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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령류

1892년 이규행(李圭行)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李圭行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44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규행을 통정대부 돈녕부 도정에 임명한 고신교지(告身敎旨) 1892년(고종 29) 10월에 임금의 명에 따라 이규행(李圭行)을 통정대부(通政大夫) 돈녕부 도정(敦寧府都正)에 임명한 고신이다. 통정대부의 품계는 정3품 당상관이며, 돈녕부 도정은 정3품 당상관직이다. 발급 연호 위에 어보(御寶)인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있다. 이 문서는 4품 이상의 문무 관원에게 내리는 고신식(告身式)의 형식과 달리 임명자의 이름이 관직명보다 아래에 적혀 있다. 소장자료 '1925년 이진녕(李震寧) 등 통문(通文)'과 1892년 이보승(李普升) 추증교지(追贈敎旨) 등을 살펴보면 이규행의 본관은 경주로 전라남도 강진군(康津郡)에서 살았으며, 야은(野隱) 이영우(李永祐)의 11대손으로 이인열(李仁㤠)의 증손, 이시준(李時濬)의 손자, 이보승(李普升)의 아들이다. 돈녕부는 정일품아문(正一品衙門)으로 왕의 친족과 외척의 관부이며, 돈녕인(敦寧人, 왕실의 친척으로 宗姓 9촌·異姓 6촌, 왕비의 同姓 8촌·이성 5촌, 세자빈의 동성 6촌·이성 3촌) 사이에 친선을 도모하기 위한 사무를 담당하였다. 1414년(태종 14)에 창설하였는데 1894년(고종 31)에 종정부(宗正府)로 병합되었으며, 궁궐 밖 중부 정선방(貞善坊, 현 종로구 익선동)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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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차계장류

1897년 천일관(千鎰貫) 등 상서(上書) 2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千鎰貫 城主 城主<着名> □…□ 3顆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OD_F4006-01-230179 1897년 12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정언 천광록·선전관 천일표가 남원군수에게 선조 화산군 묘소에 세울 신도비를 운반할 때 묘소 부근에 있는 방에 전령을 내려 부역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 1897년(광무 1) 12월에 남원군 시산방에 사는 천일관·정언(正言) 천광록(千光祿, 1851∼1931)·선전관(宣傳官) 천일표(千鎰杓)가 남원 군수(南源郡守)에게 선조 화산군(花山君)의 묘소에 세울 신도비(神道碑)를 운반할 때 묘소 부근에 있는 방(坊)에 전령(傳令)을 내려 부역(赴役)하게 해줄 것을 청원한 상서이다. 천일관 등의 선조 화산군의 분묘(墳墓)가 남원군 금안방(金岸坊) 환봉(環峯) 위에 있는데 오랫동안 의물(儀物)을 갖추지 못하다가 지금 겨우 신도비를 창건하기 위해 장수(長水) 등지에서 비석을 만들어 마련하였다. 하지만 자금은 적고 공역은 상당하여 많은 사람의 힘이 아니면 필시 신도비를 운반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분묘 부근의 상·하반암방(上下番[磻]巖坊), 갈치방(葛[乫]峙坊), 왕지전방(王之田坊), 이언방(伊彦坊), 금안방(金岸坊), 기지방(機池坊)에 전령을 내려 비석을 운반하는 데에 부역하게 해줄 것을 청원하였다. 이 상서에 대해 남원 군수는 12월 7일에 각 방(坊) 사수(社首)들에게 '가까운 방(坊)의 경계 지역에서부터 즉시 신도비 운반을 완료하여 탈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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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5년 장대언(張大彦)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彦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65년(영조41)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언(張大彦)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65년(영조41) 강진현에서 을유년(1765)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언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언은 현재 24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김애현(金愛賢)이고 본관은 김해이다. 처 최씨(崔氏)는 26세이고 본관은 초계(草溪)이다. 