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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4년 강중태(姜重泰)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巖郡守 姜重泰 行郡守<押> □…□ (7.0×7.0), 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47_001 1744년에 영암군(靈巖郡)에서 첨지(僉知) 강중태(姜重泰, 52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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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강홍복(姜弘福)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巖郡守 姜弘福 行郡守<押> □…□ (7.0×7.0), 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50_001 1801년에 영암군(靈巖郡)에서 유학(幼學) 강홍복(姜弘福, 61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호주 강홍복(姜弘福)의 생년(生年)이 신유(辛酉)로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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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강홍제(姜弘齊)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巖郡守 姜弘齊 行郡守<押>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51_001 1801년에 영암군(靈巖郡)에서 유학(幼學) 강홍제(姜弘齊, 63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妻 오씨(吳氏)의 생년(生年)이 갑인(甲寅)으로 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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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흘첩(照訖帖) 1 고문서-증빙류-조흘첩 珍島府使 <押> 帖字印,珍島府使之印(8.0×8.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755_001 진도부사가 소학 입격(小學入格)을 증명하며 작성해 준 조흘첩 진도부사가 소학 입격(小學入格)을 증명하며 작성해 준 조흘첩이다. 문서의 결락이 심한 편이며 이 때문에 수취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조흘(照訖)이란 '대조하여 확인을 마쳤다.'는 뜻으로 과거 응시에 결격 사유가 없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소학』을 고강(考講)하여, 과거에 응시할 수 있다는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녹명(錄名)하고 과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 실시하는 『소학』에 대한 고강을 조흘강이라고 하는데, 이를 통과하였다는 증명서가 조흘첩이었다. 조흘첩은 과거장에 입장할 때 필요하였던 것은 물론이고 입장한 후나 퇴장할 때에도 그 소지 여부를 점검하였다. 조흘첩의 서식은 ⓛ발급자와 발급 목적[某爲照訖事], ②수취자의 성명·연령·거주지 등 정보, ③고강 통과 사실 통지[小學入格爲有置] ④종결어 [帖文成給爲遣 合下仰照驗施行 須至帖者] ⑤작성연월 및 발급자의 착명(着名)으로 이루어진다. 조흘첩은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서식상의 큰 차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수량을 필요로 했던 만큼 그 서식을 목판에 새겨 인출하는 사례가 빈번하였다. 즉 목판에 기본 서식을 새겨 인출한 뒤 공란에 수취자의 정보를 채워넣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문서의 경우는 직접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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珍島府使爲照訖事 ▣▣(幼學)年 居 面 小學入格▣▣(爲有)▣(置) 帖文成給爲遣 合下▣(仰)▣▣▣(照驗施)行 須至帖者準此▣…▣ [着押] [帖][珍島府使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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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8년 이춘발(李春發)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光郡守 李春發 行郡守<押> 靈光郡戶口, 靈光郡守之印(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569_001 1828년에 영광군(靈光郡)에서 한량(閑良) 이춘발(李春發, 59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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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7년 강중태(姜重泰)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巖郡守 姜重泰 行郡守<押> □…□ (7.0×7.0), 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47_001 1747년에 영암군(靈巖郡)에서 첨지(僉知) 강중태(姜重泰, 56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호주 강중태(姜重泰)와 妻 최씨(崔氏)의 생년이 계유생(癸酉生)으로 기재되었으나 임신생(壬申生)으로 수정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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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0년 