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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년 장계득(張啓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啓得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7년(순조7) 강진현(康津縣)에서 장계득(張戒得)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07년(순조7) 강진현에서 정묘년(1807)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계득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계득은 현재 42세인 홀아비[鰥夫]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천익(張天翼),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서공명(徐公明)으로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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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十二年 月日康津縣考丁卯式成籍戶口帳內第 統第 戶古今島鎭里鰥夫張啓得年四十二乙酉本仁同父學生天翼祖折衝武良曾祖學生弘外祖徐公明本達城前準印行縣監[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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唵川面盖山里戶籍單子戶幼學白思亨年三十三甲辰 本水原父學生 慶玉祖學生 昌潤曾祖學生 敏徵外祖學生張天翼 本仁同妻徐氏齡二十二乙卯 籍利川父學生 達孝祖學生 命伯曾祖學生 泰胤外祖學生 金履玉 本光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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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五十七壬子正月日靈巖郡昆二始面長田里戶籍第一統統首吳甲運第四戶幼學白慶王年四十九甲子本水原父學生 昌潤祖嘉善大夫中樞府事 敏徵曾祖學生 信憲外祖學生 金壽龍 本光山奉母金氏齡七十四己亥妻張氏年四十三庚午籍仁同父學生 天翼祖學生 漢佑曾學生 善長外祖學生 朴師德 本密陽賤口秩婢信良年四十七丙寅逃亡己酉戶口相準行郡守[署押] [周挾 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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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사년(癸巳年) 백기현(白基鉉)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법제-소송/판결/공증-소지류 癸巳 白基鉉 城主 癸巳 白基鉉 전남 영암군 [署押] 1개, [官印] 3개 6.5*6.5(정방형) 적색 3개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계사년(癸巳年)에 영암군(靈巖郡)에 사는 백기현(白基鉉)이 수령에게 올린 소지(所志) 계사년(癸巳年)에 영암군(靈巖郡) 곤이시면(昆二始面) 신풍동(新豊洞)에 사는 화민(化民) 백기현(白基鉉)이 수령에게 올린 산송(山訟) 소지(所志)이다. 백기현은 곤일시면 화암산(華岩山)에 고조와 증조묘를 모신 선산이 있어서 여러 대에 걸쳐 산지기를 두고 관리해 왔다. 그러나 가세가 기울어지고 자손들이 여기저기 흩어지면서 결국에는 산지기만 두고 5, 6대에 걸쳐 선산을 관리하여 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화암에 사는 임가(林哥)란 자가 나서서 이곳을 자신의 선산이라고 주장하면서 이곳에 토단(土壇)을 만들고 경계를 정하고는 백기현의 선산을 빼앗았다. 전후 사정을 알아보니 그 임가는 다름아니라 증조때부터 자신들의 선산을 관리해 왔던 산지기였다. 그 산지기가 백씨 가문이 영락한 틈을 노려 선산을 빼앗아버린 것이다. 이에 백기현은 영암군수에게 소를 올려 저 임가를 잡아다가 법정에 세워 선산을 탈취한 죄를 엄히 다스려달라고 탄원하였다. 이에 대하여 수령은 백기현이 소지에서 주장한 것처럼 산지기가 선산을 탈취하였음이 분명하다는 제사를 내렸다. 백기현이 살았던 신풍동은 현재의 영암군 학산면 금계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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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昆二始面新豊洞化民白基鉉右謹言寃枉事民之高祖塚與曾祖墓在於昆一始華岩山而累代定山直守謢是白加尼門運衰薄子孫零替散在東西只留山直禁養松楸于今五六代而不意今者花岩居林哥稱以渠之先山是如築其土壇定限界終奪民之先山世豈有無法之汗乎此林阡曾祖時守謢民之山直也以三四代山直蔑視民之孑孑偸葬渠之父於民之先山跛崎渾奪五六代先山故緣由仰訴爲去乎洞燭敎是後右汗捉致 法庭嚴治勒奪殘民先山之罪以雪幽明之寃千萬伏祝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署押]癸巳▣▣▣[印][印][印](題辭)該民如訴五六代只値山直見奪宜當向事卄九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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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5년 백민징(白敏徵)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乾隆三十年乙酉月日 白敏徵 行郡守 乾隆三十年乙酉月日 白敏徵 전남 영암군 [署押] 1개, [官印] 1개 6.5*6.5(정방형) 적색 1개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1765년(영조 41) 영암군(靈巖郡) 곤이시면(昆二始面) 장전리(長田里) 4호(四戶)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백민징(白敏徵)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戶口單子) 1765년(영조 41) 영암군(靈巖郡) 곤이시면(昆二始面) 장전리(長田里) 4호(四戶)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백민징(白敏徵)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장전리는 오늘날의 영암군 장전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작성 당시 호주(戶主) 백민징은 첩(妾) 최씨(崔氏)와 아들 백창인(白昌仁)과 함께 살고 있었다. 