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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술년 달성배씨(達城裵氏) 무청보소(務淸譜所)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務淸譜所 達城裵氏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무술년 8월, 달성배씨 무청보소에서 파보를 수보하기 위해 단자의 작성과 수합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각 도 종중에 보낸 통문. 무술년 8월 달성배씨(達城裵氏) 무청보소(務淸譜所)에서 파보를 수보(修譜)하기 위해서 도유사 배규철(裵奎哲)·배세일(裴世一) 등 17인이 각도 여러 읍의 달성 배씨 종중에 보낸 통문이다. 배씨 달성파에서 40년간 수보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애석히 여기며 각기 단자(單子)를 작성하여 유사(有司)에게 부쳐 보청(譜聽)에 가져다 줄 것을 청하는 내용이다. 발신자는 무청보소의 도유사(都有司) 배규철과 배세일 및 교정(校正) 3인, 공사원(公事員) 3인, 장재유사(掌財有司) 3인, 감인(監印) 2인, 수단(修單) 4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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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文右通諭事 伏惟人之本乎 始祖猶木之有根水之有源 而推原其本卽一理而已矣 根之培養 枝葉蕃衍源之始達 派流盈溢 則其於人之追崇其本 豈無子孫昌熾之里乎 如裴族之修譜 後孫何以知其宗乎始祖而分派昭昭哉曰 吾裵氏祖 乎 部長公 太師公而至於中葉 分爲五封貫 五封貫子孫散在八域 至今冒熾 不啻木之千條水之萬派也 所以猝難於五貫 大同各貫其貫譜也 惟我達城派修譜 于今四十餘年 而不講親親之誼 則尊_祖重本之意 敦宗收族之道 於是乎 惰矣 凡厥子孫 孰不歎惜哉 以派譜之事 陳爲右文之首 而定有司仰諭 則伏願僉 君子 勿以人徵而棄之追慕先業 各修其單 付此有司 而來納譜聽 使之竣功 以講親親之誼 千萬幸甚戊戌八月 日 務淸譜所 都有司 裴奎哲 裴世一 校正 裴彦圭 裴炳裕 裴瑜基【羅州】 公事員 裴炳絢 裴鐘純【光州】 裴致煥【靈岩】 掌財有司 裴瑞圭 裴時元【咸平】 裴炳愚 監印 裴奎繕 裴鎰圭【茂長】 修單 裴明圭 裴楨基 裴炳雲【客然起】 裴鐘淳【靈巖】右敬通于僉宗座下 各道列邑會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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寄舍弟月前答書 卽傳于本倅 家使之速傳矣 追後探知 則因其下便之遲滯 今初二日出付云爾 則想未知得覽矣間後多日 歲除不遠省節連爲安穩 而慈主氣力 大無損攝率下大都均吉 倂溯切切 有倍常品 此中姑依客狀而已 或科㠯明秋退行 事已著於政記 則吾之科事 可謂狼貝也留連之意 都在於科 而過夏之時 擬於秋科 而當秋則退於明春 過冬之時 擬於春科 而當今則又退於明秋 卽欲可去 隆寒雪程 難作發行 惟期開春庭試後啓行耳 保宗之訴 爲可謂越津之事也渠以巡營之托 敢起理外之訟 彼不過爲好訟之人也 然而今世上事 不可以測者人心 而以曲爲直以虛構實 人或信聽 況▣日營托者乎 吾今在京爲慮萬端 方其呈訟之時 何以決處耶 想不至落科 而事必歸正矣 且坡州宗孫 適爲那行 而果到否保宗之隻 卽是坡宗 則如許之訟 想應善處 而建祠事果是確論而收錢耶永植課讀 使之勸勉 幸勿浪遊也 曩書之後 久未聞信 於其遠在之道 悶㭗悶㭗 蟄伏客撓 艱草不具臘月初九日 舍兄 書那處中人等處 若有同知加資幸得則探知然後 詳示如何此書覽之後 卽卽修答 付于官便爲好耳 白紙二三卷 買送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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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찰별지(簡札別紙)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당나라의 한유가 사문박사로 있던 803년에 지은 「송하견서」를 베껴서 보낸 간찰 협지로, 한유의 오랜 벗으로 원한 것을 얻지 못하고 고향인 도주로 돌아가는 하견을 전송하면서 지은 글 당나라의 한유(韓愈, 768~824)가 사문박사(四門博士)로 있던 803년(貞元 19)에 지은 「송하견서(送何堅序)」를 베껴서 보낸 간찰 협지로, 한유의 오랜 벗으로 원한 것을 얻지 못하고 고향인 도주(道州)로 돌아가는 하견(何堅)을 전송하면서 지은 글이다. '하(何)는 한(韓)과 성이 같으니 친근하고, 하견은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하여 나와 같은 일에 종사하는 자로, 그가 태학(太學)에 있을 때에 나는 박사였고 하견은 학생이었으니 학생과 박사는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며, 내가 하견과 알고 지낸 지가 10년이니 오랜 벗이다. 동성(同姓)이라 서로 친근하고, 같은 일에 종사하며, 같은 길을 가고, 오랜 벗이므로 원한 바를 얻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에게 어찌 한마디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견은 도주 사람인데 도주자사(道州刺史) 양성(陽城)은 어진 자이며, 도주는 호남(湖南)의 속주(屬州)로, 호남관찰사(湖南觀察使) 양빙(楊憑) 또한 어진 자이다. 