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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송철감(宋喆鑑)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宋喆鑑 禮曹判書 禮曹[着押] 3顆(7.8×8.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3106 1840년 2월에 전라도 금구현 유림 유학 송철감·장우일 등 16인이 예조에 효성과 우애가 돈독한 곽영춘의 실행을 임금께 아뢰어 포양해 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40년(헌종 6) 2월에 전라도 금구현(金溝縣) 유림 유학 송철감·장우일 등 16인이 예조에 효성과 우애가 돈독한 곽영춘(郭永春)의 실행(實行)을 임금께 아뢰어 포양(褒掦)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하늘이 낸 효성과 세상에 드문 행실을 지니고 있는데도 먼 지방 궁벽한 골짜기에 있는 탓에 포상의 은전을 입지 못한 경우에는 산에 있는 옥과 골짜기에 있는 향기로운 난초를 보고 감동한 사림들이 옥을 품고 와서 바치고, 난초를 보고 천거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전라도 금구현에 사는 선비 곽영춘은 본관이 현풍(玄風)으로 충효(忠孝)를 세습(世襲)하였다. 정의공(正懿公) 경(鏡, 1117~1179)의 후손으로, 청백리 안방(安邦)의 14세손이고, 임진 호성원종공신(扈聖原從功臣) 반송당(伴松堂) 흥무(興懋, 1554~1613)의 7세손이며, 정려 효자(旌閭孝子) 청계당(聽溪堂) 후태(后泰)의 5세손이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고, 뿌리가 깊으면 가지도 무성한 것이 이치인지라, 곽영춘은 가풍(家風)을 이어받아 효행(孝行)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자이다. 순수한 성품을 지닌 곽영춘은 어렸을 때부터 어버이께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였다. 그의 늙은 모친이 몇 달 동안 병을 앓았는데 온갖 약이 효험이 없어 거의 죽을 지경이 되자 자신의 손가락을 찢어서 그 피를 어머니 입속에 흘려 넣어 회생시켰다. 또 늙은 아버지가 숙병으로 몇 년 동안 병상에 앓아 누워 있었으나 지극정성으로 부지런히 봉양하였고, 아버지의 차도를 확인하기 위해 똥을 맛보았으며, 밤낮으로 하늘에 자신이 대신 아프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밖에도 봉양하는 데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여 지극한 정성으로 자식의 직분을 다하였다. 또한 동생 영복(永福)과 우애가 매우 돈독하여 애초 서로의 구분이 없어, 의식(衣食)과 재물을 서로 양보하였다. 이에 그의 부모는 항상 "내 아들은 효자"라고 말하였으며, 마을 사람들도 모두 "곽 효자의 효성과 우애는 옛사람들도 능가하지 못한다"고 칭찬하였으니, 이를 통해 그의 진실한 마음과 행동을 알 수 있다. 부모 곁에서 약시중을 할 때마다 으레 똥을 맛보는 것을 일상의 일로 삼고, 위급한 순간에 손가락을 찢는 것을 항식(恒式)으로 삼았던 그의 순수하고 지극한 성심(誠心)과 하늘을 감동시킨 효성이 아니었다면 죽어가는 자를 회생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효행이 먼 지방에서 일어난 탓에 포상을 받지 못하였기에 금구현 유림들이 예조에 상서를 올려 '그의 효행 실적을 임금께 계달(啓達)하여 은미한 것을 드러내고 숨겨진 것을 밝혀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를 접수한 예조는 2월 14일에 '듣고서 매우 가상했다. 포양(褒揚)의 절차는 오직 식년(式年)에만 있으니 도계(道啓)할 것'을 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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稽顙拜言. 