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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拾伍年乙未十二月初六日 徐至誠前明文右明文事段 傳來山位畓 耕食是如可 當此歉歲 還穀太多 辨出無路 故不得已 本 府黃田霅峙山嶺村前坪伏在 攝字丁畓二斗伍升落只 負數三負兩作 幷奴昌世帳庫果 晋甲孫帳庫乙 價折錢文拾貳兩 依數交易捧上是遣 本文記幷 右前永永放賣爲去乎 日後子孫中 若有是非之弊則 將此文相考卞正事畓主 幼學 金潤澤 [着名]自筆 畓主 幼學 三寸侄 鍾垕[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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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梁準模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48년(헌종14) 3월 17일에 유학 양준모가 구례현 간전면 산령촌 밭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48년(헌종14) 3월 17일에 전주(田主) 유학(幼學) 양준모(梁準模)가 밭을 방매하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양진모는 자신이 사서 여러 해 갈아 먹었던 땅을 다른 땅을 사기 위해서 판다고 하였다. 방매 토지는 구례현(求禮縣) 간전면(艮田面) 산령촌(山嶺村) 뒤쪽의 좌자(坐字) 전(田) 태종(太種) 3마지기(결부수: 5負 4束)와 위쪽 회초장(灰草場)이다. 이곳을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와 함께 전문(錢文) 6냥을 받고 팔았다. 토지소재지인 간전면 산영촌은 현재 전라남도 구례군 간전면 금산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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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四十九丙申十二月拾六日 晉甲孫前明文右明文段 矣身祖上傳來田 累年耕食爲多可 要用所致 不得以 黃田面山嶺攝字田畓 幷卜數九束庫果 無主庫果 價折錢文貳兩 依數捧上爲遣 右人前文記幷 永永放賣爲去乎日後子孫中雜談爲去等此文記告官卞正事田累〖畓〗主 趙德厚[着名]同生 趙雲長[着名]筆 幼學 金守昌[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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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년 서지성(徐至誠)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潤澤 [金]鍾垕 徐至誠 金潤澤<着名>, [金]鍾垕<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5년(헌종1) 12월 6일에 답주 유학 김윤택과 김종후가 서지성에게 순천부 황전면 삽치 산령촌의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5년(헌종1) 12월 6일에 답주(畓主) 유학(幼學) 김윤택(金潤澤)과 김종후(金鍾垕)가 서지성(徐至誠)에게 논을 방매하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김윤택과 김종후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위답(位畓)을 갈아 먹다가 흉년을 당하여 환곡(還穀)이 많은데 마련할 일이 없기에 부득이하여 위답을 판다고 하였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산령촌(山嶺村)의 앞 평야에 있는 섭자(攝字) 정답(丁畓) 2두5승락지(결부수: 3부) 2작(作)이다. 양안(量案)에 노(奴) 창세(昌世)와 진갑손(晋甲孫)이 시작인(時作人)으로 등록된 곳이다. 이곳을 본문기와 함께 전문(錢文) 12냥을 받고 판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2인 뿐이다. 둘 중에 김종후가 자필(自筆)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황전면 삽치 산령촌은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에 해당된다. 토지의 자호 뒤에 나온 정답(丁畓)은 고무래 정자 모양의 논이라는 뜻으로 양안에 기재하는 토지의 모양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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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고득언(高得彦)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朴聖贊 高得彦 朴聖贊<着名>, 韓鎭基<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1년(순조14) 12월 26일에 진회산주 유학 박성찬이 유학 고득언에게 진황지와 산지의 송추를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01년(순조14) 12월 26일에 묵히고 있는 회산주인 유학(幼學) 박성찬(朴聖贊)이 유학 고득언(高得彦)에게 산지를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조지의 소유 경위는 자기매득(自己買得)이다. 