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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四十八年 月日康津縣考癸卯式成籍戶口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待變軍官張大運年三十四庚午本仁同父折衝武良祖學生弘曾祖學生德龍外祖學生金愛賢本金海妻秋姓年三十四庚午本羅州父嘉善大夫尙連祖命金曾祖松伊外祖趙奉伊本平山率子啓哲年十甲午等前准印行縣監[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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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년 장계철(張啓哲)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啓哲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7년(순조7) 강진현(康津縣)에서 장계철(張啓哲)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07년(순조7) 강진현에서 정묘년(1807)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계철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계철은 현재 34세인 홀아비[鰥夫]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으로 현재 58세로 동거하고 있으므로 이름 앞에 봉부(奉父)로 표시하였고,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이다. 모시고 사는 어머니 추씨(秋氏)는 58세이고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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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김재우(金在宇)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和順縣監 金在宇 和順縣監 <着押> 周挾無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91 1837년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우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내용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37년(헌종 3) 화순현에서 호주 김재우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이다. 김재우의 거주지 주소는 화순현(和順縣) 동면(東面) 제10 물찬내마을[水冷川里] 제2통 1호이다. 직역은 유학(幼學)이고 올해 나이는 40세 무오생(戊午生)이며,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재우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계현(啓鉉), 할아버지 학생 일해(日海), 증조(曾祖) 학생 석삼(錫三), 외조(外祖) 학생 이만영(李萬榮)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김재우의 아내 김씨(金氏)는 연령 40세 무오생이고 본적은 경주(慶州)이다. 김씨의 사조는 아버지 유학 광협(光浹), 할아버지 학생 정원(鼎元), 증조 학생 중일(重鎰), 외조 학생 이명규(李命奎)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가족으로 어머니 이씨(李氏)는 연령 78세 경진생(庚辰生)이고, 동생 재영(在榮)은 나이 27세 신미생(辛未生)이다. 제수[嫂] 박씨는 연령 27세 신미생(辛未生)이고 본적은 밀양(密陽)이며, 아들 용탁(龍鐸)은 나이 19세 기묘생(己卯生)이다. 소유하고 있는 여종 악춘(惡春)은 나이 36세 임술생(壬戌生)이다. 문서에는 화순 현감(和順縣監)의 관인(官印)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및 현감의 서압(署押)이 찍혀있으며, 1834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갑오호구상준인(甲午戶口相凖印)'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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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박창석(朴昌錫)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朴昌錫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 12월 말일에 제 박창석이 보내준 물건에 감사를 전하고, 상대에게 약을 보내는 내용으로 노진영에게 보낸 서간. 1927년 12월 말일에 제(弟) 박창석(朴昌錫)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내준 물건에 감사를 전하고, 종기를 치료하는 약을 보내는 내용으로 쓴 답장 편지이다. 뜻밖에 귀하의 사자(使者)가 와서 편지를 받고 대면한 듯하였다고 인사하고 12월 날씨에 어버이 돌보고 있는 상대가 안녕하시다고 하여 위로 된다고 하였다. 자신 쪽은 여전하다고 안부를 전한 후 보내주신 물건이 어찌 이렇게 과하게 마음을 쓰셨느냐며 손으로 받고 마음으로 부끄러웠다고 했다. 상대가 부탁한 치종(齒瘇) 약을 보내며 5~6일간 복용하면 효과가 속히 나타날 것이라며 의심하지 말고 해보라고 당부했다. 나머지는 내년에 다시 이야기 하자고 인사하고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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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송경섭(宋景燮) 등 4명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宋景燮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7년 9월 22일, 강신유사 송경섭 등 4인이 노진영에게 계회의 참석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27년 9월 22일, 강신유사(講信有司) 송경섭(宋景燮) 등 4인이 노진영(盧軫永)에게 계회(契會)의 참석을 요청하기 위해 보낸 서간(書簡)이다. 