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록문화
통합검색플랫폼

검색 필터

기관
유형
유형분류
세부분류

전체 로 검색된 결과 549132건입니다.

정렬갯수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靈巖居 幼學李之珪李之禧李之孝李慶囿李再祿等 謹齋沐百拜上書于▣…▣公閤下 伏以 書云 其父肯堂 其子不肯 搆矣等之謂也 矣等祖 前宣 傳官諱廷弼孝行 不可準信於矣等之言 而鄕中多士上書中 可知旣梗槪矣 生死之禮 死葬之禮▣…▣▣…▣用其極 故去去癸未年 鄕儒齊聲仰籲於巡相觀風之日 則題音內 實狀詳細採訪後牒報 以爲歲末修啓時憑考之意 行下於本▣ 其後辛丑年 多士又爲上▣…▣▣…▣撫使到官之時 則題音內 李君行誼可嘉 更加訪問 此上書牒連牒報事 行下本官矣 其時 巡相及巡撫使 轉聞于天閽 旋聞傳 旨于東西兩曺 錄其姓▣…▣▣…▣又給復戶五十卜及戶奴雜役勿侵完文及賞賜等物 則爲其子孫者 追思舊蹟 感祝▣…▣後敢言 而第有罔極至寃事 以如此孝行 蕪沒遐方 尙未蒙旌褒之 恩典者 以其子孫之不肖而然也 飮恨抱痛 不敢呼訴矣 幸値淸河之世▣…▣孝治方隆 而 相公淸望 山高斗懸 人皆咏勿剪棠之歌 世未有不獲所之歎 則矣等敢不進達祖父之孝行 以傷我 相公閤下好賢樂善之令聲令聞哉 玆敢鄕▣…▣戶完文除職秩 謄草牒連仰達 特爲 垂察 而矣等祖孝行實狀 一一參商於多士上言後 轉聞于天閽 亟降棹楔之旌 俾免矣等祖孝行公然泯滅之寃 百拜▣…▣▣…▣▣察使 處分庚戌九月 日無時有難狀▣…▣聞 來頭貳年▣…▣當待邑報 可▣…▣處事初七日兼使 [署押][印]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기미년 이삼만(李三萬) 등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三萬 璿源錄廳 璿源錄廳<押> □…□(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기미년 4월에 이삼만 등 5명이 선원록청에 올린 소지. 기미년 4월에 이삼만 등 5명이 선원록청에 올린 소지이다. 이삼만 등은 정종(定宗)의 9남 석보정(石保正)의 자손으로 매년 선원록청에 수단(修單)을 올려 종친임을 증명받고 잔벌(殘閥)로써 보호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인심이 예전과 달라 진도군에서 이들을 유림(儒林)에 소속시키지 않고 도리어 풍헌에 의해 봉수(烽燧)의 역을 지우게 되었다. 종친임에도 평민과 다를 바 없이 취급된 것이 나날이 심해지므로 이를 바로잡아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다. 이삼만의 소지에 대해 선원록청에서는 대왕자(大王子)의 자손이 어찌 평민과 같은 잡역을 질 수 있으며, 진도군에서 이삼만 등을 유림에 소속시키지 않는 것에 대해 놀라워하였다. 이에 진도군의 관리들을 사목(事目)에 따라 엄히 다스리고 이삼만 등을 유림에 소속시키라는 뜻으로 전라 감영에 관(關)을 보내겠다고 하였다. 또 이러한 처분 내용을 진도군에 전달하라고 하였는데, 이는 사안을 보다 빨리 처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지시한 것이다. 선원록청에서 전라 감영에 관을 보내면 전라 감영에서 관의 내용을 확인한 뒤 진도군에 다시 공문을 보내게 되는데 여기서 시일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선원록청의 처분은 5월 7일에 이루어졌다. 소지(所志)란 백성들이 관에 청원이나 탄원할 일이 있을 때 제출했던 문서를 지칭한다. 즉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관부의 결정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종류의 민원에 관한 문서이다. 소지와 유사하게 청원서·탄원서의 성격을 가진 문서들을 소지류(所志類) 문서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단자(單子)·발괄(白活)·의송(議送)·등장(等狀) 등이 포함되었다. 각 문서들은 발급 주체나 수취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서식적 차이가 있었다. ?