여러 해 기르다가 쓸 곳이 있어서 부득이해서 팔게 되었다고 방매이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전라도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진목정평(眞木亭坪)에 있는 직자(職字) 진황지(陳荒地)와 회산(灰山)의 송추(松楸)로 양안에 적힌 시작자의 이름은 찬봉(贊奉)이다. 거래가격은 전문(錢文) 7냥이고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도 함께 준다고 적었다. 본문을 쓰고 추기한 글에는 큰 소나무 7그루는 팔지 않는다고 적었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진지와 회산의 주인 유학 박성찬과 문서작성자 유학 한진기(韓鎭基)이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은 오늘날 전남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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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慶陸年辛酉十二月卄六日 幼學 高得彦前明文右明文事段 自己買得 累年長養矣要用所致以 不得已 黃田下道霅峙山嶺眞木亭坪職字陳地灰山松楸幷以 贊奉帳庫乙 價折錢文柒兩 依數捧上爲遣 右前本文記幷以 永爲放賣爲去乎 日後良中 如有雜談是去等持此之告 官卞正事陳灰山主 幼學 朴聖贊[着名]筆 幼學 韓鎭基[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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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양희모(梁希模)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崔武生 梁希模 崔武生<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39년(헌종5) 1월 10일에 답주 한량 최무생이 유학 양희모에게 순천부 황전면 송전동에 있는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39년(헌종5) 1월 10일에 답주(畓主) 한량(閑良) 최무생(崔武生)이 유학(幼學) 양희모(梁希模)에게 논을 방매하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최무생은 자신이 매입하여 여러 해 갈아 먹다가 형편상 부득이한 사정으로 논을 판다고 적었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송전동(松田洞)에 있는 우자(優字) 답(畓) 2마지기(결부수: 7부 6속) 노(奴) 일산(一山)의 이름으로 양안(量案)에 등재된 곳이다. 이곳을 본문기(本文記: 이전 거래 및 소유 증명문서) 1장과 함께 전문(錢文) 16냥을 받고 영원히 팔았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최무생 과 증필(證筆: 증인이자 문서 작성자) 유학 조복원(趙福元)이다. 황전면 송전동은 현재 전라남도 순천시 황전면 일대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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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拾玖年己亥正月十日 幼學梁希模前明文右明文事段 矣自己買得 累年耕食是多可 勢不得已 府地黃田面松田洞優字畓貳斗落只 負數柒負陸束奴一山帳庫乙 價折錢文拾陸兩 依數捧上爲遣右前本文記一丈幷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雜談是去等 將此文記告 官卞正事畓主 閑良 崔武生[着名]筆訂 幼學 趙福元 喪不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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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5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金章誠 金章誠<着名>, 金相圭<着名>, 梁敬模<着名>, 崔孟得<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55년(철종6) 4월 16일에 황무지 주인 유학 김장성이 구례현 간전면 산령촌의 황무지를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55년(철종6) 4월 16일에 황무지 주인 유학(幼學) 김장성(金章誠)이 누군가와 토지를 거래하면서 발급한 토지거래명문이다. 자기가 사서 여러 해 논밭을 일구다가 형편상 부득이하여 구례현(求禮縣) 간전면(艮田面) 산령촌(山嶺村) 동변의 당감(當椷)에 있는 황무지를 전문(錢文) 5전을 받고 거래한다고 하였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이 정확하지 않게 적었기 때문에 내용의 파악이 쉽지 않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황무지 주인 유학 김장성과 필집(筆執: 문서 작성자) 유학 김상규(金相圭), 증인 양경모(梁敬模)·최맹득(崔孟得) 등 4인이다. 