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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2년 대동면(大洞面) 면주인(面主人) 패자(牌子) 고문서-명문문기류-배지 咸平縣監 大洞面 面主人 1顆(6.7×6.8)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816_001 1852년 함평 현감이 대동면 면주인에게 김상지를 붙잡아 올 것을 지시하면서 발급한 패자 1852년 3월 함평 현감이 대동면 면주인에게 발급한 패자이다. 관에서 발급했기 때문에 관패(官牌)라고도 한다. 평릉면에 사는 이계화(李啓華)가 자신의 조모 산소에 투장(偸葬)한 김상지(金尙之)를 상대로 산송(山訟)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함평 현감이 대동면 면주인에게 발급한 패자이다. 면주인으로 하여금 해당 면에 거주하는 김상지를 빨리 붙잡아올 것을 지시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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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洞元主人平陵李啓華呈狀據偸葬塚掘移次本面渴龜池居金尙之星火捉來向事壬子三月初三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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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俊孝 趙俊孝<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2년(고종19) 2월 13일에 답주 유학 조준효가 순천 황전면 산령리의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82년(고종19) 2월 13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조준효(趙俊孝)가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조준효는 자신이 물려받은 논을 여러 해 지어 먹다가 쓸 곳이 있어서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順天) 황전면(黃田面) 산령(山嶺) 마을의 앞쪽 중현평(中峴坪)에 있는 종자(從字) 정답(丁畓) 1마지기(결부수: 3부3속)이다. 거래가격은 전문(錢文) 40냥이며,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도 함께 준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조준효 1인으로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산령리는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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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八年辛巳二月十三日 前明文右明文事 由來畓 累年耕食如多可 要用所致 府地順天黃田面山嶺前中峴坪伏在 從字丁帳㐣 三卜三束負數一斗落只價折錢文四十兩 依數捧上爲遣 旧文倂以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相左則 以此文記相考者自笔 幼學 趙浚孝[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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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이재빈(李在彬)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永文 李在彬 金永文<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6년(고종13) 12월 3일에 답주 김영문이 이재빈에게 후증도 북면 소사동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76년(고종13) 12월 3일에 답주(畓主) 김영문(金永文)이 이재빈(李在彬)에게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영문은 자신이 물려받아 경작하다가 흉년을 만나 연명하고자 형편상 부득이 논을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영광군(靈光郡) 후증도(後甑島) 북면(北面) 소사동(小寺洞)에 있는 종자(種子) 답(畓) 5배미를 합친 1마지기이다. 거래 가격은 전문(錢文) 6냥이다.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에 대한 언급은 추기에서 하였는데 잃어버렸기 때문에 내어 줄 수 없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김영문 1인으로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후증도는 현재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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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在浩 鄭在浩<着名>, 趙潤成<着名>, 梁致敎<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1년(고종18) 11월 4일에 전답주 유학 정재호가 순천부 황전면 산령리의 전답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81년(고종18) 11월 4일에 전답주(田畓主) 유학(幼學) 정재호(鄭在浩)가 전답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정재호는 자신이 매입하여 여러 해 갈아 먹다가 형편상 부득이 쓸 곳이 있어서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산령(山令)의 오른쪽인 금암평(錦岩坪)에 있는 단경답(段耕畓) 7승락지와 전(田) 상하평(上下坪) 태종(太種) 1두 5승락지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15냥을 받고 팔았으며 신문기와 구문기 2장으로 거래한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전답주인 유학 정재호와 증인(證人) 조윤성(趙潤成)과 증필(證筆: 증인이면서 문서작성자) 양치교(梁致敎) 