유서필지(儒胥必知)?에 따르면 단자는 사대부가 관에 직접 올리는 소장(訴狀)을, 발괄은 사대부가 노(奴)의 이름으로 올리는 소장을, 의송은 감영이나 병영에 올리는 소장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관에서는 소지의 여백에 제사(題辭) 혹은 뎨김[題音]이라고 부르는 처분을 내렸다. 제사가 기재되었다는 것은 관의 공증을 거쳤다는 의미이므로, 백성들은 제사가 기재된 문서를 소송 자료 또는 권리나 재산 등을 증빙하는 자료로 활용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13년 이동헌(李東憲) 소지(所志) 1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東憲 咸平縣監 官[着押] 5顆(6.8×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792_001 1813년 이동헌이 함평 현감에게 자신이 점유한 산지는 박대춘이 금장할 수 없는 곳이니 박대촌의 금장을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내용의 소지 1813년 평릉면의 이동헌이 박대춘과의 산송(山訟) 과정에서 함평 현감에게 올린 소지이다. 박대춘이 부녀자를 데리고 와서 지신에게 분에 넘는 짓을 저지른 것에 대해 현감이 엄히 다스려 준 것에 감사를 표하고, 더불어 지난 처분 내용 가운데 '용미(龍尾)의 위쪽이 아니면 금장(禁葬)하지 말라.'는 것을 박대춘에게 구두로 전달하였는데도 박대춘이 관의 명령을 무시하고 자신이 무덤을 쓴 산지를 금장한다고 호소하였다. 그리고 이곳은 대여섯 성씨가 서로 무덤을 쓰는 곳이니 금장은 부당하다고 호소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함평 현감은 '공한지에 점장(占葬)한 것을 한 것을 가지고는 소송하지 말라.'는 처분을 내렸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平陵面居罪民李東憲右謹言情由段朴帶春之率婦女犯分於罪民之狀 城主敎是洞燭後嚴治厥漢伏不勝感悚之至而 城主分付內如非龍尾上則勿爲禁葬事 口傳於朴漢處是乎▣〔所〕朴漢素是頑悍不有 官令者也且民之所占山地非朴漢塚龍▣…▣則以五六姓互相入葬之地何可禁葬乎依▣…▣泣祝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癸酉三月 日〈題辭〉占葬■閒地俾無相訟之弊事卄一日官[署押]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靑襟幼學 化民 愼在夏等 謹齋沐上書于城主閤下 伏以 崇德報功 古今之通義也 勸忠獎孝 國家之盛典也 今有祖孫兩世忠孝卓異 而久欠表宅之禮 則 豈▣…▣之齎鬱乎 治下望湖亭 故僉正李仁傑 卽文忠公益齋後裔也 副提學諱文煥之五世孫也 逮當壬辰之變 率家僮赴權元帥幕下 殉節于幸州 故尙書李公寅燁銘其墓曰 蹈刃就義日月爭光云云 其曾孫故宣傳諱廷弼 孝友出天 而棄官還養 甘毳定省 極其誠意 其親嗜蛤 入海採蛤 至於體瘢 及其居哀廬墓 村狗汚墳 嘗誡狗淨掃 其後狗不汚墳 時人以爲孝感所致 及其終制之後 囊其遺髮 常視號泣 時人稱之泣髮孝子 其時御史權公尙游 啓聞于 朝 給復五十結 至有旌閭之 命 夫以一門忠孝 祖孫相承 實是士林之所矜式 而 朝家之當褒崇也 至若子孫之蠲復也 戶奴墓奴之除役 在法當然 而鄕居僻遠後孫零替 還上營木 墓戶奴軍伍雜役 日增月加 忠臣之墓 守護無人 孝子之閭 村落蕭條 實爲士林之所歎惜 累呈 春曹 旣成節目 齊籲 營門 又成完文 玆敢帖聯仰陳 伏乞洞燭後 一依 巡營完文 子孫之還上營木戶奴墓奴之軍丁烟戶雜役等 一一頉給之意 成給完文 以爲表宅里樹風聲之地 千萬至祝 行下向敎是事城主閤下 處分戊午十二月 日 化民 幼學 愼在夏 崔寬永 曺學鎭 崔孝錫 金丙燦 李敦昺 朴在勳等依營題 勿侵向事初六日[官] [署押][印]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靈巖郡居 幼學崔旻翰等 謹齋沐上書于繡衣閤下 伏以 傳曰 孝者百行之源 時移苟有特達之行 則必有旌褒之典者 以其勸導愚俗 興起善行也 自 列朝以來 或旌其閭 或復其戶者 不可枚擧 而若有可旌而未旌 可復而未▣尙有抑鬱泯沒之歎 況乎旣有旌閭之 命 復戶之文 