모두 한 사람이 작성한 것처럼 보이는 서명이 각 인원의 이름 뒤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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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豊五年乙卯四月拾六日 前明文右明文事段 矣自己買得 累年起耕已多可 勢不得已 求禮艮田面山嶺村東邊當椷處 蕪養趠養上邊大岩下在 右爲□ 作□爲■〔告〕 価折錢文伍戔依數捧上而告 右前若有雜談以此文記告官卞事蕪養主 幼學 金章誠[着名]筆執 幼學 金尙圭[着名]證人 梁敬模[着名]證人 崔孟得[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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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貳拾捌年甲戌三月十七日 前明文右明文事段 自己買得 累年耕食是多可 移買次 求禮艮田面上嶺村後坐字田太種三斗落只負數五負四束 帳庫果 上邊灰草場幷 價折錢文六兩 依數捧上爲遣 右前本文記幷以 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是非之端 以此文記相考事田主自筆 幼學 梁準模 喪不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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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白采玉 白采玉<着名>, 趙成巨<着名>, 曺亨浩<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10년(순종4) 2월에 답주 백채옥이 누군가에게 보성군 며력면 상도리의 교자 논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910년(순종4) 2월에 답주 백채옥(白采玉)이 누군가에게 논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자신이 매입했던 보성군(寶城郡) 며력면(旀力面) 상도리(上道里) 와야평(瓦也坪)에 있는 교자(矯字) 답(畓) 1두7승락 1배미 결부수 11부의 논을 전문(錢文) 30냥을 받고 신·구문기와 함께 거래한다고 밝혔다. 문서 발급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백채옥과 증인 조성거(趙成巨), 증필(筆執: 증인과 문서작성자) 조형호(曺亨浩)이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보성군 며력면 와야평은 현재 전라남도 보성군 미력면 도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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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3년 전양수(全陽秀) 산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沈樂彬 全陽秀 沈樂彬<着名>, 張行權<着名>, 金璟洪 喪不着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406_001 1843년 5월 11일에 심낙빈이 전양수에게 산지를 매매하면서 작성해 준 명문. 1843년(헌종 9) 5월 11일에 심낙빈(沈樂彬)이 전양수(全陽秀)에게 산지를 매도하면서 발급한 명문(明文)이다. 전양수는 매매명문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증조의 산소가 쌍암면(雙巖面) 상도(上道) 노구치(老嫗峙) 방축동(防築洞) 신태룡하(辛兌龍下) 유좌(酉坐) 방향의 언덕에 있다. 그러나 고조와 증조부의 위토(位土)가 전혀 없으므로 제사를 모시기 어렵고 이번 봄은 살아가기가 너무 어렵기에 산지의 일부를 판다고 하고 있다. 팔고자 하는 지역은 유좌(酉坐) 방향의 언덕의 산소 용미(龍尾) 위쪽 파손된 지점의 한 자락 토지와 금양(禁養)하는 앞 뒤의 지점이다. 가격은 동전 150냥이다. 증인으로 장행권(張行權)과 필집으로 김경홍(金璟洪)이 문서 작성에 참여하고 있다. 이 문서에는 중앙 부분에 '효주(爻周)'라는 글자가 굵고 큰 글씨체로 쓰여 있다. 