강중태(姜重泰)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巖郡守 姜重泰 行郡守<押> □…□ (7.0×7.0), 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47_001 1750년에 영암군(靈巖郡)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 강중태(姜重泰, 59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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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년 강지백(姜之伯) 준호구(準戶口) 고문서-증빙류-호적 靈巖郡守 姜之伯 行郡守<押> □…□ (7.0×7.0), 周挾字改印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66_001 1807년 1월에 영암군(靈巖郡)에서 유학(幼學) 강지백(姜之伯, 45세)에게 발급한 준호구(準戶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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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미년 이생원(李生員) 등 완문(完文) 고문서-증빙류-완문 韓宗默 李生員 韓宗默<着名>, 金翊魯<着名>, 金顯澤<着名>, 林成春<着名>, 河永祿<着名>, 吉有宗<着名>, 尹守儉<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기미년 10월에 이생원이 관아에 토지를 기부하고 받은 완문. 기미년 10월 28일에 영암군 관아의 刑房인 韓宗默 등이 발급한 완문이다. 발급한 고을은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본 문서가 포함된 문서군이 영암 지역에 소재한 이씨 집안 문서이므로 영암군 관아에서 발급한 문서일 가능성이 크다. 작성된 서기연도는 알 수 없다. 완문의 본문은 고을 관아의 刑房에서 사용할 재정이 부족하여 여러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차에 望湖亭에 사는 李生員이 토지를 재원으로 내어주었으므로, 이 사실을 기록해 두고 그 덕을 칭송하게 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형방의 재정이 부족한 이유는 본문에서 본 읍이 큰 도로의 옆에 위치하는 바람에 兵營과 水營 사이에서 겪는 폐해가 다른 읍에 비해 몇 곱절은 된다고 하고 있다. 즉 도로를 지나는 관리에게 지급하는 식량과 역참을 들고나는 人馬에 들어가는 비용이 전체 고을 중에 가장 많아서, 이를 개선하고자 하지만 재원을 염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생원이 이러한 실상을 통촉하여 내놓은 토지는 黎字 자호의 논 3마지기이고 負數로는 11부 6속이었다. 이에 대해 형방에서는 고마움을 표현하길, "높은 은혜가 태산과 같아 그 問喪하는 도리에 있어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라고 하고 있다. 여기서 원문은 "匍匐之道"라는 문구를 사용하였는데, 이생원댁에서 喪禮내지 葬禮에 대한 일을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어서 그 보답으로 "이 댁의 산소를 禁養하는 절도와 그 밖에 보답하는 방안을 (수령의) 처분에 따라 힘을 모아 보답하길 도모한다."라고 하고 있다. 이 완문이 포함된 문서군에는 '신해년 이규호(李圭浩) 단자(單子)' 등 영암군에 올린 상송 문서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하는 '산소의 禁養'은 이생원 집안에서 겪고 있는 산송 문제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추측을 해 본다면, 이생원댁이 진행하고 있는 산송을 잘 처리해 주는 대가로 고을 관아에 토지를 기부하고 이에 대한 증명서를 완문의 형식으로 발급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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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흘첩(照訖帖) 2 고문서-증빙류-조흘첩 珍島府使 使<押> 珍島府使之印(8.0×8.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755_001 진도부사가 소학 입격(小學入格)을 증명하며 작성해 준 조흘첩 진도부사가 소학 입격(小學入格)을 증명하며 작성해 준 조흘첩이다. 문서의 결락이 심한 편이며 이 때문에 수취자를 특정하기 어렵다. 조흘(照訖)이란 '대조하여 확인을 마쳤다.'는 뜻으로 과거 응시에 결격 사유가 없는 사람인지 확인하고 『소학』을 고강(考講)하여, 과거에 응시할 수 있다는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녹명(錄名)하고 과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때 실시하는 『소학』에 대한 고강을 조흘강이라고 하는데, 이를 통과하였다는 증명서가 조흘첩이었다. 조흘첩은 과거장에 입장할 때 필요하였던 것은 물론이고 입장한 후나 퇴장할 때에도 그 소지 여부를 점검하였다. 조흘첩의 서식은 ⓛ발급자와 발급 목적[某爲照訖事], ②수취자의 성명·연령·거주지 등 정보, ③고강 통과 사실 통지[小學入格爲有置] ④종결어 [帖文成給爲遣 合下仰照驗施行 須至帖者] ⑤작성연월 및 발급자의 착명(着名)으로 이루어진다. 조흘첩은 중앙과 지방을 막론하고 서식상의 큰 차이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수량을 필요로 했던 만큼 그 서식을 목판에 새겨 인출하는 사례가 빈번하였다. 즉 목판에 기본 서식을 새겨 인출한 뒤 공란에 수취자의 정보를 채워넣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문서의 경우는 직접 필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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珍島 爲照訖事 ▣▣(幼學)年 居 面 小學入格▣▣(爲有)▣(置) 帖文成給爲遣 合下仰照驗施行 須至帖者準此使[着押][珍島府使之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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