而曠至百餘載 終未施行 則豈非 聖世之一欠典乎 生等 同郡望湖亭 有故孝子宣傳李廷弼 副護軍柱南之子 副提學文煥之八世孫 文忠公益齋先生齊賢之後裔也 生等 畧言其至行純孝 伏惟 垂察焉 斯人也 自齠齕之年 已有出天之孝 每與羣兒遊戱 人有遺以一果一食 則必懷歸 而獻諸父母 是豈非陸績懷橘之心乎 父母有疾 輒廢寢食 不說衣帶 未嘗須臾離側 扶將抑搔之節 無不備至 唾洟糞汚之物 躬自掃除 已有成人樣子 是豈非黔屢嘗糞之誠乎 及壯登武科 以父母之命 筮仕京國 蓋往日之喜 爲親屈也 纔得武兼 卽以父母之年老 決意還鄕 蓋日迫西山報親日短也 奉養之道 靡不用極 夏則躬執耒耟 不辭暑澇 冬則躬採樵薪 不避風雪 一身不厭糟糠 而親則甘毳有餘 妻孥不掩肩背 而親則▣煖自足 苽果細物也 而其親未嘗 則不入於其口 蔬菜薄味也 而冬月遇一陽之地早生者 則躬自採掇 熟而進之 噫 爲親誠養 或鎌而伐 或手而採 不憚勞傷 因以手掌皸裂 便成疤痕 此其孝行之著於手者也 爲親求資 跋涉京洛 十數往來 乃得嘉善 以榮其親 固以足踏薾破 便成胼胝 此其孝行之著於足者也 其父母性嗜蛤羹 躬冒大暑 入海採蛤 日以爲常 以養其親 固以背皮爆爛 瘢花遍身 此其孝行之著於遍身者也 戊寅冬 其父母以天年一時俱歿 殯殮葬祭 無不盡禮 隆寒盛暑 枕塊廬次 達夜叫號 以終三年 何異少連大連之善居喪乎 收拾其父母落髮 盛而小囊 佩之上帶 撫而悲哭 鄕人目以泣髮孝子 終身追慕 血淚如連 因以瞳子積傷 兩眼俱盲 倀倀墑埴 氣像愁慘 則此其孝行之著於面者也 噫 斯人一身 無非疤痕 而閉明之顯於面目者 尤亦可慽矣 父母之葬 在於家後 朝夕展拜 無異生時 墓間往來之處 成一坦路 砌前跪伏之所 成一小坎 嘗有村狗糞穢墓側 泣而掃之 因召諸狗 哀辭警之 自是之後 狗不更糞 此其孝行感於物者也 居廬之日 年已六十 除喪之後 亦不食肉 非不知禮制有節 而以其兄之死於三年之內也 及其夫兄喪除後 始食肉味 此其孝行之移於友愛者也 人有老親者 則追思其父母 或有滋味及新物 則必餽之 以供其奉養之資 此其孝行之移於人老者也 世之以孝名者 不止一二 而豈謂叔季遐陬 有此全備之行乎 且平生性度抗直廉潔 身不行苟艱之事 口不出非僻之言 非其道 非其義 雖一芥不以取人 嗚呼 孝爲百行之源者 信不誣矣 一鄕章甫 前已聯狀 自本邑條報 營門 自 營門啓達 天閤 至於肅廟辛卯 傳旨于東西兩曹 錄其姓名 特賜復戶五十卜 因 命旌閭 邑誌有曰 宣傳官李廷弼 極盡子道 鄕人艶服 累呈 營邑道臣 饋食物 不受 聞于 朝 給復戶 又辭不受 因 命旌閭云者 卽是也 惜乎其時以不敢當孝名 故呈書恳辭復戶旌閭之事 因以中止 至于今百餘年 未追成 命者 蓋其血孫單孱飄泊 而可考文券散失殆盡 旁裔零替 延到今日 使出天之孝行未免爲該曹一丈之空紙 豈不惜哉生等年前歲薦時 聯達於本邑及 營門 雖得優褒之題 尙未得 登達 更敢齊籲於按廉之下 特諒至行俯察公論 上啓 天門 以申棹揳之成命 俾闡出天之實蹟 千萬祈祝之至 謹冒昧以 達繡衣閤下 處分壬午五月 日 幼學 崔旻翰 曺榮進 玄溥明 白思全 梁鎭遠 文永澤 崔國憲 梁彦樞 金甲源 尹{土+永} 白履熙 崔樣欽 愼師泰 愼處弘 辛應權 崔趾欽 愼師禹 崔大涉 文應澤 崔國鉉 羅漢玉 朴履吉 文奎▣ 崔璟翰 梁益鉉 愼在亮 文起澤 朴獜赫 白儉熙 朴宗錫 白采熙 崔德洙 郭遠濟 朴東晋 愼處直 白樂熙 崔宅煥 曺榮運 愼基顯 崔達謙 崔亨洙 愼達顯 愼處敏 郭贊一 李命鐸 梁鎭五 崔德瀁 崔灝曾 崔顯永 愼師灃 崔泰曾 朴河源 崔昌洙 愼在亨 崔穆欽 李宜坤 林重漢 朴贊文 朴宗煥 曺晋圭 曺榮伯 愼基泰 崔鎭欽 全光表 愼師毅 梁燦復 崔萬永 白世熙 朴宗洛 朴來壽 尹奎震 曺榮燾 愼處元 鄭熺 愼星顯 崔宗澤 曺榮玉 愼在璿 崔錫永 崔憲曾 金奎烈 郭殷濟 鄭承烈 李英會等啓聞體重 不得許施事初四日[暗行御史] [署押][馬牌印] 3處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81년 순천영장(順天營將) 존문단자(存問單子) 고문서-소차계장류-단자 順天營將 鄭芳浩 □…□ 1顆(7.0×7.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1년 11월 9일에 순천영장(順天營將) 김씨(金氏)가 석사(碩士) 정방호(鄭芳浩)에게 발급한 존문단자(存問單子)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1828년 이동헌(李東憲) 소지(所志)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東憲 咸平縣監 官[着押] 1顆(6.0×6.