이는 이후에 벌어졌던 보성(寶城)의 전씨 집안과 쌍암면의 배씨 집안 사이의 산송에서 이 거래가 잘못된 것이라는 처분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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隆熙四年庚戌二月日前明文右明文事 自己買得矣 伏在旀力面上道瓦也坪矯字畓壹斗七升落一夜味負數十一卜庫乙價折錢文參拾兩依數捧上爲遣 新旧文幷以 右前永永放賣爲去乎 日後若有爻象之端則 以此文記告官卞正事畓主 白采玉[着名]證人 趙成巨[着名]筆執 曺亨浩[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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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隆拾玖年甲戌四月二十二日五男一女等處和會分▣…▣右文爲惟我夫妻年至耋髦 ▣▣交劇 入木之期 非朝卽夕 略干所在田畓許衿之擧 不可不爲於我生前如是區別均分爲去乎 須體予▣▣鎭長執指爲去乎矣 日後諸子族屬中若有▣…▣攘內中▣…▣只霜里防築底▣▣陸斗落只 諸金洞結字畓伍斗▣▣(落只) ▣(東)方洞秋字畓肆斗落只 山所洞藏字畓陸斗▣▣(落只)內肆斗落只 牛岩坪冬字畓柒▣(斗)落只 詄頭里雨字田伍斗落只 仸堂洞結字田肆▣▣▣(斗落只)所浦騰字田參斗落只 垈田參斗內蕃內貳斗落只奴太應金伊壹所生奴謀伊▣年十二二子衿後洞露字畓伍斗落只 芦田坪出字畓壹斗▣▣(落只)同坪崑字畓玖斗落只中 混洞崗字畓▣斗▣(落只)吾也洞羽字畓參斗落只 芦田前坪崑字▣…▣斗落只 同字畓下邊參斗落只 諸金坪結▣(字)…▣斗落只 同字畓參斗落只 牛岩列字畓柒▣…▣芦田前坪崑字畓貳斗落只 後坪雲字田貳斗落只 同字田參斗落只 家前致字田參斗落只 所里洞騰字田貳斗五升落只 致字田柒斗落只內 ▣▣斗落只 ▣田貳斗落婢 隱丹二所生奴今年生年 代方下橋調字畓▣斗落只三子衿家前坪致字畓伍斗落只 無心坪呂字畓上邊柒▣(斗)落只 山所洞冬字畓拾斗落只 藏字畓陸斗落只 同畓拾壹斗落只 牛岩坪冬字俠畓柒斗落只 諸今洞▣▣(結字)伍斗落只 將軍橋雲字田貳斗落只 所里浦騰字田參斗落只 致字田柒斗落只內下邊參斗落只婢每良貳所生奴白山年七四子衿馬頭坪歲字畓柒斗落只 無心坪律字畓肆斗落▣(只)呂字畓參斗落只 舟橋洞 字畓肆斗落只 牛岩坪冬字畓十七斗落只內下邊伍斗落只 諸今洞露字畓▣邊陸斗落只 馬頭坪歲字畓肆斗落只 金靈洞陽字畓伍斗落只 牛岩坪列字畓柒斗落只 松亭雲字田肆斗落只 所里洞騰字田肆斗落只 無心坪律字▣參斗落只 垈田貳斗落只 調字畓貳斗落只 上書五子衿牛岩坪冬字畓十七斗落只內上邊柒斗落只 山所洞▣字畓伍斗落只 同字畓陸斗落只 方下橋調字畓伍斗落▣(只)家前坪致字畓肆斗落只 東方洞潤字畓肆斗▣▣(落只)諸今洞結字畓伍斗落只 山所洞藏字六斗落內畓貳斗落▣(只)牛岩坪列字畓柒斗落只 方下橋調字田肆斗落竹林底雲字田肆斗落只 所里洞騰字田伍斗落只垈田參斗落只內蕃外壹斗落只 家前坪致字畓▣▣落只 婢隱丹壹所生奴甫音金年十二 婢雪化壹所生婢鋤雲年十五一女衿氏岩坪 字畓貳斗落只 家前坪致字畓拾壹斗落只 馬頭坪歲字畓陸斗落只 牛岩坪▣▣畓拾斗落只 合卄九斗許給 印▣(婢)每良壹所生婢介德年十五孫子右文處 藍洞藏字畓五斗追給奴太應金處許給藍洞藏字畓伍斗落只【還收給右文】方下橋調字畓▣斗落只婢隱丹處許給方下橋調字畓貳斗落只 詄頭里露字▣貳斗落只婢每良處許給牛岩坪冬字畓貳斗落只婢鋤雲處許給方下橋調字畓貳斗落只羅州鴨周洞畓柒斗落只 遺漏又閏字畓五斗落只牛岩坪加畓貳石落只 來頭起墾則當爲分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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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4년 진갑손(晉甲孫)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趙德厚 晉甲孫 趙德厚<着名>, 趙雲長<着名>, 金守昌<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461_001 1784년(정조8) 12월 16일에 전답주인 조덕후가 진갑손에게 전라도 순천부 황전면 산령에 있는 전답을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784년(정조8) 12월 16일에 전답주인 조덕후(趙德厚)가 진갑손(晉甲孫)에게 전답을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조덕후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여러 해 갈아먹다가 쓸 곳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방매한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전라도 순천부 황전면(黃田面) 산령(山嶺)에 있는 섭자(攝字) 전답(田畓) 9속과 주인 없는 곳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2냥을 받고 진갑손에게 영원히 판다고 하였다. 본문기에 대한 언급은 '문기병(文記幷)'으로 작성했기 때문에 이 문기가 본문기인지, 신문기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문서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전답주인 조덕후, 증인 동생(同生) 조운장(趙雲長), 작성자 유학(幼學) 김수창(金守昌)이다. 작성시기의 파악은 연호와 간지가 불일치하는 과정에서 간지의 기입 오류로 보고 간지(병신)보다 8년 더한 시기가 되는 연호(건륭49년)를 따랐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은 오늘날 전남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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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2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李士萬 李士萬<着名>, 林漢奎<着名>, 林基采<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904년(광무8) 12월 9일에 가대주 유학 이사만이 보성군 용문면에 있는 자신의 집과 텃밭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904년(광무8) 12월 9일에 가대주(家垈主) 유학(幼學) 이사만(李士萬)이 누군가에게 자신의 집과 텃밭 등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자신이 사서 여러 해 살았던 집을 쓸데가 있어서 방매한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가옥은 용문면(龍門面)에 있는 한자(寒字) 가대(家垈)와 체사(體室) 4칸, 행랑 4칸, 한자답(寒字畓) 3마지기, 피모전(皮牟田) 8마지기, 잿마당(灰場) 한쪽편이다. 