백민징은 76세였고, 첩은 58세로 21살의 차이가 나며, 아들은 48세였으니 첩과는 10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아마 본처가 죽은 뒤에 첩을 데려와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백민징의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최씨의 낭주(朗州)였다. 백민징의 부는 백신헌(白信憲), 조부는 백상원(白尙源), 증조부는 어모장군행용양위부▣▣(禦侮將軍行龍驤爲副▣▣) 백시남(白時南)이다. 어모장군(禦侮將軍)은 조선 시대 무신 정3품 당하관의 품계명으로 당시 무신 당하관으로서는 최고의 품계였다. 이에 문신 당하관의 최고 품계인 통훈대부(通訓大夫)와 더불어 계궁(階窮)으로도 표현되었다. 외조부는 무과(武科)에 급제한 김경추(金擎錘)로 김해(金海)가 본관이다. 이 호구단자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호구의 식솔보다 많은 노비의 명단이다. 문서의 반절을 독차지하고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데리고 있던 노비는 이미 죽었고, 나머지는 모두 도망노비들이다. 사실상 데리고 있는 노비는 한 명도 없는 셈이다. 10여명이 되는 도망노비들은 옥천, 해남, 무안, 목포, 고부 등지에서 살고 있었다. 이들의 대부분은 노(奴)와 양처(良妻) 사이의 소생들로, 당시 양반들이 양처와의 혼인을 통해 노비들을 세습화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호구단자의 맨 끝에는 "壬子戶口相凖"이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이때 작성된 호구단자를 임자년, 즉 1762년의 호적과 대조하였다는 의미이다. 수원백씨 가문에 전하는 호구단자를 보면, 백민징의 아들 백창윤, 손자 백경옥, 증손 백사형의 것들도 전하고 있어서 백민징 – 백창윤 – 백경옥 – 백사형 등 4대에 이르는 가계도를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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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최상현(崔相鉉) 서간(書簡)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崔相鉉 盧軫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8년 1월 14일, 생 최상현이 노진영에게 그의 족인인 노광명을 귀하가 있는 쪽으로 가도록 주선해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 1928년 1월 14일에 생(生) 최상현(崔相鉉)이 노진영(盧軫永)에게 그의 족인인 노광명(盧光明)을 귀하가 있는 쪽으로 가도록 주선해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으로 보낸 서간(書簡)이다. 새해 첫 달에 상대가 평안함을 알았다며 송축하는 마음 그지없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자신은 못난 모습 여전하다고 전한 후 귀족(貴族)의 노광명(盧光明) 군을 귀변(貴邊)에 오도록 권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의논할 일이 있는 중이라서 자신이 만약 직접 청하면 불응(不應)할 수 있겠기에 이와 같이 편지로 말씀드린다고 전했다. 이 편지는 1927년 1월 9일에 최상현이 노진영에게 보낸 간찰과 합봉(合封)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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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노진영(盧軫永)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1939 盧軫永 安秉鉉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365 1939년 5월 15일, 제 노진영이 손자 지섭의 학교 문제로 안병현으로부터 온 편지에 답하여 쓴 편지의 초안. 1939년 5월 15일, 제(弟) 노진영(盧軫永)이 안병현(安秉鉉)에게 손자 노지섭(盧地燮)의 학교 문제로 애쓰고 편지를 준 안병현에게 답하여 쓴 편지의 초안이다. 자질(子姪)이 상대에게 지도를 받고 있는데 한번 인사하지 못했다며 자신의 성의가 부족했다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최근 청화한 날씨에 상대가 공무(公務)를 잘 보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자신은 여전히 지내고 있다고 인사했다. 지난 일주일 전에 다른 곳에 나가서 2틀전 저녁에 광주 봉호(蓬戶)에 돌아왔는데 보내주신 전보가 와 있었다는 것, 다음날 과연 상대의 편지가 하나 도착했다는 것, 편지에서 말씀하신 이미 소비한 3회분은 더 논할 것도 없고, 2회분 또한 활동으로 소비해 놓고 각자 자금을 내어 보냈다니 도리어 미안하다고 했다. 