懸仰之餘, 得承惠復, 欣賀難竤. 謹旋寒旅中體候萬旺, 仰哀慰溸區區且祝. 罪弟 近以肩甲痰痛, 數日辛苦, 私悶私悶耳. 第當享祀之時, 一次初五日拜叙爲料矣, 病故如右, 未能振作, 且將奈何. 當此祭享, 兄之勤念,不言可狀, 何以書仰. 且饍物出於萬萬意外, 受則感謝無地耳. 胡桃至於今年, 實在小,而盡收者, 僅爲一百五枚, 而價文一兩也. 鄙村享祀費餘條中, 艸給爲艸, 以此下諒之地, 至企耳. 餘在使立促, 都不備, 謝疏上.乙卯八月三日, 罪弟 曺泰煥 謹拜疏.丁兄宜瑞亦平安, 未修各幅, 以此傳及, 如何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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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조태환(曺泰煥) 서간(書簡)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曺泰煥 羅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5년 8월 4일, 죄제 조태환이 장의 나생원에게 오늘의 석전제에 참석하는 이무신이란 사람을 잘 돌봐주길 바란다고 쓴 서간. 1915년 8월 4일, 죄제(罪弟) 조태환(曺泰煥)이 장의(掌議) 나생원(羅生員)에게 오늘 석전제(釋奠祭)에 참여하는 이무신(李武信)이란 사람을 형이 잘 돌봐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쓴 편지이다. 집을 떠나 있는 상대에게 밤사이 잘 계셨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옛 질병이 더해져서 떨쳐 일어날 수가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주요내용은 오늘의 석전제(釋奠祭)에 자신이 갈 수 없기에 많이 걱정이라는 것, 내가 듣기로 이무신(李武信)이 제사에 참석한다고 하는데 그는 사방을 둘러봐도 친한 사람이 없으니 대형(大兄)께서 잘 돌봐주시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발신자 조태환은 임곡(林谷)에 살고 있었으며, 수신자 장의(掌議) 나생원은 향교에 머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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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봉_앞면)鄕校留羅 生員 掌議 座下.(피봉_뒷면)林谷 謹拜疏上.(簡紙)稽顙拜言. 謹未審夜落旅體候萬旺, 哀溸區區不任且祝至耳. 罪弟 昔疾兪加, 未能振作, 私悶之狀, 何可盡達. 第今日 釋奠祭, 而凡百勤務, 何以勘當也. 未可晉參, 坐而思之, 萬萬不安于中矣. 鄙聞李武信參于祭席, 亦是大兄之惠顧,豈無感領, 然而四顧無親面者, 而 兄惟斗護之地, 千萬仰祝仰祝耳. 餘病臥艱草,謹不備疏上.乙卯八月四日, 罪弟 曺泰煥 拜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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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들ᄒᆞ오신 ᄉᆡᄃᆡ 답소셩네언선친의 ᄉᆞᆼ사 말ᄉᆞᆷ 그시의 경달 경달 위모 가이 업ᄉᆞ오며무ᄉᆞᆷ 말ᄉᆞᆷ으로 형현 위로ᄒᆞ오릿가 셩쳔니 무지 불셩ᄒᆞᄉᆞ ᄉᆡᄃᆡᆨ 다남ᄆᆡ분의 츌쳔셩효의 무량 탕제 효렴을 보시와 ᄇᆡᆨ세 향안을 오히려 낫비 바라시다 일조 일셕의 화고을 당ᄒᆞ실 제 일월리 무광ᄒᆞ고 명염이 나려 두상을 분쇄ᄒᆞ신 듯 호쳔 망극 ᄋᆡ통 얼마나 ᄒᆞ실가 셩네로 좃ᄎᆞ 초종 셩복과 양에 위졸갓 맛자오시고 아람 업ᄉᆞ오신 영젼 ᄇᆡ셜ᄒᆞ오셔 육시곡음 ᄋᆡ통ᄒᆞ신들 무산 아람 게실잇가 어린 동긔들위로ᄒᆞ시고 ᄉᆡᄃᆡᆨ의 어린 심ᄌᆞᆼ 과도히 상치 마시압긔 순소져 형치 얼마나 비통 망극ᄒᆞ난고 아인 아인 가이 업ᄉᆞ오며 상쥬님 형제분 각 ᄂᆡ외분 셩효의 ᄋᆡ회 즁지안들 ᄒᆞ오심잇가 ᄉᆡᄃᆡᆨ 조모긔셔난 ᄯᅡᆯ님 ᄯᅡᄅᆞ가신 