논밭의 전체 결부수(結負數) 합계는 39부 8속이다. 이를 전문(錢文) 125냥을 받고 신문기 1장을 주고 팔았다. 문서의 발급에 참여한 인원은 가대주 유학 이사만, 증인 유학 임한규(林漢奎), 증필(證筆: 증인과 문서작성자) 유학 임기채(林基采)이다. 뒷면에는 '후동가대(后洞家垈) 구문기(舊文記) 1장'이라는 관리자의 주기가 기록되어 있다. 토지소재지인 전라도 보성군 용문면은 현재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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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光貳拾參年癸卯五月十一日 幼學全陽秀前明文右明文事段 矣曾祖山所 在於雙巖面上道老嫗峙防築洞辛兌龍下酉坐之原矣 高祖與曾祖父位土 全無立錐之地 而窮家設亨極難 故位土創建 累年經營 辦備無路哛除良 今春生活之道 死外無策 不得已 右酉坐之原 龍尾上破掘處 酉坐一席之地【果 禁養前後左右】 價折錢壹百伍拾兩 依數捧上爲遣 右前永永放賣爲去乎 日後 兄弟子孫族屬中 若有雜談 則以此文記 告官卞正事山主 宗孫 幼學 沈樂彬 [着名]證 幼學 張行權 [着名]筆 幼學 金璟洪 喪不着[爻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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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고득락(高得樂)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高聖彦 高得樂 高聖彦<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2년(순조2) 1월 14일에 고성언(高聖彦)이 사촌형 고득락(高得樂)에게 순천부 황전면 산령 앞뜰에 있는 밭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 1802년(순조2) 1월 14일에 고성언(高聖彦)이 사촌형 고성락(高聖樂)에게 밭을 팔면서 발급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고성언은 자신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밭을 여러 해 갈아먹다가 형세 상 부득이 쓸 곳이 있어서 판다고 방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산령(山嶺)의 앞뜰에 위치한 섭자(攝字) 콩 밭 4마지기(결부수: 49복)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10냥을 받고 형님에게 본문기 4장과 함께 영원히 판다고 하였다. 문서의 글씨는 썼다기 보다 그린 것처럼 보이며, 중간에 자형이 이상하거나 틀려서 지운 글자도 있다. 문서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고성언 1인으로 자필(自筆)로 문서를 작성하였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은 오늘날 전남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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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1년 김진택(金振澤)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晉甲孫 金振澤 晉甲孫<着名>, 許堈<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461_001 1791년(정조15) 3월 6일에 답주 진갑손이 유학 김진택에게 전라도 순천부 황전면 산령에 있는 양안에 등재되지 않은 논을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 1791년(정조15) 3월 6일에 답주(畓主) 진갑손(晉甲孫)이 유학(幼學) 김진택(金振澤)에게 논을 팔면서 작성해 준 토지매매명문이다. 진갑손이 자신이 매입한 땅을 쓸데가 있어 부득이하게 판다고 매매사유를 밝혔다. 방매 토지는 순천부(順天府) 황전면(黃田面) 삽치(霅峙) 산령평(山嶺坪)에 있는 섭자(攝字) 반답(反畓) 7승락(결부수: 2부)으로 양안(量案)에 주인이 등재되지 않은 땅이다. 이곳을 전문(錢文) 6냥을 받고 본문기 1장과 함께 영원히 판다고 하였다. 문서 작성에 참여한 사람은 답주 진갑손과 작성자 유학(幼學) 허강(許堈)이다. 토지소재지인 황전면은 오늘날 전남 순천시 황전면 회룡리 산령마을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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