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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3년 장무량(張武良)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武良 康津縣監<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53년(영조29)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무량(張武良)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53년(영조29) 강진현에서 계유년(1753)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무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무량은 현재 50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홍(張弘), 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증조부는 장구전(張九田), 외조부는 김선안(金善安)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처 김해김씨(金海金氏)는 50세이다. 김해김씨의 아버지는 김애련(金愛連), 조부는 김실(金實), 증조부는 김연삼(金延三), 외조부는 김원병(金元炳)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어머니 김소사는 95세이고, 아들 대언(大彦)은 12세, 성언(聖彦)은 8세이다. 장무량의 관련 호구문서인 1744년과 1747년 준호구에는 첫째 아들 태언(泰彦)이 있었는데 이 문서에는 빠져있다. 혼인하여 분가하였거나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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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十八年 月 日康津縣考癸酉成籍戶口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待變軍官張武良年五十甲申本仁同父武學弘祖學生德龍曾祖學生九田外祖金善安本金海妻金姓年五十甲申籍金海父愛連祖實曾祖延三外祖金元炳本金海率母金氏年九十五己亥率子大彦年十二壬戌次子聖彦年八丙寅等庚午戶口相准印行縣監[押][周挾無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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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박장현(朴章鉉) 호적표(戶籍表)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郡守 朴章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99년(광무 3) 2월에 강진군수 신성휴가 기록한 고군내면 약산리 4통 3호에 거주했던 박장현의 46세 당시 호적표. 1899년(광무 3) 2월에 강진군수(康津郡守) 신성휴(申性休)가 46세 박장현(朴章鉉)에게 발급한 호적표이다. 같은 집의 전년도 호적표에는 호주가 박장현의 아버지 박재빈으로 기록되어 있었으나 호주가 바뀐 것으로 보아 그 사이 박재빈이 사망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박장현이 살았던 주소는 전라남도 강진군 고군내면(故郡內面) 약산리(樂山里) 제4통 제3호이다. 그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아버지는 재빈(載彬), 할아버지는 천익(千益), 증조는 웅준( 碓俊), 외조는 김쾌갑(金快甲)이다. 이전 구호적과 다른 점은 외조 및 자신의 처, 어머니 등의 본관을 기록하지 않은 점과 처의 4조(祖)를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함께 살던 식솔로는 어머니 김씨, 아내 김씨, 아들 윤원(潤瑗), 윤원의 처 김씨, 둘째아들 윤통(潤統), 셋째아들 윤성(潤成), 넷째아들(潤玉)이다. 딸 1명도 기재되어 있다. 따라서 현존인구는 남7명, 여4명, 도합 11명이다. 집은 자신의 소유 초가 3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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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矣身山地事成完▣…▣內矣身所居北面私自壬子定巡山發賣▣…▣於面中大有功焉再昨冬奸鄕鄭仁國輩誣訐▣▣之山及面中田畓幷爲奪付民庫各年▣…▣所謂以饒居氷租六十石進上所用藏氷價一百二十兩罰錢六十兩公然責納是遣去己巳年分矣身定父山於巡▣…▣錢三十兩於面中成文買得禁養松楸矣以此山地又稱法外廣占不給本價奪付雇廳盖許多錢穀之白地▣…▣項錢穀與山地明査推給亦呈▣▣▣則 巡使道題音內推▣(給)者推給徵給者徵給事是乎旀又呈 御使道▣…▣痛惡 兵校呂善黙則前以此事入於按廉已爲懲治是▣▣▣(在果詳)査委折取考本券一一推給宜當事題▣…▣後來歷則狀者之徵穀徵錢果如其數是遣山地之給價見奪亦▣(爲)的實是如乎錢穀與山地出給事分付則▣…▣道山地?依當初定界成完文以給亦爲置依狀者所願▣▣龍虎六谷依本文永永出給之意玆以▣…▣心以法令爲法令切定成給是如乎今則矣身幸蒙特恤之澤推尋山地也更不煩訴是乎矣梧枝面▣…▣武斷鄕曲威脅民財因爲致富爲旀一邑事曰左則左曰右則▣(右)鄕民之畏趙鈒如畏虎傷人害物比比有▣…▣納續昨冬又入於暗行 御使道按廉已被刑杖之境然足水未淸不悛前習更爲出入校院指揮隨從群▣…▣議擧事驩呶臆奪矣身之山地付於雇廳爲計是何用心是何事理乎用山之法入葬者爲主禁養當然而▣…▣前後所呈所志議送完文與本券九張幷以帖連仰訴伏乞▣…▣鈒乱法之習俾無矣身山地已決之下作梗橫侵之地千萬望只爲▣…▣▣(癸)酉三月 日〈題辭〉自本邑査實論報以處向事本官 初四日[官印]▣[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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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7년 천일관(千鎰冠) 등 상서(上書)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千鎰冠 城主 □…□ (적색, 정방형, 2.4), □…□ (적색, 정방형, 7.