듯 게유 여러 ᄂᆞᆷᄆᆡ도 건강ᄒᆞ오며 인졍 윤날ᄒᆞ오신ᄉᆡᄃᆡᆨ게셔난 이 무용 인ᄉᆡᆼ을 잇지 안니시고 종종편지ᄒᆞ시니 감사ᄒᆞ옵고 졍니가 더옥 깁펴가며 인졍 이만ᄒᆞ신 거슬 우리 여러 고부이 탄복 마지 안슴이다 이곳슨 무심 즁의도 슈슈ᄒᆞ여 진즉 회답 못ᄒᆞ여 너모나 감졍ᄒᆞ고 소박ᄒᆞ여 언마나 무졍타설레임이다 ᄂᆡ의 가량 보시압 존고 양외분 긔력 강건ᄒᆞ시며 시동긔 여러분들 평안들 ᄒᆞ시고 ᄃᆡ소 합졀리 균안들 ᄒᆞ심잇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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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년 오연근(吳演根)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吳演根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경술년 10월 10일, 죄외종 오연근이 할머니 첫 기일을 언급하고 안부를 묻고 전한 서간. 경술년 10월 10일, 죄외종(罪外從) 오연근(吳演根)이 할머니의 첫 기일이 이 달 중에 있음을 언급하고 서로간의 안부를 묻고 전한 서간이다. 봄에 이별한 뒤로 아직까지 소식을 묻지 않았다며 답답하고 그리운 마음과 자신의 나태함을 한탄하는 인사를 시작으로 요즈음 잘 계신지 상대의 안부를 물었다. 할아버님 기력이 달마다 달라져 모시는 아랫사람들이 걱정이겠다는 것, 할머님 첫 기일(朞日)이 10월중에 있다는 말을 언급하고 자신은 세월이 빨리 지나가 아버지 상이 금방 지나가고 있으며, 집안은 별 탈 없어 다행이라고 했다. 자신이 말로 표현을 잘 못하니 훗날 얼굴 보고 이야기 하자는 인사로 편지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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稽顙言. 春間奉別後, 未探信息, 悵仰之懷, 靡日不懈. 未審伊來,做餘湛樂萬祥, 大小諸節均安, 倂爲溸且賀. 祖父主氣力, 與月殊異, 侍下人狀焦悶何達. 祖母主初朞今十月中一日也. 罪外從光陰迅疾, 不趐駒隙頑命, 苟生哀霣之私, 豈可形喩. 閤內是無大故,私幸私幸耳. 語訥書縮,未通區區. 懷之萬一, 日後面叙懷, 不備謹疏.庚戌陽月十日, 罪外從 吳演根 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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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룡(李漢龍) 시(詩) 고문서-시문류-시 李漢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467 전의 이한룡이 난재 권 어른의 수연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7언율시 형식의 수연축하시 1수. 전의(全義) 이한룡(李漢龍)이 난재(蘭齋) 권(權) 어른의 수연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7언율시 형식의 수연축하시 1수이다. 피봉에는 '족질(族侄) 은재(隱齋)의 수일(晬日)에 차운(次韵)한다'라고 적었다. 자세하지는 않지만 은재 권씨는 영남의 사림으로, 이한룡은 고종대의 학자로 보인다. 본문의 시제와 피봉이 다른데, 은재와 난재가 동일인인지 불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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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옥(金鎭沃) 시(詩) 고문서-시문류-시 金鎭沃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1467 정제 김진옥이 은재 권 대형의 수연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7언율시 1수. 정제(情弟) 김진옥(金鎭沃)이 은재(隱齋) 권(權) 대형(大兄)의 수연을 축하하기 위해 지은 7언율시 1수이다. 