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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회계기(會計記) 고문서-치부기록류-회계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유년부터 대략 7년여에 걸친 회계 기록 을유년부터 대략 7년여에 걸친 지출 기록으로 보이고, 한 개인 기록이기보다는 문중이나 단체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출한 금액과 용도 및 날짜 등을 기록하였으나 전체적으로 체계를 갖추어 기록하지는 않았다. 간평(看坪) 등을 위한 노자(路子)나 술값이나 담배값 등의 내용이 있으나 수입과 지출도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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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二十四年 月 日康津縣考己卯成籍戶口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業武張大彦年十八辛酉本仁同父武良祖學生弘曾祖學生德龍外祖武學金愛賢本金海妻崔姓年二十己未籍密陽父 祖 曾祖 外祖 等丙子戶口相准印行縣監[押][周挾無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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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6년 장대운(張大運)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運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6년(정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운(張大運)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6년(정조10) 강진현에서 병오년(1786)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운은 현재 37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아내인 나주추씨(羅州秋氏)는 37세이다. 이어서 나주추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추상련(秋尙連), 조부는 추명금(秋命金), 증조부는 추송이(金松伊), 외조부는 본관이 평산(平山)인 조봉이(趙奉伊)이다. 그리고 아들 장계철(張啓哲)은 13세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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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五十一年 月日康津縣考丙午式成籍戶口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待變軍官張大運年三十七庚午本仁同父折衝武良祖學生弘曾祖學生德龍外祖學生金愛賢本金海妻秋姓年三十七庚午本羅州父嘉善大夫尙連祖命金曾祖松伊外祖趙奉本平山率子啓哲年十三甲午等前準印行縣監[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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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3년 장철봉(張喆奉)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喆奉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3년(순조13)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철봉(張喆奉)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3년(순조13) 강진현에서 계유년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철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철봉은 현재 40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모시고 있는 아버지는 '봉부(奉父)'로 표시한 장대운(張大運)으로 64세이고,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모시고 있는 어머니 추씨(秋氏)는 64세이다. 장철봉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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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十八年 月日康津縣考癸酉式成籍戶口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鰥夫張喆奉年四十甲午本仁同奉父閑良大運年六十四庚午祖折衝武良曾祖學生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奉母秋氏年六十四庚午本羅州等印行縣監[押][帖][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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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년 장용(張龍)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龍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0년(헌종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용(張龍)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40년(헌종6) 강진현에서 경자 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용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용은 현재 61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용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고, 데리고 살던 누이는 출가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 문서의 마지막 행 '기해년(1839) 8월'은 실제 이 문서가 작성되어 관에 제출된 시기이고 등재된 식년은 이듬해이기 때문에 작성연대는 기해년의 다음 해인 경자년(1840)이다. 그러므로 1행의 도광(道光) 18년은 도광 20년의 오기로 봐야 한다. 호구단자의 열서(列書) 방식으로 작성된 문서이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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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섭(李峯燮)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李峯燮 盧軫永 □…□ 2顆(타원형)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이봉섭(李峯燮)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대지(垈地) 건에 대해 600원을 빌려주든가 매매를 해달라는 내용의 간찰 이봉섭(李峯燮)이 노진영(盧軫永)에게 보낸 국한문혼용 간찰이다. 