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8년 이동헌이 함평현에 소송 상대방인 김진성이 무덤을 파 옮기기로 약속한 기간을 어길 경우 엄히 처벌하겠다는 내용으로 제사를 써줄 것을 요청하는 소지 1828년 이동헌이 함평현에 제출한 소지이다. 이동헌은 김진성(金辰成)과 산송(山訟)을 진행하여 지난달에 김진성이 패소하였고, 11월 14일 안으로 무덤을 파 옮기기로 이미 다짐을 작성했다가 다시 간청을 하여 12월 10일로 기한을 늦춰주었다. 김진성은 이 기한 안에 반드시 파 옮기겠다는 뜻으로 수기(手記)를 작성하였지만 이를 불안하게 여긴 이동헌은 김진성이 기한을 어길 시에 엄히 옥에 가두어 독촉하겠다는 뜻으로 제사(題辭)를 써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소지를 올린 것이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平陵面射山化民李東憲右謹言立旨事段民以親山山訟事去月十四日與金辰成對卞則金辰成至於落科而以十一月十四日內掘移之意納侤音故趂限日民往督掘移則同金漢百般哀乞曰少爲退▣以臘月初十日內斷當掘■移之意成手記以給故玆敢帖聯仰訴伏乞參商敎是後右漢金辰成若或更爲違期是去等 嚴囚督掘之意論理 題下爲只爲行下向敎是事城主 處分戊子十一月 日〈題辭〉旣有手記必當掘移向事二十官[署押]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신해년 이규호(李圭浩) 등 상서(上書) 고문서-소차계장류-소지류 李圭浩 靈巖郡守 官<押> 靈巖郡守之印 3顆(7.2x7.2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693_001 신해년 4월에 이규호 등이 영암군수에게 올린 산송 상서. 신해년 4월에 이규호(李圭浩) 등 9명이 연명하여 영암군(靈巖郡) 관아에 올린 상서(上書)이다. 이규호가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본인 증조부모의 산소와 부친의 산소가 군종면(郡終面) 옛 향교 아래 산지에 있다. 그런데 작년에 성내(城內)에 거주하는 하성조(河聖祚)가 그의 아버지를 몰래 장사지냈다. 그래서 하성조를 불러가다 꾸짖고는 정소(呈訴)하려 했더니, 그가 3월 그믐 안으로 파내겠다고 애걸하였다. 그래서 그 말을 믿고 기다렸는데, 지금 기일이 지났는데도 파갈 생각이 전혀 없다. 이에 무덤을 즉각 파내달라고 관아에 요청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영암군 관아에서는 초2일에, "즉각 친히 살펴 처분하고자 하나 지금 검소(檢所)에 가야하니 수향(首鄕)으로 하여금 도형(圖形)을 그려와서 보고하라고 한 후에 파내도록 독촉하겠다."라고 처분하였다. 처분은 수향에게 내렸고, 김정봉(金正奉)이 담당하여 고하도록 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소차계장류

郡終面望湖亭居 化民李圭浩 謹齋沐上書于城主閤下 伏以 民之曾祖父母山與先考山所 在於郡終面古鄕校下麓 而去年分 城內居河聖祚爲名汗 暗葬渠父於單龍單脈不遠之地故卽爲招致同聖祚 據理責之 欲爲呈訴 則渠之言內 限三月晦內 卽爲掘祛之意 萬端哀乞 故一依渠言 信之無疑矣 今則限日已過 終無掘移之意 故緣由仰訴 伏望 參商敎是後 卽刻掘移 毋至更閙 官庭 千萬祈懇之至 謹冒昧以達城主 處分辛亥四月 日 化民 李鉉榮 李鎭榮 李圭浩 李圭漢 李圭濂 李圭三 李圭五 李圭沃 李圭世卽欲親審決處是矣 方赴檢所 使首鄕圖形報來後督掘事初二日 首鄕告金正奉官 [署押][印]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26년 포충사 유회소(褒忠祠儒會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褒忠祠儒會所 □…□(2.4×2.4)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26년 8월 19일, 포충사 유회소에서 오준선 등 25인과 포충사 중수유사 등이 포충사 중수를 완료하기 위한 의연금을 더 걷자는 취지의 내용으로 쓴 통문. 1926년 8월 19일, 광주(光州)의 포충사(褒忠祠) 유회소(儒會所)에서 오준선(吳駿善) 등 25인과 포충사 중수유사(重修有司) 등이 포충사 중수를 완료하기 위한 의연금을 더 걷자는 취지의 내용으로 쓴 통문이다. 