지은이 김진옥은 1957~1965년 『덕천사우연원록전말』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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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피봉(簡札皮封)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大雅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목물에 은거하는 사람이 이씨에게 올린 편지의 자봉. 목물(牧物)에 은거하는 이가 이(李) 대아(大雅) 시안(侍案)에 올린 편지의 자봉(自封)이다. 자봉이란 편지를 쓴 본문 자체의 종이를 길게 하여 내용을 작성한 후 왼쪽이나 오른쪽부터 내용이 보이지 않도록 적당한 너비로 접어 오다가 내용을 다 접어 빈 공간이 맞닥드리게 되면 그 곳에 편지의 봉투에 작성하듯 수신자와 작성자의 정보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작성한 편지지로 자체가 봉투가 되도록 봉한 것을 말한다. 본 자봉은 편지의 오른쪽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며 왼쪽에 편지의 내용부분이 잘려 나간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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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욱(載旭) 시(詩) 고문서-시문류-시 載旭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족종 재욱이 61세 회갑을 맞은 족종을 축하하여 지은 수연 차운시. 족종(族從) 재욱(載旭)이 족종의 61세 회갑을 축하하여 지은 차운시(次韻詩) 1수이다. 7언율시의 형식으로 운자는 년(年), 선(仙), 연(延), 변(邊), 전(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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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위경규(魏璟奎) 시축(詩軸) 고문서-시문류-시 魏璟奎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34년 3월 2일, 단강 위경규가 도곡 족속이 영남 옥계사를 다녀온 후에 지은 시에 차운한 것, 이별의 글에 차운하여 족숙에게 준 시, 장천재에서 제야를 보내며 차운한 시 각 1수를 적어 놓은 시축. 1934년 3월 2일, 족질(族侄) 위경규(魏璟奎)가 3가지 주제로 차운하여 지은 시 3수를 기록해 놓은 시축이다. 첫 번째는 도곡(道谷) 족숙(族叔)이 영남의 옥계사(玉溪祠)에 다녀온 후 지은 시에 차운한 7언절구 1수로 운자(韻字)는 능(能), 층(層), 도(都), 등(燈)이다. 두 번째는 별장(別章)에 차운하여 지은 7언절구 1수로 운자는 산(産), 신(新), 승(勝), 인(寅)이다. 세 번째는 장천재(長川齋)에서 제야의 밤을 보내며 지은 7언율시 1수로 운자는 한(寒), 간(看), 관(觀), 단(丹), 반(盤)이다. 위경규(魏璟奎, 1886~1946)는 조선 말기 유학자이자 교육자이다. 호는 단강(丹江)이며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전라남도 장흥군(長興郡) 유치면(有治面) 출신으로 부친은 위계민(魏啓玟)이다. 어려서부터 남을 돕는 것을 좋아하였고 성품이 온화하였다. 고을 자제들을 교육하기 위해 사재(私財)를 들여 봉무재(鳳舞齋)를 짓고 몸소 교육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장흥향교(長興鄕校)의 초대 전교(典敎)를 역임하였다. 