대지(垈地) 건에 대해 여러 가지 방면으로 주선을 하되 매사가 생각대로 되지 않아 부득이한 형편이기 때문에 형께서 600원 가량만 빌려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600원에 대한 이자는 형과 자신 사이에 말할 수 없지만 매년 토세(土稅)와 같이 4석(石) 씩 해주겠다고 하였고, 그렇지 않으면 850원 가량이면 매매를 할 것이니 바로 매매를 하든지 해서 이 시기를 잃지 않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둘 중에 어느 쪽이라도 해주어서 일이 틀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형에게 달렸으니 빨리 회답하여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고, 남은 말은 다음 만났을 때에 하자고 하였다. 일전에 6두락 논을 그만두라고 한 것은 중간에 선 사람만 고생시킬 것 같아서 그만두라고 한 것이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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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李生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493 정사년에 김극영(金極永)이 이생원(李生員)에게 고모부의 종상(終祥)이 다가오는데 부모님의 건강과 아내의 병으로 찾아뵙지 못하는 심정을 전하는 내용의 간찰 정사년 2월 27일에 김극영(金極永)이 이생원(李生員)에게 보낸 간찰이다. 해를 넘기도록 소식이 막혀 그리웠는데 편안히 잘 계신지, 아드님은 어른 잘 모시면서 공부 열심히 하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부모님의 기후가 오래도록 좋지 못한데 아내의 병이 달포 전부터 무어라 하기 어려운 증상을 얻어 여러 차례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지금은 다행히 조금 나았지만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아 답답하다는 심정을 전하였다. 고모부의 종상(終祥)이 다가왔는데 애통한 심정을 어찌 억누르고 계신지 물으며 자신은 찾아뵙고 위로해드리고 싶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어 매우 슬프고 죄송하다고 하였다. 원장(院丈)에 관한 일은 이 승지(李承旨)가 상경해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선은 탐지만 하고 있고, 백씨(伯氏) 어른에게는 바빠서 따로 서신을 쓰지 못하니 이 마음을 전해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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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년 김극영(金極永) 간찰(簡札) 1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極永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493 무오년에 김극영(金極永)이 상대방에게 자신의 조카 혼사 주선을 부탁하며 보낸 간찰 무오년 2월 12일에 김극영(金極永)이 보낸 간찰이다. 소식이 뜸하다가 성호(星皓)가 찾아와서 매우 기뻤다고 전하면서 근래 건강은 좋으신지, 집안 식구들 모두 편안히 지내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은 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고 아내의 병도 열흘 가까이 낫지 않고 있어 매우 마음 졸이며 지내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였다. 백씨(伯氏) 어른은 대구로 행차를 했다고 하는데 돌아오셨는지 건강에 손상은 없는지 물었다. 그리고 모평(茅坪)의 신우(辛友) 집안에 규수가 있는데 바로 형의 생질녀라고 들었다면서 자신의 종질(從姪)이 아직 혼처를 정하지 않았으므로 형이 적극 주선하여 성사시키는 것이 어떻겠냐며 의향을 물었다. 나머지 이야기는 지난번 방문했던 성호 조카에게 이미 전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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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김오(金{土+奥}) 간찰(簡札)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金{土+奥} 査頓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진년에 김오(金{土+奥})가 옥계(玉溪)의 사돈댁에 안부를 묻고 자신의 소식도 전하면서 〈속대학혹문(續大學或問)〉과 《관서문답록(關西問答錄)》을 찾아서 보내줄 것을 청하는 내용의 간찰 임진년 9월 11일에 김오(金{土+奥})가 옥계(玉溪)의 사돈댁에 보낸 간찰이다. 인편과 서신이 계속 이어지다가 피차 서신으로 안부를 묻지 않으니 어떻게 서로 아끼는 사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인사하고, 종질(從姪)을 통해 생활이 편안하고 아드님과 종질녀도 어른 잘 모시고 지내는 것을 알게 되어 매우 위로가 된다고 하였다. 자신은 노쇠함과 질병이 갈수록 심해져서 지탱할 수가 없으니 어찌하겠느냐고 한탄하였다. 봄에 여러 날 단란하게 대화를 나누었던 일은 우리들 말년에 쉽게 가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어서 잊을 수가 없다고 회상하였다. 어떻게 하면 지난날 모임을 이어서 다시 며칠간의 편안한 대화 자리를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쓸쓸함이 밀려온다고 하였다. 그리고 〈속대학혹문(續大學或問)〉과 《관서문답록(關西問答錄)》을 찾은 뒤에 인편을 동해 보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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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五十四年 月日康津縣考己酉式成籍戶口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待變軍官張大銀年三十八壬申本仁同父折衝將軍武良祖學生弘曾祖學生德龍外祖學生金愛賢本金海妻韓姓年三十四丁丑本淸州父德永祖信載曾祖得戒外祖金尙元本金海率女今相年六甲辰等相准印行縣監[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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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장철봉(張哲奉)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哲奉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6년(순조1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철봉(張哲奉)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6년(순조16) 강진현에서 병자년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철봉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철봉은 현재 43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모시고 있는 아버지는 '봉부(奉父)'로 표시한 장대운(張大運)으로 67세이고,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모시고 있는 어머니 추씨(秋氏)는 67세이고, 딸 아지(阿只)는 10세이다. 