하견은 그곳의 백성인데 하견 또한 어진자이다. 호남은 도주를 속주로 삼고, 도주는 하견을 백성으로 삼았으니 하견이 돌아가서 그 고을의 부로(父老)와 자제들을 이끌고 양공(陽公)의 명령에 복종하게 할 것이요, 도주 또한 그 속현과 관할하는 주들에게 양공의 명령에 복종하게 할 것이다. 내가 듣기로는 새 중에 봉황이란 새가 있는데 항상 도(道)가 있는 나라에 출현한다고 한다. 한나라 때에 황패(黃霸)가 다스리던 영천(穎川)에 이 새가 모여 울었다고 하니, 역사책의 기록을 믿을만 하다면 돌아가는 하견에게 나는 앞으로 그가 봉황을 보게 되고 그 울음소리를 듣게 될 것을 축하한다'는 내용을 필사한 뒤에 여기에 베껴놓은 제해(題解) 중에 양공(陽公)이라고 쓰기도 하고 양공(楊公)이라고 쓰기도 했는데 양(陽) 글자와 양(楊) 글자를 분별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내용을 추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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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得堅爲民解 暫爲謄送 如何何於韓■同姓爲近 堅以進士擧 於吾爲同業 其在太學也 吾爲博士 堅爲生 與博士爲同道 其識堅也十年 爲故人 同姓近也 同業也 同道也 故人也 於其不得願而歸其可以無言耶 堅道州人 道之守陽公賢也道於湖南爲屬州 湖南楊公又賢也 堅爲民堅又賢也 湖南得道爲屬 道得堅爲民堅歸唱其州之父老子弟服陽公之令 道亦唱其縣與其比州服楊公之令 吾聞鳥有鳳者 恒出於有道之國 當漢時 黃霸爲穎川 是鳥實集而鳴焉 若史可信 堅歸 吾將賀其見鳳而聞其鳴也此亦中 所騰題解 或書陽公 或書楊公 陽字與楊字分別 如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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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계선생서독첩(題牛溪先生書牘帖) 초(抄)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제우계선생서독첩(題牛溪先生書牘帖)의 초본(抄本) 이 문서는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 1711~1788)가 작성한 〈제우계선생서독첩(題牛溪先生書牘帖)〉을 베껴쓴 것이다. 〈제우계선생서독첩〉 원래 우계 성혼이 은봉 안방준에게 써준 수독(手牘) 4장을 후손 안성일(安聖一)이 첩(帖)으로 만들어 보관하다가 임성주에게 가져와 보여주면서 작성된 글이다. 임성주는 성혼과 안방준이 주고받은 학자로서의 마음가짐과 의리에 대해 깊이 감동하여 첩과 관련한 글을 짓고 〈제우계선생서독첩〉 이라고 이름붙였다. 문서 말미에 따르면 〈제우계선생서독첩〉은 임성주의 문집인 ?녹문집? 21책 22권 17판에 수록된 글임을 알 수 있다. 즉 이 문서는 ?녹문집?에 근거하여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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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牛溪先生書牘帖右牛溪先生與隱峯安公手牘四紙 隱峯納之衣縫中 得全於兵燹 其後孫正欽聖一作帖而寶藏之 間甞携以示余 擎玩莊誦深有感於當日所値之時 師生相與之義而若其書中所云先察自家氣質之病 克己矯治 損其有餘 補其不足 必以孝悌忠信爲本 以謙遜拙訥爲質 以沉潛篤實爲功劬書玩索 堅苦操持云云者 則實學者入德基址 用功本領 而一句一字一點一畫 無非眞誠中流出 至今百八十有餘年 猶覺其遺光餘薰之襲人也 聖一方有志於學 勇往不怠 苟於此玩味而有得焉 其所以涵養克治 以進乎道者 豈待他求哉因敢竊識其後以歸之 要與共勉焉鹿門任公文集第十一冊二十二卷十七板公諱聖周字仲思鹿門號也 官至成川府使 與宋櫟泉閒靜堂兩賢 爲姊兄弟 從遊陶菴李先生 憲宗朝 贈成均祭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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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封〉謹再拜上候䟽稽顙言 伏承○下覆 良爲下情之感荷 謹伏審伊間叔母主氣力安寧 而侍中棣體候萬康 大小諸節均休云 伏哀賀區區下忱 罪內弟頑縷堇支 餘無伏達 就悚李戚貿來麻布 旣以百金戔持去 而其言內曰 興成之場 以幾許疋 折價之時 或入於百金之內 則無妨矣 出於百金之外 則初面座上 極難請弟修札 故向書中 以告有零數 期日出給矣 今聞則近五十緡零星云 於弟偶得大端費力之端 則預爲關慮處矣彼不可食言 失滯於弟處 則這間乘時 出末伏計 勿爲○下慮 如何 彼雖浪盡 不敢於罪弟 故以初五日內 沒數備納之意定限則弟之晉拜 以晦日的定矣 拘此出辦 以初五日 晉拜伏計耳 ○下敎甕器 招致店沃下問 則此村店漢 一窟器統買以去云 故伏未副○敎 若急則從當貿上伏計耳 且有花醴之最品者 故伏呈 此器則二升蜜封置 價文其時伏呈矣 或有手足 則以晦間送蜜 而回程甕器負去 而似見催促之道於彼處矣 若無手足 則因存以待弟行 伏企伏企耳 餘謹不備上候䟽卽旋 罪內弟 炳朝 䟽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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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자년 도천서원(道川書院) 종회(宗會) 통문(通文) 고문서-서간통고류-통문 道川書院 達城裵氏 道川書院 2顆(5.0×5.0)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임자년 8월 29일, 도천서원 종회에서 문장 배만희가 어떤 고을의 배씨 일족에게 동파이므로 자신들의 종족과 합하도록 권유하는 내용으로 보낸 통문. 