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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박재정(朴載鼎)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朴載鼎 康津縣監 <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6)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1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鼎(41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1861년에 康津縣監이 幼學 朴載鼎(41세)에게 발급한 準戶口. *父 學生 千益 祖 學生 碓俊 曾祖 學生 師正 外祖 學生 金龍郁 *주소: 古郡內面 朴東里 *朴載榮이 朴載鼎으로 개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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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8년 장대윤(張大胤)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胤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68년(영조44)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윤(張大胤)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68년(영조44) 강진현에서 무자년(1768)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윤의 준호구이다. 고금진리(古今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윤은 현재 23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은 65세로 생존해 있으며,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모시고 사는 어머니 김씨는 65세이고, 아내인 이천서씨(利川徐氏)는 23세이다. 이어서 이천서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서일태(徐日泰), 조부는 서원적(徐元迪), 증조부는 서계축(徐啓丑), 외조부는 이암극(李諳極)으로 본관은 완산(完山)이다. 함께 살고 있는 아우 장대운(張大雲)은 현재 19세이다. 호주인 장대윤의 이름자 '胤'은 장대윤의 일련의 호구문서로 보아 '允' 자의 오기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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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장계득(張啓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啓得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98년(정조22) 강진현(康津縣)에서 장계득(張戒得)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98년(정조22) 강진현에서 임자년(1798)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계득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계득은 현재 35세인 홀아비[鰥夫]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천익(張天翼),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서공명(徐公明)으로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올해 16세인 딸 아지(阿只)가 있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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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三年 月日康津縣考戊午式成籍戶口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鰥夫張啓得年三十五乙酉本仁同父天翼祖折衝武良曾祖學生弘外祖徐公明本達城女阿只年十六等印行縣監[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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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7년 장지성(張至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至誠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7년(순조27)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 1827년(순조27)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40세이고 직역은 한량(閑良)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동거인은 15세 딸인 아지(阿只)가 있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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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今島鎭里戊子式戶籍單子戶閑良張至城年四十己酉本仁同父學生大運祖折衝將軍武良曾祖學生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率女阿只年十五丁亥八月日行縣監[押][帖][周挾字改印]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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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9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義律 李義律<着名>, 宋昌奎<着名>, 趙永逸<着名>, 李仕律<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9년(고종16) 이의율(李義律)이 답(畓) 6두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879년(고종16) 11월 27일에 이의율이 자신의 논을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매매 대상 토지는 이의율이 직접 매득하여 수년 동안 곡식을 거두어 왔던 곳으로, 돈을 써야할 곳이 생겨서 부득이 매매하게 되었다고 방매사유를 적었다. 