만년에는 단강(丹江) 근처에 영귀정(詠歸亭)을 짓고 시사(詩詞)로 소일(消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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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元年五月 日禮曹立案右立案爲孝子旌閭事 節 啓下敎 去甲戌八月 幸行敎是時 全羅道幼學申曦模等 駕前 上言據 曹 啓目 粘連啓下是白有 向前全羅道幼學申曦模等 限內現身 戶口現納 親呈的實是在果 觀此 上言 則爲興陽故學生朴東翊及其曾孫故學生禮彬孝行 幷請旌褒之典事 有此呼籲爲白有臥乎所 朴東翊粤自髫齔之齡 已盡服勤之誠 晨昏定省 不敎已能 其母病 衣不解帶 設壇祝天 斫指注血 竟得回甦 又其父病 嘗糞甜苦 夜之暗泣 前後居喪 哀毀逾禮 未嘗一時離苫堊脫衰絰 三年不啓齒 終喪必茹素 書籍盃圈之間 見父母手澤 必放聲大哭 雖婢僕犬馬 苟其生時所素 必終身撫恤 曾孫禮彬 生于孝友之家 果有大益于人者 而家勢至爲無賴 而初年性務通經學博古 中値已甲大無 而兩親老病 朝夕將絶 禮彬心甚憂懼 行傭以給 所居濱海 每候潮退 艱辛辦價 張袖拱立 則浦人感其義 卻錢而優給魚屬 翌日其人得魚倍於衆 自是浦人爭來給魚異哉 感應之理也 未幾連喪兩親 至兄又歿 禮彬罹癘濱死不省人事中 晝夜祝手曰 蒼天蒼天 活我生我 若奄死 則一室三喪 無人掩土 僅及擡頭 必晨昏號哭於淺土殯所 秋成備棺以葬 哀痛迫切 不敢以尋常喪人自處 對人有淚而無言 經夜有喘而無睡 以經三年 每遇喪餘 積月悲痛 終始如一是如爲白有置 朴東翊及其曾孫禮彬孝行實蹟 觀於聯籲 公議可徵 幷施旌閭 以樹風聲 恐合事宜是白乎矣 系于 恩典 臣曹不敢擅便 上裁何如. 光緖元年五月二十七日 同副承旨臣李源逸次知 啓依回啓施行爲良如敎事 判下敎是置 旌門竪立時 材木匠手 依例自官擧行爲旀 其子孫家烟戶還上等諸般雜役 依例蠲除爲遣 合行立案者正郞 佐郞判書[着押] 參議 正郞 佐郞正郞 佐郞[禮曹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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郡終望湖亭居 化民李鉉榮李圭浩 惶恐仰達于城主閤下 伏以 民以河聖祚暗葬逃避事 累次呈訴 冀望督掘 而凶彼河漢 欲售奸計 尙此不至 究其所爲 極爲痛歎 而且以當初言之 渠以同邑常汗之子肆然偸埋於境內士夫先山壓脈當禁之地者 豈非蔑法犯分之大者乎 及至捉囚其老母之日 猶且逗遛於外 而不念其母之久滯 專爲其塚不掘之計則其所設心 有不可以人倫言之者也 其犯分也如是 其無倫也如是 則安望其他日自見於 官庭之下乎 伏念 河漢今雖不來 其母其妻 亦是山隻則使之掘祛其塚 亦爲當然 故玆敢更達爲去乎 伏乞 洞燭敎是後 捉致河漢之母與妻 眼同將校 卽爲掘移其偸塚 以厲凶漢奸猾之習 千萬至祝行下向敎是事城主閤下 處分辛亥五月 日期於捉得河聖祚 不日督掘事二十二日告金正光官 [署押][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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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이생원(李生員) 등 완문(完文) 고문서-증빙류-완문 韓宗默 李生員 韓宗默<着名>, 金翊魯<着名>, 金顯澤<着名>, 林成春<着名>, 河永祿<着名>, 吉有宗<着名>, 尹守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기미년 10월에 이생원이 관아에 토지를 기부하고 받은 완문. 기미년 10월 28일에 영암군 관아의 刑房인 韓宗默 등이 발급한 완문이다. 발급한 고을은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본 문서가 포함된 문서군이 영암 지역에 소재한 이씨 집안 문서이므로 영암군 관아에서 발급한 문서일 가능성이 크다. 작성된 서기연도는 알 수 없다. 완문의 본문은 고을 관아의 刑房에서 사용할 재정이 부족하여 여러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차에 望湖亭에 사는 李生員이 토지를 재원으로 내어주었으므로, 이 사실을 기록해 두고 그 덕을 칭송하게 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형방의 재정이 부족한 이유는 본문에서 본 읍이 큰 도로의 옆에 위치하는 바람에 兵營과 水營 사이에서 겪는 폐해가 다른 읍에 비해 몇 곱절은 된다고 하고 있다. 