석인본 인쇄의 방법으로 작성하였으며 내용은 늦은 가을에 상대의 건강을 묻고 이달 30일에 계회가 이을 것이니 사무가 많으시더라도 다시 더 생각해주시어 이날 오전 9시까지 일제히 모여 달라는 내용이다. 발신자는 강신유사 송경섭 외에 이계룡(李桂龍), 박봉환(朴鳳煥), 김용구(金容九)가 더 적혀 있다. 수신자는 노진영(盧軫永)으로 다른 인쇄본 글자를 지운 후에 붓으로 이름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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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493 무오년 10월 1일에 김극영(金極永)이 농사와 과거, 혼사 등을 두루 묻고 전하는 간찰 지난 봄에 며칠 밤을 가르쳐주신 일이 마치 꿈속의 일 같다며 그리움을 표현하였고, 그간 기거는 편안하고 식구들도 모두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어버이 건강이 오래 좋지 못하여 매우 마음 졸이며 지내고 있으며 그나마 아이들이 아무 탈이 없어 다행이라고 소식을 전하였다. 올해 농사는 곳곳이 흉작인 가운데 상대방 마을은 더욱 심하다고 들었다며 대신 근심스럽다고 하였고, 사촌형의 회시(會試) 낙방 소식도 대신 분하다고 하였으며, 백씨(伯氏) 어른이 연로한 마당에 봄가을 과거에 아직 합격하지 못했으니 더욱 한탄스러울 뿐이라고 하였다. 종질녀의 혼사는 아직 정해진 곳이 없어 근심스러운데 말을 넣어봤던 곳에서 흔쾌히 승낙했는지에 대해 물었고, 혹 이야기가 되면 다시 통기해달라고 하였으며 추워지기 전에 혼인을 성사시키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리고 상대방 아들의 혼사는 정해진 곳이 있는지 묻고 자신이 한 곳에 말을 꺼냈는데 아직 답변이 없어서 답답하다고 하였다. 목화 15근을 보내니 방한구를 만드는 데 쓰는 것이 어떠하겠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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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년 김응곤(金應坤)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應坤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유년에 김응곤(金應坤)이 옥계(玉溪)의 사돈댁에 안부를 묻고 자신은 이번에 반할(胖割)의 아픔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계유년 1월 29일에 김응곤(金應坤)이 옥계(玉溪)의 사돈댁에 보낸 간찰이다. 궁벽한 시골에 칩거하며 만나고 헤어지는 데 운수가 있음을 한탄하건만 이번에 보내준 서찰을 받고 보니 적막하던 중에 큰 위안이 되었다고 인사하였다. 따뜻한 봄이 왔는데 모친과 형제분들의 생활은 더욱 좋고 아드님은 편안히 어른 잘 모시며, 종씨(從氏) 댁도 모두 고루 편안한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이번에 반할(胖割)의 아픔을 당하여 편안히 지내기 어렵지만 새로 들어온 며느리가 어질고 바르다고 들었기에 조금만 더 수명이 연장되어 죽지 않아서 집안을 잇는 것을 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고 하였다. 한번 만나자고 하신 말씀은 자신을 멀리 하지 않고 두터이 보살펴 주신 것이니 자신도 빨리 부응해드리고 싶다고 하였다. 손자는 바탕이 어리석고 가르침이 부족해서 내세울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 상대가 과분한 칭찬을 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반할은 신체의 반을 잘라내는 듯한 아픔이라는 뜻으로 부인이나 형제의 상을 당한 것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누구의 상을 당한 것인지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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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493 기미년에 김극영(金極永)이 인수(仁叟) 형에게 종숙모의 초상과 딸의 죽음을 애도하며 보낸 간찰 기미년 4월 14일에 김극영(金極永)이 인수(仁叟) 형에게 보낸 간찰이다. 오래 소식이 막혀 서운하던 차에 서신이 도착하여 조금 위로가 되었다고 인사하였고, 종숙모(從叔母)의 상(喪)도 천만 뜻밖인데 거기에 따님까지 참혹한 일을 당했으니 너무 놀랍다고 하였다. 노쇠한 연세에 젊은 사람이 이치를 거슬러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마디마디 애간장이 끊어지는 슬픔을 어찌 감당하고 계시냐고 위로하였다. 자신은 모친이 오랜 시간 건강이 좋지 못하여 속이 타들어 가는데 거기에 아내까지 병을 앓고 있어 골치를 썩느라 늙음을 재촉한다고 한탄하였다. 모평(茅坪)의 이야기는 운수에 달렸으니 어떻게 억지로 합하겠냐고 하였다. 성호(星皓) 사촌이 멀리서 찾아와 기뻤는데 머문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작별하게 되어 서운함이 더욱 크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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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이양도(李良都), 양대겸(梁大兼) 수표(手標) 고문서-증빙류-수표 李良都 李良都<着名>, 梁大兼<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축년 이양도(李良都)와 양대겸(梁大兼)이 상대방의 사양산(私養山)에 있는 이토(泥土)의 한계를 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 작성한 수표 신축년 8월 22일에 이양도와 양대겸이 작성한 수표이다. 상대방이 금호(禁護)하고 있는 사양산(私養山)의 산소에 있는 진흙[泥土]에 대해서 가운데 길의 서쪽을 경계로 향후 경계를 넘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이다. 