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79 1897년 2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정언 천광록·선전관 천일표가 남원군수에게 선조 화산군 묘소를 정비하는 날에 묘소 부근의 방에 전령을 내려 부역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97년(광무 1) 2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정언(正言) 천광록(千光祿, 1851∼1931)·선전관(宣傳官) 천일표(千鎰杓)가 남원군수(南源郡守)에게 선조 화산군(花山君)의 묘소를 정비하는 날에 묘소 부근의 방(坊)에 전령(傳令)을 내려 부역(赴役)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천일관 등은 선조 화산군의 분묘(墳墓)가 허물어져 자금을 모아 정비하기 위해 이미 1896년 9월에 입지(立旨)를 발급해 달라고 정소하였다. 이 상서에서는 자금은 적고 공역(工役)은 허다하여 많은 사람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분묘에 떼를 입히고 정비하는 봉축(封築) 작업을 끝내기 어려운 상황임을 호소하고, 분묘 부근의 금안방(金岸坊)과 기지방(機池坊)에 부역을 명하는 전령을 내려 묘소 정비에 어려움이 없도록 해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상서에 대해 남원군수는 2월 22일에 면임(面任)에게 '정소한 대로 시행하라'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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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봉산정사(鳳山精舍) 서간(書簡)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鳳山精舍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3월 15일에 鳳山精舍의 高光璉 等 6名이 盧鍾龍에게 弦窩 高光善 문집 간행의 후원금을 부탁하는 내용의 서간. 1935년 3월 15일, 봉산정사(鳳山精舍)의 고광련(高光璉) 등 6명이 노종룡(盧鍾龍)에게 현와(弦窩) 고광선(高光善, 1855~1934)의 문집 간행 후원금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보낸 편지이다. 지난번 집에서 뵙고, 또 유회(儒會)에 왕림해 주신데 대해 감복하였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하여 상대방과 아드님 등의 안부를 간단히 물었다. 주요 내용은 자신들의 간소(刊所) 경영 비용이 아껴 쓴다고 했자만 군색함이 심하다며 의연금을 보내주어 대사(大事)를 완수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청하는 내용이다. 발신인은 고광련(高光璉), 임언재(任漹宰), 이재춘(李載春), 유병구(劉秉龜), 양효묵(梁孝黙), 윤경혁(尹璟赫) 등 6인이 열서(列書)되어 있다. 봉산정사는 현와 고광선이 제자들과 강학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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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년 이재야(李在野)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在野 道庵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사년 11월 23일에 경주 양동 마을에 거주하는 친족 이재야가 도암에게 지난달에 돌아가신 숙조의 장례를 치렀다는 내용과 아들이 숙식하는 데 애를 먹고 있어 참기 힘들다고 하니 걱정스럽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을사년 11월 23일에 경주 양동(良洞) 마을에 거주하는 친족 이재야가 도암(道庵)에게 지난달에 돌아가신 숙조(叔祖)의 장례를 치렀다는 내용과 아들이 숙식하는 데 애를 먹고 있어 참기 힘들다고 하니 걱정스럽다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직임에서 해임 된 상대방을 한번 찾아 가 축하드리고 싶었으나 병을 앓고 있어 뜻대로 하지 못하고, 또 편지로 대신 축하하려고 했으나 게을러서 편지를 보내지도 못하고 있어서 지금까지 서글픈 마음이라는 내용, 한겨울 혹독한 추위에 상대방의 어머니와 산속에 머물면서 공부하고 있는 상대방의 안부가 편안한지 묻고 매우 그립다는 내용, 자신은 두 해 동안 병을 앓고 있으나 완쾌할 기약이 없어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는 내용, 지난달 10월 중에 숙조부의 상을 당하여 벌써 장례를 치렀으니 말할 수 없이 비통하다는 내용, 아들은 비록 머리를 맞대고 함께 토론하지는 않았지만 도움이 되는 방도가 있는지, 다만 숙식하는 괴로움을 참기 힘들하고 하니 이것이 걱정된다는 내용, 봄이 머지않았으니 반드시 소득이 있길 바란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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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년 밀성박씨(密城朴氏) 사성단자(四星單子)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密城朴氏 郭生員 密城朴氏<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736 병인년에 신랑측인 밀성박씨 집안에서 신부측 곽생원댁에 보낸 사성단자 병인년 2월 11일에 신랑측인 密城朴氏 집안에서 신부측 곽생원댁에 보낸 사성단자(四星單子)이다. 신랑의 사주는 을사년 5월 8일 술시이다. 간지를 7번 접어서 그 복판에 신랑의 사주인 생년·월·일·시를 적었고, 봉투에 넣고 봉투 앞면에 '사성'이라 쓰고 하단에 근봉(謹封)이라고 썼다. 피봉이 함께 남아 있다. 