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4년 안후지(安厚之) 등 8남매 화회명문(和會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安厚之 等 8男妹 安厚之 等 8男妹 安峑<着名>, 安愼之<着名>, 鄭東五<着名>, 安審之<着名>, 安益之<着名>, 曺善行<着名>, 安嵾<着名> □…□(흑색, 5.0×4.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333_001 1664년(현종5) 8월 16일에 안후지 이하 8남매가 아버지 사후 화회하여 전답과 노비를 나누면서 작성한 화회명문 1664년(현종5) 8월 16일에 안신지(安愼之) 등 8남매가 화회하여 전답과 노비를 나누면서 작성한 화회명문이다. 서문에는 아버지 안방준 생전에 분급해 주신 분재기에 노비 등의 나이와 노비의 부모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으므로 이번 화회하는 날에 문기에 기록된 대로 다시 제대로 써 넣고 먼 지방의 노비를 당초에 분재하지 않았으므로 각자 몫으로 나눈다고 적었다. 그 후 4가지 작성원칙을 명시해 놓았는데 첫째는 승중(承重) 전민(田民)을 별도의 종이에 적었지만 송산(宋山)의 종기(宗基)는 써 넣지 않았으므로 이번에 써 넣는다는 것, 둘째, 아버지가 분재한 을묘년 이후에 태어난 노비의 자손은 득후소생(得後所生) 이므로 기록하지 않는다는 것, 셋째, 늙은 노비는 이번 분깃문기에 넣지 않고 그의 자식들은 각자 분집하니 각 집에서는 남은 노비가 있다 하여 침책(侵責)하지 말 것, 도망 노비의 경우에는 자손 중에 추심하여 억게 되면 평균분집(平均分執) 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봉사위(奉祀位)로 전답 54두락과 노비 5구, 1남 안후지(安厚之) 몫으로 전답 32두락, 노비 20구, 2남 안신지(安愼之) 몫으로 전답 2두락, 노비 20구, 3녀 정창서(鄭昌瑞) 처(妻) 안씨 몫으로 전답 13두락, 노비 17구, 4남 안심지(安審之) 몫으로 전답 19두락, 노비 20구, 5녀 양일남(梁一南) 처(妻) 안씨 몫으로 전답 16두락, 17구, 6남 안익지(安益之) 몫으로 전답 29두락, 노비 20구, 7녀 조정유(曺挺有) 처 안씨(安氏) 몫으로 전답 24두락, 노비 16구, 죽은 8남 안일지(安逸之) 몫으로 전답 36두락, 노비 19구, 빠뜨린 노비 11구, 도망노비 8구를 기록해 놓았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인원은 1남 안후지의 아들 진사 안전(安峑)으로부터 2남 선교랑 안신지, 3녀 고(故) 사용(司勇) 정창서 대자 유학 정동오(鄭東五), 4남 안심지, 5녀 고 통덕랑 양일남 처 안씨, 6남 선교랑 안익지, 7녀 선교랑 조정유의 아들 유학 조선행(曹善行), 8남 고 학생 안일지의 아들 유학 안참(安嵾)과 필집(筆執) 외손(外孫) 정동오(鄭東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