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49132건입니다.

정렬갯수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光緖七年辛巳十一月初四日 前明文右明文事段 自起買得畓 累年耕食是多可 勢不得已 要用所致府地黃田面霅峙山令右便錦岩坪段 耕畓七升落■■(價折)〔田上下坪〕 太種壹斗五升落 價折錢文什伍兩依數捧上爲遣 並新旧文二丈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雜談則 以此文記 告官卞政事田畓主 幼學 鄭在浩[着名]證人 趙潤成[着名]登笔 梁致敎[着名]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3년 이군거(李君擧) 산지매매명문(山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汝文 李君擧 朴汝文<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3년(고종10) 3월 29일에 표종 박여문이 내종 이군거에게 영광군 후증도 오항 뒤쪽 산지를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산지매매명문 1873년(고종10) 3월 29일에 표종(表從) 박여문(朴汝文)이 내종(內從) 이군거(李君擧)에게 산지(山地)를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산지매매명문이다. 박여문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산지를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산지는 영광군(靈光郡) 후증도(後甑島) 오항(鰲項)의 뒤쪽 대로(大路)의 위쪽에 있는 금양(禁養)산지라고 하였다. 방매 가격은 전문(錢文) 3냥5전이다.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에 대한 언급이 없고 필집과 증인이 별도로 없는 문서 첫줄에는 명문(明文)이라고 쓰고 마지막 줄에는 표주(標主)라고 쓴 매매문서이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영광군 염소면 후증도는 현재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同治十一年癸酉三月卄九日 內從君擧前明文右明文事段 捄命所關 郡地後甑島鰲項後大路上禁養乙 錢文參兩伍戔捧上是遣 右處永永出給 日後以此憑考事標主 表從 朴汝文[着名]際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909년 이백언(李白彦) 시장문기(柴場文記) 1 고문서-명문문기류-시장문기 曺京彬 李白彦 炳業<指章> 曺京彬信(1.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09_001 1909년(순종3) 9월 9일에 시장주 조경빈(曺京彬)이 이백언(李白彦)에게 지도군 사옥면 후증도의 시장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시장매매명문 1909년(순종3) 9월 9일에 시장주(柴場主) 조경빈(曺京彬)이 이백언(李白彦)에게 후증도의 시장을 방매하면서 시장매매명문이다. 조경빈은 자신이 물려받아 풀을 베던 곳을 쓸데가 있어서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시장은 지도군(智島郡) 사옥면(沙玉面) 후증도(後曾島) 외장성동(外長城洞)에 있는 시장 내 이백언 조부모 묘지 금양(禁養) 한계에서 위로 10파(把), 좌·우·앞쪽으로 각 5파씩 되는 땅이다. 파(把)는 주먹 쥔 손을 의미하는데 얼마 만큼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이곳을 전문(錢文) 12냥을 받고 팔았으며, 신문기(新文記: 본 매매명문) 1장으로 거래한다고 하였다.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는 도문기(都文記: 재산 전체를 기록한 분재기) 안에 적혀 있기 때문에 줄 수 없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시장주 조경빈과 필(筆: 문서작성) 차자(次子) 조병업(曺炳業)이다. 조경빈은 원형 주인(朱印)을 찍었고 조병업은 지장(指章)을 찍었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지도군 사옥면 후증도 장성동은 현재 전라남도 신안군 증도면 증동리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01년 이정간(李挺榦) 고신 및 소첩(小帖) 고문서-교령류-고신 純祖 李挺榦 施命之寶(9.0×9.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1년에 이정간에게 절충장군(정3품 당상)의 품계를 내리는 고신과 소첩이다. 1801년(순조 1)에 이정간(李挺榦)에게 절충장군(折衝將軍)의 품계를 내리는 고신(告身)이다. 이를 발급한 내역을 명시한 소첩(小帖)이 가철되어 있다. 절충장군은 서반 품계로 정3품 당상에 해당한다. 고신에는 발급한 연도와 일자가 적혀 있지 않다. 소첩은 수원부유수(水原府留守)가 1801년 7월에 이정간에게 발급하였다. 