이 단자는 박인곤(朴璘坤)이 자신의 조카 혼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문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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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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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년 손양진(孫亮晉)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孫亮晉 郭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진년 윤2월 15일에 신부측인 손양진이 신랑측인 곽생원에게 보낸 혼서 무진년 윤2월 15일에 신부측인 손양진이 신랑측인 곽생원에게 보낸 혼인 관련 간찰이다. 손양진은 손녀의 혼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미 사주단자를 받았으니 매우 다행스럽다고 인사하였고, 요청한 대로 연길(涓吉)을 보내니 의제(衣製)를 알려주는 것이 어떠하냐는 내용이다. 신부집에서는 사주를 받으면, 신랑 신부의 운세를 가늠해보고 혼례날짜를 택하여 신랑측에 통지하는데 이를 연길이라 하고, 의제는 신랑의 의복 길이와 품의 치수를 신부측에 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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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이시준(李時濬)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李時濬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44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시준을 통정대부 승정원 좌부승지에 추증한 추증교지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시준(李時濬)을 통정대부 승정원 좌부승지(承政院左副承旨)에 추증(追贈)하면서 발급한 추증교지이다. 발급 연호 위에 어보(御寶)인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있으나 연호의 좌방(左傍)에 추증사유를 방서(傍書)하는 추증식(追贈式)의 형식과 달리 추증의 사유가 생략되어 있다. 이시준은 이규행(李圭行)의 할아버지로, 이규행이 통정대부로 임명됨에 따라 그도 함께 추증된 것으로 보인다. 승정원 좌부승지는 정3품 당상관으로 승정원에 두었던 6방 중 병방(兵房)을 맡아 병조(兵曹)에 관한 일을 관장하였으며, 1894년 관제개혁 때 좌부승선(左副承宣)으로 바뀌면서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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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五十七年 月日康津縣考壬子式成籍戶口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軍官張大銀年四十一壬申本仁同父折衝將軍武良祖學生弘曾祖學生德龍外祖學生金愛賢本金海妻韓姓年三十七丁丑本淸州父德永祖信載曾祖得戒外祖金尙元本金海女今尙年九阿只年六等印行縣監[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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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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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今島鎭里壬午式戶籍單子戶鰥夫張哲奉年四十九甲午本仁同父學生大運祖折衝將軍武良 【書】曾祖學生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奉母秋姓年七十三庚午率女阿只■■[出嫁]代次女阿只年十一辛巳九月日 【壬午式】行縣監[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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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보청(譜廳)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譜廳 譜廳 <押, 着名> □…□(흑색, 직방형, 4.8×3.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축년 보청(譜廳)에서 신호(薪湖) 신리(新里)에 거주하는 장씨(張氏)의 단전(單錢) 11냥을 종인(宗人) 만섭(蔓涉)을 통해 받았음을 확인해주는 수표 신축년 2월 20일에 보청(譜廳)에서 신호(薪湖) 신리(新里)에 거주하는 장씨(張氏)의 단전(單錢) 11냥을 종인(宗人) 만섭(蔓涉) 편에 받았음을 확인해주는 영수증 성격의 수표이다. 단전은 족보에 이름을 올릴 때 납부하는 돈으로 명하전(名下錢)이라고도 한다. 관련 문서에 의하면 신축년에 장씨 보소에서 족보를 간행하면서 종인들에게 수단(收單)을 진행하였고, 이때에 단전도 함께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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薪湖新里單錢拾壹兩宗人蔓涉便捧上印辛丑二月二十日譜廳所[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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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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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빙류