임자년 8월 29일, 도천서원 종회(道川書院 宗會)의 문장(門長) 배만희(裴萬禧)가 어떤 고을의 배씨 일족에게 통문을 보내어 자신들과 동파(同派)이므로 종족을 합쳐서 앞으로의 일을 해나가자고 권유하는 내용으로 보낸 통문이다. 자신들과 3~4세(世)간 서로 알고 지냈을 뿐 종족의 일을 함께 도모하지 않았던 배씨 일족에게당신들 배씨는 자신들과 동파(同派)의 가문이지만 불행히도 중간에 가문의 화(禍)가 겹치는 바람에 다른 향리로 떨어져 나갔다는 것, 자신들과 똑같은 반열이라는 것, 서로 친목과 우의를 다졌기에 작년 봄에 합종(合宗)의 내용으로 통문을 보냈지만 아직까지 답이 없어 이유가 궁금하다며 객반(客班)이 되어 외롭게 소원히 지내지 말고 함께 유림의 일과 도(道)의 임무를 함께 하자고 권유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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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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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통고류

通文右文爲通告事 伏以 貴鄕裴氏卽鄙族同派之家也 不幸中古 疊連家禍 流落他鄕 今纔四三世矣 生等其在均是之列 不無敦叙之誼 故前春合宗發文矣 尙無回敎 甚爲訝惑 敢復獻愚 伏願 僉君子 勿以客班而外待勿以孤子而疎交 則非但爲鄙族之生色 抑獨非 仁鄕之美俗乎 凡於儒林之事 吾道之任 無漏此家 千萬幸甚壬子八月二十九日 道川書院宗會 發文 門長 裴萬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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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해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南澔 ▣南澔<着名>, ▣▣哲<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을해년 11월 16일에 ▣남호가 유학 아무개에게 갑향면 고두원에 있는 논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을해년 11월 16일에 ▣남호(南澔)가 유학 모(某)에게 갑향면 고두원에 있는 논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남호는 조상에게 물려받아 몇 년 동안 농사짓고 살던 논을 어쩔 수 없이 팔았다. 논의 위치는 갑향면(甲鄕面, 현 담양군 대전면) 고두원(高頭員)이며, 자호(字號)는 사자(四字)이다. 논의 면적은 4마지기이고 짐수[卜數]는 25짐 5뭇이며, 값을 받고 이 명문과 함께 논을 넘겼다. 명문의 끝부분에는 뒷날 문제가 생기면 이 명문으로 빙고(憑考)하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답주(畓主) ▣남호, 필집(筆執), 증인(證人)이 각각 착명(着名)하였다. 그러나 문서가 대각선으로 훼손되어 논값과 필집 이름 등의 내용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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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乙亥十一月十六日幼學 前明文▣…▣段傳來畓累年耕食是▣…▣多故不得已伏在甲鄕▣…▣高頭員四字畓四斗落只▣…▣二十五負五束庫乙価折則▣…▣依數捧上是遣新▣…▣永永放賣爲去乎日▣…▣文憑考事▣…▣南澔[着名]▣…▣哲[着名]▣…▣[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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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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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05년 분재기(分財記) 고문서-명문문기류-분재기 父 子女 財主父[手決]筆執幼學徐鳳來[手決] 영광 운당리 제주양씨가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05년 12월 15일에 아버지가 4남매 등에게 재산을 나눠주는 내용의 분재기 1805년(순조 5) 12월 15일에 아버지가 4남매 등에게 재산을 나눠주는 내용의 분재기(分財記)이다. 자신의 나이가 50여 세밖에 되지 않았지만, 병으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재산을 분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분재하는 재산은 토지 7마지기이며, 이것을 가지고 다투지 말라고 하였다. 