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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什陸年辛未五月初十日崔孟談處明文右明文事段 矣自起買得 累年耕食是如可 逢此大殺之年 生道爲難不得已 寶城井谷面玉泉村前伏在牧字畓二斗落只一夜味負數七卜二束庫乙價折錢文什五兩依數捧上爲遣 右人前本文記幷以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雜談是去等 持此文記告 官卞正事畓主 僧 碓還[着名]證人 僧 英保[着名]筆執 僧 以明[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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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3년 안처항(安處恒) 처 김씨(金氏) 허여명문(許與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安處恒 妻 金氏 安處岳 妻 卞氏 安昌赫<着名>, 金潤光<着名>, 申彦采<着名> □…□(4.5×4.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83년(정조7) 1월 3일에 안처항 처 김씨가 안처악의 처 변씨에게 자신의 제2자 안명헌을 계후하도록 허락하면서 발급해 준 입후 허여명문 1783년(정조7) 1월 3일에 안처항(安處恒) 처(妻) 김씨(金氏)가 안처악(安處岳)의 처(妻) 변씨(卞氏)에게 발급해 준 입후(立後) 허여명문(許與明文)이다. 허여문서를 작성하는 이유는 안처항에게는 동성 6촌 아우가 되는 안처악이 안씨의 대종(大宗)임에도 불구하고 적처와 첩에게서 모두 아들이 없이 죽었으므로 안처항의 제2자인 안명헌(安命憲)을 계후(繼後)하도록 허락한다는 내용이다. 이 사항에 대하여 가문의 논의를 통해 허락하였으니 나라의 법전에 의거하여 예조에 입안(立案)을 신청하도록 당부하였다. 안명헌의 입후 과정에서 안명헌의 아버지인 안처항과 또 입후이후 아버지가 되는 안처악이 모두 생존에 없자 각인의 처(妻)가 문서를 수수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아들의 입후를 허락하는 안처항 처 김씨, 문장(門長) 유학(幼學) 안창혁(安昌赫), 증인 동성4촌남 출신(出身) 김윤광(金潤光), 작성자 유학 신언채(申彦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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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四十八年癸卯正月初三日 家翁同姓六寸弟故學生安處岳妻卞氏前 許與明文右文爲許與事 家翁同姓六寸弟安處岳 以安氏大宗 嫡妾俱無子不幸身死 其妻卞氏請以矣第二子命憲欲爲繼後 矣亦早失所天 恤此安宗之無托 惻其嗣續之將絶 玆以第二子命憲 一從門議 許與立後爲去乎 依 國典呈禮曺立案事許與主 故學生安處恒妻金氏[安處恒妻金氏]門長 幼學 安昌赫[着名]證同姓四寸娚 出身 金潤光[着名]筆 幼學 申彦采[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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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3년 홍석문(洪錫文) 분급문기(分給文記) 2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洪錫文 女壻 安命一 等 子女 洪錫文<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773년(영조49) 1월 25일에 홍석문이 자녀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면서 작성한 분급 도문기 1773년(영조49) 1월 25일에 홍석문(洪錫文)이 자녀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면서 작성한 분급 도문기(都文記)이다. 서문에는 자신이 65세가 되어 죽을 날이 머지않았기에 약간의 전민(田民)을 구처(區處)하기 위하여 부모 및 자기 자신의 제위조(祭位條)를 제한 나머지를 각 자녀에게 나누어 준다고 하였다. 서문 뒤에는 부모제위조(父母祭位條), 자신의 제위조(祭位條)를 차례로 적고 장자(長者) 거량(巨樑)의 몫부터 기록하였다. 전체 분배량을 살펴보면 장자 몫으로는 답(畓) 72두락, 전(田) 19두락, 노비 3구(口)이다. 다음으로 딸사위 안명일(安命一) 몫으로는 답 72두락, 전 14두락, 노1구이며, 차자(次子) 동량(東樑)의 몫으로는 답 70두락, 전24두락, 끝으로 죽은 딸의 몫으로는 답 1두락이 기록되어 있다. 분재기에 작성하는 순서가 남녀차별 없이 태어난 순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여성의 분재량이 두 아들에 비하여 적기는 하지만 큰 폭의 차이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분재기 발급 시 참여자는 재주(財主)인 아버지와 글쓴이로 장자 거량(巨樑)이 참여하였다. 도문기(都文記)는 분재시 자녀에게 분배한 모든 내용을 한 문서에 적은 문서를 말한다. 각 몫마다 따로 작성하여 나눠주는 경우에는 분급(分給), 별급(別給) 등의 용어를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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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 김팔만(金八萬)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卜三 金八萬 金卜三<押>, 黃斤老味<押>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341_001 1833년(순조33) 12월 21일에 답주 양인 김복삼이 안생원댁 문노 김팔만에게 보성군 노동면 유화치평에 있는 논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3년(순조33) 12월 21일에 답주(畓主) 양인(良人) 김복삼(金卜三)이 안생원댁 문노(門奴) 김팔만(金八萬)에게 논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매동기가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방매 토지는 자신이 산 보성군(寶城郡) 노동면(蘆洞面) 유화치평(柳花峙坪)에 있는 연자답(輦字畓) 2마지기 7배미(결부수: 7부)이다. 