토지 소재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수횡평(水橫坪)에 있는 상자(霜字) 논 3두락지와 상평(上坪) 장등구미(長墱九味)에 있는 2두락지, 그리고 같은 곳에 있는 1두락지를 각각 36냥과 36냥, 10냥으로 쳐서 모두 82냥을 받고 거래되었다. 이들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도문서(都文書)에 재록(載錄)되어 있어서 매득인에게 넘겨줄 수 없으므로 신문기(新文記) 1장으로 거래가 이루어졌음을 밝혔다. 송창규(宋昌奎)와 조영일(趙永逸)이 증인으로, 종제(從弟)인 사율(仕律)이 필집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매득인의 이름은 기재되어 있지 않아 자세하지 않으나 문서 좌측에 추가로 쓰여진 신리(新里) 내정동(內井洞) 장문수(張文洙)일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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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五年己卯十一月二十七日 前明文右明文事段矣自起買得畓累收穀是如可當此時以要用所致勢不得已島內西面水橫坪霜字畓三斗落負數卜束廤折價錢文參拾陸兩爲遣上坪長墱九味二斗落負數卜束庫價折錢文參拾陸兩同坪一斗落折價錢文拾兩以上合文捌拾貳兩交易依數捧上爲遣舊文記段都文書載錄故不得出給而以新文記一章右人前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爻象之端以去等以此文記憑考事 【新里內井洞張文洙】畓主李義律[着名]證人宋昌奎[着名]趙永逸[着名]筆執從弟仕律[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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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8년 김의두(金宜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1888 羅州牧使 金宜斗 牧使<押> 周俠無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789 1888년 나주목에서 호주 김의두에게 동년의 호적대장에서 해당 부분을 등서하여 발급한 준호구 1888년(고종 25) 나주목(羅州牧)에서 호주 김의두에게 동년(同年)의 호적대장을 토대로 작성하여 발급해 준 등본 성격의 준호구로 열서(列書) 형식으로 기재되어 있다. 준호구 발급년, 호주 김의두의 주소와 인적사항, 아버지부터 증조까지의 인적사항 부분이 결락되었다. 김의두의 외조(外祖)는 한량 박득대(朴得大)로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김의두의 아내 정씨(丁氏)는 나이 50세 경자생(庚子生)이고 본관은 나주이다. 정씨의 사조는 아버지 한량 맹득(孟得), 할아버지 한량 상문(尙文), 증조(曾祖) 한량 봉업(奉業), 외조 한량 문덕화(文德化)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이외 가족으로 아들 정규(正奎)가 있으며, 나이 24세 을축생(乙丑生)이다. 문서에는 나주목사(羅州牧使)의 서압(署押)과 주협무개인(周俠無改印)이 찍혀있으며, 1885년 호적과 대조 확인을 마쳤다는 '을유호구상준(乙酉戶口相凖)'이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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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8년 백경옥(白慶玉) 호구단자(戶口單子) 고문서-증빙류-호적 사회-인구/호적-호구단자/준호구 嘉慶三年戊午月日 白慶玉 行郡守 嘉慶三年戊午月日 白慶玉 전남 영암군 [署押] 1개, [官印] 1개 6.5*6.5(정방형) 적색 1개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영암 곤이시 수원백씨가 1798년(정조 22) 영암군(靈巖郡) 곤이시면(昆二始面) 장전리(長田里) 1통 3호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백경옥(白慶玉)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 1798년(정조 22)에 영암군(靈巖郡) 곤이시면(昆二始面) 장전리(長田里) 1통 3호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백경옥(白慶玉)이 작성하여 관에 제출한 호구단자이다. 작성 당시 호주(戶主) 백경옥은 55세로, 처(妻) 장씨(張氏)(49)와 함께 살고 있었다. 백경옥의 본관은 수원(水原)이며, 김씨의 본관은 광산(光山), 장씨의 본관은 인동(仁同)이었다. 백경옥의 부(父)는 백창윤(白昌潤), 조(祖)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지낸 백민징(白敏徵)이다. 수원백씨 가문에는 백민징이 가선대부에 임명되면서 받은 교지(敎旨)가 보관되어 있다. 가선대부는 조선시대의 종2품 품계로 초기에는 문무산계(文武散階)로 사용하였으나 후기에는 종친(宗親)과 의빈(儀賓)의 품계로도 사용하였다. 이때 백민징은 82세의 고령이어서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를 받았다. 