즉 도로를 지나는 관리에게 지급하는 식량과 역참을 들고나는 人馬에 들어가는 비용이 전체 고을 중에 가장 많아서, 이를 개선하고자 하지만 재원을 염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생원이 이러한 실상을 통촉하여 내놓은 토지는 黎字 자호의 논 3마지기이고 負數로는 11부 6속이었다. 이에 대해 형방에서는 고마움을 표현하길, "높은 은혜가 태산과 같아 그 問喪하는 도리에 있어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라고 하고 있다. 여기서 원문은 "匍匐之道"라는 문구를 사용하였는데, 이생원댁에서 喪禮내지 葬禮에 대한 일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어서 그 보답으로 "이 댁의 산소를 禁養하는 절도와 그 밖에 보답하는 방안을 (수령의) 처분에 따라 힘을 모아 보답하길 도모한다."라고 하고 있다. 이 완문이 포함된 문서군에는 '신해년 이규호(李圭浩) 단자(單子)' 등 영암군에 올린 상송 문서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하는 '산소의 禁養'은 이생원 집안에서 겪고 있는 산송 문제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추측을 해 본다면, 이생원댁이 진행하고 있는 산송을 잘 처리해 주는 대가로 고을 관아에 토지를 기부하고 이에 대한 증명서를 완문의 형식으로 발급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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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무술년 김해김씨(金海金氏) 문계안(門契案) 고문서-치부기록류-계문서 金昌完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술년 10월에 김해김씨 문중에서 작성한 문계안(門契案) 무술년 10월에 김해김씨 문중에서 작성한 문계안(門契案)이다. 10월 하순에 김창유(金昌裕)와 김규두(金奎斗)가 서문을 지었고 그 아래에 문장(門長) 김창완(金昌完) 등 문중 사람들의 좌목(座目)을 적었다. 서문에 따르면 김해김씨는 농은공(農隱公)·참봉공(參奉公)·부사공(府使公)이 무오사화로 화를 입어 호남 금릉(金陵) 세정동(洗鼎洞)으로 유배되어 여기서 살아온지 11대가 지났다. 대를 이어 살아오는 동안 가문이 번성하고 관직에 오른 이들도 생겨나 하나의 계(禊)를 이루기에 부족함이 없고 종의(宗議) 또한 일치하니 문계를 만들어 서로 화목을 도모하자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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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1)戊戌十月日門契案2)3)則悅親戚之情話 是爲合族也 李靑蓮桃園之會則敍天倫之樂事 是爲合族也 合族而爲禊禊成而敦睦者 是豈非美事 歟惟我金海金氏 卽三賢苗裔 故農隱公官縣監諱大字雅 進士參奉公諱鐵字 府使公諱致字秀 戊午史禍4)竝謫湖南金陵之後以玉女峰下洗鼎洞爲原者 迄今十一世也 公有三胤而昆則仍居冬栢亭 季則以遺命還歸本鄕山淸 世有簪纓焉 子孫繁衍一再傳 而自五比爲四閭 自四閭爲百室 又有文學之士十數員知名當世 其餘以武堦顯名 則無慮二十餘員5)可謂盛矣 古有一禊 收宗族序昭穆立敎誡 以之講信 修睦傳之百有餘年中間世 故多端分散 四方人事 隨變此事 廢墜享禮 艱難爲其後承者寧不慨然 今者宗議詢同洗鼎洞歲祀日團會齋室續修舊禊 可謂善述善繼矣 其臚列條約 一6)依退陶先生溫溪之族禊 凡例屬余爲弁卷之文 余何勘辭也 禮曰上治祖禰以尊尊 下治子孫以親親 傍治昆季以敦睦 追遠厚倫之美達矣盍相與勉之哉戊戌十月日下澣 不肖孫昌裕 盥手謹序奎斗 盥手謹書7)嗚呼 族禊何爲而作也由其尊祖睦親而作也夫天之所生 地之所養惟人最貴者 以其尊祖之道 以其睦親之誼也 是以大舜明峻 徒以親凡族則有是親者 烏可無睦親之道乎 元聖制禮樂以敬恤祀 則有是祖者 曷可無尊祖之祀8)哉 惟我十一世祖農隱公官縣監諱大字雅 進士參奉公諱鐵字 府使公諱致字秀 戊午史禍被謫湖南金陵之後 昆則仍居焉 季房二員 以遺命還歸 故鄕世有簪纓焉 吾族居楸下 世修享祀焉 古有一禊 收宗族序昭穆 以之講信 以之9)修睦矣 挽近以來 