계묘년 장인오(張仁五)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張仁五 張文守 □…□ 4顆 (적색, 원형, 1.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묘년 장인오(張仁五)가 장문수(張文守)에게 105냥을 받고, 받은 사실을 명시한 수표 계묘년 12월 초6일에 장인오(張仁五)가 장문수(張文守)에게 받을 150냥 가운데 105냥을 우선 받고 그 사실을 명시한 영수증 성격의 수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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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7년 매매명문(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玉采 金玉采<着名>, 秋亨照<着名>, 金孟允<着名>, 梁明兼<着名>, 梁善兼<着名>, 任仁馝<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7년 김옥채(金玉采)가 도내(島內) 서면(西面)에 있는 자신의 산지를 누군가에게 전문(錢文) 14냥을 받고 방매하면서 작성한 산지 매매명문 1907년 김옥채(金玉采)가 누군가에게 자신의 산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산지를 수년 동안 지켜오다가 금년 들어 부득이한 형편으로 도내((島內) 서면(西面)에 있는 산지를 모송(毛松 어린 소나무)과 함께 전문 14냥을 받고 방매하였다.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한 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추형조(秋亨照)를 비롯한 4명의 증인이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고 임인필(任仁馝)이 필집(筆執)으로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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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十五年 月日康津縣考庚午成籍戶口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張得哲年四十七庚寅本仁同父大彦年六十九戊午祖武良曾祖弘外祖崔敬天本耽津等丁卯式相準印行縣監[押][帖][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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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 장용이(張龍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龍伊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4년(순조3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용이(張龍伊)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34년(순조34) 강진현에서 갑오 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용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용이는 현재 55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용이가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함께 사는 가족으로는 17세인 딸 하나가 있다. 이 문서의 마지막 행 '계사년(1833) 9월'은 실제 이 문서가 작성되어 관에 제출된 시기이고 등재된 식년은 이듬해이기 때문에 작성연대는 계사년의 다음 해인 갑오년(1834)이다. 호구단자의 열서(列書) 방식으로 작성된 문서이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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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四年庚子十二月日右稧中執典明文右執典事段矣自起田數年耕食是如可書稧錢十四兩三戔所用之勢將難辦故霜字田二斗落執典爲去乎若過節月之限此田放賣補用之意如是執典以此文記憑考事田主自筆張明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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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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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경자년 박보규(朴甫奎)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甫奎 張文垂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자년 박보규(朴甫奎)가 장문수(張文垂)에게 보낸 간찰 경자년 11월에 박보규가 신지도(薪智島)에 사는 장문수에게 보낸 간찰이다. 한겨울에 부모님 모시며 지내는 생활은 모든 것이 편안하며, 집안 식구들도 태평하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얼굴 본 지가 오래되어 무척 그리울 뿐 전할 만한 특별한 일은 없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상대방의 겨울철 석달[三冬] 공부가 절차탁마(切磋琢磨)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들었는데 자신은 졸렬한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 답답하다는 심경을 전하였다. 박보규의 다른 이름은 치은(致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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