최씨의 사조는 아버지는 최경천(崔擎天), 조부는 최효남(崔孝男), 증조는 최학수(崔鶴壽), 외조부는 김수성(金守星)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무개인(周挾無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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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三十年月日康津縣考乙酉成籍戶口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待變軍官張大彦年二十四壬戌本仁同父折衝武良祖學生弘曾祖學生德龍外祖金愛賢本金海妻崔姓年二十六己未籍草溪父擎天祖孝男曾祖鶴壽外祖金守星本金海等前准印行縣監[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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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장대운(張大運)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大運 康津縣監<着押>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9년(정조13)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대운(張大運)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789년(정조13) 강진현에서 기유년(1789)의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대운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대운은 현재 42세이고 직역은 대변군관(待變軍官)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절충장군(折衝將軍) 장무량(張武良), 조부는 장홍(張弘), 증조부는 장덕룡(張德龍), 외조부는 본관이 김해인 김애현(金愛賢)이다. 아내인 나주추씨(羅州秋氏)는 40세로 기재되어 있으나 관련문서로 보아 42세의 오기이다. 이어서 나주추씨의 사조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추상련(秋尙連), 조부는 추명금(秋命金), 증조부는 추송이(秋松伊), 외조부는 본관이 평산(平山)인 조봉이(趙奉伊)이다. 그리고 아들 장매철(張賣哲)은 16세이다. 장매철은 관련 호구문서로 보아 장계철(張啓哲)의 오기로 추정된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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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五十四年 月日康津縣考己酉式成籍戶口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待變軍官張大運年四十二庚午本仁東父折衝武良祖學生弘曾祖學生德龍外祖學生金愛善本金海妻秋姓年四十本羅州父嘉善大夫尙建祖明金曾祖頌伊外祖趙奉伊本平山率子賣哲年十六甲午等相準印行縣監[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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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장득철(張得喆)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得喆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6년(순조16) 강진현(康津縣)에서 장득철(張得喆)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6년(순조16) 강진현에서 병자 식년의 호적대장을 확인하여 발급한 장득철의 준호구이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호주 장득철은 현재 57세의 홀아비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아버지는 장대언(張大彦)은 76세로 사망하였으며, 조부는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최경천(崔敬天)으로 본관은 탐진(耽津)이다. 데리고 사는 식구는 15세 딸 아지(阿只)가 있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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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4년 장한종(張漢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允宗 張漢宗 趙允宗<着名>, 黃貴福<着名>, 宋太享<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64년(고종1) 조윤종(趙允宗)과 황귀복(黃貴福)이 장한종(張漢宗)에게 언답(堰畓) 3두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 명문 1864년(고종1) 8월에 조윤종과 한귀복이 장한종에게 자신의 언답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토지 매매명문이다. 이 언답은 본래 선대로부터 전래되어 수년간 경작해오던 논이었다. 그런데 지난 병진년 봄에 수해로 제언이 무너졌다가 지금까지 제언을 다시 쌓지 못하여 논이 황폐하게 된 것이 방매사유라고 밝히고 있다. 방매 대상은 교포리(橋浦里)에 있는 곤자(崑字) 1두락지와 동자(同字) 2두락지를 합한 논이고, 매매가는 전문(錢文) 45냥이다. 