거래가격은 전문(錢文) 16냥이며,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 1장과 함께 판다고 명시하였다. 문서발급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양인 김복삼과, 증인 양인 황근노미(黃斤老味)이다. 토지소재지인 노동면 유화치는 현재 전라남도 보성군 노동면 일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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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十三年癸巳十二月二十一日 安生員宅門奴 金八萬前 明文右明文事 自己買得 伏在蘆洞面柳花峙坪輦字畓二斗落七夜味 負數七卜庫乙 價折錢文拾陸兩 依數捧上爲遣 本文記一丈幷 右人前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携貳之端 持此憑考事畓主 良人 金卜三[着名]訂人 良人 黃斤老味[畵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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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2년 고득종(高得宗)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奉祚 高得宗 崔奉祚<着名>, 崔仁九<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473_001 1832년(순조32) 12월 7일에 답주 유학 최봉조가 유학 고득종에게 순천부 황전면 산령촌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2년(순조32) 12월 7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최봉조(崔奉祚)가 유학 고득종(高得宗)에게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최봉조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짓던 논을 형세 상 부득이 한 사정으로 방매한다고 하였다. 거래대상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산령촌(山令村)에 있는 섭자(攝字) 답(畓) 1두 5승락지(결부수: 1부 8속)로 현재 시산(時山)의 이름자로 양안(量案)에 등재 된 곳이다. 거래가격은 전문 6냥(兩)이며, 본문기도 함께 준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유학 최봉조와 문서를 작성한 유학(幼學) 최인구(崔仁九)이다. 문서의 뒷면에는 '산령촌답(山令村畓)'이라는 관리자의 주기(註記)가 적혀 있다. 위 내용중 최봉조의 토지소유경위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하였지만 최봉조가 3년전인 1829년에 7냥을 주고 김종후(金鍾垕)로부터 매입한 본문기가 남아 있다. 황전면 산령촌은 오늘날 전남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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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拾二年辛卯十二月初七日 幼學高得宗前明文 右明文爲臥乎事段 傳來畓 累年耕食是如可 勢不得以 本 府黃田面山令村前坪員伏在 攝字畓一斗五升落只負數壹負八束時山帳庫乙 價折錢文六兩 捧上爲遣 右處本文記幷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良中 若有是非之幹是去等 將此文告 官相考事畓主 幼學 崔奉祚[着名]自筆 幼學 崔仁九[着名](背面)山令村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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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전의감(典醫監) 관(關) 고문서-명문문기류-감관문기 典醫監 吏曺 提調<押>, 關字印 □…□ 3顆(6.5×6.5)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84년 8월에 전의감이 이조에 보낸 관 1884년(고종 21) 8월에 전의감(典醫監)에서 이조(吏曺)에 보낸 관(關)이다. 황해병영(黃海兵營) 심약((審藥)인 최영운(崔榮運)이 근무일수를 채웠으므로[瓜滿] 후임으로 전의감에서 차례가 온 사람을 국왕에게 보고하여 윤허 받았고, 그 직책과 성명을 통보하니 규례에 따라 정사(政事)가 열리면 하비(下批) 받아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새로 임명하는 자의 관직과 성명은 '통훈대부(通訓大夫, 정3품 당하) 행(行) 황해병영심약(黃海兵營審藥) 박기준(朴基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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典醫監爲相考事 黃海兵營審藥崔榮運瓜滿代 本監當次人員入啓蒙 允爲有置職姓名關後錄爲去乎 依例待政下 批爲只爲 合行移關 請照驗施行須至關者右 關吏 曹光緖十年八月 日相考[關] 提調 [署押]後 通訓大夫行黃海兵營審藥 朴基俊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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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9년 최봉조(崔奉祚)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鍾垕 崔奉祚 金鍾垕<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473_001 1829년(순조29) 10월 17일에 답주 유학 김종후가 최봉조에게 순천부 황전면 삽치 산령촌의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29년(순조29) 10월 17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김종후(金鍾垕)가 최봉조(崔奉祚)에게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종후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논을 여러 해 갈아 먹다가 형편상 부득이한 사정으로 토지를 판다고 적었다. 