장철봉이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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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二十一年 月日康津縣考丙子式成籍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鰥夫張哲奉年四十三甲午本仁同父閑良大運年六十七庚午祖折衝武良曾祖學生弘外祖嘉善大夫尙建本羅州奉母秋姓年六十七庚午率女阿只年十等印行縣監[押][帖][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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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년 장지성(張至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至誠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9년(헌종15)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 1849년(헌종15)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61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장지성은 홀아비이고, 동거인은 23세 딸이 있다. 이 문서의 마지막 행 '무신년(1848) 9월'은 실제 이 문서가 작성되어 관에 제출된 시기이고 등재된 식년은 이듬해이기 때문에 작성연대는 1849년이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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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今鎭里己酉式戶籍單子戶鰥夫張至誠年六十一己酉本仁同父學生 大運祖折衝 武良曾祖學生 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率女年二十三出嫁戊申九月日[帖][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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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羅南道 莞島郡薪智面大坪里第 統第 戶戶籍表 第戶主 黃順周 年三十八 本長水 職業農 前居父 生父敬顯 祖貴善 曾祖聖達 外祖崔貴福同居親屬 妻張氏本仁同長子石圭年十三次子石允年九子石君年五寄口 男 女雇傭 男 女現存人口 男四口 女一口 共合五口家宅 已有 瓦無 草家二間借有 無光武十一年三月 日 郡守金商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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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4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明化 張明化<着名>, 金聖始<着名>, 任在珍<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 뒤 강변에 있는 6두락지의 논을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의 논을 누군가에게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이 논은 자신이 일궈서 수년간 경작해오던 논으로 금년 봄에 쓸 곳이 생겨 부득이 방매하게 되었다고 매매사유를 적었다. 토지 소재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신리(新里) 뒤 강변에 있으며, 자호(字號)는 상자(霜字)이고 면적은 6두락지이다. 매매가는 전문(錢文) 180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따로 양도하지 않았고 신문기(新文記) 1장 만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 김성시(金聖始)가 증인으로, 임재진(任在珍)이 필집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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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四十五年 月日康津縣考庚子式成籍戶口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待變軍官張大運年三十一庚午本仁同父折衝武良祖學生弘曾祖學生德龍外祖學生金愛賢本金海妻秋姓年三十一庚午本羅州父嘉善大夫尙連祖命金曾祖松伊外祖趙奉伊本平山等前准印行縣監[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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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기록류

乙酉十月初六日 【五戔七分省基路子乙酉】二兩五戔長興多有給十一兩五戔降惡給同年十二月初八日二戔一分同錢事下記八兩俊禮平去同年十二月初十日 【明和出條二兩三戔六分】一戔四分治明宅 【永壽出給條一兩八戔二分】三戔八分汝成宅 【成旭出給條七兩】八戔多有給一戔白京宅二戔三分牟受標事路子丙戌三月二戔五分牟推尋事路子丙戌六月十一兩八戔牟二石價恨時價每石五兩四戔式終時價五兩九戔式二兩古湖鎭呈長事一兩稧錢事本鎭呈長二兩永光宗人給二兩五分其時下記五兩七戔租代錢戊子三月初七日五戔首僧路子八戔二分兩人食酒草價四兩三分以上三條擔當錢 子一氏一兩上戊子三月初十日人永壽一兩九戔九分上戊子三月二十六日三戔加利路子■■丁亥十二月三戔加利路子■■庚寅十二月 五戔辛卯省基路子二兩七戔加利及賣畓事壬辰二月五戔畓價事來往人路子甲午八月鹽一盆用價二兩四戔各處擔當錢記子一氏三兩丙戌二月又一兩丙戌二月五兩九戔牟一石價又四兩丁亥正月又一兩戊子三月二兩三戔丁亥十二月永壽一兩九戔九分戊子四月十三日四戔五分用西宅酒價丙二月九戔三分用西宅酒價成壽二戔二分乙十二月又七戔丁十二月三戔加利路子丙又五戔看坪路子戊九月一兩四分古湖鎭五戔看坪路子庚辛二兩省基路子庚寅成旭三兩乙十二月又四兩丙二月又五兩丙二月又一兩同又五戔看坪路子辛卯十二月會彔畓放買記六十四兩石橋頭畓四斗落價十兩同畓禾租二石價四十兩長峙同畓二斗落價三十兩松岩于與東村合三斗落價五兩二戔五分同畓禾租一石一斗價三十八兩曲加來山直合一百四十九兩二戔五分內畓價除百十一兩二戔五分 成壽次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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