증조부는 백신헌(白信憲), 외조부는 김수용(金壽龍)으로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호주 백경옥의 처 장씨(張氏)의 부는 천익(天翼), 조부는 한우(漢佑), 증조부는 선장(善長), 외조부는 박사덕(朴師德)으로 밀양(密陽)이 본관이다. 문서의 끝 부분에 이 집안이 거느리고 있는 노비의 명단이 실려 있는데, 16살 먹은 앙역비(仰役婢) 우상(又相)이 한 명 있었으며, 50살 먹은 외거비 신량(信良)이 있었지만 지난 병인년에 도망가고 없었다. 조선시대의 호적에는 이처럼 도망을 간 노비들의 이름도 반드시 기입하였는데, 이는 나중에 있을 지도 모르는 노비의 소유권 분쟁과 관련이 있었다. 호구단자의 맨 끝에는 "乙卯戶口相凖"이라고 적고 있는데, 이는 이때 작성된 호구단자를 을묘년, 즉 1795년의 호적과 대조하였다는 의미이다. 수원백씨 가문에 전하는 백경옥의 호구단자를 보면, 1786년, 1792년, 1798년, 1801년, 1804년, 1807년, 1810년, 1813년 등 8건이 전하고 있다. 그는 영암군 곤이시면 장전리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지 않고 내내 살았는데, 오늘날의 영암군 장전면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백경옥은 처음에는 어머니 김씨(金氏)를 봉양하였으나 김씨가 죽은 뒤에는 부부가 단둘이 살았다. 그와 처 장씨의 거주 형태는 나이 70세가 되는 1813년, 즉 이 호구단자가 작성되는 시점에 와서 아들 백사형(白思亨)이 며느리와 함께 들어와 2대가 거주하는 형태로 바뀐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816년에는 그 아들 백사형이 독립된 호주로서 강진(康津)에서 호구단자를 작성하고 있으며, 더 이상 백경옥의 호구단자는 작성되지 않고 있다. 아마 그 사이 사망했거나 호구단자가 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수원백씨 가문의 호구단자는 백경옥과 아들 백사형의 것말고도 백경옥의 조부 백민징(白敏徵), 부 백창윤(白昌潤)의 것들도 전하고 있어서 백민징 – 백창윤 – 백경옥 – 백사형 등 4대에 이르는 가계도를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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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三年戊午月日靈巖郡昆二始面長田里戶籍單子第一統統首奴乭金第三戶幼學白慶玉年五十五甲子 本水原父學生 昌潤祖嘉善大夫僉知中樞府事 敏徵曾祖學生 信憲外祖學生金壽龍本光山妻張氏年四十九庚午 籍仁同父學生 天翼祖學生 漢佑曾祖學生 善長外祖學生朴師德本密陽賤口仰役婢又相年十六癸卯外居婢信良年五十丙寅逃亡乙卯戶口相準行郡守[署押] [周挾 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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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년 자근(自近) 간찰(簡札) 2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自近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685 갑자년 4월 14일에 모평에 거주하는 인제 자근이 옥산의 이 생원에게 자신의 과부 며느리가 며칠 사이에 잡증이 극심해졌다는 안부와 벼 20말을 사람과 소를 빌려서 보내니 확인하고 받아달라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 갑자년 4월 14일에 모평(茅坪)에 거주하는 인제(姻弟) 자근이 옥산(玉山)의 이 생원(李生員)에게 과부 며느리가 며칠 사이에 잡증(雜症)이 극심해졌다는 안부와 벼 20말을 사람과 소를 빌려서 보내니 확인하고 받아달라는 내용 등을 전한 간찰이다. 지난번에 이별한 일은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는다는 내용, 요즈음 상대방과 여러 사람들의 안부는 모두 평안한지 묻고 매우 위로되고 그립다는 내용, 자신은 이전과 같이 보내고 있으며, 과부 며느리의 병증은 온갖 약으로 치료하고 있으나 며칠 사이에 잡증이 극심해졌으니 이 무슨 정황인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심신이 불안하다는 내용, 벼 20말을 사람과 소를 빌려서 보내니 확인하고 받아달라는 내용 등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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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2년 이보승(李普升)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李普升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대전회통(大典會通)』 柳池榮, 『朝鮮時代 任命文書 硏究』, 韓國學中央硏究院 博士學位論文, 2014 HIKS_OD_F4006-01-230144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보승을 가선대부 호조참판에 추증한 추증교지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보승(李普升)을 가선대부(嘉善大夫) 호조참판(戶曺參判)에 추증(追贈)하면서 발급한 추증교지이다. 가선대부는 종2품 문무관의 품계이다. 호조참판은 종2품 관직으로 아경(亞卿)이라고도 하며, 1894년의 갑오개혁 이후에는 협판(協辦, 勅任官)이라고 하였다. 발급 연호 위에 어보(御寶)인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있으나 연호의 좌방(左傍)에 추증사유를 방서(傍書)하는 추증식(追贈式)의 형식과는 달리 추증의 사유가 생략되어 있다. 이보승은 이규행(李圭行)의 아버지로, 이규행이 통정대부로 임명됨에 따라 추증된 것으로 보인다. 법전에 따르면 3대를 추증할 때 그의 부모는 그와 같은 품계를 추증하고, 그의 조부모와 증조모는 한 등급 낮은 품계를 추증하되 원종공신의 아버지는 생전에 지낸 직품이 있으면 한 등급 더하여 추증하였다. 