수원부의 공역에 힘을 들인 사람에게 발급한다고 적고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李挺幹爲折衝將軍者嘉慶 年 月 日加事承傳(小帖)行水原府留守爲成給事 本府役事效勞人 折衝加資小帖成給向事 合下仰照驗施行 須至帖者右下幼學李挺幹 準此嘉慶六年七月 日成給[帖] 行留守 [署押][印]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61년 최봉현(崔鳳現) 증조고(曾祖考) 최언강(崔彦綱)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哲宗 崔彦綱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224_001 1861년(철종12) 6월에 최언강을 증손자 최봉현의 현달로 인하여 통훈대부 장악원정으로 추증한 교지 1861년(철종12) 6월에 최봉현의 증조고(曾祖考)인 최언강(崔彦綱)을 통훈대부(通訓大夫) 장악원정(掌樂院正)으로 추증한 교지이다. 추증원인은 발급일자의 왼쪽 옆에 작은 글자로 기록되어 있는데 '숭정대부동지중추부사인 최봉현(崔鳳現)의 증조고(曾祖考)이므로 법전에 따라 추증(追贈)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경국대전?에 '종친 및 문관․무관으로서 실직 2품 이상인 자는 그의 부조(父祖) 3대를 추증한다'라는 원칙에 따라 최봉현이 중추부에 소속된 종2품 관직인 동지중추부사를 지냈기 때문에 그의 증조고가 추증된 것이다. 통훈대부는 조선시대 문관 정3품 당하의 관계이다. 장악원정은 장악원에 소속된 정3품 벼슬이다. 장악원은 주로 국가와 왕실의 공식적인 행사에서 악(樂), 가(歌), 무(舞)를 담당한 관사로 당상관 2인이 제조(提調)를 맡고 정3품 정(正) 1명, 종4품의 첨정(僉正) 1명, 종6품의 주부(主簿) 1명, 종7품의 직장(直長) 1명이 관리로 소속되어 있었다. 증조부모는 증손자의 관직에서 두 단계 내려서 추증하였으므로 정3품 당하관의 품계와 관직이 수여되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通德郞崔彦綱贈通訓大夫掌樂院正者咸豊十一年六月 日崇政大夫同知中樞府事崔鳳現祖考依法典追贈[施命之寶]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667년 배유화(裵幼華)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顯宗 裵幼華 施命之寶(9.0×9.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667년에 김천도 찰방 배유화에게 조봉대부(종4품)의 품계를 제수하는 고신 1667년(현종 8) 9월 11일에 김천도(金泉道) 찰방(察訪)인 배유화(裵幼華)에게 조봉대부(朝奉大夫)의 품계를 제수하는 고신(告身)이다. 김천도는 경상도 김산(金山)의 김천역(金泉驛)을 중심으로 역도(驛道)로서 찰방은 종6품직이다. 조봉대부는 종4품 하계에 해당하는 품계명이다. 발급일자 좌측에 '丁九別加'라고 작은 글씨로 쓰여 있다. 이는 정미년(1667) 9월에 특별히 가자(加資)받았다는 의미이다. 배유화(1611~1673)는 조선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호 팔사(八斯)이다. 시와 그림에 조예가 깊었고, 저서로는 『팔사유고(八斯遺稿)』가 있다.1)1)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裵幼華爲朝奉大夫行金泉道察訪者康熙六年九月十一日丁九別加[施命之寶]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勅命原陵參奉從仕郞叙判任官八等者光武六年八月日 [宮內府印]議政府宮內府大臣贊政臨時署理大臣成歧運 [印]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61년 최봉현(崔鳳現) 증조비(曾祖妣) 유인김씨(孺人金氏) 추증교지(追贈敎旨) 고문서-교령류-고신 哲宗 崔鳳現 曾祖妣 孺人金氏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224_001 1861년(철종12) 6월에 유인 김씨를 증손자 최봉현의 현달로 인하여 숙인으로 추증한 교지 1861년(철종12) 6월에 최봉현의 증조할머니 유인(孺人) 김씨(金氏)를 숙인(淑人)으로 추증한 교지이다. 추증원인은 발급일자의 왼쪽 옆에 작은 글자로 기록되어 있는데 '숭정대부동지중추부사인 최봉현(崔鳳現)의 증조비(曾祖妣)이므로 법전에 따라 추증(追贈)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경국대전?에 '종친 및 문관․무관으로서 실직 2품 이상인 자는 그의 부조(父祖) 3대를 추증한다'라는 원칙에 따라 최봉현이 중추부에 소속된 종2품 관직인 동지중추부사를 지냈기 때문에 그의 돌아가신 증조모가 추증된 것이다. 숙인은 조선시대 문무관 정3품 당하관 및 종3품 문무관의 외명부(外命婦) 봉작 칭호이다. 증조부모는 손자의 관직에서 두 단계 내린 품계를 주었으므로 정3품 당하의 작호가 수여되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孺人金氏贈叔人者咸豊十一年六月 日崇政大夫同知中樞府事崔鳳現曾祖妣依法典追贈[施命之寶]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07년 강홍제(姜弘齊)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純祖 姜弘齊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7년(순조7) 9월에 강홍제를 가설직 가선대부 행동지중추부사에 임명한 4품 이상 고신 1807년(순조7) 9월에 강홍제(姜弘齊)를 가선대부(嘉善大夫) 행동지중추부사(行同知中樞府事)에 임명한 4품 이상 고신이다. 