이 거래에 송태향(宋太享)이 증인 겸 필집으로 거래에 참여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각각 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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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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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同治參年甲子八月日張漢宗前明文右明文事段矣流來畓累年耕食是如可丙辰春水罷堰故至今不得成堰弊畓餘當此秋末橋浦里崑字畓壹斗落果同字畓貳斗落幷以價折錢文肆拾五兩捧上是遣右前永爲放賣爲去乎日後子孫中若有雜談是去等以此文記憑考事堰畓主 趙允宗[着名]黃貴福[着名]證筆 宋太享[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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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계미년 송계일(宋啓日) 등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宋啓日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계미년 송계일(宋啓日) 등이 향중(鄕中)의 여러 집에 모임 날짜를 통보하는 통문 계미년 송계일(宋啓日) 등 4인이 향중(鄕中)의 여러 집에 모임 날짜를 알리는 통문이다. 선박 3척이 아무 문제 없이 월경(越境)을 한 것은 불행 중 다행이지만, 소요된 비용은 모두 공전(公錢)인데 상납한 것은 유한하니, 다음 달 3일에 본소(本所)에 모여서 이 문제를 논의해보자는 것이 주요 안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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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回文 豆原右文爲回諭事彼船三隻無弊越境不幸中幸也而許多所入皆是公錢則上納有限趁今居賣乃已故玆以回諭望須僉君子今來初三日齊會于本所以爲爛商議處之地千萬幸甚豆原鄕中各宅癸未八月二十七日出文宋啓日金漢傑宋獜輔張錫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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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년 장지철(張志喆) 언간(諺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張志喆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신축년 장지철(張志喆)이 종중 어른에게 보낸 언간 신축년 장지철(張志喆)이 종중 어른에게 보낸 언간이다. 오랫동안 소식이 막혀 몹시 그리웠는데 체후는 편안한지 상대방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보소(譜所) 일을 처리하느라 객지를 여러 날 돌아다니고 있다고 소식을 전하고, 또 일가댁 산소에 있었던 화재 사건을 전하였다. 화재는 이번 달 5일에 발생하였고 생초목이라서 피해가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일가의 선영(先塋)이 나의 선영이기 때문에 기별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화재의 원인은 지나가던 사람의 담뱃불이 떨어져서 발생하였고 직접 불을 껐으며, 산소가 전부 타지는 않았기에 불행중 천만 다행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달포 전에 보첩(譜牒) 일로 보청(譜廳)에서 사통(私通)을 보냈는데 받아보았는지 몰라서 답답하다고도 하였고, 일가댁에 서로 마찰이 있어 민망한 일은 도유사(都有司)가 말씀이 있을 것으로 안다고 하였으며 일이 지체되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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謹候書근구죠후ᄒᆞ늬ᄉᆞᆼ용복창근미심잇의기쳬후일만ᄉᆞᆼ복소구구지지라죵ᄒᆞ는보ᄉᆞ로지의셔누일두류허다가각쳐의일도간셥ᄒᆞ고당여갈양으로금월쵸오일의오ᄃᆞ가일가ᄉᆞᆫ소가실화되와기로집니들어와셔자셔니들으니금월쵸오일나졔츙화되와셔구화을못한즁의타인니직자기별ᄒᆞ기로쳑방지방ᄂᆞ가서구화ᄒᆞ기로가셔본니쵸목의실화라단치안니ᄒᆞᄂᆞ잠시슈호는고ᄉᆞᄒᆞ고일가의션영니의션영인고로기별ᄒᆞᆫ직글니알옵ᄉᆞᆫ쇼가다실화는안니되여시ᄂᆞ지간노ᄉᆞᆼ지인의담불의러져셔실화되온즁의자직구화허여기로만번니ᄂᆞ당ᄒᆞ옵고불즁다ᄒᆞ옵너다노변의션ᄉᆞᆫ니게신고로간연의실슈가잇시ᄂᆞ노변쳐과글니되온일옵월젼의보쳡ᄉᆞ로보쳡의셔ᄉᆞᆺ통ᄒᆞ온즁의죵ᄒᆞ의사셔을바ᄃᆞ보옵는지몰ᄂᆞ답답즁의옵네ᄃᆞ각쳐의일가셔각각ᄒᆞᆫ일을보온니다일쳬로시을ᄒᆞ온데유독쥬간일가의셔ᄉᆞᆼ힐니되온니쳥니목도의민망헌거사도유ᄉᆞ가말ᄉᆞᆷ니ᄒᆞ용일로안ᄃᆞ고누차불호지언으로일ᄉᆞᆷ말ᄉᆞᆷᄒᆞ온니부데죵ᄒᆞ외말ᄉᆞᆷ을범연니마옵슈이되온면변도과ᄃᆞᄒᆞ온니다일지쳬가불지ᄉᆞ옵네다남은말ᄉᆞᆷ춍춍키로불비ᄉᆞᆼ辛丑八月初六日 宗下志喆拜上 少名만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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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五十一年 月日康津縣考丙午式成籍戶口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待變軍官張大允改名天翼年四十二乙丑本仁同父折衝將軍武良祖學生弘曾祖學生德龍外祖學生金愛賢本金海妻金氏年四十二乙丑本金海父渭載祖天碩曾祖愛明外祖鄭武賢本慶州率子啓得年二十二乙酉等前准印行縣監[押][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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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 장재풍(張載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載豊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10년(순조10)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재풍(張載豊)의 인적사항을 호적대장에서 베껴 발급한 준호구 1810년(순조10) 강진현에서 경오년 호적대장을 참고하여 발급한 장재풍의 준호구이다. 