여타의 분재기와 달리 자녀에게 훈유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어 마치 유언장과 같은 느낌을 준다. 또 한가지 특징은 자녀 4남매 외에도 동생·손자·묘지기·노비에게까지 토지를 나누어 주었다는 점인데, 특히 재산으로 취급되는 노비에게까지 토지를 분재해주는 사례는 조선시대 분재기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으므로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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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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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同治九年庚午十一月初五日幼斈李龍根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刈用是如可勢不得已伏在甲鄕面杏亭里匊字竹田一斗五升落卜數四負八束庫乙価折錢文十五兩五戔依數捧上是遣右前新文一張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爻象則持此文憑考事竹田主幼斈金秀坤[着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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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2년 이용근(李龍根)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丁永祚 李龍根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70_001 1872년 12월 7일에 유학 정영조가 유학 이용근에게 갑향면 행정촌에 있는 대밭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72년(고종 9) 12월 7일에 유학(幼學) 정영조(丁永祚)가 유학 이용근에게 갑향면 행정촌에 있는 대밭[竹田]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정영조는 자기가 매입하여 여러 해 동안 수호(守護)하던 대밭을 다른 곳의 토지를 사기 위하여 이용근에게 팔았다. 대밭의 위치는 갑향면(甲鄕面) 행정촌(杏亭村, 현 담양군 대전면杏亭里) 후평(後坪)에 있으며, 자호(字號)는 양자(養字)이다. 대밭의 면적은 2마지기이고 짐수[卜數]는 7짐이다. 정영조는 이용근에게 밭값으로 65냥을 받고 이 명문 1장과 함께 대밭을 넘겨주었다. 명문의 끝부분에는 뒷날 불미스러운 문제가 생기면 이 명문으로 빙고(憑考)하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대밭 주인 유학 정영조와 이 명문을 작성하고 증인(證人)으로 참여한 양상욱(梁相旭)이 각각 착명(着名) 하였다. 문서의 끝부분에는 '구문기(舊文記)는 집터 문기[家垈文記]에 함께 기록되어 있어 내주지 못한다'는 내용이 추기(追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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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同治十一年壬申十二月初七日幼學李龍根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守護是多可移買次伏在甲鄕面杏亭村後竹田养字二斗落卜數七負廤價折錢文陸拾伍兩依數捧上爲遣右人前以新文一丈永永放賣爲去乎日後若有爻象則以此文記憑考事竹田主幼學丁永祚證筆幼學梁相旭此亦中舊文記付於家垈文記故不得出給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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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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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74년 이용근(李龍根)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丁鉉台 李龍根 丁鉉台<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70_001 1874년 12월 7일에 유학 정현태가 유학 이용근에게 갑향면 행정촌에 있는 대밭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74년(고종 11) 12월 7일에 유학(幼學) 정현태(丁鉉台)가 유학 이용근에게 갑향면 행정촌에 있는 대밭[竹田]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정현태는 쓸 곳이 있어서 자기가 매입하여 여러 해 동안 수호(守護)하던 대밭을 이용근에게 팔았다. 