 자문 신축년 장만순(張蔓純)이 황운중(黃雲仲)에게 160냥을 전해 받은 것을 확인해주는 영수증 성격의 척문이다. 피봉에 있는 황운중의 주소는 신지면(薪智面) 대평리(大平里)이다. 이 돈은 신축년에 족보 발간을 위해 족보 책값을 수금하는 과정에서 생산된 문서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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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五十一年 月 日康津縣考丙午式成籍戶口帳內古今島道音岩里第 統第 戶旗牌官張大彦年四十六辛酉本仁同父折衝武良祖弘曾祖德龍外祖金牙賢本金海妻李姓年四十六辛酉本慶州父重伊祖善用曾祖奉夏外祖金延分本金海率女阿只年十四癸巳次子延金年十一丙申等相準印行縣監[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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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장계철(張啓喆)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啓喆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0년(순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계철(張啓喆)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0년(순조10) 강진현에서 경오년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계철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계철은 현재 37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모시고 있는 아버지는 '봉부(奉父)'로 표시된 장대운(張大運)으로 61세이고,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모시고 있는 어머니 추씨(秋氏)는 61세이다. 장계철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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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十五年 月日康津縣考庚午成籍戶口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鰥夫張啓哲改名喆奉年三十七甲午本仁同奉父大運年六十一庚午祖學生折衝武良曾祖學生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奉母秋氏年六十一庚午等丁卯戶口相準印行縣監[押][帖][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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