모두 나에게 혐의가 있는 것이지 형을 허물할 것이 없기에 다시 돌려 드리니 잘 받으시라고 했다. 자신이 마땅히 집에 찾아가 감사 인사를 해야 당연한데 아직 그러지 못했다며 3~4개월 간 내로 꼭 찾아뵙고 방도를 도모해 볼 계획이라고 했다. 꼭 책임져 줄 사람이 있다는 말에 매우 기쁘다는 것, 먼저 실패하고 후에 성공하는 것이 맞으니 다시 제 뜻을 수용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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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이종택(李鍾宅)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鍾宅 盧鍾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5년 6월 18일, 이종택이 노종룡에게 현와 고광선 문집 간행중에 자신의 소회를 전한 서간. 1935년 6월 18일, 봉산정사(鳳山精) 간소(刊所)에서 소제(小弟) 이종택(李鍾宅)이 노종룡(盧鍾龍)에게 현와(弦窩) 고광선(高光善)의 문집 간행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소회를 전한 편지이다. 자신이 벽지(僻地)에서 소해(蘇海) 노종룡 노형(老兄)이 현사(賢仕)라는 소문을 들었다는 것, 자신은 예(禮)만 있지, 재물은 없다는 것, 다행히 중년(中年)에 담대헌(澹對軒)에서 뵙고 잠깐 의범(懿範)을 대하였을 뿐이라는 것, 금년 봄에 또 봉산정사에사 덕음(德音)에 대해 들었다는 것, 매번 암자에서 당신의 자가(自家)를 만나 기거하심을 묻지만 혹은 상세하고 혹은 대략적이어서 진면목을 얻을 수 없었다는 등의 상대방을 간절히 궁금해 하는 인사로 편지를 시작했다. 주요내용은 자신이 문고(文稿)를 기록하는 역을 받았지만 재주와 식견이 적어 여러 달 동안 한 일이 없이 쌀을 축내었을 뿐이라는 것, 돌아간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한스러운 것은 서석(瑞石)을 만나지 못한 것이라며 있는 곳을 알고자 한다고 했다. 노형(老兄)에게 종이 한 장의 편지가 없을 수는 없기에 이렇게 편지한다며 죄를 따지지 말아 주기를 바란다고 인사했다. 마지막에는 서석(瑞石)과 함께 더욱 한 층 높아지기를 바란다는 인사로 편지를 가름했다. 편지 봉투의 발신자 정보는 보라색 잉크를 사용하여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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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光州 日谷里盧 蘇海 先生 經座下(피봉_뒷면)光州郡 西倉面 鳳山精舍弦窩高先生遺稿刊所(簡紙)僻在塵境, 聞蘇海老兄之賢, 於人者最大二事. 白首封章, 辭甚憤潡, 知有團令不知有已.緇衣好賢, 這甚懇到, 知有禮而不知有財, 此豈易事耶? 求之於古, 實尠其儔,願享而未之得心帶紆鬱. 幸而中年獲拜於澹對軒, 乍對懿範而已. 今春又承於鳳山舍畧聞德音而已. 時日不爲饒待, 遽爾分張, 無乃緣薄之致歟. 每逢省菴君之自家, 而回必問起居, 或詳或畧未得眞面, 聖人所謂慮是遠而歎如之何弦. 玆文稿謂承■(校)役, 而但才短識涉數月間空索, 鳳山米人謂我,何可悚悚不幾似好. 告歸所恨者, 端石不見也. 或請知處不得尋訪也. 於老兄不可無一紙, 故玆敢替伸不罪否.瞻仰昊天, 曷惠其■〔寧〕, 此則人人同情, 奈何.惟祝 難老增慶, 與瑞石更高一層耳. 餘不備上.乙亥六月十八日, 小弟 李鍾宅 拜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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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7년 박재정(朴載鼎)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鼎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7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鼎(47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67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鼎(47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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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박재빈(朴載彬)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彬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0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42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70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彬(42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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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5년 장천익(張天翼)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張天翼 康津縣監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5년(정조9) 장천익(張天翼)이 자기 호(戶)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여 강진현(康津縣)에 제출한 호구단자 1785년(정조9) 장천익(張天翼)이 자기 호(戶)의 현황을 기록하여 강진현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천익의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으로, 나이는 42세이며, 장대윤(張大允)에서 장천익으로 개명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호주인 장천익의 사조(四祖)와 처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사조 및 같이 살고 있는 아들이 함께 기록되어 있는데, 장천익의 사조는 부(父)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처 김해김씨는 42세이고 김해김씨의 사조는 아버지는 김위재(金渭載), 조부는 김천석(金天碩), 증조부는 김애명(金愛明), 외조부는 본관이 경주인 정무현(鄭武賢)이다. 