대밭의 위치는 갑향면(甲鄕面) 행정촌(杏亭村, 현 담양군 대전면杏亭里) 후평(後坪)이며, 자호(字號)는 양자(養字)이다. 대밭의 면적은 1말 5되지기이고 짐수[卜數]는 3짐이다. 정현태는 이용근에게 밭값으로 30냥을 받고 이 명문 1장과 함께 대밭을 넘겨주었다. 명문의 끝부분에는 뒷날 불미스러운 문제가 생기면 이 명문으로 빙고(憑考)하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대밭 주인 유학 정영조가 이 명문을 직접 작성하고 착명(着名) 하였다. 문서 끝부분에는 '구문기(舊文記)는 도문기(都文記, 재산 내용 전체를 기록한 문서)에 함께 기록되어 있어 내주지 못한다'는 내용이 추기(追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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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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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同治十三年甲戌十二月初七日幼斈李龍根前明文右明文事段自己買得累年守護是如可要用所致伏在甲鄕靣杏亭村後养字竹田一斗五升落只卜數三負庫乙価折錢文參拾兩依數捧上是遣右前以新文一張永永放賣爲去乎日後如有爻象則持此文憑考事竹田主幼斈丁鉉台[着名]此亦中旧文記都文書幷付故不得出給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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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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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문기류

1883년 이풍식(李豊植)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陳正彦 李豊植 陳正彦<着名>, 金達培<着名>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HIKS_Z999_99_A01168_001 1883년 11월 20일에 유학 진정언이 유학 이풍식에게 창평현 고리에 있는 논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83년(고종 20) 11월 20에 유학(幼學) 진정언(陳正彦)이 유학 이풍식에게 창평현 고리에 있는 논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진정언은 갚아야 할 사채(私債)가 많아서 자기가 매입하여 여러 해 동안 세(稅)를 받아먹던 논을 어쩔 수 없이 이풍식에게 팔았다. 논의 위치는 창평현(昌平縣) 동서면(東西面) 고리(古里) 대후평(大後坪)에 있으며, 자호(字號)는 문자(文字)이다. 논의 면적은 4마지기 3배미이고 짐수[卜數]는 22짐이다. 진정언은 이풍식에게 논값으로 60냥을 받고 본문기(本文記)와 함께 논을 넘겨주었다. 명문의 끝부분에는 뒷날 불미스러운 문제가 생기면 이 명문으로 빙고(憑考)하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며, 답주(畓主) 유학 진정언과 이 명문을 작성하고 증인(證人)으로 참여한 증필(證筆) 유학 김달배(金達培)가 각각 착명(着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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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고문서
유형분류 :
명문문기류

1873년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고문서-명문문기류-토지매매명문 姜永豊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1873년 11월 그믐에 유학 강영풍이 갑향면 고현평에 있는 밭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 1873년(고종 10) 11월 그믐에 유학(幼學) 강영풍(姜永豊)이 갑향면 고현평에 있는 밭을 팔면서 발급한 토지매매명문이다. 매득자는 유학이라는 직역만 쓰여있고 이름은 쓰여있지 않다. 강영풍은 쓸 곳이 있어서 조상에게 물려받아 여러 해 동안 농사짓고 살던 밭을 팔았다. 밭의 위치는 갑향면(甲鄕面, 현 담양군 대전면) 고현평(古縣坪)에 있으며, 자호(字號)는 감자(敢字)이다. 밭의 면적은 2말 5되지기이고 짐수[卜數]는 6짐 2뭇이다. 강영풍은 밭값으로 42냥을 받고 이 신문기(新文記)와 구문기(舊文記)를 밭과 함께 넘겨주었다. 명문의 끝부분에는 뒷날 불미스러운 문제가 생기면 이 명문으로 빙고(憑考)하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전주(田主) 유학 강영풍은 상중(喪中)이라 착명(着名) 하지 않았고, 이 명문을 작성하고 증인(證人)으로 참여한 증필(證筆) 유학 방형신(房炯晨)이 착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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