장재풍은 본래 홀아비였던 장계득(張啓得)의 사망으로 인하여 대신 호주가 되었다.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재풍은 나이 29세이고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홀아비이다. 이어서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홀아비이기 때문에 처(妻)에 대한 정보는 기재되어 있지 않다. 맨 뒷부분에 행현감(行縣監)의 압(押)과 관인(官印)이 찍혀 있고, 장방형의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이 찍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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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十五年 月日康津縣考庚午成籍戶口帳內古今島鎭里第 統第 戶鰥夫張啓得故代鰥夫載豊年二十九壬寅本仁同父大運祖折衝武良曾祖學生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等丁卯式相準印行縣監[押][帖][周挾字改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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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7년 장지성(張至誠)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康津縣監 張至誠 康津縣監<着押> 帖子印, 周挾字改印, □…□(적색, 정방형, 7)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7년(헌종3) 강진현(康津縣)에서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 1837년(헌종3) 강진현(康津縣)에서 고금도(古今島) 진리(鎭里)에 거주하는 장지성(張至誠)에게 발급한 준호구이다. 장지성은 현재 49세이고 직역은 한량(閑良)이며 본관은 인동(仁同)이다. 이어서 장지성의 사조(四祖)가 기재되어 있는데, 아버지는 장대운(張大運), 조부는 절충장군 장무량(張武良), 증조부는 장홍(張弘), 외조부는 가선대부 추상련(秋尙連)으로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동거인으로 21세 딸이 있으나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장지성의 3년 전에 작성된 호구문서와 비교하면 딸의 나이에 오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형식으로 보면 열서(列書) 방식의 호구단자지만, 관에 제출되어 구호적과 대조 확인을 거친 뒤 강진현감의 서압과 관인 및 주협자개인(周挾字改印)을 찍어 제출자에게 되돌려준 것이기 때문에 준호구로 분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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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今島鎭里丁酉式戶籍單子戶閑良張至誠年四十九己酉本仁同父學生大運祖折衝將軍武良曾祖學生 弘外祖嘉善大夫秋尙連本羅州率女年十二等丙申九月日行縣監[押][帖][周挾字改印]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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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90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張明化 張明化<着名>, 金始星<着名>, 趙元兼<着名>, 禹仁坪<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답(畓) 1두 4승락지를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 1903년 장명화(張明化)가 자신이 일궈 수년 동안 경작해오던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한 매매명문이다. 방매 사유는 금년 들어서 어쩔 수 없는 형편 때문이라고 적었다. 대상 토지는 도내(島內) 서면(西面) 내정동(內井洞)에 있는 상자(霜字) 답 1두 4승락지이고, 매매가는 전문(錢文) 41냥이다. 이 논의 구문기(舊文記)는 없이 신문기(新文記) 한 장만으로 거래하였다. 김여성(金如星)과 조원겸(趙元兼)이 증인으로, 우인평(禹仁坪)이 필집(筆執)으로 참여하여 각각 착명(着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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