함께 살고 있는 아들 장계득(張啓得)은 22세이다. 호구단자는 호주가 작성하여 관에 제출하면 대조 및 확인 작업을 거친 후 다시 돌려주는 과정에서 지방관의 서압(署押)이나 관인(官印),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 또는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 등이 찍히기도 하는데, 이 호구단자는 그러한 흔적은 없이 문서의 하단에 '서(書)'라고 쓰여 있어 확인 후 다른 대장(大帳)에 올렸음을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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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今島鎭里丙午式戶籍單子戶待變軍官張大允改名天翼年四十二乙丑本仁同父折衝將軍武良祖學生 弘曾祖學生德龍 【書】外祖學生金愛賢本金海妻金姓年四十二乙丑本金海父渭載祖天碩曾祖愛明外祖鄭武賢本慶州率子啓得年二十二乙酉乙巳十月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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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1년 장대윤(張大允)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允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71년(영조47)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윤(張大允)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71년(영조47) 강진현에서 신묘년(1771)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윤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윤은 현재 26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은 68세로 생존해 있으며,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아내인 이천서씨(利川徐氏)는 26세이다. 이어서 이천서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서일태(徐日泰), 조부는 서원적(徐元迪), 증조부는 서계축(徐啓軸), 외조부는 이암극(李諳極)으로 본관은 완산(完山)이다. 증조부 이름은 앞의 1768년 준호구에는 서계축(徐啓丑)으로 쓰여 있다. '축' 자를 음가가 같은 '축(軸)'과 '축(丑)'으로 혼용한 것으로 보인다. 함께 살고 있는 아우 장대운(張大雲)은 현재 21세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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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今島鎭里辛卯式戶籍單子戶鰥夫張龍伊年五十二戊戌本仁同父大運祖折衝將軍武良曾祖 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率女年十四等庚寅九月日行縣監[押][帖][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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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이창호(李昌浩)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昌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술년 이창호(李昌浩)가 상대방이 부탁했던 미투리 두 켤레를 사 놓았으니 상대방이 방문하면 찾아드리겠다는 내용의 간찰 무술년 윤 7월 17일에 이창호(李昌浩)가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이다. 조부모와 부모를 함께 모시고 지내는 상대방의 안부가 편안한지 물었고, 자신은 부모를 모시며 예전처럼 지내고 있다고 안부를 전하였다. 상대방이 전에 부탁했던 미투리[麻鞋] 두 켤레를 이미 사 두었는데 마침 인편이 없어서 바로 보내드리지 못했으니, 하루 이틀 사이에 방문해주시면 그때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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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候狀近阻悵結之懷何可少弛謹未審日來重侍餘做味萬康慰溯區區之至情童省事依昨外何盡喩就拱日前君之所托麻鞋二配貿之留置適無信便趁不推送還切悶然一二日間惠然賁臨推尋之地似好似好耳餘不備候禮戊戌潤月十七日情童李昌浩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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