방매 대상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산령촌(山嶺村) 앞평원 뜰에 있는 섭자(攝字) 답(畓) 1두5승락지(결부수: 1부 5속)의 논으로 현재 시산(時山)의 이름으로 양안에 등재된 곳이다. 이 논을 본문기와 함께 전문(錢文) 7냥으로 거래했다. 문서의 작성자는 답주 1인으로 김종후가 자필(自筆)하여 문서를 작성했다. 황전면 삽치는 오늘날 전남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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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九年己丑十月十七日 崔奉祚前明文右明文爲臥乎事段 傳來畓 累年耕食是如可 勢不得以 本 府黃田面霅峙山嶺村前坪員伏在 攝字畓一斗五升落負數壹負八束時山帳庫乙 價折錢文七兩捧上爲遣 右處本文記幷 永永放賣爲去乎日後良中 若有是非之弊是去等 將此文告 官相考事自筆 畓主 幼學 金鍾垕[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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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梁夔模 노(奴) 사금(士今) 梁夔模<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8년(헌종4) 12월 1일에 답주 유학 양기모가 유학 모인에게 순천부 황전면 삽치 산령촌의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8년(헌종4) 12월 1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양기모(梁夔模)가 유학 모인에게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양기모가 자신이 사서 여러 해 갈아 먹다가 형편상 부득이하여 논을 방매한다고 적었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산령촌(山領村) 굴포평(屈浦坪)에 있는 직자(職字) 답(畓) 4마지기(결부수: 12부 4속) 노(奴) 사금(士今)의 이름으로 양안(量案)에 등재된 곳이다. 이를 구문기(舊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와 함께 전문(錢文) 40냥을 받고 영원히 팔았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양기모 1인으로 자필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산령촌은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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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拾捌年戊戌十二月初一日 幼學右明文事段 自己買得 累年耕食是如可 勢不得已 順天黃田面霅峙山嶺村屈浦坪職字畓四斗落只負數十貳四束奴士今帳庫乙價折錢文四十兩依數捧上爲遣 右前旧文記幷以 永永放賣爲去乎 日後如有雜談是去等 以此文記告官相考事畓主自筆 幼學 梁夔模[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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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6년 양한영(梁漢永)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正澤 梁漢永 崔正澤<着名>, 金潤基<着名>, 鄭潤彩<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471_001 1826년(순조24) 2월 24일에 답주 한량 최정택이 유학 양한영에게 순천부 황전면 삽치의 논을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26년(순조24) 2월 24일에 답주(畓主) 한량(閑良) 최정택(崔定澤)이 유학(幼學) 양한영(梁漢永)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최정택은 자신이 사서 여러 해 갈아먹었던 땅을 쓸 곳이 있어서 판다고 했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굴포후평(屈浦後坪) 섭자답(攝字畓) 4마지기(결부수: 13부 6속)로 노(奴) 사금(士今)의 이름자로 양안에 올라있는 곳이다. 거래가격은 전문(錢文) 15냥이다. 구문기와 함께 영원히 판다고 밝혔다. 문서작성 시 참여자는 답주 한량 최정택, 필집(筆執) 유학 김윤기(金潤基), 증인 유학 정윤채(鄭潤彩)이다. 황전면 삽치는 오늘날 전남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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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陸年丙戌貳月二十四日 幼學梁漢永處明文右明文事段 自己買得 累年耕食是多可 要用所致 不得已 本府黃田面霅峙屈浦後坪攝字畓四斗落只 負數十三卜六束 奴士今帳㐣 價折錢文十■五兩 依數捧上爲遣 右前旧文記幷以 永永放賣爲去 日後若有雜談是去等 以此文記告官 卞定事畓主 閑良 崔定澤[着名]筆執 幼學 金潤基[着名]證人 幼學 鄭潤彩[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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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 조재의(趙在義)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在義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0년 2월 18일에 유학 조재의가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30년 2월 18일에 유학 조재의(趙在義)가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명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순천부 황전면(黃田面) 구포평(九浦坪)에 있는 위토답(位土畓) 4두락을 대대로 경작해오다가 필요한 곳이 있어 부득이 전문 62냥에 팔고 본문기(本文記)까지 매수인에게 양도하니, 이후 다른 말을 하는 폐단이 있다면 이 문서로써 바로잡을 것을 약속하였다. 