제봉(霽峰) 고선생(高先生)을 제향하고 있는 포충사의 중수(重修)에 대한 일로 봄에 글로 고하였음을 다시 상기시키며 중수(重修)를 봄에 시작하여 가을에 끝마칠 것이니 지금은 반이 되었다고 했다. 의연금을 더 계산하여 정하고 이것으로 공역을 마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취지로 보낸 통문이다. 일자 뒤에는 포충사 유회소의 25원 이름이 나열되어 있으며, 그 뒤로 포충사 중수유사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중수유사로는 도유사(都有司) 오준선, 부유사(副有司) 정영원(鄭永源), 원임(院任) 김용순(金容珣), 박노선(朴魯宣), 오동수(吳東洙), 이재춘(李載春), 장재(掌財) 기도섭(奇近燮), 감동유사(監蕫有司) 이계종(李啓琮), 양일묵(梁鎰默), 나종우(羅鍾宇), 최수화(崔洙華)의 명단이 적혀 있다. 광주에 있는 포충사는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5인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창건된 사당으로 1974년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601년(선조 34) 호남 유생들이 광주 제봉산(霽峯山) 아래에 사당을 건립했고, 1603년(선조 36)에 박지효(朴之孝) 등 문인과 후손들이 사액을 청해 '포충(褒忠)'이란 액호를 받았다. 고경명을 주벽으로 제향하고 동배위에 고종후와 유팽로, 서배위에 고인후와 안영을 배향했다. 포충사는 사액 사당으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서원 철폐 때에도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훼철되지 않았던 사우이다. 1623년, 1810년, 1879년, 1919년, 1927년, 1933년에 각각 중수했고, 1978∼1980년에 현재의 사우(신사우)를 정화하였다. 제봉(霽峯)고경명(高敬命)은 1558년(명종 13)에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임진왜란 당시 호남 지방에서 최초로 의병 6,000명을 모집하여 금산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1911년 정일수(丁日壽) 서간(書簡)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丁日壽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1년 2월 7일, 사생 정일수가 사돈 족속 중 좋은 처자를 중매해 주기를 사돈에게 부탁하는 편지. 1911년 2월 7일, 사생(査生) 정일수(丁日壽)가 사돈 족속 중 좋은 처자를 중매해 달라고 사돈에게 부탁하는 편지이다. 먼저 사돈댁 어르신 두 분과 그를 돌보는 사돈형님의 안부를 묻고 자신은 두 대의 어르신 잘 계시다며 인사를 전했다. 본론으로는 사돈 족속 중 운여(雲汝) 씨 집에 아름다운 규수가 있다고 들었다며 우리 집안이 높은 누각이 있는 좋은 가문은 아니지만 혹시 하늘의 인연이 있다면 도모해 보고 싶다고 전했다. 이 일의 성패는 사돈 어른의 한마디에 달려 있으니 잘 살펴서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拜謁許久, 下懷伏悵. 謹伏未審此間,査丈主兩位氣體候康旺,侍餘棣體候萬安, 諸節均善, 伏溯區區, 不任伏祝. 査生重省姑依, 私幸何達. 就白側聞, 貴族雲汝氏宅曾有閨節云, 果若然乎? 甚羨甚羨.査生亦門非高閣, 心亦几下,不敢望意之事, 若或天緣幸講其攸耶否? 此事爲不爲, 都在於 査丈主一言端也. 則以此深諒處之伏望耳.餘萬, 姑留不備, 上候書.辛亥二月初七日, 査生丁日壽 再拜上書.