그러나 이규행의 아버지인 이보승이 이규행보다 한 등급 위인 가선대부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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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년 권태순(權泰淳)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權泰淳 鄭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축년 11월 9일에 권태순이 신랑측인 정생원에게 보낸 혼서 을축년 11월 9일에 신부측인 권태순이 신랑측인 정생원에게 보낸 혼인 관련 간찰이다. 사주단자를 잘 받았고, 이에 따라 연길(涓吉)을 보내니 신랑의 의제(衣製)를 보내달라는 내용이다. 의제는 신랑의 의복 길이와 품의 치수를 신부측에 알리는 것이다. 신부집에서는 사주단자를 받으면, 신랑 신부의 운세를 가늠해보고 혼례날짜를 택하여 신랑측에 통지하는데, 이것을 연길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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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년 박인곤(朴璘坤) 혼서(婚書) 고문서-서간통고류-혼서 朴璘坤 郭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736 병인년 신랑측 박인곤이 신부측 곽생원에게 보낸 혼례 관련 간찰 병인년 2월 15일에 신랑측인 박인곤(朴璘坤)이 신부측인 곽생원(郭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상대측의 요청에 따라 조카의 의제(衣製)를 보낸다는 내용이다. 전통혼례는 서로 결혼 의사를 타진하는 의혼(議婚), 혼인 날짜를 정하는 납채(納采), 예물을 보내는 납폐(納幣), 혼례식을 올리는 친영(親迎)의 네 가지 의례로 이루어진다. 연길(涓吉)은 납채에 해당되는데, 납채는 혼약이 이루어져 사주(四柱)를 보내고 연길을 청하는 절차이다. 신부집에서 허혼편지나 전갈이 오면 신랑집에서는 신랑의 사주와 납채문(정식으로 결혼을 신청하는 서장)을 써서 홍색 보자기에 싸 보낸다. 신부집에서는 사주를 받으면, 신랑 신부의 운세를 가늠해보고 혼례날짜를 택하여 신랑측에 통지하는데 이것을 연길이라 한다. 의제(衣製)는 신랑의 의복 길이와 품의 치수를 신부측에 알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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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장계득(張啓得)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啓得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9년(정조13) 강진현(康津縣)에서 장계득(張啓得)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9년(정조13) 강진현에서 기유년(1789)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계득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계득은 직역이 대변군관(待變軍官)인 장태익(張泰翼)의 사망으로 인하여 아들로서 대신 호주를 이었는데, 현재 25세인 홀아비[鰥夫]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태익,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서공명(徐公明)이다. 어머니인 김씨도 사망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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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五十四年 月日康津縣考己酉式成籍戶口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待變軍官張泰翼故代子鰥夫啓得年二十五乙酉本仁同父泰翼祖折衝將軍武良曾祖學生弘外祖徐公明母金姓故等相準印行縣監[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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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년 장재풍(張再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再豊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9년(순조19)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재풍(張再豊)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9년(순조19) 강진현에서 기묘년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재풍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재풍은 나이 38세로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앞의 준호구들에 나온 '장재풍(張載豊)'과 동일인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한량(閑良)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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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二十四年 月日康津縣考己卯式成籍戶口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鰥夫張再豊年三十八壬寅本仁同父閑良大運祖折衝武良曾祖學生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等印行縣監[押][帖][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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