매수인의 이름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명문은 주로 매매 등의 거래 내역을 작성하여 매도인이 매수인에게 발급한 조선시대의 계약서를 말한다. 명문에 기재된 매매 관련 사항은 명문의 작성일, 매수인의 신분과 성명, 매매목적물의 권리 유래, 매매 이유, 매매목적물의 표시, 지불수단의 종류 및 액수, 본문기의 교부 여부 등이 있다. 마지막에는 거래에 참여한 매도인, 매매 시 참여한 증인, 명문을 작성한 필집의 성명과 서명 등을 한다. 매매 계약이 성립한 후에는 새롭게 작성한 매매 명문인 신문기(新文記)와 매매목적물의 권리 유래가 적힌 구문기(舊文記)를 매수인에게 함께 양도해야 했다. 구문기로는 주로 분재기와 명문이 사용되었으며, 이들을 본문기(本文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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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4년 정윤▣(鄭允▣)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萬福 鄭允▣ 李萬福<着名>, 崔武成<着名>, 金種基<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24년(순조24) 10월 25일에 전주 이만복이 유학 정윤▣에게 순천부 황전면 삽치 산령평 밭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24년(순조24) 10월 25일에 전주(田主) 이만복(李萬福)이 유학(幼學) 정윤▣(鄭允▣)에게 밭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이만복은 자신이 매입했던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산령평(山嶺坪) 중기(中基)에 있는 섭자(攝字) 전(田) 4마지기(결부수: 4부 5속)의 땅을 전문(錢文) 3냥 5전을 받고 신문기 1장으로 매입자에게 영원히 판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전주 이만복과 증인 최무성(崔武成), 필집(筆執: 문서작성자) 김종기(金種基) 3인이다. 문서 작성시 청의 연호와 간지가 일치하지 않아 간지를 따랐다. 문서의 작성에 있어 토지의 방매 사유가 기록되어 있지 않은 점, 참여자의 서명이 화압(花押: 그림 서명)에 가깝다는 점, 방매(放賣)를 방매(訪賣)로 쓰는 등 뜻이 맞지 않는 글자를 쓴 것이 3자 이상이며, 이두를 기록할 때 '이거든(是去等)'을 '이거(是去)'로 기록하고 마친 점 등 여러 면에서 글을 작성하지 못하는 이가 작성한 미숙한 매매문서로 보인다. 황전면 삽치는 오늘날 전남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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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三年甲申十月二十五日 幼學鄭允▣…右明文事段 矣身自起買得田 本邑順天黃田面霅峙山嶺坪中基太種四斗落只攝字田四卜五束崔長福帳庫乙 黃成才帳庫乙 可〖價〗折前〖錢〗文三兩五戔 炭山登後東便洞也 此文記一丈幷 永永訪〖放〗賣爲去乎 日後子孫中 若有雜談以去 此文記告官卞正事田主 李萬福[着名]訂人 崔武成[着名]筆執 金種基[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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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1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鄭一煥 鄭一煥<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0년(순조30) 1월 16일에 답주 유학 정일환이 순천부 황전면 삽치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매수자에게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0년(순조30) 1월 16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정일환(鄭一煥)이 논을 방매하면서 매수자에게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정일환은 자신이 사서 여러 해 갈아 먹었던 논을 다른 곳으로 옮겨 사기 위해서 방매한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중고현평(中古峴坪)에 있는 종자(從字) 답(畓) 2마지기 진광(振光)의 이름으로 양안(量案)에 등재된 곳과 구포평(九浦坪) 직자(職字) 답(畓) 6마지기(총합 부수: 19부 9속)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67냥에 본문기와 함께 영원히 팔았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정일환 1인으로 자필(自筆)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뒷면에는 거래토지 내 상변(上邊) 2마지기(2부2속)의 땅을 다른 이에게 팔았다고 적었다. 글자가 기록된 위치는 앞쪽 직자답의 뒤쪽으로 직자답의 일부 2마지기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 삽치는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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