수표의 수신자는 장씨가(張氏家)로 추정되지만 명시되어 있지 않아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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標右標事段右人禁護私養山所在泥土以中路西便限界若有日後越限以此標憑信事辛丑八月卄二日標主李良都[着名]梁大兼[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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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수기(手記) 고문서-증빙류-수기 張太興 張太興<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 장태흥(張太興)이 도내(島內) 서면(西面) 방하교(防下橋)에 있는 자신의 논 2두락지를 누군가에게 전당(典當) 잡히고 전문(錢文) 40냥을 빌리면서 작성한 수기 1904년 장태흥(張太興)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논을 전당 잡히면서 작성한 수기이다. 장태흥은 도내(島內) 서면(西面) 방하교(防下橋)에 있는 여자(如字) 자호의 논 2두락지를 자신이 매득하여 수년 동안 경작해왔는데, 금년 겨울에 긴히 쓸 곳이 생겨서 부득이 이 논을 전당 잡히고 전문(錢文) 40냥을 빌렸다. 전당 기한은 다음해인 을사년(1905) 7월까지로 하였다. 이 기한 안에 돈을 갚지 못하면 그대로 방매한다는 뜻으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증인이나 필집 없이 장태흥이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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伏惟季冬尊體萬福 僕之第四子順周年旣長成 未有伉儷 伏蒙 尊慈許以令愛貺室玆有先人之禮謹行納幣之儀 不備伏惟 監察辛卯十二月二十六日 長水後人黃敬顯拜上(피봉)上狀張生員 下執事 入納 謹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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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박영규(朴榮圭)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榮圭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0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榮圭(26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70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榮圭(26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載熹 祖 學生 麟洙 曾祖 學生 碓俊 外祖 學生 任直權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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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武八年甲辰十一月右前手記右執典明文事段矣自起買得畓累年耕食是如可當此今冬以要用所致不得已島內西面防下橋如字丁伏在二斗落一夜味錢文四十兩代執典得用而限則來乙巳■〔六〕七月而若過此限則永爲放賣之意如是成文爲尼日后如有相佐則以此憑考事自筆畓主張太興[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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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년 황경현(黃敬顯)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黃敬顯 張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묘년 황경현(黃敬顯)이 넷째 아들 황순주(黃順周)의 신부댁에 폐백과 함께 보낸 혼서 신묘년 황경현(黃敬顯)이 자신의 넷째 아들인 황순주(黃順周)의 신부댁인 장생원(張生員)댁에 폐백과 함께 보낸 혼서이다. 장생원의 따님을 넷째 아들 황순주의 아내로 허락해주는 경사스런 명을 공손히 받았기에 옛 어른들의 예절에 따라 삼가 납폐(納幣)의 의례를 행하니 삼가 살펴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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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十二年 月日康津縣考丁卯式成籍戶口帳內第 統第 戶古今島鎭里鰥夫張啓哲年三十四甲午本仁同奉父閑良大運年五十八庚午祖折衝武良曾祖學生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奉母秋氏年五十八庚午本羅州等前準印行縣監[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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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년 장지성(張至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至誠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1년(순조31)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 1831년(순조31)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43세이고 직역은 한량(閑良)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동거인인 18세 딸인 아지(阿只)는 출가하였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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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今島鎭里辛卯式戶籍單子戶閑良張至誠年四十三己酉本仁同父學生大運祖折衝將軍武良曾祖學生 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率女阿只年十八出嫁庚寅九月日行縣監[押][帖][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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