첫머리에 '교지(敎旨)'라고 쓴 후 본문에 강홍제를 가선대부 행동지중추부사로 임명한다고 적고 연호방서(年號傍書) 우측에 가설(加設)이라고 임명사유를 적었다. 가설직은 군공이나 납속 등 국가에 공이 있는 사람을 우대하거나 또는 기타 특별한 사유로 인해 마련한 정원 이외에 더 둔 관직이다. 본문에는 강홍제라는 글자만 본래의 서체와 다르게 써져 있어 공명(空名) 동지첩(同知帖)에 이름을 적어 넣었음을 알 수 있다. 가설이라도 고신을 받은 자는 국가의 관리로 대우받으며 일반 양인이 지는 국역에서 면제되었다. 연호방서가 우측에 기록된 것은 병조에서 문서를 발급, 작성하였음을 알게 하는 부분이다. 가선대부는 조선시대 문·무관 종2품 하(下)의 관계명(官階名)이다. 동지중추부사는 중추부에 두었던 종2품 관직이다. 동지사(同知事)라고도 불렀으며 정원은 8명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姜弘齊爲嘉善大夫行同知中樞府事者加設嘉慶十二年九月日[施命之寶]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691년 강덕상(姜德尙)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납속첩 肅宗 姜德尙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691년(숙종17) 4월에 강덕상을 납속의 공으로 통정대부에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 1691년(숙종17) 4월에 강덕상(姜德尙)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이다. 통정대부(通政大夫)는 문관 정3품 당상관의 품계로 그가 임명을 받게 된 이유가 발급일자 좌방에 '납(納)'으로 기록되어 있다. 납은 국가의 재원 모집 시기에 돈이나 곡식을 납부하였다는 의미로 보통 이와 같은 사유로 주는 임명장을 납속첩(納粟帖)이라고 부른다. 또는 임명내용이 통정대부이면 통정첩(通政帖), 가선대부이면 가선첩(嘉善帖), 관직이 동지중추부사이면 동지첩(同知帖)과 같이 불렀다. 이를 통해 강덕상이 국가에 납속(納粟)을 함으로써 그 공을 인정받아 통정첩을 발급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姜德尙爲通政大夫者康熙三十年四月 日納[施命之寶]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888년 강대주(姜大胄)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고신 高宗 姜大胄 帖字印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28_001 1888년(고종25) 9월에 강대주(姜大胄)를 종사랑 행순릉참봉겸좌승지에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 1888년(고종25) 9월에 강대주(姜大胄)를 종사랑(從仕郞) 행순릉참봉겸좌승지(行順陵參奉兼左承旨)에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이다. 첫머리에 '교지(敎旨)'라고 쓴 후 본문에 유학(幼學) 강대주를 종사랑 행순릉참봉 겸좌승지로 임명한다고 적고 발급일자인 연호 좌측에 첩(帖)자 인장을 찍고 아래에 판서, 참판, 참의, 정랑, 좌랑 등의 전조(銓曹) 관직명을 적어 발급관련 결재판을 작성하였다. 종사랑이 정9품 문관의 관계명인데 4품 이상 고신의 양식으로 문서를 작성한 점, 4품 이상 고신의 양식이면서 발급일자 뒷부분에 5품 이하 고신의 관원 결재판이 기록된 점, 고신에 찍지 않는 차첩(差帖)이하의 임명문서에만 찍는 첩자 인장을 찍은 점, 임명 내용에 참봉(종9품직)이 좌승지(정3품 당상관직)를 겸직하고 있는 점 등 여러 부분에서 위격(違格)이 확인되는 문서이다. 동년 동월에 작성된 위격 문서가 확인되는데 이것이 짝으로 작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敎旨幼學姜大冑爲從仕郞行順陵參奉兼左承旨者光緖十四年九月 日判書[帖] ▣…▣ 正郞佐郞▣…[施命之寶]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교령류

1696년 강덕상(姜德尙) 고신(告身) 고문서-교령류-납속첩 肅宗 姜德尙 施命之寶(10.0×10.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696년(숙종22)에 강덕상을 납속의 공으로 가선대부에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 1696년(숙종22)에 강덕상(姜德尙)을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임명하는 4품 이상 고신이다. 가선대부(嘉善大夫)는 문관 종2품 하(下)의 관계로 그가 임명을 받게 된 이유가 발급일자 좌방에 '납(納)'으로 기록되어 있다. 납은 국가의 재원 모집 시기에 돈이나 곡식을 납부하였다는 의미로 보통 이와 같은 사유로 주는 임명장을 납속첩(納粟帖)이라고 부른다. 또는 임명내용이 통정대부이면 통정첩(通政帖), 가선대부이면 가선첩(嘉善帖), 관직이 동지중추부사이면 동지첩(同知帖)과 같이 불렀다. 이를 통해 강덕상이 국가에 납속(納粟)을 함으로써 그 공을 인정받아 가선첩을 발급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강덕상은 그 이후로도 두 번의 납속을 더 시행하여 그 공으로 가설 동지중추부사라는 실직을 제수 받고 3대를 추증 받았다.

상세정보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