世德零替 文獻無徵 革廢此事 則其爲後孫者寧無寒心乎 今者諸族慨然 有志於此問 命于門長 續修舊禊 則豈非吾族之盛事 亦非來裔之美蹟乎 猗歟哉 修此禊 立此規 後其爲後昆也 尙不失10)此規 微有補於尊祖睦族之道也歟 余以不敏事 恐愈久而湮沒 故書之如是云爾戊戌十月日下澣 不肖孫昌裕 盥手謹序奎斗 盥手謹書11)門長 金昌完座目【宗孫】金鎭斗 字替淑 甲寅生金昌敏 字君集 乙未生金昌伯 字完甫 丁酉生12) 13)金昌馥 字寬益 庚子生金昌班 字興允 庚子生金昌裕 字平烈 壬寅生金昌績 字良九 甲辰生金昌完 字應五 庚申生金昌雄 字士烈 辛酉生金昌琪 字士玉 辛未生金柄斗 字福允 戊申生金敬斗 字敬善 己酉生14) 15)金浩斗 字俊汝 壬子生金寬斗 字成三 癸丑生【辛酉二月二十八日身故】金奎斗 字奎煥 庚申生【癸亥六月十八日身故】金輔斗 字敬贊 癸亥生【辛酉二月十二日身故】金義斗 字義煥 庚午生金處斗 字化國 辛未生金文斗 字而彬 壬申生金生斗 字昇煥 癸酉生己亥十月十六日追入秩16)金昌琫 字士圭 戊辰生 庚子入金進斗 字洛鉉 辛酉生 庚子入金挺斗 字德哉 壬戌生 辛丑入金奉斗 字奉淑 辛未生 壬寅入金昌燮 字昇和 戊申生 壬寅入金繼斗 字瑞連 壬子生 壬寅入金轍斗 字舜瑞 丁巳生 壬寅入金昌安 字振旭 丙辰生 丙午入金昌采 字士準 乙丑生 丁未入金昌赫 字聖集 乙巳生 戊申入17)金敏斗 字寶一 癸亥生 乙酉追入金昌周 字敬澤 丙辰生 壬子追入金昌善 字有玄 乙未生 乙巳追入金昌植 字昌植 乙丑生 乙卯追入金昌奎 字亨才 庚辰生 乙卯追入金昇斗 字明洙 癸亥生 乙卯追入金炳斗 字成擧 甲子生 乙卯追入金撰斗 字建五 戊午生 乙卯追入金良斗 字致聖 壬午生 乙卯追入金正斗 字弼斗 癸巳生 丙辰追入18)金容璜 字東烈 生 丙辰追入金秉斗 字 辛卯生 丙辰追入金昌烈 字春化 丁巳生 己未追入金昌 字孔郁 壬戌生 己未追入金益斗 字鉄柱 丁亥生 己未追入金鍾斗 字 戊戌生 庚申追入金學斗 字順汝 戊辰生 辛酉追入金福斗 字漢中 甲申生 辛酉追入金昌權 字權一 甲子生 甲子追入金容瑀 字大振 甲申生 乙丑追入19) 20)金世斗 字致祥 丙子生 乙丑追入【乙丑十二月十九日仙化】金容善 字 乙丑生 乙丑追入金容玉 字長石 乙丑生 己巳追入金泳斗 字章五 丁卯生 乙亥追入金千斗 字致煥 壬午生 乙亥追入金容旭 字亨洙 丁丑生 乙亥追入金昌辰 字京辰 庚午生 甲申追入金仕斗 字仕宗 甲申生 仝金德斗 字福斗 辛亥生 仝金容煥 字淑珍 乙酉生 仝21)金容錫 字道生 乙巳生 甲申追入金石斗 字 丁未生 乙酉追入金向坤 字良玉 乙酉生 乙酉追入金鍾均 字 乙未生 乙酉追入金正均 字 癸亥生 乙酉追入金玉鼎 字 己未生 乙酉追入金南洙 字 壬辰生 乙酉追入金貞坤 字 丙寅生 乙酉追入金甲斗 字 丙子生 乙酉追入金容灄 字判基 癸巳生 己丑追入22)金容宙 字重基 甲午生 己丑追入金容祚 字 庚子生 己丑追入金容基 字元基 庚子生 己丑追入金容哲 字光致 癸卯生 己丑追入金容述 字容九 丙午生金容大 字 己酉生金容圭 字 壬子生23)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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內西靣學堂里居化民張允文右謹言㦖迫事民以山訟事自去年以來與內北靣熊谷居曺敬源累次呈訟是乎所 城主以其當當訟理連下嚴題斯速掘去曺塚之意特爲 分付是白遣終末又下特 題云若又如前頑拒則斷當自 官嚴刑督掘事云云敎是乎所同曺敬源堂叔曺漢鉉素以多詐舞智之人斗護渠之堂侄而肆發秘謀以其農務時急之意累累恳乞是去乙 城主特加勸農愛民之澤更 題下秋成後掘移事云云敎白乎所民雖切懆㦖之狀 官令之下不敢更呈■■(更呈)而姑待秋成矣方此冬寒而永無移塚遵 令之意彼何人斯如許㐫頑是喩玆敢前所志貼連緣由仰訴伏乞參商敎是後細細洞燭民之情狀而同曺敬源之塚依前 題自官嚴刑督掘千萬望良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戊子十二月 日〈題辭〉秋以納侤冬猶不掘者曺哥所爲萬萬痛懲後督掘次眼同捉來事初一 狀民[官印]官[署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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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장윤문(張允文) 소지(所志) 6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張允文 同福縣監 官[着押] 3顆(6.6×7.