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이승학(李承鶴) 영수증(領收證) 1 고문서-명문문기류-근현대문서 경제-회계/금융-영수증 大正十二年七月五日 全羅南道潭陽郡農會長 大正十二年七月五日 全羅南道潭陽郡農會長 李承鶴 전남남도 담양군 潭陽郡農會長 2顆(2.4×2.4) 전남도청(2020년 구입 의병자료)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3년에 전라남도담양군농회(全羅南道潭陽郡農會)에서 이승학(李承鶴)에게 발급한 농회비 납입통지서와 영수증. 1923년도 농회비(農會費) 납부를 위해 전라남도담양군농회(全羅南道潭陽郡農會)에서 창평면(昌平面) 장화리(長華里)에 사는 이승학(李承鶴)에게 발급한 납입통지서와 영수증이다. 이 문서는 좌면에 납입통지서, 우면에 영수증으로 구성되었으며 담양군농회장 명의로 발행했다. 7월 5일에 발급한 납입통지서를 보면 1923년도 농회비로 이승학에게 고지한 금액은 4원(円) 28전(錢)이며, 납입기한은 7월 30일까지이다. 담양군농회는 일제강점기 중앙농업단체인 조선농회(朝鮮農會)의 지부로 보인다. 조선농회는 1906년에 일본인 농상공부 관리 및 농업경영자 등이 조직한 한국중앙농회를 기반으로 하였으며, 한일합방 이후 조선농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이 단체는 농사 및 양잠, 축산, 기타 산업 등의 개량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을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그런데 1920년대에 들어서 소작쟁의 및 농민운동이 점차 고양되자 일제는 이를 대처하고 식민지 지주제의 안정과 확대, 수탈의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 1926년에 '조선농회령'과 '조선농회령시행규칙'을 제정, 반포하면서 기존의 농업단체들을 통폐합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조선농회는 새로 조직된 조선농회에 업무를 인계하고 1927년 4월 3일에 해산되었다. 영수증을 수령한 이승학(1857∼1928)은 본관이 전주(全州)이며, 자는 자화(子和), 호는 청고(靑皋)이다. 전남 담양(潭陽) 장전리(長田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진사 이최선(李最善)이고,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 이기대(李箕大)의 딸이다. 양녕대군(讓寧大君)의 후손이며, 기정진(奇正鎭)의 문인이다. 1889년에 백의(白衣)로 왕궁에 나아가 대책(對策)으로 천하의 병통에 관해 진술했고, 을미사변(乙未事變) 때 팔도에 격문을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고 금성산(錦城山)에 제사를 지내면서 국조(國祚)의 융성을 빌고, 진(陣)을 광주(光州)로 옮겨 서울로 진격할 태세를 갖추었는데, 조정에서 선유사(宣諭使) 신기선(申箕善)을 보내 임금의 명으로 타이르자 분개를 참아내고 군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문집으로 ?청고집(靑皋集)? 4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