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강재호(姜在皥) 서간(書簡) 5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姜在皥 李學士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편지를 받은 날에 제 강재호가 이 학사에게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묻고 연적을 나중에 보내주겠다는 말을 언급하고, 계회 일자를 알려주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보낸 답장 서간. 편지를 받은 날에 제(弟) 강재호(姜在皥)가 이(李) 학사(學士)에게 공부를 잘하고 있는지 묻고 연적을 나중에 보내주겠다는 말을 언급하고, 계회 일자를 알려주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보낸 답장 편지이다. 맑게 갠 겨울 날씨에 상대와 상대의 아저씨 되는 이형준(李亨俊) 형이 어른을 모시고 공부 잘 하고 있는지 안부를 물었다. 자신과 같은 사람은 곁에서 함께 토론하지 못할 것 같아 한스럽다고 했다. 수적(水滴)에 관해서는 공인(工人)이 다른 곳으로 공방을 옮겨 갔기 때문에 다시 말할 것이 없고, 되도록 빨리 보내겠다고 말하며 편지를 마쳤다. 추신(追伸)에는 계회(稧會) 일자가 언제냐고 물으며 답서(答書)로 말해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수적(水滴)은 연적을 가리키는 말이다. 발신자 강재호(姜在皥)의 자세한 정보는 알 수 없으나 아들 중 강진회(姜進會, 1885~)가 있으며, 전라남도 진도군 임이면(臨二面) 중만리(中萬里)에 살았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李 學士 講案 將命者.冬晴做履侍晏, 頂溯憧懸, 令叔亨俊兄亦安侍同課, 漸得叢角, 鷄頭之味耶.可想不在諸下, 而恨不使如弟看旁臨對討也. 水滴事,工人移炉他方, 則不必更論, 從近送之, 則且有好道理也. 俯燭如何. 餘不備禮.卽, 弟 在皥 二拜.稧會且以何時耶. 有言語答音, 則轉鞭上万計耳.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강재호(姜在皥) 서간(書簡) 3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姜在皥 李升由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편지를 받은 날에 제 강재호가 이승유 형에게 내가 그 쪽으로 가서 토의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며 형이 자신쪽으로 오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쓴 서간. 편지를 받은 날에 제(弟) 강재호(姜在皥)가 이승유(李升由) 형에게 내가 그 쪽으로 가서 토의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며 형이 자신쪽으로 오기를 바란다는 내용으로 쓴 서간이다. 그동안 격조했던 소식에 많이 그리워하여 고통스러웠던 마음을 전하는 것으로 편지를 시작했다. 편지를 받고 봄에 상대가 어른 모시고 잘 있음을 알았다고 인사하고 자신은 어제 석재(石齋)에 도착하였고, 돌아가는 길에 한번 만나 상의하고자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는데 감히 날아오시기를 바란다고 하며 은혜를 내려주시기를 믿겠다고 하였다. 나머지는 서로 만나 토의하기로 하자는 인사로 편지를 마쳤다.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李 碩士 升由兄 侍案 入納甚矣阻也. 苦思之苦, 苦於苦別之苦. 謹詢春中省做事錦晏, 不任恭禱. 弟 昨到石齋, 而歸路切擬一扣相議矣. 但日力未多未能遂願矣. 敢望飛也. 似惠然專恃耳. 餘在相討, 不備.卽, 弟 在皥 拜.

상세정보
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서간통고류

涓吉乾丁巳土坤己未火大禮丙子十二月二十六日乙丑時甲申尊鴈納幣 宜申時置函坐處 宜庚方周堂 無忌行禮 方避申酉方

상세정보
상단이동 버튼 하단이동 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