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찰별지(簡札別紙) 고문서-서간통고류-서간 광주 민종기 (재)한국학호남진흥원 당나라의 한유가 사문박사로 있던 803년에 지은 「송하견서」를 베껴서 보낸 간찰 협지로, 한유의 오랜 벗으로 원한 것을 얻지 못하고 고향인 도주로 돌아가는 하견을 전송하면서 지은 글 당나라의 한유(韓愈, 768~824)가 사문박사(四門博士)로 있던 803년(貞元 19)에 지은 「송하견서(送何堅序)」를 베껴서 보낸 간찰 협지로, 한유의 오랜 벗으로 원한 것을 얻지 못하고 고향인 도주(道州)로 돌아가는 하견(何堅)을 전송하면서 지은 글이다. '하(何)는 한(韓)과 성이 같으니 친근하고, 하견은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하여 나와 같은 일에 종사하는 자로, 그가 태학(太學)에 있을 때에 나는 박사였고 하견은 학생이었으니 학생과 박사는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며, 내가 하견과 알고 지낸 지가 10년이니 오랜 벗이다. 동성(同姓)이라 서로 친근하고, 같은 일에 종사하며, 같은 길을 가고, 오랜 벗이므로 원한 바를 얻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그에게 어찌 한마디 말이 없을 수 있겠는가? 하견은 도주 사람인데 도주자사(道州刺史) 양성(陽城)은 어진 자이며, 도주는 호남(湖南)의 속주(屬州)로, 호남관찰사(湖南觀察使) 양빙(楊憑) 또한 어진 자이다. 하견은 그곳의 백성인데 하견 또한 어진자이다. 호남은 도주를 속주로 삼고, 도주는 하견을 백성으로 삼았으니 하견이 돌아가서 그 고을의 부로(父老)와 자제들을 이끌고 양공(陽公)의 명령에 복종하게 할 것이요, 도주 또한 그 속현과 관할하는 주들에게 양공의 명령에 복종하게 할 것이다. 내가 듣기로는 새 중에 봉황이란 새가 있는데 항상 도(道)가 있는 나라에 출현한다고 한다. 한나라 때에 황패(黃霸)가 다스리던 영천(穎川)에 이 새가 모여 울었다고 하니, 역사책의 기록을 믿을만 하다면 돌아가는 하견에게 나는 앞으로 그가 봉황을 보게 되고 그 울음소리를 듣게 될 것을 축하한다'는 내용을 필사한 뒤에 여기에 베껴놓은 제해(題解) 중에 양공(陽公)이라고 쓰기도 하고 양공(楊公)이라고 쓰기도 했는데 양(陽) 글자와 양(楊) 글자를 분별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내용을 추록하였다.