총3인이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산령리는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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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貳年丙子十二月初三日李左彬前明文右明文事段 由來耕食是如可 當此歉荒捄命所致勢不得已 郡地後曾島北面小寺洞伏在種字畓伍夜味合壹斗落所耕庫叱 價折錢文陸兩 依數捧上是遣右人前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相左之端 則以此文記憑處事亦在此亦中 旧文記段迺失 故不得出給印自筆畓主 金永文[着名]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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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시장문기(柴場文記) 고문서-명문문기류-시장문기 朱貴奉 朱貴奉<着名>, 張得位<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9년(헌종5) 12월 30일에 시장주(柴場主) 주귀봉(朱貴奉)이 영광군 후증도 외장성동에 있는 시장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시장매매명문 1839년(헌종5) 12월 30일에 시장주(柴場主) 주귀봉(朱貴奉)이 후증도에 있는 시장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시장매매명문이다. 주귀봉은 자신이 물려받아 지켜오던 시장을 쓸데가 있어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영광군(靈光郡) 후증도(後甑島) 외장성동(外長城洞) 동쪽 길가에 있는 3홉(合)의 시장(柴場)이다. 이곳을 가격 1냥 5전을 받고 팔았다.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에 대한 언급이 없다. 문서 발급에 참여한 사람은 시장주 주귀봉과 증인 장득위(張得位)이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영광군 염소면 후증도 장성동은 현재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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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十玖年己亥十二月三十日 前明文右明文事段 由來守護是如可 以要用所致 郡地後甑島外長城洞東过路上伏在參合柴場 價折壹兩伍戔依數捧上爲遣 右人前 永永放賣爲去去乎 日後雜談是去等 以此憑考事柴場主 朱貴奉[着名]證人 張得位[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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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緖七年辛巳十一月初四日 前明文右明文事段 自起買得畓 累年耕食是多可 勢不得已 要用所致府地黃田面霅峙山令右便錦岩坪段 耕畓七升落■■(價折)〔田上下坪〕 太種壹斗五升落 價折錢文什伍兩依數捧上爲遣 並新旧文二丈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雜談則 以此文記 告官卞政事田畓主 幼學 鄭在浩[着名]證人 趙潤成[着名]登笔 梁致敎[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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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이군거(李君擧) 산지매매명문(山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汝文 李君擧 朴汝文<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3년(고종10) 3월 29일에 표종 박여문이 내종 이군거에게 영광군 후증도 오항 뒤쪽 산지를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산지매매명문 1873년(고종10) 3월 29일에 표종(表從) 박여문(朴汝文)이 내종(內從) 이군거(李君擧)에게 산지(山地)를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산지매매명문이다. 박여문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산지를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산지는 영광군(靈光郡) 후증도(後甑島) 오항(鰲項)의 뒤쪽 대로(大路)의 위쪽에 있는 금양(禁養)산지라고 하였다. 방매 가격은 전문(錢文) 3냥5전이다.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에 대한 언급이 없고 필집과 증인이 별도로 없는 문서 첫줄에는 명문(明文)이라고 쓰고 마지막 줄에는 표주(標主)라고 쓴 매매문서이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영광군 염소면 후증도는 현재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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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治十一年癸酉三月卄九日 內從君擧前明文右明文事段 捄命所關 郡地後甑島鰲項後大路上禁養乙 錢文參兩伍戔捧上是遣 右處永永出給 日後以此憑考事標主 表從 朴汝文[着名]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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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이백언(李白彦) 시장문기(柴場文記) 1 고문서-명문문기류-시장문기 曺京彬 李白彦 炳業<指章> 曺京彬信(1.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09_001 1909년(순종3) 9월 9일에 시장주 조경빈(曺京彬)이 이백언(李白彦)에게 지도군 사옥면 후증도의 시장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시장매매명문 1909년(순종3) 9월 9일에 시장주(柴場主) 조경빈(曺京彬)이 이백언(李白彦)에게 후증도의 시장을 방매하면서 시장매매명문이다. 조경빈은 자신이 물려받아 풀을 베던 곳을 쓸데가 있어서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시장은 지도군(智島郡) 사옥면(沙玉面) 후증도(後曾島) 외장성동(外長城洞)에 있는 시장 내 이백언 조부모 묘지 금양(禁養) 한계에서 위로 10파(把), 좌·우·앞쪽으로 각 5파씩 되는 땅이다. 