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707 1828년 12월에 전라도 동복현 내서면 학당리에 거주하는 장윤문이 동복현감에게 관령을 거역하고 있는 조경원을 앞의 뎨김에 응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소지 1828년(순조 28) 12월에 전라도 동복현(同福縣) 내서면(內西面) 학당리(學堂里)에 거주하는 장윤문(張允文)이 동복현감에게 관령(官令)을 거역하고 있는 조경원(曺敬源)을 앞의 뎨김에 응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소지이다. 장윤문이 지난 초 1일에 산송(山訟)으로 정소(呈訴)한 뎨김에 '가을에 다짐을 바쳤는데 겨울에도 투총을 파 옮기지 않았으니 조 가(曺哥)의 소행을 매우 엄하게 징계한 다음 독굴(督掘) 하기 위해 잡아올 것'이라고 판결하였다. 이에 뎨김을 알리기 위해 조경원 집에 갔더니 다른 곳으로 나가 꾀를 내어 피하였다. 이런 연유로 장윤문이 다시 소장을 올렸더니 뎨김에 '조경원이 이 고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바로 잡아오라'고 판결하였다. 이 뒤에 조경원은 그의 집으로 돌아왔으나 관령을 따를 뜻이 없고 마음에 오로지 뎨김을 거역할 뜻만 있었다. 이 때문에 장윤문은 입을 다물고 간과하고 있을 수 없어서 앞의 소지를 점련하여, 먼저 관(官)도 없고 법도 없는 죄를 다스린 뒤에 앞의 뎨김 내용에 응하도록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소지를 접수한 동복현감은 12월 25일 장윤문에게 '잡아오지도 않으면서 어찌하여 번거롭게 청원하는가? 지금은 한해가 이미 저물었으니 봄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잡아오도록 하라'는 판결문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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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년 장욱(張旭)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同福縣監 張旭 行縣監[着押] *周挾無改印, 1顆(墨印, 13.0×4.5)*1顆(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2722 1807년 10월에 전라도 동복현에서 호주 장욱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 1807년(순조 7) 10월에 전라도 동복현(同福縣)에서 호주 장욱(張旭)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이다. 장욱은 '찬(欑)'을 개명(改名)한 이름으로 거주지는 내서면(內西面) 제7 학당리(學堂里) 39통 4호이다. 직역은 유학이고, 나이는 44세 갑신생(甲申生)이며, 본관은 흥덕(興德)이다. 그의 사조(四祖)는 아버지 학생 한신(漢臣), 할아버지 통정대부 동지중추부사 효지(孝智), 증조 학생 치언(致彦), 외조(外祖) 학생 김진채(金振採)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장욱의 아내 이씨(李氏)는 나이 39세 기축생이고 본적은 전주이다. 김씨의 사조는 아버지 학생 필달(苾達), 할아버지 학생 갑훈(甲勳), 증조 성균생원(成均生員) 상회(相檜), 외조 학생 이택후(李宅垕) 본관은 공주이다. 소유하고 있는 여종은 예선(禮先)이고 57세 신미생으로, 그녀의 어머니는 반비(班婢) 수영개(水永介), 아버지는 사노(私奴) 돌윤(乭潤)이다. 문서에는 동복현감의 관인(官印)과 서압(署押),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있으며, 1804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갑자호구상준인(甲子戶口相凖印)'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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