파(把)는 주먹 쥔 손을 의미하는데 얼마 만큼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곳을 전문(錢文) 12냥을 받고 팔았으며, 신문기(新文記: 본 매매명문) 1장으로 거래한다고 하였다.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도문기(都文記: 재산 전체를 기록한 분재기) 안에 적혀 있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시장주 조경빈과 필(筆: 문서작성) 차자(次子) 조병업(曺炳業)이다. 조경빈은 원형 주인(朱印)을 찍었고 조병업은 지장(指章)을 찍었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지도군 사옥면 후증도 장성동은 현재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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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이정간(李挺榦) 고신 및 소첩(小帖) 고문서-교령류-고신 純祖 李挺榦 施命之寶(9.0×9.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1년에 이정간에게 절충장군(정3품 당상)의 품계를 내리는 고신과 소첩이다. 1801년(순조 1)에 이정간(李挺榦)에게 절충장군(折衝將軍)의 품계를 내리는 고신(告身)이다. 이를 발급한 내역을 명시한 소첩(小帖)이 가철되어 있다. 절충장군은 서반 품계로 정3품 당상에 해당한다. 고신에는 발급한 연도와 일자가 적혀 있지 않다. 소첩은 수원부유수(水原府留守)가 1801년 7월에 이정간에게 발급하였다. 수원부의 공역에 힘을 들인 사람에게 발급한다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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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李挺幹爲折衝將軍者嘉慶 年 月 日加事承傳(小帖)行水原府留守爲成給事 本府役事效勞人 折衝加資小帖成給向事 合下仰照驗施行 須至帖者右下幼學李挺幹 準此嘉慶六年七月 日成給[帖] 行留守 [署押][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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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최봉현(崔鳳現) 증조고(曾祖考) 최언강(崔彦綱)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哲宗 崔彦綱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224_001 1861년(철종12) 6월에 최언강을 증손자 최봉현의 현달로 인하여 통훈대부 장악원정으로 추증한 교지 1861년(철종12) 6월에 최봉현의 증조고(曾祖考)인 최언강(崔彦綱)을 통훈대부(通訓大夫) 장악원정(掌樂院正)으로 추증한 교지이다. 추증원인은 발급일자의 왼쪽 옆에 작은 글자로 기록되어 있는데 '숭정대부동지중추부사인 최봉현(崔鳳現)의 증조고(曾祖考)이므로 법전에 따라 추증(追贈)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경국대전?에 '종친 및 문관․무관으로서 실직 2품 이상인 자는 그의 부조(父祖) 3대를 추증한다'라는 원칙에 따라 최봉현이 중추부에 소속된 종2품 관직인 동지중추부사를 지냈기 때문에 그의 증조고가 추증된 것이다. 통훈대부는 조선시대 문관 정3품 당하의 관계이다. 장악원정은 장악원에 소속된 정3품 벼슬이다. 장악원은 주로 국가와 왕실의 공식적인 행사에서 악(樂), 가(歌), 무(舞)를 담당한 관사로 당상관 2인이 제조(提調)를 맡고 정3품 정(正) 1명, 종4품의 첨정(僉正) 1명, 종6품의 주부(主簿) 1명, 종7품의 직장(直長) 1명이 관리로 소속되어 있었다. 증조부모는 증손자의 관직에서 두 단계 내려서 추증하였으므로 정3품 당하관의 품계와 관직이 수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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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通德郞崔彦綱贈通訓大夫掌樂院正者咸豊十一年六月 日崇政大夫同知中樞府事崔鳳現祖考依法典追贈[施命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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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7년 배유화(裵幼華)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顯宗 裵幼華 施命之寶(9.0×9.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667년에 김천도 찰방 배유화에게 조봉대부(종4품)의 품계를 제수하는 고신 1667년(현종 8) 9월 11일에 김천도(金泉道) 찰방(察訪)인 배유화(裵幼華)에게 조봉대부(朝奉大夫)의 품계를 제수하는 고신(告身)이다. 김천도는 경상도 김산(金山)의 김천역(金泉驛)을 중심으로 역도(驛道)로서 찰방은 종6품직이다. 조봉대부는 종4품 하계에 해당하는 품계명이다. 발급일자 좌측에 '丁九別加'라고 작은 글씨로 쓰여 있다. 이는 정미년(1667) 9월에 특별히 가자(加資)받았다는 의미이다. 배유화(1611~1673)는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호 팔사(八斯)이다. 시와 그림에 조예가 깊었고, 저서로는 『팔사유고(八斯遺稿)』가 있다.1)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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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旨裵幼華爲朝奉大夫行金泉道察訪者康熙六年九月十一日丁九別加[施命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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勅命原陵參奉從仕郞叙判任官八等者光武六年八月日 [宮內府印]議政府宮內府大臣贊政臨時署理大臣成歧運 [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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